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Nature Int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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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에서의 동양성 개념의 출현과 변형 (Birth and Transformation of the Concept of "Oriental-ness" in Korean Art)

  • 정형민
    • 미술이론과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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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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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9-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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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Orientalness is a concept that expresses the collective identity of the Orient in relation to the West. The concept itself is mutable and defined by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regions at different points in time. Changes in the concept depend on a number of factors, such as cultural influence, the political balance of power between the two regions, and on the interpretative scheme that defines the relationship. In addition, the geographical notion of the concept evolves culturally, socially and politically. During this process, Oriental-ness becomes Oriental-ism at times. I will attempt to survey and measure the progression of Orientalness from its emergence in early 17th century to its subsequent transformation in modern Korea as reflected in art theory and art works. The recognition of the comparative characteristics of Oriental art began when the Orient was exposed to the art of the West in the late Ming dynasty during the early 17th century. The changes in the artistic climate in China affected the late Chosun. I will start with a brief introduction of this time and the birth of Orientalness. The concept gradually changed during the period of Enlightenment(開化期) towards the end of the 19th century, and during the colonial period( 1910-1945) it took on a new form. Establishment of the concept of "Orient"as a single, unifying concept spanning across cultures and national boundaries has been attributed to late Meiji period Japan, whose intention at that time is believed to have been to build a pan-Asia(亞細亞) empire with Japan at its commanding center. It has been stressed that the real motive behind the formation of one single cultural unit, where the shared common written language was Chinese and Confucianism and Taoism were the common metaphysical traditions, was to build one political unit. When the notion of a geographical unit of Asia was replaced by the concept of Asia as a cultural and political unit, a massive growth of interest and discourse were provoked around the concept of Orientalism. When Orientalism was being formulated, Korea automatically became member of "one Asia" when the country became colonized. For Koreans, the identity of the Orient had to be defined in cultural terms, as the political notion of a nation was non-existent at that time. The definition of identity was pursued at two levels, pan-Asian and local. If Orientalism was an elite discourse centered in pan-Asian philosophical and religious tradition, localized Orientalism was a popular discourse emphasizing locality as the byproduct of natural geographic condition. After the liberation in 1945 from colonial rule, a thrust of movement arose towards political nationalism. Two types of discourses on Orientalism, elite and popular, continued as central themes in art. Despite the effort to redefine the national identity by eradicating the cultural language of the colonial past, the past was enduring well into the present time. As discussed above, even when the painting themes were selected from Korean history, the tradition of using history painting as a manifestation of political policy to glorify the local identity had its founding during the Meiji period. The elevation of folk art to the level of high art also goes back to the colonial promotion of local color and local sentiment. Again, the succession of the past (colonial) ideal was defended as the tradition assumed a distinct modern shape that was abstract in style. The concept of the "Orient" is of relative and changing nature. It was formulated in relation to Western culture or civilization. Whatever the real motive of the adoption of them had been, the superiority of the Orient was emphasized at all times. The essence of the Orient was always perceived as the metaphysical tradition as a way to downgrade Western culture as materialistic. This view still prevails and the principle of Orient was always sought in Confucianism, Taoism, and Buddhism. Even when Orientalism was employed by imperialist Japan in an effort to establish her position as the center of the Orient, the spiritual source was still in Chinese philosophy and religion. In art also, the Chinese literati tradition became the major platform for elite discourse. Orientalism was also defined locally, and the so-called local color was pursued in terms of theme and style. Thus trend continued despite the effort to eradicate the remnants of colonial culture long after liberation. These efforts are now being supported politically and also institutionalized to become the aesthetic ideal of the modern Korean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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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기반서비스 산업 기업연구소 인정제도 도입을 위한 업종선정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Selection of Service Business for Introduction of R&D Center Accreditation System for Knowledge Based Service Firm)

