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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학(蘆沙學) 연구(硏究)의 현황(現況)과 과제(課題) - 한국 철학계의 연구를 중심으로 - (The Current Trend and Task for the Nosa Studies: focusing on the researches in Korean Philosophy)

  • 박학래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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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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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47-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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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고는 조선 성리학 6대가 중 한 사람이자 한말(韓末) 도학(道學)을 대표하는 학자로 평가받고 있는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과 그의 문인들로 구성된 '노사학파(蘆沙學派)'에 관한 연구 현황을 정리 분석하고, 향후 과제를 제시한 것이다. 본고에서 제시한 '노사학(蘆沙學)'은 '기정진의 학문과 사상 및 그의 문인들을 통해 계승되고 정립된 일체의 학문사상적 성과를 아우르는 것'을 의미한다. 기정진 및 노사학파 문인들의 학문과 사상, 그리고 그들이 펼친 다양한 활동은 한말(韓末) 도학(道學) 영역뿐만 아니라 근현대 한국 유학의 핵심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기정진의 핵심적인 사상은 퇴계(退溪)와 율곡(栗谷) 이후 전개된 조선 유학의 여러 쟁점들에 대한 총결로서 그 의미를 가지며, 기정진 사후 본격화된 노사학파 문인들의 학문과 다양한 활동은 한국 유학이 근현대라는 공간 속에서 어떻게 현실과 만나고 변용되는가를 보여주는 특징적인 사례 중 하나라 이해할 수 있다. 특히 20세기 초반 기호학계 내부에서 '노사학(蘆沙學)'을 중심으로 전개된 여러 논쟁과 그들의 사상적 지향과 결부된 현실 대응은 현재의 한국 유학의 정체성을 해명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본고는 이러한 점에 유의하여 노사학(蘆沙學) 연구의 개황을 통해 20세기 초중반부터 구체화된 노사학(蘆沙學) 연구 내용을 사적으로 개괄하고, 노사학(蘆沙學) 연구 성과를 영역별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검토한 후, 이에 기초한 향후 과제와 전망을 제시하였다.

우담 정시한의 「사칠변증(四七辨證)」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Woodam Jeong Si-Han(愚潭 丁時翰)'s "Siqibianzheng (「四七辨證」)")

  • 서근식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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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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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43-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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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정시한은 72세에 "사칠변증"을 완성하고 이후에 제자 이식과 인물성동 이논변을 벌인다. 정시한의 입장은 인물성이론의 입장이었고 이식은 인물 성동론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인물성동이논변은 잊혀지고 "사칠변증"이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에 퇴계학파와 율곡학파가 대립점에 있었고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비판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사칠변증"을 완성하게 되는 데에는 이현일의 "율곡이씨논사단칠정서변"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이의 사단과 칠정에 대한 생각은 '칠정이 사단을 포함한다.'라는 '혼륜(渾淪)의 입장'이었고, 이황은 사단과 칠정은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분개(分開)의 입장'이었다. 정시한은 분개의 입장에서 혼륜의 입장을 비판하는 입장에 있었다. "사칠변증"을 통해 정시한은 무엇을 추구하려고 하였는가?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정시한이 제자 이식과 벌였던 인물성동이논변을 잊게 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현재 정시한의 "사칠변증"에서 이이를 비판한 사실은 알지만 정시한이 인물성동이논변을 벌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중요한 논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사칠변증"이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일까? 그것은 정시한이 희망했던 희망하지 않았던 것과 상관없이 정시한 이후에 사단칠정논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익과 신후담, 정약용에게까지 "사칠변증"이 영향을 준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후기 기호성리학파의 역학계몽 이해 (Ki Ho School of Neo-Confucianism on Yi Xue Qi Meng in Later Chosun Period)

