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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정원을 주제로 한 리조트 외부 공간 계획 (Outdoor Landscape Design Proposal for a Resort using the Baekje Traditional Garden as a Theme)

  • 김연금;김해경;김영모;진양교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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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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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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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롯데 부여리조트의 외부공간 중 백제 테마정원을 대상으로 한다. 리조트는 백제역사재현단지 내에 있으며, 이 사업은 '백제문화권 특정지역 종합개발 계획' 중의 하나이다. 백제정원은 역사적으로 유구할 뿐만 아니라 고대 일본에 영향을 주었을 정도로 양식에서도 뛰어났다고 할 수 있는데,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백제정원의 재현 방식을 공간적으로 구현했다. 구체적 내용으로는 첫째, 백제정원을 롯데 부여리조트에 조성하게 된 배경과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백제정원의 공간적 구현 방식을 설정하는 것이다. 둘째, 백제 정원의 조경사적 의미와 함께 현재까지 문헌연구와 발굴을 통해 밝혀진 백제 정원의 양식적 특성에 대한 것이다. 셋째, 리조트 외부공간에서 백제정원 재현의 공간적 실현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다. 본 연구의 내용에서 재현은 구조 적용과 구성요소 차용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구조 적용에서는 임류각 공간을 주진입공간으로 하여 관북리 백제 유적을 재현한 월선정 공간을 인접하여 배치하였다. 이 두 공간을 통해서는 건축과 정원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주력했다. 후면에는 후원 성격을 지닌 익산 왕궁리 정원의 곡수로와 석조원, 비폭원을 재현하였다. 구성요소 차용은 식재계획과 건축물을 비롯한 시설물 계획에서 이루어졌다. 이외 정원주변으로는 금동대향로와 산수문전에서 표현되는 대표적 경관인 신선계의 모습과 삼산오봉(三山五峰)형 봉우리, 산 사이 맑은 시냇물, 소나무 숲(송림(松林)) 경관을 형상화하였다. 본 연구의 의의는 먼저 백제정원이라는 주제 자체가 새로운 시도라는 것이다. 백제정원에 대한 선행연구와 실제적인 공간에 구현된 사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둘째, 백제시대에 대한 심도 있는 고증을 토대로 백제정원을 개념적 차원뿐만 아니라 계획적 설계적 차원에서 적용 재현하고자 시도했다는 것이다. 전통의 적용이나 재현을 다루는 기존 연구가 사례 중심으로 분석과 평가에 치중해왔던 것과 차별성을 갖는다. 한계는 백제정원의 사실에 대한 선행 연구가 많지 않고, 현재 관련 유적에 대한 발굴 및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에서 진행된 연구이기 때문에 추후에 새로운 사실이 발견된다면 본 연구에서 제시한 재현에 대한 진정성의 문제와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지 못했다는 한계를 드러낼 수 있다. 그러나 전통의 재현과 계승의 화두는 어느 시점에서의 완결성보다는 전통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시도가 요구되는 진행형이라는 측면에서 본 연구가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발굴된 유적을 그 자리에 '원형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리조트의 외부공간에 '재현'하다 보니 그 자체로 체험의 다양성과 완결성까지 부여되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20세기(世紀) 중의사(中醫師)들의 비증(痺證)에 대(對)한 논술(論述) 연구(硏究) - 《비증전집(痺證專輯)》 에 대(對)한 연구(硏究) I - (The essay of Bijeung by chinese doctors in 20th century - Study of -)

