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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업생산(林業生産)이 국민소득(國民所得)에 미치는 영향(影響) (The Effect of Forest Production on National Income)

  • 이승윤
    • 한국산림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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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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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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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9
  • 우리나라의 산림면적(山林面積)은 국토(國土)의 약(約)68%를 차지하고 있으나 그의 생산(生產)은 미미(微微)하여 국민총생산액(國民總生產額)에 대(對)하여 약(約)2%, 제(第)1차산업생산(次產業生產)에서 차지하는 비중(比重) 또한 5%정도(程度)에 불과(不過)하다. 그러나 이는 임업생산중(林業生產中) 직접소득(直接所得)만을 가지고 말한 것이며 임산물(林產物)의 대부분(大部分)은 원재료(原材料)로서 타(他) 관련산업(關聯產業)에 이용(利用)됨으로써 그의 우회적(迂回的) 생산과정(生產過程)을 통(通)해 얻어지는 부가가치(附加價値) 즉(卽) 간접소득(間接所得)이 더욱 중요(重要)하다. 그러나 이때까지 임업생산(林業生產)을 논(論)할때에는 목재생산(木材生產) 즉(卽) 직접생산(直接生產)만 가지고 논급(論及)하였지 이 간접생산(間接生產)에 대(對)하여는 하등(何等) 계산(計算)된 바 없다. 그러므로 한국은행(韓國銀行)에서 조사발표(調査發表)된 1963년도(年度)와 1966년도(年度) 양년분(兩年分)의 산업연관표(產業聯關表)를 가지고 물재구입율법(物財購入率法)을 써서 임업(林業)의 간접소득(間接所得)을 계산(計算)해 보았다. 그결과(結果) 직접소득(直接所得)은 1963년도(年度)가 14,361백만(百萬)원, 1966년도(年度)에는 17,709백만(百萬)원이던 것이, 간접소득(間接所得)은 1963년도(年度)가 42,688백만(百萬)원, 1966년도(年度)는 74,790백만(百萬)원으로서 임업소득합계(林業所得合計)는 1963년도(年度)가 57,049백만(百萬)원 1966년도(年度)는 92,499만(百萬)원이 된다. 따라서 국민총생산액중(國民總生產額中) 임업소득(林業所得)이 차지하는 비율(比率)은 1963년도(年度)가 8.23%, 1966년도(年度)에는 10.12%라는 고율(高率)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勿論) 여기에는 한수해방지(旱水害防止) 토사유출방지(土砂流出防止)등(等) 국토보전(國土保全)과 풍치(豊致)등(等) 소위(所謂) 산림(山林)의 간접적효용(間接的効用)이 주는 무형적(無形的) 소극(所得)은 계산(計算)에 넣지 않었다. 이와 같이 임업(林業)에서는 그의 생산물(生產物)의 대부분(大部分)이 원재료(原材料)로서 타산업(他產業)에 이용(利用)됨으로써 직접소득(直接所得)보다 간접소득(間接所得)이 차지하는 비중(比重)이 대단(大端)히 높아 관련산업(關聯產業)의 발전(發展) 성장(成長)에 크게 기여(寄與)하고 있다. 그러므로 산업간(產業間)의 중요도판정(重要度判定)에서 임업(林業)은 결(決)코 경시(輕視)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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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현동(松峴洞) 일원 역사문화경관의 통시적 연구 (A Diachronic Study on Historical and Cultural Landscape of Songhyeon-dong, Seoul)

  • 강재웅;소현수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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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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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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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본 연구는 경복궁 옆 송현동 일원에 문화공원을 조성하기로 계획된 사실을 배경으로 '송현(松峴)'이라는 장소가 인식되었던 조선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관련 문헌과 도면자료를 분석하여 주요 시기의 역사문화경관을 파악하였다.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송현동 일원의 경관을 통시적으로 고찰하기 위하여 주요 필지의 소유주를 파악하고 토지이용과 경관구성요소를 추출하였다. 1392년 조선의 건국 이래 송현은 풍수지리사상에 의하여 '경복궁의 내청룡(內靑龍)'으로 이해됨에 따라 국가에 의해 '소나무숲'이 관리되었다. 1410년 태종이 실시한 전제 개혁과 도시계획의 영향으로 국가 창고 '분감(分監)'이 세워지고 영세한 과일가게 '우전(隅廛)'이 조성되었다. 19세기 이후에는 상류층 가옥으로서 '가성각(嘉聲閣)', '창녕위궁(昌寧尉宮)', '벽수거사정(碧樹居士亭)'이 존재하였다. 1919년 조선식산은행이 부지를 매입하면서 대규모 관사단지인 '식은사택(殖銀舍宅)'이 조성되었으며, 이는 1948년 미국으로 이양되어 '미국대사관 직원숙소'로 사용되었다. 둘째, 도출한 시기별 경관구성요소의 존속기간과 함께 위치를 비정하여 물리적 실체를 파악함으로써 시대별 사회상과 결부된 입지관(立地觀)의 변천을 확인하였다. 풍수지리적 세계관 속에서 궁궐의 왼편을 비보(裨補)하는 '내청룡'으로 인식된 소나무숲은 부지 서쪽 고지대에 있었다. 동시기 동쪽의 평탄한 구역은 각종 정부시설과 시장에 인접한 길목에 다양한 계층이 모여드는 '여항(閭巷)'으로 여겨졌다. 19세기 이후 소나무숲에는 경화세족(京華世族)의 원림이 들어서 '성시산림(城市山林)'으로 이해되었다. 오랫동안 도심 속 대형 필지로 존재하였던 송현동 일원은 20세기 일제에 의해 '이상적 건강지(理想的 健康地)'라는 관념 아래 개발되었다. 이로써 조선시대 전통적 복거관(卜居觀)을 고수해 온 송현동 일원의 장소성이 단절된 것이다.

