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Sino-Korean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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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목적 한국어 학습자의 한국어 능력과 학업 적응에 관한 연구 (The narrative inquiry on Korean Language Learners' Korean proficiency and Academic adjustment in College Life)

  • 정연숙
    • 국제교류와 융합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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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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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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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이 연구는 외국인 유학생들의 한국어 능력 시험(TOPIK) 등급이 학업 적응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IRB의 승인을 거쳐 모집한 학생은 모두 7명으로 이들의 면담 내용은 실용적 절충주의에 기초한 포괄적 분석절차 (이동성, 김영천, 2014)의 6단계를 활용해 분석했으며 그 결과 학문 목적 한국어 학습자의 학업 적응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학업, 생활, 심리·정서의 범주로 나눌 수 있었다. 학업적 측면에서 인터뷰 대상자들은 적응하기 힘들었던 전공 용어와 전공 공부를 지적하였고, 한자 및 한자어에 큰 어려움을 경험했다. 다음으로 생활 측면에서는 고급 수준의 토픽 등급 소지자인 연구 참여자들도 대학 생활 적응에 어려움이 있었고 한국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기 위해서는 실용적인 표현과 풍부한 어휘 지식이 필요함을 토로했다. 마지막으로 심리·정서적인 범주에서는 이들이 한국인들과의 대화나 발표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사회 문화 및 일상 생활 문화에 관한 지식도 부족했기 때문에 한국어를 잘하더라도 화용적인 면에서 실수나 오류를 범하기도 했고 이것이 심리·정서적인 어려움에 처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근거로 한국어 학습자의 학업 적응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한국어 학습의 다양한 기회 부여라는 목표를 기반으로 학습자의 전공 관련 학업 능력 강화, 한국어 숙달도 향상, 학내 관계 형성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연구자는 이를 위한 해결 방안으로 외국인 학습자들을 위한 다양한 비교과 활동을 계획·설계하여 시도해 볼 것을 제안했다.

중국(中國)의 WTO가맹(加盟)에 의한 일본기업(日本企業)의 대중투자(對中投資)에 관한 연구(硏究) (Japanese Companies Investment in China After Chinas Entry into WTO)

  • 왕국안;최석범
    • 무역상무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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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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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41-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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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Since China was admitted to the World Trade Organization (WTO) on December 11, 2001, China has sped up its active participation in the competition of the world economy by lifting its trade and investment restrictions and limits. Its trading system is getting more and more free and its huge market with a population of 1.3 billion has been getting more and more open. With Chinas WTO accession, China has been honoring its commitments to its WTO members by complying with international business practices and WTO rules. For example, it will cut down its import tariffs for automobiles from the present 80% to 25% by 2006. Its financial sector and service industries are open to foreign investors now. As Chinas biggest business partner, Japan has benefited tremendously from Chinas open policies and deepening economic reform. In order to reduce the costs of production, a large number of enterprises from Japan have set up production bases in China since a Chinese workers wages accounts for only one tenth of those of a Japanese worker on the average. Japan has become one of Chinas biggest investors on a par with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USA). How are the Japanese enterprises in Japan and in China adjusting themselves to the rapid changes of the Chinese market? What characteristics do the Japanese enterprises in China have? What effects has Chinas WTO accession had on those Japanese enterprises that have invested in China? This paper finds answers to the above questions. It at first reviews the Sino-Japanese economic and trade relations since 1980s, then analyses the situation and characteristics of Japanese-invested enterprises in China, and explores their problems in China. Finally it puts forward some suggestions for the Japanese enterprises in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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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의류 생산네트워크와 UN 제재 (North Korea, Apparel Production Networks and UN Sanctions: Resilience through Informality)

  • 이종운;케빈 그레이
    • 한국경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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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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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3-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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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고는 북한이 임가공사업과 인력송출을 통해 중국 주도의 지역·글로벌 의류 생산네트워크에 편입되는 과정과 구조적 특성을 밝히면서, 강화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조치가 미친 영향을 파악하고자 한다. 2017년 하반기 채택된 UN안보리 결의안에 북한산 섬유제품의 수입금지와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의 송환이 포함되면서 2010년대 들어 급증했던 중국기업의 대북 위탁가공거래와 노동력 활용은 크게 위축되었다. 그러나 북·중 접경지역 경제교류에는 오랜 기간 불법적인 요소들을 포함한 다양한 비공식적 거래방식이 공존하고 있다. 대북 경제제재 강화에 따라 합법적 교류창구가 닫히게 되면서, 규모는 감소하였지만 북한의 의류 위탁가공생산과 노동부문의 북·중 협력은 음성적 영역으로 전환·진행되고 있다. 북한의 지역 및 글로벌 생산네트워크 편입의 실태를 분석한 본 연구는 대북 경제제재의 실효성과 북한경제 변화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할 것이다.

