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인간 중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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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에 재현된 동아시아 자본주의 사회의 담론 : 슈퍼히어로 애니메이션 <타이거 앤 버니>를 중심으로 (The Discourse of Capitalist Society on East Asian Pop Culture: A TV Series of Superhero Animation )

  • 우지운;노광우;권재웅
    •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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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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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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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서구의 슈퍼히어로 장르는 캐릭터들의 탄생과 성장을 다루는 과정에서 정치, 경제, 사회 환경과 함께 각종 기호체계와 타 예술 장르들을 외적으로 흡수하고, 기존의 작품들을 패러디(parody) 등의 여러 형식으로 받아들였다. 본 논문에서는 슈퍼히어로 장르의 이와 같은 발전과정을 인식의 토대로 하여, 미국적 정신의 구현으로 여겨지던 이 장르가 어떻게 동아시아에서 입체적으로 활용되고 다양하게 재구성되었는지, 일본 선라이즈(Sunrise)사의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타이거 앤 버니>(Tiger & Bunny,2011)를 통해 사례 분석하였다. <타이거 앤 버니>는 상호텍스트성에 기반을 둔 패러디적 유형과 특징들을 보이고 있으며, 내면 정서와 가치관의 동양적 재현에 더해, 자본주의 사회의 회사 중심적인 현대인들의 특징을 차용하여 적극적으로 사회의 외적인 부분을 반영하였다. 서구 히어로물과의 유사성과 차이점 비교를 통해 제시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서구적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부정적 풍자이고, 다른 하나는 동양적 가족주의 가치관에 대한 긍정적 강조이다. 개인주의와 성과 위주의 평가가 만연한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풍자는 히어로들의 TV 활동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자본과 미디어에 수동적으로 종속된 현대 인간과 공공적 목표조차도 이윤의 도구로 이용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은유적 비판이다. <타이거 앤 버니>의 설정과 내러티브에서 강조되는 덕목은 개인과 사회에 대한 동아시아적 가치관인데, 이는 국가와 사회의 구성원들을 가족적 정서로 연결시켜 공동체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협조적 관계를 말한다. 타이거는 각자 사적인 목적에 충실하여 대의명분 없이 경쟁만 하던 히어로 집단에 정신적 지주 역할을 수행하고, 버니와 동료들은 타이거의 인간적인 가족주의적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점차 감화된다. <타이거 앤 버니>는 이 과정을 통해서 현대사회의 사회병리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세계시민으로서 이러한 공동체 중심적, 자기희생적 정서를 갖추는 것임을 강조한다.

노자의 무위(無爲)와 예수의 케노스(κεvoς)에서 본 교육적 함의 - 『도덕경』과 「빌립보서」를 중심으로 - (The Educational Meaning expressed in Mu-wi of Lao-tzu and κεvoς of Jesus)

  • 김영훈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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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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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3-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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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현대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시장경제하에서 우리의 교육은 다시 한 번 시장 경제의 논리로 고교 선택제가 생기고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서 대학을 위한 교육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러한 가운데 교권은 흔들리게 되었고, 학교의 교육방침은 그야말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데 중국 고대의 철학자인 노자의 "도덕경"에서의 무위(無爲)사상과 신약성서 "빌립보서" 2장 6절-11절에 나오는 예수의 케노스(${\kappa}{\varepsilon}vo{\varsigma}$)의 사상은 우리 현대인들에게 주는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무위(無爲)란 작위(作爲)나 혹은 인위(人爲)의 반대의 개념으로서 자연의 도(道)인 자연스러운(nature) 상태대로 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작위로 가득 차 있는 위정자들의 정치와 인간 사회에서의 인위에서 돌이켜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한 케노스의 의미는 미움과 시기로 가득 차 있는 인간 세상에서 자신을 내어놓은 예수의 죽음을 통하여 이제 인간의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을 위하여 사랑과 헌신을 하라는 귀한 성인의 교훈이며, 이러한 교훈은 우리 교육의 현실 속에서도 많은 의미를 주고 있다.

