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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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조직에서 학습조직 구축수준 평가 및 조직유효성과의 관계분석 (Relationship between the Development Levels of Learning Organization and Organization Effectiveness in Hospital)

  • 이선희;조우현;남종해
    • 보건행정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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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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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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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This study was planned to investigate the relationship between development levels of learning organization and organization effectiveness in Hospital. Data were collected from 285 respondents who have participated in 'Learning Organization Project'(response rate =$50.5\%$). Structured questionnaire were applied by self administrated survey for two weeks since 2003 May. Main results were as follows; In the result of factor analysis, four factor were created and almost questionnaire items were classified into as same categories as theoretical concepts. Cronbach's a coefficient also showed over 0.7 in all categories. This result means that measurement tool to evaluate the development level of learning organization is valid and reliable. In the comparison of the development level of learning organization by participants' specialties, managerial workers perceived the lowest construction level, while medical technicians evaluated it as the highest level. In regression analysis, the perception levels of work environment, task and human aspect showed positive relationship with job competency significantly. For job satisfaction, levels of task and human aspects had positive relationship significantly. In addition, for organizational commitement, levels of organization and human aspect were positive predictors. Finally, for the satisfaction about experience of learning organization project, levels of environment, task and hmm aspects were related positively. We concluded from these result that the positive relationship between construction levels of learning organization and organization effectiveness was extended to hospital, besides industrial fields. We recommend the introduction and facilitation of learning organization project in various settings to improve the competency of knowledge management in individual and organizational levels.

안면부 및 경구개부 기형을 초래한 거대 여포성 치아낭종 1례 (A Case of the Dentigerous Cyst which produce the Facial and Palatal Deformity)

  • 박순일;문태용;이석용;윤강묵;심상열
    • 대한기관식도과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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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기관식도과학회 1981년도 제15차 학술대회연제순서 및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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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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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1
  • 여포성 치아낭종은 치아여포와 관련되어 발생하는 낭종으로서, 매몰 혹은 미립치아의 치관부가 완전히 형성된 이후에 치관부와 퇴행성 변화를 일으킨 사기질 상피 사이에 액체가 저류되어 낭종으로 발달된 것을 말한다. 여포성 치아 낭종은 전 치성낭종의 약 20%를 차지하며, 영구치에서 잘 생긴다. 하악골에 주로 발생하며, 특히 매몰치아가 흔한 하악골색 제 3 대구치, 상악골의 견치에서 잘 볼 수가 있다. 안면부 기형이 나타날 때까지는 임상증세가 없는 것이 보통이나 종들이 커지면 안면부 기형과 함께 구개부 융기, 종물부위의 이물감, 암통 및 인접치아의 치근 흡수등을 초래하기도 한다. 드물게는 범람종, 상피암 및 점막상피암등의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조기적출을 하는 것이 좋다. 진단방법으로는 X-선 촬영이 중요하며 이때에 치관주변부가 투명하게 나타난다. 저자들은 최근 안면부 기형 및 경구개 융기를 초래한 거대 여포성 치아남종이 있던 15세 남자 환자를 치험하였기에 문헌적 고찰과 함께 보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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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남종화(南宗畵)의 예술심미 고찰 (The foundation and Characteristic on the Aesthetic of EuiJae Huh BaekRyun' Namjonghwa)

