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195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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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초기의 미국여성복식에 관한 연구 - 대학소장유물을 이용하여 - (A Study on the American Women's Dress in the Early 1950s : Using an University Collection Garment)

  • 김혜경
    • 한국가정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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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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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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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
  • 본 연구의 목적은 두 종류의 다른 연구자료- 유물과 문헌자료를 이용하여 1950년대 초기에 유행하였던 미국여성복식 가운데 쉬스 드레스(sheath dress)의 디자인 특징을 고찰하는 데에 있다. 본 연구의 일차자료로는 하와이대학교(University of Hawaii)의 The Western Costume Collection에 소장된 1950년대 초기의 복식으로 추측되는 유물과 1950년부터 1955년 사이에 출판된 Vogue, Harper's Bazaar, New York Times Magazine을 문헌자료로 이용하였다. 연구결과, 1950년대 초기의 미국 여성복 디자인의 특징은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강조하며 여성스러움의 미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쉬스 드레스(sheath dress)의 ‘the straight and slender look’으로 요약될 수 있었다. 나아가 문헌분석을 통하여 본 연구의 유물자료가 50년대 초기(1950-1954)의 미국여성복식 디자인의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 시기의 복식유물로 그 사용연대가 확증되었다. 본 연구는 지금까지 주로 문헌자료의 분석만으로 한정되어 왔던 한국의 전형적인 서양복식연구에서 한 걸음 나아가 과거에 실제로 입혀졌던 복식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기 위한 또 하나의 연구방법으로 문헌분석과 유물분석(object study)을 병행하여 시도해 보았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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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여학교 교육을 통해 본 '현모양처'론의 특징 (A Characteristic of Hyeonmoyangcheo-discourse for Education of Girls' School in the 1950s)

  • 김은경
    • 한국가정과교육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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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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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7-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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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1950년대 현모양처가 구성되는 조건은 매우 다양했다. 가사교과서와 여학교의 교육과정을 통해 본 1950년대의 현모양처주의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1950년대 가사교과서에 나타난 현모양처론은 일제시기와 달리, 유교적 여성 규율을 배제함으로써 성별분업에 근거한 '근대적' 전업주부상을 이상화하였다. 1950년대 가사교과서는 일제시기 여학생 수신교과서에 등장하는 '순종', '정절', '삼종지도' 등과 같은 유교적인 여성덕목이 사라지고 직분론에 근거한 '근대적' 주부상을 강조하였다. 이는 '민주주의'를 표방한 신생 대한민국의 국가 이념이 여성교육에 차별적으로 적용된 결과였다. 둘째, 가사교과서에서 여성 직업에 관한 내용을 강화하고 구체화함으로써 1950년대 현모양처론은 여성에게 가사 관리자 뿐 아니라 생계 담당자의 역할도 아울러 부과하였다. 기혼여성의 직업활동은 현모양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었지만, 가사교과서는 이것을 가정경제를 운용하는 '현대적' 현모양처의 임무로 수렴하였다. 셋째, 1950년대 여학교의 교육이념과 생활관교육과 같은 실제 교육 내용을 통해 본 현모양처론은 '근대적' 주부상과 '전통적' 규범을 내재한 여성상을 접목한 것이었다. 1950년대 여학교의 교육이념은 순종적 부덕보다는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여성 인재의 양성에 목표를 두었지만, 실제 교육은 여전히 현모양처주의를 중시했다. 교육이념과 실제 교육의 이중성은 50년대 처음 시도되었던 생활관 교육에서 그 전형을 볼 수 있다. 생활관 교육은 가사의 합리적 설계자로서 '근대적' 전업주부를 이상적 모델로 하면서도 '전통적' 여성 규범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50년대 현모양처론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사실을 종합해 볼 때, 1950년대 여학교 교육은 가사교과서와 여학교의 교육이념에서 유교적 여성규범을 일면 강조했던 일제시기의 그것을 탈피하면서도 실제 교육 내용은 여전히 '전통적 부덕'을 중시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볼 때, 1950년대 현모양처는 가정개량과 양육을 책임지는 '근대적' 전업주부 모델이었지만, 또 한편으로 '서구화'에 물들지 않고 '전통적 부덕'을 계승해야 하는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1950년대의 현모양처는 서구의 '근대적' 전업주부상과는 달리, 윤리적으로는 '전통성'을 체현하는 한편 가정을 '근대적'으로 개량하는 주부상이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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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의상에 관한 연구 -1950년대 영화를 중심으로-

