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유학자

검색결과 119건 처리시간 0.025초

싼마오 산문의 한국어 번역 전략 연구 (A Study on the Korean Translation Strategy of San Mao's Prose)

  • 문대일
    • 문화기술의 융합
    • /
    • 제8권5호
    • /
    • pp.265-270
    • /
    • 2022
  • 싼마오는 대만의 저명한 여성 문학가이다. 그녀는 일찍이 해외 유학 경험을 통해 경험하고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독특한 문체의 작품을 많이 창작하였다. 그 중에서 『허수아비 일기』는 해외 생활의 에피소드를 기록한 산문이다. 이 작품의 한국어 번역본은 2종이 있다. 번역자에 따라 각기 다른 번역전략을 활용하였다. TT1은 의미 중심 번역을 많이 활용하여 이국적인 느낌을 많이 강조하여 번역하였다. 반면에 TT2는 소통 중심의 번역 전략을 활용하여 자연스러운 번역을 추구하였다. 또한 특이한 점은 두 번역 모두 '창조적인 번역'을 시도하여 의도적으로 '변형'하여 번역하였다. 이러한 창조적 번역은 독자가 작품에 몰입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본 연구를 계기로 싼마오 번역 작품에 대한 다양한 후속연구가 진행되길 기대한다.

19세기 유교의 통속화와 「저승전」의 이념성 - 조선후기 권선서(勸善書)의 유행과 관련하여 - (A Study on the Spread of Taoist Gwonseonseo in the 19th Century and the Ideological Nature of Jeoseungjeon)

  • 김정숙
    • 동양고전연구
    • /
    • 제69호
    • /
    • pp.297-324
    • /
    • 2017
  • 이글은 조선후기 성리학이 균열되고 확장되는 과정에서 종교적 윤리성이 강화되어 현세의 윤리적 실천이 내세의 복으로 이어진다는 세속적 생활윤리로 변화되고, 또 한편에서는 유불도 사상이 결합된 도교 권선서가 유입된 이래 언해, 간행되어 민간에 널리 퍼져 생활 이념화되었던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유교의 세속화 및 조선후기 권선서의 윤리적 이념성이 19세기 한글필사본 소설인 "저승전"의 윤리관과 연결되고 있음에 주목하여 19세기 권선서(勸善書)가 갖는 시대적 의의를 살펴보고 "저승전"의 이념성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조선후기 권선서(勸善書)는 크게 두 가지 축으로 구분할 수 있으니, 유교를 바탕으로 하되 귀신이나 명계(冥界), 선행으로 인한 내세의 복리(福利) 등 종교적 실천을 강조한 유교적 권선서와 주로 중국 도교 권선서의 언해로 유불도 사상이 결합되고 옥황상제, 문창성군 등 도교의 신을 존숭(尊崇)할 것과 선행으로 인한 복을 받은 이들의 예화를 적극 수록한 도교적 권선서가 그것이다. 이 중 유교적 권선서는 조선후기 경학 연구자였던 심대윤(沈大允)의 "복리전서(福利全書)"에서 그 일단을 찾아볼 수 있는데, "복리전서"의 서문(序文)에서 드러나듯 이 책은 일반 백성들의 행동 교화를 목적으로 하여 기본적으로 유학자의 입장에 있으면서도 저서 곳곳에서 귀신과 저승의 보응을 강조하여 천인감응의 인과론과 이승에서의 선행을 적극 강조한다. 