  • 김도영
    • 문화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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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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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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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호남 남종화의 상징적 거목이자 호남문화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의재 허백련(1891~1977)은 진도출신으로 소치 허련의 방계이며, 미산 허형의 제자이다. 전통 남종화 정신과 그 기법에 충실한 화격(畫格)을 자득(自得)·자화(自化)하였다. 의재(毅齋)는 광주에서 '연진회(鍊眞會)'를 발족시켜 후진양성을 도모하였고, 해방 후 무등산 아래 산장을 짓고 다도인으로서, 그리고 민족정신을 강조하고 실천했던 사회교육자로서의 또 다른 면모도 보였다. 그는 한시와 화론에 조예가 깊었고, 서예에 있어서 독특한 심미경지를 구현하는 등 시(詩)·서(書)·화(畵) 삼절(三絶)의 전형적 서화가였다. 의재(毅齋)는 특히 산수화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그의 화풍은 예황풍(倪黃風)의 갈필(渴筆)로써 기존 화법을 준수하면서도 문기(文氣)를 중요시 여겼으며, 탈진습기(脫盡習氣)하여 새로운 실험정신으로 끊임없이 도전했다. 의재(毅齋)의 작품세계는 화풍이나 추구하는 관점의 변화를 작품에 사용한 낙관(落款)을 기준으로, 고법(古法)과 사의간원(寫意簡遠)의 숙련기였던 '의재(毅齋)'시대, 실경(實景)과 남화(南畵)의 융합 화풍으로 절정기를 보였던 '의재산인(毅齋散人)'시대, 청담평안(淸談平安)한 신품경지(神品境地) 구현으로 독자적 화풍을 이룬 '의도인(毅道人)'시대 등 총 3시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의재(毅齋)의 공헌은 동양회화의 지류인 한국회화문화의 정통 남종화에 대한 한 축을 이어왔다는 미술사적인 평가를 넘어 남도화의 보편적 정신과 지역적 특성을 바탕한 실경과 정서를 살린 창의적 계승을 통하여 현대를 잇는 조종(祖宗)이었음을 인식하고, 그의 예술정신과 전통에 대한 열정과 실험정신을 계승해야 할 것이다.

남농(南農) 허건(許楗) '신남화(新南畵)'의 회화심미 고찰 (A Study on the Painting's Aesthetic of Namnong Heo Geon's NewNamhwa)

  • 김도영
    • 문화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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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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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7-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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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광복 이후의 한국 화단은 일본화풍의 탈피와 전통회화의 재인식 및 재창조를 통한 한국적 미의식을 확립하고 자 탐구하였다. 조선 후기 호남 화단의 실질적 종조(宗祖)라 불리었던 소치(小癡)의 손자로 태어난 남농(南農) 허건(許楗)(1908~1987)은 이러한 한국 화단의 현실을 직시하고 한국 남종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이를 변유적으로 재인식·재창조하여 현대적 서구양식과 실경을 융합한 파격적 구도로 '신남화(新南畵)'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등 한국 남종화를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킨 한국화단의 거목이다. 남농(南農)의 회화세계는 관지(款識)를 근거로 하여 1930년대 '남농산인(南農山人)' 시기, 1940년대 중반~50년대 초반 '남농외사(南農外史)' 시기, 그 이후의 '운임산방주인(雲林山房主人)' 시기 등 총 3시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남농산인(南農山人) 시기는 소치(小癡)와 미산(米山)의 전통 남화의 가전화풍을 온전히 습득하고, 선전(鮮展) 출품을 위한 일본화풍의 반영으로 향토적 실경을 많이 다루어 가전화풍과 일본화풍의 혼재기이다. 남농외사(南農外史) 시기에는 해방 이후 새로운 조형성을 전통 남화풍에서 탐색하였다. 특히 남도의 풍경과 정감을 기반으로 하여 자유분방한 농담 조절과 함께 속필과 독필, 갈필로 대상을 표현하면서 서정성과 향토애 짙은 실경향토화와 산수화에 주력하였다. 운임산방주인(雲林山房主人) 시기는 현대미술의 흐름에 어느 정도 부합하면서도 전통 회화에 걸맞는 사의적 문향이 넘치는 구도로 차츰 생략화되면서 개성적 화법을 강하게 드러낸 갈필, 독필, 속필의 적절한 운용을 통해 수묵담채의 서정적인 산수와 소나무를 많이 그렸다. 그의 산수화와 향토화는 누구에게나 체험적인 친근감과 정감을 자아내게 하는 모습을 담고 있으며 향수애와 자연애를 담고 있다. 남농(南農)은 이를 '신남화(新南畵)'로 명명하였다. 남농(南農)은 '남화연구원'을 설립, 후진양성에 진력하였는데, 이곳에서 임인(林人)의 아들인 許文과 남농(南農)의 장손자인 허전(許塡) 등이 수련하여 5대째 운림산방의 화맥을 계승하고 있다.

