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화된 식민지 조선에서 기생은 위기감 속에서 경제적 구원자가 될 남성에 의존해서 사는 처지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와 자본주의가 부여한 변신의 기회를 갖기도 했다. 사회주의자 정칠성도 정치적 각성을 통해 그러한 변신의 기회를 활용한 사람 중 하나였다. 정칠성의 정치적 각성은 3.1운동이라는 역사적 계기와 십여 년 간 기생으로서 경험했던 개인의 노동 체험이라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다. 3.1운동은 민족주의라는 외연을 띤 거대한 정치적 사건이었지만 정칠성이라는 한 여성의 개인적인 분노의 감정을 이끌어낸 계기이기도 했다. 또한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업을 가진 여성들은 직무 상의 역할 이외에도 순종적이면서도 아량이 넓어야 한다는 정서적인 역할을 강요받았다. 즉 초기 직업 여성들은 공적 영역에서 젠더 위계와 젠더 권력 속에 무방비로 노출됨으로써 분노와 수치, 모멸감 등의 감정을 겪어야 했고 이러한 감정들이 정칠성의 사례에서 나타나듯 어떤 정치적 각성에 이르게 함을 알 수 있다. 노동 경험과 감정의 문제를 매개로 한 정치적 각성은 정칠성으로 하여금 다른 여성 사회주의자들과는 달리, 여성의 경제적 독립이라는 이슈를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이해하게 만든 요인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언어는 정칠성에게 자신의 체험을 설명할 수 있는, 당시로서는 상대적으로 가장 적절한 언어였지만 그녀의 체험은 엘리트 사회주의 언어로서는 설명될 수 없는 지점들을 갖고 있다. 따라서 그녀의 삶은 엘리트 중심의 사회주의 운동을 넘어서, 하층민 여성의 삶이 새로운 감성으로 분할되고 등재되어 정치적으로 가시화될 필요가 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2015년 발표된 유하 감독의 영화 "강남1970"은 바흐찐이 말하는 서사 속 시공간의 결합관계, 크로노토프의 중첩을 살필 수 있는 서사다. 이 영화는 또한 강한 야망과 폭력으로 부와 권력을 이루려는 개인의 서사와 1970년대 서울 강남개발을 둘러싼 비리와 폭력, 한국 사회의 변동사, 그리고 그것을 회고하는 현재의 시각이 어우러진 서사이다. 본 논문은 이 영화가 폭력을 휘두르며 범죄를 일삼는 주인공의 행보를 경제개발 시대 변화에 참여하여 그 이익을 향유하고 부를 축적하는 것을 성취로 받아들인 70년대 일반인들의 욕망의 맥락 속에서 제시하고 현재 한국 최고가 부동산 지역으로 여겨지는 강남에 대한 다수의 선망에 기대어 관객의 공감을 얻고자 했다고 본다. 서사의 중심이 되는 강남은 관객의 시공간에서 한국 현대의 변화를 집약하는 실제 장소이며 한국 사회의 욕망을 대변하는 상징적 장소다. 한국인들은 경제개발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상황에서 경제적 성취를 향한 비교와 경쟁에 익숙해졌고 도시화된 삶에서 자본주의가 생산해내는 상품과 새로움의 환상의 악순환에 묶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영화는 한국사회의 집단적 감정으로서 선망에 기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강남1970"은 그러한 한국인의 욕망의 양상을 조폭영화 서사로 풀어나간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강한 야망과 폭력으로 급격하고 막대한 부의 성취를 하려는 개인의 모습이 그 시대 보통 사람의 욕망으로 치환되고 막대한 부에 대한 강한 야망,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정서가 거리감 없이 공유된다면 문제가 된다. 역사적 집단적 회고나 현재 사회적 정서가 선망으로 채색되는 것은 그 집단, 사회가 심리적 분열의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표시가 될 수 있다.
본 논고는 근대한국 문학의 전위인 이상(李箱)의 시작품에 구사되는 프랑스어와 탈 지방성에 대한 연구이다. 이상의 시편들 속에 쓰인 기호와 외래어는 한글로는 표현이 어려운 물리학, 건축학, 수학, 기하학, 이국의 문명과 같은 초감각적인 이미지들을 그려내고, 의미생성과 확장을 불러오는 파생의 시어로 작용한다. 이상의 시작품에서 프랑스어는 알파벳 철자와 한글식의 표기로 나누어지고, 문장들은 고딕 적이며, 병렬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프랑스어 단어들은 "${\Box}$, ${\triangle}$, ${\nabla}$" 등의 기호들과 조화를 이루어 상형적인 이미지로 기술된다. 문법의 규범을 이탈한 문장들은 해체와 재조합을 불러오고, 이때 프랑스어는 한글을 대체하고, 모국어가 갖는 한계를 초극하여 이국의 과학문명과 사상, 예술을 차용하는 포스트모던의 시어로 활용된다. 나아가 "ESQUISSE" 등의 프랑스어는 시인 자신의 열등의식을 초월하고, 자유와 상상력, 현대의 예술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전위적인 시어로써, "향토"(鄕土)의 조선 문단에 세계의 신경향을 이식하여 성숙시켜 놓은 탈 지방의 시어로 나타난다.