권우(卷宇) 홍찬유(洪贊裕) 시문학(詩文學) 연구(硏究) 시론(試論) - 『권우집(卷宇集)』 소재(所載) 한시(漢詩)를 중심(中心)으로 - (An Essay in a Research on Gwonwu Hong Chan-yu's Poetic Literature - Focussing on Classical Chinese Poems in Gwonwujip)

  • 윤재환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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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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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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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권우(卷宇) 홍찬유(洪贊裕)(1915~2005)는 대한민국 근 현대 시기 대표적 한학자(漢學者)의 한 사람이자 시대의 지성인(知性人)으로, 학계의 후예들에 의해 사표(師表)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다. 권우(卷宇)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독재와 민주화의 투쟁기라는 한국 사회의 지난한 혼란기를 몸소 겪으며 당대의 젊은 학자들을 교육하고 이끌었던 시대의 스승이었지만, 운명 이후 지금까지 그의 생애와 업적에 관한 학계의 조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글은 아직까지 학계에서 논의되지 않았던 근 현대의 대표적 한학자 권우(卷宇) 홍찬유(洪贊裕)의 시문학 세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 글이다. 그간 학계에서 논의되지 않았던 권우(卷宇) 홍찬유(洪贊裕)의 문집에 근거한 최초의 작업이고, 그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의 시작으로 최소한의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이 글은 그의 문집 속 시문학 작품에 대한 세부적인 점검을 우선적인 목표로 삼는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부족한 지식과 학문적 역량, 자료의 불비(不備)로 인해 이 글의 곳곳에서 한계가 노정될 수밖에 없다. 권우(卷宇)의 문집을 통해 본 권우(卷宇)의 시세계는 그의 시가 자신의 내적 정서의 표출을 시의 중심에 두고 있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특징은 권우(卷宇)가 지니고 있었던 시 의식이 시의 대사회적 효용보다 개인적 정서의 표출이라는 개인화에 보다 주목하는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이와 같은 권우(卷宇)의 시 의식은 그의 시문학 세계 전반에서 고르게 확인이 된다. 이에 따라 권우(卷宇)는 고시보다 근체시를, 연작시보다 단형시를 중심으로 하였으며, 송별시나 증여시 만시와 같은 대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시의 창작을 꺼렸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권우(卷宇)의 시문학 세계가 지니는 특성을 이렇게 정리하였을 때 몇 가지 의문점이 남게 된다. 우선적으로 지닐 수 있는 의문은 그의 문집 속 시문학 작품들이 그의 시세계 전부인가 하는 것이다. 현재 필자가 확인한 권우(卷宇)의 시문학 작품은 모두 문집 속에 수록되어 있는 것이지만, 권유의 시문학 세계가 이 작품들만으로 정리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크다. 다음으로 지니게 되는 의문은 권우(卷宇)의 시문학 작품들이 내적 정서의 표출을 시의 중심에 두고 있으며, 흥(興)의 정서를 표출한 시와 감회(感懷)와 감개(感慨)의 정서를 표출한 시가 각기 다른 시문학 작품의 창작 공간과 상황에서도 동일한 모습으로 드러난다면, 각기 다른 성격의 흥취(興趣)와 감회(感懷) 감개(感慨)라는 정서를 시문학 작품 속으로 옮겨간 구체적인 창작 방법은 어떠한가 하는 것이다. 마지막 의문점은 만약 지금까지 문집을 통해 확인한 권우(卷宇)의 시문학 세계가 그의 시가 지니는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혹은 그의 생애 중 한 시기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의문점은 권우(卷宇) 개인에 대한 탐색과 아울러 시대에 대한 탐색이 입체적으로 동시에 진행되어야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권우(卷宇)의 시문학 세계에 대해 던지는 새로운 방향의 심화 연구 촉구는 근 현대 한문학사의 온전한 구성과 한문학사 한문학 연구의 연속성 확보를 위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이와 같은 점에서 앞으로 더 많은 연구자의 노력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중국 연변 농촌지역의 조선족인구 감소와 지역성 변화 - 두만강변 조선족 농촌 마을을 중심으로 - (The Decrease of Korean Population and the Changes of Regional Characteristics in Rural Area of Yanbian Korean Autonomous Prefecture)