반려동물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홍성 의견(義犬) 설화를 중심으로 (A Study on the Effects of Companion Animals on Humans: Based on the Tale of a Righteous Dog in Hongseong)

  • 김석은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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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권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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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59-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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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연구는 반려동물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홍성의견 설화를 중심으로 분석한 연구이다. 이를 위해 논문과 홍성의견 설화를 대상으로 질적연구 방법 가운데 문화기술지 분석과 초점면접집단을 사용하였다. 연구 분석 결과, 반려동물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은 정서적, 경제적, 문화 환경적 영향으로 분석되었다. 정서적 영향의 경우,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사회정서면에서 더 건강하다는 반려동물효과는 아동청소년을 비롯한 노년층, 사회 취약계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에서 긍정적 효과를 미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펫코노미 시장이 대변하듯 급격한 반려동물산업의 확장과 연관을 지어 SWOT 분석을 시도하였고, 문화 환경적 영향으로는 다양하게 등장하는 문화 캠페인이나 설화 등을 중심으로 분석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통해 본 연구는 반려동물의 문화 기술분석을 처음 시도하였다는 점과 반려동물과 인간과의 공생관계를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분석하여 지역사회 발전의 기여를 촉발한 점, 나아가 개인주의가 극대화될 4차산업혁명 시대에 인간의 삶에 반려동물이 정서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 깊이를 더한 연구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아동의 언어발달에서의 모방의 역할 : 각 이론에 따른 연구절차 분석 (THE ROLE OF IMITATION IN CHILD LANGUAGE DEVELOPMENT : DISCUSSION OF RESEARCH METHODS)

  • 우남희
    • 아동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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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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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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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2
  • 아동의 언어습득 과정에서의 모방은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한편 인간의 독특하고 신기한 일면이기도 하다. 이 모방에 관하여 그동안 많은 연구들이 되어왔으나 그 중요성이나 역할에 대한 연구들의 결론이 모두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본 논문에서는 이 모방현상에 대한 그 동안의 연구들을 이론별로 분류해 보고 각 이론들이 모방의 역할을 밝히기 위하여 사용해 온 연구방법, 절차들을 분석해 보았다. 행동주의와 사회학습이론에서는 언어습득에서의 모방의 역할을 특히 강조하고 있으며 이 모방의 효과를 입증하기 위하여 다른 어떤 이론보다도 훨씬 조직적인 실험연구를 해 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언어 심리학적 접근에서는 언어습득에서의 생득성과 창의성을 강조하므로 모방의 역할은 중시하지 않으며, 모방의 정의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자연적인 관찰 중심의 연구를 주로 하여 언어습득에서의 모방의 역할이 미비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Piaget 중심의 인지발달적 접근에서는 모방을 인간의 전체 발달의 한 측면으로 보아 모방은 인지발달과 함께 점진적으로 발달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언어발달에서의 지연모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연구는 자연적인 관찰연구를 통하여 모방의 발달과정을 밝히고 있다. 언어발달에서의 모방의 역할에 대한 지금까지의 일치하지 않는 연구 결과들은 각각의 이론들이 나름대로 달리 모방을 정의하고, 언어의 다른 측면들을 다루어 왔기 때문으로 밝혀 졌다. 앞으로 언어발달이 아동의 발달 전체의 맥락 속에서 연구되어지고, 언어습득과정에서 보이는 아동들의 개인차까지도 고려되어지는 포괄적인 연구가 이루어지면 모방의 역할도 좀더 명백하고 일관성 있게 밝혀지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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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에 나타난 초현실주의 회화의 꼴라쥬 기법과 표현에 관한 연구 - 라울 세르베의 작품 <밤의 나비들>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expression of Surrealism Collage in Animation - Focusing on Raoul Servais animation film called -)