의료기관 학습조직 운영효과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Effectiveness of Learning Organization Managed by Medical Center)

  • 남종해;조우현;이선희;권순창;문기태;강명근
    • 한국병원경영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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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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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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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This study was designed to suggest a learning organization in a medical center by examining the factors to influence effectiveness of the learning organization. We collected the data of 586 persons who participated once or more times in the learning organization managed from 2000 to 2002 by Y Medical Center located in Seoul, and included the data of 285 persons in the final analysis. The results of the study ar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as the results of examining the regression coefficients to predict the effectiveness of and satisfaction with the learning organization through the learning level, learning method and learning organization constructing level as the general variables, the important influential factors were shown as follows: 1)knowledge creation, knowledge storing, private learning, organizational learning, and learning organization construction of occupational and human levels as the factors to predict the working competency; 2) learning organization construction of the human level as the factors to assume the duty satisfaction; 3) gender, working years, private learning, team learning and organizational construction level for the prediction of the organizational commitment; and 4) medical technical service, knowledge creation, organization learning, and constructing level of the environmental and human levels for the assumption of the satisfaction with experience in the learning organization. Based on the study results of the effects in managing the learning organization, we can conclude the followings. First, the members who are in various working positions and occupations need to continuously participate in the learning organization. Second, to raise the organizational outcome from the management of the learning organization, it is necessary to establish systematic concepts in the constituents of the organizational effectiveness such as working competency improvement, duty satisfaction and organizational commitment, and the experience satisfaction of the learning organization. Finally, the future of the organization depends on the learning competencies of the organization members. To continuously exist and develop the organization, the private learning of the organizational members should be constantly spread and shared over the organizational level, and the usual innovations such as repetitive and habitual organizational learning should be generally tried out throughout the whole field of the mana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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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임(雲林) 예찬(倪瓚)의 사상(思想)과 그의 문인화(文人畵) 경계(境界) (Unlim Yechan's Thoughts and his literati paintings land)

  • 권윤희
    • 문화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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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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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9-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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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예찬은 중국 원말 사대가의 한 사람이다. 그는 이민족의 지배를 받은 시대적인 환경하(環境下)에서 자신의 독특헌 예술세계룰 구축하였다. 그의 화론인 흉중일기(胸中逸氣)는 동양 전통사상인 유(儒), 불(佛), 선의(禪) 영향으로 이루어진 정신적인 산물이다. 일기사상(逸氣思想)은 도가적(道家的)인 청담(淸淡)이나 허무(虛無), 무위사상(無爲思想)의 영향으로 문인(文人) 사대부(士大夫) 사이에 일어난 자연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다. 이는 세속을 초월하여 일어났으며 남종 문인화(文人畵)의 이론적인 토대가 되었다. 예찬(倪瓚)의 일필(逸筆)은 흉중(胸中)의 일기(逸氣)를 그리는 방법이다. 이는 그가 오랫동안 노력하고 실천한 가운데 얻어진 문인화 경계이다. 예찬(倪瓚)은 생활의 체험 속에서 깨달은 선의(禪) 오경(悟境)으로 시서일체(詩書一體), 시선일치(詩禪一致)의 높은 경지를 실현하였다. 그의 예술정신은 흉중일기로 대변되는 탈속원진(脫俗遠塵), 일소부주의 고답(高踏), 시서일체(詩書一體)의 높은 경지를 표출하였다. 이를 통하여 그는 원말(元末) 명초(明初)의 화단에 독창적인 문인화(文人畵) 세계를 구축하였다.