논산시 하천 및 육상 골재 자원의 부존 현황과 특성 (Distribution, Preservation Characteristics of Land and River Natural Aggregates in Nonsan City, Korea)

  • 윤현호;홍세선;한민;이진영
    • 자원환경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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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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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3-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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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천연골재(Natural aggregate)는 인간활동에 필수적인 자원으로 건축활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최근 골재의 수요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며 자원의 특성상 원거리에서 조달하기가 어렵다. 이 연구는 시군단위 골재자원조사의 일환으로 2023년 충청남도 논산시를 대상으로 수행된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골재부존지역의 분포와 특성을 파악하였다. 논산시는 금강 하구로부터 직선거리로 약 35km 떨어져있으며 금강 본류가 지나는 길목에 위치한다. 논산시의 지형은 동부의 산악지대와 서부의 평야지대를 형성하는 동고서저형의 지형적 특색을 지니며 금강의 지류인 논산천, 노성천, 강경천 등을 포함하여 33개의 국가 및 지방하천이 분포한다. 모든 하천들은 고지대인 북쪽과 동쪽에서 발원하여 논산천과 합류한 뒤 논산시의 서쪽 경계에서 금강 본류의 좌안으로 합류한다. 시추 결과는 고지대인 북쪽과 동쪽에서 얕은 심도를 보이며 서쪽으로 갈수록 깊은 심도를 보여 금강 본류 인근에서 최대깊이인 25m를 보인다. 계산된 육상골재의 총 부존량은 246,789,000m3이며, 개발 가능량은 172,750,000m3이다. 하천골재의 총 부존량은 5,236,000m3 이며, 개발가능량은 3,765,000m3로 나타났다. 골재의 분포양상은 지형 및 지질, 수계의 발달 양상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부존량은 산간지역에서 미비하며 하천과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하는 지역에서 많은 양의 골재자원이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부존심도는 4m 이상의 깊이에서 나타난다. 논산시의 골재자원 분포는 하천작용과 해수면 변동의 영향으로 인한 것이며 서해안의 큰 조차는 골재자원의 부존에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구주오소경과 명주(하서주) - 그 도시구조를 중심으로 - (9 Provinces and 5 Secondary Capitals, Myeong-ju(Haseo-ju) - Revolve Around Urban Structure -)

  • 야마다 타카후미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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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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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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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신라는 문무왕 18년(678) 당나라군이 철수함에 따라 명실공히 한반도를 통일한 뒤, 그 판도를 중국 지방행정구획 제도를 모방하여 아홉 개의 주로 구분하고, 거기에 소경 군 현을 배치한 지방행정 조직을 정비하였다. 이른바 9주5소경(九州五小京)이라 불리는 지방행정제도이다. 주는 현재의 대한민국(이하 한국)의 도(道)에 해당하며, 소경은 광역시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 수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경덕왕 16년(757) 겨울 12월조에 의하면 5소경, 117군, 293현에 이른다 통일신라시대의 지방도시인 9주5소경(九州五小京)의 연구는 문헌사학 중심으로 이루어져, 주성(州城)과 소경성(小京城)의 위치와 그 도시구조에 대해서는 지금껏 크게 논의되었던 적이 없어 명확치 않은 점이 많다. 고고학적 도시구조의 복원연구는 박태우의 논고("통일신라시대의 지방도시에 대한 연구" 1987년)와 필자의 논고("新の九州五小京城郭の構造と實態について-統一新による計畵都市の復元硏究-"2009년) 정도이다. 강원도 강릉시는 원래 예(濊)의 고국(古國)으로 고구려의 하서량(河西良)이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선덕왕 8년(639)에 북소경 하서양주(北小京; 河西良州))으로 되었는데, 무열왕 5년(658)에 하서주(河西州)로 소경에서 주로 바뀌었다. 이후 경덕왕 16년(757)에는 명주로 개칭되었고 그 뒤, 고려시대 이후로도 명칭은 여러 가지로 변하였다. 박태우는 나성 흔적이 남은 도시로 분류하여 명주동에 있었던 성지로 비정하고 있는데, 현재는 시가지화로 인하여 확인할 수가 없다고 한다. 또한 관동대학교에서는 강릉시 중심부로부터 서남서 약 3km에 위치하는 명주산성을 주치(州治)로 보는 설을 제시하고 있다. 필자는 일제시대의 측량도에서 볼 수 있는 유존(遺存) 토지구획로 보아 경주시의 신라금경이나 다른 많은 도시와 같이 방격의 가구, 즉 방리(坊里)를 갖춘 도시로 복원하였다. 다음은 그 구조에 대해 서술하였다. 강릉의 시가지는 시내를 남서에서 북동으로 흐르는 남대천의 왼쪽 기슭 평탄지에 위치하고 있다. 부근에 그다지 높은 산은 없으나 시가지의 북측에는 산이 동서로 이어져 있으며, 남대천으로부터의 평지부분 너비는 최대가 1km 정도로 그다지 넓지는 않다. 현재는 강릉시의 중심부로 시가지화가 진행되어 강릉역을 중심으로 한 방사상의 구획정리 등도 이루어져 옛 토지구획이 거의 소멸된 상태이다. 그러나 일제시대의 지형도 등을 보면 시가지 중심부인 옥천동, 임당동, 금학동, 명주동 등의 일대에 한 변 약 190m를 기본으로 하는 방격의 토지구획이 북서-남동에 약 0. 