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전쟁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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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지배정책에 대한 신문들의 논조 변화 : 일제 말기($1937{\sim}1940$)를 중심으로 (The Change of Korean Newspaper Editorials on the Ruling Policies of Imperialist Japan in Colonial Korea : Focused on the Last Period of Japanese Occupation in Korea)

  • 박용규
    • 한국언론정보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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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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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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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일제는 중일전쟁 발발 이후 내선일체론에 근거한 황민화 정책을 실시하고, 병참기지론에 기반하는 전쟁동원체제의 구축을 서둘렀다. 중일전쟁을 위해서는 조선인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조선인의 황민화가 이루어져야만 했기 때문이다. 또한 일제는 황민화와 전쟁동원을 위해 전쟁의 성격과 목적을 정당화하는 시도를 해야만 했다. 본 연구는 이런 일제의 지배정책을 다룬 $\ll$동아일보$\gg$$\ll$조선일보$\gg$의 사설을 분석한 것이다. 먼저 전쟁의 성격과 목적에 관한 사설에서 두 신문은 중일전쟁 발발직후 한 동안 일본은 부득이하게 동양의 평화를 위해 전쟁에 나섰다고 주장했고, 일본군의 승전 소식이 있을 때마다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1938년 말 이후 두 신문은 중일전쟁은 동양을 서구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이고, 일본은 그 해방자라고 주장했다. 다음으로 황민화 정책과 관련해 두 신문은 초기에는 주로 신사참배나 궁성요배를 정당화하고 권유하는 논조를 보였을 뿐이다. 이후 두 신문 모두 지원병제도에 대해서는 '완전한 국민'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절대적인 찬성 입장을 보였던 반면에 3차 조선교육령에 대해서는 조선어 교육의 폐지를 염려하며 소극적이나마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1939년에 들어서서 두 신문 모두 '일본 정신'을 강조하며 내선일체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전쟁동원 정책에 관한 사설에서 두 신문은 전쟁 직후 한 동안 자중을 요구하는 논조만을 보이다가, 곧 여기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전쟁협력을 촉구하는 논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1939년에 들어서서 '일본 정신'을 기반으로 하여 적극적으로 전쟁에 협력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사설에서 나타났고, 1940년에 가서는 이제 국가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동원체제를 강력히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논조는 일제의 강력한 언론통제와 신문사 내 경영진 및 언론인의 의식전환이 모두 작용한 결과였고, 결국 두 신문이 일제의 지배방식에 순응해 독자들에게 내선일체와 전쟁협력을 강요했다는 역사적 평가를 듣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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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참정권·전쟁 그리고 국가 - 근대 일본 여성운동의 통시적 고찰 (Maternity, Suffrage, War, and State: A Diachronic Review of the Women's Movements in Modern Japan)

  • 이은경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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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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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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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고는 근대 일본 여성운동의 궤적을 '모성' '참정권' '전쟁'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통시적으로 고찰하되,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것이 일본이라는 '국가'와 어떤 관계를 이루었는가라는 관점에서 다룬 것이다. 특히 국가의 입장에서 여성에 대한 정책 등을 살핀 것이 아니라 여성들의 입장에서, 즉 이들이 '국가를 향해 어떠한 기대를 품었는가'라는 관점에서 히라쓰카 라이초(平塚らいてう)와 이치카와 후사에(市川房枝)라는 두 인물을 축으로 삼아 다루었다는 특징이 있다. '국가에 의한 모성의 보호'를 기대했던 히라쓰카는 신부인협회(新婦人協會)를 통해 전개했던 의회 청원운동의 실패를 끝으로 국가에 대한 기대를 사실상 접게 된다. 반면 미국 여성참정권 획득에 자극을 받은 이치카와는 여성의 참정권 획득을 위한 의회 청원운동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 비록 대개는 생활문제의 개선이라는 방식이기는 했지만 - 당국으로부터의 전쟁협력 요구에도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국가를 향한 '기대'는 근대 일본 여성운동을 견인하는 주된 원동력이었지만, 한편으로는 - 이치카와가 공직에서 추방되는 것으로 상징되듯- 침략전쟁의 협력의 오명을 쓰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러-우 전쟁 이후 NATO의 전략 변화와 한국의 안보전략적 함의 고찰 (Examination of NATO's Strategic Changes After the Russia-Ukraine War and Korea's Security Strategic Implications)

