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Summary/Keyword: the Eastern Learning

검색결과 90건 처리시간 0.02초

서독(書牘)에 나타난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의 사상(思想) 연구(硏究) (A Study on Junghui Kim's Concepts in Seodok(書牘))

  • 권혁순
    • 동양고전연구
    • /
    • 제33호
    • /
    • pp.279-304
    • /
    • 2008
  • 본고는 완당(阮堂)의 서독(書牘)에 나타난 사상을 살피기 위하여 "역(易)" 실학(實學)과 관련된 내용을 추출하여 그 경향에 대하여 논구하였으며, 완당의 도가사상을 파악하는 관점에서 서독에 표출된 도가적 의식도 고찰하였다. 완당의 사상적(思想的) 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위한 "역(易)"의 활용이다. 완당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백성의 생존과 직결되는 음식남녀(飮食男女)였다. 완당은 "역(易)"으로 '수기(修己)'를 하고 "역(易)"을 활용하여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두 번째는 실사구시를 바탕으로 한 '동서불분(東西不分)'의 경세치용(經世致用) 의식과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자연관이다. 완당은 그 당시의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적극 수용하였으며, 나라를 위하여 서양의 기술을 모방이라도 해야 한다고 피력하였다. 세 번째는 완당의 '무위(無爲)'와 '불언(不言)' 의식이다. 완당은 평소에 저술(著述)이라는 작위(作爲)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러한 의식은, 질시와 모함 속에서도 완당의 목숨을 부지(扶持)시키고 양신(養身)으로 연결되도록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네 번째는 자연순응(自然順應)과 자연회귀(自然回歸) 의식이다. 이는 그의 농사(農事) 소원과 정치관에서 나타나는데, 임금은 의리(義理)와 예절(禮節)로 백성을 속박하지 않아야 하며 '인정(人情)'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하였다. 요컨대 서독에 나타난 완당(阮堂)의 사상(思想)은 두 흐름으로 대별할 수 있다. 하나는 무위자연(無爲自然) 불언(不言) 자연회귀(自然回歸) 의지를 통한 보신(保身)이다. 다른 하나는 수기치인(修己治人) 경세치용(經世致用) 이용후생(利用厚生) 인정(人情)을 따른 덕치(德治) 등을 궁극적 목적으로 한 연찬이다. 그런데 '보신(保身)'은 고도의 '수기(修己)'라고 할 수 있으며, 수기치인(修己治人) 등은 백성의 편안한 삶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집약하면 '수기이안백성(修己以安百姓)'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즉 완당의 사상적 특성은 융합된 유가 도가사상을 기저로 하고 있으며, '수기이안백성(修己以安百姓)'을 목표로 하여, 시대와 학문의 변화를 살펴서 수용 이용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유가(儒家)의 전인적(全人的) 지도자상(指導者像) 고찰(考察) (A Study on the Ideal Leadership whole person of Confucian philosophy)

