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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학이불사장(學而不思章)' 고석(考釋) - 특히 수양방법을 중심으로 - (Interpretation of 'Hakyibulsajang (學而不思章)' on Analects of Confucius)

  • 김영호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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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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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9-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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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공자는 "논어" '학사장(學思章)'에서 '학'과 '사' 둘 모두를 강조하였으니 양자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둘 사이의 경중을 따진다면 '사'보다는 '학'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공자는 "논어"에서 주로 3단계를 말하고 있다. 즉 '학사장'에서 공자는 표면적으로 2단계를 말하였으나 실제로는 3단계로서 구성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3단계는 과연 무엇일까? 이는 공자사상의 핵심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지극히 중요한 문제이다. 공자사상의 궁극적인 목표는 일찍이 정이천이 강조한 바와 같이 '배워서 성인에 이르는 것'이니 이상적인 인간상으로서의 성인이다. 본 논문은 그 성인이 되기 위한 공자의 수양방법으로서의 '학사합일(學思合一)' 3단계와 그 이중 구조까지 고찰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성인의 특성을 한마디로 말하면 '통(通)'이다. 즉 배우고 생각하여 통하는 것이니 이는 학- 사- 통의 3단계인 것이다. 또한 이 단계는 그 자체로서도 한 과정이지만(知) 더 나아가 행의 실천을 통해서만(行) 진정한 완성(이중 구조)임을 강조하였다. 결국 공자의 수양방법은 경전을 배우고(學) 이를 기초로 생각하며(思) 더 나아가 이 모두를 통한 바탕으로(通) 행이란 실천을 통해서(行)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지(학- 사- 통)- 행의 3단계, 이중구조인 것이다.

한국 금석학(金石學)의 성취에 대한 재평가 - 박선수(朴瑄壽)의 금석학을 중심으로 - (A Revaluation of the Korean Epigraphy's Achievement-Focused on Park Seon-su's Epigraphy)

  • 문준혜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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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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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61-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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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고는 금석학의 관점에서 박선수의 "설문해자익징(說文解字翼徵)"을 소개하고, 그것을 한국 금석학의 연구 성과에 포함시키려는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한국의 금석학은 19세기 초 추사 김정희(金正喜)에 의해 하나의 학문 분야로 발전되었다. 이 때문에 한국의 금석학은 대체로 김정희를 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로 시기를 구분한 뒤, 중요한 저작이나 연구자를 소개하는 형식으로 기술되었다. 기존의 연구를 종합해보면, 한국의 금석학은 금석문을 수집하고 한 데 묶어 편찬한 자료집 성격의 서적이 금석문을 해독하고 고증한 연구서 성격의 서적보다 많다는 특징이 있다. 또 저자의 국적에 관계없이 한국의 금석문을 수록한 책은 모두 한국 금석학의 범위에 포함시켰고, 종교적 이유로 편찬된 책도 금석문을 수록하고 있다면 금석학의 범위에서 제외하지 않았다. 이는 한국 금석학의 범위가 매우 넓게 설정되었음을 알려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 후기에 금석학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던 박선수의 연구 성과가 누락된 것은 "설문해자익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박선수의 "설문해자익징"은 금석문을 이용하여 "설문해자"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려는 목적으로 편찬된 문자학 저작이다. 박선수는 금석문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이를 문자 연구에 활용하는 방법론을 개척했으며, 금석문을 분석하고 해독하는 등의 금석학적 연구를 수행하였다. 따라서 박선수의 "설문해자익징"은 한국 금석학의 연구 성과에 포함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잘 알려지지 않은 연구자와 연구 성과를 발굴하여 한국 금석학의 성취에 대한 새로운 기술과 평가가 필요하다.

진암(眞庵) 이병헌(李炳憲)의 「경설(經說)」에 나타난 종교적 성향 (A Study on Religious Tendency shown in 「Gyeongseol」 by Jinam Lee Byeong-hun)