  • 김현진;배일수
    • 문화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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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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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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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NATO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그동안 유지해오던 평화유지 전략에서 탈피하고 다자안보협의체 강화, 전략적 안정성 추구, 군비 확충, 협력안보 및 인도-태평양 지역까지 대화·협력을 강화할 것을 천명하였다. NATO의전략 변화는 직·간접적으로 한국의 안보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이를 명확히 분석하고 대응할 수 있는 정책 및 전략을수립해야 위협을 억제하고 국가이익을 보호할 수 있다. NATO는 중국과 러시아를 위협으로 명시하고 있다. 우리는NATO와 협력과 연대를 기회로 삼아 소다자 안보협력 및 동맹 강화, 방산시장 개척 및 확대,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참여 기회 확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중앙아시아 관계 -2015년 EAEU 창설 이후를 중심으로- (Russia-Central Asia relations -Focusing on the period after the establishment of the EAEU in 2015-)

  • 박상남
    • 분석과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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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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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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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본 연구의 목적은 구조적 현실주의 입장에서 2015년 EAEU 출범 이후 러시아·중앙아시아관계를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하는데 있다. 1991년 냉전붕괴 이후 중앙아에서 형성된 국제질서는 미국 일극체제였던 글로벌 차원과는 달리 러시아 우위의 미·중·러 3개국에 의한 다극체제 성격이 강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러시아, 중앙아 양자관계는 밀접한 협력요소와 갈등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특히 권위주의 동맹성격을 가진 러시아, 중앙아는 정권유지를 위해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는 공생관계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이를 바탕으로 중앙아를 재통합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중앙아 역시 생존을 위해 러시아와 협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예속되지 않기 위해 다양한 국가들과 협력을 확대해왔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과 러시아의 상대적 약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러시아 경계심이 고조되면서 양자관계의 간극이 확대되고 있는 측면이 있다.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러시아의 초조감도 커지면서 EAEU창설의 배경이 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에도 푸틴이 중앙아 5개국을 방문하여 활발한 정상회담을 했던 것도 중국견제 심리가 작용했다. 향후 러·중의 경쟁이 표면화 된다면 중앙아 국제질서는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전통적인 러시아 우위의 중앙아 국제질서가 근본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은 낮다. 무엇보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안보, 역사, 문화적 연계성은 중국이 대신하기 힘든 부분이다. 따라서 러시아의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약화되겠지만 우월적 지위는 지속될 전망이다. 만약 러시아가 호전성에서 벗어나 매력적인 협력파트너로 변신할 경우 양자관계는 다시 상승세를 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푸틴정권에서 이러한 변화와 혁신이 일어날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중앙아를 재통합하려는 푸틴의 목표에 가장 큰 걸림돌은 푸틴 자신이다.

군사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산.학.연 협동

  • 이흥주
    • 국방과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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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호통권1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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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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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1
  • 이 글에서는 과학기술이 전쟁에 미치는 영향을 개관하고, 재래식 무기의 기술기반을 확충하면서 첨단 및 핵심 기술을 접목시켜 국가 전체의 과학기술을 균형있게 발전시킬수 있는 민과 군의 상호협력 방안과, 국가의 총체적인 과학기술의 수준을 더 한층 높이고 이를 활용하여 방위력을 증강시킬수 있는 산.학.연.군의 협동방안을 제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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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전쟁-'고부가가치화'로 뚫어라