  • 김경미
    • 동양고전연구
    • /
    • 제62호
    • /
    • pp.145-176
    • /
    • 2016
  • 본고는 개인의 덕성(德性)과 사회적 덕행(德行)의 보편적 가치와 규범이 제시되어 있는 유가(儒家) 경전(經典)을 토대로 군자(君子)다운 지도자상은 어떠한 것인가를 파악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인간다움을 참다운 것으로 삼고, 인간관계의 사회성을 제대로 실천하는 유덕자(有德者)의 가치관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다. 군자상의 진면목은 조화의 균형 감각이 있고 자기 수양에 엄격하며 인간관계의 상생적 가치를 창출하는 등 진선미가 삼위일체로 융합되는 '성기성물(成己成物)'의 참된 인물상(人物像)이라는 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성인(聖人), 현인(賢人), 대인(大人), 군자(君子) 등은 인간세상을 이끌어가는 사회지도자를 의미한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인간다운 도리를 지키며 사회풍토를 아름답게 교화하고 정신과 물질(物質)의 조화(調和) 인격(人格)과 능력(能力) 경제(經濟)와 도덕(道德)을 겸비한 인물로 지목(指目)하고 있다. 현대 사회인들은 순수한 지성(知性)문화의 가치보다는 물질적 가치의 선호도(選好度)에 따라 개인적인 성장(成長)을 꾀하고, 시각적으로 보여 지는 외형적인 무한경쟁(無限競爭)에 편중되어 있다.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 자신의 개성을 연출하는 것은 부정할 수는 없지만, 외모(外貌)에 집착(執着)하여 지나친 다이어트로 건강미를 상실하고, 그로 인(因)한 정신적 스트레스는 외모 집착과 외모중시의 병적인 폐단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극복(克復)하기 위해 절실하게 요청되는 대안으로 내적 소양과 외적 전문성을 고루 겸비한 온전한 인격체, 즉 이른바 "문질(文質)이 빈빈(彬彬)"한 진선미(眞善美)의 융합적 지도자상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유교사상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도(道)를 현실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수기는 개인적으로는 덕성적 능력을 계발하여 도덕적 인격을 함양하는 것이며, 치인은 사회적으로는 함께 일하는 올바른 인간관계를 갖도록 소통(疏通)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leader 또는 지도자는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까지도 감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수기치인은 '스스로의 덕성을 가다듬어 다른 사람들을 이끈다.'는 의미이다. 참다운 지도자는 수기(修己)를 통해 자기성찰과 자기정립을 한 다음에 치인(治人) 또는 남들과 함께 살아가는 안인(安人)의 경지에 서게 되는 것이다. 모든 물건에는 값어치가 있고 나름대로의 德이 있듯이. 인간 역시 인격과 덕성(德性)을 갖추고자, 배우고 익혀 자신만의 전문성 신뢰성 그리고 인격과 능력을 겸비하여, 자신만의 브랜드(Brand)가치를 창출해 내고자 한다. 개인의 인격(人格)은 높은 지위나 재력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인격이란 개인의 덕성으로서 자기수양을 통하여 마음에 조금도 티가 없는 상쾌함으로, 굳이 한자로 표현하자면 맑고 깨끗한 '소쇄(瀟灑)'에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인간이 天性으로 품부 받은 덕성인 지(知) 인(仁) 용(勇)을 겸비한 지극히 인간다움의 인격(人格)을 지닌 지도자상으로 군자상(君子像)을 제시한다. 자아개발은 self leader, 즉 수기(修己)를 통하여 덕성수양과 자아경영의 힘을 기르게 된다. 관계영역의 leader(治人)는 자신(自身)의 덕성(德性)을 덕행(德行)으로 미루어 가는 즉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확대(擴大) 시킬 수 있다. 이처럼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남을 생각하는 리더십을 "대학(大學)"에서는 "혈구지도(?矩之道)"라고 한다. 논자의 견해는, 인격미(人格美)는 지(知) 인(仁) 용(勇)'으로 덕성(德性)의 씨앗을 일구고 상생미(相生美)는 '서(恕)'로써 타인(他人)에게 행동으로 보여주는 덕행의 마땅한 올바름을 구현하며 조화미(調和美)는 '혈구지도(?矩之道)'로써 남을 나처럼 아끼고 사랑하여 나와 같은 마음 즉 보편적 원리인 덕화(德和)를 구현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이처럼, 지도자상의 자질은 자신의 소양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총체적으로 잘 조화를 이룰 때 지도자가 지니고 있는 능력을 무한히 발휘하며, 많은 사람들과 공생(共生) 공존(共存)하며 서로 승승적(乘勝的)관계로 거듭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웰에이징 : 노년의 삶에 대한 여헌 장현광의 성찰 (Well-Aging: the Yeoheon Jang Hyun Kwang's meditation on the old age)

