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research established that the two characteristics of Femail Gugguek were explored on the character as genre and the nationalism discourse. This research also included how to encounter the characteristic of Female Gugguek as a popular entertainment with the social context at the time and how to re-produce the social ideology. The 'historical nationalism narrative' piercing Female Gugguek had the close relation with the nation/state discourse of the time. The history reproduced by Female Gugguek was not real. It was the imagined past, the history as image. The Female Gugguek was a genre which typically showed how to intermediate fantasy, ideology and narrative. The happy-endings with the victory of male hero, the narrative pattern on overcoming national crisis, the narrative emphasizing the glorious past and the unification of nation, all these were projected the discourse on nationalistic ideology and nation/state-making in 1950's. The Utopian desire of Female Guggeuk imagining the glorious past and strong nation was the fantasy which concealed the contradiction in real life and the national identity damaged by colonial experience, division of territory, governance by U.S. Military Government and the Korean War. The Female Guggeuk was doing well, because it had amusement. Futhermore, imagination of glorious past and strong state/nation of Female Guggeuk satisfied the public's desire of escapism and wish to establish their position and identity in the rapid social-economic changes. However, Female Guggeuk repeatedly produced the never-changing characters, narrative pattern and conservative world-view. Thus, it became regarded as immature and obsolete thing in late 1950's. Female Guggeuk, which kept re-producing the retrogressive image of the past without modern viewpoint and interpretation, was not sensitive about change of time and trend of the people. Consequently, it was pushed out of people's major interest.
이 글은 소멸이 예상되는 '문화재'라는 개념어의 역사를 살피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작하였고, 이 개념어가 우리 사회에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이전의 역사를 주 연구 대상으로 하였다. 문화재라는 단어는 1920년대에 등장하였는데, 문화적 자원이라는 의미 속에서 문학·역사·음악·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까지 문화재의 의미는 '문화적 자원'이라는 범위에서 많이 쓰였고, 이 시기에는 일제강점의 현실과 역사를 극복하려는 취지에서 사용된 사례가 많았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전쟁으로 인한 문화적 자원의 복구'라는 취지에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일본의 문화재보호법 영향을 직접 받은 문화재 인식은 1950년대부터 등장한다. 1960년대 초 문화재 관련한 각종 법령 제정과 문화재관리국 설치는 문화재의 의미가 '문화유산'으로 한정되는 현상의 원인이 되었다. 이렇게 국가가 주도한 문화재의 정의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문화재 개념이 문화재보호법처럼 일본에서 수입되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여러 일본 유학생들이 문화재 개념을 한국에 소개한 사례들은 이 개념이 일본에서 수입되었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하지만 '여러 한자를 사용한 조어', '1920년대 문화관련 복합어의 발생 현상', '비 일본권 유학자들의 문화재 개념 사용 사례' 등은 자체적인 발생 가능성도 열어준다. 문화재 개념의 수입 여부와는 별도로, 당시 지식인들은 이 개념을 사용하여 식민지 조선의 내적 발전과 극복을 도모하였다. 이 글에서 문화재라는 개념어는 일반적인 인식보다 더 오래되고 폭넓은 시작의 역사가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문화재'라는 개념어의 역사는 문화재보호법 제정을 기준으로 하면 60여년이 되지만, 그 발생인 1925년을 기준으로 하면 100년 가까운 역사가 된다. 일반적으로 단어의 생성과 소멸은 사회적 변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진행되기도 하지만, 국가적 정책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사라질 수도 있다. 사라질 예정인 단어의 시작이 어떠했는가를 알아보는 것은 이 단어의 역사적 의미를 정리하는 일에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한방 의서 중 인삼의 첫 기록은 고려 시대 임시 수도인 강화 도읍기 때 강화도에서 출간된 향약구급방에 나타나 있다. 강화지역에서 인삼재배의 시작은 1100년경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사료 된다. 본격적인 인삼재배 시작은 1920년경 개성인삼조합의 특별구역으로 지정되면서부터였고, 1950년 한국전쟁 시작 때까지 계속되었다. 1953년 휴전 이후부터 강화지역에서 인삼재배가 다시 시작되었다. 1967년에 강화삼업조합이 창립되었으며, 이때 재배 면적이 약 200ha(60만평)이었고, 1974년에 약 900ha(270만평)으로 증가 되었다. 따라서 강화는 1970년대 중반기에 우리나라 전국 시, 군 가운데 인삼재배 면적과 생산량이 가장 높은 지역이였다. 강화지역에서 생산되는 인삼은 주로 6년근이고, 홍삼원료로 사용되어 국내 인삼생산지로 더욱 유명하게 되었고, 그 명성이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War against Japanese(1592-1599) and war against Manchurian(1636-1637), which had been occurred in Korean Peninsula throughout the history, and frequent trade with foreign countries since $18^{th}$ century have led to a distribution of foreign food into Korea. Several examples for this include tomato, apple, watermelon, maize, pea, cowpea, peanut, potato from China and red pepper, pumpkin, and sweet potato from Japan. Since these foods had been brought into Korea, they have been cultivated suitable for Korea's climate and land. Foreign foods with a few exceptions tend to have high calories. For instance, along with potato and sweet potato, pumpkin is considered a high-calorie food containing lots of starches as it becomes ripening. This helped a wide spread of the foreign foods across the nation where intake of high-calorie foods was critical for Korean people's nutrition at that time. Among those foods introduced from foreign countries, red pepper had a greatest impact on the dietary life-style of Chosun Dynasty. The use of red pepper has been greatly expanded from main ingredient to seasoning and garnishing in various forms of red pepper such as red pepper paste, red pepper powder, and thick soy paste mixed with red pepper. Red pepper was made eating habits is hot besides dye red colored to traditional food, because steaming and boiling is frequently cook method, fermentation food also food color is achromatic therefore food color is and mixture with red pepper, picked fish and chinese cabbage new kimchi culture came into being.