  • 이상하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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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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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5-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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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이병헌은 27세 때부터 면우 곽종석을 스승으로 섬겨 한주학(寒洲學)과 접한다. 한주학파는 당시로서는 개방적인 성향을 보였다는 점에서 이병헌의 사상 형성에 일정한 영향을 끼쳤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병헌은 중국 강유위(康有爲)의 금문경학(今文經學)을 받아들이고 공자교(孔子敎) 운동을 전개하면서 성리학을 오히려 배척하였다. 서구문물을 접하고 강유위의 사상을 받아들인 뒤로 이병헌의 저술에서 한주학은 찾아볼 수 없다. 이병헌이 금문경학을 연구하게 된 것은 천(天), 상제(上帝) 대신 리(理)를 내세움으로써 유교를 철학으로 만든 성리학(性理學)을 떠나야 유교에 종교성을 다시 살려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공자를 교조로 추숭하고, 지금까지 성리학에서 중시하던 리(理), 경(敬)과 같은 개념을 버리고 "중용"의 성(誠)과 신(神)을 매우 중시하였다. 그리고 그 자신이 유교를 종교화하여 기도, 염송(念誦)과 같은 종교생활을 실천하였다. 그가 "중용"의 대효(大孝)를 하늘의 효자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그는 유교를 종교로 만들기 위해 공자를 유일한 교조로 삼고 상제를 신으로 받들었다. 그가 요(堯) 순(舜) 우(禹) 탕(湯) 문(文) 무(武) 주공(周公) 등 전통 유가의 성인들을 젖혀두고 공자만을 교조로 추숭한 것은 불교, 기독교 등 의 종교에 교주가 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다. 그가 말하는 상제(上帝)는 기독교의 하느님과 통하는 것이었고, 나아가서 그는 유교 사상과 배치되는 불교의 윤회를 긍정하기도 하였다. 이병헌의 "경설(經說)"을 읽어보면, 유학이 망해가는 시대에 유학이 생존할 길을 찾기 위해 유학의 종교화를 선택한 것보다 유학이 종교라는 신념이 그의 내면에 더 먼저 자리했던 것 같다.

九天上帝與明明上帝: 當代新興宗教「上帝」信仰之研究 (The Upper Thearch of the Nine Heavens (Jiutian shangdi 九天上帝) and The Upper Thearch of Manifest Luminosity (Mingming shangdi 明明上帝) : Research on "Upper Thearch" Beliefs in Contemporary Emergent Religions)

  • 林榮澤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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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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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7-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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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本論文的探討, 主要集中在韓國大巡真理會的最高神「九天上帝」與臺灣一貫道的萬靈真宰「明明上帝」, 二者皆為當代很具代表性的新興「上帝」信仰, 試著就其信仰的淵源, 特色及關聯性作比較研究。根據的文獻有中國古籍及道教典籍, 大巡真理會的《典經》及一貫道的《一貫道藏》等文獻, 借此以了解大巡及一貫道宇宙觀思想的特色。例如, 九天上帝因不忍看到世間愈來愈混亂, 為了讓世間變好, 走向神人調化的世界, 所以下凡來大巡世間教化世人。最終來到了韓國, 降生在甄山客望里, 展開教化世人, 解冤相生, 陰陽合德, 神人調化, 達於道通真境的理想實現。一貫道則說人的來源是在「理天」, 人是由明明上帝所創造的「原胎佛子」, 來世間為了治理世間, 接受鍛煉, 最終是要回到理天的故家鄉。但由於迷戀紅塵, 忘了回鄉之路, 所以上帝派了彌勒佛, 濟公活佛及月慧菩薩, 降生在世間教化世人, 使能認母歸根, 達本返原, 回到理天老母的家鄉。大巡會與一貫道都將萬靈真宰的最高神簡稱為「上帝」。這又與西方聖經中的上帝, 具有某些聯結性, 但又有其差異性。探究其淵源, 九天上帝與明明上帝, 似乎又與形成於殷商時期, 中國古代的上帝信仰有關。這些都是很有趣的問題, 值得作更深入的比較探究。

《典經》中的道術思想來源與轉化運用研究 (The Study of the Origin and Transformation of the Arts of the Dao in The Canonical Scripture)

  • 謝聰輝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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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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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7-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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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本文以〈《典經》中的道術思想來源與轉化運用研究〉為題, 主要採取溯源與比較的方法, 希望能較清楚梳理大巡真理會關於道術部分核心的思想淵源, 與其經實踐工夫轉變運用的巧妙智慧。除前言與結語兩節外, 第二節〈運度定數 : 《典經》天地公事與道教開劫度人比較〉中, 析論會造成否劫的原因, 除了歸諸於自古以來神明與人類的冤結怨深有關之外, 主要跟中國自古自然曆數週期的運行思想有關。而在調整度數的天地公事上, 姜聖上帝是主控且親力親為, 信徒只是配合的輔助角色 ; 道教則更強調經典的神聖經德功能, 以及需要負責的高真集體參與運作, 而不是至高神元始天尊一人所能獨為。第三節 〈道術儀式的來源與運用特質〉分析上, 除探究了五方將, 二十四將, 二十八將與四十八將的來源意涵外, 也論證了《典經》 中一部分道術經咒與道教神霄雷法的關係, 最後則提出了其中的遁甲步罡儀式與六壬式盤占卜操作有關的看法。

