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study aims to develop a restoration model of an armillary sphere of Tongcheon-ui (Pan-celestial Armillary Sphere) by referring to the records of Damheonseo (Hong Dae-Yong Anthology) and the artifact of an armillary sphere in the Korean Christian Museum of Soongsil University. Between 1760 and 1762, Hong, Dae-Yong (1731-1783) built Tongcheon-ui, with Na, Kyung-Jeok (1690-1762) designing the basic structure and Ann, Cheo-In (1710-1787) completing the assembly. The model in this study is a spherical body with a diameter of 510 mm. Tongcheon-ui operates the armillary sphere by transmitting the rotational power from the lantern clock. The armillary sphere is constructed in the fashion of a two-layer sphere: the outer one is Yukhab-ui that is fixed; and the inner one, Samsin-ui, is rotated around the polar axis. In the equatorial ring possessed by Samsin-ui, an ecliptic ring and a lunar-path ring are successively fixed and are tilted by 23.5° and 28.5° over the equatorial ring, respectively. A solar miniature attached to a 365-toothed inner gear on the ecliptic ring reproduces the annual motion of the Sun. A lunar miniature installed on a 114-toothed inner gear of the lunar-path ring can also replay the moon's orbital motion and phase change. By the set of 'a ratchet gear, a shaft and a spur gear' installed in the solstice-colure double-ring, the inner gears in the ecliptic ring and lunar-path ring can be rotated in the opposite direction to the rotation of Samsin-ui and then the solar and lunar miniatures can simulate their revolution over the period of a year and a month, respectively. In order to indicate the change of the moon phases, 27 pins were arranged in a uniform circle around the lunar-path ring, and the 29-toothed wheel is fixed under the solar miniature. At the center of the armillary sphere, an earth plate representing a world map is fixed horizontally. Tongcheon-ui is the armillary sphere clock developed by Confucian scholars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the technical level at which astronomical clocks could be produced at the time is of a high standard.
국보 제76호 지정문화재는 난중일기(임진일기, 계사일기, 갑오일기, 병신일기, 정유일기, 속정유일기, 무술일기) 7책과 서간첩 및 임진장초 등 총 9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충사 소장 유물로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장군이 직접 기록하였다는 역사성과 학술연구자료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UNESCO가 지정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2013년 6월)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이 중 임진장초는 충무공이 임진왜란 중 선조 25년(1592) 4월 1일 전라좌도수군절도사 재임시로부터 동왕 27년(1594) 정월 10일 삼도수군 통제사를 겸직할 당시까지 정황(情況)을 비롯하여 출전경과(出戰經過), 군사상의 건의사항, 진중의 경비 및 준비상황들을 정확하고 상세하게 장계(狀啓)한 내용을 다른 사람이 등초(謄草)한 책이다. 