머리뼈 밑면의 높이는 영양상태와 건강조건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귀밑점-으뜸점(Porion-basion)의 길이로 알려진 머리뼈 밑면의 높이는 캘리퍼(coordinate caliper)나 머리깊이(subtraction)를 계산하는 방법 등으로 쉽게 측정된다. 이 연구에서는 조선후기(17-18세기)와 6.25전쟁을 수행한 한국인의 영양상태와 건강상태를 알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6.25전사자와 조선후기(17-18세기) 인골을 자료로 머리뼈 밑면높이의 변화정도를 살펴보고 변화에 영향을 끼친 요인이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한다. 17-18세기 조선시대 회곽묘에서 출토된 인골모음과 6.25전사자 유해모음을 자료로 하였으며 비교는 미국에서 시기를 달리한 테리 인골모음과 법의학 인골모음을 사용하였다. 한국 인골모음의 경우 백인들과 비슷하거나 약간 낮으나 흑인보다는 건강상태가 좋은 것으로 관찰되는데 이는 민간계층가정에서 어린아이 성장에 필요한 영양을 효과적으로 공급하는 민간 재래적 방법 때문인 것으로 가늠된다. 그러나 조선 후기시대후기 인골의 영양상태는 일제하에서 성장한 6.25전사자와 별로 차이가 없다.
본 연구는 일본의 학부과정 도서관학 교육의 형성과정을 문헌 분석을 통해 역사적으로 규명하는데 목적이 있다. 연구 결과, 교육제도적 측면에서 본 일본의 도서관학 교육정책은 2차대전 이전의 정책을 승계한 것인데 반해 미국의 정책은 새로운 유형의 교육모델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1951년 미육군성과 미국도서관협회(ALA)의 계약 체결로 게이오대학에 미국식 도서관학 교육모델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현재 게이오대학 모델은 일본의 도서관학 교육의 주류모델로 성장하지 못했고 이는 결국 미국식 도서관학 교육모델의 도입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2차대전 이후 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시기에 미국식 도서관학 교육모델이 도입된 일본에 관한 본 연구가 향후 도서관사 연구영역의 확장 또는 대상국을 확대한 후속연구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Why did Kim Jong Un turn his foreign policy upside down in a sudden? US naval blockade became one of candidates for the reason since it had been threatened by Trump administration for the first time in December 2017. Has the blockades worked well like that in the international politic history? This paper reveals the effectiveness of naval blockade on sanctioning in the peacetime. This research analyzes three hypothetical arguments about the naval blockade based on the result of empirical tests with TIES Dataset. First, sanctions by blockading are more effective in gaining political benefits than the other economic sanctions. It was ranked the 4th effective way of sanction out of 9. And 56.3% of pacific naval blockades without packaged economic sanctions were succeeded, whereas the possibility of success increase up to 61.2% when blockade has been imposed in accordance with the other type of economic sanctions. Second, blockades deter military collisions, even war. When it comes to military provocation issue, blockading sanctions gain political interest far more than the other type of economic sanctions. The possibility of the success reaches up to 74%. Also, there wasn't any historical cases of war incurred by blockading sanctions within 5 years after the blockade end. Third, policy makers just need 1.2 years on average to see the end of sanctions when they choose the naval blockade as the method of imposing sanction on the adversary. It is impressively short span of time in achieving political goal compared to the other types of sanctions which are need 9 years on average. North East Asia sea could be the next stage for a naval blockade sooner or later. Because China and Japan not only possess capabilities of blockade but also have will to impose blockades to the others if conditions are set. And even the North Korea with lots of submerging forces could be a blockading threat in the specific area. So, the Republic of Korea has to pay more attention and be prepared for naval blockading sanction.