  • 정현숙
    • 복식문화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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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식문화학회 2004년도 정기총회 및 춘계학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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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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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21세기를 대표하는 종합예술 중의 하나인 영화는 독자적인 문화권을 형성하여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하였다. 영화는 패션산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영화의상은 영화의 극적인 효과를 위하여 사용하는 모든 종류의 복식을 뜻하며 배우가 착용하는 의상과 헤어스타일, 머리장식, 액세서리, 신발, 분장 등은 영화의 내용 전개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본 연구에서는 영화 속 주인공들의 스타일이 여성 패션의 흐름을 주도하기 시작한 1950년대에 유행하였던 영화들을 중심으로 영화의상이 담당하고 있는 역할과 한국인의 일상복이 전통적인 의상에서 현대적이고 서구화된 의상으로 변하는데 영향을 미친 요인들을 분석하기 위하여 1950년대에 유행한 미국영화의 분석과 195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복식을 분석하고자 한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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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검색 발전사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Information Retrieval Systems)

  • 사공철;서경주
    • 정보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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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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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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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6
  • 195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의 정보검색 발전사를 연대별로 기술하였다. 1950년대에서는 후조합색인법과 KWIC방식을, 1960년대에서는 오프라인 시스템과 실험용 온라인시스템, 1970년대에서는 온라인시스템, 1980년대에서는 전문데이터베이스 온라인 인터페이스, 해외 데이터베이스의 이용 및 국내 온라인 시스템, 그리고 1990년대에서는 CD-ROM, 멀티미디어 및 하이퍼텍스트, 인터넷 등의 발전에 관하여 각각 기술하고 장래에 관하여 전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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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과 주변지역의 영화적 공간성 변화 : 1950-2010년대 한국영화를 중심으로 (Changes in Cinematic Spatiality of Gwanghwamun and its Surrounding Areas : Focusing on Korean Films of the 1950s-2010s)

  • 서곡숙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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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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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13-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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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본고는 1950-2010년대 한국영화를 대상으로 광화문과 주변지역이 영화적 공간에서 어떤 의미작용을 하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첫째, 1950-1960년대 한국영화에서 명동(남촌)과 북촌·서촌·동촌은 강렬한 욕망과 치명적 좌절, 근대화의 그림자와 갈등을 통해서, 화려한 도시의 지하세계와 비극적 파토스를 보여주는 원초적·지각·실존 공간이다. 둘째, 1970-1990년대 한국영화에서 명동·종로(남촌·북촌)와 서촌·동촌은 자유/악의 이분법과 부/빈곤의 이분법을 통해서 공적 복수와 사적 소외를 보여주는 지각·실존 공간이다. 셋째, 2000-2010년대 한국영화에서 광화문(서촌)과 북촌·남촌·동촌은 국민의제와 저항운동, 욕망과 상실, 비참한 현실과 죽음을 통해 시민사회 에토스와 암울한 진혼곡을 보여주는 지각·실존 공간이다.

한복개량에 대한 사적 고찰 (A Historical Research on Improved Changes of Korean Traditional Costume)

  • 구미지
    • 자연과학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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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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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3-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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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
  • 개화기 이후 서양복이 도입되면서 한복에 일어난 변화를 1920년대 이후 조선일보의 마이크로필름과 1950년대 이후의 의상 잡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한복 개량의 시기는 변화 내용의 질적, 양적 특성에 따라 해방이전의 소극적 변화기와 해방 이후의 적극적 변화기로 크게 대별하여 분석하였다. 소극적 변화기는 기본적인 한복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나 기존 한복의 길이, 폭과 치마허리에서 약간의 변화가 나타났던 시기이며 적극적 변화기는 한복의 구조에서 벗어나 그 이전시기에 비해 뚜렷한 변화를 보였다. 적극적 변화기는 변화특성에 따라 다시 해방이후로부터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두 시기로 분류하였다. 1950년대에는 서양복의 다트의 개념이 한복에 도입되었으나 아직은 한복의 구조에서 서양복의요소를 가미하는 정도로만 변화가 있었다. 그런데 1960년대에는 서양복착용이 보편화 되면서 서양복에 한복의 특징적인 요소를 반영하는 것으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서양복이 점차 일상복으로 자리잡게 되자 한복은 1950년대말경부터 예복으로 착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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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말 멜로드라마에 묘사된 근대건축공간에 대한 연구 (A Study on the Modern Architecture Space Represented in Melodrama Films of the Late 1950s)