  • 여필순
    • 한국지역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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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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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68-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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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본 연구는 경제개혁 이후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내 조선족 인구감소의 메카니즘과 그 결과가 농촌지역에 미치는 영향 및 지역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의 시장경제체제의 도입, 호적제도의 약화 및 한 중 국교수립 이후 이동성향이 높아지고 통혼권과 거주지역이 확산되면서 조선족사회는 출산력수준의 급격한 저하와 젊은 층 및 여성 위주의 인구이동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곧바로 농촌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고령화로 이어져, 농업의 쇠퇴와 농촌지역의 조선족사회집단 해체, 기능약화, 민족교육의 위축 및 지도력 약화라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감소된 노동력을 보완하기 위한 농업경영상의 변화는 타지역 한족(漢族)농민들로 충당되었고 농업의 한족화 현상과 조선족에 비해 한족 농민들의 경제력 상승추세가 나타나고 있으며, 작물구성의 변화는 전통적 수전농업 체계에서 한전(旱田) 단작영 농체계로 특화되어 가는 경향이고, 노동력 효율적 분배가 가능한 상업적 작물이 인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조선족농업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고 변화하고 있는 새로운 농업환경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존재하며 이는 결국 조선족농촌마을이 소실될 위기에 놓여 있어 파격적인 정책지원 및 농촌개발정책의 수립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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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부여고적의 재해석과 고적관광의 성격 (A Study on Characteristics of Reinterpretation and Tourism on Historic Sites of Buyeo Region during Japanese Colonial Era)

  • 김종수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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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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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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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일제는 일선동조론에 바탕을 둔 동화정책의 일환으로 우리의 역사를 식민사관에 맞춰 재구성하는 한편 고고학적 조사와 고적에 대한 재해석을 통하여 이를 증명하려고 하였다. 경주, 부여 등 고도(古都)에 대한 고적조사 및 고적의 재해석 그리고 고적관광은 이러한 맥락에서 추진되었다. 특히, 부여지역의 경우 고적조사와 고적에 대한 재해석을 통하여 백제 사비기와 일본 고대 아스카(飛鳥)시기와의 밀접한 관련과 친연성을 강조하고 이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고적을 식민지 조선인에게 보여주는 고적관광을 실시하였다. 본 논문은 일제강점기 부여지역에 대한 고적조사와 고적의 재해석 및 고적관광이 어떤 맥락으로 이루어졌고 그것이 일반 대중들에게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고찰하였다. 첫째, 부여지역의 고적조사는 1909년 세키노 다다시에 의해 처음 시도되어 일제강점기 동안 고분과 사지(寺址)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세키노는 부여의 고적조사 결과를 토대로 고대 중국(梁) 한국(百濟) 일본(倭)간의 문화적 관계와 영향을 설정하였고 사비시기의 백제문화가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를 다시 일본에 전달하여 아스카 문화를 형성하게 했다는 문화 전달 자설을 역설하였다. 이는 우리문화의 고유성을 부인하고 백제문화를 중국문화의 아류 또는 단순 전파자 역할로 왜곡 해석한 것으로 이러한 세키노의 관점은 일제강점기 내내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둘째, 1915년에 발족한 부여고적보존회는 부여고적에 대한 탈맥락적 해석을 통하여 고대 일본과 백제와의 관계를 동화론적 관점에서 재정립하였다. 특히 낙화암, 고란사, 청마산성 등에 대한 재해석을 통하여 일본과의 친연성을 강조함으로써 일제의 동화정책을 역사적 사실관계로 확정지으려고 하였다. 셋째, 부여지역의 고적관광은 부여고적보존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으며, 주된 관광대상과 코스는 고적의 재해석을 통해 재구성된 고적들이었다. 일제는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부여를 일본 고대문화의 원형 또는 본향으로 이념화된 공간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부여의 고적조사와 고적에 대한 재해석 그리고 고적관광은 서로 밀접한 관련하에서 추진되었고 그 추진 주체가 조선총독부와 친일 관변단체였다는 점에서 타자의 시선에 의해 '만들어지고' '보여진' 것이었으며 그것은 식민지 표상공간으로서 부여의 재발견이었다.

