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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들의 기원지(起源地) 재고(再考) (Reconstruction of the Origin of the Gudle)

  • 오승환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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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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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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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이 글은 기존에 알려진 구들의 기원지를 검증하기 위한 연구이다. 구들의 기원지는 2006년 송기호에 의해 여러 지역에서 발생하였다는 다원설이 제기되었으며, 현재까지 가장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러나 이 가설이 나오고 10년이상 지나면서 다원설은 오히려 구들의 계통과 발달 과정을 밝히는데 혼란을 야기할 뿐 아니라 확대 재생산되고있다. 다원설에서 구들의 기원지로 제시된 곳은 중국 동북-한반도 서북한지역(세죽리-연화보유형문화), 한중러 삼국의 국경이 접하는 지역 일대-연해주 남부지역(단결-크로우노프카문화), 자바이칼-몽골 북부지역(흉노문화) 등 세곳이다. 이들 지역은 서로 거리가 멀고 문화적으로도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설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동안 독자적인 발생지로 이해되어왔다. 물론 세죽리-연화보유형문화, 단결-크로우노프카문화, 흉노문화 사이에 상호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된다. 하지만 다원설에서 주장하듯, 구들이 여러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했다고 보기에 이들 지역에서 나타나는 구조와 형태는 물론이고 결합되는 물질자료까지 대체로 일치하는 것은 의심스러운 점이다. 게다가 출현 시기와 지역 역시 기원전 3~2세기의 동아시아지역에만 한정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구들의 구조와 기술적 특징은 열효율을 높여주는 폐쇄 구조의 아궁이, 축열을 해주는 고래, 연기를 외부로 배출시켜주는 배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충분한 기술적 이해 없이 아무나 독자적으로 만들 수 없는 복합적인 기술 구조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구들은 아궁이, 고래, 배연구조 중 하나라도 갖춘 시설을 사용하던 곳에서 발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구들의 기원지로 알려진 지역에서 선행하는 폐쇄 구조의 아궁이나 배연시설을 갖춘 노(爐)가 존재하거나 발달과정이 나타나는지 살펴보았다. 그 결과, 다원설에서 기원지로 알려진 세 곳 모두 이러한 구조가 확인되지 않았다. 이들 지역에서 구들은 기존에 없던 토기 기종, 철제 농공구류 등 새로운 물질문화 요소와 함께 급격히 등장할 뿐이다. 결국 이들 지역은 구들을 발명할 수 있는 조건이 전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외부로부터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들 세지역 모두 구들의 기원지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2010년대에 '학생운동' 말하기 -1990년대와 2010년대의 학생운동 경험 구술과 '우리'의 구성 (Speaking Student Activism in the 2010s -Experience of Student Activism in the 1990s and 2010s and the Composition of 'We')

