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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朱熹) 심성론(心性論)을 중심으로 본 복괘(復卦) 해석의 문제 (The Problem of the Interpretation of the Fû Hexagram[復卦] based on Zhu Xi[朱熹]'s Theory of Psychology)

  • 김광수;김원명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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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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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8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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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이 논문은 주희(朱熹, 1130-1200)의 심성론(心性論)에서 복괘(復卦)가 미발(未發)의 괘상(卦象)이라는 설명에 대한 현대 한국의 여러 학자들의 반론에 대한 반성적 연구다. 주희는 미발설(未發說)을 복괘(復卦)로 설명한다. 여러 연구자들은 복괘(復卦)의 '사려미맹(思慮未萌) 지각불매(知覺不昧)'는 과연 미발설을 설명하기에 충분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사려미맹(思慮未萌)'은 미발설을 설명하기에 적당하지만, '지각불매(知覺不昧)'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본 연구는 주희의 복괘 해석에서 '사려미맹 지각불매'가 미발설을 충분히 설명함을 보이고자 한다. 주희의 미발설은 중화구설(中和舊說)의 시기와 중화신설(中和新說)의 시기로 그 관점이 나뉜다. 중화구설 시기는 성체심용설(性體心用說)을 바탕으로 미발설을 전개하고, 중화신설 시기는 심통성정설(心統性情說)을 바탕으로 미발설을 전개한다. 두 시기 사이에 마음의 지위는 이발에서 미발이발을 관통하는 것으로 바뀌며, 그 역할도 '성(性)이 발(發)한 것' 에서 '성정(性情)을 주재(主宰)하는 것'으로 달라진다. 이러한 변화는 미발에 대한 설명인 '사려미맹(思慮未萌) 지각불매(知覺不昧)'의 해석에 영향을 미친다. 주희는 '사려(思慮)'를 성정의 관계에서 정처럼 말하지만, '지각불매'는 마음과 연관지어 설명하며, '지각불매'를 마음의 상태로 말한다. 그러므로 지극히 고요할 때[지정지시(至靜之時)]에도 '지각불매'하다고 말한다. 지극히 고요할 때는 미발의 때이고, 이러한 미발의 때에도 지각은 어둡지 않다는 것이다. 주희는 '지각'이 미발이발을 관통한다고 본다. 이러한 주장은 주희의 복괘에 대한 관점을 이해하면 설득력을 가진다. 정이(程?, 1033-1107)는 복괘에서 양(陽)이 생겨나는 것으로 보는 반면에, 주희는 곤괘(坤卦)에서 양(陽)이 생겨나는 것으로 보지, 복괘에서 양(陽)이 생겨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또 주희는 양(陽)을 사려나 감정이 아니라, '성정을 통괄하는 마음'으로 본다. 주희는 '복괘에서 천지지심의 단서를 본다'고 하였고, 복괘를 '양이 다시 회복했지만 만물이 아직 생겨나지 않은' 것으로 파악한다. 만물이 생겨나기 이전이나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의 단서를 복괘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주희의 이런 설명을 받아들인다면, 복괘는 미발설을 설명하기에 충분하고, 주희의 복괘 해석에서 '사려미맹 지각불매'는 미발설을 설명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박세당의 『남화경주해산보(南華經註解刪補)』 저술 의의 구명(究明) - 주자와 박세당의 장자 인식 비교를 통해서 - (A Study on the Significance of Park Se-dang's Composition of the Namhwagyeong Joohaesanbo(南華經註解刪補))

