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Cross-Cultural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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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 표현의 실현 용법에 대하여 - '-을 수 있-' 및 일본어·중국어의 대응 표현을 중심으로 - (On the 'realization' meaning of possibility expressions - '-ul swu iss-' and its counterparts in Japanese and Chinese -)

  • 강영리;서취아;박진호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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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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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3-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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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가능의 의미를 나타내는 양태 표현은 본래 사태의 실현이나 비실현을 나타내는 것이 주 임무가 아니다. 그러나 '-을 수 있-' 같은 가능 표현이 사태의 실현을 나타내는 현상, '-을 수 없-' 같은 불가능 표현이 사태의 비실현을 나타내는 일이 종종 있다. [참여자 내부 양태]로부터 [참여자 내부 요인에 의한 실현], [참여자 외부 양태]로부터 [참여자 외부 요인에 의한 실현]으로 의미의 확장이 일어난 것이다. 가능 표현이 실현을 나타낼 때에는 [바람직한 사태]라는 평가 양태적 의미를 나타내고, 불가능 표현이 비실현을 나타낼 때는 [아쉬움, 바람직하지 않음]이라는 평가 양태적 의미를 나타낸다. 이런 현상은 한국어뿐 아니라 일본어, 중국어에서도 보인다. 현대 일본어에는 [가능]을 나타내는 표현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크게 '가능동사', '-れる/られる(-reru/rareru)', '-できる(-dekiru)', '-得る(-eru)'로 나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참여자 내부 가능성과 참여자 외부 비당위 가능성을 나타낼 수 있지만 참여자 외부 당위 가능성에는 '-eru'가 쓰일 수 없고, 인식적 가능성에는 이와 반대로 '-eru'만이 쓰인다. 또한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실현 비실현용법으로 쓰이기도 한다. 한편 형용사+가능표현의 조합은 불가능하므로 한국어에서 '형용사+-지 못하다'가 나타내는 '아쉬움'은 문맥에 기대어 나타낼 수밖에 없다. 현대 중국어에서 [가능]의 의미는 주로 조동사 '능(能)', '회(会)', '가이(可以)', '가능(可能)'을 통해 나타낸다. '능(能)', '회(会)', '가이(可以)'는 공통적으로 참여자 내부 가능성을 나타낸다. '능(能)'과 '가이(可以)'는 참여자 외부 가능성을 나타낼 수도 있다. '회(会)'와 '가능(可能)'만 인식적 가능성을 나타낼 수 있다. 네 조동사 중 '능(能)'만이 실현 용법으로 확장되어 쓰인다. 네 조동사에 대한 부정형 중 '몰능(沒能)'만 비실현으로 확장되어 쓰이고 다른 부정형은 모두 가능성 자체에 대한 부정을 나타낸다.

사랑과 정의, 양립 가능한가 - 폴 리쾨르 이론을 중심으로 - (Love and Justice are Compatible ? - In Theory of Paul Ricœur)