  • 김시연
    • 대중서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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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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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5-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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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이 글은 2010년대에 이루어진 1990년대와 2010년대의 학생운동 경험 구술을 대상으로, 각 구술에서 '우리'가 그려지는 양상의 차이와 그 차이를 만들어낸 배경으로 2010년대의 조건이 만들어낸 일상적 경험의 누적을 주목한다. 2010년대에 채록된 1990년대 학생운동 경험에 관한 구술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당시의 학생운동 문화에 대한 거리감이다. 1990년대에 대학 생활을 경험한 구술자들의 말 속에서 당시 대학의 학생운동 문화는 사적 관계를 타고 이루어지며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는데, 동시에 그 '자연스러움'은 그것이 구술되고 있는 2010년대의 맥락에서는 '부자연'스럽거나 '이상한' 것으로 이야기되며 현재의 구술자와는 일정한 거리감을 지닌 경험으로 의미화되었다. 이러한 양상은 90년대의 경험이 2010년대에 구술되고 있는 조건과 결부되어있다. 구술자들에게 과거의 경험을 구술하는 '현재'는 '촛불' 이후 이자 '강남역' 이후로 설명되었고, 그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세계인 듯 묘사되며 자신의 과거 경험으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발생케 한 계기로서 위치했다. 균질한 '우리'를 의심케 하는 이 질적 변화는 무엇보다 한국사회에서 젠더 이슈가 가장 커다란 화두였던 2010년대 중반 이후를 살며 새로이 체득된 젠더적 감각에 기반을 둔다. 2010년대의 사회운동 경험에 관한 구술에서는 '우리'의 구성이 더 이상 어떤 공통성을 공유하는 이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수많은 다름에도 불구하고 결집한 개인들과 같이 이해된다. 그리하여 2010년대의 학생운동 구술은 이런 것을 이미 일상의 감각으로 체화한 이들의 경험이 드러난다. 이들이 구성한 '우리'는 사적 관계와는 무관하거나 무관해야 하는 것이었고, 동질성이 가장 두드러진 집단으로 여겨지지도 않았으며, 그래서 시위 당시와 그 자리 바깥에서까지의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무엇도 아니었다. 관련 경험이 내내 조심스러운 태도로 구술되었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이는 결국 '학생운동', 나아가 사회운동과 '우리'로 결집하는 감각을 새로이 질문하고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운동의 주체가 과연 '누구'인가를 묻는 일의 효용을 질문한다. 곧, 운동에서 고정된 '우리'라는 정체성을 규정하는 일의 필요성과 의미를 질문한다. 그리하여, 어떤 고정된 위치나 좌표가 과연 누군가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것인가를 질문한다.

인간과 세계의 미래에 관한 해원상생사상 연구 (Haewon-sangsaeng Thought for the Future of Humanity and World)

  • 배규한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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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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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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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의 목적은 세 가지이다. 하나는 한국 신종교의 대표적 평화사상인 해원상생사상의 의미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해원상생과 해원공사를 후천선경 건설의 원리와 실행기제로 보고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해원상생사상에 내포된 사상적 특성으로 인간과 세계의 미래를 논리적으로 추론해 보는 것이다. 해원상생사상은 해원과 상생으로 구성되는 복합적 개념이다. 해원은 인간·신명·세계에 쌓인 원한과 원한의 구조를 풀어가는 것이고 상생은 서로 간에 잘 되게 하는 작용 또는 잘 산다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해원상생은 원한을 풀고 서로 잘 산다는 말이다. 대순진리회에서의 해원상생은 그 개념이 외연적으로 더욱 확대되어 나타난다. 해원상생은 전 세계의 평화이며 전 인류의 화평으로 확장된다. 선행연구의 통합적 분석과 필자의 새로운 해석에 의해 얻어진 해원상생의 가치와 의미는 원리·법리·윤리·이념으로써 공통적으로 인존, 상생, 평화, 조화, 후천, 선경 등으로 연결된다. 이것은 해원상생이 가지는 어원적 의미보다 해원상생사상이 인간과 세계와 그 미래에 관해 투영되는 가치적 의미는 더욱 깊고 넓다는 것을 말해준다. 인존과 상생, 평화와 조화, 후천과 선경이 가지는 공통의 특성은 모두 인류가 오랫동안 꿈꿔온 대망의 실현이라는 점이다. 이점이 해원상생의 가치와 의의를 세계적으로 확산시키는 이유이다. 해원공사는 상극이 지배하는 선천시대의 원한을 해소하고 상생으로 유지되는 후천세계를 건설하는 강증산의 종교적 행위이다. 그래서 해원상생의 원리는 해원공사에 의해 인간과 세계와 그 미래를 변화시키는 작용력을 가진다. 이 글에서는 해원상생이 '인간욕망의 충족'과 인간과 세계의 '상생적 조화관계'를 이룸으로써 인간은 인존(人尊)으로, 세계는 선경(仙境)으로, 미래는 평화로 변화시킨다고 추론한다. 그래서 해원상생사상은 사회-세계-우주의 변화원리로서 작용하며, 해원상생의 사회적 실현은 인존·선경·평화의 객관적 실재로서의 그 미래를 창출한다. 해원상생사상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 소수의 학자들에게서만 진행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해원(解冤)·상생(相生)·인존(人尊)·선경(仙境)·평화(平和)를 실현하는 해원상생에 관한 연구가 앞으로 더욱 더 확대되어 세계종교사상의 주요 주제로 다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6·25 특집극 <최후의 증인> 연구 (6·25 Special Play Study)