심대윤의 사상은 성리학의 관점과 달리 내세와 보응을 중시하고 불교의 윤회설과 유사한 듯하지만, 이는 철저히 현실에서의 선행과 그로 인한 복리를 강조한 것일 뿐 귀신을 섬기거나 현실을 부정하는 종교적 태도와는 다르다. 조선 후기 권선서 유행의 다른 한 축인 도교 권선서는 충효 등의 유교 윤리를 권선징악적 입장에서 강조하고 그 실천을 통해 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는 입장에서 유교적 권선서의 태도와 유사하다. 다만 중국 도교 권선서의 언해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도교의 신들을 엄히 신봉하고 탄신일을 지키며 일상에서 지켜야 할 덕목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세세하게 제시한다. 이는 현실에서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신의 감시 하에 있으며 그에 대한 점수가 사후와 직결된다는 의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들 도교 권선서는 임금의 명과 지식인들의 적극적 개입뿐 아니라 민간에서는 책을 간행, 배포하는 것만으로도 복을 받는다는 의식 때문에 파급력이 매우 컸다. 특히 도교 권선서에는 이승에서 선악을 행한 뒤 저승에서 겪는 구체적 사례를 매우 다양하고 방대하게 수록하였는데 도교 권선서의 이러한 서사성은 여성을 비롯한 하층민에게 도교 권선서가 효과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원인이 되었다. 생활 속 실천 윤리의 강조와 보응이라는 소박한 종교적 태도의 유교 권선서와 종교적 성향은 훨씬 강하긴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지켜야 할 행동 규칙을 세세하게 제시함으로써 권선의 목적을 확실하게 드러낸 도교 권선서는 종교의 차원을 넘어 조선후기 서민들의 일상 속 윤리 교과서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담당하였다. 19세기 필사본 한글소설 "저승전"은 선승인 지선이 득병(得病)하여 저승에 다녀온 내용으로, 일반적 불교 저승체험담의 형식을 지니면서도 이념 지향 면에서 독특한 면모를 지닌다. "저승전"은 기본적으로 불교적 인물의 저승 체험이라는 불교적 외피에, 옥황상제나 각종 도교적 신들의 위계에서 보듯 도교적 상상력과 삼강오륜 등의 유교적 윤리가 어우러져 있다. 그중에서도 주인공이 목격한 저승의 심판 장면은 매우 구체적이고, 단지 추상적 선(善)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직분과 신분에 따라 지켜야 할 사항을 일일이 제시하며 이를 어긴 자에 대한 처벌 또한 상세히 묘사하였다. 이러한 "저승전"의 특징은 바로 19세기 권선서에서 일반 백성들에게 선행과 보응의 엄밀함과 선행의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여 생활 속 실천으로 이끌고자 하던 당시의 사회 문화적 분위기와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Study on the Manufactures for the Korean Astronomical Instrument

