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Stone cha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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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지역 목관·목곽묘의 전개와 사로국 (Development of Wooden Coffin(木棺) and Chamber(木槨) Tombs in Gyeongju(慶州) and Sarokuk(斯盧國))

  • 이주헌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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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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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6-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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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고는 경주지역에서 발굴된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대까지의 목관묘와 목곽묘에 대한 구조분석과 그 변화양상을 추적하여 사로국의 정치, 사회적인 동향과 성장과정을 살펴본 것이다. 한반도 서남부지역의 적석목관묘(積石木棺墓)가 기원전 2세기 후반 무렵 영남지방으로 파급되면서 경주지역에서도 철기가 부장된 군집묘(群集墓)가 조성되기 시작하며 이후 기원전 1세기 후반에는 한군현(漢郡縣)의 설치에 따라 대동강유역의 유이민이 진한(辰韓)으로 남하, 정착하면서 전한경(前漢鏡)과 와질토기(瓦質土器)가 부장된 중소형의 단순목관묘(單純木棺墓)가 경주지역에 등장하게 된다. 청동유물을 다량 부장한 독립묘(獨立墓)의 주인공은 군집묘보다는 상대적으로 높은 최상위 계층의 것으로 사제왕(司祭王)일 가능성이 높으며 경주의 각 곡간지역을 범위로 하는 지역집단의 수장묘(首長墓)로 추정된다. 기원후 2세기에 접어들면서 단순목관묘는 규모가 확대되고 부장유물의 종류와 양이 풍부해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사라리 130호묘이다. 이것은 피장자의 주관 옆에 부장품을 넣은 목갑(木匣)을 설치하여 칠기(漆器)나 동경(銅鏡) 등의 위신재(威信財)를 부장한 것으로, 이와같은 구조는 평양을 중심으로 한 낙랑지역의 목곽묘에서 보이고 있다. 기존의 목관묘와 구조상에서 차이가 보이는 이러한 목관계목곽묘(木棺系木槨墓)의 출현은 변 진한의 철(鐵)을 매개로 한 낙랑과 이 지역과의 활발한 교섭관계를 대변해 주는 것이며 지리적으로 물류의 집산지 역할을 한 사라리 집단은 외부와의 유통과 교역을 장악하여 경주지역의 정치와 사회문화적인 거점으로서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2세기 후반대 이후 정치체의 규모가 크게 성장한 경주지역의 분묘시설에는 부장유물의 안정적인 공간을 위한 곽(槨)이라는 개념이 정착하게 되었고, 소형묘와 입지상에 있어 차별성을 가진 대형의 장방형목곽묘가 3세기 전엽에 보편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는 지배집단 내 계층분화의 양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되며 대형묘가 소재하는 지역이 소국의 중심지로써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후 이 지역 목곽묘의 평면구조가 점차 길어지는 경향은 묘곽 내에 보다 넓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결국, 3세기 후반대 부곽이라는 시설을 갖춘 경주식목곽묘(慶州式木槨墓: 동혈주부곽식목곽묘)의 등장을 가져온다. 소형의 부곽은 점차 길이가 길어져 4세기대에는 주곽의 크기에 이르는데, 이는 집단 내 계급의 분화가 급속도로 진전되면서 권력의 집중화가 표면화된 것으로 경주와 주변지역 대소집단간의 통합이 진전되는 분위기 속에서 집단 내의 질서를 일원화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나주 정촌 고분군 출토 유리구슬의 화학 조성과 특징 (Compositions and Characteristics on the Glass Beads Excavated from Ancient Tombs of Jeongchon in Naju, Korea)

