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back garden

검색결과 59건 처리시간 0.024초

익산 왕궁리유적에서 후원의 위상과 의미에 대한 연구 (A Study on the Position and Meaning of the Back Garden in Wanggung-ri Site, Iksan)

  • 전용호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 /
    • 제34권4호
    • /
    • pp.1-13
    • /
    • 2016
  • 익산 왕궁리유적의 후원은 구릉상에 복잡한 수로체계를 통하여 정원과 연결된 구조로 동아시아 조경사에서 상당히 독특한 면모를 한 백제 조원기술(造苑技術)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후원은 구릉상에 입지하여 최소한의 물로 조경 효과를 높이면서도 집중 호우시 침수 피해를 줄이고, 궁성 중심 공간에 필요한 용수를 확보하기 위하여 역U자형 대형수로와 이에 연결된 수로, 곡수로 및 집수시설로 이루어진 복잡한 수로 체계를 갖추고 있다. 특히 역U자형 대형수로의 내부에서 물이 고이는 지점이나 그 가장자리에 크기나 형태가 다양한 괴석으로 장식한 조경시설도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후원의 중심부인 구릉의 상면에는 원형 초석 시설로 둘러싼 내부에 방형 초석을 사용한 정면 4칸, 측면 4칸의 건물지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구릉의 좌 우 사면에는 말각장방형의 석축시설로 일부분이 감싸져 있는 공간 내부에 건물도 확인되었다. 아직까지 말각장방형의 석축시설의 기능 및 역할에 대해서는 잔존 상태가 좋지 못하여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그 내부의 건물과 관련된 시설임에는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익산 왕궁리유적의 후원은 백제의 전통적인 조원 수법인 방지(方池) 스타일의 정원에 물을 끌어 들이거나 내보기 위한 곡지(曲池) 스타일의 수로(水路)를 함께 지니고 있다. 아울러 익산 왕궁리유적의 '정원'과 '후원'은 상호 유기적인 연결체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익산 왕궁성의 내부에 있는 '궁원(宮苑)'으로 보고자 한다.

Maintenance of Waterscape Facilities at Garden shows in Korea

  • Lee, Kyong-bok;Hong, Kwang-pyo;LEE, Hyuk-jae
    • International Journal of Advanced Culture Technology
    • /
    • 제8권4호
    • /
    • pp.189-199
    • /
    • 2020
  • We aimed to understand various problems identified at waterscape facilities of gardens built at garden shows in Korea. The main purpose of the study is to understand which parts of waterscape facility built in gardens at garden shows are causing problems and whether these problems can be traced back from garden design phase or from local communities in charge of maintenance. Furthermore, we examined if such problems get more aggregated as time passes by and different garden shows have different types of problems. In this study, types of waterscape facilities examined are pond, waterway, wall fountain, water glass, trough, mist, Cascade, fountain, rain garden, waterfall. An analysis of the maintenance status of waterscape facilities introduced in the existing gardens confirmed that problems could arise in two main respects. One is due to poor maintenance by the organizers of the garden show, and the other is due to the poor design of waterscape facilities by the garden designer.

경복궁 후원 수림의 변화과정 및 주요 노거수군의 역사적 가치규명 (A Study on the Historical Values of the Changes of Forest and the Major Old Big Trees in Gyeongbokgung Palace's Back Garden)