본 연구는 번역된 텍스트들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언어적 특성들인 번역 보편소(translation universals)에 관한 코퍼스 기반 연구이다. 지금까지의 번역 보편소 연구는 언어계통상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영어와 다른 유럽어 사이의 번역에 집중되어 왔으며, 다른 한편으로 주로 문학 장르의 분석에 치중되어 있다는 아쉬움을 지닌다. 본 연구에서는 관련 연구가 지닌 이러한 두 가지 주요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한국어를 원문으로 하는 영어 번역 가운데 비문학 장르인 신문언어 텍스트를 분석대상으로 선택하였다. 먼저, 번역된 신문영어 텍스트와 비번역 신문영어 텍스트를 정해진 기준에 따라 수집하여 번역과 비번역 영어(translated and non-translated English)로 구성된 대응코퍼스(comparable corpora)를 구축하였다. 이렇게 구축된 대응 코퍼스를 바탕으로 기존 문헌에서 논의된 번역 보편소 가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단순화(simplification), 명시화(explicitation), 규범화(normalization), 평준화(leveling-out) 현상이 한국어 신문의 영어 번역 텍스트에서 어떠한 양상을 보이는지 살펴봄으로써 각 가설들이 지니는 타당성을 검증해보고자 하였다. 본 연구의 분석결과를 종합해보면, 단순화와 규범화를 제외한 나머지 하위가설의 언어적 특성들은 모든 언어쌍과 모든 텍스트 장르에 걸쳐 일반화하기에 다소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번역 보편소의 개념 규정이나 분석지표의 정교화, 그리고 결과의 일반화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포스트메모리'는 역사적 상흔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은 이후 세대의 기억으로, 현재의 고민과 관심사가 깊숙이 투영되면서 과거를 재해석하는 행위 혹은 서사를 지칭한다. 칠레 영화 는 피노체트의 연장집권을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된 1988년으로 돌아가 당시 반대캠페인 내부를 들여다본다. 이들은 효과적인 홍보 전략과 광고 언어를 사용하여 선거에서 승리하고 민주화에 기여하지만, 그 과정에서 감독은 민주주의를 상품화의 논리로 치환시키는 소비사회와 신자유주의 체제가 도래하는 이행기 칠레사회에 대한 성찰을 시도한다. 한편, 한국의 <변호인>은 1980년대 초반 군부독재 시절, 한 세금변호사가 국가보안법 사건을 맡으면서 인권변호사로 변화하는 과정을 다룬다. 영화는 국가주의에 의해 개인과 공동체의 삶이 위협받는 상황을 보여주면서 상식과 공감을 바탕으로 민주주의의 의미를 재구성한다. 역사적 맥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두 영화는 민주화 이후 나타난 민주주의의 위기를 과거 역사를 통해 포착하며, 이와 함께 민주주의의 재구성을 위해 지식인과 전문가집단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한다.
중국의 미디어 영역에서는 정치적 경제적 제도적 변화에 따라 생성적 변화의 흐름이 존재해왔다. 드라마 생산 영역에서 시장체제가 도입된 이후에는 정부 대리인이자 시장 관리의 역할을 하는 '제편인(制片人)'이라는 사람들이 자생적으로 출현하게 되었으며 국가는 곧 이 '제편인'에게 합법적 자격과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제도화하여 제도권 내로 흡수시켰다. 이 과정에서 '드라마 제편인 제도'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특수한 환경 하에서 정부의 직접관리에서 간접관리, 그리고 자아검열로의 변화 과정을 잘 드러내는 중국식 관리 모델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풀뿌리 미디어를 비롯한 다양한 미디어가 출현하였고, 네티즌들의 참여와 생산 활동으로 문학 영역에 인터넷 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동영상과 풀뿌리 미디어의 플랫폼으로 역할했던 일부 사이트가 자체적으로 콘텐츠 생산을 하게 되면서 미디어로서 기능하게 되었다. 본래 인터넷을 IT 산업의 일부로 양성하였지만 인터넷이 미디어로서 기능하며 새로운 미디어 지형을 형성하게 되자 점차적으로 이에 대한 규제와 제도를 갖추어나가기 시작했으며, 이후 전면적인 인터넷 미디어 콘텐츠 관리 및 규제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미디어 영역에서 생성적 변화의 흐름이 출현하고 이것이 관방의 미디어 정책에 수렴되는 생성-수렴의 양상이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 글은 특정 시기 타이완의 현대사를 다룬 영화 <군중낙원>의 영화적 서사 구축방식과 탈역사적 서술 양상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군중낙원>은 어떠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보여준다거나 공식 역사적 담론 속에서 과거를 해석하려 하기 보다는, 그 시대를 살아간 인간들의 고뇌와 아픔에 주목하는 서술적 특징을 갖고 있다. 즉 거대 역사 서술적 맥락에서 서사를 구성하거나 리얼리즘적 관점에서 진지함을 견지한 성찰적 태도로 현실을 바라보려는 영화적 태도에서 벗어났다. 때문에 이전 시기 타이완 뉴웨이브 영화들과는 다른 면모를 갖게 되었고 역사 서술 텍스트로서 탈역사적 논의에 의해 새로운 담론장을 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탈역사적 서술을 위한 하나의 방식으로 공창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통한 판타지를 창조하려 했다. 뉴청저는 영화 속에서 공창을 국가 권력과 시대 배경하에 억압당한 남성을 위로하는 곳으로 묘사했지만 남성들을 위해 희생되는 여성의 공간으로 그리진 않았다. 