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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logical Analysis of Shanghan Prescriptions from the Chinese Unearthed Documents

중국 출토문헌에 보이는 상한방(傷寒方)의 문자학적 분석

  • Lee, Kyung (Department of Chinese Language and Literature, Yonsei University)
  • 이경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 Received : 2019.07.22
  • Accepted : 2019.08.08
  • Published : 2019.08.25

Abstract

Objectives : This paper is an analysis of the name 'Shanghan(傷寒)' and its related contents in unearthed documents. "Shanghanlun" as we know it is an edited version by Wangshuhe of the Jin period, as the original text as written by Zhangzhongjing has been unavailable. Recently in China, documents of the Xian Jin and Liang Han periods are being unearthed, allowing us to look at medical texts of previous times that Zhang referenced. The aim of this paper is to look at the developmental process of the Shanghan theory based on these medical texts. Methods : Research documents include all unearthed documents that include the name 'Shanghan'. There were a total of 4 written cases, 2 in "Wuweihandaiyijian", and one each in "Dunhuanghanjian" and "Juyanhanjian". Meaning of extracted examples were analyzed in reference to the shape of the character, then compared and analyzed with existing medical texts such as "Shanghanlun", "Jibeiqianjinyaofang", and "Bencaogangmu" Conclusions : By examining the 4 examples, Bianzhenglunzi and clinical prescriptions which are characteristics of Shanghanlun could be found. There was an 'Eliminating Wind' formula that was used to eliminate Cold pathogen of the exterior which showed remarkable resemblance to that found in "Jibeiqianjinyaofang". There are also formulas that 'Communicate to Disentangle' and 'Disentangle the Stomach' which are used in progressed stages of Shanghan disease, showing that Bianzhenglunzi had already been applied to Shanghan conditions.

Keywords

Ⅰ. 서론

한의학 경전 중 하나인 『傷寒雜病論』은 辨證論治의 기본 원칙과 체계를 세우고, 임상, 방제를 겸비한 가장 오래된 의서이다. 成書 과정을 살펴보면 긴 역사를 함께하며 여러 차례 편집과 첨삭이 이루어졌는데, 이 책이 언제 완성되었는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략 서기 210년경 東漢시기 말엽에 張仲景이 저작한 것으로 알려진다.1) 전해 내려오는 『傷寒雜病論』 序를 살펴보면, 장중경이 처음부터 모든 것을 창조하여 집필한 것은 아니고, 전 시대까지 전해져 내려온 의서들과 여러 의술인들의 기록 및 처방을 모아 편찬한 것으로 보인다.2) 본래의 서명은 『傷寒雜病論』이었으나, 한나라 말기 전란에 의해 유실되어 전해지지 않고, 이후 晉나라 王叔和가 傷寒에 관한 부분과 雜病에 관한 부분을 나누어 『상한론』과 『金匱要略』으로 재편하였고, 줄곧 두 종류의 서적으로 나뉘어 전해지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상한론』이라 부르는 것은 왕숙화가 편집한 『상한론』이고, 통행되는 판본은 왕숙화의 『상한론』을 宋나라​​​​​​林億 등이 왕명으로 교정하고, 金나라 成無己가 주를 가한 『注解傷寒論』이다.3) 祖本인 『상한잡병론』을 보지 못하고 왕숙화가 편집한 『상한론』을 볼 수 밖에 없는 현실은 안타깝다. 물론 왕숙화가 아니었다면 장중경의 저작은 전해질 수 없었으므로 그의 공로가 실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러한 평은 차치하고, 清나라 의학가인 柯琴은 『傷寒論注』의 自序에서 다음과 같이 약간의 아쉬움을 토로한다. "傷寒論一書,經叔和編次,已非仲景之書. 仲景之文遺失者多,叔和之文附會者亦多矣. 讀是書者,必凝神定志,慧眼靜觀,逐條細勘,逐句研審,何者爲仲景言, 何者爲叔和筆…. (『상한론』은 왕숙화의 편집을 거치​​​​​​면서 이미 장중경의 책이라고 할 수 없게 되었다. 장중경의 문장은 이미 유실된 부분이 많고, 왕숙화의 문장은 견강부회한 부분이 많다. 이 책을 읽는 자는 반드시 온 정신을 한 곳에 집중하고 슬기로운 눈으로 직관하여, 조목을 살펴봄에 있어서 세세하게 헤아리고 신중히 연구하여, 어느 것이 장중경의 뜻이고 어느 것이 왕숙화의 문장인지 가려낼 줄 알아야한다….)"4) 가금의 견해가 맞다면, 청나라 때까지는, 아니 어쩌면 오늘날에도 『상한잡병론』의 진면목을 제대로 살피는 데에는 약간의 걸림돌이 있는 듯하다.

『상한론』 연구의 걸림돌을 해결하기 위해 지금도 상당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장중경이 서에서 언급하였듯, 그가 책을 완성하기 위해 참고한 前代의 의술 기록과 처방을 살펴 볼 수 있다면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통로가 마련될 것이다. 근세기 들어 중국에서는 先秦兩漢 시대의 문헌들이 활발히 발굴되고 있는데, 이들 중에는 의학 관련 저작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있어, 의학 체계가 완성되기 전 초기 이론의 실체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점차 늘어났다. 현재까지 발굴된 출토의서는 대부분 춘추전국 시대부터 한나라 시대의 것들로 『상한잡병론』이 완성되기 전의 기록들이다. 여기서 『상한잡병론』의 흔적을 찾는다면, 1차로 '傷寒'이란 명칭의 발견에서 시작된다. 과연 글자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고, 어떤 식으로 쓰였으며, 언제부터 질병명으로 쓰였는지 그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면 상한 이론의 초기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출토의서에서 '傷寒'이란 명칭은 『무위한대의간(武威漢代醫簡)』과 『돈황한간(敦煌漢簡)』, 『거연한간(居延漢簡)』에 보이며, 총 4건이다. 본고에서는 이들을 문자학적 분석 방법을 이용하여, 글자 본연의 의미와 의서 속 내용을 파악하겠다. 또한 전래문헌인 『상한론』 및 기타 의서와 비교함으로써 先秦兩漢에 쓰여진 내용과 어떻게 다른지 살펴본다. 이러한 방법으로 복잡다단한 상한 이론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다. 다만 여기서는 초기 이론의 흔적만을 제시한다.