또한 조정의 임금님께 올린 보고서(장계, 狀啓)의 초본으로 1책(?), 반엽(半葉), 오침안정법, 선장본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본 논고에서는 임진장초에 대한 손상유형과 보존상태 및 보존처리 내용에 대하여 기술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조선시대 고문헌이며 국가지정 중요 지류문화재의 보존처리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소치 허련(小癡 許鍊,1808~893)은 조선 말기 대표적 남종 문인서화가이며 남도 문인화의 시조로,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의 문하에서 문인의 학문적 면모와 화원의 능숙한 화법을 모두 체득해 '사의화(寫意畵)'를 이룬 직업형 문인화가였다. 허련의 산수화는 그의 화격을 높이 산 김정희의 지도에 의해 형성되었으나, 추사 사후 그의 나이 70세경에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묵란화는 '추사란(秋史蘭)'의 양식과는 관련이 없고, 전체적으로는 고법(古法)을 따르면서도 거칠고 호방한 필치의 사의성을 띠고 있어 주목된다. 허련의 묵란화는 사군자류 중 화란법(畵蘭法)을 남길 만큼 관심을 가졌던 분야임에도 전체적인 작품의 조사나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화란법과 제발(題跋), 인문(印文)에 나타난 난화관(蘭畵觀)을 통해 그의 묵란화 인식을 살피고, 화보를 임방하고 당대 화풍을 수용하면서도 개성적인 필묵의 운용으로 형성된 소치란(小癡蘭)의 면모를 파악해보고자 한다. 특히 허련은 당시 묵란화의 대가인 이하응이나 조희룡과 화우(畵友)로 지내지만 난 그림에 있어서는 김정희의 난화론을 바탕으로 삼아 초기 지두란(指頭蘭)을 그리는 등 자신만의 화란법을 형성하고 예술세계를 구축한다. 또한 난화는 유가적 전고(典故)를 바탕으로 그리지만 제발과 인장의 내용을 통해서는 유가적 성격뿐만 아니라 도가 불가적 의미까지 더해져 허련의 인생 지향과 사유세계를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복합적이고 다양한 철학과 심미의식이 반영된 허련의 묵란화는 시기에 따라 변화 과정을 거치며 만년에 사의 묵란화를 형성한다. 즉 그는 직업형 화가였음에도 말년에 더욱 활발히 제작했던 사의란을 통해 조선 사대부의 이상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려 했음을 알 수 있고, 소치란은 문인의 표상을 실현하려는 사의적 시각과 의지의 발로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선 말기 진도(珍島) 출신의 소치(小癡) 허련(許鍊)(1808~1893)은 시(詩) 서(書) 화(畵) 삼절작가(三絶作家)로서, 호남 화단의 실질적 종조(宗祖)라 불리운 대표적 화가이다. 초의선사(艸衣禪師)로부터 유(儒) 불(佛) 도(道)와 함께 회화의 기초를 배웠고, 초의(艸衣)의 소개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문하생이 되었다. 이후 추사(秋史)의 문인지향적(文人指向的) 서화정신과 화이재도적(畵以載道的) 회화심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계승하였다. 그의 생애와 예술활동의 특징은 70이 넘은 만년(晩年)까지 지속된 주유(周遊)와 다작(多作) 활동, 그리고 주유(周遊) 기간의 세부사항까지 서술한 "소치실록(小癡實錄)"의 기록이다. 소치(小癡)는 사의적(寫意的) 남종화(南宗畵)를 지향하여 예황풍(倪黃風)의 산수화에서 자유분방한 갈필(渴筆)과 소산간일(蕭散簡逸)한 충담미(沖澹美)를 발현하였다. 또한, '허목란(許牧丹)'이라 불리울 만큼 운필변용(運筆變容)의 생동미(生動美)를 자아내는 모란은 괴석(怪石)을 함께 그려 부귀공명(富貴功名)에 대한 욕망과 문사적(文士的) 취향을 동시에 만족시켰고, 이후 가전(家傳)되어 '운임산방(雲林山房)'의 대표적 화목(畵目)이 되었다. 그의 토착화된 화풍(畵風)과 회화(繪畵) 심미(審美)는 200여년의 5대(代) 직계(直系) 화맥(畵脈)을 형성하여 지금까지 현대 한국화단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조선 후기 묵장(墨場)의 영수(領岫)로 불리었던 조희룡(趙熙龍)(1789~1866)은 양반가문 출신이었지만 스스로 여항인(閭巷人)이라고 자처하였으며, 중인(中人)들을 중심으로 벽오사(碧梧社)를 결성하여 문예 활동을 하였다. 우봉(又峯)은 "불긍거후(不肯車後)"를 전 생애를 관통하는 예술정신으로 삼았으며, 성영론(性靈論)을 내세워 감성 내지 영감을 예술의 요체로 여겨 진정(眞正)과 개성(個性)을 중시한 독창적 회화심미를 추구하였다. 60대 초반에 약 3년간의 임자도 유배기간은 그의 예술세계에 대한 정체성과 방향성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기간에 "화구암란묵(畵鷗??墨)", "우해악암고(又海岳庵稿)", "수경재해외적독(壽鏡齋海外赤牘)", "한와헌제화잡존(漢瓦軒題畵雜存)" 등 4권의 저술을 썼으며, 당호(堂號)가 있는 그의 회화 19점 중 "황산냉운도(荒山冷雲圖)", "방운임산수도(倣雲林山水圖)",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등 8점이 이때 제작되었다. 이들 작품을 통해 유희적(遊戱的) 속미(俗美) 정신과 수예(手藝)의 기괴(奇怪)함, 그리고 천예(天倪)의 자연스러운 회화심미를 드러내고 있다.