  • 김경호
    • 동양고전연구
    • /
    • 제49호
    • /
    • pp.109-136
    • /
    • 2012
  • 조선시대 유학자였던 여헌 장현광은 '노인' 혹은 '노년의 삶'을 학술적 영역으로 끌어들여 '주제화'화고, 그러한 노년시기에 노인은 자신이 수행해야 할 사업이 있다고 본다. 그것이 '노인사업'이다. 노인이 삶에 대한 주체적 자각을 통해 자신의 책무를 수행해 가는 과정은 '삶으로서 자기완성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시기가 바로 노년의 시기이다. 필자는 장현광이 제안하고 있는 것처럼 노인이 자신의 직분을 수행해 가는 노년을 '삶으로서의 자기완성의 시기'로 보며, 이 과정적 시간을 '웰에이징'으로 파악한다. '웰에이징'은 '자기완성을 위한 존엄한 노년'인 것이다. 웰에이징은 단순히 안티웨이징(anti-aging)과 같이 육체적 노화 혹은 늙어감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늙어가는 것 그 자체를 수용하면서 노년의 시기를 긍정적인 자기 변화의 시간으로 받아들이려는 삶의 양식과 태도이다. 장현광의 물음은 한 마디로 압축된다. 곧 "노년의 시기에 인간으로서의 '노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장현광은 노년기는 생물학적으로 '황혼기'에 들어섰지만, 그러나 '의지적인 존재로서 인간의 사명'이 아직은 남아 있다고 본다. 그것을 장현광은 노인사업이라 하고, 그 사업을 통해 '도를 보존할 것(存道)'을 제안한다. 장현광이 제기하는 것처럼 노년기는 담담히 자신을 완성해가는 과정이자, '노인으로서의 개인'이 '자기 존재감'을 유지해야 한다. '활동적인 노년'(active aging)을 통해 '누적된 경험적 지혜'를 활용함으로써 '노인에 의한 사회적 기여'도 가능하게 된다. 이러할 때, '노인'은 '고령화시대의 노년기'를 보내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노년기'를 보낼 수 있게 된다. 자신을 완성해 나아가는 존엄한 인간으로서 노인의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장현광이 '노인사업'이라고 하는 철학적 성찰을 통해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은 바로 노년이란 '존엄한 존재'로서의 자신에 대한 재발견이자 자기 실현의 시기라는 점을 재확인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의 서풍(書風)에 나타난 복고적 성향 고찰 (A Study on the Reactionism Tendency in the Calligraphy Style of Changam(蒼巖) Lee Sam-man(李三晩))

  • 박재복
    • 동양고전연구
    • /
    • 제49호
    • /
    • pp.357-392
    • /
    • 2012
  •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사유(思惟)와 지향(志向)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동안 창암(蒼巖)에 대한 연구는 서론과 작품의 형태미를 중점적으로 논의하였을 뿐 작품에 내재되어 있는 사유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창암의 작품은 이광사(李匡師)의 서풍을 계승하면서 복고주의적 성향이 매우 강해서 같은 시기 활동하던 북학파의 영향이 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본고에서는 창암의 이러한 서풍을 '복고적 성향'이라고 명명하고, 그의 이러한 복고적 사유가 학서(學書) 과정과 작품에 나타난 구체적 양상을 살펴보았다. 창암은 진적(眞跡) 친필(親筆)자료들을 중시하면서 행초서(行草書)를 즐겨 썼다. 그러나 학서 과정에서 항상 필력을 강조하여 한위(漢魏)의 글씨에 근본을 두었고, 행초서를 쓰더라도 반드시 해서(楷書)를 먼저 익혀 그 필력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창암은 평생 동안 왕희지(王羲之) 서풍의 소해(小楷)로 된 작품들을 많이 남겼는데, 이는 조선후기 동국진체(東國眞體)의 서가들이 왕희지의 해서, 특히 소해를 전범으로 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경향은 마음의 스승인 이광사의 영향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창암은 또한 왕희지의 법첩(法帖) 글씨에 부족한 필세를 보완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한 흔적들이 발견된다는 점에서 다른 서가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는 먼저 서예이론에 있어서는 한위(漢魏)의 고법(古法)을 중시하여 채옹(蔡邕)과 종요(鍾繇)를 근본으로 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 대해(大楷)에 있어서는 <구루비(??碑)>의 필세가 가미된 <예학명(?鶴銘)>과 위(魏) 무제(武帝)의 글씨, 안진경(顔眞卿)의 <대당중흥송(大唐中興頌)>과 김생(金生) 글씨 등을 끊임없이 연마하였다. 특히, <구루비>와 <예학명>의 필의(筆意)를 이용한 그의 말년 작품은 기본적으로 해서인 <예학명>의 자형(字形)에 <구루비>의 구불구불한 형세(形勢)를 취해 자신의 독특한 서풍을 보여주는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18세기 향촌사회와 유교공동체 - 순암 안정복을 중심으로 - (Ahn Jeong-Bok's idea of country village community)

