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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loring Consensual Relationships between Discipline and Education shown in "Jungyong"

중용 수양과 교육 동의적 관계 탐색

  • Received : 2022.05.03
  • Accepted : 2022.06.03
  • Published : 2022.06.30

Abstract

In Confucianism, education is also meaningful in teaching and changing, but the meaning of education in Chapter 1 of "Jungyong" is very concise and implicit. In Chapter 1 of "Jungyong", "Cheonmyeong(天命)" is called "Sung(性)", and it is called "Do(道)" to follow "Sung", and it is called "Gyo(敎)" to cultivate this "Do". In short, it is education(Gyo) that is practiced to follow the "Mandate of Heaven(Cheonmyeong)". Therefore, the meaning of education in Chapter 1 of "Jungyong" is in line with "Su(修)". Here, the meaning of education does not mean knowledge transfer or teaching scriptures such as the so-called "Cheonja" or "Analects". It means enlightening and cultivating the principles of the world. Discipline is self-change. The inner expansion of an education is to be cultivated, and the teaching of cultivation to others is to be an education. As such, at least in Chapter 1 of "Jungyong", discipline and education are synonymous. If one goes to oneself, it becomes a discipline, and if one goes to others, it becomes an education. The reason why this is important is that we can reconsider the true meaning of education. The universal definition of education today is the transfer of knowledge or skills. However, in "Jungyong", it was said that education is to help others cultivate them. It is not important to convey knowledge or skills, but to help them realize their own "Mandate of Heaven(Cheonmyeong)" so that anyone can wake up and live happily.

유교에서 교육 또한 가르치고 변화시키는 의미가 있으나, 『중용』 1장에서의 교(敎)의 의미는 매우 간명하고 함축적이다. 『중용』 1장에는 천명(天命)을 성(性)이라고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이 도(道)라고 하며, 이 도를 닦는 것을 교(敎)라고 하였다. 요약하면, 천명을 따르도록 닦는 것이 바로 교(敎)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중용』 1장에서의 교(敎)의 의미는 바로 수(修)와 일맥상통한다. 여기서 교(敎)의 의미는 소위 『천자문(千字文)』이나 『논어』와 같은 경전을 가르친다든지 지식 전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이치와 사람의 도리 등을 깨치고 수양하는 의미이다. 수양은 자기 변화를 말한다. 교(敎)의 내면적 확충이 바로 수양이 되는 것이며, 타인에 대한 수양의 가르침이 바로 교육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최소한 『중용』 1장에서는 수양과 교육은 동의어이다. 나에게 향하면 수양이 되는 것이고, 타인에게 향하면 교육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교육이 전정한 의미에 대한 재고의 여지 때문이다. 오늘날 교육에 대한 보편적 정의는 지식이나 기술의 전달이다. 그러나 『중용』에서는 다른 사람이 수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육이라고 하였다. 지식이나 기술 전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천명을 스스로 깨닫도록 도와주어서 누구나 깨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교육의 본연의 역할임을 강조하였다.

Key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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