  • 이경래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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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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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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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서구의 도덕 문화에서 사랑과 정의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두드러진 두 개의 명령이다. 하나는 헤브라이즘의 유산이고, 다른 하나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전통에 속한다. 그만큼 두 개념은 인간 공동체 사회를 안정되게 유지하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덕목이자 개념이다. 그런데 서로 배타적 관계로 보이는 이 두 명령은 양립 가능할까? 그들의 화해를 궁극적으로 모색하기 위해서는 그 두 개념이 함의하고 있는 의미의 다층성으로 인해 그들 각각에 대한 정확한 개념 분석과 다각도의 이해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사전적 의미에서부터 출발하여 이 두 개념이 무얼 말하는지 개념 분석 작업을 했으며, 그리고 사랑과 정의의 담론이 어떻게 해석되고 있는지 폴 리쾨르를 중심으로 살펴보았으며, 끝으로 이 두 개념이 과연 문학 작품에서는 어떻게 이야기되고 있는지, 그 문학적 형상화의 사례들(스탕달, 알베르 카뮈,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통해 허구적이나마 삶 속에 구현된 모습들을 살펴보았다. 이처럼 두 개념에 대한 개념 분석, 담론 분석, 이야기 분석을 차례로 살펴본 결과,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사랑과 정의는 어느 한쪽을 선택할 문제는 아니었다. 부정한 사랑의 문제점이나 사랑이 결여된 정의사회의 냉정함과 비현실성 등은 스탕달과 알베르 카뮈의 소설적 형상화나 그들의 실제 논쟁을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부정한 온정주의에서는 사랑의 힘이 정의의 손길을 일정부분 차단할 수 있는 위험성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차라리 사랑과 정의, 그 양자를 함께 보듬어 양립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건강한 미래 사회를 위해 더 필요하다고 여겨졌다. 여기서 우리는 폴 리쾨르의 표현처럼 '상황에 맞는 도덕적 판단'이 요구되는 '사려 깊은 균형'에서 그 양립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러한 이상적인 상황은 차원 높은 시민의식이 발휘되는 연대의식과 상호 배려, 도스토예프스키처럼 고통을 함께 하는 연민 등이 개입된 사랑의 형태가 분배적 정의 원리와 결합되었을 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알베르 카뮈가 정의만을 추구하다 결국 현실을 직시하고 자비의 필요성을 언급할 때 이미 그는 이러한 상황에 따른 도덕적 판단을 내렸다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사랑은 정의를 지켜주고, 정의는 사랑을 현실화하는 데 기여한다. 정의는 초윤리적 사랑을 도덕 범주로 환원하는 데 일조하며, 사랑은 정의가 한껏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포스트휴먼 시대의 젠더정치와 괴물-비체의 재현방식 - 김언희와 한강의 작품을 중심으로 - (Gender politics and the monster-abject representation method of the posthuman age. - Focused on works by Kim Eon-hee and Han-Kang -)

  • 백지연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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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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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7-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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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최근 문학작품에 나타나는 괴물의 형상화는 '포스트휴먼' 시대의 인간 존재에 대한 비판적 상상력을 담고 있다. 특히 젠더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괴물-비체의 문학적 재현은 근대적인 폭력과 억압적인 가부장 세계에 대한 여성 주체의 비판을 담고 있다. 본고는 김언희의 시와 한강의 소설을 중심으로 '비체'와 '괴물'의 문학적 재현이 지닌 젠더적인 상상력에 주목하고자 한다. 두 작가의 작품은 괴물-비체의 상상력을 통해 혐오와 숭고, 경이로움과 기형성을 넘나드는 실천적인 젠더 전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김언희의 시가 보여주는 괴물-비체의 전략은 미러링의 서술화법과 절단된 신체의 상상력으로 요약될 수 있다. 남성 화자를 흉내내는 미러링의 발화법은 최근 여성혐오의 문제와 관련하여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김언희의 시에서 미러링의 화법을 통한 '남성 되기' '남성 흉내내기'는 육체를 해체하는 절단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이와 같이 혐오와 기괴함을 끌어내는 비체의 서술 전략은 가부장적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담고 있다. 한강 소설이 보여주는 괴물-비체의 전략은 식물되기와 채식-거식의 과정을 통해 구체화된다. 한강 소설에서 억압되었던 비체의 세계는 신체의 상징을 통해 몸의 감각으로 귀환한다. 여성의 신체로 표현되는 병리적 증상을 통해 억눌린 욕망을 깨닫는 소설 인물들은 적극적인 변신을 감행한다. 소설에 나타난 신체의 감각과 변화는 단순히 동물-남성-문명의 세계를 거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탐문하는 급진적인 물음을 지향한다. 두 작가의 작품은 괴물-비체의 상상력이 기존의 젠더 범주를 거부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젠더 실천을 수행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로뻬의 연극 『세비야의 별』에 나타난 비극성 연구 (Study on Tragic Characteristic in Lope's Drama La estrella de Sevilla)

