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ersity of Southeast Asia can be also represented at the tremendous number of ethnic groups residing throughout its various regions even beyond national boundaries. What does it mean by the composite of numerous peoples? It has triggered a lot of problems in a nation or overall Southeast Asia. Among them, the most serious one seems to be ethnic conflicts having damaged national integration and caused political, economical, and social instability. In that respect, Karen people have been a minority group situated in the most chronic dispute in Myanmar. Since 1947 some of the Karen equipped with armed forces have been fighting against the military government currently ruling Myanmar. As the result, the refugees over 200,000 population had moved to the mountain camps located at neighboring Thailand, attracting a lot of attention throughout international societies. According to 1931 census by British colonial government, the Karen have the greatest numbers in population as minority and include 16 subgroups including Karenni(Kayah) and Pa-O seemingly excluded from its category in contemporary point of view. It means that Karen people should not be regarded as an ethnic group, and in fact do not show a homogeneous identity under the title of Karen. Given the situation, we need to reconsider the category of Karen. What does the Karen mean in a real sense? Previous studies on the Karen had been performed mainly by anthropologists or missionaries such as Marshall(1922), Hamilton (1976), Hanson Tadaw(1959), Smeaton(1920), Keyes(1979), Hayami (1992; 2004), etc. Most of them examined the Karen as a group and ignored the possibilities of representing the divergent identities vis-à-vis their subgroups. Therefore, they have focused on the myth to convert Karen people to Christianity, although the Christian Karens are less than 20% of total population. As a result, I argue that they would fail to define the real meaning of Karen. It has been caused us to recognize the Karen as a meaningless total entity to be accepted by all means. According to their arguments, the difference among Karen's subgroups is just dealt with the trivial matters that do not affect the ethnic boundary itself, still maintaining the ethnic identity as Karen. As we shall see on this thesis, this is never the case. My thesis aims at uncovering and scrutinizing the real meaning of the category of Karen. For the purpose of it, I will consider Karen people as a linguistic group from the beginning as shown in 1931 census. I argue that the Karen have been affected or exposed by various conditions or environments throughout the harsh history having happened on the areas of current Myanmar and Thailand, leading the vicissitudes of their ethnic identities.
The compositions of ethnic groups in Macau vary with time. Prior to the opening of the port, the majority of the residents in Macau were Chinese people, including those living on land and at sea. After the port was opened, with the increase of Portugal businessmen and missionaries, the population was divided into Chinese people and foreigners (so-called 'Yiren' or 夷人 in Chinese). Chinese people living on land were mainly of Hakka, Fujian, and Cantonese descent. Those living at sea were referred to as 'Tanka People' (named 'Danmin' or 蜑民in Chinese). They lived on floating boats for their entire lives and were similar to the 'drifters' in Japan. Since modern times, many refugees from mainland China and Southeast Asia flooded into Macau due to warfare. The development of industrialization required a larger number of laborers, and some 'coolies' entered Macau in legal or illegal ways, making it a multi-ethnic city. However, the Tanka people were not considered a minority ethnic group under the national ethnic policy of 56 ethnic groups since they did not have an exclusive language and shared dialects in different regions. As the ports inhabited by Tanka people gradually restored foreign trade, the boats and stilt houses used by Tanka people were dismantled to expand the infrastructure area of the ports. Many Tanka people began to live on land and marry people on land, leading to the disappearance of the Tanka group in Macau. The fishing boats and stilt houses used by Tanka people have also disappeared, with only a few remaining in areas such as Pearl River Delta and Hong Kong. This paper examines the natural and social environment of Tanka people in Macau from the Ming and Qing dynasties to the Republic of China, as well as the adaptive changes they adopted for the aforementioned environment in terms of living space and architectural type, on the basis of summarizing the historical activities of Tanka people. Finally, this study provides a layout plan and interior structure of the most commonly used boat for Tanka people from the Ming and Qing dynasties to the Republic of China, with the use of CAD and other technical software, along with reference to written historical documentation, and provides a case study for further research on the architectural history of Macau's inner harbor cities, from anthropological and folklore perspectives.