  • 이선경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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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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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5-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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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이 글은 조선후기 기호성리학파의 "역학계몽"연구가 어떠한 특징을 지니는가를 고찰한 것이다. 자료의 측면에서 기호성리학파의 "역학계몽"연구는 대체로 한원진을 중심으로 그의 동료, 문인들에 의해 연구되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퇴계학파의 "역학계몽"연구가 이황 "계몽전의"이후, 16세기말로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진데 비하여, 기호성리학파의 "역학계몽"연구는 18세기에 집중적으로 논의되고, 그 이전과 이후에는 비중있는 연구저작들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기호성리학파의 "역학계몽"연구의 특징을 고찰하기 위해 본고에서 채택한 주제는 3가지로, 그들의 태극론, 하도와 8괘형성에 관한 이론, "본도서"의 이른바 '오위상득설'이 그것이다. 태극론의 경우 기호성리학파는 "역학계몽"의 상수적 태극을 이기지묘의 이기론과 인기질의 인성론을 바탕으로 해명하는 독특성을 보여준다. 하도와 8괘형성에 관한 이론에 있어서는 기호성리학파내부에서도 논의가 분분하여 명쾌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결국 그들은 종래 주희와 호방평이 하도와 복희팔괘횡도, 복희팔괘원도를 종합하여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려던 시도를 유보한다. 한원진은 하도와 원도의 관계를 중심으로 양자의 관계를 보다 명쾌하게 설명해내는 방식을 취하고, 이는 그의 동료문인들에게 지지를 받는다. 이러한 과정은 전통적 진리체계의 보편성에 대한 의식의 균열을 내포하며, 이러한 기류는 홍대용과 같은 기호실학자들에 의해 전통과학과 진리체계가 부정되면서, 19세기 "역학계몽"연구가 지속되지 못하는 한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 필자의 가설이다.

장현광 성리설의 연원에 대한 고찰 - 나흠순 성리설과의 관련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sources of Jang Hyeongwang's Theories of Li and Ch'i)

  • 김용헌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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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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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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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나흠순의 이기일물론과 인심도심성정설은 장현광의 성리설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장현광의 경위설은 리기불상리의 원칙에 충실하다는 점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나흠순의 이기일물설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장현광의 이기경위설은 나흠순의 이기일물설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첫째, 장현광이 리와 기가 두 가지 존재가 아님을 강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이론체계에서 리와 기는 내용적 일치의 관계에 있지 않다. 둘째, 장현광의 철학체계에서 최고 범주는 어디까지나 리라는 점이다. 그의 이기론이 지닌 이러한 특징은 나흠순의 이기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면모이다. 장현광이 도심을 성, 인심을 정으로 본 것은 나흠순의 인심도심성정설의 영향이 분명하다. 다만 그는 체는 용을 겸할 수 있다는 논리로 도심이 미발뿐만 아니라 이발도 겸한다는 논리를 펼쳤기 때문에 그의 인심도심설이 나흠순의 설의 단순한 답습이라고 하기 어렵다. 더욱이 공과 사를 기준으로 도심과 인심을 구분한 인심도심공사설은 인심과 도심을 모두 이발의 정 층위에서 이해했다는 점에서 나흠순의 인심도심성정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그렇다면 장현광 성리설의 형성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한 마디로 장현광의 철학이론은 호발설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주된 철학적 관심사는 리(사단 도심)와 기(칠정 인심)를 두 근본으로 여기는 학설을 비판하고 리와 기를 하나로 통합하는 철학 체계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결국 리기경위설로 대표되는 그의 성리설은 당시 조선유학계의 학문적 상황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었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대순사상의 인심도심론(人心道心論) 연구 (A Study on the Human Mind and Moral Mind Theory in Daesoon Thought)