8km, 북동-남서에 약 1. 7km의 범위로 잔존하고 있는 것이 확인 가능하다. 방격의 유존 토지구획은 다른 9주5소경(九州五小京)의 사례를 통해 보면 통일신라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생각된다. 단, 방격 한 변의 길이가 190m로 신라의 금경이나 다른 도시유적에서 볼 수 있는 한 변 160m나 140m의 규격과는 다르다는 점이 앞으로의 검토과제이다. 토지구획의 방위는 지형에 준하여 북서-남동 축에서 북쪽으로부터 약 $37.5^{\circ}$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는 남대천의 방위와 북측의 산지에 제약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보여 진다. 방격의 유존 토지구획이 잔존하는 범위로부터, 최소로 보더라도 북서-남동 4방${\times}$북동-남서 7방 크기라는 장방형으로 복원하였다. 단, 방격의 유존 토지구획이 퍼지는 정도로 보아, 남서측과 북서측에 각각 1방 씩 늘어난 북서-남동 5방${\times}$북동-남서 8방(북서-남동 약 $950m{\times}$북동-남서 약 1520m)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전체의 형상은 장방형으로, 당의 장안성(長安城)이나 일본의 평성경(平城城)과 같은 중축대로(주작대로)가 상정 가능한 토지구획은 확인되지 않는다. 명주의 도시유적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는 이제껏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도시유적 추정지 내부에 위치하는 조선시대의 강릉읍성이나 관아지의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기와류, 토기류 중에는 통일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갈만한 것이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또한, 관아지에서 검출된 조선시대의 건물지는 모두 정방위가 아닌 크게 기울어진 방위를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강릉에서 볼 수 있는 방격 유존 토지구획이 예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사실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명주성"의 명문 막새기와가 출토된 명주산성의 역할로, 이것이 주치였던 것을 필자는 부정하지 않는다. 한국의 고대도성은 평지성과 산성의 세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통일신라가 되어도 방리제 도성인 금경 주위로 명활산성, 남산산성, 서형산성의 산성군이 계속되어 유지되고 있었다. 구주오소경 이외의 다른 도시에서도 도시유적 부근에 산성이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명주도 평지의 도시와 산성이 세트가 되어 주치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산업관련표(産業關聯表)에 의(依)한 임업구조분석(林業構造分析)과 유발생산액(誘發生産額) -임업(林業)이 한국경제(韓國經濟)에 미치는 영향(影響)- (Analysis of Forestry Structure and Induced Output Based on Input - output Table - Influences of Forestry Production on Korean Economy -)

  • 이승윤
    • Journal of the Korean Wood Science and Tech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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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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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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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4
  • The total forest land area in Korea accounts for some 67 percent of the nation's land total. Its productivity, however, is very low. Consequently, forest production accounts for only about 2 percent of the gross national product and a minor proportion of no more than about 5 percent versus primary industry. In this case, however, only the direct income from forestry is taken into account, making no reference to the forestry output induced by other industrial sectors. The value added Or the induced forestry output in manufacturing the primary wood products into higher quality products, makes a larger contribution to the economy than direct contribution. So, this author has tried to analyze the structure of forestry and compute the repercussion effect and the induced output of primary forest products when utilized by other industries for their raw materials, Hsing the input-output table and attached tables for 1963 and 1966 issued by the Bank of Korea. 1. Analysis of forestry structure A. Changes in total output Durng the nine-year period, 1961-1969, the real gross national product in Korea increased 2.1 times, while that of primary industries went up about 1. 