  • 윤지현;한우림;한민수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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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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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9-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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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는 나주 정촌 고분군 1호 석실묘에서 출토된 유리구슬 편 19점에 대하여 형태적 특성 관찰과 화학 조성 분석을 통해 재질 및 특성을 밝히고, 이를 기초로 나주 복암리 3호분에서 출토된 유리구슬과 비교함으로써 마한 백제권에서 나타나는 고대 유리의 특성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정촌 고분군의 유리구슬은 감청색, 옅은 감청색, 벽색, 녹색, 감청색과 자색의 혼합색 등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늘인 기법과 주조 기법을 사용하여 제작되었다. 복암리 3호분도 청색계 위주로 두 고분군에서는 모두 적색계 유리가 출토되지 않았다. 화학 조성에 따른 분류에서 정촌 고분군과 복암리 고분군에서는 공통적으로 소다유리군과 포타쉬유리군이 확인되었으며, 그 밖에 정촌 고분군에서는 알칼리혼합유리군, 복암리 고분군에서는 납바륨유리군이 확인되었다. 두 고분군의 유리 문화를 살펴보면 나주 정촌 고분군에 비하여 복암리 3호분이 색상별로 다양한 유형의 특성을 지녔다.

석굴암 불상에 나타난 법의 연구 (A Study on the Costumes of stone Buddhist image in the Sokkuram Cave Temple)

  • 김정진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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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권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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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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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Prime Minister Kim tart-song is said to have built this cave temple in the tenth year of the reign of King Kyongdok-wang(742-765) of Unified Shilla(751). The numerous stone Buddhist images in the grotto represent the best Buddhist figure of the Unified Shilla period and of all Korea. The Sokkuram Grotto is composed of the main hall, entrance to the main chamber and antechamber in space. The main hall beyond the small antechamber is round and the ceilling is domed. Within the rotunda sits a majestic Buddha(Amitabha), 3.48m in height and 2.6m in width, carved in granite and facing east. Surrounding the main Seated Buddha are eleven-headed Avalokitesvara Bodhisattva, Manjusri Bodhisattva and the other three Buddhist images, Ten disciples, Buddhist figures in the ten Niches in relief. An eleven-headed Avalokltesvara Bodhisattva of boundless mercy is sculptured on the wall behind the main Seated Buddha. Further guarding the Buddha are ten standing Arhans of the Disciples of Buddha. Next, two Devas. one on each side, stand guard. Two Bodhisattvas are the saints who are next to the Seated Buddha in importance, also one on each side. And, There are ten niches around the dome. They contain seven seated Bodhisattvas and one Vimalakirti(the name of a famous lay disciple of the Buddha). Two niches are empty. Consequently, there are total thirty-eight Buddhist images in the Sokkuram cave temple. The Buddhist images have been reguarded as masterpieces of Buddhist art and Shilla culture of Unified Shilla in the eightth century. The Buddhist images are represented very dear, elegance and beauty of detail sk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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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적 암치리 지석묘를 통해 본 무묘실 지석묘의 성격 (Characteristic features of Dolmens without Burial Chamber Identifiable through those found in Amchi-ri, Gochang-gun)