  • Lee, Yong Sam
    • 천문학회보
    • /
    • 제43권2호
    • /
    • pp.30.1-30.1
    • /
    • 2018
  • 일제 강점기를 지난 후 광복을 맞았지만, 전란의 폐허 속에 개설된 대학의 천문학과의 관측 시설들은 전문한 상태였다. 필자가 학부 재학 중이던 6-70년대까지도 시 시공(時空)의 흐름은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어 사용할 수밖에 없는 시대로 몰아가고 있었다. 당시를 회고 하며 지금까지 걸어 온 "천문기기 제작 연구의 삶"을 회고하고자 한다. 대학 재학 시절 교수님의 도움으로 막스토브 망원경을 제작하고, 40cm 카세그레인 망원경 등 광학계의 원리와 특성연구를 통해 부품 조립을 수행할 수 있었다. 태양 흑점관측을 위한 10cm 굴절 망원경의 투영시설을 고안하여 6개월 동안 관측하였지만. 석사 논문을 위해 광전측광 관측시스템을 제작하여 식쌍성 관측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한국의 시설로 UBV 광도곡선 완성하여 1975년 가을 천문학회에서 발표하였다. 1976년 2월 국립천문대 천문계산연구실에 발령 받고 역서편찬 업무를 담당하면서 소백산 60cm 망원경 최종 설치를 끝내고, 천문대(현 역삼동 과총회관 빌딩) 옥상에 2m 규모의 목재 돔을 설계 제작하고 일반인들을 위한 대중천문 활동을 시작하였다. 재직 중에 항상 한국의 열악한 천문시설의 상황을 실감하고 20대를 마감하면서 퇴직하여 "한국천문기기 연구소"라는 명칭으로 천체 돔을 설계하고, 돔 제작기계를 개발하였다. 망원경만 보관 중인 국내 4개 대학에 돔을 납품 한 후 연세대학교 천문대의 직경 6m 스텐레스 돔을 제작하였다. 아울러 연세대 천문대 60cm망원경을 설치하면서 이 곳에 입사하여 관측 장비개발 연구와 관측에 전념하게 되었다. 재직 기간 중 대학의 배려로 카나다 국립천문대(DAO) 방문연구원으로 1.8m 망원경으로 식쌍성들의 분광관측을 수행하여 시선속도곡선을 완성하였고, 체류 중에 스텝들과 국내에서 사용할 60cm용 첨단 분광기를 설계하였으나 대학에 재원이 없어 제작을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1989년 2월 충북대학교 천문우주학과에 부임하면서 열악한 상황이지만 교육과 연구 장비로 20cm와 35cm 소형 망원경의 디지털 광전측광시스템으로 간이 천문대를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학과 설립 10 주년(1998년)을 맞아 40cm 망원경과 6m 돔을 설치하여 교내천문대가 완공되었다. 2000년이 되면서 대중 천문활동 을 위해 이동 천문대를 제작하여 4륜 자동차에 견인하여 여러 지역을 찾아 관측과 강연 활동 등 학과의 대중천문 활동의 특성을 살리는 계기를 만들게 되었다. 학과 설립 20주년(2008년)을 맞으면서 충북 진천에 16개 자동분할 개폐식 스릿의 9m 돔 안에 1m 망원경을 원격관측 시설을 완비하여 대학 본부의 기관으로 충북대학교천문대를 개관하고 관측시설을 완비하였다. 우리의 전통적인 세종시대 천문시설은 당대 최대의 시설이지만 당시 유물들이 모두 소실되어 현존하는 것이 하나도 없음은 실로 아쉬움이 큰 것이었다. 누군가는 그 구조, 형태, 원리, 기능, 사용방법 등을 밝히고 복원을 시도해야 할 시급함이 있었다. 문헌을 통해 1991년부터 학부졸업 논문으로 "고천문 의기(儀器) 복원연구" 분야의 발표를 시작하였다. 그 결과를 통해 세종탄신일에 영릉에서 숭모제 행사 후 그 곳에서 수년간 세종시대 고천문의기 한가지씩 작동모델을 복원하여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유물복원 회사 (주)옛기술과 문화 와 함께 팀을 이루어 매년 제작할 종목을 준비하게 되었다. 간의(簡儀)를 복원한 후에는 일성정시의, 소간의, 앙부일구, 정남일구, 석각천문도, 혼천의, 혼상, 각종 해시계 등 매년 지속적으로 복원되어 큰 규모의 야외 전시장이 완성되었다. 작동모델 설계연구팀의 자문과 제작팀과의 팀웍으로 이룬 성과인 것이다. 한번 시작품이 발표된 모델들은 국내 과학관과 박물관, 천문관에서 후속 모델을 설치하였다. 한국천문연구원과 부산 동래읍성 내에 장영실 과학 동산은 간의와 혼상을 비롯한 각종 해시계들을 설치한 큰 규모의 야외 전시장이다. 조선의 명망 높은 유학자들이 인격적인 하늘을 살펴보았던 혼천의와 일만원권에 그려 있는 국보 230호 자명종 혼천시계(일만원권의 그림)의 작동 모델을 제작하였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들은 석사과정 박사과정을 통하여 더 심층적인 연구들이 발표되었고, 각종 조선(한국)의 천문의기(天文儀器) 연구 자료들은 연구팀들을 통해 중국과 일본 등 해외에서도 발표되었다. 지금까지 복원된 유물들이 완성되기까지는 참여한 많은 연구원들과 제작팀들이 합심하여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여 최종 작동모델들이 하나 둘 완성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참으로 보람된 일이었고, 은퇴 후 지금은 재능기부자로서 즐거운 삶을 이어 갈수 있게 되었다.