  • 전현미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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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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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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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박세당(1629~1703)은 조선시대에 유일하게 "장자" 전편을 주석한 "남화경주해산보"를 저술하고, 말년에는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지탄받던 인물이다. 본 논문의 목적은 조선시대에 주류사상이던 주자학의 집대성자인 주자(1130~1200)와 박세당의 장자 인식의 비교를 통해 17세기 조선에서 "남화경주해산보" 저술이 가지는 의의를 구명(究明)하는 데 있다. 조선시대에는 주자학이 정통 교학으로서 부동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노장(老莊)을 비롯한 여타의 사상은 주자학과의 관계 속에서 논의되어야만 한다. 박세당의 장자 인식은 주자의 장자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남화경주해산보" 저술은 주자의 장자 인식을 계승하여 적극적으로 심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노론 측에서 사문난적으로 비판할 때에도 "신주도덕경"과 "남화경주해산보"은 언급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주자학에서 벗어나려는, 즉 탈주자학적 시도이다. 박세당은 장자가 유가와 대척점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남화경주해산보"를 통해서 첫째, 장자가 세상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였음을 강조하고, 둘째, 부자(父子)와 군신(君臣) 간의 인륜(人倫) 관계를 중시했음을 증명하여 유가사상과 상통점을 찾고, 셋째, 장자의 인성론(人性論)을 새롭게 조명하여 유가 인성론을 재정립하고, 넷째, 장자사상을 응용하여 분당(分黨)과 예송논쟁(禮訟論爭) 등 소모적인 정쟁(政爭)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박세당이 "신주도덕경"과 "남화경주해산보"를 저술하지만, 이는 보유(補儒)의 일환이고 본령은 유학이다. 그가 탈피하고자 한 것은 주자학의 절대화였지 유학 자체는 아니다. 주자학이 정통 교학이자 지배 이념으로 절대화되고 교조화되던 17세기의 조선에서 박세당의 "남화경주해산보" 저술은 매우 혁신적인 시도로서, 박세당이 주자학에서 벗어나 탈주자학의 선구자로서 정통 주자학자들과 지향점을 달리하여 독자적이고 진보적인 학문 세계를 구축하였음을 보여준다.

봉우권태훈(鳳宇權泰勳) 선생(先生)의 조식법(調息法)(용호비결(龍虎秘訣))과 『대학(大學)』·『중용(中庸)』의 상위표리설(相爲表裏說)에 관한 고찰(考察) (Study on the Respiration Control Method(yonghobigyeol) of Bongwoo Gwon Tae-hoon and the Xiangweibiaolishuo (duplicity theory) in Daxue/Zhongyong)

  • 권영훈;봉학근;윤대중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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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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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7-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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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이 글은 우리 시대 선도(仙道)의 개조(開祖) 이자 유학자(儒學者)인 봉우(鳳宇) 권태훈(權泰勳) 선생이 개진(開陳)하고 있는 도가(道家)의 "용호비결(龍虎秘訣)"과 유가(儒家)의 "대학(大學)" "중용(中庸)" 양자(兩者)의 표리관계(表裏關係)에 대하여 살펴본 것이다. 선생은 공자문하(孔子門下)의 전수심법(傳受心法)이 담겨있는 유가의 경전을 "대학(大學)" "중용(中庸)"과 더불어 "주역계사전(周易繫辭傳)"으로 보았는데, 이 가운데 주자(朱子)가 주석(註釋)한 "대학장구(大學章句)" '삼강령(三綱領)'의 해석이 송대(宋代) 당시의 시대 논리에 원용되어 공문(孔門)심법 본래의 요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한 주자의 의도적 해석이라고 보아, "대학" '삼강령(三綱領)'에 대한 새로운 주석을 가(加)하였고, 더불어 "중용(中庸)" '윤집궐중(允執厥中)'의 '중(中)' 자(字)의 함의를 '일중론(一中論)'으로 밝히는 등의 새로운 해석을 통하여 공문심법의 본지를 밝히고자 하였다. 또 이러한 새로운 해석의 기저(基底)에 더하여 공자(孔子)가 "주역계사전(周易繫辭傳)"에서 "역경(易經)"의 주요 요지를 뽑아내어서 지었다고 하는 '원상법(原象法)'을 유가의 형이상학(形而上學) 공부의 정수로 삼아 이를 도가(道家)의 용호비결(龍虎秘訣)과 함께 수련 공부의 최종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 제시하여 양자(兩者)의 밀접한 유기성에 주목 하였다. 이와 같은 "대학" '삼강령'의 새로운 해석을 통한 "대학(大學)"의 본지(本旨)규명과 "대학(大學)" "중용(中庸)" "계사전(繫辭傳)" 삼자일관(三者一貫)의 유기성에 대한 심고(審考), 그리고 도가와 유가 양가(兩家)의 원리를 합일시킨 '이교합일(異敎合一)'의 공부론 등은 조선조 청하자(靑霞子) 권극중(權克中)의 '선란호수론(禪丹互修論)' 이래의 일로서 선생이 우리의 사상계에 남겨놓은 새로운 화두라고 할 것이다.