  • 송치혁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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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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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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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이 글은 1979년 MBC의 6·25 특집극 <최후의 증인>을 분석하여 1970년대에 추리와 전쟁이 어떤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분석하려 한다. 전쟁의 기억을 전유하려는 국가의 기획과 이를 새로운 방식으로 전유하려는 제작주체의 의도, 그리고 시청자들이 브라운관을 통해 드라마를 수용하는 맥락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통해 텔레비전의 시대로 전진하는 1970년대의 굴절을 특집극에서 찾으려 한다. 이를 위해 소설 『최후의 증인』과 1979년 방송된 6·25 특집극 <최후의 증인>을 주요 텍스트로 삼아 김성종의 추리가 텔레비전드라마로 각색되는 양상을 살펴보려 했다. 본고가 분석대상으로 삼은 6·25 특집극 <최후의 증인>은 예술성과 목적성을 동시에 갖춘 수준 높은 특집극을 제작하기 위한 기획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텔레비전 시청이 여가의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텔레비전드라마 시청의 핵심적인 이유가 되면서 시청자의 즐거움을 위해 고안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서사들이 정권의 입장에서는 장애물로 인식되었다. 주지하다시피 특집극은 일일극 위주의 텔레비전드라마 시장에 예술성과 목적성을 함께 충족시키기 위해 고안된 예술형식이다. 제작주체가 추진하던 예술적인 드라마와 시청자들이 요구하던 즐거운 드라마의 충돌은 역동적인 소통의 장을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특집극은 본래 기획을 포괄하는 동시에 시청자들의 즐거움을 충족시키기 위해 구성된 새로움은 국민총화의 의도를 아득히 벗어나기도 했다. 추리과정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방식으로 고안된 수사드라마는 시대적 리얼리티를 담보하는 새로운 가능성이 되기도 했지만 본래의 의도를 상실한 저속한 문화의 표본으로 지적되었다는 점에서 역설적인 존재와도 같았다. 그렇게 보자면 한국 대중예술에서 유독 힘을 쓰지 못했다고 여겨졌던 추리물은 1970년대에 이르러 한국 텔레비전드라마와 조우하며 수용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모든 장르물이 그러하겠지만 장르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은 이식과 수용의 과정을 거친 형태로 수용자와 대면하게 된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에서 추리는 반공, 수사와 결합을 거듭하면서 자신의 고유한 양식을 형성해냈다. 이러한 결합의 양상은 <최후의 증인>의 각색 과정에서 선택과 배제된 요소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장르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방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특집극 <최후의 증인>은 1970년대 내내 반공과 수사를 통해 형성된 텔레비전드라마의 추리가 범죄로 이동해가는 경향을 드러낸 중간적인 텍스트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이 글이 도달한 결론은 추리라는 특정한 장르가 텔레비전드라마와 조우할 때 공적 체제에 대한 신뢰감을 드러내는 한편 즐거움에 대한 정치적 해석을 우회할 수 있는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색한다는 사실이다. 전쟁의 기억은 사회와 체제의 어두운 이면에 새겨진 불온한 상상을 중화시켜줄 알리바이에 가깝다. 결과적으로 유신정권의 말기에 방송된 <최후의 증인>은 특집극의 논리가 텔레비전의 매체적 특성과 조우한 기이한 결과물인 셈이다. 텍스트에 새겨진 흔적을 쫓아 사회적 담론에 대응하여 대결과 우회를 거듭하며 소통을 시도하던 시청자들의 장르적 욕망은 이제 다시 복원될 필요가 있다.