  • PDF

봉우권태훈(鳳宇權泰勳) 선생(先生)의 조식법(調息法)(용호비결(龍虎秘訣))과 『대학(大學)』·『중용(中庸)』의 상위표리설(相爲表裏說)에 관한 고찰(考察) (Study on the Respiration Control Method(yonghobigyeol) of Bongwoo Gwon Tae-hoon and the Xiangweibiaolishuo (duplicity theory) in Daxue/Zhongyong)

  • 권영훈;봉학근;윤대중
    • 동양고전연구
    • /
    • 제54호
    • /
    • pp.387-416
    • /
    • 2014
  • 이 글은 우리 시대 선도(仙道)의 개조(開祖) 이자 유학자(儒學者)인 봉우(鳳宇) 권태훈(權泰勳) 선생이 개진(開陳)하고 있는 도가(道家)의 "용호비결(龍虎秘訣)"과 유가(儒家)의 "대학(大學)" "중용(中庸)" 양자(兩者)의 표리관계(表裏關係)에 대하여 살펴본 것이다. 선생은 공자문하(孔子門下)의 전수심법(傳受心法)이 담겨있는 유가의 경전을 "대학(大學)" "중용(中庸)"과 더불어 "주역계사전(周易繫辭傳)"으로 보았는데, 이 가운데 주자(朱子)가 주석(註釋)한 "대학장구(大學章句)" '삼강령(三綱領)'의 해석이 송대(宋代) 당시의 시대 논리에 원용되어 공문(孔門)심법 본래의 요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한 주자의 의도적 해석이라고 보아, "대학" '삼강령(三綱領)'에 대한 새로운 주석을 가(加)하였고, 더불어 "중용(中庸)" '윤집궐중(允執厥中)'의 '중(中)' 자(字)의 함의를 '일중론(一中論)'으로 밝히는 등의 새로운 해석을 통하여 공문심법의 본지를 밝히고자 하였다. 또 이러한 새로운 해석의 기저(基底)에 더하여 공자(孔子)가 "주역계사전(周易繫辭傳)"에서 "역경(易經)"의 주요 요지를 뽑아내어서 지었다고 하는 '원상법(原象法)'을 유가의 형이상학(形而上學) 공부의 정수로 삼아 이를 도가(道家)의 용호비결(龍虎秘訣)과 함께 수련 공부의 최종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 제시하여 양자(兩者)의 밀접한 유기성에 주목 하였다. 이와 같은 "대학" '삼강령'의 새로운 해석을 통한 "대학(大學)"의 본지(本旨)규명과 "대학(大學)" "중용(中庸)" "계사전(繫辭傳)" 삼자일관(三者一貫)의 유기성에 대한 심고(審考), 그리고 도가와 유가 양가(兩家)의 원리를 합일시킨 '이교합일(異敎合一)'의 공부론 등은 조선조 청하자(靑霞子) 권극중(權克中)의 '선란호수론(禪丹互修論)' 이래의 일로서 선생이 우리의 사상계에 남겨놓은 새로운 화두라고 할 것이다.

이상동 장로가 유교와 초기 개신교 만남으로 보여준 삶의 양식 (The style of life shown by Elder Lee Sang-dong through the encounter between Confucianism and early Protestantism)