상소(上疏)를 통해 본 조선후기 지식인의 재편 - 이경석·박세당 평가와 관련한 노론계의 상소를 중심으로 - (Memorials to the King and the Intellectual history in the Late Joseon Dynasty)

  • 송혁기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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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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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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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본고는 지식권력과 정치권력이 만나는 장(場)의 하나인 상소를 대상으로 삼아서 특정 정파가 지식 논쟁을 주도하고 지식인 집단을 재편하는 과정을 살피고자 한다. 이를 위한 사례 연구의 대상으로 택한 사안은 이경석과 박세당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노론과 소론의 공방(攻防)이다. 이 사안의 발단은 이경석의 차자(箚子)에 반박하여 올린 송시열의 상소문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후 송시열에 대한 평가로 점차 논란이 확대되어 노론과 소론의 전면적인 대립으로 치달았고, 결국 박세당의 저술인 "사변록"에 대한 본격적인 학술 검열로까지 이어졌다. 본고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노론계 인사들의 상소 행위이고, 그 중에서도 이 사안의 핵심에 놓이는 안동(安東) 김문(金門)의 역할이다. 소론 측의 계속되는 송시열 비판에도 불구하고, 안동 김문은 송시열에 대한 노론계의 요지부동한 지지를 대변하였다. 이 사안의 직접적 계기가 바로 김창흡의 서신이었고, 이후의 상소 과정에서 안동 김문과 그의 문도들이 막후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수행한 사실들을 구체적으로 추적하였다. 이 사안을 중심으로 연이어 올라간 양측의 상소들은 대체로 특정 인물 및 저작에 대한 날선 논평들이 주된 내용을 이룬다. 이 상이한 내용의 상소들은 기존의 정파(政派)가 낳은 결과이기도 했지만 새롭게 진행된 지식인 재편(再編)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상소 행위 자체만이 아니라 상소에 동원된 표현과 논법들 역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노론계에서 올린 일련의 상소문들에서 구사한 표현과 논법들은 주희(朱熹)를 기준으로 삼아 당대의 인물과 저작들을 양단간(兩端間)에 재단(裁斷)해 버리는 것이었다. 소론계 상소들의 다양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이 논법의 칼날은 강력한 정치적 힘을 가지고 당시 지식인들을 재편하였으며, 이로 인해 학술적 판도 역시 새롭게 만들어져 갔다.

대학 내 조경전공 교육과정에 있어 새로운 컴퓨터 미디어 수업의 필요와 개선방향 (The Need and Improvement Direction of New Computer Media Classes in Landscape Architectural Education in University)

  • 나성진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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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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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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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2020년 문명사회의 전반적 생활 방식은 종이와 같은 소모성 아날로그 미디어에서 데이터 공유에 기반한 디지털 미디어로, 유선에 기반한 미디어에서 무선의 언택트 미디어로 뚜렷한 변화를 보인다. 본 연구는 이러한 사회 변화 양상을 바탕으로 조경학과 교육과정에서 컴퓨터 미디어의 교육과 활용이 시대의 변화에 적합하게 운용되고 있는지를 고찰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조경 교육을 위한 새로운 컴퓨터 수업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조경은 도시를 연구 및 설계 대상으로 하는 분야로 사회 변화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를 기반으로 IT 혁명이 시작되고, 인공지능, 빅데이터, 자율주행차, 클라우드 네트워크, 사물인터넷 등 4차 산업혁명의 디지털 인프라가 현대 사회를 기술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데에 반해, 조경 교육이 그러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가시적인 차이를 만들고 있다고 보기에는 분명한 근거가 부족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조경 교육에서 컴퓨터 테크놀로지와 뉴 미디어의 활용 현황을 돌아보고,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교육과정의 대안적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우선 현대 조경 및 건축 전반의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의 동향에 대해 살펴 논의의 근거를 마련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국내외 조경학과 교육과정에서 컴퓨터 미디어 수업의 변화 양상과 현황을 선행 연구와 교과과정을 바탕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국외 조경학과의 경우 1994년의 연구와 2020년의 현황 사이에 컴퓨터 관련 과목의 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그 종류가 다양해진 반면, 국내 조경학과의 경우 일부 교과목이 변경된 것 외에 별다른 변화를 확인할 수 없었다. 이는 국내 조경 교육과정이 디지털 시대의 변화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조경학과가 컴퓨터 미디어와 관련해 지향해야 할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한 여러 실천적 대안을 검토했다.