비파괴 기술을 활용한 여주 신륵사 대장각기비의 표면오염물 분석과 물성진단 (Analysis of Surface Contaminants and Physical Properties of the Daejanggakgibi Stele of Silleuksa Temple using Non-destructive Technology)

  • 김지영;이명성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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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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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6-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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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여주 신륵사 대장각기비는 불경을 만들어 보관하던 곳인 대장각의 조성에 관한 기록이 적힌 고려시대의 비석이다. 비신은 변색이 일어나고 수십 개의 균열이 발생하였으며 부분적으로 결실되어 명문이 일부 훼손된 상태로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다. 석조유산에 적용할 수 있는 비파괴분석법을 활용하여 대장각기비의 재질조사, 휴대용 X-선 형광분석, 초음파 물성진단을 실시하였다. 재질조사 결과, 비신은 담회색 결정질 석회암으로, 받침석, 지지석, 옥개석은 중조립질 흑운모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대장각기비의 변색오염물은 휴대용 X-선 형광분석 결과 철(Fe)이 원인물질로 판단되었다. 분포양상으로 미루어 비신과 개석 사이에 철을 함유한 물질이 산화되어 흘러내리고 이후 생물이나 유기질 오염물이 부착되면서 황색과 흑색 오염물을 형성한 것으로 해석된다. 초음파 물성진단 결과, 신선한 암석(FR)부터 완전히 풍화된 암석(CW)까지 다양한 풍화도를 보였고 평균 풍화도지수는 3등급(보통)으로 산출되었다. 균열이 집중적으로 나타난 지점은 완전히 풍화된 단계(CW)로 판정되었고, 비신 상부와 하부에 분포하는 일부 균열은 위험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균열에 대해서는 향후 거동 모니터링과 보강대책 수립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사천 선진리비석 측천문자의 명문 재해석 - 측천문자의 한반도 전래 및 수용 문제에 대해 - (A Reinterpretation of Sacheon Seonjin-ri Stone Monument's Chinese Characters of Empress Wu(則天文字) - On the Issue of the Introduction and Acceptance of Chinese Characters of Empress Wu to the Korean Peninsula -)

  • 신동성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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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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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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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2003년 경상남도 사천시 선진리 251번지 및 256-1번지에서 측천문자가 새겨진 신라시대 비문이 발견된 이후, 경남문화재연구원과 곽승훈, 김창겸 등 국내연구자들이 비문에 대한 해석을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비문에 등장하는 측천문자의 기원과 이두식 표현의 해석 대해서는 이설이 존재한다. 본 연구에서는 이 비석이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중반에 신라 임금이 진주·사천 일대에서 순시 및 불교 활동에 참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비문의 주인공은 남부 지방을 순시한 적 있는 성덕왕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하였다. 또한 인명으로 해석되어 온 "상요언(上了言)"의 경우 료(了)와 같은 조사가 인명에 사용되지 않는 원칙을 고려할 경우, 인명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동사와 조사로 구성된 이두식 표기로 해석하야 한다고 본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같은 종교서적은 아니지만, 측천문자가 사용된 이유는 화엄종 사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신라 왕실이 측천무후 시대의 불경을 접하게 된 것이 화엄종의 발흥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측천문자를 익히고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르헨티나 보수 개신교의 정치 참여와 민주주의 (Political Participation of Conservative Protestant Churches and Democracy in Argentine)