  • 벤처기업협회
    • 벤처다이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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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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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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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기업은 환율갈등과 통상마찰이 불리하게 작용하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여 보수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무역보복의 빌미가 될 수 있는 가격 덤핑이 일어나지 않도록 동종 업체들이 협력해야 한다. 또 위안화 동향에 계속 신경을 쓰는 한편 단기간에 큰 폭의 조정을 받는 경우를 상정한 시나리오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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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 메모리얼에 나타난 기념문화 (A Study on Commemoration Culture of Vietnam War Memorials in Vietnam)

  • 이상석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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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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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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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베트남에 있는 베트남전쟁 메모리얼을 대상으로 메모리얼의 유형적 특성, 설계개념 및 내러티브, 입지 및 공간적 특성, 도입요소의 특성, 조경디테일에 나타난 표현 내용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하여 베트남전쟁 메모리얼에 나타난 기념문화를 분석하였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오랜 전쟁으로 인해 베트남전쟁 메모리얼은 군인묘지, 전적지, 전쟁박물관, 비극적 장소, 평화공원 등 10가지 유형으로 다양하게 나타났으며, 이중에서 전통적 양식에 근거한 군인묘지, 장소성을 강조한 전적지와 비극적 장소, 전쟁 승리와 잔혹함을 표현한 전쟁박물관, 평화공원이 특징적인 유형으로 나다났다. 2. 메모리얼에 나타난 주요한 설계개념 및 내러티브는 희생자 추모, 국가에 헌신, 전쟁승리와 저항, 장소적 기념성으로 나타났으며, 국제적인 민간단체의 협력에 의해 만들어진 미라이 평화공원(My Lai Peace Park) 및 한-베 평화공원(Han-Viet Hoa Binh Cong Vien)에서 비극적 사건을 극복하고 평화를 도모하는 개념을 적용하였다. 3. 메모리얼은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 DMZ) 및 전쟁 루트였던 호치민 트레일(Ho Chi Minh Trail), 그리고 베트남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주요한 도로인 A1 국도 주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밖에 하노이 및 호치민 등 도시에 전쟁박물관 및 모뉴멘트가 조성되었다. 묘지 및 추모 메모리얼에서는 문과 기념탑(또는 제단)을 연결하는 축을 중심으로, 좌우에 묘역이 배치되는 전통적 공간체계를 따랐으며, 전적지 및 비극적 장소에서는 장소성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설계를 통한 특정적인 공간 형태보다는 상징적 요소를 도입하여 기념성을 구현하였다. 4. 기념조각 및 기념탑은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의 대표적 양식으로 전쟁승리 및 저항정선을 표현하기 위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고, 포획한 무기를 전시하고 박물관에 사진 및 모형 등 자료를 전시하여 전쟁의 긴장감과 리얼리티를 보여주고 있으며, 유교 및 불교 등 전통문화에 근거한 상징요소를 도입하여 추모감을 높였다. 5. 기념조각이나 기념벽에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이용한 사실적 표현을 강조하였다. 또한 상징적 문구로서 자주 사용되고 있는 'TO-QUOC-GHI-CONG 토국기공(士-國-記-功)'에서 전사자의 업적과 국가적 관심을 나타냈으며, 이와 반대로'Quagmire'는 미군 참전용사들이 베트남에서 겪은 혼란스럽고 어려운 전투 상황과 베트남전쟁에 대한 미국사회의 혼돈을 묘사하는 정치사회적인 메타포(metaphor)로서 사용되었다. 베트남전쟁 메모리얼에는 민족주의, 애국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 등 다양한 이데올로기가 복합되어 있고, 유교 불교 도교 음양오행사상이 잘 나타났다. 한편, 유교적 전통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전쟁에서 영웅적 여성의 모습을 강조하였으며, 일부 메모리얼에서 베트남전쟁에 대한 국내 외적 갈등이 내포되었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하여 향후 미국에 있는 베트남전쟁 메모리얼의 설계특성을 연구하여 전쟁에 대한 인식 및 기념문화적 특성에 대한 비교연구가 필요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사이버공격 사례 분석을 통한 한국의 대응 방안에 관한 연구 (A Study on Korea's Countermeasures Through the Analysis of Cyberattack Cases in the Russia-Ukraine War)