  • 김선기
    • 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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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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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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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호남지방에는 무묘실 지석묘들이 상당수가 발굴되고 있다. 이들 형식을 대체적으로 위석식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대형의 상석 아래에 드물게 지석을 배치하는 소위 제단이나, 거석기념물적인 성격으로 보는 형태의 것은 무묘실 지석묘로 구분하여 분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무묘실 지석묘는 상석 대형이라는 점과 지석의 수는 4매를 기본으로 하고, 상석이 큰 경우에는 7매의 지석을 고이는 경우도 있다. 지석의 높이는 평균 45cm로 높거나 주형의 형태를 보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고창 암치리에서 제단이나 거석기념물적인 성격으로 볼 수 있는 대형의 상석을 갖고 주변에 6개와 중앙에 1개의 지석을 고인 지석묘가 발굴조사되었다. 조사결과 상석 아래 부석의 상면에서는 부장품적인 성격을 갖는 홍도편 1점, 무문토기 2개체분, 조잡한 형태의 석부 1점이 출토되어 이 지석묘는 묘장적 성격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호남지방에서 이러한 무묘실 지석묘에서 유물이 출토되는 예는 약 $50\%$에 달한다. 그리고 묘실이 있는 경우에도 많은 지석묘에서 유물이 출토되지 않는 예가 있어서 무묘실 지석묘를 묘장적 성격으로 보지 않는 것은 속단이 아닌가 생각된다. 무묘실 지석묘를 묘장적 성격으로 보았을 때 과연 어때한 장법을 사용했는지가 제일 큰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이를 확인할 수 있는 확실한 자료는 거의 없다. 단지 일본 지석묘에서 목관의 사용 예나 우리 지석묘에 있어서 관대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예 등에서 목관의 사용을 추정해 볼 수 있지 않는가 생각된다. 상석 아래의 조잡한 부석시설은 목관을 안장한 위에 흙으로 덮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이 외에 이차장이나 화장법의 사용도 상정해 볼 수 있다. 고창 운곡리 지석묘 상석 아래에서 근대의 옹기 안에 어린이 뼈가 담겨 놓여 있었던 예는 하나의 참고자료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러한 장법에 관한 문제는 어디까지나 추론에 지나지 않으며, 앞으로 많은 자료가 축적되면 다시 검토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하면서 호남지방에서 발견되는 무묘실 지석묘에 대한 몇 가지 문제제기를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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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생산에서 진동 제어를 위한 전자기 에어 스프링 (An Electro-magnetic Air Spring for Vibration Control i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 김형태;김철호;이강원;이규섭;손성완
    • 한국소음진동공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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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권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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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28-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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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정밀 방진에서 전형적인 문제로 고하중으로 인한 저주파 공진 특성이 있다. 전자기 에어 스프징은 진동 제어 장치이자 능동형 방진 장치이다. 이 연구에서 전자기 에어 스프링은 반도체 생산을 위한 저주파 공진을 제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능동형 방진 장치로 기계 및 전가 부분은 2.5톤의 하 중에 작동되도록 설계하였다. 전자기 스프링은 탄성 공압 챔버 내에 공기압을 이용하여 띄우고, 전자기 된 시스템에 의하면 공진 주파수 영역에서 제어 시간 및 최고 피크가 상당히 줄어들었고, 그 결과 피동형 시스템 상의 고유 진동에 의해 발생되는 공진을 피할 수 있음을 보였다.

건축용 외장재와 접착제의 발연특성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of Smoke Release for Architectural Surface Materials and Architectural Adhesives)

  • 박영주;김원종;이해평;유재열;양영숙
    • 한국안전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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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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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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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In this study, we have investigated the maximum smoke density and the initial stage smoke density in order to see the characteristics of smoke release of the architectural surface materials and the architectural adhesives, using smoke density chamber. As a result of the study, polyurethane foam showed the highest smoke density index, 206.55 within 10 min. In the case of the other samples, reinforced styrofoam was followed as 39.90, general styrofoam 33.73, and glass fiber 5.40, respectively. In the intial stage of a fire, it is forecasted actually to give hardship at the clear visibility. In the case of architectural adhesives, the highest ranking was those for windows and doors 509.64, stone 275.63, wood 232.25, tile 18.65, and styrofoam 6.44 were followed, respectively. This result is an early research to show characteristics of smoke release through experiment. However, it is meaningful that this study can be used as a basic for further study on architectural fire hazard prediction.

나주 복암리 고분 출토 금동신발 보존처리 (Conservation of gilted footware excavated from Bokam-ri, Naju Province)