이 연구는 남한에서 탈북민으로 살아가는 대학생과 성인여성들에 대한 면담을 통하여 실질적인 사회 생활에서의 적응과정을 알아보고, 우리 모두의 삶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교육측면에서 어떻게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연구방법은 반구조화된 면담으로 이루어졌다. 면담기간은 4개월이었다. 면담 결과를 토대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교육에서 갈등보다는 협력강화,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성 회복을 위한 방향설정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 6.25동란과 같은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인해 갈등의 골이 깊어진 상황에서 쉽지 않은 현실적 어려움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65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국가가 과거에만 머물 수는 없다. 둘째, 탈북민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인식도 성인들에게서 일부 존재한다는 점이다. 셋째, 남한 사람들의 통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도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이는 통일비용에 대한 증가로 인해 사회복지와 경제성장의 기반이 약회된다는 주장에 기인하고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넷째, 학교교육에서 지식중심의 교육과 함께 문화예술과 같은 실생활에서 살아가는 내용도 동일 비중으로 다루어야 한다. 이를 통해 탈북자들도 남한 국민들과 동일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연구는 인문학과 지역문화의 관점에서 부산의 지역적 특성과 역사적 특성이 상호작용하여 탄생한 향토음식을 통해 부산의 장소적 특성을 살펴보았다. 장소는 단순히 좌표에 표기되는 공간상의 지점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경험과 정서적 면까지도 포함하는 의미체이다. 장소는 가시적 환경과 환경에 대한 인간의 반응인 문화가 혼합되어 이루어지는 것으로 장소에 대한 이해는 개인의 지리와 문화·역사까지를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장소성과 함께 한 지역의 특수성을 말하는 것 중에 하나가 향토음식이다. 향토음식은 그 지역의 특성과 주민들의 선호에 따라 변화될 수 있어 고정불변한 것은 아니다. 부산의 향토음식은 부산이 위치한 장소적 특징을 반영하면서 부산의 역사적 체험까지를 함께 담고 있는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장소성과 역사성을 가진 부산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 번째로, 바다와 접해있는 항구로서의 장소적 특성을 잘 말해주고 있는 멸치회와 곰장어 구이이다. 두 번째로, 수산물과 곡물을 이용해서 만든 동래파전과 산성막걸리이다. 세 번째로, 일제강점기 때 새롭게 탄생한 어묵과 활어회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 내려와 정착해서 살던 피난민들이 만든 음식인 밀면과 돼지국밥이다. 한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은 단순하게 먹고 즐기고 소비되는 상품으로서의 수준을 넘어 그 지역의 장소적 특성과 역사적 특성을 함께 담은, 즉, 그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잘 말해주는 하나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상징물은 한 지역의 특성을 살피고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본 연구는 북한이탈주민과 접촉한 경험이 있는 다양한 집단들을 대상으로 태도, 신뢰와 수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분석하였다. 조사 대상자는 총 392명으로 북한이탈주민을 접촉해보지 않은 무경험자 222명과 접촉경험자 170명이었다. 무경험자 집단에는 대학생과 일반 성인이 포함되었고, 경험자 집단에는 노동상담원, 대안학교 교사, 대학 튜터, 북한이탈주민후원기관의 직원, 대학급우, 보호담당형사, 사회복지사, 교회신자, 자원봉사자 등이 포함되었다. 접촉경험이 없는 집단과 접촉경험이 있는 다양한 집단들의 태도를 비교해본 결과, 무경험 집단은 부정적인 정서와 함께 연민의 정서가 매우 높았고 신뢰와 수용은 중간정도에 위치하였다. 접촉경험이 있는 집단 중에는 보호담당 형사와 대안학교 교사 집단이 대조적인 결과를 보였다. 보호담당 형사들은 무경험자들에 비해서 북한이탈주민에 대해 전반적으로 더 부정적인 인지와 정서를 가지고 있고, 신뢰와 수용의 정도도 가장 낮았다. 대안학교 교사들은 북한이탈주민이 긍정적인 점도 있는 한편 거칠고 의존적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긍정적인 정서와 높은 신뢰와 수용을 나타내었다. 이는 접촉경험이 북한이탈주민에 대하여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키기도 하고, 더 부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기도 함을 보여주었다. 보호담당 형사와 대안학교 교사 두 집단 간의 확연한 차이를 설명해주는 것은 접촉의 양상이라기보다는 권위주의 성격이나 불확실성 회피경향 등의 개인적 특성인 것으로 밝혀졌다. 신뢰와 수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검증한 결과, 정서적 요인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나타난 점이 주목할 만 하다. 이러한 결과들이 북한이탈주민의 적응과정을 도와주는 공무원이나 교사의 선발과 훈련에 대하여 갖는 시사점과 평화교육에 대하여 갖는 함의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본고에서 후한 중후기부터 누적된 재정위기가 영제 시기 황건적의 난과 그 전제가 되었던 유민 발생에 영향을 주었음을 논증하였다. 후한 영제 중평원년(184) 황건의 봉기는 천재와 인재가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일어난 사건이었다. 영제 시기 각종 자연재해에도 불구하고 유민 대책이 부실했고 영제가 유민들을 귀향시켜야 한다는 양사와 유도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황건적이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나 영제의 부실한 유민 대책은 영제 개인의 각박한 성정과 공감능력 부족보다 화제 이후 만연한 자연재해와 강의 반란, 이 때문에 발생한 재정수입 감소와 재정지출 증가의 누적된 결과였다. 황건의 봉기는 1년도 되지 않아 진압되었다. 따라서 황건의 봉기 자체가 후한 붕괴의 원인은 아니었다. 오히려 중평 2년(185) 이월 기유일 남궁에 대화재와 궁전 재건을 위한 전 1무당 10전의 증세, 공개적이고 강제적인 매관매직 장려, 이에 기생한 환관(宦官)의 수탈이 백성들을 곤경에 몰아넣었고 결국 각지에서 백성들의 반란이 일어났다. 따라서 황건의 봉기와 달리 천재가 아니라 인재로 봐야 할 것이다. 본고는 후한말 동란의 원인이 만성적인 자연재해, 강의 반란으로 인한 군사비 급증, 재정의 악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음을 주장하여 기존의 시각을 환기했다는 점에서 연구사적 의의를 지닌다.