  • 이형동;윤준희;이덕규;신용태
    • 정보처리학회논문지:컴퓨터 및 통신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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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권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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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3-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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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군사적 무력 충돌과 함께 사이버공격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전쟁과 관련하여 러시아가 한국을 비우호 국가로 지정함에 따라 한국에 대한 사이버공격의 위험성도 고조된 만큼 대응 방안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이번 전쟁에서 나타난 사이버공격 사례(19건)를 유형별로 영향을 분석하고, 자원 동원, 기술 진보 등 5가지 관점에서 고찰하여 특징과 시사점을 도출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 정부의 대응 방안으로, 가치공유 국가와의 다자협력 강화, 사이버공격 역량확보와 방어체계 강화, 해외 보안업체와의 연계 방안 마련 등 총 7가지를 제시하였다. 연구 결과는 한국 정부의 사이버안보 정책 수립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소련과의 기계기술 협력방안

  • 권오관
    • 한국윤활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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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윤활학회 1991년도 제14회 학술강연회초록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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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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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1
  • 소련과 동구라파의 개방과 개혁으로 신문지상에는 냉전의 종식, 동서화합 등에 관한 기사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며, 잇따른 미$\cdot$소의 군비감축 발표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세계평화가 구가되는 시기가 도래한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변화를 일각에서는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말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면 동구권의 개방고 개혁은 소비재 경제의 파탄으로 서방국가에 비해 국민 생활이 극심하게 낙후된것에 기인하고 있고, 그 원인은 기술의 상업화가 부재하였기 때문으로 서방과 동구의 현격한 민수용 기술격차가 동구권 변화의 근본적 이유이다. 오늘날 기술경쟁은 총성없는 전쟁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기술정보는 군사정보 이상으로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 우리는 상재국가 또는 경쟁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술전쟁의 시대에 살고 잇다. 얼마나 우수한 물건을 저렴한 가격으로 생산해서 판매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기업의 생존과 그 나라의 경제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련과의 기계기술 교류는 국내의 취약한 기계 기반기술을 고도화 시키고 부가가치가 큰 첨단 기계기술 분야를 국내 토착화 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로서 국내 기술계의 역량을 모아 합심해서 대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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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공공외교는 어떻게 국제협력을 증진하는가? (How Does A Leader's Public Diplomacy Enhance International Support?)

  • 황원준
    • Journal of Public Diplom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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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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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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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목적: 이 연구는 국가위기 시 지도자의 공공외교의 내용과 효과를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다음의 두 질문을 던진다. 첫째, 지도자는 위기 시 국제사회의 협력과 지원을 얻기 위해 어떠한 내용의 공공외교를 하는가? 그리고 둘째, 지도자의 공공외교는 어떤 원리를 통해서 국제사회의 협력과 지원을 증진하는가? 방법: 연구질문에 답하기 위해 국가위기 시 국가지도자에 의한 공공외교가 활발하게 나타난 최근 사례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공공외교에 대한 사례분석을 실시하였다. 세부 연구방법으로는 파이썬(Phython)을 활용하여 젤렌스키 대통령의 트위터 텍스트를 기술적으로 분석하였다. 결과: 2022년 러시아의 침공 후 젤렌스키 대통령은 SNS를 적극 활용하여 다른 국가 국민과 소통하였으며 이를 통해 공공외교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다른 국가 국민에게 '협력과 지원에 대한 감사', '우크라이나의 입장', '다른 국가 축하 및 애도' 메시지를 보냈으며, 이를 통해 지지와 신뢰, 청중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었다. 결론: 공공외교의 효과는 국제협력과 지원 간에 발생하는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하여 협력의 증진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사례에서 후견국의 딜레마와 이행의 문제는 지속되었으며, 공공외교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의 분석을 통해 차후 대한민국의 위기 시 지도자의 공공외교를 위한 교훈을 도출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평시부터 지도자의 효과적인 공공외교를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