Ⅱ. 出土醫書 속 '傷寒'

1. '傷'과 '寒'의 문자 분석

'傷'이란 글자는 오늘날 '다치다', '상하다', '상처'의 의미로 주로 쓰이지만, 고대 문자의 자형을 살펴보면 어떠한 증상을 표현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앞서 2018년 대한한의학원전학회지에 발표한 졸고 「중국 출토의서에 보이는 '諸傷'과 전래문헌의 비교고찰」에서 '傷'자에 관해 분석한 바 있어 여기서는 간략하게만 언급한다.5) 楚나라와 秦나라 계통의 고문자형을 살펴보면 '傷'은 음을 나타내는 '昜', ' '부분과 이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대체로 '무기(戈)', '칼(刂)', '화살(矢)'을 의미하는 글자들과 조합되어있다. 따라서 '상처'라는 의미로 쓰였더라도 그 안에는 날카로운 둔기나 칼, 화살 등의 금속성 물질(혹은 상응하는 물질)이 요인이었음을 알려준다.

표.1 '傷'자의 고대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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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문헌인 『마왕퇴한묘백서』와 『무위한간』에서도 이와 관련된 기록이 있는데, 칼날에 의한 상처인 '刃傷', 금속류에 의한 상처인 '金傷', 개에게 물린 상처인 '犬筮(噬)人傷' 등이 보인다. 이들을 종합하면 '傷'이란 글자는 '외적인 요인에 의한 손상'을 의미한다.

'寒'자 본의는 '冷'이다. '차갑다'라는 뜻이다. 『大漢韓辭典』에는 이 외에 '추위', '냉담하다', '두렵다'의 뜻으로 나와 있다.6) 그러나 중국의 고대 경전 속 '寒'의 용례를 찾아보면 상한과 관련한 여러 의미들을 확인할 수 있다. 『書經·洪範』의 "曰燠, 曰寒. (燠이고, 寒이다.)"의 孔穎達 疏를 보면 "寒是冷之極. (寒이란 혹독한 차가움이다.)"라고 하였고, 『大戴禮記·夏小正』의 "寒日滌凍塗. (寒日은 진흙을 얼려 깨끗하게 한다.)"에 대하여 王聘珍은 "寒, 陰氣. (寒은 음의 기운이다.)"라 하였다. 또한 『書經·洪範』의 "曰寒, 曰風 (寒이고, 風이다.)"에서 공영달은 "寒, 水氣也. (寒은 水의 기운이다.)"라고 하였다.7) 종합하면, '寒'은 그냥 차가움이 아닌 지극한 차가움이자 음습한 기운을 뜻한다.

寒의 자형은 제일 처음 西周시기 金文에 보이기 시작하여, 전국시기의 초나라와 진나라를 거쳐 소전으로 이어진다. 아래의 표는 '寒'자의 고대 자형이다.

표.2 '寒'자의 고대 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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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文繫傳』에서는 '寒'의 자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凍也. 从人在宀下, 从茻上下爲覆, 下有仌也.('凍'이다. 사람이 지붕 밑에 있고, 풀이 위 아래로 덮여있는 모습이다. 아래에는 얼음이 있다.)"8) 허신은 고대의 문자를 보지 못했으나 풀이는 대체로 맞는 것 같다. 가장 초기 자형인 금문을 보면 사람의 발 모양이 부각되어 있고, 그 아래로 편편한 얼음이 깔려있다. 만일 허신의 설명이 없었거나 자형이 오늘날과 달랐더라면 발밑의 얼음은 계단의 모양인지, 단순한 '二'의 형태인지 알아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글자의 무난한 변천과정과 설명을 참고하면 금문의 '寒'은 여러 문자의 조합으로 뜻을 이루는 회의자임을 알 수 있다. 자형을 살펴보면, 지붕 아래 혹은 움막(宀)은 마땅히 따뜻하고 아늑해야 될 공간이다. 하지만 이곳이 도리어 풀과 얼음으로 가득 차 있고, 사람은 그 안에 서있다. 마치 오래된 폐가에 있는 것처럼 차갑고 음습한 기운이 사람을 둘러싸고 있음을 제대로 표현한다. 다음 시기인 초나라 문자로 오면 아예 지붕이나 집을 뜻하는 '宀'자가 생략되었다. 자형이 간략화(簡化)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의미만을 고려한다면 여기서는 얼음과 풀의 모양을 극대화함으로써 횡랭한 의미를 적극 표현한다. 진대 문자로 오면, 초기의 조합은 살린 채 전체적으로 균형감 있게 간화된 자체가 출현하였다. 우거진 풀의 모양이 절반으로 축소되었고, 사람의 모양 또한 ' '에서 '人'으로 바뀌면서 안정감 있는 형태의 글자가 만들어졌다. 따라서 위의 내용을 종합하면, '傷'과 '寒'이 결합된 단어는 '외적인 요인으로 인하여 손상을 입고, 따뜻한 곳에 있어도 추위를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동양의학에서 정의하는 '傷寒'이란 단어의 뜻은 대체로 廣義와 狹義 두 가지로 나뉜다. 광의로서의 '傷寒'은 '모든 外感 熱性질병의 총칭'이다.9) 여기서 '外感'이란 六淫(병을 일으킬 수 있는 风, 寒, 暑, 湿, 燥, 火의 기운)이나 疫癘 등과 같은 外邪(병을 일으키는 요인)에 영향 받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外邪가 인체의 피부나 체모, 코나 입 등을 통해 침투하여 병이 되면 바로 '外感病'이라 한다.10) 이러한 정의는 『素問』에 근거한 것인데, 「熱論」에 이르길 "夫熱病者,皆傷寒之類也. (열병이란 모두 상한류에 속한다.)"라고 하였다.11) 협의로서의 '傷寒'은 '寒邪에 의해 발생된 질병'을 말한다. 이에 관해 『難經』의 「五十八難」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傷寒有五,有中風,有傷寒,有濕溫,有熱病,有溫病,其所苦各不同. (상한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중풍, 상한, 습온, 열병, 온병이 있는데, 그 괴로운 바가 각각 다릅니다.)"라고 하였다.12) 즉, 넓은 의미의 상한을 다시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이 다섯 유형 안에 寒邪에 의한 질병인 좁은 의미의 상한이 있는 것이다.13)

『傷寒論』이란 의서는 '모든 외감 열성 질병을 논한' 책이다. 『傷寒論·太陽篇』을 보면 '中風','傷寒', '溫病' 등의 병증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는데, 이는 그 뜻을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로 나누어 서술한 것이다.14) 결국 '상한'이란 명칭은 문자학적으로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개념을 담고 있지만, 의학 이론에서는 이를 토대로 하여 보다 발전되고 풍부한 개념으로 확장됨을 알 수 있다.