4 times. Forestry which was valued at 9,380 million won in 1961, was picked up about 2. 1 times to 20, 120 million won in 1969. The rate of the forestry income in the GNP, accordingly, was no more than 1.5 percent both in 1961 and 1962, whereas its rate in primary industries increased 3.5 to 5.4 percent. Such increase in forestry income is attributable to increased forest production and rise in timber prices. The rate of forestry income, nonetheless, was on the decrease on a gradual basis. B. Changes in input coefficient The input coefficient which indicates the inputs of the forest products into other sectors were up in general in 1966 over 1963. It is noted that the input coefficient indicating the amount of forest products supplied to such industries closely related with forestry as lumber and plywood, and wood products and furniture, showed a downward trend for the period 1963-1966. On the other hand, the forest input into other sectors was generally on the increase. Meanwhile, the input coefficient representing the yolume of the forest products supplied to the forestry sector itself showed an upward tendency, which meant more and more decrease in input from other sectors. Generally speaking, in direct proportion to the higher input coefficient in any industrial sector, the reinput coefficient which denotes the use of its products by the same sector becomes higher and higher. C. Changes in ratio of intermediate input The intermediate input ratio showing the dependency on raw materials went up to 15.43 percent m 1966 from 11. 37 percent in 1963. The dependency of forestry on raw materials was no more than 15.43 percent, accounting for a high 83.57 percent of value added. If the intermediate input ratio increases in any given sector, the input coefficient which represents the fe-use of its products by the same sector becomes large. D. Changes in the ratio of intermediate demand The ratio of the intermediate demand represents the characteristics of the intermediary production in each industry, the intermediate demand ratio in forestry which accunted for 69.7 percent in 1963 went up to 75.2 percent in 1966. In other words, forestry is a remarkable industry in that there is characteristics of the intermediary production. E. Changes in import coefficient The import coefficient which denotes the relation between the production activities and imports, recorded at 4.4 percent in 1963, decreased to 2.4 percent in 1966. The ratio of import to total output is not so high. F. Changes in market composition of imported goods One of the major imported goods in the forestry sector is lumber. The import value increased by 60 percent to 667 million won in 1966 from 407 million won in 1963. The sales of imported forest products to two major outlets-lumber and plywood, and wood products and furniture-increased to 343 million won and 31 million won in 1966 from 240million won and 30 million won in 1963 respectively. On the other hand, imported goods valued at 66 million won were sold to the paper products sector in 1963; however, no supply to this sector was recorded in 1963. Besides these major markets, primary industries such as the fishery, coal and agriculture sectors purchase materials from forestry. 