  • 김윤경
    •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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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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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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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이 논문에서는 초현실주의 회화의 다양한 기법이 애니메이션에서는 어떻게 표현되는 지를 분석하였다. 특히 초현실주의의 꼴라쥬는 아무 관련성 없는 사물과 기법을 재배치함으로써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환상의 세계를 일깨우며 매체의 변화와 더불어 그것은 전혀 다른 물질이나 형상끼리의 우연한 만남에서 오는 새로운 이미지의 형성한다. 이러한 초현실주의의 기법의 확장을 라울 세르베의 작품<밤의 나비들>에서 논의해보고자 한다. 라울 세르베는 <밤의 나비들>에서 기존의 가치를 전복하는 새로운 접근방식을 통해 인간의 인식 구조에 보다 다차원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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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과 운명애 - 장자의 망(忘)과 안지약명(安之若命)을 중심으로 - (The forgetting and Amor Fati)

  • 곽소현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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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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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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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이 글의 목적은 '안지약명(安之若命)'으로 대표되는 장자 운명관을 현실 체념적이고 노예적인 순응주의로 간주하는 이택후(李澤厚)의 입장과 해석상의 충돌을 시도하고 장자의 입장이 참된 운명 긍정론임을 밝히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망(忘)의 역할 분석을 통해 진행된다. 그 결과 새롭게 창조되는 가치는 두 가지다. 하나는 통상적으로 인식의 결여나 질병 상태 등 부정적 기능으로 간주되어 온 망각의 긍정적 역할이며, 다른 하나는 몸 생사 세계 변화를 일기(一氣)의 운행으로 통찰함으로써 운명에 긍정적으로 대처하는 '기 통하는 인간'의 가능성이다. 이러한 논의를 위한 글의 전개는 다음과 같다. 먼저 명(命)의 용례 분석을 통해 '안지약명(安之若命)'의 의미를 밝힌다. 분석 결과 안지약명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는 마음 편히 운명을 따르라'는 의미다. 다음으로 안지약명을 노예적 순응주의로 간주하는 이택후의 입장에 반대해 장자 입장이 운명 긍정론임을 밝힌다. 이것은 장자의 운명 대면법을 네 단계로 추적함으로써 진행된다. 첫째 부득이(不得已)한 운명적 상황을 있는 그대로 직시한다. 둘째 이 때 망각을 통해서 인간적 애락(哀樂)의 고통과 물아(物我) 구분을 해소한다. 셋째, 몸 생사 세계 변화를 일기(一氣)의 운행으로 통찰한다. 넷째, 이러한 과정은 운명 앞에 긍정적으로 대처하는 기(氣) 통하는 인간을 탄생시킨다. 그는 왜 운명 앞에서 긍정적일 수 있는가? 기 통하는 인간은 사물의 이치에 통달하고 그것의 흐름에 따라서 자유자재로 변화하며, 그 결과 외계 사물로 인해 자신의 생명을 해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운명적 상황 앞에서도 사태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며 담담히 포용할 수 있다. 즉 장자의 기 통하는 인간은 운명을 긍정한다. 여기서 이택후의 비판은 극복된다. 필자는 이처럼 부득이한 운명 앞에서 비관 혹은 도피나 노예적 순응이 아닌 적극적 대면과 긍정적 포용의 태도를 취하는 장자의 안지약명을 '장자의 운명애'라고 부를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점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기 통하는 인간'의 실제적 가능성과 역할 등에 관해서는 면밀히 논하지 못했다. 이것은 장자의 기론과 수양론을 연관시켜 분석할 때 밝혀질 수 있는 문제들이다. 이러한 점에 대해서는 차후의 지면을 통해 좀 더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포스트휴먼 시대의 로봇과 인간의 윤리 (The Ethics of Robots and Humans in the Post-Human Age)

  • 유은순;조미라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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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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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9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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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로봇의 영역이 인간의 정신적, 감정적 노동까지 대신하는 지능형 로봇으로 진화하면서 인간과 로봇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로봇윤리'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본 연구는 포스트휴먼 시대에 필요한 인간과 로봇의 윤리 성찰을 고찰하고자 하며, 그 중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로봇의 윤리적 실천 가능성에 도전하는 윤리 소프트웨어 개발 사례를 통해 오로지 강제 입력된 윤리 코드만으로 로봇이 과연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둘째, 로봇윤리는 인간의 편향성이 내재된 데이터를 학습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비윤리적 문제들을 고려하고, 더불어 국가와 문화 간의 윤리적 상대주의를 인정해야 한다. 셋째, 로봇윤리는 로봇을 위한 윤리 강령만이 아니라, 인간과 로봇이 서로 공진화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인간 윤리'가 전제되어야 한다.