  • 김보경
    • 동양고전연구
    • /
    • 제35호
    • /
    • pp.415-445
    • /
    • 2009
  • 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1712~1791)은 역사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향촌사회(鄕村社會) 전문가이기도 했다. 그는 중앙 정치권력에서 소외된 남인계(南人系) 학자였다. 유년과 청년시절 향촌 각처를 전전했고, 20대 중반 광주(廣州) 덕곡(德谷)에 정착한 뒤로는 관직 때문에 잠시 나간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이곳에 머물며 수양과 저술에 전념했다. 60대 후반 목천(木川) 현감(縣監)을 마지막으로 실직(實職)에서 물러났다. 이러한 불우한 환경은 그의 학문적 관심과 정치적 시선을 형이상학(形而上學)이 아닌 '형이하학(形而下學)'으로, 중앙이 아닌 '향촌'으로 향하게 했다. 그는 향촌을 가(家)와 국(國)을 매개하는 연결고리로 파악하고, 향촌을 기반으로 하여 인간의 기본 윤리와 일상생활에서의 예(禮)의 실천을 강조하는 유교공동체를 구상했다. 먼저, 그가 구상한 유교공동체는 향촌을 단위로 하는 지역공동체이다. 그는 향촌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교화(敎化)를 최우선의 과제로 삼고, 향약(鄕約)을 그 방안으로 제시했다. 자신의 향리에 동약(洞約)을 실시했고, 목천 현감 시절에는 향약(鄕約)을 시행했다. 이것은 사대부 중심의 향촌질서를 재구축하고자 한 의도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 향약은 상하(上下) 동참의 형태를 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심(民心)에 대한 순응과 사대부의 솔선수범을 강조하고 일상생활에서의 윤리의 실천을 통해 구성원 간의 조화와 질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지역공동체적인 성격을 지닌다. 한편, 그는 향촌의 학문공동체를 기획했다. 그는 학교 진흥을 교화의 급선무로 인식하고, 서재(書齋)를 중심으로 향촌 자제들과 강학 활동을 전개했다. 여택재(麗澤齎)라는 서재(書齋)를 설치하여 "소학(小學)"을 강독했고, 70대 후반에는 "여씨향약(呂氏鄕約)"을 표준으로 하고 일상의 윤리와 독서법을 덧붙인 학약(學約)을 마련하여 시행했다. 이 학약은 뒤에 전라남도 나주의 미천서원(眉泉書院)에 적용되었다. 이는 강학과 명도(明道)의 중시, 독서와 실천의 일치를 강조하는 그의 학문관과 학문공동체 기획의 사회적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판단된다.

손자병법의 전략과 그 현대적 응용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Art of War's strategy and its modern application)

  • 송용호;전명용
    • 동양고전연구
    • /
    • 제73호
    • /
    • pp.249-279
    • /
    • 2018
  • 본 논문은 손자병법의 '전략'을 분석하고, 이를 현대사회, 특히 기업경영에 접목하는 시도를 통해 손자병법의 현대적 응용가치를 검증하기 위한 것이다. 군대는 전쟁에서 피해와 희생을 최소화하고 빠른 시간 내에 승리를 얻기 위해 '전쟁전략'을, 기업은 최소비용으로 최대이윤을 내기 위해 '경영전략'을 사용한다. 손자병법의 '세(勢)', '응변력(應變力)', '궤도(詭道)'로 구성되는 전략의 3요소는 현대 기업경영에서의 '내부자원 분석', '외부환경 분석', '정보관리'와 연결된다. 전략의 수립단계에서 손자병법에서는 '선지(先知)', '묘산(廟算)', '군쟁(軍爭)'을 포함하는 '선승전략(先勝戰略)'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현대 기업경영에서 '선지'는 3C분석 중 경쟁자분(competitor)과 벤치마킹으로, '묘산'은 SWOT분석과 4P's분석으로, '군쟁'은 포지셔닝전략과 시장선점전략으로 표현되고 있다. 전략의 실행단계에서 '기습전략(奇襲戰略)', '허실전략(虛實戰略)', '분합전략(分合戰略)'은 현대 기업경영에서 '기습전략'은 차별화전략과 집중화전략으로, '허실전략'은 정보관리와 합리적 포지셔닝으로, '분합전략'은 다각화전략, 집중화전략, 변화관리, 본원적 경쟁전략, 시너지효과 등으로 발현되고, 전략의 결실은 손자병법에서는 '전쟁의 승리', 현대 기업경영에서는 '경쟁우위'와 '이윤극대화'로 나타난다. 이처럼 손자병법의 전략은 표현과 방식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현대 기업의 경영전략과 궁극적으로 서로 상통하고 있어, 기원전 500년경에 쓴 병법서이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과 치열한 경쟁 속에 놓여 있는 현대의 기업들과 현대인들에게 경쟁의 원리와 승리의 비법을 깨닫는데 필요한 '큰 지혜'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화의식(文化意識)과 그 실천(實踐) (Cultural awareness and its practice of Jang Hyeongwang)