『세종실록』을 통해 본 고려인삼 (Korean Ginseng in "The Veritable Records of King Sejong")

  • 주승재
    • 인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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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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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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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고려인삼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특산 약용작물로 오래전부터 중국·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교역에서 대표적인 품목이었다. 조선의 인삼 교역은 국가가 전적으로 통제한 공무역이었으므로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의 삼업 역사를 조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역대 실록 중 인삼이 월등히 많이 쓰인 『세종실록』을 통하여 15세기 당시 고려인삼의 교역이 어떤 용도와 규모로 이루어졌는지 알아보고 『세종실록』 지리지에 기재된 당시 인삼의 자생지를 찾아 그 분포를 지도상에 표시해 보았다. 세종 재위 기간(1418~1450) 인삼을 중국에 진헌품으로 보낸 횟수는 101회, 규모는 11,000근(7,060.9kg1))으로 압도적인 교역량을 자랑하며, 일본과 유구국에도 예물 및 답례품으로 보냈으나 명 교역의 3분의 1이 안되었고 기타 외국 사절과 신하에게 하사하거나 유학생의 여비로 쓰이기도 했다. 재위 연도별로 보면, 중기 이후에 점차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채삼량 감소가 주된 원인으로 보인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기재된 당시 고려인삼의 자생지는 공물(土貢) 항목에 기록된 12곳-지금의 경북 영덕군, 영주시, 청송군/경남 울산시 울주군/전북 정읍시, 완주군, 장수군/전남 화순군/황북 곡산군·신평군/평북 정주시 일대, 태천군/자강도 자성군·중강군-과 약재(藥材) 항목에 기록된 산지 101곳 등 총 113개 지역으로, 도서지방을 제외한 조선 8도 전역에 걸쳐있었는데 모두 산을 끼고 분포하고 있었다. 또한, 현재 인삼재배지와 비교해 본 결과, 대체로 자생지와 일치하거나 인접한 지역이었다. 야생삼이 많이 나던 세종 재위 초(1432년)에 편찬된 『세종실록』 지리지의 이와 같은 기록들은 향후 한반도 인삼, 특히 산양삼 재배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온난화로 인하여 인삼 재배지가 점차 북쪽으로 이동하는 이때, 역사 기록에 나타나는 북한의 자생지는 산양삼 재배의 좋은 후보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석전(石田) 황욱(黃旭)의 서예미학(書藝美學) 고찰 (A Study on the aesthetic of Calligraphy by Seok Jeon Hwang Wook)

  • 김도영
    • 문화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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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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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7-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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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호남 서부의 전통적인 문한세가(文翰世家)의 후손인 석전(石田) 황욱(黃旭)(18913~1999)은 근·현대 서화계 흐름에 합류하지 않고 평생토록 선비의 풍모를 잃지 않고 자적지적(自適之適)하면서 오로지 전통서예에 천착하면서 독창적 악필법과 서예세계로 만년에 각광을 받았던 인물이다. 6.25 전쟁 직후 두 아들의 좌익활동으로 인해 가정적으로 큰 아픔을 겪으면서 가산은 탕진되었다. 이처럼 인간사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감내하기 힘든 시기에도 필묵시금(筆墨詩琴)에 의지하며 올곧은 선비정신과 민족애를 잃지 않으며 상고정심(尙古正心)하였다. 그리고 세속적인 감관의 쾌락을 초월한 무기무욕(無己無欲)의 '참된 즐거움(大樂)'속에서 자득하고 소요유(逍遙遊)하였다. 그의 학서과정은 특별한 스승없이 왕희지·구양순·안진경·조맹부와 신위·이삼만 등의 서체를 집중 연마하였다. 특히 환갑 이후에 찾아온 수전증으로 인해 절필의 위기를 맞이하였으나 강인한 의지력을 발휘하여 그 누구도 범접치 못할 웅건강기(雄健剛氣)의 악필법을 개발하는 등 새로운 예품과 예격으로 환골탈태하였다. 1965년~1983년까지는 '우수 악필법'을, 1984년~1993년 시기는 '좌수 악필법'을 사용하였다. 1973년(76세) 첫 개인전인 회혼기념서예전을 통해 서예가로서의 명성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그의 필법은 역대 서법과 인위적인 기교를 초탈하여 천연졸박(天然拙樸)한 본성을 발현하여 생경(生硬)하면서도 근골이 넘친다. 그리고 침저험경(沈着險勁)한 추획사(錐劃沙)와 중후웅건(重厚雄健)한 인인니(印印泥)한 개성적 필의는 기이한 신운을 자아내며 기존 서법을 뛰어 넘는 독창적인 석전체(石田體)를 이루었고, 그의 불굴의 서예정신은 한국서예사에서 독보적 존재로서 여전히 귀감으로 남는다.

