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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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릉(懿陵) 일원(一圓)의 입지(立地)와 공간구성특성(空間構成特性)에 관(關)한 연구(硏究) (A Study on the Location and Spatial Organization Characteristics of the Royal Tombs Uireung)

  • 최종희;김흥년;이원호;엄태건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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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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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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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본 고는 조선시대 왕릉 중 중요한 역할을 점유하고 있는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 위치하고 있는 의릉의 정원건축적 특성을 파악하기 위하여 입지 및 공간구성특성을 중심으로 고찰한 바, 집약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입지는 당시 궁궐로 사용한 창덕궁으로부터 약 6.4km, 도성 사대문 밖 흥인지문을 기준으로 의릉까지의 거리는 약 5.5km로 보아 조선시대 능원묘제에 따른 거리기준(40km)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둘째, 능의 공간구성과 용도에 따라 진입공간, 제향공간, 능침공간으로 구분하는 바, 공간위계에 따라 홍살문, 정자각, 명등석, 혼유석, 봉분으로 공간 축을 형성하고 있는 바, 이는 자연에 순응하면서 조화로우며, 왕권의 권위적인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셋째, 공간구성요소에는 석물의 경우 상계에는 능침, 석양, 석호, 혼유석, 망주석이, 중계에는 문석인, 마석, 명등석이, 하계에는 무석인, 석마 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건조물의 경우 정자각은 이익공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익칸이 있으며, 참도는 신도와 어도로 구분되며, 수공간인 연지와 재실은 멸실되고 없으나 관련 고증자료를 통해 그 위치, 규모, 형태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식생은 능상 주변의 경우 소나무 군락이 조성되어 있으며 능하구역은 느티나무, 전나무 등 64종이 분포하고 있다.

경복궁(景福宮) 향원정(香遠亭)의 조성시기(造成時期)와 취향교(醉香橋)의 원형(原形) (A Study on the Original Form of the Chwihyanggyo Bridge and the Creation of the Hyangwonjeong in Gyeongbokgung Palace)

  • 남호현;김태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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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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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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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경복궁의 후원에 위치한 향원정과 취향교는 고종 연간의 관련 사료와 조선 후기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몇몇 도면에 의지하여 연구되고 있었다. 현재의 취향교는 한국전쟁을 거치며 전소된 것을 종전 후 임시적으로 재건한 것이기 때문에 형태를 비롯하여 재건 위치도 정확한 고증을 거친 것이 아니다. 구한말~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사진과 이를 묘사한 그림엽서 따위가 일부 남아있지만 촬영 주체나 시기에 대한 정보가 부재하여 어떤 사진이 취향교의 원모습을 담은 것인지 판정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2017년 취향교 복원에 필요한 기초자료 확보를 위해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는데 조사를 통해 취향교의 원위치와 교각 주춧돌의 형태가 확인되었으며 이를 통해 취향교의 변화과정을 유추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최초의 취향교는 상판이 약한 아치를 그리는 3렬의 교각열을 가진 형태였으며 시간의 경과에 따라 교각열이 늘어난 평교형태로 변화한 것이 밝혀졌다. 또한 향원지 내 가도(假島)의 성토층에 대한 AMS연대측정을 통해 향원정이 임란 이후에 조성되었음이 판정되어 기존에 제기되던 '조선 전기 취로정 전신설'은 근거가 없음이 확인되었다. 발굴조사 및 사료검토 결과를 토대로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면 취향교와 향원정의 조성 시기는 조선 후기 건청궁의 건립연대와 평행할 가능성이 높다.

울진 불영사(佛影寺) 대웅보전(大雄寶殿)의 특징(特徵)과 건축술(建築術) (Daeungbojeon Hall of Bulyeongsa Temple, Uljin and the Architectural Technique of the Features)