2. 出土醫書 속 傷寒方

서론에서 언급하였듯 출토문헌은 오랜 세월 가감된 전래문헌과 달리 고대의 기록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따라서 이곳에 적힌 상한의 용례를 분석하면, 『상한론』이 완성되기 전 단계의 상한과 관련된 의학적 지식을 엿볼 수 있다.

'傷寒'이란 질병의 명칭은 출토의서에서 총 4건 발견된다. 『武威漢代醫簡』에 두 건, 『敦煌漢簡』에 한 건, 『居延漢簡』에 한 건이다. 이들 문헌은 모두 甘肅省에서 발굴되었고, 시기적으로는 대략 東漢 初期 무렵에 해당되어, 장중경이 『상한잡병론』을 완성한 시기보다 이르지만 매우 가깝다.15) 지역 특성 상 西北 내륙에 위치한 甘肅省은 산맥과 사막으로 이루어져있어 風沙가 심하고 건조하며, 주야 온도차이가 크다.16) 이러한 환경은 땅 속 문헌이 보존될 수 있는 최적의 여건이기도 하지만, 이 쪽 지역의 문헌에만 중점적으로 '傷寒'이라는 명칭이 발견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素問·異法方宜論』에는 "西方者,金玉之域,沙石之處,天地之所收引也,其民陵居而多風… 北方者, 天地所閉藏之域也. 其地高陵居, 風寒冰冽. (서방은 金과 玉이 많은 지역으로 모래와 돌이 모이는 곳이다. 천지가 수렴하는 곳으로 백성들은 구릉에 거하는데 바람이 많이 분다… 북방은 천지가 닫히고 저장되는 곳이다. 지대가 높아 구릉에 거하며 바람과 추위가 얼음장처럼 거세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건조하고 한랭한 기후는 傷寒이라는 질병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 『武威漢代醫簡』 속 상한방의 용례 분석

① 治傷寒遂風方: 付子三分, 蜀椒三分, 澤舄五□(分), 烏喙三分, 細辛五分, 五分. 凡五物皆冶合, 方寸匕酒飲, 日三飲. (傷寒逐風을 치료하는 처방: 附子 3푼,蜀椒 3푼, 澤瀉 5푼, 烏喙 3푼, 細辛 5푼, 朮 5푼의 다섯 가지 약물을 모두 포제하여 합하고, 方寸匕만큼의 술과 마신다. 하루에 세 번 마신다.) [武威 6-7]

위는 '傷寒逐風'에 관한 처방이다. '逐'자는 죽간에 '遂'자로 쓰여 있으나 문맥상 '逐'자의 訛化로 보인다. 明代 李梴이 집필한 『醫學入門』에는 '治寒門'이라는 항목이 있는데 "外寒宜汗散,宜用風門藥,寒從汗解也. 夫寒濕皆屬陰,宜與治濕門通看. (표면에 한기가 침입한 것은 땀으로 풀어줘야 하는데, 風門藥을 써서 한기가 땀으로 해소되도록 한다. 寒과 濕은 모두 陰에 속하니 治濕門과 연결해서 봐야한다.)"라 하였다. 또한 治寒門에서 처방 약재로 '附子', '蜀椒', '吴茱萸', '乾薑', '天雄', '薑黃' 등을 열거하였는데, 이들은 대부분 寒風을 몰아낸다고 하였다.17) 이 중 '吴茱萸'에 관해 살펴보면 『神農本草經』에 이르길, "味辛,溫, 有小毒. 主溫中,下氣,止痛,咳逆, 寒熱,除濕,血痹,逐風邪,開湊理. (맛은 맵고, 따뜻한 성질이며, 약간의 독성이 있다. 몸속을 따뜻하게 하는데 주로 쓰며, 下氣,통증 억제, 기침과 숨이 찬 것, 寒熱,濕邪의 제거, 血痹癥, 風邪를 몰아 내고, 땀샘과 피부를 열어주는 기능을 한다.)"라고 하였다.18) 여기서 '逐風邪'라는 문구는 용례 ①의 질병 명칭과도 통한다. '治寒門'의 약재 중 '附子'와 '蜀椒'는 ①의 처방과 중복되기도 한다. 따라서 傷寒과 함께 風邪를 몰아내는 처방임을 알 수 있다.