조선 후기 종부사(宗簿寺) 낭청(郎廳)의 실태 및 운영체계 - 장서각 소장 『종부사낭청선생안(宗簿寺郎廳先生案)』을 중심으로 - (The Characteristics and Operation System of the Staff Officials at Jongbusi (Court of the Royal Clan) in the Late Joseon Period - Based on Jongbusi nangcheong seonsaengan (Register of Staff Officials at the Court of the Royal Clan) Kept at Jangseogak Archives)

  • 김동근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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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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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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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이 글은 18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종부시의 관원, 그 중에서도 실무를 담당했던 정 이하의 관원에 대한 실태를 분석하는 데 목적이 있다. 종부시는 왕실 보첩을 편찬하고 친진 범위 내의 종친들을 규찰하던 정3품 당하 관서이다. 조선 후기 종부시의 낭청으로는 정3품 당하관 정, 종6품 주부, 종7품 직장이 있었다. 이러한 체제는 조선 시대 내내 유지되다가 1864년(고종 1) 종친부에 합속 되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유일본인 "종부시낭청선생안"은 1794년(정조 18)부터 종친부에 합속 될 때까지 낭청에 대한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의 관직, 성명, 자, 생년, 본관, 전직, 이직 등의 기록들이 남아 있어 조선 후기 종부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이들의 출신 성분을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문과 출신자들이 다수를 차지하였다. 직장의 경우에는 상당수가 소과 출신자들이었는데, 관직을 제수 받을 때에는 문음의 자격으로 임명되었다. 이들의 전직을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해당 관직과 유사하거나 그보다 낮은 품계에서 차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주부의 전직 관서로는 청요직 관서에서의 차출이 가장 많이 나타났으며, 각종 행정아문에서의 차출도 많았다. 직장의 경우 1품아문인 의금부의 도사가 가장 많이 차출되었는데, 이러한 낮은 관서로의 차출은 관직 고하를 떠나 실직을 제수한 것으로 보인다. 종부시 관원의 이직을 살펴보면, 종부시 정은 낮은 직급으로의 이직을 많이 하였는데, 정3품 당상관의 자리가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이며, 주로 청요직 관서로 이직한 것으로 보아 정3품 당하관의 청요직 관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외에 외관으로의 이직도 많았는데 인사 적체 현상을 해소하는 방편으로 이해된다. 주부와 직장은 대체적으로 승진을 하거나 유사한 관품의 직급으로 이직을 하였다. 특히 종7품인 직장은 절대 다수가 승육을 하였다. 종부시 관원을 가장 많이 역임한 가문은 전주 이씨로 전체의 10% 정도를 차지한다. 종부시 관원을 역임한 성관은 조선 후기 문과 급제자의 출신 성관과 대부분 겹치는데, 문과 급제자를 많이 배출한 성관에서 종부시 관원을 많이 배출해 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상위 20개 가문의 역임 횟수가 전체 50% 정도에 이르는데 특정 가문의 관직 독점 현상도 확인할 수 있었다. "종부시낭청선생안"의 기록에 나와 있는 승진, 승육, 가자 등의 사유를 살펴보면 90% 가까이 선원보략 수정 후의 일로 나와 있다. 종부시의 두 가지 직능 가운데 종친 규찰 업무가 조선 후기에 상실된 것으로 보이는데, 연대기 자료에서도 조선 후기 종친 규찰 업무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는 17세기 인조 대부터 종친의 수가 급감하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 종친의 수가 왕실 의례를 거행하는데 미치지 못할 만큼 줄어들게 되자, 종부시에서의 종친 규찰 업무는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고, 왕실보첩 편찬 업무만이 남게 된 것이다. 이렇듯 종친의 위상이 격하되자, 흥선대원군은 종친의 위상 강화 및 왕실 권위를 높이려는 의도로 종친부와 종부시를 통합하게 되었다.