  • 윤용욱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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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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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1-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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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황금세기 스페인 연극의 대표적 걸작으로 평가되는 "세비야의 별"은 17세기의 대표적인 극작가인 로뻬의 비극작품이다. 그러나 이 연극은 뛰어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로뻬의 창작 진위 여부를 둘러싼 여러 논란들로 인해 스페인에서도 작품 자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그리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이 연극이 가지고 있는 비극성을 크게 아리스토텔레스적 관점과 셰익스피어적 관점으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연극은 주인공들의 고귀한 사회적 신분이나 남자주인공 산초 오르띠스의 고뇌하는 적절한 대사 등 덕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카타르시스적 기능을 수행하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적 비극의 핵심적 본질인 '절대적 운명에 저항하는 주인공의 자유의지'의 측면에서는 다소 문제점이 발견된다. 이 연극에는 절대적 운명을 형성하는 핵심적 장치인 하마르티아가 부재하고, 이에 따라 절대적 운명이나 운명의 불가항력성이 설정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연극이 지닌 비극성은 셰익스피어적 관점에서 좀 더 온전하게 규명되어질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셰익스피어는 비극성을 주인공의 성격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여긴다. 즉 절대적 운명과 같은 외부적 요인이 아닌 주인공 자신의 가치관과 성격으로부터 비극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연극의 두 가지 비극적 사건인 부스또의 죽음과 산초 오르띠스와 에스뜨레야의 이별은 불가항력적인 사건이라기보다 전횡을 휘두른 국왕 산초 4세의 비뚤어진 이기심과 욕망, 그리고 산초 오르띠스의 국왕에 대한 지나치게 맹목적인 충성심으로 인해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절대적 권력의 부당함 앞에 궁극적으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한 상황 그리고 이로 인한 절망감이야말로 이 연극의 비극적 결말을 목격하며 관객들이 느꼈을 비극적 감정인 것이다.

동파체(東坡体)·파자(破字)와의 비교를 통해 본 일본근세 한자문자유희 - 난지(難字)·이루이 이묘(異類異名)를 중심으로 - (A Study on Chinese Characters Play of Edo Period in Japan by Comparison with the Pattern of Tungp'o(東坡体)'s Characters Play and Paza(破字), the Method to Make an Analysis of Chinese Characters; Focused Nanji and Iruiimyo)

  • 금영진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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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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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3-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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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동파체 및 파자와의 비교를 통해 본 일본근세의 문자유희방식, 특히 난지 및 이루이 이묘의 한자변형방식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난지 및 이루이 이묘에 보이는 한자변형방식 중에서 글자의 장단이나 대소를 이용한 방식은 동파체의 그것과 유사함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글자의 농담이나 글자의 속을 하얗게 비우는 블록체(가고지)가 동파체에서는 흔히 보이는 반면, 난지 및 이루이 이묘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점은 양국 문자유희의 상이점이라 하겠다. 두 번째로, 글자를 180도 뒤집거나, 90도 옆으로 뉘는 방식이 보인다는 점에서는 동파체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난지 및 이루이 이묘에서는 45도 기울기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과 더불어, 글자를 뉘거나 기울이는 방향이 동파체에서는 작자마다 제각각인 반면, 난지 및 이루이 이묘에서는 대개 누인 방향이 오른쪽이라는 점도 흥미로운 차이점이라 할 수 있겠다. 동파체와 난지 및 이루이 이묘의 모든 용례에서 문자의 방향성을 의식한 작자의 고려가 있었을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동쪽과 서쪽, 혹은 오른쪽과 왼쪽이라는 방향성을 작자들이 나름 의식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왜냐하면, 소동파의 '장정'시에 보이는 목 '수(首)'자의 반전과 산바의 '남녀(男女)' 글자의 180도 좌우 반전은 그러한 방향성과 회전성을 작자가 충분히 의식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파자 방식 중의 하나인 부분결여 방식이 난지 및 이루이 이묘, 그리고 동파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남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한자를 둘로 쪼개어 그 사이에 다른 한자를 집어넣는, 파자의 분리법과 증보법을 복합시킨 방식이 동파체에서 발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방식은 일본에서 주로 에도시대의 3단 수수께끼나 그림 수수께끼방식인 한지에(判じ絵)에서 이용되었는데, 이는 동파체와 파자의 한자변형방식이 일본근세의 문자유희뿐만 아니라 수수께끼에도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하겠다.