용례 속 약재와 복용 방법을 전래된 의약 경전과 비교해보면 당시의 약물방제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다. 약초, 방제학의 가장 이른 시기 저작인 『神農本草經』과 이를 토대로 明代 李時珍이 집대성한 『本草綱目』을 참고로 하면 다음과 같다.19) ①에는 모두 '付子','蜀椒','澤舄','烏喙','細辛',' '이 등장한다. 첫 번째 약재인 '付子'는 '附子'로, '付'는 '附'의 通假字이다. 『神農本草經』에 이르길 "味辛,溫. 主風 寒咳逆邪氣,溫中,金創,破癥堅積聚,血瘕,寒濕. (맛은 맵고 따뜻한 성질이다. 風寒, 咳逆, 邪氣에 주로 쓰며, 몸을 따뜻하게 하고 외상에 효능이 있으며, 몸속의 딱딱한 積聚와 血瘕를 해소하고, 寒濕에 쓴다.)"라고 하였다. 다음으로 '蜀椒'는 『本草綱目』에 보이는데 "辛,溫,有毒. …主治邪氣咳逆,溫中…散風邪瘕結…散寒除濕. (맛은 맵고 따뜻한 성질이며 독이 있다. 邪氣,咳逆에 주로 쓰이고, 몸을 따뜻하게 하며…風邪와 瘕結을 해소하고…寒濕을 몰아낸다.)"라고 하였다. '澤舄'은 '澤瀉'다. '舄'은 '瀉'의 이체자로,20) 『神農本草經』에는 "味甘,寒. 主風寒濕痹, 乳難. 消水,養五臟,益氣力,肥健. (맛은 달고 차가운 성질이다. 風寒濕痹와 젖이 잘 안 나올 때 주로 쓴다. 消水法에 사용하며, 오장을 튼튼하게 하고 기력을 올려주며 살찌고 건강하게 한다.)"라고 하였다. '烏喙'는 『神農本草經』에 '烏頭'로 나와 있는데 다음과 같다. "味辛,溫. 主中風, 惡風洗洗,出汗,除寒​​​​​​濕痹,咳逆上氣,破積聚, 寒熱. 其汁,煎之,名射罔,殺禽獸. …一名烏喙. (맛은 맵고 성질은 따뜻하다. 中風과 惡風으로 몸을 떨 때 주로 쓴다. 땀을 내고, 寒濕痹를 없애주며, 咳逆와 上氣에 효과가 있고, 積聚와 寒熱을 해소시킨다. 이것의 즙을 내어 달인 것을 射罔이라고 하는데 동물을 죽이는데 쓴다. …烏頭는 烏喙라고도 한다.)" '烏喙'는 동물을 죽일 만큼 독성이 강해 당시 사냥에 자주 이용하였다. 이보다 이른 시기 馬王堆 『五十二病方』에도 烏喙에 중독된 상처를 치료하는 처방이 나오는데,21) 이는 고대인들이 오래 전부터 藥과 毒을 함께 사용할 줄 알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細辛' 또한 『神農本草經』에 보인다. "味辛,溫. 主咳逆,頭痛腦動,百節拘攣,風濕. (맛은 맵고 성질은 따뜻하다. 咳逆에 주로 쓰고 뇌가 흔들리는 듯한 두통, 전신의 관절이 오그라드는 듯한 경련과 風濕에 쓴다.)" 마지막으로 쓰인 약물은 ''이다. ''은 '朮'의 이체자로, 『居延漢簡』에 보이는 상한의 용례에도 등장한다. 『神農本草經』에 이르길, "味苦,溫,無毒. 治風寒濕痹,死肌, 痙、疸. 止汗,除熱,消食. (맛은 쓰고 따뜻한 성질이며 독이 없다. 風寒濕痺에 주로 쓰며, 죽은 살, 근육의 경련과 수축, 황달에 쓴다. 땀을 멈추고 열을 해소하며 소화가 잘 되게 하는 효능이 있다.)"라고 하였다. 이들 약재를 종합하면 '澤瀉'를 제외한 나머지는 溫性에 해당하고, 약재 모두 風寒을 몰아내거나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데 효능이 있다고 하였다. 단, 용례는 총 6가지의 약물을 배합한 처방인데 원문에는 '五物 (다섯 가지 약물)'이라고 기록되어있다. 이는 '六物'을 잘못 기재한 것 같다. 복용방법은 약물은 모두 '冶'한 뒤, '方寸匕'만큼의 술과 섞어 하루에 세 번 음용하라고 되어 있다.

약물을 '冶'하는 것에 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문맥상으로 보면 조제하는 방법 중 하나인데, 전래 문헌에는 거의 쓰이지 않고 출토의서에서만 주로 보인다. '冶'는 『說文』에서 "銷也."라 하였고, 段玉裁주에는 "銷者, 鑠金也."라 하여 '녹이다'란 의미이지​​​​​​만 주로 금속류를 녹이는 것에 쓰이는 글자다. 출토 문헌의 '冶'에 대하여 각 家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武威醫簡을 발굴 정리한 감숙성박물관에서는 "藥物加工炮製. (약물을 가공 포제한 것)"이라고 하였으며,22) 이에 덧붙여 張延昌은 "加工炮製,有溶合熔煉之意,引申爲將藥物加工成粉狀. (가공 포제한 것, 용해시켜 정제한다는 뜻이다. 인신하여 약물을 가공하여 분말 상태로 만든다는 뜻이 되었다.)"라 하였다.23) 赤堀昭 또한 "冶是製成粉. (冶는 제조하여 분말로 만드는 것이다.)"24)라 하였고, 이에 반해 李學勤은 "冶字的準確含義應該是搗碎. (冶자의 정확한 함의는 찧고 부순다는 뜻이다.)"25)라고 하였다. '포제(炮製)'란 한의학 전용 명칭으로, 법제(法製)라고도 한다. 한약재의 질과 효능을 높이거나 독소를 제거하기 위해 가공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보관이나 조제를 편하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포제 방법에는 水製(물로 처리하는 것),酒製(술에 처리하는 것), 油製(기름에 처리하는 것),煅製(불에 달구는 것) 등 여러 방법이 있으며 약재를 자르거나 가루 내는 것도 포함된다.26) 따라서 용례 속 '冶'의 의미를 넓은 의미의 포제라 본다면 赤堀昭나 李學勤의 견해가 모두 포괄된다. 약재료를 분말로 만들거나 찧는 과정도 포제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각도의 분석이 필요하나 잠시 본고에서는 '冶'를 넓은 의미의 포제로 해석하겠다.

다음으로 '方寸匕'는 고대 도량형 중 하나로, 한의학대사전에서는 散劑 양을 계량하는 용도의 1치길이 네모난 숟가락을 말하며, 광물성 한약가루 1方寸匕는 약 2g 정도이고 식물성 한약가루 1方寸匕는 1g 안팎이라고 설명한다.27) 이 단위는 전래문헌 중 『상한론』과 『금궤요략』에 처음 등장하는데, 출토문헌에서는 『무위한대의간』과 북경대학교에서 소장한 西漢시기 죽간에서 발견된다.28) 언제부터 이 단위가 사용되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최소 西漢 무렵부터 존재했던 것은 확실하다. '方寸匕'에 대하여 감숙성 박물관은 약을 계량하고 퍼내는 공구로, 칼 모양의 숟가락(刀匕) 형태이며 크기는 1치 길이의 정방형이므로 方寸匕라 이름 지어졌다고 했다.29) 그러나 중국 문자학자인 葉森과 柏紅陽은 '匕'자가 원래 숟가락, 주걱을 의미하기는 하나 '錢匕' 또한 동전의 크기로 계량하는 것이지 숟가락의 모양이 아니다. 따라서 '方寸匕'도 칼이나 숟가락의 유형이 아닐 수도 있다고 하였다.30) 한편 程鵬萬은 東漢시기의 銅量과 銅器 銘文을 통해 방촌비는 대략 '5, 6밀리리터의 숟가락'이라고 하였다.31)