소치 허련(1808~1893)의 사의(寫意) 묵란화 (A Study on Xieyi (寫意) Ink Orchid Paintings by Sochi Heo Ryun)

  • 강영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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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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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0-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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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소치 허련(小癡 許鍊,1808~893)은 조선 말기 대표적 남종 문인서화가이며 남도 문인화의 시조로,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의 문하에서 문인의 학문적 면모와 화원의 능숙한 화법을 모두 체득해 '사의화(寫意畵)'를 이룬 직업형 문인화가였다. 허련의 산수화는 그의 화격을 높이 산 김정희의 지도에 의해 형성되었으나, 추사 사후 그의 나이 70세경에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묵란화는 '추사란(秋史蘭)'의 양식과는 관련이 없고, 전체적으로는 고법(古法)을 따르면서도 거칠고 호방한 필치의 사의성을 띠고 있어 주목된다. 허련의 묵란화는 사군자류 중 화란법(畵蘭法)을 남길 만큼 관심을 가졌던 분야임에도 전체적인 작품의 조사나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화란법과 제발(題跋), 인문(印文)에 나타난 난화관(蘭畵觀)을 통해 그의 묵란화 인식을 살피고, 화보를 임방하고 당대 화풍을 수용하면서도 개성적인 필묵의 운용으로 형성된 소치란(小癡蘭)의 면모를 파악해보고자 한다. 특히 허련은 당시 묵란화의 대가인 이하응이나 조희룡과 화우(畵友)로 지내지만 난 그림에 있어서는 김정희의 난화론을 바탕으로 삼아 초기 지두란(指頭蘭)을 그리는 등 자신만의 화란법을 형성하고 예술세계를 구축한다. 또한 난화는 유가적 전고(典故)를 바탕으로 그리지만 제발과 인장의 내용을 통해서는 유가적 성격뿐만 아니라 도가 불가적 의미까지 더해져 허련의 인생 지향과 사유세계를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복합적이고 다양한 철학과 심미의식이 반영된 허련의 묵란화는 시기에 따라 변화 과정을 거치며 만년에 사의 묵란화를 형성한다. 즉 그는 직업형 화가였음에도 말년에 더욱 활발히 제작했던 사의란을 통해 조선 사대부의 이상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려 했음을 알 수 있고, 소치란은 문인의 표상을 실현하려는 사의적 시각과 의지의 발로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역참동계주해(周易參同契註解)』에 인용된 도교서와 그 유통 정황 (A Study on Taoist Books Quoted in Juyeokchamdonggyejuhae and the Circumstances of Their Circulation)

  • 최재호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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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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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5-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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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권극중은 조선시대에 "참동계"를 주석한 "주역참동계주해"를 통해 자신의 내단사상을 체계적으로 확립했다. 그런데 "주해" 내에 인용된 도교서들과 인물들을 볼 때, 그 내단사상의 체계에는 중국 도교사상의 영향이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권극중 내단사상의 특징과 의의를 좀 더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도교사상과의 비교 연구가 필요하다. 이 논문에서는 비교 연구의 첫걸음으로 "주해"의 인용문을 통해 저술할 당시의 참고 도교문헌을 유추해 보고, 이를 통해 조선시대 유통된 도교서의 정황을 재확인하였다. "주해"에 드러난 인용문을 보자면, 도교서명으로 시작하는 경우, 도교 인물명으로 시작하는 경우, 그 외 '옛 시결왈' 등으로 시작하는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를 "도장"과의 비교를 통해 살펴본 결과 권극중이 저술할 당시 참고한 도교서의 목록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 참고 도교서들의 판본은 당시 조선에 유통되던 "참동계"주석서와 도교총서류 내의 도교서인 것으로 판단되며, 목록들을 비교해 본 결과 권극중은 "도서전집" 내의 도교서를 많이 인용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중에서인용문을 통해 드러난 도교서를 통해 볼 때, 권극중은 진치허와 남종의 내단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선비화가 윤덕희(尹德熙)·윤용(尹愹) 부자(父子)의 변유적(變維的) 회화심미(繪畵審美) 고찰 (The Newly changed Painting's Aesthetic of Seonbi painter Yoon DeokHee and Yun Yong Father and Son)

