버트란트 러셀의 생애를 중심으로 19~20세기 수리논리학계 거두들의 지적 여정을 만화로 그린『로지코믹스』는 러셀, 화이트헤드, 칸토어, 힐베르트, 비트겐슈타인, 폰 노이만, 괴델, 튜링 등 금세기 최고의 수학, 논리학 계의 거두들의 사상과 이론을 전달하면서, 그 핵심적 논점과 내용을 분명하게 전달하면서도 흥미를 놓치지 않는 비상한 사실이 주목을 끈다.『로지코믹스』가 가진 가장 중요한 특징인 ‘전기’와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education 교육+entertainment 오락)로서의 측면을 들여다보되, 작자들이 재삼 강조한 ‘만화로서의 소설’, ‘소설로서의 만화’가 상징하듯 역사적 사실의 단순한 보고형태의 논픽션이 아니라, 이야기에 방점을 둔 창작물로서의 기대치 때문에 자연히 작자들이 선택한 목표를 달성하려는 서사전략에 주된 관심을 두어야 한다. 1.『로지코믹스』는 에듀테인먼트로서의 성격과 관련하여 만화의 매체적 특성을 매우 특별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그 가장 핵심적인 사실이 <문자매체와 영상매체의 특성공유>, <화면구도를 활용한 ‘몰입’ 효과의 창출>, <설명과 예화의 몽타주적 구성>이다. 2.『로지코믹스』의 서술층위가 다층적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로지코믹스』는 <저자들이 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이야기>와 <버트란트 러셀의 강연>, 그리고 <러셀과 수리논리학자들의 삶>이라는 세 개의 서술층위를 갖는다. 세 개의 서술층위는 장면이 빈번하게 바뀌는 커트백 효과로서 유려한 리듬감을 만들어내며, 동시에 일상적 삶의 묘사에서부터 난해한 지식의 전달에 이르는 극심한 편차에 자연스럽게 상응하는 서술의 다층적 대응을 고려하고 있다. 3.『로지코믹스』는 에듀테인먼트적 성격과 관련하여 지식전달자가 지식수용자에게 지식을 이해시키고 전달하려는 태도를 매우 분명히 드러내는 강연의 방식을 적극 활용하며, 그 과정에서 지식전달자와 지식수용자 간의 이념적 대립을 강조하여 몰입의 효과와 그로 인한 교육적 수월성의 효과를 만들고 있다. 동시에 특정의 지식을 전달함에 있어 서로 다른 서술층위를 교합함으로써 반복의 효과를 노림과 동시에 공통적으로 제작과정의 서술층위를 교합함으로써 제작과정에 참여한 지식수용자의 필연적이고 숙명적인 역할에 기댄 지식전달의 완결성 혹은 수월성을 강조하고 있다. 4.『로지코믹스』의 전기-자서전적 성격에서 주목할 점은 제작과정 서술층위에서의 전기기술의 방법론과 태도에 대한 자의식적 강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동시에 러셀의 강연의 층위에서의 자신의 삶에 대한 총체적인 조망자의 위치에서의 고백이 주는 진실성과 완전성의 환영이 주는 효과에서 온다. 아울러 특히 실제 삶을 드러내는 서술층위에서는 러셀의 육성이 영화의 보이스 오버처럼 자막으로 표시되며 지속적으로 개입하는데, 그것은 로지코믹스가 <말풍선 속의 대사>와 <화자의 해설>을 합하면 곧바로 소설의 대화와 지문이 연상되는 효과와 함께, <러셀의 강연장면>과 <보이스 오버로서의 러셀의 나레이션이 개입되는 실제 삶의 장면>의 빈번한 교체는 <화이트아웃과 컬러페이드 기법> 같은 영화의 장면전환기법을 연상케 한다. 다음으로 만화-소설로서의 성격을 주목해야 하는데, 가장 두드러진 사실이 화자의 압도적인 위상이다. 러셀의 강연의 서술층위에서 러셀은 스스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청중을 향해 쏟아내는 다변가가 되는데, 늘 크게 클로즈업 된 장면이 상징하듯 화자로서의 러셀은 무대를 장악하고 사실을 진실처럼 전달하는 유일한 증언자로서의 힘을 내뿜는다. 동시에 실제 삶을 그리는 서술층위에서도 그 압도적인 위상의 러셀은 인간의 가장 내밀한 감각인 육성을 그대로 보지한 채 보이스 오버로서 장면마다 자신의 육성을 설명자막과 생각자막으로 남긴다. 5.『로지코믹스』는 수리논리학자들의 가치와 한계-삶의 비극성, 모순성, 삶과 실제를 혼동하기-와 함께 인간과 세계의 근원적 본질을 동시에 들여다보게 되는 시야의 확장과 비상을 보여주게 된다. 동시에 <로지코믹스>가 보인 한층 더 성숙하고 상위의 시각이 나서게 되니, 바로 그것이 논리학 천재들의 업적 너머로 그것들의 한계조차 넘어서는 시각, 미래에의 전망을 드러내는 것이다.『로지코믹스』는 논픽션 특유의 충실한 사실보고에 그치지 않고, 진지하면서도 웅대한 반성적 사고와 전망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오레스테이아>처럼 웅장한 한 편의 서사시이자 비극이라 부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