연관지식의 효율적인 표현 및 추론이 가능한 지식그래프 기반 지식지도 (Knowledge graph-based knowledge map for efficient expression and inference of associated knowledge)

  • 유기동
    • 지능정보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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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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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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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문제해결을 위해 지식을 활용하는 사용자는 내용 면에서 관련된 또 다른 지식, 즉 연관지식에 대한 교차적이고 순차적인 탐색을 진행한다. 지식지도는 관리하는 지식의 현황을 보여주는 도식이자 지식저장소의 분류체계로서, 지식 간 연관성에 기반한 사용자의 지식 탐색을 지원하는 도구이다. 따라서 지식지도는 지식 간 연관성에 의한 네트워크 형식으로 표현되며, 이를 정의 및 추론하는 데에 최적화된 기술을 접목하여 구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관리하는 개체와 개체 간 관계를 표현 및 추론하는 데에 최적화된 기능성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진 그래프DB를 이용하여 지식그래프 기반 지식지도를 개발하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제시된 방법론의 유효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선행 연구의 온톨로지 기반 지식지도 구축 사례 데이터를 그래프DB에 적용하여 지식그래프 기반 지식지도를 구현하고, 구현된 지식 네트워크의 유효성과 Class 자동 구성 능력을 선행 연구의 결과와 비교하는 성능 테스트를 진행한다. 성능 테스트 결과, 본 연구의 지식그래프 기반 지식지도는 선행 연구의 온톨로지 기반 지식지도와 동일한 수준의 성능을 나타냈으며, 지식 및 지식 간 관계 정의 및 추론을 더욱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는 연관지식에 대한 사용자의 인지과정을 반영한 지식 탐색 기능의 구현에 활용될 수 있으며, 추론에 의한 새로운 연관지식의 발견을 통해 자율적으로 확장되는 지능적 지식베이스의 개발에 응용될 수 있다.

정읍 무성서원과 선비문화 원류 최치원 (Choi Chi-won, the Originator of Jeongeup Museongseowon and Scholar Culture)