2. Analysis of repercussion effect on production The repercussion effect of final demand in any given sector upon the expansion of the production of other sectors was analyzed, using the inverse matrix coefficient tables attached to the the I.O. Table. A. Changes in intra-sector transaction value of inverse matrix coefficient. The intra-sector transaction value of an inverse matrix coefficient represents the extent of an induced increase in the production of self-support products of the same sector, when it is generated directly and indirectly by one unit of final demand in any given sector. The intra-sector transaction value of the forestry sector rose from 1.04 in 1963 to 1, 11 in 1966. It may well be said, therefore, that forestry induces much more self-supporting products in the production of one unit of final demand for forest products. B. Changes in column total of inverse matrix coefficient It should be noted that the column total indicates the degree of effect of the output of the corresponding and related sectors generated by one unit of final demand in each sector. No changes in the column total of the forestry sector were recorded between the 1963 and 1966 figures, both being the same 1. 19. C. Changes in difference between column total and intra-sector transaction amount. The difference between the column total and intra-sector transaction amount by sector reveals the extent of effect of output of related industrial sector induced indirectly by one unit of final demand in corresponding sector. This change in forestry dropped remarkable to 0.08 in 1966 from 0.15 in 1963. Accordingly, the effect of inducement of indirect output of other forestry-related sectors has decreased; this is a really natural phenomenon, as compared with an increasing input coefficient generated by the re-use of forest products by the forestry sector. 3. Induced output of forestry A. Forest products, wood in particular, are supplied to other industries as their raw materials, increasng their value added. In this connection the primary dependency rate on forestry for 1963 and 1966 was compared, i. e., an increase or decrease in each sector, from 7.71 percent in 1963 to 11.91 percent in 1966 in agriculture, 10.32 to 6.11 in fishery, 16.24 to 19.90 in mining, 0.76 to 0.70 in the manufacturing sector and 2.79 to 4.77 percent in the construction sector. Generally speaking, on the average the dependency on forestry during the period 1963-1966 increased from 5.92 percent to 8.03 percent. Accordingly, it may easily be known that the primary forestry output induced by primary and secondary industries increased from 16, 109 million won in 1963 to 48, 842 million won in 1966. B. The forest products are supplied to other industries as their raw materials. The products are processed further into higher quality products. thus indirectly increasing the value of the forest products. The ratio of the increased value added or the secondary dependency on forestry for 1963 and 1966 showed an increase or decrease, from 5.98 percent to 7.87 percent in agriculture, 9.06 to 5.74 in fishery, 13.56 to 15.81 in mining, 0.68 to 0.61 in the manufacturing sector and 2.71 to 4.54 in the construction sector. The average ratio in this connection increased from 4.69 percent to 5.60 percent. In the meantime, the secondary forestry output induced by primary and secondary industries rose from 12,779 million Wall in 1963 to 34,084 million won in 1966. C. The dependency of tertiary industries on forestry showed very minor ratios of 0.46 percent and 0.04 percent in 1963 and 1966 respectively. The forestry output induced by tertiary industry also decreased from 685 million won to 123 million won during the same period. D. Generally speaking, the ratio of dependency on forestry increased