따찌야나 똘스따야의 단편 「새와의 만남」에 나타난 절망과 죽음의 모티프 - 조이스, 욘손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atyana Tolstaya's Rendezvous with Bird)

  • 최행규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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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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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5-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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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이 연구는 현대 러시아 작가인 따찌야나 똘스따야의 초기 단편 가운데 하나인 "새와의 만남"에 대한 본격적인 고찰을 담고 있다. 많은 비평가들이 지적하였듯이 똘스따야의 작품은 비유로 가득하다. "새와의 만남"은 그녀의 작품이 갖는 비유적 경향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비유적 경향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유한 독서전략이 필요하며, 그런 이유로 본 논문은 주도적인 모티프의 파악에 천착하였다. 모티프 분석은 우선 새와의 만남이라는 심히 비유적인 제목의 의미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하였다. 제목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작품 속에 드러난 새와의 만남에 해당할 수 있는 사건을 고찰하였으며 이를 통해 작품을 이끌어가고 있는 두 개의 주도적인 모티프를 분석하였다. 소년과 여자의 만남이라는 소년의 사랑이야기는 절망이라는 모티프를 통해 전개되었으며 전체 작품의 한 중심축을 구성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할아버지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과의 만남의 이야기는 죽음이라는 모티프를 통해 전개되었으며 작품의 또 다른 중심축을 구성하고 있음을 또한 확인하였다. 이렇게 볼 때 유년에 만나는 절망과 죽음은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견지한 일종의 문제의식이 될 것이다. 절망과 죽음이라는 주도적인 모티프가 갖는 보다 심층적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유년에 조우한 절망과 죽음을 매우 성공적으로 다룬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제임스 조이스의 "애러비"와 에이비트 욘손의 "보트 속의 남자"를 각 작품의 주도적 모티프를 중심으로 분석해 보았다. "애러비"와의 비교를 통해 "새와의 만남"의 소년의 행위의 심리적 원인이 더 자세히 설명되고, 절망의 구체적 대상이 더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며, 절망의 주인공 내적 원인(예를 들어 "애러비" 소년의 허영심과 페차의 허영심)이 더 명확히 입증된 것은 비교 연구의 작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보트 속의 남자"와의 비교를 통해 죽음에 대한 페차의 막연한 공포를 일종의 죄의식으로 설명한 것 역시 두 작품과의 비교가 주는 유의미한 결과가 될 수 있겠다.

자기생산 기계 시스템과 3차 사이버네틱스의 등장 (Autopoietic Machinery and the Emergence of Third-Order Cybernetics)