  • 신현실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 /
    • 제40권2호
    • /
    • pp.1-13
    • /
    • 2022
  • 본고는 최근 74년만의 개방으로 수많은 관람객이 방문하고 있는 청와대 경복궁 후원 공간의 변화과정을 통하여 후원 경관의 역사적 가치를 규명하고자 조선일기와 조선왕조실록, 도성대지도, 북궐도형, 경복궁 복원기본계획 등의 사료와 도면 등을 근거로 경복궁 후원의 시원과 발달과정을 고찰하였고 이를 통하여 다음의 결과를 도출하였다. 첫째, 조선시대 경복궁 후원은 고려시대부터 명당으로 이름난 지역이었고 당시 남경으로 명명되며 신궁이 조성된 지역이었고 고려시대 이미 풍수도참사상과 주국의 고공기의 영향을 받아 궁성과 궁궐이 조영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조선시대 전기 경복궁 후원은 궁궐의 후원으로 각광받지 못하였으나 고종 시기부터 현재까지 국가 통치권자의 생활공간으로서의 장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둘째, 후원의 경계는 도성지도, La Coree, 경무대일원, 일본지리풍속대계, 한국사진첩, 조선건축도집, 경성부 도시계획 조사서 등의 문헌을 통해 신무문 밖 현재의 청와대 권역이 경복궁의 경외에 조성된 후원임을 규명하였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황폐화된 지역을 고종시기 중건과정을 거쳐 공사(公私)가 결합된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후원의 전각들이 이건되거나 훼철되며 법궁의 후원으로서의 장소성이 훼손되었으나 광복 후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며 다시금 통치자의 장소라는 가치를 회복하게 되었다. 셋째, 경복궁 후원은 왜란과 일제강점기를 통해 공간의 변화가 크게 일어났다. 지형적 변화가 가장 큰 곳은 조선총독부관저가 건립되었던 경농재 일원으로 토지의 용도변화가 빈번하였다. 반면 현 경무대지역과 소정원 옆 수림과 백악의 수림은 전통적 수림의 형태를 계승하며 보존되었다. 이를 명확하게 규명하기 위하여 1:1200의 경무대관저경내부지배치도와 위성사진을 신무문 기준으로 중첩하였고 그 결과 백악에서 발원한 물길이 현재에도 여전히 유존하고 있음을 확인하였고 물길을 따라 오늘날까지도 수림지역이 변화하지 않고 존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넷째, 전통적 수림경관이 계승된 지역들은 지형의 기능적 변화가 미비하였고 더불어 주요 노거수군이 존치되고 있다. 이 지역에서 확인되는 노거수는 역사적 가치를 가지는 지표수종들이었다. 대표적으로 녹지원에 자리한 반송은 융문당 옆 식재된 반송 중 일부가 보존되어 온 것으로 추정되며 국가원수와 중요 귀빈들의 만찬 시 포토존으로 활용되어온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마지막으로 청와대 내 경복궁 후원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보존관리하기 위해서는 일제강점기 사료들에 대한 발굴을 통해 공간의 가치를 명확히 규명하고 시대별 정원고고학적 층위의 위계를 설정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또한 경복궁으로부터 청와대로 이어지는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역사경관을 보존하기 위한 근거는 과거부터 영속되어온 청와대 경복군 후원 노거수군의 영역대를 훼손하지 않아야하며 청와대 내 수림을 전수 조사하는 후속연구가 필요하다.

조선후기 강원감영의 후원조영(造營)과 신선세계 (The Back Garden Structure and the Symbolism of Immortal World of Gangwon Provincial Office in Late Joseon Dynasty)

  • 이상균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49권3호
    • /
    • pp.12-31
    • /
    • 2016
  • 사적 제439호인 강원감영은 1395년 원주에 처음 설치된 이래 1895년 23부제의 실시로 폐지되기까지 500년 동안 존속하였다. 강원감영은 관찰사의 겸목제(兼牧制) 시행으로 17세기 이후 본격적 영건이 시작되어 폐지 직전까지 약 50동 670칸 규모로 존속되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전각이 훼철되어 2005년 시설 일부를 수리 복원하였고, 현재는 (구)원주우체국 철거 후 감영 후원(後園)에 해당되는 시설을 복원 중에 있다. 강원감영 후원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원주수비대 운동장이 조성되면서 전부 없어졌다. 후원 조성을 위한 발굴조사 결과 연못 일부와 건물지가 확인되긴 했으나, 그 전모를 밝히기에는 유구의 교란과 훼손이 심하였다. 그러나 문헌과 그림 등을 통해 후원 전각들을 고찰해본 결과 연못 안에는 봉래각(蓬萊閣) 영주사(瀛洲?:관풍각) 채약오(採藥塢) 조오정(釣鰲亭) 홍교가 건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연못 밖에는 환선정(喚仙亭)과 방장대(方丈臺)가 건립되어 있었다. 후원 전각의 조성경위와 명칭을 살펴보면 모두 신선과 관련되어 있다. 연못 안에는 전설의 신선세계인 삼신산(三神山)을 의미하는 삼도(三島)를 만들고, 그 위에 전각을 지었다. 봉래각을 시작으로 후원에 건립되는 전각들에 영주 방장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머지 전각들에도 선가(仙家)의 이름을 부여했다. 후원뿐 아니라 그 주변의 전각들에도 신선과 관련된 이름을 붙였다. '봉래산'인 금강산을 관할했던 강원감영 후원에 이와 걸맞는 신선세계를 조영하였던 것이다. 강원도관찰사들은 여가에 수시로 후원에 나가 신선이 되어 탈속하는 풍류를 즐겼고, '봉래주인', 즉 신선세계의 주인이라 자처하였다. 강원감영은 금강산이 소재해 있던 강원도의 특징이 잘 반영된 신선세계가 구현되어 있었다는 매우 독특한 역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 문화환경의 창조 -고대정원문화를 중심으로- (Traditional Korean landscape garden with special attention)