  • 박학래
    • 동양고전연구
    • /
    • 제49호
    • /
    • pp.39-71
    • /
    • 2012
  • 본고는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학문 체계 내에서 그가 구체화시켰던 문화의식에 초점을 맞추고, 그 기저가 되는 인문 정신, 문화 의식과 연관된 그의 국토 인식 및 우리 문헌 자료에 대한 그의 특징적인 논의와 실천의 모습을 검토한 것이다. 그리고 이 논의의 출발점은 최근 역사학계에서 여헌의 학풍을 둘러싸고 제시된 엇갈리는 평가에 기초한다. 여헌은 문화와 관련된 기본적인 인식 체계로서 인문 정신의 구현에 주목하였다. 그는 '도(道)'의 가시적이며 현상적 대상이 '문(文)'임을 제시하고, '도'와 '문'의 불가분리성을 제시하고, 인문의 실현이 천문(天文)과 지문(地文)을 구현하는 요체임을 강조하였다. 특히 그는 인문의 실현 주체로서 인간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였으며, 인간이 실현해야 할 인문의 내용을 '도덕의 실천'으로 규정하였다. 인간이 일상에서의 행위로부터 사회 윤리와 교화의 규범, 그리고 천지만물의 화육(化育)에 이르는 것이 모두 인문의 내용이라 이해하였으며, 이러한 내용이 육경(六經)에 온전히 담겨 있다고 보았다. 여헌은 인문 정신의 실현이 도덕의 실천임을 강조하면서,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 또한 놓치지 않았다. 그는 인문 실현의 터전으로서 지문(地文)에 대한 이해를 우리 국토에 대한 인식과 결부시켜 형세(形勢)를 중심으로 국토를 파악하고, 중국과 비견되는 '소중원'이라 규정하였다. 긍정적인 국토 인식 하에서 우리 국토에서 배태된 우리의 풍속과 문화가 중국에 결코 뒤지지 않음을 제시하였다. 나아가 그는 우리 역사 속에서 드러난 문헌에 대한 애착을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끌었다. 그는 우리 문화를 이해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의지를 그의 문인인 김휴(金烋)를 통해 우리나라 최고의 도서 해제집 "해동문헌총록(海東文獻總錄)"으로 구체화하였다. 이 책의 편찬 작업이 전란을 거치면서 피폐해진 현실 상황에서 우리 문화유산을 정리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의식 하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국학정신이 앙양된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위와 같이 여헌은 인간 도덕에 대한 자각과 실천을 바탕으로 인문세계의 실현을 누구보다도 강조하였고, 이러한 생각과 의지는 우리 국토와 문화, 그리고 문헌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유학 전통의 도덕 실천을 강조하는 그의 인문 정신은 인간 도덕의 보편성에 대한 확신이자 실천 의지로 이해되어야 하며, 그가 보여주었던 우리 국토와 문화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실천적 지향은 비록 중국과 비교되는 차원에서 제시되었지만, 중국에 대한 추종이라기보다는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의 한시(漢詩) 연구(硏究) (Study on The Chinese Poems Composed by Mi-Am Yu Hee Choon)