  • 이성범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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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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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7-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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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1940년대와 50년대에 등장한 1차 사이버네틱스 이론은 관찰 주체를 배제한 채 관찰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작동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방법론이다. 반면에 1970년대에 등장한 2차 사이버네틱스 이론은 시스템을 관찰하는 관찰자의 인식론적 구조 자체를 연구 대상으로 여기면서 인식 방식의 주관성, 개별성,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법론이다. 훔베르토 마투라나와 프란시스코 바렐라는 2차 사이버네틱스의 탐구 영역을 인간 관찰자로 대표되는 생물학적 시스템의 작동 메커니즘 연구로 확대한다. 그들은 살아있는 시스템이 지닌 자기 조직화와 자기 재생산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일을 2차 사이버네틱스의 핵심적 연구 과제로 여긴다. 생물학적 시스템이 지닌 자기생산 능력을 기계적으로 재현하는 시스템 탐구는 통제 메커니즘 연구를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게 하므로 3차 사이버네틱스라고 불릴만하다. 1차 사이버네틱스가 관찰자를 배제한 채 객관적 시스템에 대한 통제 기제를 탐구하고 2차 사이버네틱스는 인간으로 대변되는 생물학적 작동 메커니즘을 탐구한다면 3차 사이버네틱스에서는 살아 움직이는 시스템을 인위적으로 재창조하는 생명-기계 융합 시스템을 연구한다. 생물학적 시스템의 기계적 재생산을 현실화하는 일은 클라우스 슈밥의 4차 산업 혁명이나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가 제안하는 제2 기계 시대의 핵심적 화두 중 하나이다. 자기생산의 인위적 재현이 가능하게 되면 인간중심주의에서 인간과 기계가 다양한 형태로 결합되는 포스트휴먼 시대로 나아간다. 미국 소설가 딘 쿤츠의 소설 "악마의 씨앗"은 기계의 자기생산 능력을 주제로 삼는다. 1973년판과 이를 개정한 1997판를 비교하면 작가의 논점이 2차 사이버네틱스에서 3차 사이버네틱스로 변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1973년판에서는 과학 기술에 대한 공포심을 보여주는 인간 관찰자와 기술 만능을 주창하는 인공지능 프로테우스의 차이가 부각되나 궁극적으로는 인간 관찰자가 담론의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 1973년에 비해 훨씬 기술 지배력이 강화된 1997년도에 출판된 수정본에서는 과학 기술에 대해 공포감을 느끼는 인간 화자는 사라지고 기술 만능을 자랑하는 인공지능 프로테우스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주도한다. 더 나아가 그는 첨단 지능뿐 아니라 인간 주인공 수잔에게 성적 갈망을 표출하는 남성적 정체성을 획득하여 더 이상 인간의 통제 대상으로 이용되는 기계가 아닌 이성을 욕망하는 능동적 주체가 된다. 남성 정체성 획득은 프로테우스의 기계적 자율성이 극대화됨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일은 프로테우스가 만든 인공지능 아이는 과학기술을 활용한 우생학이 앞으로 도래할 미래에 보편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게 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프로테우스는 인간의 유전병을 고치고 유전자를 변형하여 완벽한 신체를 꿈꾼다. 또한 방대한 첨단 지성을 인간-기계 생명체에 주입하여 최고의 지성을 갖추도록 기획한다. 즉 그는 상품가치를 지닌 우수한 신체적 조건과 지적 자질을 기계적으로 재현하는 능력을 갖춘다는 측면에서 디지털 표준화를 추구한다. 결국 이런 기술적 우생학은 고전적 휴머니즘이 지닌 장점에 심각한 위해를 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인간은 양도할 수 없는 자기 운명의 주관자가 아니라 언제든지 공학적으로 변경 가능한 구성물로 전락할 위험성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마리아 루이사 봄발과 김채원의 작품에 나타나는 숭고한 남성이라는 대상의 붕괴 (Destruction of the Dignified Object Called Man in María Luisa Bombal and Kim Chaewon's Works)

  • 최은경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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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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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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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칠레 여성 작가 마리아 루이사 봄발(María Luisa Bombal, 1910 - 1980)의 단편소설 "나무"('El ${\acute{a}}rbol$', 1939)는 '브리히다'라는 여주인공의 '개안(눈뜸)의 과정'을 이야기한다. 브리히다는 아버지의 관심을 얻지 못하자, 이를 남편의 사랑으로 대치하고, 이마저도 실패하자, 이를 대신하여 창문 앞 아름드리 고무나무 (남자로부터 받는 사랑의 대체물)에게서 위로를 얻고자 한다. 개안의 순간은 국가도로사업에 의해 고무나무가 잘려 나가면서 일어난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아직도 사랑을 원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소설은 나무의 쓰러짐과 여성 개안의 연관성에 대해 설명하지 않으므로써 그 상징성과 심미성을 높였다. 이에 필자는 봄발의 "나무"를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하고 있는, 한국 여성작가 김채원(1946 - )의 단편소설 "물의 희롱-무와의 입맞춤"(2015)을 분석한다. 김채원의 작품을 통해 봄발을 읽음으로써 봄발의 "나무"가 궁극적으로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 여성이 남성과의 성과 사랑에 기대는 한 결국 파멸되게 되어있음을 고찰하고자 한다. 본 논문은 라틴아메리카의 단편소설과 아시아의 단편소설을 나란히 놓고 읽음으로써 여성이 주체적 삶을 살아가기 위해 인지해야 할 점들(a. 남자가 바라는 여자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오류와 b. 남성을 인생의 부분으로 여기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오류)을 지적한다. 그리고 필자는 쟈크 라캉(Jacques Lacan)의 욕망 이론에서 나타나는 욕망대상의 허상성과 숭고한 대상의 붕괴를 통하여 앞서 언급한 두 소설이 말하는 예정된 여성 파멸의 이유를 설명한다. 그리고 결론으로 여성의 개안이란, 남성과의 성과 사랑을 통한 인생에의 안온함은 없다는 것을 인지하여, 본질적으로 허상적인 사랑에 스스로를 가두는 습성을 버려야 함을 주장한다.