  • 오세덕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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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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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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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울진 불영사 대웅보전의 특징과 승장의 건축술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본고는 1725년 제작된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는 불영사 대웅보전에 관한 종합적 고찰 성격이 강하다. 기존 연구에서 건축과 불교미술사로 나누어져 각각 연구되던 분야를 각 분야에 맞는 대상물과 비교 검토를 통해 하나의 관점으로 재정리하여 고증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확인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불영사 대웅보전은, 건물에 남아있는 벽화와 경상도 일원 벽화의 비교를 통해 대략적으로 건물이 창건되는 1725년을 전후한 시점에 제작된 것으로 편년해 보았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벽화의 제작시기를 1725년 대웅보전의 창건이후에서 1735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하고, 1735년과 1739년 후불도와 삼장보살도가 완성되어 내부 장엄까지 완비된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대웅보전 기단은 국내의 유일무이한 귀부가 하단에 감입된 기법이 적용된 사례이다. 이러한 기단의 형태는 세부기법을 고려해 볼 때 통일신라시대 가구식기단의 전통적인 방법에서 다소 간략화된 고려시대 가구식기단의 초기적인 형태로 추정되며 하부 귀부 역시 세부기법을 통해 볼 때 기단과 동일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마지막으로 경상도 일원에서 제작된 불전과 불영사 대웅보전의 건축술 비교를 통해 건물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특히 불영사 대웅보전을 제작한 동일한 도편수가 만든 1714년 통도사 영산전과의 직접적 양식비교를 통해 고식의 기단을 사용하고 있는 점, 공포의 제공 외단과 내단을 동일하게 처리하고 있는 세부기법, 그리고 귀포 내부에서 나타나고 있는 주간포 내단과의 유사성, 대보 상부에 초각이 가미된 포대공과 화반, 귀한대의 승천하는 용의 표현, 보아지의 용두 표현 등이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어 이러한 기법이 승장 조헌의 독자적인 건축술로 추정하였다.

경복궁 경회루 권역의 식생경관원형과 개선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Planting Improvement and Original Landscape of Gyeonghoeru Area in Gyongbokkung Palace)

  • 김충식;정슬기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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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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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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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는 경회루 권역의 경관개선을 위해 원형을 고찰하고, 수목 생장예측모델을 추정하여 개선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실시하였다. 식재경관의 개선방안에 대한 검증을 위해 만세산에 식재된 수목에 대한 사진측량을 진행하였다. 만세산 송림의 생장율을 알아보기 위해 Pressler 공식을 이용하고, 시뮬레이션을 제작하여 분석하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현장조사 및 경관분석 결과, 경회루 권역의 수목들은 수양벚나무와 감나무를 제외하고 흉고직경 30cm 이상의 대교목으로 특히 경관을 차폐하는 만세산의 송림과 북쪽 화계의 수목들에 대한 전정을 통해 관리하거나, 작은 수목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 둘째, 수목생장율 측정 결과, 평균 10년을 기준으로 남측 만세산은 근원직경 14%, 수고 5%가 북측 만세산은 근원직경 7%, 수고 2.4% 만큼 생장하였다. 나아가 산출된 수목생장률을 바탕으로 시뮬레이션을 작성했을 때 20년 후에는 경회루 2층에서 경관 또한 만세산의 송림이 인왕산의 스카이라인을 차단함을 확인하였다. 셋째, 경관개선 시뮬레이션을 분석하여 경회루 권역의 경관을 조망하기 위한 수목관리방안을 제시하였다. 본 연구는 경회루 권역의 식재경관을 고증하고 효율적인 정비방안을 도출한 것에 의의가 있다.

조선왕릉 조성 및 관리에 따른 식재유형 고찰 (A Study on the Type of Planting according to the Establishment and Management of the 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

  • 김은경;배준규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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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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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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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연구의 목적은 조선왕릉의 조성 및 관리에 따른 식재 유형에 대해 문헌 기록을 분석하고, 향후 조선왕릉 수목관리를 위한 사적(史的) 자료로 활용하는데 있다. 조선왕릉 42기 중 40기를 대상으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비롯한 편년체 사료와 "능지(陵誌)" 중심으로 식재와 관련한 키워드를 분석하였다. 능역의 수목식재는 정식(定植)과 보식(補植)으로 나눌 수 있다. 정식(定植)은 능침 조성 당시 산릉도감(山陵都監)에서 진행한 식재를 말한다. 능역 조성 후 이루어지는 모든 식재는 추가 식재 즉 보식라고 할 수 있다. 조선왕릉의 조성 및 관리에 따른 식재 유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능역 조성 과정 중 조경을 위한 1차 식재가 이루어졌다. 둘째, 산릉 조성 이후 모든 식재는 추가식재로 능행 중 왕명에 의한 식재가 실행되었다. 셋째, 조선후기 산림황폐화로 인하여 능침의 수목 희소처에 추가식재가 이루어졌다. 넷째, 자연재해로 인한 수목 훼손 후 보토공사와 함께 수목식재가 행해졌다. 다섯째, 정조 22년 모든 왕실가족의 무덤에 정기적인 식재가 법으로 정해졌다. 본 연구는 조선왕릉 능제복원을 위한 역사경관림 관리의 사적고증으로서 향후 조선왕릉에 식재된 개별 수종과 능역 내 공간별 식재에 대한 문헌 고찰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서지학적 고증을 통한 고려인삼의 정체성 : 기미(氣味), 효능을 중심으로 (Identity of Korean ginseng through bibliography - Focusing on Kimi(property) and efficacy)