개화기 한국 근대사연구의 중요한 자료인 1971년에 출판된 2,866페이지에 달하는 『유길준 전서(兪吉濬全書)』 1질(5권)의 자료보존과 효율적인 공유를 위하여 해당 자료의 조사와 구입, 보존상태 조사, 자료의 물리적 보존, 자료의 상태와 내용 보존을 위한 전자문서화 작업까지의 과정을 정리하여 소개한다. 출판된 지 50년이 경과한 현대 인쇄물에서 문서의 변색(變色)과 경화(硬化), 부스러짐, 파손 등의 열화 및 손상 정도를 이미지분석을 통하여 정량화하고 손상영역의 가시화를 시도하였다. 사용된 종이의 재질, 표면상태, 광선에 노출된 정도, 보관환경에 따라 열화 및 손상 정도가 크게 의존하는 것이 관찰되었다. 유길준 전서 제1권에 수록된 『서유견문(西遊見聞)』의 전자문서화된 이미지와 다른 웹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이미지와의 비교를 통하여 이미지 촬영 당시의 보존상태의 비교, 고찰 및 이미지의 가공유무에 대한 판단이 가능함을 예시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서 전자문서화가 완료된 자료의 효과적인 보존과 학술연구자료로 공유하는 방법을 고려하면서 부딪치게 된 현실적인 문제에 관해서도 정리하였다.
이 논문은 남겨진 조선총독부 기록의 잔존성을 중심으로 전시체제기 일제에 의해 조직적으로 실행된 '의도된' 기록 폐기 문제를 검토하였다. 일제 내각에서의 결정이 일본 본토와 식민지 등 제국 전역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공문서를 대상으로 실행된 역사적 개연성을 보다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었으며, 1930년대 후반 이후 아시아·태평양 전쟁으로 확전되고 전황이 악화되는 상황을 배경으로 공문서 감축과 정리, 종이자원의 재활용 등 이미 기록 폐기를 위한 시스템이 준비된 사실을 확인하였다. 또한, 조선총독부 기밀문서취급규정과 경찰서 처무규정 검토를 통해서 총동원계획과 관련한 기밀(비밀) 문서, 고등경찰 업무와 관련한 다양한 비밀문서의 존재, 그리고 이러한 비밀문서 중 상당수가 영구 또는 10년 이상 보존 기록에 해당된 사실도 확인하였다. 동시에 처무규정상 남아 있어야 할 문서현황이나 보존현황을 알 수 있는 각종 대장(부책)이 단 한 책도 존재하지 않는 현상을 밝히고 이를 패전 직후 조선총독부의 대대적인 공문서 폐기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 연구의 목적은 "만기요람" "군정편" 시예를 통하여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의 군사들에게 어떠한 도검무예가 시행되었는가를 검토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종합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만기요람" "군정편"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조선의 군사제도 및 군사정책 그리고 중앙군영의 구체적인 운영규모 및 현황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대표적 자료이다. 둘째, 도성을 방어하는 군사들에게 시행된 대표적인 시예는 중순(中旬)과 관무재(觀武才)였다. 시예의 종류로는 훈련도감은 중순, 관무재, 별시재, 서총대시사, 금위영은 상시재, 기사도시, 중순, 관무재, 별시재, 서총대시사, 어영청은 상시재, 기사도시, 중순, 관무재, 별시사, 서총대시사가 시행되었다. 셋째, 중순의 특징은 응시자지원 제한규정에서 왜검교전수가 예도와 협도를 응시할 수 없고, 예도와 협도수가 왜검교전을 중복해서 응시할 수 없었다. 넷째, 관무재의 특징은 보군 별기였으며 여기에는 왜검교전, 예도, 협도, 언월도, 제독검, 본국검, 등패 등 7기가 지정되어 시행되었다. 이 도검무예들은 "무예도보통지"에 모두 실려 있었다. 다섯째, 시예는 군사들이 자발적으로 평상시에 개인기량을 연마하여 평가하고 자신의 무예실력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우수한 군사들에게 포상을 내리는 좋은 제도였다. 