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d on the experience of building 'Waegwan(倭館)' in Busan, Japanese paper wallpapering, the use of square rafters, and the installation of sliding windows were used in the construction of Joseon palaces from the 17th century onwards. Elements that could be applied through observation alone were applied first, and sliding windows that required precise skill acquisition were installed later. 'Yeongchang(影窓)', which refers to a sliding window that brightens an interior, has spread rapidly, and its types and structures have also become more diverse. Gradually, 'Yeongchang' came to refer only to additional windows installed by attaching grooves to the lintel of existing casement windows. The sliding window that is installed independently and acts as an interior partition was renamed 'Chujangja(推障子)'. Japanese architectural elements such as 'Yeongchang' and 'Chujangja' have become an element of traditional Korean architecture.
본 논문은 경기도 지역 석탑의 건립 현황과 양식 분석을 통해 경기도 지역 석탑이 갖는 특징과 의의를 밝히기 위한 것이다. 경기도 지역에 불교가 유입된 이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불상, 석탑, 승탑, 마애불 등 다수의 불교 조형물이 조성되었으며, 이 가운데 불상과 더불어 신앙적인 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불탑이다. 이후 고려~조선을 거치는 동안 경기도 지역에도 많은 사찰이 건립되었으며 그에 따른 석탑 건립도 성행하였다. 본 논문은 경기도 지역 내 지정된 석탑을 기본으로 48기의 석탑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분포 현황을 보면 한강을 기준으로 경기 북부보다는 남부에 집중 건립되었는데, 중심이 되는 지역은 안성, 이천, 용인, 여주 등이다. 이는 지역적 특수성도 기인하지만, 북부에는 석탑을 건립하는 대형 불사가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시대별 특징을 보면 통일신라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석탑이 남아 있어 석탑이 꾸준히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주로 고려시대 석탑이 집중 건립되었는데, 고려 전기에 남부 지역에서 활발히 건립되었으며, 고려 후기에는 경기도 전역에 걸쳐 석탑이 건립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한양과 가까운 지역 및 왕실과 관련이 깊은 사찰들에 석탑이 건립되어 당시 시대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다. 석탑은 지역적 특수성, 즉 교통의 요지인 곳에 주로 건립되었는데 안성, 이천, 용인, 여주 등 전략적 요충지로서 주목되는 지역에 불사가 성행하였고 그로 인해 석탑 건립이 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술사적 의의를 살펴본 결과, 성주사지 석탑의 영향을 받아 어비리 삼층석탑에서 별석 초층탑신받침이 확인되는 점, 고려시대 석탑 중 백제계 석탑은 확인되지 않고 주로 신라계 석탑과 고려 양식 석탑이 건립되었다는 점, 탑신 결구 방식과 탑신 제작 방식에서 전국적으로도 사례가 많지 않은 특징이 나타난다는 점, 마지막으로 석탑 장엄조식에서 보편성과 특수성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된다.
본 연구는 서양인들의 시각에서 조선이 근대화되기 시작한 19세기말 조선의 경관을 조명하는데 목적이 있으며, 서양인들의 경관 관련 기록의 역사적 의미를 도출하고 이에 대한 경관의 유형화 및 그들의 인식을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당시 조선을 방문했던 서양인들은 조선의 역사적, 정치적 상황에 개입되거나 오랜 기간 여행을 통해 조선의 문화를 이해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설명이 여러 저서에서 공통으로 확인되는 점은 그들의 기록을 통해 당시의 경관을 조명하는 과정이 유의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서양인들의 기록에 나타나는 조선의 경관은 소도시 및 마을, 자연환경, 명승 고적, 근대시설, 경작지 등이 주로 언급되었다. 소도시 및 마을은 허름한 뒷골목과 빼곡히 들어선 가옥들이 주로 언급되고 있으며, 자연경관은 산악경관과 해안 및 하천을 따라 펼쳐지는 다양한 지형경관과 주변식생이 확인되었다. 궁궐과 산성, 사찰 등은 명승 고적의 주요 대상으로 기록되었으며 근대화된 시설에는 외국인 공사관 및 거류지, 교회나 학교 등의 서양식 건축이 언급되고 있었다. 경작지는 낙후되고 방치된 모습이 확인되었으나, 조망구도가 넓어질수록 평화롭고 번창한 분위기의 농촌경관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셋째, 조선에 대한 당시 서양인들의 인식은 비위생적이고 낙후된 주거환경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빼어난 산수와 수려한 명승고적, 상류층의 주택정원을 대상으로 하는 긍정적 인식이 나타났다. 