복용 방법을 살펴보면, 앞에서 포제한 약물을 1​​​​​​方寸匕만큼의 양을 덜어 '酒'와 함께 복용하라고 하였다. 酒는 『漢書·食貨志』에서 "酒, 百藥之長. (술은 모든 약의 으뜸이다.)"라고 하였듯, 『상한론』에도 주요하게 등장한다. 중국 의학자 施崗爾, 凌云, 趙鳴芳에 따르면, 張仲景은 血虛寒凝한 증상에는 當歸四逆湯을 쓰되 술을 쓰지 않았는데, 다음 조목에서 '內有久寒者'에게는 '吳茱萸'와 '生薑' 그리고 '清酒'를 가미하여 처방하였다. 이로보아 청주는 辛熱의 성질로, 藥力을 보완하고, 한기를 발산시키며, 기혈을 溫行시키는 역할이 있다고 하였다.32)

② 治魯氏青行解解腹方: 麻黃卅分, 大黃十五分, 厚朴, 石膏, 苦參各六分,烏喙, 付子(附子)各二分, 凡七物皆□□□□□方寸匕一, 飲之, 良甚. 皆愈傷寒逐風. (治魯氏青行解解腹方: 麻黃 30푼, 大黃 15푼, 厚朴, 石膏, 苦參 각 6푼, 烏喙, 附子 각 2푼, 이상 7가지 약물을 모두… 1方寸匕 만큼 마시면 매우 좋다. 傷寒逐風도 낫게 한다.) [武威 42-43]

용례② 또한 『武威漢代醫簡』에 보이는 또 하나의 '傷寒逐風方'이다. 처방명은 '治魯氏青行解解腹方'이지만 文未에 '傷寒逐風'에도 효험이 있다고 기록한다. 처방명에 관해 살펴보면, '魯氏'는 人名이고, 다음의 '青'자에 대해 杜勇은 '青散'을 의미하며, 고대의 傷寒을 치료하는 方劑로 보았다.33) 용례에서 비록 '散'자가 탈락되었으나 전래문헌과의 비교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青散'은 唐代 孫思邈의 저작인 『備急千金要方』에도 나오는데 春傷寒을 치료하는 發汗散(땀을 내는 약) 중 하나로 기록된다. "治春傷寒頭痛發熱方. 苦參, 濃朴, 石膏(各三十銖), 大黃, 細辛(各二兩), 麻黃(五兩), 烏頭(五枚), 上七味治下篩. 覺傷寒頭痛發熱, 以白湯半升和藥方寸匕投湯中, 熟訖去滓, 盡服. 覆取汗, 汗出, 溫粉粉之良久. (봄에 걸리는 상한, 두통, 발열을 치료하는 방법. 苦參, 濃朴, 石膏, 大黃, 細辛, 麻黃, 烏頭, 이상 일곱 가지 약물을 손질하여 체에 거른 뒤, 상한, 두통, 발열을 느낄 때 끓는 물 반 升에 약을 方寸匕만큼 넣어 섞고, 가라앉으면 찌꺼기를 거르고 모두 복용한다. 다시 땀을 내려면, 땀이 났을 때 두텁게 가루를 바르면 효과가 오래간다.)"라 하였다.34) 發汗은 傷寒의 치료법 중 하나로 正氣를 돕고 病邪를 몰아내는 방법 중 하나이다. 여기서 쓰인 약물은 '苦參', '濃朴', '石膏', '大黃', '細辛', '麻黃', '烏頭' 총 7가지이고, 용례 ② 또한 '麻黃','大黃','厚樸', '石膏', '苦參', '烏喙', '付子' 총 7가지가 쓰였는데 두 처방의 약물을 비교하면 다음 표와 같다.

표.3 '青散'과 '魯氏青'의 약물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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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공통되지 않은 약재는 '細辛'과 '附子'다. 그러나 '細辛'은 앞의 『神農本草經』에서 "味辛,溫. 主咳逆,頭痛腦動,百節拘攣,風濕. (맛은 맵고 성질은 따뜻하다. 咳逆에 주로 쓰고 뇌가 흔들리는 듯한 두통, 전신의 관절이 오그라드는 듯한 경련과 風濕에 쓴다.)"라고 하였고, '附子'는 "味辛,溫. 主風寒咳逆邪氣,溫中,金創,破癥堅積聚,血瘕,寒濕. (맛은 맵고 따뜻한 성질이다. 風寒, 咳逆, 邪氣에 주로 쓰며, 몸을 따뜻하게 하고 외상에 효능이 있으며, 몸속의 딱딱한 積聚와 血瘕를 해소하고, 寒濕에 쓴다.)"라고 하여 두 약물은 맛(辛)과 성질(溫)이 동일하다. 『상한론』의 助陽抑陰(陽을 보호하고 陰을 억제하는)의 치료원칙 중 太陽表熱證(熱性 질병의 발전 과정에서 최초의 단계에 해당하는 證)의 치료법에서 맵고 따뜻한 發表劑를 선택하는 것은 陽氣(인체의 질병에 저항하는 기능)를 보호하기 위하여 선택하는 것이라고 하였다.35) 이로보아 '治魯氏青行解解腹方'은 '青散'처럼 '發汗散'과 같은 용도의 처방으로 보여진다.