우주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국제법 연구 (A Study on the Peaceful Uses of Outer Space and International Law)

  • 김한택
    • 항공우주정책ㆍ법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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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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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3-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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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1963년 유엔(UN)은 결의로 채택한 '우주법선언'의 원칙 4에서 "우주활동은 유엔헌장과 국제법에 따라 국제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서 및 국제협력과 이해를 위해서 행해져야 한다."고 함으로서 우주의 탐사이용은 군사적 목적이 아닌 '평화적 목적'(peaceful purposes)으로 수행되어야 함을 천명하였다. 그리고 1967년 우주조약 제4조와 1979년 달조약 제3조에서 우주의 탐사이용은 1963년 우주법 선언과 마찬가지로 군사적 목적이 아닌 '평화적 목적'으로 수행되어야 함을 규정하고 있다. '우주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표현이 정부의 성명서나 여러 다자조약들에서 발견되지만 이 용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여 아직 명확한 의미가 정의된 바는 없다. 이 글에서는 '우주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용어가 국제법상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지를 살펴보고자 하는데, 우선 국제조약에서는 '평화적 이용'이라는 용어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 지 알아보고, 우주 관련조약들과 결의 및 연성법상 '우주의 평화적 이용'의 의미를 분석하여 보았다. 한국은 2009년과 2010년 두 차례의 실패를 거울삼아 마침내 2013년 1월 30일 자국의 나로호 기지에서 나로호를 발사함으로서 세계에서 11째 스페이스클럽 (space club)에 진입하였다. 중국이 이미 제3의 우주강대국에 진입하였고, 일본도 우주기본법을 바탕으로 우주개발의 군사적 이용의 근거를 마련하였으며, 북한도 계속된 미사일발사와 함께 러시아와 우주 개발 협력 체제를 모색하고 있는 상황들을 고려해 볼 때 한국의 우주개발은 그 어느 때보다 매우 중요한 시기에 처해 있다. 미국이 소련의 Sputnik 1호 발사로 인한 큰 충격으로 교육제도까지 개혁하면서 우주개발에 성공하였듯이 우리도 우주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교육제도의 검토와 우주개발의 인프라 형성에 전 노력을 기우려야 할 것이다. 현재 미래창조과학부가 주도하는 우주개발에 국방부와 공군의 역할을 중시하여 총체적인 국가안보와 관련된 우주개발계획들이 필요할 것이다.

민화에 나타난 십이지동물의 민속의식에 관한 연구 (Study on Folklore Consciousness of Twelve Chinese Zodiac Animals Shown in Folk Painting)

  • 이종관
    •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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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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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47-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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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사람은 본인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열두 동물 중에 하나의 동물 "띠"라고 하는 개념과 연관된다. 생활 주변에서 뿌리 깊게 지닌 "띠"의 문화와 이에 대한 민속학적 관점에서 민화에 나타난 십이지의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아시아권의 민속신앙과 감정 그리고 문화적 배경을 알아보면서 상호 영향과 변화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며 작성된 글이다. 연구결과 쥐라고 하는 동물은 인간과 더불어 함께 하며 설화나 자연계에서 동반하고 있으며, 소라는 동물은 인류와 함께 더불어 공존하면서 인류의 문명과 같이하고 있다. 호랑이는 인간에게 벽사의 신으로 가장 두려우면서도 가까이하고 있다. 설화 속의 토끼는 인간에게 희망과 이상을 심어주고 있다. 상상 속의 용은 토속신앙의 깊은 뿌리를 형성하고 있으며, 농경문화와 인류의 수호신으로 자리하고 있다. 뱀은 대마도와 제주도에서는 인간을 지켜주는 해신으로 사람들의 생활 속에 깊이 신앙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유목문화에서의 말은 그들의 수호신으로 또는 신과의 영매자로서 유목사회의 기본으로 숭상되고 있었다. 고대 일본인들은 원숭이를 신성시하였으며 보물과 연관 지었다. 원숭이의 지혜를 빌리려는 인간의 욕구의 욕구가 담겨 있다. 닭은 인간과 함께 살아가면서 하늘과 인간 세계를 연결하는 길조로서 의미를 담고 있다. 개는 무속의 저승 설화에서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메신저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신앙되고 있다. 돼지 역시 인간과 공존하며 다산의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십이지 동물은 민족 간에 의미는 다소 다를지 몰라도 인간과 함께 공유하며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고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신앙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대안적 방송제작시스템 연구 : 영국 채널4의 외주제작시스템을 중심으로 (The Study of the Aternative Boadcasting System: in the Case of the Channel 4 in Britain)