  • 안광덕
    • 기독교교육논총
    • /
    • 제78권
    • /
    • pp.153-189
    • /
    • 2024
  • 이 연구는 유교가 발달한 경상도 안동지역에 한국 개신교 초기 선교가 이루어지면서 나타난 개신교 신앙의 특징을 찾고자 하였다. 한국 개신교 초기(1905~1935)에 퇴계 유학의 배경을 가진 양반 이상동 장로가 유학에서 개신교로 개종하면서 나타난 생애와 삶의 양식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서 이상동 장로의 삶을 추적하기 위하여 초기 개신교 역사 자료 등을 찾아 조사하고 비교하였다. 하지만'조사'로서는 교회에서 짧게 봉사하고,'장로'로 오래 지내면서도 조직 교회의 정식 교역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공적 교회 기록이나 문서들을 많이 찾을 수 없었다. 이상동 장로의 생애와 신앙의 여정을 기독교교육학자 웨스터호프(J. h. Westerhoff III)의 신앙공동체 신학을 통해 조명하고 함의를 연결할 수 있다. 웨스터호프는 기독교교육은 신앙공동체가 사회와 문화에 적응하면서 공동체에 속한 개인의 가치관, 세계관을 형성하는 것이라 보았다. 웨스터호프가 바라보는 교육은 이러한 가치관이 사회와 문화 과정을 속에서 삶의 양식으로 나타나고 이 삶은 각각 다른 환경에서 다양한 삶의 모습을 드러내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하였다. 이상동은 성서를 읽기 시작하면서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리하여 성서의 세계관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받아들인 성서의 가치관은 한말 유교와 초기 개신교회와 만남에서 유교 퇴계 성리학의 세계관보다는 기독교 성서가 보여주는 세계관으로 회심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명문 양반의 삶에서 성서 말씀을 실천하는 신앙인의 삶의 양식을 가졌다. 그는 포산동교회를 설립하여 순교 신앙공동체 뜻을 품고 교회를 시작하였고, 안동에서 가장 먼저 단독으로 3.1 만세를 불러 대한독립운동을 주창하였으며, 노비를 해방하여 평등 운동을 실천하였으며, 덕신서숙을 통한 신교육을 실시함으로써 계몽운동과 카테케시스 교사의 구실을 충실히 감당하였다. 한국 개신교 초기에 제도 교회의 교역자가 아닌, 장로의 직분을 가졌던 평신도 이상동은 유교의 본거지인 안동 지역에서 유교와 개신교 신앙이 만남으로 보여주는 가치관과 삶의 양식을 제시해 준 실천적인 예시며, 이러한 예시는 현대의 교회 역사에서나 기독교 교육의 관점에서 깊은 통찰력을 준다고 볼 수 있다.

한국천문연구원 원외 원로 구술사연구 - 방득룡 전임 노스웨스턴 대학교 천문학 교수 사례 - (An Oral History Study of Overseas Korean Astronomer: John D. R. Bahng's Case)