  • 김도영
    • 문화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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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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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9-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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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와 낙서(駱西) 윤덕희(尹德熙)(1685~1776), 그리고 청고(靑皐) 윤용(尹愹)(1708~1740)으로 전해져 온 해남윤씨 3대의 화맥과 학문사상은 해남에 본거지를 두었지만, 주로 한양을 무대로 예술혼을 펼쳤고 가법을 계승하여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선비출신 서화 가문으로 명망을 쌓았다. 공재(恭齋)의 장남으로 태어나 82세를 살았던 낙서(駱西)는 친부 및 남인(南人)계열 이서(李漵)에게서 다양한 학문과 서화를 익혔다. 조선 초·중기 화풍을 섭렵하고 남종화법을 수용하면서 서양식 음영법을 가미하여 대상의 사실성과 입체감을 추구했는데 미법산수(米法山水), 원말(元末) 사대가(四大家), 명대(明代) 오파(吳派), 동기창(董其昌), 청대(淸代) 안휘파(安徽派) 등 다양한 화법을 융복합하여 변유적 회화심미를 이루었다. 그는 특히 말 그림과 도석인물화에서 탁월한 재능을 드러냈는데, 박학(博學) 실득적(實得的) 가풍에 비덕적(比德的)으로 구현한 독창적 진경미(眞景美)를 발현하였다. 낙서(駱西)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32세로 요절한 청고(靑皐)는 다양한 수지법(樹枝法)을 구사한 남종산수화에 능했는데, 물상의 정확한 사실묘사를 위해 세밀한 관찰과 깊은 탐구심, 그리고 화보 화제시의 새로운 시정(詩情)을 펼치면서 독창적 구성의 시의도(詩意圖)를 그렸다. 또한, 가전된 화풍을 변유적으로 재해석하여 진경(眞景)을 넘어 이형사신(以形寫神)의 진정미(眞情美)를 발현하였다. 공재(恭齋)를 계승한 낙서(駱西)와 청고(靑皐) 부자의 서민풍속화는 조선 후기 새로운 장로로 자리잡게 되는 등 이들 부자의 변유적 회화심미와 화법은 녹우당 화풍을 이루어 조선 회화풍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한국회화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의 회화심미(繪畵審美) 고찰 (A Study on the Painting's Aesthetic of Gongjae Yoon Duseo)

  • 김도영
    • 문화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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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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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5-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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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조선 후기 해남(海南) 출신의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는 숙종년간 활동한 선비화가로서 조선 중기에서 후기로 교체되는 전환기에 조선 후기 사실주의 회화의 선구자로서 그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그는 남인(南人)의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나 당쟁에 휘말려 출세길을 접고 서화와 학문에 몰두하였다. 조선 후기가 시작되는 18C는 실학(實學)이 대두되고 민족주의에 대한 자각으로 진경(眞景)시대가 열린 시기였다. 이러한 때 실학사상을 예술세계에 접목하여 실사구시적(實事求是的)이며 현실개혁적(現實改革的) 심미의식을 발휘하여 서민풍속화 개척, 서양화법의 적용, 사실주의적 기법 추구, 남종문인 화풍 도입 등을 도모하였다. 철저한 학고(學古)를 통해 변통(變通)을 도모했던 그의 회화관은 학(學)·식(識)의 학문과 공(工)·재(才) 기예적 요소를 두루 갖추어야 화도(畵道)를 이룰 수 있다는 형신(形神) 겸용을 강조하였다. 그는 다양한 화목을 두루 섭렵하였는데, 특히 인물화는 이형사신(以形寫神)의 사실주의 표현을 심미 특징으로 한다. 대표작인 「자화상(自畵像)」은 극사실적 묘사력과 구도의 혁신성이 탁월하며, 자신의 울분을 비장감있게 전신사조(傳神寫照)한 파격적 실험정신이 돋보인다. 그의 산수화는 형사적 진경과 신사적 관념을 융합하여 형상으로써 도를 아름답게 구현한 망적지적(忘適之適)한 이형미도(以形媚道)를 이루었다. 한편 개방적 사고로써 다양한 서민 생활을 소재로 삼은 서민풍속화는 이형사진(以形寫眞)의 실득(實得)으로 파격을 도모하였는데, 이는 부패한 권력에 대한 소극적 항거이자 애민정신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후 그의 화풍은 장남 윤덕희(尹德熙), 손자 윤용(尹愹)에게 가전되어 전해져 조선 후기 서화예술의 변화와 부흥을 선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