  • 은혜정
    • 한국언론정보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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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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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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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본 글은 영국의 채널4라는 방송사의 설립의 역사적 배경, 이론적 배경 그리고, 그 재정과 경영문제, 나아가 실제 외주제작 과정에 이르는 모든 주요 이슈들을 심층 연구한 것이다. 다채널.다매체 시대를 실현시켜주는 가장 중요한 축으로서의 컨텐츠 문제가 지속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모든 프로그램을 외주제작 프로그램으로 방영하는 출판형 방송사인 채널4가 하나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채널4는 기존의 방송제도내에서는 해결될 수 없는 다양한 소수집단의 이해를 반영하고 실험정신이 강한 프로그램을 편성함으로써 방송의 다양성을 실현해야 한다는 임무를 가지고 태어났다. 이러한 임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채널을 기존 방송사가 운영하지 말고 독립제작사를 비롯한 다양한 집단에 의한 참여가 가능한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 결과로서 채널4는 스스로 제작은 하지 않으면서 프로그램을 구입하거나 외주제작하는 과정을 통해 방송하는 출판사형 방송사로 운영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외주제작 과정에 대한 문제를 집중 조명함으로써 현재 경직되어 있는 우리나라 외주제작시장에 시사점을 찾고자하였으며, 동시에 채널4의 재정과 경영상태 분석을 통해 이상적인 방송에 대한 현실적인 구현방안에 대해서도 배울 바를 찾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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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년층의 의복의 자아 근접성, 나이 정체성, 자아실현 사이의 상호연관성 분석 (Exploratory Correlation Analysis among Age Identity, Proximity of Clothing to Self, and Self-Actualization for Older Persons in the United States)

  • 이영아
    • 한국의류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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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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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97-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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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Lee(2007)의 연구에서 노년들의 의복에 대한 자아 근접성은 그들의 자아실현에 직접적인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가설하였으나 가설과는 반대의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나이 정체성이 자아실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 세 변수들 사이의 연관성은 이전의 연구들에서 많이 다루어지지 않았기에 Lee(2007)의 연구결과의 타당성을 입증하기위한 부가 연구가 필요하여졌다. 이 논문은 Lee(2007)의 연구결과를 심도 있게 이해하기 위하여 노년층의 의복에 대한 자아 근접성, 나이 정체성, 자아실현 사이의 상호 연관성을 분석하였다. 세 변수와 노인들의 나이와 성별을 묻는 설문지를 미국 전역 50개 주의 1,700명의 노인들에게 배포하여 195명으로부터 응답을 받았다. 미국 인구 통계청의 연령 구분 체계에 따라 설문지에 응답한 노인들을 세 분류의 나이(65세와 74세 사이, 75세와 84세 사이, 85세와 그 이상)로 구분지어 연구결과를 분석하였다. 이 연구는 노인들의 나이 정체성은 나이 85세 이상의 노인들을 제외하고는 의복의 자아 근접성과 그다지 상호 연관성이 많지 않음을 입증 하였다. 이 결과는 자아실현을 달성하지 못한 노인들은 의복을 자아실현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사용 할 수 있다고도 해석되어 질 수 있다. 세변수들의 상호 연관성 분석은 75세와 84세 사이의 노인들은 나머지 두 연령층의 노인들(65세와 74세 사이, 85세와 그 이상)과 상당히 다름을 입증하였다. 이는 75세와 84세 사이의 노인들이 다른 나이층의 노년들 보다 더 많은 심리적 과도기를 거치고 있음일 수도 있다. 이 연구결과를 통하여 노년층이라 구분지어지는 연령대가 높아져 간다는 것이 입증되어 졌으며 과거 50세를 넘긴 이들이 자신들을 노년층이라 생각 하였었다면 이제는 노인들 자신들도 그들을 더 이상 노인으로 구분 짖는 기준선이 적어도 미국에서는 불명확해 지고 있음이 보인다. 자아실현 변수는 의류학 분야에서는 이제까지 상당히 추상적으로만 사용되어져 왔고 측정도구로는 많이 상용화 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이 글에서 제시하는 자아실현의 세부 변수들을 토대로 의복과의 상호 관련 연구들이 앞으로 더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생활 표현의 고시조 연구 (A study of the classic Sijo(時調) concerning the productive life)

