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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5일의 마중>으로 본 현대 중국 비극 영화의 특성 연구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in Chinese Contemporary Tragic Films - Focused on the film -)

  • 우잉저
    •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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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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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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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본 연구는 영화 <5일의 마중>의 줄거리와 결말 설정에서의 구체적인 표현을 분석하며, 정치적 환경에 직면하여 감독의 문화적 화합의 비극적인 서사 전략을 분석하여 현대 중국 비극 영화의 비극 특성을 살펴보도록 한다. 이를 통하여 중국 전통 윤리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식 비극 특성을 소개하는데 목적이 있다. 영화 <5일의 마중>은 문화대혁명 배경으로 한 현대 비극 영화이다. 영화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시대에 대한 타협과 사랑에 대한 남다른 수호를 통하여 중국식 비극 특성을 표현하였다. 이 영화는 현대 중국 비극 영화의 대표작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숙명론, 낙천지명(樂天知命) 등 중국 전통 윤리사상을 묘사하며, 또한 남자 주인공의 사상 변화 묘사를 통하여 중국의 전통 윤리 사상 중의 고유한 비극 특성을 해석하였다. 결말 설정 측면에서는 영화가 중국의 전통적인 비극 중의 해피엔딩의 패턴을 돌파하며, 끝까지 슬퍼하는 열린 결말을 선택하여 현대 중국 비극 영화의 시대적 특징을 더욱 살렸다. <5일의 마중>은 비극 영화로 하여 독특한 완곡함과 온정이 드러났다. 이는 중국 강권 정치 문화와의 타협 때문만이 아니라 중국식 비극의 미학에 대한 감독의 이해와 관련이 된다. 동양의 감정 표현 구조와전통 유가의 윤리적 표현에서 비롯된 이러한 이성은 영화의 서사 구조에서 지대한 장력을 형성하였다. 영화 언어의 상징 기호를 사용함으로써 비극적 미적 감각에 영화 서사의 함축적 특징을 형성하였는데, 이러한 함축성 또한 현대 중국 비극 영화만 고유한 것이다. 또한 장이머우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비극적 의식을 표현하고, 문화적 화해를 통해 비극적 서사 전략을 구사하며 정치적 탄압 속에서 예술적 돌파를 추구하는 자신의 창작 지혜를 보여주었다.

선진(先秦) 황노학(黃老學)의 형성기원(形成起源)과 변천양상(變遷樣相) 연구(硏究) (A study of the formation of origin and the changed aspect on xian-Qin Huang-Lao philosophy)

  • 김예호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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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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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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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본 논문은, 현재까지 학계에서 정론(定論)되지 못한 '황로학의 정의와 범주'에 대해 '자연사와 인간사의 정치사상이 결합된 학문'이라는 관점을 견지하는 가운데, 황로학이 발원해서 형성되고 완성되는 과정을 고찰한다. 즉, "국어(國語)"와 "좌전(左傳)"을 통해 황로학의 형성기원을, 학파 간 사상적 수용과 교류가 자유롭게 진행된 직하학(稷下學)의 개방적 학풍을 배경으로 황로학이 진일보하며 하나의 체계적인 학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황제사경(黃帝四經)"과 "한비자(韓非子)"를 통해 완성된 형태의 황로학이 출현하는 흐름을 고찰한다. 또한 본 논문은, 황로학의 흐름을 '도가(道家)의 제가(諸家) 수용'과 '제가(諸家)(법가(法家))의 도가(道家) 수용'이라는 두 측면에서 조명하는 가운데, 황로문헌들에 내재한 고유한 세계관과 '무불위(無不爲)'의 정치방법론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내용과 형식의 간극을 분석한다.