에벤키족 씨족명 분포 현황 및 의미 분석: 바이(Baj), 킴(Kim), 샤마/사마(Shama/Sama)를 중심으로 (The Analysis of the Distribution and Meaning of the Evenki's Clan Name: Centering on Baj, Kim, and Shama/Sama)

  • 엄순천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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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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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43-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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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본 논문에서는 알타이어족, 예니세이어족, 고립어족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에벤키족 씨족명 어근 바이, 킴, 사마를 중심으로 해당 씨족명의 기원과 의미, 분포현황, 이동경로, 해당 씨족명이 존재하는 시베리아 제 민족 사이의 친연 관계를 규명했다. 씨족명 '바이'의 기원에 대해 아직 명확하게 규명된 바는 없지만 그 의미를 둘러싸고 '북쪽', '흰색', '풍요로운' 혹은 '자연의'라는 세 가지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씨족명 '바이~'는 시베리아 제민족 사이에 넓게 분포되어 있다. 먼저 알타이제어 만주-퉁구스어파에 속하는 에벤키, 에벤, 나나이, 울치, 오로크, 오로치, 만주족 그리고 몽고어파와 투르크어파에 분포되어 있으며 예니세이어족이나 고립어족에서도 발견된다. 하지만 이 어근의 씨족명이 에벤키족 사이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점으로 미루어 이 씨족명은 프리바이칼리예의 에벤키족에서 기원하여 인근의 부랴트, 몽골, 야쿠트족 사이로 넓게 전파된 뒤 이후 동쪽으로는 아무르강의 닙흐족, 북쪽으로는 유카기르와 케트족 같은 예니세이 고아시아제어권 민족, 서쪽으로는 엔츠족과 셀쿠프족 같은 사모예드제어권 민족에게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씨족명 '킴~'은 먼 고대에 기원하며 만주-퉁구스어파에 존재하는 유사한 단어, 에벤키족 씨족명 어근 '킴~'과 음성학적으로 유사한 중국인의 성 '김', 에벤키족의 설화를 바탕으로 그 의미를 유추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씨족명 '킴~'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금, 쇠, 돌과도 일정정도 관련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또 씨족명 '킴~'은 시베리아 소수민족 사이에 널리 분포되어 있지만 에벤키족 사이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중국 인근과 페르시아에도 분포되어 있었다. 씨족명 '킴~'의 기원은 명확하게 규명할 수 없지만 먼 고대 바이칼 인근의 에벤키족에 편입된 후 만주-퉁구스의 제민족 사이에 널리 전파되었고 더 나아가 투르크제민족 사이로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씨족명 '샤마/사마~'는 알타이어족의 만주-퉁구스제어권, 투르크제어권, 우랄어족의 사모예드어제어권 민족 등 시베리아의 전역에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음성적 형태도 무척 다양한데 에벤키족 사이에 가장 널리 분포되어 있다. 이 씨족명이 알타이어족과 우랄어족의 제민족 사이에서 발견된다는 점은 이 두 어족의 민족들이 아주 먼 과거에 관련이 있었다는 증거이다. 이 씨족명은 오로크족을 제외한 만주-퉁구스제어권의 모든 민족 사이에서 발견되는데 이에 대한 규명이 필요해 보인다.