North Korean fugitives is one of various nominations referring to the North Koreans who have secretly crossed the territorial border of their country. It is a new terminology that huts gained wider usage in our society as we entered the 1990s. North Koreans list various motives for escaping their county, such as food shortage and disillusionment of belief in the system. Most of the forced repatriation of North Korean escapees takes place in China. The purpose of this study examines the family knife of female fugitives from North Korea in order to provide pertinent alterntives which are needed to secure basic human right of the female fugitives and enable them to keep stability of their family lives and to adapt themselves into new socio-cultural circumstances in China. For this, the preliminary survey performed to examine the demographic characteristics on the female fugitives; to find out the incentives and channels of their escape out of North Korea; to investigate what types of family life and family relationship they manage in China; to grasp their problems and need of family life in adaptation into Chinese society. The specific questions for grasping the general characteristics of the female fugitives are composed of age, education level residential district in North Korea. In order to find out main causes and influential factors of their escape from North Korea, the following questions are included: what the most important incentives and motives are; the frequency of escape; and whether they discuss their escape with their family or not. The questions to find out their present actual life situations in China are about difficult things to adjust in China, family life, relationship with husband, and their conversational diction, the degree of their mastering the chinese language, the degree of their adaptation to chinese way of living, and so forth, which reveal to what extent they are adapted themselves to new cultural situation in China. This study collected the data through face-to-face personal interview from July to October, 1999 Yenben province along the China-North Korea border. Data from 202 female fugitives were used in final analysis. This study uses the SAS PC program for windows, Ver, 6.12 to analyze the data such as the distribution of frequency, percentage, mean and so on. The results from this analysis are follows; the most principal motive of North Korean women's escape to china is to eat to live because of famine. Concerning the year when the fugitives escape from North Korea, all of the interviewees haute escaped since 1990. After escape their continual contact with their family in North Korea, 81.7% of the respondent have not been in touch with their family. The main reasons for their not contacting with their family in North Korea are that it is not helpful although they contacts with their family. Female fugitives from North Korea have difficulties in life. They have rather stable relationship to their husband, but they have experienced difficulties in other aspects of family life. Their main difficulties are largely from their relationships to husbands'family members, and from the problems relate to their family in North Korea, and their children. Based on this study, further research has to present supportive policies that help North Korean female escapees live without being deprived and protect their human rights. And the development of practical program to help their efficient social adaptation has to be continued without stop together.