  • 고성권
    • 인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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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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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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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연구의 목적은 서지학적 기록을 통하여 인삼의 기미(氣味)변화를 고찰하고자 한다. 한국 산양삼(山養蔘) 재배는 A.D. 1000년 경 고려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A.D. 1500년-1600년 경 조선시대에 인삼재배 기술이 확립되었다. 이 무렵 집 근처 밭에서 인삼을 재배하기 시작하였고, 이를 가삼(家蔘)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가삼재배는 A.D. 1790년 경 전국으로 확대되었다고 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한편, 인삼의 기미는 A.D. 250에서 A.D. 1600년까지 대부분 동양의학서적에 미한(微寒)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A.D. 1600년 이후에는 미온(微溫) 또는 온(溫)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인삼의 기미변화를 인삼재배역사 기록을 통하여 고찰해보면, A.D. 1600년 경 이전의 미한(微寒)의 기미 인삼은 산삼 또는 산양삼으로 인식할 수 있고, A.D. 1600년 경 이후의 미온(微溫) 또는 온(溫)의 기미 인삼은 가삼으로 인식할 수 있다. 또한, 기미를 미한(微寒)으로 표기하였던 한의서의 효능은 오장을 주로 보하고, 정신을 안정시킨다는 효능을 위주로 하였으나, 온(溫)으로 표기한 1600년대 이후의 한의서의 효능은 원기를 보하고, 진액을 생성시킨다는 효능이 주로 또는 추가된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재배환경이 산에서 들로 바뀌면서 인삼의 성질(기미)과 효능의 변화가 온 것으로 판단된다. 향후, 재배환경에 따른 성분변화가 효능차이에 미치는 연구가 고려인삼의 정체성 확인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덕수궁 선원전(璿源殿)영역의 조경 복원정비 계획 (A Landscape Restoration and Maintenance Plan in the Seonwonjeon of the Deoksugung Palace)

  • 소현수;김미정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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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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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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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대한제국 시기 경운궁에 부속된 왕실의 제례공간이었으나 현재 비어있는 덕수궁 선원전영역의 복원 사업으로서 조경 복원정비 계획을 수립하였으며, 원형 고증과 유사 사례 고찰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연구 결과를 도출하였다. 첫째, 선원전영역에 있었던 전각 배후림의 원지형이 전각의 지반보다 3.0~5.0m 높아서 녹지 경계부에 화계를 설치하여 경관적으로 처리하였다. 둘째, 배후림은 제례에 사용하는 과실을 얻기 위한 유실수원과 제례공간을 상징하는 소나무림으로 구성되었다. 셋째, 궁궐 방문자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하여 성역(聖域)의 분위기를 방해하지 않도록 부지 양쪽 끝에 휴게공간을 배치하고, 배후림 내에 산책로를 도입하였으며, 최소한의 조경시설로서 기능적으로 요구되는 안내판, 휴게의자, 수목보호대, 경사로, 보행등·경관조명등을 도입하였다. 넷째, 문헌, 고회화, 사진 등 사료(史料) 고찰과 현장 조사로 궁궐과 제례공간의 기존 식재 정보를 추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선원전영역 조경공간을 구성하는 전각 마당, 관람로와 휴게공간, 화계, 소나무림, 유실수원의 배식계획을 수립하였다.

이능화의 전통사상 연구와 그 의미 (A Study on the Research of tradition thought and its implications of Lee Neung Hwa)