from 17.68 percent in 1963 to 24.28 percent in 1966 in primary industries, from 4.69 percent to 5.70 percent in secondary industries, while, as mentioned above, the ratio in the case of tertiary industry decreased from 0.46 to 0.04 percent during the period 1963-66. The mining industry reveals the heaviest rate of dependency on forestry with 29.80 percent in 1963 and 35.71 percent in 1966. As it result, the direct forestry income, valued at 8,172 million won in 1963, shot up to 22,724 million won in 1966. Its composition ratio lo the national income rose from 1.9 percent in 1963 to 2.3 per cent in 1966. If the induced outcome is taken into account, the total forestry production which was estimated at 37,744 million won in 1963 picked up to 105,773 million won in 1966, about 4.5 times its direct income. It is further noted that the ratio of the gross forestry product to the gross national product. rose significantly from 8.8 percent in 1963 to 10.7 percent in 1966. E. In computing the above mentioned ratio not taken into consideration were such intangible, indirect effects as the drought and flood prevention, check of soil run-off, watershed and land conservation, improvement of the people's recreational and emotional living, and maintenance and increase in the national health and sanitation. F. In conclusion, I would like to emphasize that the forestry sector exercices an important effect upon the national economy and that the effect of induced forestry output is greater than its direct in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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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임업분야 공적개발원조(ODA)사업과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의 연관성 분석 (Analysis of Linkage between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ODA) of Forestry Sector and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 in South Korea)

  • 김나희;문주연;송철호;허성봉;손요환;이우균
    • 한국산림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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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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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6-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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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에서는 국내 산림부문의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ODA) 사업과 국제연합(United Nations;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 간의 연관성을 분석하고, SDGs 달성 측면에서 ODA사업의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우선 한국수출입은행 대외경제협력기금(Economic Development Cooperation Fund; EDCF) 통계조회시스템에서 국내 임업분야 ODA사업 자료를 분석하였다. 분석결과에 따르면, 산림부문 ODA사업은 임업 개발 분야와 임업 정책 및 행정관리 분야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두 분야에서도 산림청과 한국국제협력단(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KOICA)에서 가장 많은 사업을 시행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결과를 통해 선정된 국내 임업분야 ODA사업의 각 사업별 목표와 내용을 바탕으로 기존 산림부문 ODA사업 항목인 기술개발, 역량강화, 인프라 구축, 조림으로 항목을 분류하였다. 분류된 항목별 ODA 활동내용과 SDGs에서 강조하는 국가별 이행평가를 위해 국내에서 활용 가능한 산림부문 목표 및 성과지표를 포함하고 있는 2016년 산림청 성과관리 기본계획 성과지표와의 연관성을 분석하였다. 분석된 2016년 산림청 성과관리 기본계획 성과지표와 이와 연관되는 SDGs 세부목표 및 지표를 파악하였으며, 최종적으로 SDGs 목표를 파악하였다. 그 결과 국내 임업분야 ODA사업은 SDGs 목표 1(빈곤퇴치), 목표 2(기아해소), 목표 6(물과 위생), 목표 13(기후변화 대응), 목표 15(육상생태계), 목표 17(파트너십)과 연관되었다. 본 연구는 SDGs가 출범함에 따라 국내 임업분야 ODA사업을 검토하고, 이를 2016년 산림청 성과관리 기본계획과 SDGs와의 연관성을 분석하여 국내 산림부분 ODA사업의 한계점 파악과 SDGs 이행을 위한 제언을 했음에 그 의의가 있다.