  • 김명욱;오민석
    • 혜화의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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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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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7-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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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I. Introduction The essence of Oriental medicine consists of ancient books, experienced doctors and succeeded skills of common society. Many famous doctors studied medical science by their fathers or teachers. So the history of medical science is long. $\ll$DangDaeMyeongIImJeungJeongHwa(當代名醫臨證精華)$\gg$ written by SaWoogWang(史宇廣) and DanSeoGeon(單書健) has many medical experience of famous doctors. So it has important historical value. Bi(痺) means blocking. BiJeung is one kind of symptoms making muscles, bones and jonts feel pain, numbness or edema. For example it can be gout or SLE etc. So I studied ${\ll}BiJeungJuJip{\gg}$. II. Final Decision Following decisions of Chinese doctors of 20th century are as follows ; 1. JuYangChun(朱良春) emphasized on IkSinJangDok(益腎壯督) to treat BiJeong. And he devided WanBi(頑痺) as PungHanSeup(風寒濕), DamEo(痰瘀), YeolDok(熱毒), SinHeo(腎虛). He used insects for medicine. 2. ChoSuDoek(焦樹德) introduced past prescription. He used ChiBiTang(治痺湯) to treat HaengBi(行痺), TongBi(痛痺), ChakBi(着痺). He insisted that Han(寒; coldness) and Seup(濕; dampness) be Eum(陰) and Pung(風; wind) can change his character to be Eum. After all BiJeung is usually EumJeung. So he used GaeJi(桂枝) and BuJa(附子). By the way he used ChungYeolSanBiTang(淸熱散痺湯) for YeolBi, BoSinGeoHanChiWangTang SaBok(王士福) emphasized on the importance of medicine. He introduced many treatments like CheongYeol(情熱) for YeolBi and YiO(二烏) for HanBi. And he divided BiJeung period for three steps. At 1st step, we must use GeoSa(祛邪), at 2nd step, we must use BuJeong(扶正) and at 3rd step, we must use BoHyeol(補血), he insisted. And he introduced many herbs to treat BiJeung. 4. JeongGwangJeok(丁光迪) said that GaeJi(桂枝), MaHwang(麻黃), OYak(烏蘖) and BuJa(附子) are very important for TongRak(通絡). And pain usually results from Han(寒), so he liked to use hot-character herbs. 5. MaGi(馬志) insisted that BiJeung usually result from ChilJeong(七情). And he liked to use insects for treatment of BiJeung. 6. WeolSeokMu(越錫武) introduced 8 kinds of treatments and divided BiJeung period. Also he divided BeJeung for PungBi(風痺), HanBi(寒痺) and SeupBi(濕痺). 7. SeoGeaHam(徐季含) observed many patients and concluded that 86.7% of BiJeung is HeuJeung(虛症). 8. YuJiMyeong(劉志明) said that YeolBi is important and CheongYeol is also important. So he emphasized on DangGyuiJeomTongTang(當歸拈痛湯) and SeonBiTang(宣痺湯). 9. WangLiChu(汪履秋) studied cause of WanBi. Internal cause is GiHyeolHeo(氣血虛) and GanSinHeo(肝腎虛) and external cause is SaGi(邪氣) he insisted. 10. WangSaSang(王士相) said that YeolBi can be SeupYeolBi or EumHeuYeolBi(陰虛熱痺) and HanSeupBi(寒濕痺) is rare. He use WooBangJaSan(牛蒡子散) and BangPungHwan(防風丸) for SeupYeolBi, DangGyuiSaYeokTang(當歸四逆湯) for HanSeupBi. 11. JinTaekGang(陳澤江) treated YeolBi with BaekHoGaGyeJiTang(自虎加桂枝湯) and SaMyoSan(四妙散). If they don't have effect, he tried to cure BiJeung step by step. And he used e term of GeunBi(筋痺) and BangGiMogwaEIInTang(防己木瓜薏苡仁湯) was good for GeunBi. 12. MaSeoJeong(麻瑞亭) said that PungSeupYeokJeul(風濕歷節) is BiJeung and it is related to GanBinSin(肝脾腎; liver, Spleen, Kindey). And he emphasized on balance WiGi(衛氣) and YoungHeul(營血). 13. SaJeJu(史濟桂) said that GeunGolBi(筋骨痺) is similar to arthritis and sometimes called ChakBi. And SinBi(腎痺) is terminal stage of ChakBi, he said. He also used insects for treatment. 14. JeongJeNam(丁濟南) tried to cure SLE and used GyeJi, CheonCho(川椒), SinGeunCho(伸筋草), SunRyeongBi(仙靈脾), HyconSam(玄蔘) and GamCho(甘草). 15. JinGYungHwa(陳景和) emphasized on diagnosis of tongue. If the color of tongue is blue, it usually has EoHyeol(瘀血), for example. And he also used insects. 16. JuSongI(朱松毅) tried to devide YeolBi with OnByeong(溫病), Wi(衛), Gi(氣) and Hyeol(血). 17. RuDaBong(蔞多峰) said that JyeongHeo(正虛), OiSa(外邪) and EoHyeol are closely related. And he explained BiJeung by deviding the body into the part, for example head, neck, shoulder, waist, upper limb and lower limb. 18. YuMuBo(劉茂甫) defined PungHanSyubBi as chronic stage and YeolBi as acute s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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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해자(垓字) 문화의 현대적 가치 재조명 (Review of the Modern Values of East and West Moat Culture)