도원 류승국의 정역(正易)과 한국사상사의 상호 매개적 인식 (Lew Seung Kug's Recognition on Relations between Juhng-yaug and History of Korean Thoughts)

  • 이선경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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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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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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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이 글은 도원(道原) 류승국(柳承國, 1923~2011)의 사상적 지향과 한국사상사의 해석방법론이 정역의 원리와 가치관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고찰한 것이다. 도원은 그의 학문적 화두가 '화해와 상생, 인도주의와 세계평화에 있으며, 궁극적으로 대동세계를 구현하는데 있다'고 밝히며, 한국사상사 탐구를 통해 그에 대한 답을 찾는다. 그에 따르면 한국사상은 인간주체를 기본으로 하는 사상이며, 모든 갈등과 대립을 지양할 수 있는 중용(中庸), 중화(中和)의 요소를 지니고 있는데, 한국의 역학이 바로 이러한 내용을 충족한다. 도원은 한국사상이 '억음존양(抑陰尊陽)'의 주역적 가치가 아니라 '조양율음(調陽律陰)'의 정역적 가치를 추구하며, 인간의 절대주체를 통해 양극을 화합하는 '중(中)'사상이 고대점복행위로부터 구한말 "정역"에 이르기까지 일관한다고 보았다. 성숙한 인도주의와 음양의 양극을 종합해 생명을 살리는 '호생지덕(好生之德)'의 인(仁)은 상호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도원의 한국사상사연구의 핵심적 개념이다. '양극을 종합해 생명을 살리는 인간성숙'의 정신이 한국사상의 본령이라고 본다. 도원에 따르면 유교 인도주의의 핵심용어인 '인(人)''인(仁)'이 동이(東夷)에서 연원하였음이 갑골을 통해 고증되며, 동이족 수골복사(獸骨卜辭)의 음양사상과 인도주의의 사상적 연관성의 실제를 순(舜)임금을 통해 볼 수 있다. 그는 단군신화의 요점을 천지를 아우르는 중(中)사상과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해명하고, 최치원의 풍류도에서 인(仁)을 매개로 유불도 삼교의 이질성을 재창조하는 '접화군생(接化群生)'의 인본주의를 읽어낸다. 신라의 불교는 성(聖)과 속(俗)의 양극성을 일원화하고, 유(有)와 공(空)의 대립을 원융한다고 본다. 조선 성리학에서 양극의 통합양상을 살펴보면, 퇴계의 경우 태극이 마음의 '인극(人極)'으로 전환됨으로써 자아의 인격과 생명의 주체성으로 거듭난다는 것이다. 율곡의 이기지묘(理氣之妙)와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이 모두 양극성을 지양한 인도주의로서 한국사상은 상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그 원형적 사고가 그 시대적 특수성 속에서도 보편성을 지니며 관통해 온 것으로 본다. 그 대미가 "정역"이다. "정역"의 새로운 괘도가 지향하는 조양율음(調陽律陰)의 가치, 지인(至人) 및 황극(皇極)사상을 통해 드러나는 성숙한 인도주의가 그것이다. 한국사상의 인도주의는 "정역"에 이르러 확연하게 그 정체(正體)를 드러내며, 이는 역(逆)으로 한국사상사 전체를 조명할 수 있는 키워드로 기능한다. 도원의 사상전반을 꿰뚫고 있는 핵심정신은 바로 "정역"의 중심축인 '생명 평화의 성숙한 인도주의'와 '조양율음'의 원리로서 "정역"은 한국사상의 결정(結晶)이라 할 수 있다.