한국의 묵논에서 멸종위기식물의 복원생태학적 연구 및 서식지 관리방안 (Study on Ecological Restoration of Endangered Species in Abandoned Paddy of Korea and Management Plan for its Habitat)

  • 이수인;이응필;홍용식;김의주;이승연;박재훈;장래하;유영한
    • 한국습지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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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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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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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묵논을 생태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논의 특성을 고려하여 생활형이 다른 멸종위기식물 9종의 현지외보전 대상지로서의 잠재력을 확인하였다. 한국의 전통적인 논의 구성요소인 둠벙을 조성하기 위해 묵논의 일부를 변형하여 수분 환경을 다르게 하였다. 묵논에 각 식물들의 유성생식체(seed, sapling)와 무성생식체를 이식하여 1년간 생존률과 식물계절학 반응을 관찰하였고 그 후 2년간 모니터링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묵논에 도입이 가능한 수생식물은 4 분류군 (가시연꽃, 삼백초, 전주물꼬리풀, 조름나물), 지중식물은 1 분류군 (큰바늘꽃), 반지중식물은 1 분류군 (독미나리) 이었다. 도입시 가시연꽃, 전주물꼬리풀, 조름나물은 둠벙에 도입해야하고, 삼백초, 큰바늘꽃, 독미나리는 논습지에 도입해야한다. 또한, 가시연꽃과 순채의 생육은 초본류에 의해 저해되었고 큰바늘꽃의 생식생장은 섭식자에 의해 저해되었다. 따라서 묵논에 도입한 멸종위기식물의 효율적인 정착을 돕기 위해서는 생육을 저해하는 초본류들의 제거와 섭식자의 관리가 필요하고, 논둑에 목본 또는 식생 매트를 형성하는 초본류를 식재하여 둑의 붕괴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 특히 묵논을 생태적으로 활용할 때 생물다양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둠벙을 조성하여 수분환경을 다양화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다.

볏짚거적덮기공법(工法)의 사방효과(砂防效果)에 관(關)한 연구(硏究)(III) -거적 밀도(密度)의 영향(影響) 및 공법(工法)의 실용성(實用性)- (Studies on Soil Conservation Effects of the Straw-mat Mulching (III) -Effects of the Mat Structures and Its Practicality-)

  • 우보명
    • 한국산림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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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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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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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5
  • 인공적(人工的)인 땅까기 흙쌓기 비탈면을 포함하는 민둥산 비탈면에서의 토양침식(土壤浸蝕)을 방지(防止)을 지피식생조성(地皮植生造成)을 조기(早期)에 확실(確實)히 달성(達成)할 수 있는 새로운 속성녹화공법(速成綠化工法)으로서 개발(開發)된 거적덮기 공법(工法)에 사용(使用)되는 거적의 적성조립밀도범위(適正組立密度範圍),를 결정(決定)하고 동시(同時)에 각급(各級) 밀도(密度)의 효과(效果)를 시험(試驗)한 결과(結果)는 다음과 같이 요약(要約)될 수 있다. 1. 타표류거수(他表流去水)의 유출율(流出率)에 있어서는 거적의 피복율(被覆率)이 90%구(區)(밀연피복구(密筵被覆區))에서 13.3%로 가장 적고, 70%구(區)(중연피복구(中筵被覆區))에서 14.21%, 그리고 50%구(區)(소연피복구(疎筵被覆區)) 15.57%로 가장 많었으나 이것은 나지구(裸地區)에서의 30.4%에 비(比)하면 매우 효과적(效果的)인 공법(工法)인 것이다. 2. 