아동 돌봄의 사회화 인식에 관한 탐색적 연구 : 정치성향과 세대(연령)의 효과를 중심으로 (A Study on the Cognition of Socialization in Caring : Effects of Political Ideology and Generation(age))

  • 정은수;임효연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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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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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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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 연구는 아동돌봄의 사회화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살펴보고, 아동돌봄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저변의 확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자 실시되었다. 정치성향과 세대(연령)의 차이는 아동돌봄의 사회화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변수로 증명되었다. 특히 연령은 유교사상의 영향을 받은 한국사회에서 연령이 높을수록 돌봄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한정하는 경향이 있어 돌봄 문제의 사회화 인식에 세대(연령)이라는 중요한 변수가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또한 정치성향이 진보적일수록 돌봄의 사회화 인식이 높아짐을 확인하였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돌봄의 사회화 문제가 과도하게 정치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결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 결과를 토대로 제언할 수 있는 것은 소득이라는 변수가 돌봄 문제의 사회화에 영향을 미치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변수로 도출 되지 못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복지 증세와 관련하여 소득계층에 따라 국민적 저항을 유발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아동의 돌봄 문제에 대해서는 소득수준은 아동돌봄의 사회화 인식이 변화에 유의한 변수로 분석되지는 못하였다. 이는 돌봄 문제는 소득의 계층차이 보다는 다양한 사회적 요인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따라서 본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돌봄 문제에 대하여 사회적 해결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정치적 수단화를 경계할 방안을 모색하고 연령에 따른 가치관의 차이를 극복하고 사회통합이라는 거시적 관점을 적용하여 접근할 구체적 시도를 마련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예산 오산리 사례를 통해서 본 근기권(近畿圈) 종족촌락 형성의 정치.경제적 배경 (Political and Economical Background of Formation of a Lineage Village in the Vicinity of Seoul: A Case Study of Osan-ri, Yesan)

  • 임병조
    • 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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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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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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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종족촌락이 일정한 시기에 전국적으로 일반화되었다는 사실은 이것이 등장했던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반영한 결과물입을 의미한다. 따라서 당시의 사회적 배경, 특히 지배집단으로서 사대부계급의 정치적 입장의 변화 및 강력한 혈연 공동제의 물적 기반이 되었던 토지제도와의 관련성 속에서 종족촌락의 발생과 발달을 살펴보는 것은 종족촌락을 이해하는 한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정치적 갈등이 지속되면서 사대부들은 학연, 지연뿐만 아니라 혈연을 중요한 정치적 배경으로 활용하였으며, 사적 토지 소유를 확대함으로써 종족촌락의 형성과 확대를 위한 물적 토대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근기권(近畿圈)의 종족촌락들은 한양에 근거를 두고 있던 유력 가문들의 경제적 근거로 활용되었으며 이러한 근거를 확보해 가는 과정에서 정치권력이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정치적 갈등으로 오산리에 입향한 영산신씨 가문은 사적 토지 소유와 가문 출신의 현달한 관료를 배경으로 17세기 후반에 이르러 안정된 종족촌락으로 발달하였다.

1196년 경원당화(慶元黨禍)의 사상정국에서 주희의 정치적 좌절을 통해서 본 주희의 도학정치고찰 (A Study of Zhuxi's Daoxuezhengzhi(道學政治) through his political frustration in the partisan struggle of 1196 Qingyuandanghuo(慶元黨禍))

  • 이욱근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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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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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73-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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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 연구의 목적은 정치상황별로 주희가 제기한 정치적 의견들과 주희의 일관된 정치적 문제의식을 종합적으로 재구성하여 그가 추구한 도학정치를 이해하는 것이다. 남송의 문제는 정치였다. 정치의 구조적 모순이 모든 영역에 걸쳐 존재하였다. 주희에게 정치의 시작처는 황제와 조정이었고, 정치의 결과처는 백성이었다. 조정에 대해서 주희는 황제의 측근들이 황제의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들 중심의 정치세력을 조장함으로서 조정이 제 역할과 기능을 하지 못하였고, 그 결과 정치부패로 전개되었다고 보았다. 그럼으로서 황제권의 약화, 기강의 붕괴와 공론과 공의의 부재가 조정에서 이루어졌고, 조정 밖으로는 정치적 신뢰의 부재, 민생의 피폐와 풍속의 악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남송의 정국은 측근들의 정치적 성격과 정향이 바뀌었을 뿐, 정치부패의 기저인 정치행태와 정치문화는 변화가 없었다. 정치부패의 일상화는 남송 전 부문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주희는 남송의 문제들에 대한 정치적 접근의 우선성을 보여준다. 주희의 정치적 접근은 위로는 황제로부터, 아래로는 백성으로부터 시작된다. 황제에게 정심술과 공평한 인사정책을 통한 기강확립의 요구는 정치의 시작처인 조정 정치에 대한 해법이었다. 백성들의 삶과 직결된 지방공무원들 중 친 권신 중심세력들의 제거, 그리고 군전제나 경계법처럼 정치적성격을 갖고 있는 정책에 대한 개혁의 요구는 정치의 결과처인 민생 정치에 대한 해법이었다. 그러나 주희의 정치적 이슈들은 남송 정국의 복잡한 권력구조와 역학관계에 의해 빈번히 좌절되었다. 경원당화는 주희의 그러한 정치적 좌절의 최종지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주희의 도학정치의 실패뿐만 아니라 남송 도학정치의 중단을 야기하였다.