  • 송재용
    • 동양고전연구
    • /
    • 제57호
    • /
    • pp.383-406
    • /
    • 2014
  •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1513~1577)은 시를 생활의 일부로 여겼다. 그러므로 필자는 미암 유희춘의 한시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았다. 본고에서 논의한 사항들을 종합하여 결론으로 삼으면 다음과 같다. 미암(眉巖)은 문학을 재도적(載道的)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하였다. 미암(眉巖)의 한시는 현재 300여수로 추산되는데, 필자가 파악한 작품은 285수이다. 그리고 미암(眉巖)은 진지한 자세로 작시(作詩)에 임했으며,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시하였다. 고시(古詩) 율시(律詩) 절구(絶句) 가운데 絶句(특히 칠언(七言))가 가장 많으며, 오언(五言)보다 칠언(七言)을 더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 고시(古詩)의 경우, 전고(典故)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절구(絶句)는 미암(眉巖)이 가장 능했던 시체(詩體)로, 주로 생활과 관련된 내용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율시(律詩)는 자기성찰이나 현실세계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표출한 내용의 시들이 많다. 미암(眉巖)의 시는 유배기와 해배 복관 이후기로 나눌 수 있다. 유배기는 학문 연마를 통한 자기수양(自己修養), 우정(友情), 애민(愛民) 등으로, 해배 복관 이후기는 충군(忠君), 지인(知人)들과의 교유, 감회(感懷), 숭조상문(崇祖尙門), 자기성찰(自己省察), 문학적 교감을 통한 부부애(夫婦愛)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미암(眉巖)의 시는 시제(詩題)에 음(吟) 송(送) 차운(次韻) 등이 붙은 작품이 많으며, 일상생활이나 체험사실 등과 관련된 시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태반은 담담하게 사실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미암(眉巖)은 시를 생활의 일부로 여겼으며, 부인 송덕봉과 일상생활에서 겪었던 일을 시로써 수창하며 서로 문학적 교감을 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별업(別業) '유회당' 원림 하거원(何去園)의 의미경관 해석과 환경설계기법 (A Study on the Meaning Landscape and Environmental Design Techniques of Yoohoedang Garden(Hageowon : 何去園) of Byulup(別業) Type Byulseo(別墅))

  • 신상섭;김현욱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46권2호
    • /
    • pp.46-69
    • /
    • 2013
  • 권이진(1668~1734)의 문집(유회당집)에 수록된 기문에 근거하여 별업형 별서 유회당 원림(하거원)의 의미경관과 환경설계기법을 추적하였는바, 첫째, 유회당 권이진은 대전 보문산 남쪽 무수동 마을 뒷동산 일대에 20여 년 동안 3단계에 걸쳐 선묘, 별업, 원림, 강학처 등 별업형 별서원림을 조성했다. 즉, 초창기 마을 뒷동산에 부친의 묘를 자리 잡아 별업(유회당)을 조성했고, 중반기에 연못(납오지), 원림(반환원), 선묘를 보호하고 후손의 강학을 위한 여경암과 거업재 등을 조성했으며, 후반기에 유회당을 증축하고, 동쪽 영역을 확충하여 하거원 원림을 완성했다. 둘째, 풍수적 입지 체계하의 무수동 마을에 자리 잡은 유회당 별업은 본제 살림집(안동 권씨 종가), 별업(유회당), 선묘소, 하거원(원림), 여경암(강학처) 등 별업형 별서가 갖추어야 할 공간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셋째, 유불선(儒佛仙)에 기반한 의미경관 요소가 작용되었는데, (1) 부모님 추모, (2) 가문 화합, (3) 절개, (4) 덕, (5) 고매한 인간 염원, (6) 상서로움, (7) 은일자의 삶, (8) 가문 번영과 학문 발전, (9) 선조의 은혜, (10) 선경세계, (11) 묘역보존, (12) 불로장생의 염원 등을 들 수 있다. 넷째, 선영 묘역을 조성한 후 13년에 걸쳐 조성한 하거원은 계류를 따라 3개의 연못이 어우러진 수경원을 조성했으며, 5개의 대(臺)와 3곳의 대숲, 그리고 석가산 등을 갖추어 선경의 이상세계를 구축하였다. 다섯째, 소나무, 단풍, 철쭉, 진달래, 감나무, 대나무, 버드나무, 석류, 사계화, 산당화, 왜철쭉, 복숭아, 연꽃, 국화, 작약, 모란, 장미, 벽오동, 무궁화, 배롱나무, 자두와 살구, 매화, 반송, 잣나무, 회양목, 단내 등 수 많은 조경식물종을 도입하여 시정(詩情)을 통한 낭만성, 의인화를 통한 상징성과 이상향 표출, 사계절 경색을 고려한 다양성 등을 꾀하였다. 여섯째, 경관석의 활용은 자연암석을 그대로 이용하는 진경(眞景)기법, 수경요소와 연계, 석연지와 화계 등을 이용한 점경물 기법, 의미경관의 진수를 보여주는 축경형 석가산기법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수경관의 특징은 자연계류와 지형조건(동쪽계곡)을 고려한 물의 적극적 활용, 계류를 따라 원림의 각 공간을 리듬감 있게 물길로 연계하는 생태적 코리도 역할, 활수담, 몽정, 호수와 복수 등 철학적 가치를 연계시킨 의미경관의 대입, 물성을 이용한 청각과 시각 등 이목구비(耳目口鼻)의 오감만족 체험 공간화 등을 들 수 있다.