토사유실량(土砂流失量)에 있어서는 밀연피복구(密筵被覆區)에서 약(約) 1.24 ton/ha, 중연피복구(中筵被覆區)에서 약(約) 1.33 ton/ha, 그리고 소연피복구(疎筵被覆區)에서 약(約) 1.44 ton/ha으로서 이것은 미국농무성(美國農務省)의 기준(基準)(1.8 ton m/ha)에 비교(比較)하면 매우 효과적(效果的)인 공법(工法)인 것이다. 3. 파종후(播種後) 발아생립(發芽生立) 본수(本數)는 밀연피복구(密筵被覆區)에서 80본(本)으로 가장 적고 중연피복구(中筵被覆區)에서 132 본(本), 그리고 소연피복구(疎筵被覆區)에서 121 본(本)이었는데, 밀연피복구(密筵被覆區)에서는 발아후(發芽後) 생육중(生育中)에 피복고사율(被覆枯死率)이 높았다. 4. 유수유토발생(流水流土發生) 및 식생조성효과(植生造成効果)를 종합(綜合)해 볼때에 거적덮기공법(工法)에 사용(使用)되는 거적의 조립밀도(組立密度)는 70%내외(內外)가 적정(適正)할 것이다. 5. 본(本) 공법(工法)은 민둥산비탈면에 대한 속성녹화공법(速成綠化工法)으로서는 가장 효과적(效果的)인 피복공법(被覆工法)으로서, 우리나라의 산지사방행정면(山地砂防行政面)에서 대대적으로 여장(勵將)되어야 할 신공법(新工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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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현동 일대의 문화 헤게모니와 장소성 변화 분석 (An Analysis of Cultural Hegemony and Placeness Changes in the Area of Songhyeon-dong, Seoul)

  • 최지영;조경진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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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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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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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서울 송현동에 역사문화공원과 이건희 기증관이 조성될 예정이다. 송현동의 역사성은 조선 시대부터 현대까지 정치적 판도에 영향을 받은 시련의 땅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장소성 분석은 역사적 맥락보다는 토지소유자와 용도 변화에 국한해서 다루어졌다. 그래서 본 연구는 현대문화지리학과 비교역사학 관점을 활용하여 송현동의 장소성이 문화 헤게모니에 따라 변화한 맥락을 분석하였다. 분석결과, 역사적 이행과정에서 나타나는 중화주의, 대항해, 시민혁명, 제국주의, 민족자결주의, 민족주의, 대중예술, 신자유주의 같은 범세계 차원의 문화 헤게모니는 송현동을 비롯한 북촌 일대에 새로운 지식인층을 만들어냈고, 사회제도와 공간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송현동의 장소성은 다음과 같이 변화했다. 첫째, 송현의 소나무숲은 이상적인 유교 국가를 목표로 했던 조선 건국세력이 왕조의 영속을 기원하며 만든 비보숲이었고, 내사산의 지맥을 보호하는 사산금표제로 관리되었다. 세계적으로 대항해시대를 맞이한 조선 후기에는 연행이 늘며 청나라 문화를 향유하는 경화세족의 정원이 들어섰다. 일제 강점기에 인구가 급증하면서 주택단지개발로 소나무 숲과 정원은 사라졌지만, 인공적인 정원과 외부의 자연을 조화롭게 연결했던 차경의 경관적 미학은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가치가 있다. 둘째, 세계의 근대화 물결은 북촌 일대에 신식학교를, 친일파 소유의 송현동에는 하숙집을 만들었다. 송현동 옆의 안국동천길은 시민혁명과 민족자결주의를 접한 사상가들이 교류했던 장소였고, 최대규모의 하숙집이었던 송현동은 학생들이 3.1운동에 참여하며 학생운동문화가 발아한 계기가 되었다. 안국동천길은 옛길의 모습이 보존되어 있어 광화문-북촌-인사동-돈화문로를 연결하는 역사 도심 보행 재생의 한 부분으로 의의를 지닌다. 셋째, 조선총독부의 문화 통치기부터 군사 정권기까지 송현동은 조선식산은행의 서구식 문화주택과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가 들어서며 서구문화의 통로였다. 주변 지역은 고미술과 현대미술이 공존하며 근현대 미술시장이 형성되었다. 이건희 기증관은 북촌한옥마을, 공예박물관, 현대미술관, 갤러리와 문화벨트를 이루며 시민의 공간으로 변모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같이 장소를 이루었던 숲과 정원, 시민탄생의 거리, 근·현대 미술의 진원지로서 의미가 새롭게 조성될 역사문화공원과 미술관 그리고 주변 보행 네트워크와 조화롭게 재창조될 수 있도록 담론과 도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