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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and the Kiln Site of Production of the Buncheong Ware Excavated from the Placenta Chamber (Taesil) in Seongju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ng (1418-1450) in the Joseon Dynasty

세종대(1418~1450) 성주 세종대왕자(世宗大王子) 태실(胎室) 출토 <분청사기 상감연판문 반구형뚜껑>의 제작 특징과 제작지 고찰

  • AHN, Sejin (Dept. of Archeology and Art History, Korea University)
  • 안세진 (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 Received : 2021.09.23
  • Accepted : 2021.11.02
  • Published : 2021.12.30

Abstract

In Seongju, Gyengsangbuk-do, the Placenta Chamber (胎室, Taesil) of 18 sons and a son of the crown prince of King Sejong(世宗大王) is located in one place. Taesil refers to the place where the umbilical cord and placenta, which are separated when the baby is born, are placed in a jar made of pottery and stone box and then buried on the ground. The placenta chamber in Seongju has the Buncheong ware (粉靑沙器) cover buried on the ground to protect the baby's placenta. These covers are all hemispherical, with a diameter of more the 20cm. The decorations were made using black and white inlaid techniques only on the outside. The Buncheong ware cover with this shape and pattern has been confirmed only in the placenta chamber in Seongju. This study targets 6 of the Buncheong ware cover whose owners were identified, when and where they were prepared, what the stylistic features and meanings are, and where it was produced. The results of the study are as follows. First, ss a result of reviewing the production background and procurement system of this bowl, it was inferred that it was sourced from Jangheunggo (長興庫) at the central government office, between 1436 and 1439, when the event to bury the placenta of royal members in the ground was the most active. Second, it analyzed the unique features of this cover, such as the shape, pattern, and baked traces. The shape and pattern were compared to the ritual objects contained in the Sejong Silok Oryeui (『世宗實錄』 「五禮」, Five Rites of King Sejong Chronicle) and the lid of the royal placenta jar made in the 15th and 16th centuries. Third, this study suggests that the baking method was based on the shape and location of the traces remaining outside the cover. Finally, the following data were used to estimate the production site: the relationship with the 'Jagiso (磁器所, ceramic workshop) registered in the Sejong Silok Jiriji (『世宗實錄』 「地理志」, Geographical Appendix of King Sejong Chronicle); various records of contribution and dedication about the Buncheong ware made here; and the Buncheong ware and related tools excavated from the kiln site in the area. The place where the Buncheong ware cover was produced is estimated to be the most likely production site for the kiln site in Chunghyo-dong Kiln Site, located in Jeolla-do province by synthesizing the data above.

세종의 대군·군과 세손을 포함하여 총 19기 태실이 모여 있는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은 여러 태실이 한 공간에 조성된 유일한 사례이자, 태를 봉안·보호하는 장태용 그릇의 구성과 조형 역시 다른 곳과 구별되어 주목받아왔다. 본 글은 성주 태실에서 출토된 장태용 그릇 중 하나인 <분청사기 상감연판문 반구형뚜껑>에 집중하여 제작의 특징을 구명하고 제작지 고찰에 초점을 맞추었다. 연구 대상은 태주가 확인된 6점에 한정하였다. 성주 태실은 세종 연간 왕실의 장태와 태실 조성에 관한 다양한 논의와 행사가 가장 성행한 1436~1439년에 계획되고 세워졌을 것이다. 태를 담은 항아리를 덮어 보호하는 목적으로 태와 함께 장태 된 이 분청사기 뚜껑은 장태에 필요한 여러 잡물 가운데 중앙 관청에 분정된 잡물의 용도와 일치하며, 장흥고에서 장태 행렬 이전에 마련하여 조달한 품목으로 유추된다. 뚜껑의 크기·형태·장식 등의 조형적 특징은 15~16세기 왕실용 태항아리 뚜껑과 공통되는 부분이 있고, 『세종실록』 「오례」에 수록된 길례용 제기 및 가례용·빈례용 준작 기물과 친연성이 높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뚜껑의 꼭지를 에워싸고 있는 태토빚음의 번조받침 흔적은 15세기 후반~16세기 전반 왕실용 태항아리 뚜껑에 남아 있는 흔적과 상통한다. 덧붙여 번조받침 흔적의 형태와 위치를 통해 이 분청사기 뚜껑은 꼭지를 아래로 향하게 한 후 받침 도구와 갑발 등을 이용하여 번조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상의 분석과 『세종실록』 「지리지」에 등재된 자기소 내용, 15세기 전반 자기의 진헌·공납 관련 기록, 현재까지 조사된 분청사기 가마터 출토 유물 등의 정보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였을 때 이 분청사기 뚜껑을 제작한 곳은 현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분청사기 가마터가 가장 유력할 것으로 사료된다.

Keywords

Acknowledgement

본 글은 2021년 6월 26~28일 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와 동아시아고고학회(SEAA: Society for East Asian Archaeology)가 개최한 'SEAA 2021 Online Student Conference'에서 발표한 내용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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