  • Choi, Youngsil;Seo, Yoon Kyung;Lee, Hyung Mok
    • 천문학회보
    • /
    • 제46권2호
    • /
    • pp.73.4-74
    • /
    • 2021
  • 한국천문연구원은 2017년 제1차 구술채록사업에 이어 2020년 제2차 사업을 진행하면서 최초로 원외 원로에 대한 구술채록을 시도하였다. 국가 대표 천문연구의 산실로서 연구원 존재 의의를 확립하기 위하여 원내 원로에 국한되었던 구술자 대상을 확장한 것이다. 그 첫 외부 구술 대상자로 방득룡 전임 노스웨스턴 천문학과 교수를 선정하여 2020년 7월부터 준비단계에 들어갔다. 방득룡 전(前)교수가 첫 번째 한국천문연구원 원외 인사 구술자로 선정된 이유는, 그가 우리나라 천문대1호 망원경 구매 선정에 개입한 서신(1972년)이 자료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천문연구원에서 2017년에 수행한 제1차 구술채록사업에서 구술자로 참여한 오병렬 한국천문연구원 원로가 기증한 사료들은 대부분 연구원 태동기 국립천문대 구축과 망원경 구매 관련 자료였으며 이 가운데 1972년 당시 과학기술처 김선길 진흥국장에게 Boller and Chivesns(사(社))의 반사경을 추천한 방득룡 전(前)교수의 서신은 한국 천문학 발전사에서 중요한 사료였다. 연구진은 이 자료를 시작으로, 방득룡 전(前)교수의 생존 여부와 문서고의 공기록물들에서 그의 흔적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는 실제 세계와 한국천문연구원 문서고 깊숙이 기록물들 모두에서 상존하고 있었다. 1927년생인 방득룡 전(前)교수, Dr. John D. R.은 미국 플로리다 한 실버타운에서 건강한 정신으로 생존하여 있었고 연구진의 인터뷰에 흔쾌히 응했다. 2020년 9월 16일에 한국천문연구원 본원 세종홀 2층 회의실에서 영상통신회의로 그와의 구술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이 구술인터뷰는 원외 인사가 대상이란 점 외에도 방법적으로는 전형적인 대면 방식이 아닌 영상 인터뷰였다는 점에서 코로나 시대의 대안이 되는 실험적 시도였다. 현대 한국천문학 발전사의 재조명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1960년대 초반부터 1992년 정년퇴임까지 30년을 미국 유수 대학교 천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활발한 활동을 해 온 한국계 천문학자가 우리나라 최초 반사망원경 구매 선정에 적극 개입하였던 역사는, 공문서 자료들과 서신 사료들에 이어 그의 육성으로 나머지 의구심의 간극이 채워졌다. 또 구술자 개인이 주관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기억'이 중요한 아카이빙 콘텐츠 확장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구술사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관점을 주었다. 애초 연구진이 방득룡 전(前)교수의 공식 기록에서 아카이빙의 큰 줄기로 잡았던 것은 1948년 도미, 1957년 위스콘신 대학교 천문학 박사학위 취득, 1962년부터 노스웨스턴 대학(일리노이주 에반스턴)의 천문학 교수진, 1992년 은퇴로 이어진 생애였다. 그러나 그와의 구술 준비 서신 왕래와 구술을 통하여 알게 된 그가 인생에서 중요시 여겼던 지점은, 1948년 도미 무렵 한국의 전쟁 전 상황과 당시 비슷한 시기에 유학한 한국 천문학자들의 동태, 그리고 1957년부터 1962년까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M. Schwarzschild 교수와 L. Spitzer 교수를 보조하며 Stratoscope Project를 연구하였던 경험이었다. 기록학적 의미에서도, 전자를 통해서 그와 함께 동시대 한국 천문학을 이끌었던 인재들의 맥락정보를 얻을 수 있었으며, 후자를 통해서는 세계 천문학사에 큰 영향을 미친 석학에 대한 아카이브 정보와의 연계 지점과 방득룡 전(前)교수의 연구 근원을 찾을 수 있었다. 이들은 추후 방득룡 콘텐츠 서비스 시에 AIP, NASM, Lyman Spitzer 콘텐츠, 평양천문대, 화천조경천문대, 서울대와 연세대, 그리고 한국천문연구원까지 연계되어 전 세계 폭넓은 이용자들의 유입을 유도할 수 있는 검색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번 방득룡 구술사 연구에서 구술자 개인의 주관적인 소회가 공식 기록이 다가갈 수 없는 역사적 실체에 일정 부분 가까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하여 개인의 역사는 공동체의 역사로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 연구진은 방득룡 전(前)교수의 회상을 통하여 구술자 개인의 시각으로 한국과 미국 천문학계의 공동체 역사를 재조명할 수 있었고, 이것을 아카이브 콘텐츠 확장 서비스에 반영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 연구를 통하여 다양한 주제의 아카이브로 연동될 수 있는 주제어와 검색도구를 구술자 개인의 회상으로부터 유효하게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향후 한국천문 구술아카이브의 확장을 통하여 보다 다양한 활용과 연구 재활용의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는 최근 기록학계에서 대두되고 있는 LOD(Linked Open Data)의 방향성과도 흡사하여 한국천문학 구술사연구의 차세대 통합형 기록관리의 미래모형을 기대케 하는 대목이다.