이 연구를 통해 "무예도보통지"의 도검무예의 구체적인 실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노주 오희상은 조선후기 순조대에 활약한 유학자로서 당시 산림의 종장이었다. 그는 절충파 성리학자로서 알려져 있으나 생부 오재순과 백형 오윤상으로 이어지는 가학을 계승하여 경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노주의 경설과 그 특징을 살펴보았다. 노주 경설의 경학방법론의 특징으로는 다음과 같은 점이 주목된다. 첫째, 전체적으로 분석이 정밀하며 경서해석에 있어서 주로 성리설과 관계된 장절을 주석하였다. 둘째, 주자주에 대한 견해는 물론 사서집주대전의 소주(小注)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탐구를 하고 있다. 다만 노주는 주자설의 경우 반대하기 보다는 주자설(朱子說)의 미흡한 점을 보완하는 선에서 경서를 해석했다. 소주의 제가의 견해에 대해서는 찬동 보다는 비판적인 학설을 많이 개진하고 있다. 셋째, 중국 유학자는 물론 우리나라 유학자의 설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이율곡을 비롯하여 남당 한원진의 학설을 주로 소개하고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한원진의 "경의기문록"을 자주 인용하고 있다. 넷째, 노주는 선배 유학자설을 인용함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 학설이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될 경우 과감하게 그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우암, 율곡은 물론 심지어는 맹자설에 대해서도 그 오류를 낱낱이 변파하고 있다. 다섯째, 특히 "주역"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정자의 "역전"에 대해서는 비판을 주자의 "본의"에 대해서는 수용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체적으로 "주역"의 개략적인 설명이 많고 건괘를 제외하고는 괘를 직접 설명한 것은 적으며 특히 "계사전" 설명이 상세하다.
본 연구는 고려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궁궐 왕의 행차, 나례, 사신영접, 연회 등의 목적으로 조설되었던 전통공연예술분야의 무대장치인 산대(山臺)의 유형, 구조적 형상, 표상의 원리를 고찰하여 동시대 석가산(石假山) 조영 문화의 확장성을 제시하고자 하였으며, 그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산대의 발달사와 그 의미를 통해 외부공간에 '산'의 형상을 실체화하고자 한 석가산의 조영 문화와의 동질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산대를 만드는 행위 자체는 명산을 숭배하는 전통과 관련이 깊다. 이는 고려 예종 '청연각' 앞뜰에 조성된 석가산에서 중국의 명산명호(名山名湖)가 표상적으로 비유되어 모사(摹寫)된 사실과도 일치한다. 둘째, 산대와 석가산은 그 구조적 형상과 재료, 기술적 제작방식은 달랐으나 산의 형상을 조형하여 완상하거나 국가행사의 무대배경으로 활용되며,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산을 모사한 산대의 형상과 상징적 의미는 요산요수(樂山樂水)로 대표되는 당대의 정원 및 예술적 관심사가 산수의 다양한 조형적 표현으로 귀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신재효의 고택의 정원 중앙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연(蓮)이 심겨진 방지와 이에 인접한 수각과 석가산은 정원을 수식하는 요소일 뿐 아니라 신재효의 문하생의 수련 및 공연무대의 배경으로 기능을 수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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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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