『대학(大學)』해석(解釋)을 통해 본 주자(朱子)의 격물치지론(格物致知論) (The Study of Zhuzi's Gewuzhizhi Theory)

  • 서근식
    • 동양고전연구
    • /
    • 제33호
    • /
    • pp.359-384
    • /
    • 2008
  • 주자(朱子)는 본래 "예기(禮記)"의 43번째 편이었던 "대학(大學)" 독립시켜 "대학장구(大學章句)" 재편집하였고, 이 과정에서 134자(字)를 보충하였다. 보충한 134자(字)는 격물치지(格物致知)에 관한 것으로 주자(朱子)의 이러한 해석(解釋)은 후대 학자들이 "대학(大學)"을 해석(解釋)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주자(朱子)는 격물(格物)을 천지(天地) 사이에 존재하는 사물(事物)들의 이(理)를 궁구(窮究)하는 것으로 해석(解釋)하였다. 격물(格物)이 사물(事物)들의 이(理)를 궁구(窮究)한다는 의미라면 궁리(窮理)라는 표현이 보다 적합하다. 그러나, 궁리(窮理)라고 하지 않고 격물(格物)이라고 한 것은 사물(事物)의 실체(實體)를 얻기 위해서라고 주자(朱子)는 주장한다. 이는 격물치지(格物致知)가 허학(虛學)이 아닌 실학(實學)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치지(致知)는 격물(格物)의 과정을 통해 나의 앎이 지극해지는 단계이다. 즉, 치지(致知)는 격물(格物)을 통해 얻은 지식들을 종합하여 진지(眞知)를 구하는 단계이다. 이 진지(眞知)는 사의(私意)가 개입할 수 없으므로 진지(眞知)는 보편적인 앎과 같은 것이 된다.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통해 양적으로 축적된 것은 활연관통(豁然貫通)을 통해 질적인 변화를 하게 된다. 격물치지(格物致知)가 하학공부(下學工夫)라면 활연관통(豁然貫通)은 상달공부(上達工夫)에 해당되는 것이다. 활연관통(豁然貫通)은 나의 이(理)가 보편적인 이(理)와 하나가 되는 단계로서 내 마음 속의 준칙(準則)이 보편성을 갖게 되는 단계이다. 즉, 내 마음 속의 준칙(準則)과 보편적인 준칙(準則)이 하나가 됨을 의미한다.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하는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최종 목표는 지선(至善)에 도달하는 것이다. 격물치지(格物致知)가 지선(至善)을 지향하고 있다면 활연관통(豁然貫通)을 통해 얻은 내 마음 속의 보편적 준칙(準則) 또한 지선(至善)이 그 기준이 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주자(朱子)의 격물치지(格物致知)는 인식론(認識論)의 측면과 윤리적(倫理的) 측면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