  • PDF

사용자 그룹별 과학기술정보 서비스 수요 분석 (Study on the Science & Technology Information Service Needs Corresponding to the Scientists and Engineers Group Characteristics)

  • 정혜주;윤정선
    • 정보관리연구
    • /
    • 제43권4호
    • /
    • pp.143-167
    • /
    • 2012
  • 본 연구에서는 사용자 그룹별 과학기술정보 서비스 수요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 분석을 실시하였다. 설문에서는 20가지 과학기술정보서비스에 대한 필요도, 인적교류를 위해 필요한 개인정보,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정보가 조사되었다. KOSEN 사용자 1,013명이 설문에 참여하였으며, 응답자의 소속기관, 직업, 최종학위, 연령에 따라 분산분석을 실시하였다. 빈도분석 결과 동향분석, 논문, 연구보고서, 특허, 지식질의, 채용정보, 프로젝트공고, 실험방법, 학회정보, 해외유학/Post-Doc정보에 대한 수요가 높았으며, 멘토링, 커뮤니티, 블로그 서비스를 제외한 모든 서비스가 사용자 그룹별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과학기술자들이 상호 교류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인적 정보로는 전문분야, 논문/연구실적, 경력사항, 소속기관, 직업, 최종학위, 학력사항 순으로 응답하였고 사용자 그룹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인적 정보는 부분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또한 응답자의 97%가 자신이 보유한 과학기술정보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의사가 있다고 답변하였고 논문, 발표자료(ppt), 보고서, 실험방법, 이미지 순으로 공유 의사를 표시하였다. 본 연구 결과는 과학기술자들을 위한 사용자 중심 맞춤형 서비스를 개발하는데 유용한 정보로 활용될 수 있으며 향후 미래 과학기술정보 서비스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리라 기대된다.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 제재와 동양윤리 - 초등학교 5, 6학년 1학기 실험본 교과서를 중심으로 - (Contents Structure of 『Ethics』 and 『Guide of Life』 in Elementary School Textbook, and Asian Ethics)

  • 지준호
    • 한국철학논집
    • /
    • 제30호
    • /
    • pp.259-282
    • /
    • 2010
  • 도덕적인 삶을 통하여 인생의 이상을 현실에 실현하고자 하는 유학의 윤리적 가치는 도덕주체인 나 자신을 중심으로 타자와의 관계성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전통 가치들은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해 온 인간다움이나 초월자에 대한 경외 등 동질성의 측면에서 보편성이 함유되어 있다. '한국적인 맥락에서의 보편성 추구'란 바로 우리의 전통 문화를 기반으로 우리 땅에서 꽃피운 '한국윤리'를 궁극적으로 표방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보편성과 우리라는 다양성의 종합적인 이해를 통하여, 각 문화에 대하여 존중하는 마음을 함양하고 인류애를 실현하는 인격자로서 문화 창조의 역할을 능동적으로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전통 윤리에 관한 탐구는 윤리의 역사와 지금을 바라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문화를 기반으로 한 우리의 정서를 이해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오늘날 중요한 사회적인 관심으로 대두되고 있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확립과 가치관의 혼란에 따른 도덕성 회복의 문제 역시 이와 그 궤를 달리하지 않는다. 우리 청소년들이 전통 윤리를 올바로 이해하고 새롭게 재창조하는 삶을 추구할 수 있을 때, 자신은 물론 사회도 건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경기도·강원도지역 구곡·동천 위치연구 (Study On the Geographic Locations of Gugoks and Dongcheons in Seoul, Gyeonggi-Do and Gangwon-Do)