조선 전기 도가사상 연구 - 「심기리편(心氣理篇)」과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도가'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aoism Theory in the Former Half of Joseon Dynasty)

  • 김윤경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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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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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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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조선 도가사상 연구는 지금까지 조선후기를 중심으로 다루어져 왔다. 조선시대 5권의 "노자" 주석서와 2권의 "장자" 주석서가 모두 임진왜란 이후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조선전기의 도가사상 전개를 고찰하기 위한 1차 작업으로 개국초기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던 정도전의 "심기리편"과 "조선왕조실록"의 "태종실록"에서 임란 이전까지 200여년 간의 사료 안에서 도가 사상에 대한 언급을 발췌하고 이를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연구결과를 도출하였다. 정도전과 권근은 도가를 '도덕이 없는 양생술의 추구'로 비판하였다. 도교와 불교의 비판 위에서 성리학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한 것이다. 이후 "조선왕조실록"에서 도가는 세 가지 단계로 변용(變容)된다. 첫째는 '노자'를 장생의 사술, 신선의 방술, 도교의 최고 신으로 환치시켜 이단시하고 배척하는 단계이다. 둘째는 1차적인 배척의 논의에서 벗어나 도가사상의 핵심으로서의 "노자"와 '신선술' 및 기복신앙의 대상이 되는 '도교 신'인 '노자'와 분리해서 보려는 단계이다. 셋째 3차 논의는 "노자"의 정치술과 처세술에 대한 존숭으로 드러난다. 즉 조선 전기 도가 사상은 건국초기에서 15~16세기에 이르기까지 초기의 강력한 벽도불에서 벗어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전개된다. 이러한 점은 조선 전기의 도가를 단순히 성리학의 도통관에 따른 이단논리로 해석할 수 없는 지점이다. 건국 초기의 벽이단론에서 도가에 대한 온정적 태도를 취하게 되고, 유학과 사상적으로 융합되는 처세술과 정치술을 수용하는 변화를 보인다. 즉 '노자(老子)'는 비도덕적인 장생불사(長生不死)의 탐욕을 가진 이단(異端)에서 유교국가의 처세술과 정치술로 수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수용은 조선 후기로 가면 도가서(道家書)에 대한 적극적 해석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장준하의 언론사상 연구 (Jang Jun-Ha's Journalism Thought)

  • 김영희
    • 한국언론정보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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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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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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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이 연구는 한국 현대 언론사상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한 작업의 하나로, 1950~1960년대 월간 잡지 "사상계"를 발행하여 잡지 저널리즘의 영향력을 당시 주요 신문 못지않게 키운 잡지언론인 장준하의 언론사상을 고찰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를 위해 장준하의 언론에 대한 인식이 어떤 과정으로 형성되었으며, 그의 언론사상의 주요 논리와 의미는 무엇인지 고찰했다. 이를 바탕으로 장준하 언론사상의 성격과 관련되는 문제들을 검토했다. 연구 결과 "사상계" 창간 당시부터 일관되게 나타나는 장준하의 언론사상의 토대는 지식청년층을 계몽하려는 민족주의적 계몽언론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1950년대 말부터 일종의 해설저널리즘 또는 방향제시 저널리즘의 성격도 보였다. 1962년이후 "사상계"에 대한 정치적 탄압이 심해지면서, 그의 언론사상은 일종의 주창 저널리즘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났다고 평가된다. 장준하의 언론사상은 당시 한국 언론계와 학계에서 새롭게 인식되던 구미의 언론개념과 이론을 이해하고 수용하여 당시로서는 선진적인 사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주장과 논리는 언제나 구체적인 실천과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었다고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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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유학의 사상연원과 쟁점 - 강유위康有爲와 장경蔣慶을 중심으로