  • 정용조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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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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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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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 연구는 성의 외곽에 군사적 방어 역할을 하거나 이를 경계로 공간을 구분하고 기후변화로 인한 온도 상승과 동물들의 서식처 감소 등 악화되어 가고 있는 현대 환경에 미기후를 조절하고, 동물의 서식처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진 해자를 현대도시공간에 활용하기 위해 해자의 현대적 가치를 재조명해 본 것으로 연구의 범위는 성의 외곽에 군사적 방어 역할을 위해 파 놓은 못 또는 물길로 적이 성벽에 직접 접근할 수 없도록 하거나 이를 경계로 구분하고자 설치된 해자가 있는 성을 중심으로 동양에서는 한국의 낙안읍성, 해미읍성, 경주월성과 중국의 자금성, 일본의 니조성과 오사카성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서양에서는 영국의 에든버러성과 프랑스의 블루아성, 스위스의 시옹성, 덴마크의 프레데릭스보르성을 대상으로 하였다. 연구의 방법으로는 문헌조사와 현지조사를 통해 연구를 진행하였다. 동양은 문헌조사와 현지조사를 병행하여 실시하였으며, 서양은 문헌조사를 위주로 진행하였다. 문헌조사를 통해서는 해자의 기원과 해자의 개념, 해자의 기능, 서양 해자의 역사와 문화 등에 대하여 관계기관과 선행연구의 자료를 기준으로 하였으며 동양의 현지조사는 한국의 낙안읍성, 해미읍성, 경주월성, 중국의 자금성, 일본의 니조성, 오사카성을 2016년 1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각 대상지별로 총 2~3회에 걸쳐 답사를 실시하였다. 조사내용은 각 대상지의 해자에 대한 기능과 규모, 특징 등에 대하여 관계자 인터뷰, 사진촬영, 실측, 관찰 등의 방법을 통해 조사 분석하였으며,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해자는 성 외곽에 군사적 방어시설과 경계를 구분하고자 설치된 시설물로서 동 서양의 고대로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성과 함께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해자가 군사적 방어 목적이 소멸되면서 역할도 점차 사라져 가고 있으나 물이 가득한 해자는 다양한 문화 활동과 동물들의 서식처 제공 등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큰 친수공간임에도 불구하고 현대 조경 계획에 있어 배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다양한 기능을 가진 해자를 현대도시에 반영, 활용함으로써 공기 순환이 막힌 도시에 쾌적한 공기를 유입시키고 수경요소로서 도시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해자를 아파트, 공원지역 등에 조경요소로 적극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보길도 윤선도원림(명승 제34호) 낙서재지역 원형복원과 귀암(龜巖) 발굴의 성과 (Achievement of Excavation of Gwiam(Turtle Rock) and Nakseojae Restoration in Bogil-do Yun,Seondo Wonlim)