다음으로 '行解'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분분한데 감숙성박물관은 [居延漢簡 509]에도 보이며 '何解'라 보았으나 명확한 판단은 보류하였다.36) 張壽仁은 『論衡·寒溫』의 "人中於寒, 飲藥行解, 所苦稍衰. 轉爲溫疾, 吞發汗之丸而應愈. (사람이 寒氣에 들었을 때 약을 먹고 行解를 하면 괴로운 것이 점차 줄어든다. 溫疾로 바뀌었을 때 땀내는 환을 먹으면 바로 낫는다.)"를 인용하며 '行解'를 '漸解'로 풀이하고 '점차 낫다'의 의미로 보았다.37) 이에 반해 王輝는 '行'이란 '步行'의 의미로, 바깥으로 걸어 나가 邪毒을 배출시키는 것이라 하였는데,38) 王林生 또한 '行'을 '去'의 의미로 보아 '行解'를 '去除', '發散'의 뜻으로 보았다.39) 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결국 '行解'는 병에 대한 해독, 邪氣를 배출하는 과정이다. 傷寒病은 일반적으로 表에 있는 邪氣를 發汗을 통해 배출시킴으로써 치료하는데, 이러한 방법을 한의학에서는 '解表', '發汗法'이라고 한다.40) '青散'을 먹어 땀을 내어 邪氣나 毒을 배출하는 것, 즉 '行解'를 하는 것이 이 처방의 명칭이기도 한데, 行解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오로지 약물과 복용방법만이 나와 있을 뿐이다. 먼저 문자를 분석해보면, '行'이란 글자는 갑골문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자형은 오늘날과 상당히 유사한 ' '[前七.三二.二] 모양으로, 본래는 '道路'의 뜻으로 쓰였으나, 通假하여 '길을 걷다'의 의미도 생기게 되었다. 후세로 오면서 '걷다'의 의미가 본의처럼 쓰이게 되었고, '도로'라는 뜻은 점차 다른 글자로 대체되었다.41) 아마도 王輝는 '行'을 본의에 맞추어 해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行解를 바깥으로 걸어 나가 解散한다고 보면, 문맥과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용례 속 처방에 따르면, 약재료와 복용방법은 설명되어 있지만, 이와 함께 언제 걸어야 하는지, 약을 먹기 전인지, 혹은 후인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언급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래문헌에서 '行'자에 대한 용례를 찾아 보면, 戰國시기 문헌인 『呂氏春秋·愛類』에 "無不行也."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두고 高誘가 注에서 이르길 "行, 爲也."라고 하였다. 또한 전국시기 초나라 죽간인 『郭店楚簡·五行』에도 이미 "不行不義"라 하여 '行'이 이른 시기 '爲', '做'의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42) 다음 글자인 '解'는 『廣雅·釋詁』에서 "解, 散也."라 하였으므로,43) 본고에서는 '行解를 푸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 보고, 의미는 '해독하다', '邪氣를 배출하다'로 해석하였다. 전래문헌에서 '行解'에 관한 용례를 찾아보면, 明代 張介賓의 『景岳全書』와 清代 顧靖遠의 『顧松園醫鏡』(1718年)에 '行解散', '行解表散邪'라는 글귀가 보인다.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景岳全書·內傷嗽證治』: "蓋肺主皮毛, 肺氣虛, 則腠理不密, 風邪易入, 治法當解表兼實肺氣; 肺有火, 則腠理不閉, 風邪外乘, 治宜解表兼淸肺火, 邪退卽止. 若數行解散, 則重亡津液, 邪蘊而爲肺疽肺痿矣. (폐는 皮毛를 주관한다. 폐의 기가 허하면 腠理가 치밀하지 못하여 風邪가 쉽게 침입하니, 치료법으로는 마땅히 表를 풀어주면서 폐의 기운을 실하게 해야 한다. 폐에 火氣가 있으면 腠理는 닫히지 않고 風邪가 외부에서 침투한다. 이때는 表를 풀어주면서 폐의 火氣를 식혀야 한다. 邪氣가 물러가면 멈춘다. 만약 자주 해산을 행하면[數行解散] 진액이 고갈되어 邪氣가 쌓이고 폐에 疽와 痿가 생긴다.)"

『顧松園醫鏡·伤寒温病附方』: "解表而消滯食,否則惟宜解表. 蓋風寒傷表,表裏營衛,氣郁不行,以致未病所食之物,停滯而不傳化,但行解表散邪,使大氣一轉,食自消化. (表를 풀고 체한 것을 소화시킨다. 그렇지 않으면 表라도 풀어야한다. 風寒에 表가 상했다면 表 안의 營衛는 기가 그윽하여 통하지 않고, 병이 걸리기 전에 먹은 음식물까지 막히니, 정체되어 영양분의 흡수나 배출이 안 된다. 그러나 表를 풀고 사기를 흩어주면[行解表散邪], 大氣로 하여금 스스로 돌게 하여 음식물이 저절로 소화된다.)"

『景岳全書』의 용례를 살펴보면, 이는 비록 '內傷嗽證治'에 대한 처방이나 表를 풀어주고 폐의 기운을 돋울 수 있는 방법으로 '行解散'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너무 잦게 하면 오히려 正氣를 虛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유의하라고 하였다. 『顧松園醫鏡』은 '伤寒温病'에 대한 처방이다. 여기서도 "表를 풀고 사기를 흩어주면"이라고 하였다. 『景岳全書』와 『顧松園醫鏡』 속 일련의 내용들을 통해 출토의서 속 '行解'가 해독, 배출의 치료 과정을 의미하며 한의학에서 일컫는 '解表', '發汗法'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바람을 쐬거나 걸음을 걷는 등의 구체적인 행위가 묘사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발한을 포함한 사기를 배출하는 총체적 행위의 명칭으로 쓰인 것 같다. 行解는 본고의 마지막 용례인 『居延漢簡』에서도 출현하는데, 용례④를 분석할 때 다시 언급하도록 한다.

다음으로 '解腹'에 대해 살펴보면, 『무위의간』을 처음 정리하여 발표한 감숙성박물관의 견해는 없고, 王輝는 "其意爲排泄腹中邪毒結氣. (뱃속의 邪毒과 結氣를 배출하는 것을 의미한다.)"44)라고 하였다. 張延昌 또한 王輝의 의견을 따랐고,45) 王林生은 좀 더 구체적으로 "腹指小腹, 是腸道的位置. 解腹就是解除腸道秘法. 將'行解解腹方'換成今天的話就是'發散通腸方'或'散寒通便方'. (腹은 아랫배를 가리키며, 창자가 있는 위치이다. 따라서 解腹이란 창자를 풀어주는 비법이다. 行解解腹方을 오늘말로 바꾸면 發散通腸方 또는 散寒通便方이라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46) 반면 張儂, 張延英, 于靈芝는 "解腹即解開衣服了. (解腹이란 옷을 풀어헤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47) 문자 상 의미만으로 보면 王輝와 王林生의 견해가 설득력 있다. 전래문헌 속에서 '解腹'라는 명칭을 찾아보면 전문 용어로 잘 쓰이지 않는 것 같다. 다만 이와 관련하여 『상한론』에서 '腹脹滿'이란 증상을 찾아보았는데 다음과 같다.