우리나라 대도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빈민지역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도시내에서 어떻게 공간이동을 하였는가를 알기 위하여 대구를 사례로하여 고찰하였다. 연구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대구의 빈민형성은 해방 및 6.25 동란을 겪으면서 그 수가 증대되어 1차적으로 도심가까이에 빈민지역을 형성하였고 그 후 도시와의 진전에 따라 도시주변지역의 무단점거에 의한 2차적 빈민지역이 형성되었다. 2) 최근에서 도시재개발사업에 환경이 개선되어 일반거주지역으로 전환되었거나 혹은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건립되어 저소득층은 그 곳에 거주하지 못하고 도시근교의 영구 및 임대아파트 단지내에 대규모로 집단화하여 거주지의 수평적 이동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필자는 2003년 7월 6일부터 2003년 7월 24일까지 중국 동북의 소수민족을 답사하였다. 답사 대상 민족은 허저족(赫哲族), 다우얼족(達斡爾族), 어룬춘족(顎倫春族), 어원커족(顎溫克族), 몽골족이었으며 답사지역은 헤이롱지성(黑龍江省)과 내몽골의 동북부 지역이었다. 본 고에서 연구대상으로 하는 민족은 퉁구스계 민족인 허저족, 어룬춘족, 어원커족이다. 그동안 한국의 청동기인을 형성한 것으로 인식되어온 퉁구스는 고고학적, 역사학적, 언어학적 증거로 볼 때 한민족과는 별개의 민족임을 알 수 있다. 물론 구체적인 결론은 각 분야의 학자들의 좀 더 심도 있는 연구가 이루어진 후에야 증명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까지 이루어진 연구성과로 볼 때 한민족의 족원을 퉁구스에서 찾기는 어려울 듯하다. 퉁구스의 가신신앙과 한국의 가신신앙을 비교연구한 결과 마루신앙, 조왕신앙, 삼신신앙에 있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원인으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하나는 전파나 접촉이고 다른 하나는 이주에 의한 결과이다. 전파나 접촉은 퉁구스와 한민족이 역사적으로 매우 근접한 거리에 거주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고 이주는 고구려, 부여 등의 멸망으로 인한 유이민에 의한 것이다. 퉁구스와 한민족의 가신신앙은 위에서 언급한 공통점과 함께 차이점도 보인다. 첫째, 한민족의 가신신앙은 농경을 기반으로 형성된 것으로 정착형의 가옥에 집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성속(聖俗)관념이 발달하였으나 퉁구스민족은 이동식의 주거인 시에런주(xierenzhu)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집에 대한 성속관념이 한국보다는 약하다. 둘째, 한국의 가신은 신의 성격이 분명하며 신의 기능에 따라 모셔지는 장소가 다르다. 퉁구스의 경우 모든 가신이 마루(malu)에 모셔지며 일부는 가신이 아닌 신들이 모셔지기도 한다. 셋째 한국의 가신은 성주를 중심으로 가족을 이루고 있다. 퉁구스의 가신들 사이에 이러한 가족관계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한국의 가신신앙을 중국과 비교할 때 가장 큰 특징이라면 성주신앙을 중심으로 혈연관계를 맺으며 단단히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가신신앙에서 성주는 강태공이나 치우로 한국과는 구분되며 중국의 가신들은 혈연관계를 맺고 있지도 않다. 한국의 가신신앙 중 측간신이나 조왕신의 일부 내용은 중국 한족과 관련을 맺고 있으나 언어학에서 문법이 그러 하듯 가신신앙의 기본 구조는 중국과 다르다. 이러한 견고한 틀을 형성하고 있는 한국의 가신신앙 중 마루, 조왕, 삼신이 퉁구스민족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한국 가신신앙에 퉁구스적 요소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본 연구의 목적은 대전 원도심의 랜드마크이자 명소인 중구 대흥동 성당과 은행동 성심당 두 장소의 종소리가 지닌 사운드스케이프의 성격과 의미를 조명하는 것이다. 연구는 현장 답사 및 녹취, 관련 자료와 사운드스케이프 이론 등의 문헌연구에 의해 이루어졌다. 대전시는 20세기 초 일제강점기에 철도 대전역과 함께 생성된 도시로,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대전역 인근에 위치한 중구 대흥동과 은행동 일대는 크게 발달하며 원도심을 형성하였다. 90년대에 서구로 주요 행정기관이 대거 이전하면서 대전 원도심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세종시 개발로 쇠락은 가속화되었다. 그런 가운데, 대흥동 성당과 한국전쟁 당시 한 피난민에 의해 설립된 성심당은 원주민들이 떠나간 대전 원도심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대흥동 성당은 일제 강점기에 설립되어 2019년 들어 100년의 역사를 지니게 된 지역 랜드마크로, 일제 강점기에 탄생한 대전시와 역사를 같이 하는 역사문화자산이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탄생한 성심당 또한 설립 60년의 역사를 지닌 역사문화자산이자 대전 명소 1위로 선정된 지역 랜드마크이다. 인근 주택가에까지 들려오는 대흥동 성당의 종소리에서 출발한 이 탐구는, 대로 건너에 위치한 은행동 성심당의 종소리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본 고는 대흥동 성당과 은행동 성심당의 종소리가 시그널 사운드(signal sound)를 넘어 사운드마크(soundmark)의 성격을 지님을 머레이의 사운드스케이프 소리 범주를 통해 파악하였다. 나아가 비교적 최근의 EU 사운드스케이프 정의에 따라 두 종소리의 의미 분석을 시도했다. 두 종소리는 표층적 차원에서는 시그널사운드이지만 심층적 차원에서는 대전 원도심의 사운드마크이다. 외형적으로는 규모나 스케일, 빈도, 유명도에서 차이가 있으나, 두 종소리는 특별한 인연의 역사성과 장소성, 로컬리티와 선한 영향력 등에서 의미를 공유한다. 본 연구의 시사점은 대전 중구 원도심 도시 재생 혹은 도시 개발에서 두 장소가 시각적 랜드마크 뿐만 아니라 사운드마크로서도 지역 역사문화자산임을 밝힌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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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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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칙]
1. (시행일) 이 약관은 2016년 9월 5일부터 적용되며, 종전 약관은 본 약관으로 대체되며, 개정된 약관의 적용일 이전 가입자도 개정된 약관의 적용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