따라서 이 영화가 시대와 역사적 비극에 의해 곤경에 처한 보편적인 인간들의 미시적 역사를 복원시키려 했다면, 그 대상은 남성에만 해당되는 것이지 또 다른 약자인 여성은 배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에 <군중낙원>은 영화의 재현에 의해 역사와 시대에 관한 서술이 어떻게 공식 역사적 담론과 집단의 기억을 균열내고 개개인의 서사에 주목하여 어떻게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는지 그 일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고 있지만 동시에 남성중심주의적 서술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를 낳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조혼은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조혼은 양성 불평등, 빈곤 및 사회 규범 때문에 조장되며, 사회적 힘의 불균형을 재생산한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2000년의 가족법 개정과 2005년에 새로 도입된 형법을 통해, 여성의 법률적 최소 결혼 연령을 15세에서 18세로 상향 조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혼 현상은 에티오피아 사회에서 여전히 광범하게 발견된다. 이것은 조혼 관습이 장기간에 걸쳐 사람들의 삶 속에서 체화되고 실천되어 왔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의 조혼 관습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은 여성의 경험에만 초점을 두고 있고, 조혼한 모든 사람-특히 여성-은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간주하며, 조혼이 여성의 학업에 부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본 논문은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사회 경제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생애사를 통해 조혼 문제를 고찰하고자 한다. 본 논문의 목적은 에티오피아에서는 왜 조혼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 관습이 가족생활과 여성의 교육적 성취에 어떤 영향을 미쳐 왔는지를 세 개 타운-메키, 데라, 즈와이-의 사례를 통해 검토하는 데 있다. 본 논문에서 알 수 있듯이 조혼은 여성의 삶에 대체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부 남성 역시 조혼의 피해자이며, 일부 여성은 조혼을 통해 자신의 삶을 개선해 온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가 조혼 문제를 다룰 때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일깨워 준다.
본고는 근대 일본 여성운동의 궤적을 '모성' '참정권' '전쟁'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통시적으로 고찰하되,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것이 일본이라는 '국가'와 어떤 관계를 이루었는가라는 관점에서 다룬 것이다. 특히 국가의 입장에서 여성에 대한 정책 등을 살핀 것이 아니라 여성들의 입장에서, 즉 이들이 '국가를 향해 어떠한 기대를 품었는가'라는 관점에서 히라쓰카 라이초(平塚らいてう)와 이치카와 후사에(市川房枝)라는 두 인물을 축으로 삼아 다루었다는 특징이 있다. '국가에 의한 모성의 보호'를 기대했던 히라쓰카는 신부인협회(新婦人協會)를 통해 전개했던 의회 청원운동의 실패를 끝으로 국가에 대한 기대를 사실상 접게 된다. 반면 미국 여성참정권 획득에 자극을 받은 이치카와는 여성의 참정권 획득을 위한 의회 청원운동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 비록 대개는 생활문제의 개선이라는 방식이기는 했지만 - 당국으로부터의 전쟁협력 요구에도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국가를 향한 '기대'는 근대 일본 여성운동을 견인하는 주된 원동력이었지만, 한편으로는 - 이치카와가 공직에서 추방되는 것으로 상징되듯- 침략전쟁의 협력의 오명을 쓰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2008년 개봉된 영화 <도쿄!>는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인테리어 디자인>, 레오 카락스 감독의 <메르드>, 봉준호 감독의 <흔들리는 도쿄>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 편의 단편은 모두 도시적 삶에서 비롯된 자기 소외의 경험을 다룬다. 도시에서 어떻게 자기 자신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삶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삶의 자기 유지와 관련되어 있다. <도쿄!>에서 세 명의 감독이 펼쳐놓은 이야기는 이러한 도시적 삶이 자기-보존적이면서 동시에 자기-해체적인 양상을 띠고 있음을 보여준다. 도시는 문을 열면서 닫고 닫으면서 여는 이중구속의 역설적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도시적 삶은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데리다가 무한하게 확장할 것을 제안했던 자가면역적 논리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삶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삶의 자기 유지와 관련된다. <도쿄!>를 구성하는 세 편의 단편에서 도시적 삶은 전유적, 탈전유적, 비전유적인 존재 양상을 통해 자기성을 드러낸다. 전유적 자기가 타자를 다시 제 소유로 삼음으로써 자기를 더욱 강화한다면 비전유적 자기는 순수하게 동일한 것으로 남고자 스스로를 방어한다. 이러한 도시적 삶의 양상은 필연적으로 자가면역적 반작용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오직 탈전유적 자기만이 자가면역적 반작용 속에서 약속 안의 위협을 감수하며 자기성의 움직임의 또 다른 양상의 가능성을 예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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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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