  • 조한석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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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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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5-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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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이능화는 일제강점기 한국학 연구의 선구자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의 한국학 연구 분야는 유 불 도는 물론 기독교 등 종교 분야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민속학분야에까지 걸쳐있으며, 그 영향력은 현재도 유효하다. 이 논문에서 이능화의 종교 연구 가운데 전통사상으로서 유교와 불교에 대한 그간의 연구를 정리하고 그 의미에 대하여 재평가했고, 그가 주장했던 '조선민족 고유의 종교'인 '단군신교'의 의미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마련해보았다. 다른 구한말의 개화 지식인의 경우처럼 이능화도 근대화 실패에 대한 역사적 반성에 고뇌하였고, 그 원인을 조선후기 정권과 주자학에 돌리면서 '주자만능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조선후기 주자학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역사적 반성을 시도하였다. 또한 이능화는 일제 강점기 거사불교 운동에 영향력을 미쳤던 불교인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불교계에서도 정치계의 경우처럼 친일행보를 보이며 현실적 이득과 세력을 넘보는 승려들이 더러 있었지만, 이능화는 이런 문제에 중립적 태도를 보이면서 학문적 성과를 세간에 선보이게 된다. 특히 그의 "조선불교통사"는 그의 대표적 업적으로 꼽힌다. 이능화는 조선불교를 거론하는 과정에서 조선불교의 일본 불교에 대한 독립성과 장점을 지적하면서 '민족주의적 성향'의 단초를 표출하였다. 한편 그의 조선민족의 정체성과 독립성에 대한 민족주의적 성향은 단군신교 연구를 통해서 여과 없이 표출된다. 이능화에게 있어서 건국신화와 문화적 정체성은 단순히 역사적 실증과 학문적 고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국가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성립에 대한 이념적 문제였다. 이능화의 단군신교는, 건국신화와 조선민족의 문화적 독립성과 정체성을 확보하여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대응하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구축의 측면에서 재평가해야 할 것이다.

청초(淸初) 학술계의 춘추학(春秋學)에 대한 이해와 평가 - 『사고제요(四庫提要)』 「경부(經部)·춘추류(春秋類)」를 중심으로 (Understanding and Evaluation of Spring Autumn-Hak by Academic Circle of the Early Qing Dynasty - Focused on 「Gyeongbu·Spring Autumn」,『Sagojeyo』)

  • 김동민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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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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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7-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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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청초의 학술계는 "사고제요"의 편찬이라는 사건을 계기로 한학(漢學) 중심의 학술사조가 새롭게 형성되었으며, 춘추학 분야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모색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사고제요"의 춘추관(春秋觀), 그 중에서도 특히 전통적인 춘추학(春秋學)의 전개 과정과 양상에 대한 "사고제요"의 이해와 평가를 살펴보았다. "사고제요"에서는 공양학(公羊學)과 곡량학(穀梁學), 그리고 송학(宋學) 계열 학자들의 "춘추"해석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시도했는데, 그것은 춘추학의 새로운 연구방법론을 구축하기 위한 사전 사업의 성격을 띤다. "사고제요"에서는 "좌씨전"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도 그 단점을 과감하게 지적하고, 그것의 보완을 위해 "공양전"과 "곡량전"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요구한다. 심지어 주요 비판의 대상인 송대 춘추학 분야에 대해서도 학파적 편견을 최대한 배제한 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평가하려고 노력하였다. "사고제요"에서 이와 같은 세밀하고 객관적인 분석이 선행되었기 때문에 춘추학 분야는 "사고제요"의 편찬을 기점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증과 의리 담론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새로운 연구방법론은 청초 한학 중심의 학술계에서 발굴한 주요 성과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정여립(鄭汝立)의 생애와 사상 - 반주자학적 성향을 중심으로 - (Life and Ideology of Jeong, Yeo Rip - Focused on Antagonistic Propensity to Zhu-xi's Ideology)

  • 최영성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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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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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07-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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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2009년은 기축옥사(己丑獄事)가 일어난지 칠주갑(七周甲: 420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정여립에 대한 논의는 어지러웠다. 시각에 따라 완전히 상반된 평가가 내려지기도 하였다. 문제는 정여립 사상의 진보성이라는 미명 아래 각종 수식어를 동원하여 과대 포장한 것이다. 이것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해야 정여립과 정여립 사상의 본래 모습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저간에 나온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평가를 의식하여 철저하게 문헌 중심의 고증적 방법에 입각하여 고찰하였다. 지금까지 학계 일부에서는 정여립이라든지 기축옥사와 관련하여 다른 것은 다 부인하고 조작이라 하면서도 정여립이 평소에 늘 입버릇처럼 했다는 말은 조금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정여립을 '미완의 혁명가' 또는 '혁명적 사고를 가진 인물'로 과대 포장하였다. 그러나 '혁명적' 운운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원시유학의 이념을 천명한 것이라든지, 유학의 이념을 새롭게 해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여립은 관학(官學)인 주자학의 체계를 부정하고 원시유학의 이념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그의 대동사상(大同思想)도 원시유학의 정신을 되살리려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정여립의 반주자학적 학문 성향 내지 정치사상은 성리학적 명분주의를 초월하여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사상이 조선사회에서 쉽게 수용될 수 없었으므로 불온한 인물로 비쳐졌고, 마침내 사지(死地)로 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