  • 이원호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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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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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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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본 논문은 조경학분야의 주도로 수행된 원림유적의 문화재발굴 사업에 대한 일련의 성과를 다룬 것으로, 보길도 윤선도 원림(명승 제34호)의 낙서재 복원에서 귀암(龜巖) 발굴이 시사하는 역사적 가치와 발굴의 성과를 중심으로 기술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발굴결과, 귀암은 낙서재 정북쪽으로 14.6m 지역에 매몰되어 있었고, 매몰면의 깊이는 10~50cm 정도의 표토층이 낙서재 쪽으로 오르막 경사를 두고 피복되어 있었다. 귀암 실측결과, 길이 360cm, 너비 270cm, 높이 95cm의 화강암으로 암석의 형태는 거북의 머리에 해당하는 북서편 모서리부분이 삼각형을 띄고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로 $45^{\circ}$ 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머리 뒤쪽에는 귀갑 형태로 양쪽 홈이 파여 넓은 등판 형태를 보이고 있었다. 또한 남동방향으로 꼬리에 해당하는 부분이 돌출되어 있었다. 이 화강암은 거북의 머리와 꼬리부분이 인위적으로 조각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확연한 거북의 형상을 지니며 규모상으로 위치 변동 등의 교란 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파악되었다. 낙서재 복원에 중요한 요소가 되는 거북 형상의 바위인 귀암은 윤위의 보길도지(甫吉島識)와 고산유고(孤山遺稿)에 기록된 사령(四靈)의 하나이며, 달 구경(玩月)의 장소로 기록되어 있으나, 그동안 실체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이 귀암은 낙서재(樂書齋) 일원의 중요 지형지물로써 보길도지에 소은병(小隱屛)-낙서재(樂書齋)-귀암(龜巖)이 축선(軸線) 상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고산의 손자인 이관(爾寬)의 건물 개축 시에도 앞 기둥을 이곳에 지지한 기록이 남아있어, 그동안 난항을 겪었던 낙서재 지역의 원형복원에 중요한 지표물로 그 가치가 있다. 또한, 원지반 확인결과, 표토층 135cm 아래 암반하단부에 단단한 원토양이 발견되어 현, 낙서재 지역의 원지반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확인되었다. 귀암은 이관의 건물 개축 당시 묻혔다는 기록을 끝으로 그동안 3차례 낙서재 지역 발굴조사에서도 확인되지 않았으나, 금번 연구의 결과로 최소한으로 보더라도 260여년 만에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는 낙서재 지역의 원형복원과 조경학분야의 중요성을 제고할 수 있는 대표적 사례가 될 것이다. 향후 귀암의 보존처리와 고산의 시문에 나오는 사령의 의미해석 등에 대한 공간추정 등 연구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월정사 탑돌이의 전형과 공연문화 (Paragon of people circling the pagoda of Woljeongsa Temple and performance of its cultural inheritance)

  • 이창식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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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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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5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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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월정사 탑돌이는 광복 이후 재현된 첫 번째 불교민속놀이로 불교문화로서의 대표성과 역사성을 지닌 주요 무형문화재이다. 월정사 탑돌이는 한국 고유의 전통성과 강원도의 정체성이 내재된 불교민속유산이라는 점에서 지정 가치가 크다. 전국 사찰에서 탑돌이가 시연되고 있지만 무형문화재 지정을 기반으로 체계적인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는 월정사 탑돌이가 유일하다. 월정사 탑돌이의 문화재 내재적 가치에 주목해야 할 이유이다. 탑돌이는 부처님, 탑에 대한 예경방식의 총체적 표현물이다. 월정사 탑돌이의 원형은 추정하기 어려우나, 월정사의 역사성으로 보아 고구려 계통의 놀이와 신라 복회(福會)에 닿아 있다. 고구려벽화의 달, 오대산 화엄사상경 배경과 팔각구층탑의 본질의 측면에서 우요삼잡의 예법에 부합한다. 탑돌이 때 처음에는 범종, 고(鼓), 운판, 목어의 사법악기(四法樂器)만 쓰이다가 후에 삼현육각(三弦六角)이 합쳐지고, "보렴"과 "백팔정진가"을 부른 것을 보면 처음에는 순수한 불교의식이던 것이 차츰 민속화해서 민중 속에 전파된 것을 알 수 있다. 월정사 탑돌이의 전형은 회향의례의 환희심을 체험하는 우요삼잡의 풀이와 관련된다. 절에서 대재(大齎)가 있으면 신도들은 공양을 올린다. 이때에 염불, 범음(梵音), 범패(梵唄)가 따르며, 재가 끝나면 신도는 승려와 함께 불탑을 돌면서 부처님의 공덕을 빌고, 또 저마다의 기원을 빈다. 일신의 왕생극락은 물론 국태민안을 빌어 태평성대를 누리고자 하였다. 큰 재일수록 많은 신도들이 모이며 따라서 탑돌이도 성황을 이루었다. 법음(法音)에 맞춰 제각기 소원을 외면서 탑을 도는 모습은 엄숙하였다. 월정사 탑돌이의 변형과 융합에 대한 발상은 전형 곧 문화재 지정의 취지 유지와 정체성 차원을 살리되 전승의 공연화를 위한 계승적 전략이 필요하다. 한국탑돌이는 4월 초팔일과 중추절인 한가위 날에는 탑돌이가 있었다. 탑돌이의 공연성은 스님이 염주를 들고 탑을 돌면서 부처의 큰 뜻과 공덕을 노래하면 사찰 신도들이 그 뒤를 따라 등을 밝혀 들고 탑을 돌면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회향형(回向型) 불교민속놀이에 있다. 공연성 활성화는 신행 보유자 전승교육, 전문가 자문의 다차원 접근, 원형 재현의 담론 등을 단계적으로 보강하여야 한다.