한반도 평화통일 기반구축을 위한 군비통제 추진방향 (Direction of Arms Control to Establish Foundation for Peaceful Reunification in Korean Peninsula)

  • 김재철
    • 융합보안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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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권6_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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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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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한반도에서 평화통일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비군사분야에 머물고 있는 남북교류협력 영역을 군사분야로 확대하여 군비통제를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남북 간에 군비통제가 추진되지 못한 이유는 (1)남북 간 신뢰구축의 한계, (2)군비통제 자체의 기능적 한계, (3)남북 간 제도 구조적 한계, (4)국내 외 환경적 한계 등 태생적 요인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군비통제를 추진하기 위해 남북 고위급회담 수준의 정치적 대화가 선행되어야 하며, 협상 및 추진과정에서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상황과 여건에 부합한 '신축적 상호주의'를 적용해야 한다. 둘째, 기존의 '선 신뢰구축, 후 군축' 원칙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절충적 방법으로 '신뢰구축 및 군축의 동시추진' 원칙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즉, 군비통제의 낮은 수준이라 할 수 있는 군사적 신뢰구축과 합리적 충분성에 입각한 제한된 군축을 병행하는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셋째, 국무총리실 직속으로 군비통제 전담기구를 설치하여 국가정책 전략 차원에서 군비통제 문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또한 남북 고위급회담이 성사되면 '남북 군비통제 공동추진위원회(가칭)'을 구성 운영할 필요가 있다. 넷째, 평화통일을 위한 군비통제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 형성과 유리한 국제적 환경조성을 위하여 보다 능동적인 외교역량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한미동맹과 한중협력관계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해 나갈 것인가를 더욱 고민해야 할 것이다.

중국식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Chinese Socialism and Nationalism)

  • 조봉래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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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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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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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 논문은 사회주의 중국에서의 민족주의의 형성에 대한 연구다. 중국은 발달한 문명을 바탕으로 한 문화적 우월감으로 인해 일찍부터 문화적 민족주의가 강하게 형성되어 있었고 이는 오랜 기간을 통해 '중화주의'로 굳어지게 된다. 그러나 아편전쟁 이후 서양의 침략으로 인해 위기감이 생겨났고 중국의 지식인들은 다방면의 변화를 통해 구망(救亡)의 길을 모색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서양의 '사회진화론'이 소개되고 받아들여진다. 이 사회 진화론의 수용은 결국 국가 간의 경쟁에서 밀린 중국이 제국주의의 침탈을 받는 것은 당연해지는 논리적 한계에 봉착하여 점차 변형되지만 중국 지식인들에게 문화적 중화주의에서 벗어나 서양의 근대적 국가민족주의 개념을 형성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중국공산당은 초기에 창당과정에서 부터 코민테른의 지도를 받았는데, 당시 제국주의 자본의 세계지배라는 조건 속에서 식민지국가에서의 민족해방투쟁이 세계 공산주의 운동에 있어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는 것을 강조되었고, 중국에서의 저항적인 민족주의성격을 띤 마르크스주의는 명분을 갖게 된다. 이후 중일전쟁 과정에서 반제반봉건투쟁을 통해 중국인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게 된 중국공산당에 의해 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되고 본격적인 사회주의 체제로서의 중국이 시작된다. 그러나 냉전이라는 국제적 여건 속에서 소련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중국 사회주의의 발전은 자국 인민의 결집된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중국 공산당의 지속적인 애국주의의 고양으로 이어진다. 특히 개혁개방 이후 새롭게 등장한 모순들로 인해 중국은 분열을 겪게 되었고 이를 통합하는 이데올로그로 자국의 문화적 자긍심을 바탕으로 한 중화주의가 또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최근 경제 강국으로서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진 중국에서는 전통문화의 우월성이 강조되면서 매우 강력한 중화주의가 대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