  • 안영훈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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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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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3-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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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전라북도 정읍은 한국 사상사에서 주목을 요하는 지역이다. 또한 정읍은 문학사에서 '최초'를 기록한 작품이 많은 지역이다. 백제 노래 <정읍사>가 그렇고 조선시대 사대부 가사 <상춘곡>이 그렇다. 그리고 이 지역 태수를 지낸 최치원(857~?)의 선정과 풍류의 전통이 전해오는 고장이기도 하다. 이 논문에서는 정읍의 무성서원의 성립과정과 선비문화에 있어서 최치원의 연관성을 살펴보았다. 최치원이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고을 사람들이 선정에 보답하는 의미로 태산사라는 생사당을 건립하였고 그것이 근원이 되어 후대에 무성서원으로까지 이어졌다. 최치원은 자신의 포부와 역량을 정읍에서 실현하였다. 특히 조선중기 무성서원의 건립과 사액 과정에 최치원의 역할은 결정적이었기에 최치원은 이 지역의 상징적 인물로 되살아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무성서원을 중심으로 영정의 이안(移安) 작업을 통해서 최치원의 형상도 보다 유학자, 유학적 선비의 모습으로 좌정해나가는 것도 볼 수가 있다. 최치원이 남긴 시문을 통해서도 유학적 선비(지식인)로서 자각을 읽을 수 있다. 그의 시세계가 다양하지만 특히 유학자 지식인으로서 현실에서 오는 시름과 고뇌, 비판적인 내면의식 등을 표출한 작품이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최치원은 남다른 포부와 각고의 노력으로 당대의 우뚝한 문사로서의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는 하였으나, 그 자신 주변국의 한 시인으로서의 지역적, 정신적 소외감을 극복하지 못했다. 따라서 세계인식 면에서의 치열성은 자연히 내면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그의 작품으로 하여금 강한 서정성을 가지게 한 요인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최치원의 문집에는 당대의 말기적 현상에서 초래된 다양한 형태의 병리적 현상을 강한 어조로 비판한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는 가난하고 곤고한 삶을 살아가는 민중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가 하면, 왜곡된 생산관계 속에서 결국 희생되고 마는 가련한 백성들의 삶의 실상을 형상화함으로써 당대의 잘못된 사회의 단면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것은 지식인으로서의 고뇌로 읽을 수 있다. 선비의 사전적 정의가 '학식과 인품을 갖춘 사람에 대한 호칭으로, 특히 유교이념을 구현하는 인격체 또는 신분계층을 가리키는 유교용어'이고, 오늘날 의미로는 '신분적 존재가 아니라 인격의 모범이요, 시대사회의 양심으로서 인간의 도덕성을 개인 내면에서나 사회질서 속에서 확립하는 원천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할 때, 최치원의 문학에서 고뇌하는 모습은 곧 선비(지식인)의 고뇌이고 '선비(士)'로서의 책무를 자각하였기에 나오는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최치원은 가장 이른 시기의 선비(지식인)의 원류라고 보아도 크게 잘못이 없을 것이다.

영화 <이다>에 나타난 의미적 맥락의 시각화 (A The Visualization of Semantic Context in the Film )

  • 김태규;김규남
    •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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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권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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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5-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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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영화 <이다>(Ida, 2013)는 서사와 인물의 심리적 동기를 모호하게 하고, 선형적 시간성을 파괴하며, 다양한 기법을 통해 디지털 이미지의 조작 가능성을 상기시키는 현대의 실험적 영화라 볼 수 있다. 인간의 주체와 자아인식 변화 과정이 사회적 트라우마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다른 국가나 사회의 역사적 맥락을 대비시켜 추론할 수 있다. 영화 <이다>는 화면 밖의 공간, 부재하는 공간, 여백과 프레임 안에 내포된 의미를 중심으로, 보이는 공간의 정보와 화면 밖 공간과의 정보를 나눔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제시되지 않은 정보에 대해서 추론하게 하는 능동적 인지과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시대적 배경을 자세히 기술하지 않으면서도 역사적 의미를 시각화했고, 초월적 존재인 신과 한계적 존재인 인간 사이의 갈등과 고민의 문제를 인간과 인간의 갈등 구조 안에서 표현하고자 했다. 아울러 상실과 부재의 슬픔을 공간적 미학으로 풀어내고자 시도했으며 인물의 대비와 대조,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상황의 전개를 나타냈다. 본고에서는 영화 <이다>가 함축하고 있는 개인(인물)의 이야기와 사회, 역사적 배경과 종교적 영역을 아우르는 해석을 시도하고, 의미적 맥락의 시각화를 다루고자 한다. 또한 정체성과 역사적 사건의 재구성, 종교적 가치를 다룬 영화 <이다>의 시퀀스 장면 분석을 통해 그 의미와 특징을 살펴보고, 영화가 추구한 총체적 의미를 구체적으로 분석할 것이다. 이는 영화 <이다>가 내포하고 있는 트라우마의 재현과 해석 차원으로 개인과 지역, 국가적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문제를 다루었다는 측면에서 한국적 상황에 주는 함의를 고려해 볼 수 있다. 나아가 과하게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인간과 사회적 성장, 고민을 잔잔하게 다루는 모습을 통해 새로운 영상기술과 독창적 시각화 기법의 영화를 창조하려는 흐름에 또 다른 영감을 주는 연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