매킨타이어의 현대 도덕 다원주의 비판 (MacIntyre's Critique of Modern Moral Pluralism)

  • 김영기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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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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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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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이 논문은 현대 도덕 다원주의에 대한 매킨타이어의 비판을 살펴보고 그의 비판이 갖는 한계를 드러내고자 하는 글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 문화의 두드러진 특징은 중요한 도덕적 문제들에 대한 의견의 차이가 좀처럼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낙태나 안락사와 같은 문제, 분배적 정의나 재산권 같은 문제, 전쟁과 평화와 같은 문제를 두고 일어나는 논쟁들은 곧장 주장과 반대 주장의 대립으로 귀착되고 만다. 왜냐하면 서로 대립되는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 서로 공통된 기준에 의해 평가할 수 없는 서로 다른 도덕적 전제들에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흔히 도덕적 다원주의라고 부르며, 이러한 상황은 자유주의 체제 아래서 사람들이 자신의 이성을 발휘한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매킨타이어는 "덕의 상실"(After Virtue)에서 현대의 이러한 도덕적 다원주의 상황을 격렬히 비판하며, 그 원인은 이른바 '계몽주의적 기획'의 실패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매킨타이어에 따르면, 지난 삼백년간 철학을 지배했던 계몽주의의 기획은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 영향받지 않으면서 인간의 본성과 목적에 대한 특정한 이해에 좌우되지 않는 합리성의 개념을 마련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현실적으로 달성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시도에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기 때문에 결코 달성될 수가 없다. 그 결과 현대의 도덕과 정치 사상은 혼란 상태에 빠지게 되었으며, 이 혼란은 우리가 일종의 아리스토텔레스적인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때에만, 그 본질적 요소인 목적론에 토대하여 실천 이성에 대한 설명을 구성할 때에만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덕의 상실"에서의 그 주장이 갖는 가장 어려운 난점 하나는 우리가 상황 속에 있는 존재, 이야기 속의 존재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기본적으로 나의 인생의 주인이자 나의 이야기의 저자라는 점에 주목할 때, 과연 현대라는 사회적 상황 속에서 그가 옹호하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생각을 다시 적용하는 것이 가능할까 의심스럽다는 점이다. 아울러 자유로운 제도를 지속시키려고 한다면 도덕적 다원주의는 재앙이라기보다는 인간이성이 행사된 자연스러운 결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 같다는 점이다.

과거사위원회 기록의 효율적인 관리와 활용방안 (Efficient Management and use of Records from the Truth Commissions)