  • 유재은;위광철;류인숙;신의경
    • 보존과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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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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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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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
  • Bokam-ri site was excavated from July 1996 to September 1998 and archaeologically assumed to be grouped with tombs of Mahan period. Among these groups, Tomb No. 3 had built up with stone chamber and found one pair of gilted footware near the jar coffin. This footware was severely corroded and cracked so transfered it gently with soil. Radiography film of this footware showed spike decorations on the bottom and fish-shapped ornament. Gilted footware was consolidated with soil using Paraloid B72 10%~15%solution and cleaned using small tools and microscope. SV427 and HV427 as epoxy resin and Araldite(rapid type) used for joining and restoring. The fore part of gilted footware was connected with nails and folded “L” shape to introduce the bottom material. Tortoise-shell design and flower ornaments appeared on the surface and fish-shaped ornaments, spikes and spangles on the bottom. It was found that 7 spikes and 5 fish-shaped ornaments remained well. Especially, Fish-shaped ornaments were firstly found in the gilted footware and appraised archaeologically important materi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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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수당리유적 출토 철제유물의 금속학적 연구 (Metallurgical Study on the Iron Artifacts Excavated from Sudang-ri Site in Geumsan)

  • 박형호;조남철;이훈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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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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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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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금산 수당리유적은 5세기 백제세력이 금산 진안을 통해 가야로 연결되는 내륙교통로를 장악하여 가야 세력과 교류를 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이다. 출토된 철제대도와 철부, 철겸 등에 대한 금속학적 미세조직 분석을 실시하여 수당리유적에 대한 철기 제작기술을 확인하였으며 비슷한 시기 제작된 철제유물과 비교하여 5세기 전 후의 백제시대 철기 제작기술에 대한 특징과 기술체계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금산 수당리유적에서 출토된 철제유물은 다양한 제작방법이 적용된 것으로 파악되며 제작방법은 단순히 성형만 이루어진 것과 성형 후 제강공정이 이루어진 것, 성형 후 제강공정과 열처리가 함께 이루어진 것으로 크게 세 가지 방법으로 나누어진다. 성형만 실시한 1호 석실분 철겸의 경우 인부와 배부 모두 연한 페라이트 조직이 주를 이루고 있어 무기로서 가지는 실용적 기능이 떨어져 피장자의 부장 의장용으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형을 실시하고 침탄과 같은 제강공정을 실시한 1호 석곽묘의 철부, 12호 석곽묘의 철겸은 담금질과 같은 열처리는 생략하였지만 부위에 따른 제작 공정의 변화를 주게 되어 단순히 부장 의장용이 아닌 농경과 같이 실생활에서 사용할 목적을 가지고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성형을 실시하고 침탄, 열처리로 이어지는 제작방법은 5호, 12호 석곽묘 철제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열처리로 인하여 강해진 인부조직과 강하면서도 부러지지 않는 배부의 조직은 제작 과정에서부터 무기가 가지는 목적에 맞게 제작되어 피장자가 직접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금산 수당리 출토 철제유물의 분석결과를 토대로 비슷한 시기 백제권역에 조성된 고분군들 가운데 철제유물의 금속학적 미세조직 연구가 이루어진 천안 용원리유적, 서천 봉선리유적, 서산 부장리유적과 비교하여 철기 제작기술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분석을 실시한 철제유물의 수가 많지 않아 공통적으로 출토된 철제대도(목병대도)를 통하여 기술변화과정을 살펴본 결과 철제대도(목병대도)는 4세기 이후 담금질이라는 열처리기술이 적용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종대(1418~1450) 성주 세종대왕자(世宗大王子) 태실(胎室) 출토 <분청사기 상감연판문 반구형뚜껑>의 제작 특징과 제작지 고찰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and the Kiln Site of Production of the Buncheong Ware Excavated from the Placenta Chamber (Taesil) in Seongju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ng (1418-1450) in the Joseon Dynasty)