  • 강기래;이해주;김희채;이현채;김동필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 /
    • 제35권3호
    • /
    • pp.67-75
    • /
    • 2017
  • 유교의 사상적 완성을 구현하기 위한 구곡(九曲)과 동천(洞天)의 문화는 조선시대에 널리 성행하였다. 이는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학주자(學朱子), 존주자(尊朱子)의 기치 아래 자연 속에서의 심신수양을 통한 주자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진리의 체득을 위한 과정에 있다는 자기 위안의 행위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의지의 표출로서 각 지역의 경치가 좋은 곳에 주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모방한 '구곡'과 이상향을 나타내는 '동천'을 설정하고 경영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구곡 동천은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학계에 보고된 우리나라 전체 구곡은 약 60여 개소에 이르며, 동천은 이보다 더 많지만 정확한 위치나 집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서울, 경기, 강원도에 산재하고 있는 구곡 동천에 대한 위치확인을 위해 수행되었다. 구곡과 동천의 위치에 대한 정보는 선행연구와 보고서, 인터넷 검색과 각 지역 문화원의 발간 서적을 통해 수집하였다.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각 지역에 실재하는지에 대한 답사를 진행하였고, 위치정보를 획득하였다. 이 외에 상상 속의 구곡 동천이나 멸실된 곳, 출입이 불가능한 지역 등을 정리하였다. 서울과 경기도 강원도의 구곡은 8개소로 파악되었다. 이 중 그 위치나 기록 등이 비교적 명확한 곳이 곡운구곡과 옥계구곡이다. 벽계구곡과 수회구곡은 서로 위치나 명칭이 서로 겹치기도 하고, 설정한 시기나 경영자가 명확하지 않다. 서울의 우이구곡은 홍양호가 설정하였으나 그 위치가 일부는 확인되고 일부는 위치의 논란이 있으며, 일부는 훼손되어 있다. 서울 경기도와 강원도의 동천은 모두 38개소로 파악되었다. 서울지역에 위치한 동천은 16개소이다. 이 중 실제 존재하지만 출입이 금지된 곳은 도화동천과 양산동천, 쌍류동천 등이다. 경기도 지역의 동천은 13개소이며 온수동천은 개발로 인해 그 위치를 알 수 없으며, 귀래동천은 기록만 있고 실제로 확인은 불가한 곳이다. 강원도 지역의 동천은 9개소이다. 화음동천은 곡운구곡의 상류에 위치한 화음동정사지(華陰洞精舍址)를 잘못 표기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장소성과 문화경관으로 해석한 태안 백화산의 다층적 종교 관성 (A Study on the Multi-Layer of Religious Inertia Represented in Sense of Place and Cultural Remains at Mt. Bak-wha)

  • 노재현;박주성;고여빈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 /
    • 제28권4호
    • /
    • pp.36-48
    • /
    • 2010
  • 본 연구는 태안 태을암 마애불사원을 중심으로 한 백화산의 장소성과 문화경관 특성을 조사 분석하여 이 지역 일대에 산재하거나 내재된 경관에 대한 표현방식과 그 의미를 논의함으로써, 백화산 일대의 경관지리코드와 종교적 장소 관성을 조명하고자 하였다. 경관대상 백화산의 입지성과 골산(骨山)으로의 특이성 못지않게 백화산을 시점장(視點場)으로 조망되는 파노라믹한 서해 조망은 관음도량으로서의 백화산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고지도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중요하게 읽혀지는 고성(古城)과 봉대(烽臺) 그리고 태을암은 조선조 백화산의 장소정체성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어풍대, 영사대 등 다수의 각자(바위글씨)는 이 산의 조망성과 장소 특성에 기인한 기념성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이는 단군 영정의 태일전 이안(移安) 사실은 백화산이 갖는 국가적 위상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며, 삼성각에 봉안된 단군 영정 등을 통해 토착 종교와 공생하며 오랜 시간 이어져온 보편적 지역성도 공유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태을암에 모셔진 백제시대 불상인 태안마애삼존불은 관음신앙의 도량인 백화산의 존재이유이자 상징체가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장소성에도 불구하고 태을암 마애불 전면에 조성된 '태을동천' 각자를 중심으로 한 계류 및 연못공간인 일소계와 감모대 그리고 그 위에 새겨진 암각바둑판과 조선 중기 이후 유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다수의 각자 흔적을 통한 도가적 문화현상 또한 동일한 무게로 읽혀지는 것은 조선말기 팽배된 유불선의 합일사상이 기저에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다양한 문화경관의 혼재사유는 백화산이 갖는 종교적 장소 관성이 꾸준히 유전하면서 시대정신에 습합해온 결과가 아닐 수 없으며, 백화산에 산재된 여러 유형의 문화경관요소는 태안 백화산의 다층적 장소성과 경관 특성을 이해하기 위한 고유의 지리코드로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