  • 민경현
    • 기술사
    • /
    • 제18권2호
    • /
    • pp.54-65
    • /
    • 1985
  • Korean Landscape Garden may be described according to its stage of development. In the primitive agricultural era, the garden was preceded by vegetable yards and at this time rock arranging (Soo-Sok garden) was initiated together with the megalithis culture of dolmens, heavenly altars and tumuli. In the early Three Kingdom period palace gardens were built on a grand scale and toward the end of fourth century temple garden were introduced along with Buddhism. These gardens evolved to the flourishment of "HWAGE"(terraced gardens) rock arrangements of ZEN, early KOR-YO period. Especially since the middle of KOR-Yo period the "IM-CHUN"(forest and pond) garden became popular, while during Cho-Son period "HWAGE" in the back yard, pond and pool garden and "IM-CHUN" style country villa became fashionable. The Korea traditional Landscape garde may be characterized that first it is a nature Landscape style, which makes the maximum accomodation with the surrounding nature. Secondly, the Korean garden is built creatively by utilizing the elements of its climate and topography, Kogu-Ryo, Paik-Je great-Kaya and Sil-Ra had developed original a castle town plans and beautiful gardens rock arrangements which precede the equivalent style of China and set the prototype for Japan. The Landscape art of waterfalls and rock arrangements at An-Ap-Chi garden of 7th century has no equals in China and set the origin of pond style of Japanese garden.

  • PDF

중국 고대 원림에 관한 연구: 진, 선한, 수, 당대를 중심으로 (A Study on Chinese Ancient Garden -focus on Qin, Han, Sui, Tang Dynasties-)

  • 박경자;양병이
    • 한국조경학회지
    • /
    • 제27권2호
    • /
    • pp.119-129
    • /
    • 1999
  • It may be said that ancient wild Chinese garden had been founded during Qin dynasty and completed through Han, Sui and Tang dynasties. At first used as hunting areas for kings, the ancient resort forests began to take forms of garden. They dug a pond in the garden and made a simulated mountains with the soil that came from the excavations for the pond and suc pavilions has Gyong, Ru, Gak etc. were built around the pond. The ponds were different in size from those in Korea, being of the lake-like size. they made three island in the pond, which were the islands of Taoist hermits with supernatural powers, called Bong-lae, Young-ju and Band-jang respectively. the traditional of making those islands began in the Qin era and were completed in the Han era, being descended to posterity as a traditional garden structure of 'three islands in one pond' garden style. Such style was brought to Korea and first appeared as Kung-Nam-Ji in Back-jae kingdom and then brought to Japan, becoming the tradition of constructing ponds from early Heian era. Those lake-like huge Chinese ponds constituted the core of ancient garden where various feasts took place. Such ponds were also placed at the center of the gardens and played the roles of feasting garden ponds. Through the above-mentioned studies of the ancient Chines garden, the origin of them and the influence of the ancient Chinese ponded garden upon those of Korea and Japan were investigated.

  • PDF

중국 명·청 양주 염상원림의 설계원리 및 조영특성 (A Design Principles and Characteristics of the Garden of Salt Merchant in Yangzhou, China's Ming and Qing Dynasties)