산업디자인의 감성적 접근에 관한 연구 - 1960-80년대 디자인사를 중심으로 (A Study on Sensibility Approach in Industrial Design Focused on Industrial Design History from the 1960s to the 1980s)

  • 김동하
    • 디자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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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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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3-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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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20C초 바우하우스(Bauhaus)로부터 정립된 산업디자인의 엄격한 미적기준과 기계미학은 모더니즘을 한층 강화시켰으며 그 규범은 반세기 이상을 이어져 나갔다. 1950년대 후반이후부터 팝아트(Pop art)나 팝디자인(Pop Design)같은 반 모더니즘에 대한 운동이 시작되었다.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더불어 그 당시 젊은 세대의 라이프 스타일과 문화 등을 반영하는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디자인이 나타나게 되었다. 물리적인 요소의 완성을 초월하여 심리적인 부분을 충족시키는 시도, 즉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산업디자인에 이입시키려는 시도는 1960년대부터 비롯되었으며 여러 상황 속에서 다양하게 그 모습을 나타내었던 것이다. 그것은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구체적 디자인 스타일로써 1960년대의 반 모더니즘(Anti-Modernism)디자인 1970년대의 상업주의, 소비자 중심주의, 하이테크 등을 거쳐 1980년대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필터를 통과함으로써 산업디자인에서 정착할 수 있었다. 그것은 감정이나 감성을 디자인에 적용함과 아울러 하이 테크놀로지와 결합하여 물리적인 요건의 충족과 아울러 심리적으로 사용자들에게 만족감을 전달할 수 있는 디자인 요소가 강조된 디자인 경향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의 디자인사로부터 인간의 감정과 감성이 이입된 디자인을 추출하여 그 스타일을 정의하며 현대 산업디자인의 흐름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기울였다. 이 연구는 또한 인간감정과 감성이 적용된 디자인이 오늘날 어떻게 발전되어져 왔는가의 연구로 이어지는 토대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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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대립과 논쟁 - 자유의지를 중심으로 - (The Opposition and Disputation between Pelagius and Augustine -Focused on Free-will-)

  • 김영진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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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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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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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중세와 기독교의 역사에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논쟁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신의 은총에 대한 양자 간의 입장 차이에서 발생했다. 이 논쟁은 중세와 종교개혁 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도 많은 논란의 주제가 되고있다. 따라서 본 논문의 목적은 중세의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대립과 논쟁을 통하여 오늘날 우리 시대에 보여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인간의 능력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인본주의로 치닫게 되고, 반면 신의 은총만을 주장하다 보면 인간의 윤리적인 책임성을 약화시키고 지나치기 쉽다. 이에 대하여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는 상반된 입장을 취해왔다. 펠라기우스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의 윤리적 책임성을 강조하며 로마 제국의 무대 위에 등장했다. 반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손상되었고, 인간의 능력은 절망적인 것으로 보고 신의 은총을 강조하였다. 펠라기우스는 당시 기독교 국가의 심장부인 서방교회(로마)의 도덕적 방종과 윤리적 불감증 현상들에 놀라면서 로마교회 기독교인들의 도덕적 책임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런 정황에 따라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이 서방교회의 상황을 정당화해주는 입장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그의 관심은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의 윤리적인 삶의 필요성에 있었다. 반면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은 인간의 윤리적인 삶을 주장하는 펠라기우스의 엄격한 도덕주의가 신의 은총을 간과하고 인간의 능력과 행함을 강조하는 인본주의적 현상으로 보고, 펠라기우스를 강하게 반대하면서 신의 은총을 주장하였다. 펠라기우스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원죄론, 은총론이 성경의 원리에 어긋남에 따라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이러한 펠라기안의 사상은 기독교의 역사 속에 침투해 들어왔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기독 교회의 위협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살아 시대는 펠라기우스가 살았던 시대처럼 여전히 행위(자유의지)와 신앙(은총)의 괴리감 속에서 사회적 부패와 방종이 팽배하고,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사건이 보여준 단면처럼 윤리적 불감증과 사회적 무책임 현상이 심각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기독교 내부에서도 기독교 윤리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말씀 선포에 따른 삶의 본을 보여줄 수 있는 정직한 지도자를 요청하고 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논자는 이런 현실을 직시하면서, 중세 기독교 역사의 이슈가 되었던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논쟁이 오늘날 우리의 시대에 보이고자 했던 현대적 의미를 조망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