  • 김항섭
    • 이베로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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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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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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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아르헨티나 보수 개신교의 정치 참여를 다루는 이 글은 이러한 정치 참여가 민주주의적 가치나 질서에 미치는 영향에 살펴보고자 했다. 특히 종교적 평등과 자유, 그리고 동성 결혼과 성 교육 문제를 둘러싼, 오순절을 포함한 보수 개신교계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췄다. 먼저 식민지 시대와 군사정권의 종교차별적인 정책을 바로잡아 모든 종교의 동등한 대우를 주장했던 개신교 측의 요구는 정치적 평등과 인권 존중을 골자로 하는 민주적인 사회를 전제한다면 지극히 당연하고 자명한 것이고, 아르헨티나 사회의 묵은 과제의 해결을 지향한 것으로 사회의 민주화에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성 결혼과 성교육 문제와 관련해 보면 사뭇 다르다.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상황이나 이들의 권익을 옹호하려는 입법 취지에 고려 없이, 개신교 내부에서조차 그 해석을 둘러싸고 이견을 보이는, 경전의 가르침이나 그에 기반을 둔 윤리만을 고집한다. 이러한 신정주의적 관점과 배타주의적 태도는 무엇보다도 다른 종교나 생각을 가진 사람들, 결혼이나 성에 대한 다른 선택을 하거나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인권이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어, 다원성에 기반을 둔 민주적 질서와 가치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연재 송병선의 놀이방식과 의의 - 그의 유기를 바탕으로 - (The Play Method and Significance of Song Byung-seon(宋秉璿) - Based on His Travel Essay(遊記) -)

  • 유영봉
    •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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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권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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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5-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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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9세손이다. 생전에 유림(儒林)의 신임을 얻었고 여러 차례 조정에서 불렀으나 공직을 거부하고 재야에서 정진하고 후학 교육에 평생을 바쳤다.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연재는 고종에게 을사조약의 폐지를 간청하였고 그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자 선비의 양심으로 회덕(懷德)에 있는 고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연재는 사림(士林)의 지도자로서의 의무를 다하면서 국권 회복에 대한 메시지를 왕과 백성, 유림에게 남기고 왕에게 최후의 호소를 보낸 것이다. 이후 1962년 연재는 건국훈장을 받았다. 송병선의 여행은 일생에 걸쳐 이루어졌다. 22개의 길고 짧은 여행기가 남아있다. 소풍은 주로 육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대부분이 말이나 노새를 탔고 때때로 수레나 가마를 사용했다 또한 그는 때때로 수로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일부 여행기에는 내륙 수로와 해로를 이용한 기록이 있으며 조상 유물을 찾아가는 여정의 기록도 있다. 이 과정에서 가문의 계승이라는 사명을 재확인하고 선조들의 찬란한 위업의 일부가 되겠다는 의지도 확인된다. 또한 견학에는 경전 낭독과 성리학 토론이 추가되었으며 그의 여행은 성리학의 세계관을 널리 알리고 확장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그리하여 연재는 선조들이 남긴 존왕양이(尊王攘夷)의 정신을 이어받아 마침내 위정척사(衛正斥邪)의 기치를 높이 올렸다. 그리고 그는 과감하게 나라를 위해 죽음의 길을 떠났다.

중용 수양과 교육 동의적 관계 탐색 (Exploring Consensual Relationships between Discipline and Education shown in "Jungyong")

  • 여상운
    • 국제교류와 융합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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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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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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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유교에서 교육 또한 가르치고 변화시키는 의미가 있으나, 『중용』 1장에서의 교(敎)의 의미는 매우 간명하고 함축적이다. 『중용』 1장에는 천명(天命)을 성(性)이라고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이 도(道)라고 하며, 이 도를 닦는 것을 교(敎)라고 하였다. 요약하면, 천명을 따르도록 닦는 것이 바로 교(敎)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중용』 1장에서의 교(敎)의 의미는 바로 수(修)와 일맥상통한다. 여기서 교(敎)의 의미는 소위 『천자문(千字文)』이나 『논어』와 같은 경전을 가르친다든지 지식 전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이치와 사람의 도리 등을 깨치고 수양하는 의미이다. 수양은 자기 변화를 말한다. 교(敎)의 내면적 확충이 바로 수양이 되는 것이며, 타인에 대한 수양의 가르침이 바로 교육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최소한 『중용』 1장에서는 수양과 교육은 동의어이다. 나에게 향하면 수양이 되는 것이고, 타인에게 향하면 교육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교육이 전정한 의미에 대한 재고의 여지 때문이다. 오늘날 교육에 대한 보편적 정의는 지식이나 기술의 전달이다. 그러나 『중용』에서는 다른 사람이 수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육이라고 하였다. 지식이나 기술 전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천명을 스스로 깨닫도록 도와주어서 누구나 깨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교육의 본연의 역할임을 강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