  • 안세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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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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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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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세종의 대군·군과 세손을 포함하여 총 19기 태실이 모여 있는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은 여러 태실이 한 공간에 조성된 유일한 사례이자, 태를 봉안·보호하는 장태용 그릇의 구성과 조형 역시 다른 곳과 구별되어 주목받아왔다. 본 글은 성주 태실에서 출토된 장태용 그릇 중 하나인 <분청사기 상감연판문 반구형뚜껑>에 집중하여 제작의 특징을 구명하고 제작지 고찰에 초점을 맞추었다. 연구 대상은 태주가 확인된 6점에 한정하였다. 성주 태실은 세종 연간 왕실의 장태와 태실 조성에 관한 다양한 논의와 행사가 가장 성행한 1436~1439년에 계획되고 세워졌을 것이다. 태를 담은 항아리를 덮어 보호하는 목적으로 태와 함께 장태 된 이 분청사기 뚜껑은 장태에 필요한 여러 잡물 가운데 중앙 관청에 분정된 잡물의 용도와 일치하며, 장흥고에서 장태 행렬 이전에 마련하여 조달한 품목으로 유추된다. 뚜껑의 크기·형태·장식 등의 조형적 특징은 15~16세기 왕실용 태항아리 뚜껑과 공통되는 부분이 있고, 『세종실록』 「오례」에 수록된 길례용 제기 및 가례용·빈례용 준작 기물과 친연성이 높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뚜껑의 꼭지를 에워싸고 있는 태토빚음의 번조받침 흔적은 15세기 후반~16세기 전반 왕실용 태항아리 뚜껑에 남아 있는 흔적과 상통한다. 덧붙여 번조받침 흔적의 형태와 위치를 통해 이 분청사기 뚜껑은 꼭지를 아래로 향하게 한 후 받침 도구와 갑발 등을 이용하여 번조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상의 분석과 『세종실록』 「지리지」에 등재된 자기소 내용, 15세기 전반 자기의 진헌·공납 관련 기록, 현재까지 조사된 분청사기 가마터 출토 유물 등의 정보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였을 때 이 분청사기 뚜껑을 제작한 곳은 현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분청사기 가마터가 가장 유력할 것으로 사료된다.

공주 송산리 고분군(公州 宋山里 古墳群)에서의 물리탐사와 무령왕릉(武寧王陵)의 구조분석 (Geophysical Exploration of Songsalli Ancient Tombs and Analysis of King Muryeong's Tomb Structure, Gongju)

  • 오현덕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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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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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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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공주 송산리 고분군(公州 宋山里 古墳群)은 7기의 무덤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7호분인 무령왕릉(武寧王陵)은 1971년에 5호분과 6호분의 배수로 공사 중 발견된 전축분이다. 당시 발굴조사는 무덤의 입구와 현실 내부의 측량조사, 유물수습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봉토부 조사에서 호석의 일부 잔존상황과 석회혼합토층을 확인하였으나 봉토를 더 깊이 제거하여 전축분의 외형구조까지는 조사하지 않았다. 발굴조사 후 6호분과 7호분에서 벽돌 손상, 습기와 곰팡이로 인한 벽화 손상이 발견되었다. 그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공주대학교가 1996년부터 1997년까지 물리탐사를 포함하여 송산리 고분군에 대한 종합 정밀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1999년에 보수공사가 이루어지고 문화재보존을 목적으로 5, 6, 7호분은 영구 보존 조치되어 현재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번 연구의 목적은 송산리 고분군 5, 6, 7호분의 지표 위에서 3차원 전기비저항 탐사, GPR 탐사를 실시하여 보수공사 이후의 지하의 상태를 파악하고 무령왕릉의 내부에서 GPR 탐사를 실시하여 전축분의 벽체의 두께와 외형적 구조를 파악하는 데 있다. 지표에서의 탐사결과, 3기의 고분 주변의 토양은 $5{\sim}90{\Omega}m$ 의 낮은 전기비저항 값을 나타내고 있어 토양이 갖는 함수율이 보수공사 이전처럼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GPR 탐사결과, 무령왕릉 현실의 벽체 축조방식은 약 35cm 길이의 벽전을 길이방향으로 두 장 잇댄(2B 벽돌쌓기) 약 70cm 두께임을 알 수 있었다. 반면 연도부는 약 80cm 두께로 측정되어 현실의 벽체와 같은 두 겹 구조에 눈썹아치가 복합된 구조로 추정된다. 그리고 천장의 외형은 내부의 모양과 같은 아치 구조임을 탐사결과를 통하여 추정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