  • 임희연
    • 기록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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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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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7-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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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우리는 불행했던 우리의 과거사에 대해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고자 과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조사업무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렇게 설립된 과거사위원회들은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기위해 정해진 기간 동안만 운영된 후 폐지되는 한시조직(限時組織)으로 설치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이들 기관에서 생산되는 기록의 종류를 살펴보면 주어진 조사업무를 위해 수집하거나 기증받은 수집자료와, 수집자료를 활용하여 완수한 조사업무의 결과물인 조사보고서 즉 조사기록, 그리고 조직의 운영을 위해 행정적 지원을 하며 생산된 일반 행정기록, 이렇게 과거사위원회 기록을 크게 3가지로 구분해볼 수 있다. 과거사위원회는 과거사청산과 진실규명이라는 특별한 과제수행을 위해 지난 과거의 기록에 대한 활용도가 높은 편이다. 다시 말해서 잘 관리된 과거사 기록의 혜택을 다른 어느 기관보다 많이 받고 있으면서도, 각 위원회의 기록관리 환경과 운영현황에 있어서는 다른 항구적(恒久的)인 기관보다 대체적으로 취약하다고 할 수 있다. 이유를 살펴보면, 먼저 일정기간동안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위원회 조직의 기록관리에 대한 규정과 표준 등의 부재(不在)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은 각 위원회의 기록관리 환경 인프라구성에 영향을 주게 되었으며, 실제로 과거사위원회 6개 기관을 대상으로 기록관리 현황조사를 실시한 결과 제각기 다른 기록관리 환경을 갖추고 기록관리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고, 게다가 그 편차는 매우 크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또 다른 이유는 위원회 조직구성원들의 파견, 복직, 이직(移職) 그리고 조직개편 등으로 인한 업무담당자의 잦은 변동으로 업무의 책임성이 결여되고, 이러한 현실은 기록관리에도 영향을 끼쳐 모든 업무활동에 대한 증거자료인 기록의 생산과 관리에 어려움을 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과거사위원회와 같은 한시조직에 대한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의 관리소홀을 말할 수 있는데, 위원회 기록이 대부분 역사적 가치가 높은 매우 중요한 기록임을 생각했을 때 오히려 보다 체계적인 특별관리가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함에 있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것은 과거사위원회와 같은 한시조직의 특성과, 수집자료나 조사기록과 같은 위원회 기록의 특성을 고려한 기록관리 규정의 마련이다. 여기에 위원회 조직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표준화된 기록관리시스템의 제도적 반영이나 또는 기록관리시스템의 이관데이터 규격의 표준화, 그리고 기록관리 전담부서의 직제반영과 기록관리 전문요원의 배치 의무화, 빈번한 인사교류의 제한과 파견공무원의 파견기간에 제한을 두지 않는 방법 등으로 현실적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과거사위원회의 설립 취지가 불행했던 우리 과거사를 바로잡아 다음 세대에게 보여줌으로써 다시는 이러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에 있음을 생각할 때, 조사업무 완수의 다음 단계는 바로 진실규명을 위해 생산된 기록을 교육과 연구자료 등으로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사 위원회들의 기록을 한데 모아 과거사기록관을 설립한다면, 이곳은 단순히 기록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기능으로만 그치지 않고 소장기록물을 이용한 교육, 홍보, 출판 및 연구 사업 등을 통해 과거사 기록의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모든 이들이 기록을 쉽게 활용하여 지식역량을 높일 수 있는 국민교육의 장으로 그 기능을 강화함은 물론 기록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일에도 주력해야 할 것이다.

'숙천제아도(宿踐諸衙圖)'를 통해 본 조선시대 중앙관아의 공간구조와 조경기법 (A Study on the Spatial Structure and landscape techniques of the Central Government Office(中央官衙) reviewed through the 'Sukchunjeado(宿踐諸衙圖)')

  • 신상섭;김현욱;박영관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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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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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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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조선시대 후기 고위관료였던 한필교(1807~1878)의 화첩 "숙천제아도(宿踐諸衙圖)"를 통해본 중앙관아의 공간구조와 조경기법에 관한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사방전도묘법(四方顚倒描法)'으로 그려진 "숙천제아도"는 조선시대 중앙 및 지방관아의 공간구조와 문화경관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독보적 실증사료로서 가치를 지닌다. 조선의 정궁(경복궁) 광화문 밖 육조(六曹)거리에 자리 잡은 중앙관아는 장방형 부지에 중심시설(당상대청)과 부속 건물이 서열에 따라 상 하 또는 좌 우로 분산되는 구조인데, 주 건물은 남향으로 배치되었으며, 행정편의와 환경성, 그리고 유교적 규범성의 실천 등 위계적 토지이용 체계를 반영하고 있다. 관리들의 직무공간인 당상대청과 향청 등 주요건물은 너른 네모꼴 앞마당을 두어 실용성 위주의 중정(中庭)을 구축하였고, 중심건물(당상대청)은 연못과 정자 등 의미경관을 반영한 후원을 가꾸었다. 특히, 토지이용에 있어서 적극적 공간과 소극적 공간이 교차 반복<동(動)과 정(靜), 채(棟)와 마당(庭), 정(庭)과 원(園)>되는 중용적 사유체계를 보여준다. 중앙관아조경의 특징은 실용적 성격의 앞마당과 경관적 측면이 강조된 뒤뜰을 연계시킨 외부공간의 확장성(前庭+棟+後園), 그리고 환경쾌적성, 경관성, 상징성, 방화용수 목적 등이 복합적으로 고려된 수경시설(方池)의 도입을 들 수 있다. 또한 휴양과 심신수양을 도모하기 위한 정자의 도입 및 후원의 발달, 정심수(庭心樹 : 연, 버드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등)로서의 의미부여와 제한적인 식물도입, 그리고 심미성, 관념성, 실용적 가치 등을 중시한 환경설계기법이 추출된다. 이러한 중앙관아의 조경기법은 우리나라 궁궐, 사찰, 서원, 상류주택 등 전통공간에서 유사하게 추출되는 보편성이자 특수성이라 하겠다.