  • 박병만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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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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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9-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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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이 논문은 대순사상에서 인심·도심 개념과 그 가치론적 해석의 문제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인심·도심 개념은 송대에 들어서 정이천·소식·주자 등에 의해 인간 보편의 마음으로 이해되며 수양의 문제 중심으로 해석하였다. 인심·도심에 대한 논의는 주자에 이르러 이론적으로 체계화되며 이후 다양한 논설이 전개되었다. 인심도심론은 가치론적 해석의 문제가 중요한 논제 가운데 하나였는데, 크게 세 가지 유형의 양상을 보였다. 인심·도심을 각각 악과 선(정이천과 주자초설), 가치중립과 선(주자와 퇴계·율곡), 예비 악과 예비 선(다산)이 그것이다. 인심·도심은 인간 보편의 문제로 볼 수 있으므로 유학 전통의 이러한 유형들에 대한 검토는 대순사상의 인심·도심에 대한 이해에도 이론적 기반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대순사상에서는 인심·도심을 각각 사와 공이라고 규정할 뿐 개념에 대한 설명은 없다. 대순진리회가 지향하는 이념과 가치를 전반적으로 고려하여 추론해 보면, 인심은 의식색(衣食色) 등 인간의 생명 활동과 종족 보존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라고 할 수 있다. 도심은 도덕 실천과 더불어 보국안민·광제창생·인류화평 등과 같은 이념을 실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볼 수 있었다. 한편, 인심·도심과 가치론적으로 연관된 양심·사심에 대해서는 이를 각각 선과 악으로 규정하고 그 개념과 발생 근원 등을 논술하며 비교적 체계적인 면모를 보였다. 양심·사심에 대한 논설이 인심·도심보다 체계화된 것은 양심·사심의 문제가 교리적으로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도산십이곡"에 나타난 메타교육적 함의 (The Meta-Educational Implications of Toson-Shibigok)

  • 박미영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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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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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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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퇴계 이황이 창작한 ${\ulcorner}$도산십이곡${\lrcorner}$이 오늘날에 어떤 교육적 가치를 발휘하는 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본고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ulcorner}$도산십이곡${\lrcorner}$과 그 발을 통하여 퇴계가 1차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자로서 의도했던 교육의 대상과 교육 목적, 교육방식과 내용을 살펴 당대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또 이런 교육적 태도가 어떤 메타교육적 가치를 지니는지를 규명하였다. 퇴계는 ${\ulcorner}$도산십이곡${\lrcorner}$을 교육적 의도에서 창작하고 그 의도를 ${\ulcorner}$도산십이곡발${\lrcorner}$ 통해 밝혔다. 퇴계가 의도한 1차 교육적 의미는 퇴계가 직접적인 교육자로서 시조라는 노래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피교육자에게 전달하고자 한 문학교육이다. 대상은 아배 즉, 자제로 나아가 학문에 입문하는 초학자를 설정하였다. 교재는 당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노래, 시조를 선택하였다. 이는 당대 문화를 비판적으로 인식한 결과로 선택된 것이다 노래의 교육효과를 최대한 고려한 문학교육으로 교재의 내용은 퇴계의 평생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다. 퇴계는 이와 같은 1차 교육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문학교육적 구도를 당대의 다른 유학자 및 후대인에게까지 보여주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는 오늘날 교육이론의 중요한 대상이 되고 있는 메타교육적인 것이다. 퇴계는 본인의 삶을 선택하는 방식에 대한 패러다임 교육으로서의 메타교육 학문 즉 진리에 접근하는 학문적 태도에 대한 메타교육 등 다양한 메타교육적인 방법을 보여주었기에 퇴계의 작품과 삶이 지대한 교육적 가치를 오늘날까지도 지니게 된다.입고)와 관련된 다양한 문헌자료의 전승은 해당 시조 뿐 아니라 시조문학의 수용과 전승양상을 보여주는 자료로서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플래쉬>고정식>스크롤 방식 순으로 나타나 전체의 결과를 종합하여 볼 때 플래쉬 방식의 성능이 우수함을 알 수 있었다.장 많았고 약 $88.9\%$가 동반정신장애를 가지고 있었으며 CD가 가장 많았다.구 결과와 유사한 결과이다.고 사료된다. 6. 치료전에는 차이가 없던 남,여군 사이에 치료후에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치료 효과에 관계없이 남여에 따른 성장양상의 차이가 그대로 표현된 것으로 사료된다. 연구는 거대 편도를 가진 기능성 III급 부정 교합자의 구개 편도 절제술 전후의 인두강, 설골, 두부 위치의 변화 양상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단국 대학교 부속 치과 병원 교정과에 내원한 남녀 환자 42명을 대상으로 연구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55.19\%$로 첨가량이 증가하면서 두 항목 모두 크게 감소하는 결과를 보였다. 색도를 분석한 결과 L값, a값, b값 모두 표고버섯 분말 함량이 증가하면서 감소하였고, 모든 처리구에서 기존 무첨가구와 극히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료별 관능검사 결과에서 색 (color), 먹을때의 느낌 (chewiness)과 단맛(sweetness)의 경우 무첨가구와 모든 처리구가 유의적인 차이를 보였으며, 향미 (flavor)와 전반적인 기호도(overall acceptability)에서 당화액과 추출액의 혼합비가 7:3인 시료구만이 무첨가구와 유의적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로 보아 표고버섯 추출액을 당화액에 첨가하여 조청을 제조할 경우 적정 첨가 수준으로 당화액과 추출액의 비가 3:7의 범위를 넘지 않아야 버섯의 장점을 살리면서 기존 조청의 특성을 변화시키지 않는 제품을 제조할 수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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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역학과 조선전기역학의 상수위주적 상의관의 특징 (A Brief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of Image-Meaning theory focused on image in the early days of the Joseon Dynasty and SongMing period)