1980년대 이후 지역지리학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고조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지역지리학의 '르네상스'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지역지리학을 둘러싼 이론적 논의와 방법론적 쟁점을 비롯한 연구동향을 살펴보는 것은 커다란 학술적 의의를 지닌다고 생각된다. 특히 근대 지리학의 형성과 발달에 지대하게 공헌한 독일 지리학계의 지역지리학을 검토하는 것은 지역지리학의 성립과 발달과정, 그 학문적 성적과 지리학 내에서의 위상, 그리고 시대변화에 따른 지역지리학 연구의 한계와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파악하는데 적잖은 도움을 줄 것이다. 이 글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 지역지리학의 성립과 전개과정, 그리고 이와 결부된 지역지리학의 성격과 이론적 방법론적 쟁점들을 설명하고자 했다. 결론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독일 지역지리학은 독일 전통 지리학의 중심적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게 되는데, 이는 엄밀한 학문 논리에 기초하기 보다는 지리학적 연구 성과의 대중화라는 성격을 띠는 동시에, 초기의 자연지리학에 기초한 내용구성에서 점차 탈피하여 인문지리학적 접근방법을 강화시켜 나아가 있었다. 이에 제1, 2차 대전 세계대전 사이의 시기는 독일 지지학의 전성기로서 수많은 지지서가 출간되었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헤트너의 지지도식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지지서술의 방법론에 대한 비판과 아울러 경관학적 지지가 가시화되고 있었다.
본 논문의 목적은 이스라엘의 정보활동이 정체성 즉 국민들의 자의식의 형성과 변화, 그리고 국가건설 과정에서 미친 영향력을 분석하는데 있다. 19세기말 유대인들은 역사의 희생자 이미지를 공유하고 있었으며 이들에 대한 박해는 정치적, 신앙적 공동체인 독립국가 이스라엘 건설을 추동하는 요인이 되었다. 당시 이스라엘의 정보요원들은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으로 이주시키는 한편, 아랍인들과 투쟁하면서 국가건설에 매진했다. 다시 말해서, 정보활동은 유대인들의 국가건설을 위한 민족주의인 시오니즘을 구현하는 수단인 셈이다. 1948년 독립이후에도 정보기관은 아랍 국가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소련 등 국가들과 협상을 통해 UN에서 공식적으로 국가승인을 획득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아랍 국가들로부터 '사라져야할 국가'로 인식되면서 국가정체성이 부인되었다. 이후 4차례에 걸친 전쟁에서 승리와 이집트와 정상회담을 통해 비로소 국가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이를 성서상의 '약속의 땅'의 회복이라는 예언의 성취로 이해하며 승리자로서의 정체성을 공유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스라엘에서 정보활동은 국가의 독립과 건설, 그리고 국민들의 자의식의 형성과 변화를 유발한 기제였다.
In Turkey, academic studies on Korea are mostly focused on the Korean war and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Conversely, in Korea, it seems that academic studies are largely focused on old Turkic history and Turkish language and literature. Unfortunately, on both sides, there is not a satisfiying number of studies on the Turkic diaspora in Korea. However, it is a reality that there was a Turco-Tatar group that lived in Korea at the time of the Japanese occupation between the two world wars. This group became Turkish subjects after World War II and became a bridge between Korea and Turkey. After the Russian revolution, around 1919, some Turco-Tatar groups like the Bashkir and the Misher emigrated to East Asia like the Manchuria region of China and Korea. Beginning from the 1920s, some families moved to Japan, but a group of Turco-Tatar stayed in Korean cities like Seoul (Keijo), Pusan and Daegu. The Turco-Tatar groups of East Asia established schools and mosques in Seoul, Korea; Harbin, Manchuria; Kobe, Nagoya; and Tokyo in Japan. A Moslem printing house (Matbaa-i ${\dot{I}}slamiye$) was also established in Tokyo in the 1930s. Many books, a newspaper and a magazine were published by this printing house. The name of the magazine was Yanga Yapon Muhbiri(New Japanese Courier), and it survived between 1931 and 1938. In this magazine, there were many interesting news and data about Korea and the Turco-Tatars of Korea. In this short article, we will try to bring out the importance of this magazine by giving samples of the articles which were written on the Turco-Tatar diaspora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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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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