『傷寒論·辨太陽病脈證并治』 "發汗後,腹脹滿者, 厚朴生薑甘草半夏人參湯主之. (발한한 후에 배가 창만하면 厚朴生薑甘草半夏人參湯으로 치료한다.)"48)

『傷寒論·辨陽明病脈證并治』 "發汗不解, 腹滿痛者, 急下之, 宜大承氣湯. (發汗으로 풀리지 않고 배가 그득하고 아프면 급히 설사를 시키는데, 大承氣湯을 쓴다.)"49)

『傷寒論·辨陽明病脈證并治』 "大下後, 六七日不大便, 煩不解, 腹滿痛者, 此有燥屎也. 所以然者, 本有宿食故也, 宜大承氣湯. (크게 설사시킨 후에 6,7일 동안 대변을 보지 못하고,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으며, 배가 그득하고 아프다면 燥屎가 남아있는 것이다. 이는 본래 宿食이 있었기 때문인데, 大承氣湯을 쓴다.)"50)

『傷寒論·辨陽明病脈證并治』 "傷寒吐後, 腹脹滿者, 與調胃承氣湯. (상한에 걸렸을 시 토한 후에 배가 창만하면 調胃承氣湯을 쓴다.)"51)

의학적인 파악은 할 수 없으나, 표면적인 내용만 살펴보면 상한에 걸렸을 시 '腹脹滿'이라는 증상이 발현되는 경우를 설명한 것 같다. '脹滿'이란 '배가 몹시 불러 오면서 속이 그득한 감을 주 증상으로 하는 병증'인데,52) 이를 풀어주는 요법이 소개된 것으로 보아 解腹과 연관성이 있다고 보았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용례는 發汗 요법으로 치료하였는데 배가 팽팽하고 그득해지는 경우 어떻게 처방해야 하는지를 기록하고 있고, 세 번째와 네 번째 용례는 發汗과는 관계없지만 상한에 걸렸을 시 배를 풀어주는 방법을 기록한다. 여기서 쓰인 처방은 厚朴生薑甘草半夏人參湯과 大承氣湯, 調胃承氣湯으로 이들 중 주요 약재료로 출현하는 '大黄'이나 '厚朴'은 앞의 『무위한대의간』 처방에도 포함된다.53) 『상한론석의』의 해설에 의하면 '大黃'은 實邪를 없애버리고 맺힌 열을 내리게 하며, '厚朴'은 배의 그득한 것을 빠지게 하는 등 대장에 막혔던 氣機를 소통하게 한다고 하였다.54)

마지막으로 용례 ② 속 "□□□□□" 부분에 대한 고석이다. 죽간에서 이 부분의 글자는 '冶'자의 절반 부분을 제외하고 완전히 소실되었는데, 감숙성박물관은 "并冶合和以"로 보충하였고, 張延昌 또한 이를 따랐다.55) 그러나 필자는 보충된 내용이 다음에 나오는 "方寸匕一, 飲之"와 문맥상 잘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용례 ①에서는 "方寸匕酒飲"이라고 하여, 약재료들을 술과 섞어 음용하였는데, 보충된 내용으로 본다면 약재료들을 포제한 뒤 합쳐서 '飲之'하고, 酒나 白湯 등의 수용성 재료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에서 '冶'를 넓은 의미의 포제로 해석한만큼 '水製'나 '酒製'와 같이 수용성 재료에 우리거나 섞어서 합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으나, 『무위한대의간』이나 비슷한 시기의 출토의서인 『五十二病方』 속에서 '飲之'는 반드시 '酒'나 '汁'과 같은 수용성 재료와 함께 언급되어 있거나, 혹은 '煮(삶다, 끓이다)'라는 용어와 출현한다.56) 따라서 이 부분은 재고할 수밖에 없는데, 다만 죽간의 손상 정도가 심하고, 사진 상으로는 부분적으로 남아있는 자체의 흔적을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문맥으로 유추하는 방법 또한 비슷한 용례가 적기 때문에, 여기서는 문제만 제기하고 앞으로의 연구를 기대하도록 한다.

2) 『敦煌漢簡』 속 상한방의 용례 분석

③ 治傷寒□〼 (치료, 상한… ) [敦煌 2008]

위는 '상한'의 세 번째 용례로, 『敦煌漢簡』 속에 보인다. 『敦煌漢簡』은 甘肅省 疏勒 河流유역에 위치하는 고대 한나라 변방 봉수대에서 발굴되었다. 1만 여편의 簡牘 중 醫方과 관련된 기록이 몇몇 남아있지만, 그 수가 많지 않고, 손상도가 심해 학계에서는 그다지 비중이 크지 않다.57) 그 중 여기서 특기할만한 것은 위의 '傷寒'이라는 명칭이 발견되었다는 것과 "須臾, 當泄下. 不下, 復飲藥盡, 大下, 立愈矣. (잠시 후 설사를 하게 된다. 하지 않으면 재차 약을 끝까지 마시고, 크게 설사하면 바로 낫는다.)"[敦煌1997]라는 내용이다. 전후 내용이 소실되어 상한병과의 연관성은 확신할 수 없으나 '下法'을 이용한 치료로 추측한다.

3) 『居延漢簡』 속 상한방의 용례 분석

④ 傷寒四物, 烏喙十分, 細辛六分, 朮十分, 桂四分, 以溫湯飲一刀刲(圭), 日三, 夜再行解, 不汗出. (상한에는 4가지 약물인 烏喙 10푼, 細辛 6푼, 朮 10푼, 桂 4푼을 온탕과 함께 一刀圭만큼 마신다. 하루에 세 번 마시고, 밤에 다시 行解를 하면 땀이 나지 않는다.) [居延 89.20, 甲509]

④는 '傷寒'의 마지막 용례로, 『居延漢簡』 속에 보인다. 『居延漢簡』은 額濟納의 하류 유역인 居延懸에서 출토된 간독으로, 『돈황한간』과 마찬가지로 의방과 관련된 내용이 많지 않은데다가, 간독의 손상도 또한 크다.58) 용례 속 처방을 살펴보면, 총 4가지 약물을 사용하였다. 이 중 '烏喙', '細辛', '朮' 세가지 약물이 『무위한간』 ① 용례인 '治傷寒遂風方'과 겹치고, '桂'가 다르다. '桂'는 '桂枝'로, 『신농본초경』에서는 '牡桂'로 나온다.59) '계지'는 계피나무의 어린 가지를 말린 것으로 風寒邪를 없애고 기와 혈액 순환을 촉진하며 榮衛를 조화시킨다고 하였다.60) 다음으로 '刀刲(圭)'를 살펴보면, 한의학에서는 이를 "옛날 가루약의 양을 잴 수 있게 만들어 쓰던 약숟가락의 하나. 한 도규는 약 네모 1치 숟가락의 1/10에 해당한다. 한 도규는 대체로 오동나무 씨 크기만 한 환약 한 알을 만들 수 있다."61)고 하였다. 이는 전래문헌의 기록을 토대로 한 것인데, 『本草綱目』에서 散失된 『名醫別錄』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凡散云刀圭者, 十分方寸匕之一, 準如梧桐子大也. 方寸匕者, 作匕正方一寸, 抄散取不落爲度. (散劑에서 刀圭라고 하는 것은 方寸匕의 1/10으로, 오동나무씨의 크기에 준한다. 方寸匕는 정방 1寸의 숟가락 모양을 만들어 가루를 뜬 뒤 떨어지지 않을 정도를 취한 양이다.)"62) '刀圭'를 문자 그대로 보면 '刀'은 '칼'을 뜻하고, '圭'는 '옥'이나 '홀'을 뜻한다. 『說文』에 이르길 "圭, 瑞玉也. 上圜下方. (상서로운 옥이다.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난 모양이다.)"라고 하였다.63) 또한 明代 董穀의 저서인 『碧里雜存』을 살펴보면 漢나라 시기 화폐인 '錯刀'에 관한 묘사가 나오는데, "形似今之剃刀, 其上一圈如圭璧之形, 中一孔即貫索之處. (형태는 오늘날의 剃刀와 같다. 위는 하나의 구슬과 같은 동그란 모양으로 되어있고, 중간의 구멍에는 새끼줄을 꿰어 묶을 수 있다.)"라고 하였다.64) 즉, '錢匕'가 동전으로 산제를 측정하는 용량 단위인 것처럼 '刀圭'도 이와 비슷한 측량 방법에서 나온 단위로 보여진다. '刀圭'는 『무위한대의간』 속에서 총 3차례 보이는데 다음과 같다.