  • 윤석민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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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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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7-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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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고는 조선전기역학과 송명역학 상의관(象義觀)의 상수위주적(象數爲主的) 특징을 고찰함에 목적이 있다. 조선전기역학은 송명역학의 기초 위에 독창적인 상의관을 전개했다. 조선전기역학의 상의관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을 갖는다. 하나는 정이(程?)와 양만리(楊萬裏)로 이어지는 의리역학의 상의관에 대한 비판적 계승의 관점이다. 권근의 '인기리이순응지(因其理而順應之)'와 퇴계의 '귀리불귀수(貴理不貴數)'는 '이의리위주(以義理爲主)'의 상의관에 관한 대표적인 명제들이다. 이들은 의리중심의 상의관을 주지하면서도, '의불출수외(義不出數外)', '은오지의여승제지법도득명상(隱奧之義與乘除之法都得明詳)' 등 주희역학의 겸치상의(兼治象義) 상의관도 적극 수용한다. 요컨대, 이들 상의관은 의리위주(義理爲主)의 입장에서 겸치상의(兼治象義)를 천명함에 의의가 있다. 다른 하나는 진단(陳?)과 소옹(邵雍)으로 이어지는 도서역학의 상의관과 정주의 상수계열 후학에 대한 적극적 계승과 창조적 변용이다. 이이는 철학적 관점에서 '리(理) 기(氣) 물(物)의 동시적 발생'을 주장하였고, 이는 역학철학에서 '리(理) 상(象) 수(數)의 불가분리성(不可分離性)'의 상의관으로 나타났다. 이는 수적 배열로 우주의 정합적 도식을 설명하려했던 도서학적 전통이다. 이러한 도서학적 전통 속에서, 장현광은 '이득수이위체(理得數而爲體)'와 '역리불외수(易理不外數)' 명제를 제기한다. 이들은 소옹의 수학적 역학을 적극 계승하여 이수위주(以數爲主)의 상의관(象義觀)을 천명하고 있다. 조호익(曹好益)은 도서학적 전통에서 벗어나 "주역"경전 해석에 집중하면서 이상위주(以象爲主)의 상의관(象義觀)을 전개한다. 그는 '불외호상(不外乎象)', '상개구의(象皆具義)', '취상무상(取象無常)' 등 이상위주(以象爲主)의 상의관(象義觀)을 제기하면서 이를 근거로 다양한 상수역학적 해석틀을 창안했다. 요컨대, 조선전기역학의 상의관은 전대의 상의관(象義觀)을 상(象) 수(數), 상(象) 리(理)(의(義)), 상(象) 기(氣), 수(數) 리(理), 수(數) 상(象) 의(義), 상(象) 수(數) 리(理) 기(氣) 등 다양한 논의로 발전시켰다. 그 논의는 이겸치상의(以兼治象義), 이수상위주(以數象爲主)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