근대화된 경관에 대해서는 문명화된 경관 개선이라는 점에서 긍정적 인식이 형성되었으며, 전통경관의 훼손 및 이질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본 연구는 모리스꾸랑의 "한국서지" '도교' 관련 해제들에 대한 고찰이다. 모리스꾸랑은 전임공사인 쁠랑시의 조언과, 한학에 능한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아 3000종이 넘는 도서들을 수집하여 "한국 서지"(1896)를 집필하였다. 모리스꾸랑은 도교관련 경전들을 분류하면서 '경서류', '관성제군 문창제군 부우제군에 대한 숭배의식', '기타'의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모리스꾸랑의 "한국서지"에 담긴 도교 부분은 다음의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 19세기 말 관제신앙의 유행과 삼성신앙의 확대이다. 그의 도교서지는 대부분 19세기 말 조직화 되었고, 삼성신앙을 기반으로 하는 '무상단'에서 출판한 책들을 중점으로 다루었다. 둘째 모리스꾸랑이 자생적인 도교경전을 찾으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는 한글본 "도덕경"을 찾으려 노력했고, 한국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조선난서'인 "문창제군몽수비장경(文昌帝君夢授秘藏經)" 등을 다루었다. 셋째 그의 연구를 통해 당대의 도교의 지형도를 살필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가 살던 시기, 관묘를 중심으로 하는 도교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고, 최초의 도교교단이었던 '무상단'이 조직적으로 활동했으며, "번석자문(飜惜字文)"을 기반으로 하는 종교적 사회실천 모임이 있었다는 것을 살필 수 있었다. 1890년대 조선은 열강사이에서 나라의 주권을 잃어가고 있는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 왜 대량의 민간도교경전이 간행되고, 사회의 지도층까지도 삼성신앙을 가졌던 것인가? 이러한 지도층의 태도를 선교사들은 '무당들과 주술사들이 이 나라를 그리고 지배자들까지를 지배하고 있으며, 고종이 역술가에게 포위된 채 생활하였다'라고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민간도교에 기반 한 '대종교'는 항일운동의 구심점이 되기도 하였다. 아직까지도 조선후기 난서의 유행과 삼성신앙에 기반 한 민간도교의 확대를 설명하기 위한 연구는 부족한 상황이다. 1890년대 초 조선을 다녀가 "한국서지"를 남긴 모리스꾸랑을 연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umsikjeoljo (integrity with food) originally came from the Andong district, where the Goseong Yi clan inherited a cookbook from their ancestor Lee Jeong-Rong (1798~1871). The cookbook was written in an antiquated style and is estimated to have been written around the year 1865. Details of the era and authorship are seldom available for the extant ancient cookbooks. The authors of these books and the period during which these books were precisely written were studied through the Eumsikjeoljo which is a repository of 46 cooking disciplines. Of these 10 deal with the practice of traditional Korean crispy snack making, 4 with rice cake making, 3 of the yeonbyeong kind, 19 examples of Korean side dish making, 6 recipes of the kimchi variety, 2 examples of paste-based recipes, and 2 instances of instructions on how to make vinegar-based extracts. Also, in Eumsikjeoljo, there are descriptions of 29 different ways to brew rice wine. Of these, Danyang wine among the Leehwa wines and 13 others account for over 44% of the content. Leeyang wine and Sogok wine are represented by 10 different varieties and constitute around 34% of the entries. Samyang wine and Baek-il wine, along with 6 others, constitute 21% of the entries. The secret recipes of the Goseong Yi clan in the Andong district were recorded so that they could be transferred to the descendants of the clan. An inspection of the recipes and wine brewing techniques recorded in Eumsikjeoljo provides a clearer picture of the mid-1800s Andong noble family's traditional food habits and simultaneously sheds light on the late Joseon dynasty's food culture.