  • 신현실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 /
    • 제37권3호
    • /
    • pp.83-92
    • /
    • 2019
  • 본 연구는 명·청 시대 양주 염상원림의 특성을 살펴보고자 문헌자료의 수집, 분석하여 원림조영의 배경을 살펴보았으며, 현전하는 염상원림의 설계방식, 구성요소 등을 살펴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과거 양주지역은 고대 대운하의 구축을 기원으로 문화적, 경제적 발전을 이룩하였으며, 염상들은 부를 축적하면서 무역을 통한 원림조영재료의 확보, 후학양성을 통한 정치적 배후세력 형성, 외래문화 유입 등의 배경 하에 많은 원림들을 조성하였다. 둘째, 양주 지역 염상들은 교류와 휴식의 장소로서 원림을 조성하기 위해 원림전문가들에게 원림 설계를 의뢰, 조영하였으며, 가산과 장랑을 활용한 경관변화 연출, 건축요소를 이용한 공간의 명확한 구분, 물과 인접한 경점에 건조물 배치 등을 통해 실용적이고 미적인 기능을 갖춘 원림들을 소유하였다. 셋째, 양주 염상원림들은 전면의 건조물 중심 상업공간이 위치하고, 후면에는 원림을 중심으로 하는 설계특성을 지닌다. 상업구역의 원림은 건조물 전면부를 중심으로 자투리 공간에 화분이나 괴석, 대나무, 담장문양을 활용한 간단한 형태로 조성하였다. 후면의 원림은 운하와 연결된 물길이 원림 전역에 굴절된 이수체계를 형성하고, 지당과 어우러진 첩석, 석교, 석방 등이 도입되었으며, 다양한 소재와 문양의 포장, 양주 지방의 기후와 색채 대비를 고려한 수목의 도입 등이 설계에 반영되었다.

조경 관리자 인터뷰를 통한 청와대 시기 경복궁 후원의 변화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Changes in the Back Garden of Gyeongbokgung Palace during Cheongwadae Period through an Interview with Landscape Manager)

  • 김규연;이시영;최재혁;최종희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 /
    • 제41권2호
    • /
    • pp.26-34
    • /
    • 2023
  • 본 연구는 경복궁 후원의 경관을 보존·관리·활용하는 데 필요한 기초적인 정보를 제공하고자 전·현직 청와대 조경 관리자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시행하였으며, 요약된 주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경복궁 후원의 지형은 노태우 대통령 당시 본관과 관저를 신축하며 절토와 성토가 이루어지며 많은 변화가 있었다. 수계는 과거 경복궁과 연결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단절된 상태이다. 둘째, 식재의 경우 가장 중요한 원칙은 대통령의 경호와 의전이었으며 이에 따라 수목이 배치되거나 관리되었다. 수목은 여러 지방에서 우수한 수목들을 도입하여 심었으며, 야생화와 지피식물들도 계절에 따라 자주 교체하였다. 셋째, 시설물 및 동선은 점경물과 휴게시설 등이 대통령의 의전이나 취미, 근무자들의 휴식을 위해 배치되었으며, 백악산 산림지역의 방재를 위해 소방시설을 설치하였다. 넷째, 청와대 시기 경복궁 후원 조경의 가장 큰 변곡점은 노태우 대통령 시절 본관과 관저 신축으로 인한 지형의 변화, 노무현 대통령 시절 공간을 분리하던 A, B 철책의 제거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 시절 G20 정상회의를 위해 수행된 대대적인 공간 정비로 파악된다. 경복궁 후원 영역이 2022년 5월 10일 시행된 청와대 국민 개방으로 인해 또 다른 변곡점을 맞을 것으로 예상되며, 현황을 잘 보존하면서 경복궁 후원이 가진 역사적·학술적·경관적 가치를 평가하는 작업이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별업(別業) '유회당' 원림 하거원(何去園)의 의미경관 해석과 환경설계기법 (A Study on the Meaning Landscape and Environmental Design Techniques of Yoohoedang Garden(Hageowon : 何去園) of Byulup(別業) Type Byulseo(別墅))