  • 이연도
    • 중국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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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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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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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As the continent's Neo-Confucianism has emerged as an issue recently, Kang You-wei has become a hot topic in Chinese thought circles. His view that the goal of Confucianism is ultimately to reformbased on the "ChunQiu Gongyang" has been drawing new attention in the 2000s with the emergence of Political Confucianism. This paper reviews Kang You-wei's study of Chun Qiu Gongyang, which could be called the ideological origin of continental Confucianism, and also analyze the development process and problems of political Confucianism. In order to understand the current discussion of Confucian constitutionalism, an understanding of Kang You-wei should be preceded. Because most of the problems raised in continental political Confucianism, began with the idea of Kang, and they insist on returning to Kang You-wei as well.

금융지리학의 진화: 마르크스주의 지리정치경제학부터 '재정치화'하는 문화경제지리학까지 (Evolving Financial Geography: From the Marxist Geographical Political Economy to the 'Re-Politicizing' Cultural Economic Geography)

  • 이재열;박경환
    • 한국경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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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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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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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금융지리학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하는 경제지리학의 분과학문이다. 이 논문에서는 오늘날 금융지리학의 모습을 형성한 세 시기의 주요 '물결'을 살펴 정리한다. 1990년대 이전까지 금융지리는 분과학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마르크스주의 지리정치경제학에서 생산자본 축적의 부수적 현상인 것으로 이해되었다('제1의 물결'). 1990년대 담론, 실천, 행위주체성을 중시하는 문화적 전환과 포스트구조주의에 영향을 받으며 금융지리학은 하나의 분과학문으로 정립되기 시작했다('제2의 물결').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기존 문화경제지리학적 담론의 권력과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성찰하고 변화하려는 노력이 일고 있다. 문화경제지리학 관점의 '재정치화'는 신푸코주의에 입각한 통치성과 금융주체화에 대한 분석과 논의를 통해서 진행되고 있다('제3의 물결'). 이러한 물결들의 영향력 때문에 오늘날의 금융지리학은 서로 다른 사상적 기반, 분석의 수준과 대상, 주체에 대한 인식, 권력과 정치에 대한 이해, 금융화와 금융의 지리를 설명하는 방식이 공존하며 경합·경쟁하는 학문적 담론과 실천의 장이 되었다.

플라톤의 철인왕 통치 (Plato's rule of philosopher-king)

  • 김윤동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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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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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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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플라톤의 정치사상은 <국가>, <정치가>, <법률>이라는 세 대화편에서 전개된다. 당시의 혼란스런 정치적 상황에서, 그는 모든 시민이 행복할 수 있는 '정의로운 나라'를 염원하면서 <국가>에서 이상국가의 설계도를 제시한다. 그런데 이상적인 나라의 핵심요소는 철인왕이다. 플라톤은 철학적 이성과 통치 권력이 결합되지 않는 한, '아름다운 나라'가 건설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보여준 그의 형이상학, 영혼론, 교육론 등은 모두 이 철인왕 통치를 위해서 동원된 수단들이다. 다시 말해 철인왕 안에서 그의 모든 철학적 이론들이 용해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러한 이상적 통치자의 등장이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정치가>의 과도기를 거쳐 <법률>에서 법률로 다스려지는 차선의 국가를 모색하게 된다. 그렇다면 플라톤은 이상국가의 꿈을 완전히 저버렸는가, 아니면 완전한 실현은 아닐지라도 법을 통해 이에 근접하고자 했는가? 또한 통치자와 법은 상호대립의 관계에 있는가, 아니면 상호 보완의 관계에 있는가? 이러한 문제들을 본 논문에서 고찰하고자 하며, 마지막으로 플라톤의 이상국가와 철인왕을 성경의 저자들이 증거 하는 하나님나라 및 예수와 비교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