조선시대 의궤(儀軌) 도식(圖式)과 도병(圖屛)등에서 꽃꽂이의 양식을 찾아보았다. 의궤의 도식과 도병에서는 국연(國宴)이 열리는 궁궐 정전(正殿) 중앙의 어좌(御座) 좌우를 장엄하는 선형, 둥근형, 타원형의 준화(樽花)을 확인, 음식 위를 장식하는 상화(床花), 관이나 모자 등을 장식하는 잠화(簪花), 화안(花案)이라고도 하며, 궁중 행사시 차일을 받쳤던 기둥장 식인 화가(花架) 등의 양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화가는 초기에는 찾아볼 수 없었으며, 1848년 무신진찬도병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1795년 원행을 묘정리의궤와 화성능행도병에서는 테이블장식과 현대 공간장식으로 볼 수 있는 바닥공간장식과 어사화, 왕이 하사한 꽃을 지팡이에 묶은 꽃 장식등이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abandoned mountain fortresses were urgently repaired for the operation of foothold mountain fortresses in Gyeongsang-do,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and immediately after the Qing Invasion of Korea in 1636. Immediately after the Qing Invasion of Korea, an external fortress wall was built and added to each of Cheonsaeng Fortress and Geumo Fortress to establish a system of protecting locals inside a fortress at important locations for border defense against Japan in the Yeongnam region. Cheonseng Fortress, however, did not have sufficient geographical and protection conditions as a mountain fortress for protecting people inside it; thus, Gasan Fortress was newly built to replace Cheonsaeng Fortress. Geumo and Gasan Fortresses were used in border defense against Japan during the period from King Injo's reign to the end of Joseon Dynasty, because the fortresses served the purpose of defending Nakdonggang River and middle roads located at important roads along the border in the Yeongnam region and because it was possible to quickly repair and use their existing fortress walls and internal facilities, such as middle fortress walls and ponds, that were constructed for long-term protection of locals inside the fortress. In addition, it was found, in this study, that a continuous discussion on how to supplement fortresses led to the reinforcement and improvement of fortress facilities and fortification technology through the application of major strengths of Chinese (Ming) and Japanese fortress systems.
The ritual to change the hairstyle holds the same meaning as the coming of age ceremony. The ceremony was performed throughout three times including choga, jaega, and samga. The garment and hairstyle attuned to the ceremony formalities. Women in the royal family had 'su-siK when they were fully grown up during choga, 'gwang-sik' during Jaega, and 'keun-meo-ri (big hairstyle)' during samga. 'su-sik' is the noblest hairstyle according to social status, which is allowed to be worn only by spouse of king and prince, regardless of adult or not. During jaega, 'gwang-sik' which was 'u-yeo-meo-ri', is made by winding 'darae (wig)' around a jjok-jin-muri (bun) [Jo-jim-meo-ri]? which distinguished the hairstyle of unmarried women, who did not go through a coming of age ceremony yet. Unmarried women maintained a hairstyle which is mostly twisted into one string, but they had 'saeang-meo-ri' when they were prepared for ceremonial costumes. Also, they had 'ga-raemeo-ri' when growing further. keun-meo-ri during samga is an addition of keun-meo-ri chaebal(wig) onto u-yeo-meo-ri. Women in the royal family made geo-du-mi by adding keun-meo-ri, which is formed by twisting wig, and oimyeongbu (noble ladies) and sanggung (court ladies) added a wooden wig called u-yeo-mi. Also, yeoryeong wore ga-ri-ma. In this way, the types of hairstyles were distinguished according to hierarchy. As the coming of age ceremonial dress. Wonsam was worn. During choga. wonsam was worn as a formal dress and during jaega and samga wonsam was worn as a full dress.
The objective of this study is to identify the species of 17 wooden Buddhist statues of the late Joseon Dynasty (the 17th and 18th century) in Jeollado, southwestern region of Korea. The bodies of statues were made of Ginkgo (Gingko biloba L.: 88%) and alder (Alnus spp.: 12%). The hands of statues were alder(64%), willow (Salix spp.: 27%) and Ginkgo(9%). The bottoms of hollow bodies were covered all with Japanese red-pine (Pinus densiflora S. et Z., 'sonamu') panels. The main species of statue body, Ginkgo tree was known to be introduced to Korea from China with Buddhism. The results indicated that Ginkgo trees of Korea in the 17th century had already become large and rich enough to be used for most of statues. Ginkgo wood has low shrinkage and even texture, which are crucial for carving sculptures. Alder and willow woods used for statue hands have fine and firm textures. The pedestals for these statues were also made of red pine wood. Red pine woods have rather high shrinkage and low hardness, but it is versatile woods strong enough to support heavy statues.
본 연구는 조선 후기 개인문집 속에 묘사된 경관 관련 문헌을 조사 발굴하여 장소를 찾고, 그 속에 묘사된 대상지와 주변경관요소들을 분석하여 실제의 경관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해 보는 기초연구로서, 대상지는 조선 후기 학자 최동집의 대암선생문집에 묘사된 농연서당십경에 대한 각 경관요소 및 장소를 찾아보는 것이다. 연구내용은 1) 대암 최동집과 대암선생문집을 정리한 후손 백불암 최흥원의 배경 및 농연서당에 대하여 이론적 고찰을 하였고, 2) 문헌자료 및 현장조사를 통해서 농연서당의 위치 및 장소를 파악하였으며, 3) 그 장소에서 농연서당십경에 대한 경관요소 및 분포관계 그리고 의미를 분석하였다. 고찰을 통해 농연서당의 배치와 방향에 대한 의미를 되짚고, 정원조성관련 기록을 확인하였으며, 지속적인 연구를 위한 방향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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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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