  • 신상섭;김현욱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46권2호
    • /
    • pp.46-69
    • /
    • 2013
  • 권이진(1668~1734)의 문집(유회당집)에 수록된 기문에 근거하여 별업형 별서 유회당 원림(하거원)의 의미경관과 환경설계기법을 추적하였는바, 첫째, 유회당 권이진은 대전 보문산 남쪽 무수동 마을 뒷동산 일대에 20여 년 동안 3단계에 걸쳐 선묘, 별업, 원림, 강학처 등 별업형 별서원림을 조성했다. 즉, 초창기 마을 뒷동산에 부친의 묘를 자리 잡아 별업(유회당)을 조성했고, 중반기에 연못(납오지), 원림(반환원), 선묘를 보호하고 후손의 강학을 위한 여경암과 거업재 등을 조성했으며, 후반기에 유회당을 증축하고, 동쪽 영역을 확충하여 하거원 원림을 완성했다. 둘째, 풍수적 입지 체계하의 무수동 마을에 자리 잡은 유회당 별업은 본제 살림집(안동 권씨 종가), 별업(유회당), 선묘소, 하거원(원림), 여경암(강학처) 등 별업형 별서가 갖추어야 할 공간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셋째, 유불선(儒佛仙)에 기반한 의미경관 요소가 작용되었는데, (1) 부모님 추모, (2) 가문 화합, (3) 절개, (4) 덕, (5) 고매한 인간 염원, (6) 상서로움, (7) 은일자의 삶, (8) 가문 번영과 학문 발전, (9) 선조의 은혜, (10) 선경세계, (11) 묘역보존, (12) 불로장생의 염원 등을 들 수 있다. 넷째, 선영 묘역을 조성한 후 13년에 걸쳐 조성한 하거원은 계류를 따라 3개의 연못이 어우러진 수경원을 조성했으며, 5개의 대(臺)와 3곳의 대숲, 그리고 석가산 등을 갖추어 선경의 이상세계를 구축하였다. 다섯째, 소나무, 단풍, 철쭉, 진달래, 감나무, 대나무, 버드나무, 석류, 사계화, 산당화, 왜철쭉, 복숭아, 연꽃, 국화, 작약, 모란, 장미, 벽오동, 무궁화, 배롱나무, 자두와 살구, 매화, 반송, 잣나무, 회양목, 단내 등 수 많은 조경식물종을 도입하여 시정(詩情)을 통한 낭만성, 의인화를 통한 상징성과 이상향 표출, 사계절 경색을 고려한 다양성 등을 꾀하였다. 여섯째, 경관석의 활용은 자연암석을 그대로 이용하는 진경(眞景)기법, 수경요소와 연계, 석연지와 화계 등을 이용한 점경물 기법, 의미경관의 진수를 보여주는 축경형 석가산기법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수경관의 특징은 자연계류와 지형조건(동쪽계곡)을 고려한 물의 적극적 활용, 계류를 따라 원림의 각 공간을 리듬감 있게 물길로 연계하는 생태적 코리도 역할, 활수담, 몽정, 호수와 복수 등 철학적 가치를 연계시킨 의미경관의 대입, 물성을 이용한 청각과 시각 등 이목구비(耳目口鼻)의 오감만족 체험 공간화 등을 들 수 있다.

조선후기 원림 석파정(石坡亭)의 공간변화양상에 관한 고찰 (A Study on the Aspect of Space Change to Seokpajeong garden(石坡亭) in the Late Joseon Dynasty)

  • 이원호;김동현;김재웅;최종희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 /
    • 제33권1호
    • /
    • pp.31-40
    • /
    • 2015
  • 본 연구는 석파정의 공간변화양상을 파악하기 위해 원림의 소유권 이전에 따른 공간의 특성을 시기별로 분류하고 관련 문헌 및 도상자료, 기사, 사진 등의 분석을 통해 각 시기별 변화양상을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석파정의 조영실제 및 소유주의 변화를 살펴보고 이에 따른 공간특성을 시기별로 구분한 결과 3시기로 분류되었다. 1기는 김흥근 소유의 삼계동 정사가 이에 해당하며, 2기는 대원군이 석파정을 소유하였던 시기를 들 수 있다. 3기는 석파정의 원형이 변질되는 시기로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로 구분하였다. 둘째, 김흥근 소유의 삼계동 정사를 살펴본 결과 계류 중심의 공간구성 및 다수의 건조물을 경영하는 특성을 지니며 중국풍 정자 및 별당채의 도입 등 외래문물의 수용양상과 함께 기화요초를 다수 식재하였다. 셋째, 석파정도병풍을 소재로 확인되는 흥선대원군 소유의 석파정은 기존 삼계동 정사의 공간구성을 대부분 수용한 것으로 보이나 공간의장이 집중되는 사랑채 위치의 상이함은 석파정도병풍의 제작 이후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을 가능성 또한 고려해야할 사항으로 중국식 정자의 표현위치와 함께 이에 따른 추가적인 문헌의 고증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근대의 석파정은 잦은 소유주의 변경에 따라 이전시기에 비해 상당부분 원형에 훼손되었고 지형이나 수계의 변형뿐만 아니라 건조물 또한 사랑채나 안채, 후면의 별원만이 남아있으며, 오늘날 원림유적이라기보다는 서울미술관의 부대시설로 전락하여 이에 대한 환원과 함께 원형복원이 시급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