"凡二物冶合, 和溫酒飲一刀, 日三. 創立不痛. (2가지 약물을 모두 포제하여 섞고, 溫酒와 함께 一刀圭만큼 마신다. 하루에 세 번 마시면 創傷이 낫고 통증이 가신다.)" [武威 13]

"冶合, 和, 使病者宿毋食, 旦飲藥一刀圭… (포제하여 섞고 환자로 하여금 숙식이 없게 한 뒤, 아침에 약을 一刀圭만큼 마신다.)" [武威 45]

"…大黃一分, 冶合, 和, 以米汁飲一刀圭, 日三四飲, 徵出乃止. (…大黃 1푼을 포제하여 섞고, 米汁과 합하여 一刀圭만큼 마신다. 하루에 3,4번 마시면 癥이 나오고 이내 멈춘다.)" [武威 70]

[武威 13]에서는 刀圭의 '圭'자가 탈락되었으나 전후 문맥으로 알 수 있다. [武威 45]는 산제를 그대로 飲用하는 것 같다. '服'으로 기록하지 않은 것은 의문이 드나, 一刀圭는 많은 양이 아니므로 '飲'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65) 이 부분에 관해서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나머지 용례는 '溫酒'나 '米汁' 등의 수용성 약재와 함께 섞어서 음용하였다.

마지막으로 "夜再行解, 不汗出"에 관한 분석이다. 앞의 용례 ②에서 '行解'에 관해 언급하였는데, 자체적인 문자 뜻은 '걸어서 풀다'로 걸음을 걷거나 바깥으로 나가 바람을 쐬어 해독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러나 ②에서는 '行解'에 대한 처방으로 약재료와 복용방법만 나열되어, 발한을 포함한 사기를 배출하는 총체적 행위의 명칭으로 쓰인 것 같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용례 ④에서는 상한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물을 4가지를 혼합해서 먹고, 하루에 세 번 복용한 뒤, 밤에 다시 行解를 하라고 명시한다. 이로보아 여기서는 行解가 문자 본연의 뜻으로 쓰인 것 같다. 특히 서늘한 때인 밤 시간에 행하면 땀이 나지 않는다고 한 것은 걷거나 바깥바람을 쐬는 것을 연상시킨다. 결과적으로 용례 ④인 『거연한간』에서는 '行解'라는 명칭이 문자에 충실한 뜻으로 쓰였고, 용례 ②인 『무위한대의간』에서는 의미가 확대되어 '邪氣 배출'과 관련한 총체적 의미로 쓰였는데, 이는 각 출토문헌의 연대와도 연관성이 있는 것 같다. 『거연한간』은 이르게는 西漢 武帝(BC.156-87)에서 가장 늦게는 東漢 初의 것으로 추정하고, 『무위한대의간』은 東漢 초기 혹은 바로 전의 것으로, 시기적으로 보면 『거연한간』의 저작연대가 『무위한대의간』보다 이르다. 또한 둘 다 감숙성에서 발견되었으므로, 추측컨대 '行解'는 처음, 물리적인 행위의 치료법만을 뜻했다가 후에 사기를 배출하는 총체적 치료법의 명칭으로 확대된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이에 관해서는 더 많은 용례 분석이 필요하지만 아쉽게도 『馬王堆』나 『張家山漢簡』 등의 다른 출토의서에서는 보이지않는다. 다만 앞에서 언급한 『論衡·寒溫』의 기록과 비교했을 때 '行解'가 상한병 초기의 치료방법 중 하나였음은 분명하다.66)

Ⅲ. 결론

이상으로 출토문헌 속에 '傷寒'이라는 명칭이 출현한 예를 찾아 분석하였다. 용례의 수는 많지 않았으나 『상한론』의 특징인 辨證論治와 臨床處方을 엿볼 수 있었다. 용례 ①은 상한의 초기 증상이라 할 수 있는 表의 寒邪를 몰아내는 逐風方으로, 『급비천금요방』의 처방과 거의 일치하였다. 용례 ②는 '行解'와 '解腹'에 대한 처방으로, 이들은 상한병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때 쓰이는 치료법이다. 용례 ①과 ②는 둘 다 같은 『무위한대의간』 속에 기록된 것으로, 이는 상한에 대한 변증논치가 이미 실천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용례 ④는 『거연한간』에 보이는 기록으로, 쓰인 약재는 용례 ①의 逐風方과 비슷하다. 하지만 처방에는 약을 먹는 동시에 '行解'​​​​​​도 함께 행할 것을 요구한다.

『五十二病方』이나 『張家山漢簡』에도 초기 한의학 이론을 면밀히 살펴볼 수 있지만 상한에 대한 정보는 아직까지 이들이 가장 주요한 듯하다. 다만 앞으로 출간예정인 편작학파의 佚書로 추정되는 老官山​​​​​​漢簡의 『六十病方』에서 風, 寒, 濕에 관한 처방이 다수 기록된 것으로 보고되는 바, 상한이론과 어느 정도의 연관성이 있는지 기대해본다.

감사의 글

이 논문은 2018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입니다. (NRF-2018S1A5B5A01034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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