국가지정 동산문화재의 정기조사제도 개선방안 연구 (A study on improvement of regular survey system of state-designated movable cultural heritage)

  • 이종숙;김창규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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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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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6-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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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현행 문화재보호법은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 민족적 또는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큰 것을 문화재로 정의하고, 문화재의 성격에 따라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문화재로 구분하고 있다. 그리고 지정주체에 따라 시 도지사가 지정하는 시 도지정문화재 및 문화재자료와 문화재청장이 지정하는 국가지정문화재가있다. 국가지정문화재의 보존 관리 정책 중 하나인 정기조사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문화재의 현상, 관리, 수리, 그 밖의 환경보전 상황 등에 관하여 3년 또는 5년 주기로 조사하는 제도로 2006년 문화재보호법에 도입되어 현재까지 해당문화재의 훼손 손상등을 사전에 발견하고 적절한 예방조치를 취하는 등 국가지정문화재의 보존 관리에 기여한 바가 크다. 그런데 2016년 제정된 국가지정문화재 정기조사 운영지침의 일부내용은 국가지정 동산문화재 정기조사 운영에 혼란을 종종 발생시켜 국가지정 동산문화재 정기조사의 체계적 관리 및 품질 제고를 위한 수정과 보완이 필요하다. 이에, 본고는 국가지정문화재 정기조사제도의 체계와 구조, 국가지정 동산문화재 정기조사 운영실태 등을 분석한 후 국가지정 동산문화재 정기조사의 체계적 관리 및 품질 제고를 위하여 국가지정문화재 정기조사 운영지침상의 정기조사 총괄 주관 실시부서 특정, 정기조사 위탁, 정기조사 서식 및 매뉴얼의 개선방안을 제시하였다. 이들 개선방안이 향후 국가지정 동산문화재 정기조사의 품질 제고와 맞춤형 조사 기록체계 구축에 일조되기를 기대한다.

철도차량유산의 보존현황과 활성화 방안 (The Conservation Status and Vitalization Plan for Railroad Car Heritage)

  • 석민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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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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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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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철도문화유산에 대한 발굴과 보존 연구는 문화재청을 중심으로 근대 문화유산등록제도와 근대 철도교통문화유산 발굴 작업 등에 국한되어 왔다. 한편 철도관련 단체 등의 노력은 미비하였고 철도공사에서 철도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내부지침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에 주목하여 본 연구는 철도문화유산 중 철도차량유산을 중심으로 보존 및 활성화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그 방안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철도차량유산의 현장답사를 통해 보존현황을 파악하였고, 해외의 보존사례를 조사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철도차량유산의 역사적 가치를 인식하고, 널리 알리는 활성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연구 결과 첫째, 등록문화재로 등록된 철도차량유산들은 한 장소에서 보존 전시만 할 것이 아니라 보존 차량의 개방 및 관람대를 제공하여 관람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둘째, 천연기념물이나 무형문화재와 같이 철도를 하나의 문화재 범주로 인식하고 문화재보호법 개정을 통해 문화재 항목을 신설해야 한다. 셋째, sns 및 블로그와 카페를 활용한 전략적 홍보를 통해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한 철도문화유산에 대한 관심도를 증가시키고, 철도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을 제고해야 한다. 넷째, 법령 및 제도적 지원과 더불어 철도차량유산을 관리하고 이를 운영할 예산, 전담부서, 전담인원의 충원은 문화재 관리역량 강화를 위해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이상의 연구결과에서와 같이 철도문화유산의 합리적인 보존과 활성화를 위해서는 행정적, 재정적 지원 및 법적 조항을 만들어 철도산업발전기본법에 보존의 근거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철도차량유산은 그 보존 가치가 높고, 지역의 상징이자 역사의 흔적이며, 삶의 기록으로서 사회적 가치를 가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책 및 보호법 개정에 대한 기준의 정립이 시급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