  • 문근종
    • 한국융합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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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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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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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연구의 목적은 1950년대 말의 한국 멜로드라마 영화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근대적, 서구적 이미지로 드러난 건축공간을 고찰하는 것이다. 이는 대중영화가 당대의 주거문화, 건축공간, 인간행위 등을 필연적으로 반영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진행되었다. 고찰을 위해 신상옥 감독의 50년대 멜로드라마 5작품이 선정되었으며, 각 영상자료의 장면들과 등장인물의 특성, 대사, 관련 작품해설이나 평론 등이 종합적으로 분석되었다. 멜로드라마 속에서 근대건축공간은 크게 2가지로드러났다. 첫째, 전후 빈곤과 사회적 혼란 속에서도 전통적 주거건축과는 대비되는 근대적 건축공간들이 조명되었는데, 이는 서구적 주거방식과 부유층의 생활상에 대한 관객들의 동경과 호기심을 반영한 것이었다. 둘째, 주거공간뿐 아니라 업무공간, 상업공간 등 다양한 비주거 건축공간들이 비중 있게 묘사되었는데, 주로 공간의 내부를 비추면서 서구적 이미지의 인테리어 디자인이 조명되었다.

'중국학파' 애니메이션 작품에서 나타나는 전통 색채 응용에 대한 연구 - 1950~1980년대 중국 애니메이션 작품을 중심으로 - (Applied Research of Chinese Traditional Color in the Animation Creation of 'Chinese School' -Base Chinese Animation Works During 1950's~1980's-)

  • 션하오;이동훈
    • 한국콘텐츠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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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콘텐츠학회 2016년도 춘계 종합학술대회 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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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9-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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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중국학파'는 중국 애니메이션 학파의 약칭으로서 1950년대에 시작되어 1960년대 성숙기를 거쳐 1970-1980년대에 뚜렷한 성과를 거둔 중국 특색이 현저한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가리킨다. 이 개념은 중국학파의 탄생, 발전 및 전성기를 비교적 정확히 설명하고 있다. '중국학파' 애니메이션은 중국 애니메이션 발전과정에서 큰 업적을 남겼으며. 본 연구는 그 성과를 고찰하여 성과의 내용과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이는 중국 애니메이션산업의 종사자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본고는 주로 중국 전통 색채의 시각에서 애니메이션 조형에 대한 전통 색채의 영향을 고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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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활극, 스릴러 풍의 영화감독 김묵 액션영화의 영화작가적 태도 논의 (A Research on Dir. Kim, Muk's Film Works)

  • 김수남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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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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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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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김묵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한국영화계에서 주목받는 액션영화 감독이었다. 1958년 <흐르는 별>에서 각본, 감독으로 데뷔한 이후, 연출 초창기에는 통속멜로물에 관심을 가졌으나 <피 묻은 대결> 이후 본격적인 액션활극과 스릴러풍의 액션영화를 주로 만들었다. 김묵의 액션영화를 세부적으로 구분하면 항일투쟁영화, 월남전영화, 시대물, 멜로물, 반공물, 스릴러 등 6가지의 액션활극으로 나눌 수 있다. 본 연구는 액션영화 감독의 작품에 대한 미학적인 평가보다 우선하여 활동업적을 평가, 소개하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까지 김묵이 발표한 전 작품을 소개하고 이를 토대로 그의 연출스타일을 살펴 한국 액션영화에 대한 김묵의 영화작가적 태도를 논의하였다.

193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 싱가포르 티옹 바루 단지에서 공공주택의 동화와 이식에 관한 연구 (A Study on Assimilation and Transplantation of Public Housing at the Tiong Bahru Estate in Singapore from the 1930s to the 1950s)

  • 우동선;탁충석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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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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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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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Early 20th century Singapore was faced with the problem of overcrowding. The attendant problems of a rapid increase in population density, namely the lack of proper housing and sanitation, resulted in the issue of an appropriate residential environment emerging as an important task in urban planning. It was necessary to construct housing estates in order to solve this issue. At that time, the British colonial government attempted to transplant modern technology into the construction process of a residential complex system. However, Singapore's climate and traditional lifestyle made it impossible to apply the British modern system in a straightforward manner, and in the process, a number of transformations emerged. With a specific focus on the Tiong Bahru estate, one of Singapore's representative public housing projects, from the 1930s through the 1950s, this study intends to look at the way in which such residential estates were assimilated into local surroundings, and the effect of the transplantation of British concepts of modern housing theory. Therefore, the study is divided into an examination of the estate both before and after the turning point of World War II. This study confirms that the difference between the pre-war and post-war planning strategies for the Tiong Bahru estate were made according to the concept of 'open sp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