  • 전재강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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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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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1-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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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사대부 계층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진 시조에 삶의 물적 토대인 구체적 생산의 현실이 어떻게 투영되어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생산 관련 생활은 사회 체제의 필연적 근거인데, 생산 활동과 무관한 것으로 보이는 시조를 이런 관점에서 논의하는 일은 시조 작품과 작가를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생활을 다룬 시조의 작가는 크게 유명씨와 무명씨로 나누어진다. 유명씨는 사대부와 평민 가객, 무명씨는 사대부와 평민 가객, 시정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대적으로 14-17세기에는 사대부 작가가 중심이고 18-19세기에는 평민 가객이 새로운 작가층으로 부상하여 사대부 작가와 같은 비중을 차지하다가 평민 가객이 우위를 점하고 무명씨가 대거 참여한다. 다음으로 시적 자아의 입장에서 유명씨의 14-17세기 작품에 나타난 시적 자아는 촌부, 일을 함께 하려는 농부, 일을 시키는 상전, 실제 일하는 농부 등으로 되어 있고 18-19세기 작품에는 전원인, 구경꾼, 일을 하거나 원망하는 농민 등이 중심이다. 이는 구체적 생산 활동이 점차 사실적으로 표현돼 가던 추세의 반영이다. 무명씨의 작품은 유명씨와 유사한 점이 있으면서도 상업 활동을 하는 시적 자아의 등장이 특이하다. 생활의 내용과 그 표현 방식에서 14-17세기 작품에는 논밭갈이, 산나물 캐기, 벼베기, 풀베기 등 여러 생활을 한 작품 안에 포괄하여 표현하는 작품이 많이 나타나며 관념적 용어에서 구체적 생활을 구어로 표현하는 작품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문장은 평서문, 의문문, 감탄문, 명령문, 청유문의 순서로 많이 사용된다. 18-19세기 작품에 나타난 생활은 물건 매매. 산전과 수전의 개간, 베짜기, 물푸기, 가렴주구 등 매우 구체적인 일들을, 하나씩 각각 한 작품 내에 집중적으로 구체적 생활에서 쓰는 구어를 더 많이 사용하여 주로 평서문과 의문문으로 표현한다. 무명씨 작품에 표현된 생활의 종류 유명씨 작품의 경우와 비슷하나 논밭갈이, 김매기, 벼 베기 등의 전통적 일반 생활에 옷 만들기, 물건 장수와 같은 구체적 생활이 부가적으로 더 표현된 점이 다르다. 표현 방법은 유명씨 작품의 전대 선례에서 점차 후대의 선례를 더 많이 수용하는 방향으로 바뀌며 문장 형태에서는 명령문, 명령문이 가장 많이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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