해방전후 함대훈 소설에 나타난 '러시아' 표상 연구 (Russia Represented the Novel of Dae Hun Ham before and after the Liberation)

  • 강용훈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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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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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7-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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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식민지 시기 함대훈은 러시아 문학을 자신의 소설 창작에 반복적으로 활용했다. 그 중에서 투르게네프의 소설 "그 전날 밤"은 함대훈의 첫 장편소설 "폭풍전야"에도, 1943년 발표된 "북풍의 정열"에도 반복적으로 차용되고 있다. 함대훈 문학에 차용된 러시아 문학은 지금 이곳과는 다른 문화, 다른 질서에 대한 인물들의 동경을 이끌어냈으며, 인물들의 동경은 1930년대 중반 발표된 "폭풍전야"에서는 민족운동에 뛰어든 신청년(新靑年)의 형상으로 구체화되어 당대 식민지 조선의 상황과 긴장 관계를 만들어냈다. 반면 1943년 발표된 "북풍의 정열"은 "폭풍전야"와 마찬가지로 투르게네프의 "그 전날 밤"을 차용하고 있지만, 이 소설에는 "폭풍전야"와는 변별되는 지정학적 상상력이 구현되어 있다. "북풍의 정열"에서는 '만주'를 둘러싼 당대의 정치적 역사적 맥락은 소거된 반면, '만주'와 과거 지식인 청년들의 열정을 이끌어냈던 '러시아'를 연결시키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열정이 만주에 대한 동경으로 대체되는 과정은 함대훈 문학에 나타난 '북국(北國)' 표상의 변화와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1930년대 후반 함대훈의 소설에서는 '러시아'가 '북국'으로도 표상되고 있었다. 그러나 함대훈 문학에서 '북국'은 점차 '러시아'가 아니라 '만주'를 지칭하는 공간 표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다. 북국' 표상을 통해 러시아와 만주를 연결시키는 방식은 '만주'가 시베리아 지방과 멀지 않은 지역임을 부각시키는 언술에서도 암시되어 있듯이 시베리아 지역으로까지 대동아공영권을 확대하고 싶은 제국 일본의 욕망과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었다. 함대훈은 '북국' 표상을 통해 러시아에 대한 낭만적 동경을, 제국 일본의 지정학적 논리를 정당화하는 담론으로 바꾸어 놓고 있는 것이다. 식민지 시기 함대훈에게 '러시아'는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었지만, 그 동경은 '만주'에 대한 함대훈의 인식에서 드러나듯 언제든 세속적 욕망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는 해방 직후 발표된 함대훈 장편소설 "청춘보"에서도 확인된다. 해방 직후는 소련이 냉전질서의 한 축으로 부각되고 러시아어가 한국인의 일상적 담화공간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던 시기였다. 함대훈은 "청춘보"를 통해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고 소련의 문화를 동경하던 연구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후, 그의 시선으로 해방 전후의 북조선 사회를 재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 작품은 러시아의 문화 및 '소련'과 관련된 다층적 표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재현의 양상을 만들어낸 것은 주인공이 지니고 있는 심퍼사이저(sympathizer) 의식, 즉 '동반자 의식'이다. 이러한 주인공의 동반자 의식은 식민지 후반의 조선에서 금지의 대상이었던 '소비에트' 문화의 이국성을 그가 동경하고 있었던 것에 기인한다. 그러나 러시아어가 일상에서 사용될 수 있는 언어이자 영어와 교환될 수 있는 위상을 확보하게 된 해방 직후 '러시아' 및 '소비에트'를 재현하던 주인공의 시선은 변모하게 된다. '붉은 군대'라는 상징 아래 '러시아'와 '소비에트'를 통합적으로 인식하던 시선은 점차 변모하였고, 월남(越南) 이후에는 '러시아'를 '공산주의'라는 도깨비에 의해 점령된 소굴로 간주하기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러시아'와 '소비에트'는 분리되어 이해되기 시작했다. 식민지 시기 가장 핵심적인 러시아 문학 연구자이자 번역자로 규정된 함대훈의 해방 이후 행보, 그리고 해방 직후 그가 발표한 소설 "청춘보"의 러시아어 번역/통역가 곽성식의 면모는 해방직후 한국의 러시아 문학 연구가 걸어야 할 침체의 길들을 서사의 형태로 예견하고 있다. 금지된 것에 대한 열망 및 러시아의 이국적 문화에 대한 동경에 의해 수행되던 낭만적 번역, 해방 전후 함대훈 소설의 러시아 표상은 그러한 낭만적 번역의 시대가 종언을 고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