  • 김석필;노민선
    • 기술혁신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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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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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24-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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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해온 우리나라의 산업은 개도국의 추격, 선진국의 견제 등으로 인한 기술경쟁의 심화 때문에 고용창출과 성장잠재력의 둔화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주요 선진국은 이미 고부가 지식기반서비스업 중심의 산업구조 변화를 통해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여 경제 성장을 지속하고 있으며, 우리 정부도 지식기반서비스 산업 선진화를 위한 관련 산업 육성, R&D 활성화 등 다양한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민간 부문의 R&D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서 지식기반서비스 산업에 대한 기업연구소 인정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연구소 인정을 위한 업종의 범위와 요건이 아직까지 제조업을 중심으로 설정되어 있어 지원 범위 및 요건에 대한 수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기존 기업연구소 인정제도는 지원 대상의 선정에 있어 기업의 '연구개발활동' 여부를 기준으로 제도를 운영해 왔으나, 서비스 분야는 연구개발활동과 영업활동과의 구분이 모호하여 연구개발활동 여부를 기준으로 할 경우 지원 대상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주요 서비스 업종을 선정하고 선정된 업종을 중심으로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현실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주요 업종 선정을 위한 기준 및 논리의 확보가 필요하다. 주요 업종의 선정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산업구조와 서비스업의 현황을 고려하여야 한다. 제조업 의존도가 높은 국내 산업 구조와 서비스업의 취약한 경쟁력을 감안했을 때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동반 성장 및 서비스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중요 기준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지식기반서비스 분야 기업연구소 인정제도 도입을 위한 업종의 범위 및 요건 설정 기준에 관한 연구를 수행한다. 범위의 설정을 위해 개별 서비스 업종에 대하여 생산유발계수 및 부가가치유발계수를 도출하여 경제적 파급효과를 분석하고, 업종별로 연구개발활동 및 자원투입역량을 분석함으로써 서비스산업을 유형화 하였다.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지식기반서비스 산업 기업연구소 인정을 위한 대상 업종 선정방안을 제시하였으며, 기업연구소 인정제도 도입을 위한 인적 물적 요건에 관한 개선 방안을 함께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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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 유중교의 가평 옥계구곡 위치추정 연구 (A Study on an Estimated Location of Seongjae Ryu, Junggyo's Okgye Gugok in GaPyeong-Gun)

  • 강기래;이해주;이현채;김희채;김동필;하성근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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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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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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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조선건국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던 성리학의 도입과 그 모태가 되었던 유학은 우리의 생활과 학문, 사상의 근원이 되었다. 또한 이들 학문의 주창자인 공자(孔子), 맹자(孟子), 자사(子思), 주자(朱子) 등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최고의 선이라 여기었다. 그들 중 자기 수행의 길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이는 주자이며, 이(理)와 기(氣)의 발현과 그 관찰을 통한 심성(心性)의 체득을 목표로 하였다. 그는 진리의 체득을 위한 수신의 장소와 도구로서 산과 물이 있는 자연을 택하였고, 이러한 존주자(尊朱子), 학주자(學朱子)의 신념이 조선유학자들의 기본적 사상과 실천 철학이 되었고, 위정척사파의 유중교도 옥계구곡을 명명하고 경영하였다. 이러한 사상적 바탕으로 조선후기 유학자인 유중교가 설정한 옥계구곡의 위치를 비정하기 위한 본 연구는 옥계구곡의 위치 비정을 위한 기본적인 텍스트인 성재 유중교의 "가릉군옥계산수기(嘉陵郡玉溪山水記)"를 기본으로 하여 그 장소 추정을 위한 기본자료를 수집하였다. 그리고 옥계구곡 현장을 10회 답사하여 그 위치를 추정하였으며, 검증을 위해 옥계구곡에서 태어나고 자란 원주민 3인에게각각 그 위치를 탐문 하여 추정하였다. 연구로 비정된 각 곡의 위치는 공간정보자료로서 좌표와 사진을 취득하였으며, 이러한 자료는 향후 옥계구곡의 스토리텔링이나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경우 기초적이고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의 성과는 옥계구곡의 곡(曲)을 지정하는데 기초적 자료가 되었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양재천의 이용특성을 고려한 환경친화적 관리방안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Nature-friendly Management Regarding the User Pattern of Yangjae Stream)

  • 김선희;홍석환;배중남
    • 한국환경생태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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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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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06-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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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경기도 과천시와 서울의 서초구, 강남구를 흐르는 양재천은 1995년부터 자연형 하천복원사업이 시작된 대표적인 도시하천이다. 연구대상지인 강남구 관내 구간은 하천과 접하여 대규모 주거단지가 조성되어 인근 주민들의 이용압이 높은 지역으로 본 연구는 하천복원에 의해 이용이 증가한 양재천의 이용현황 및 특성 등을 파악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친환경적인 관리방안을 제안하기 위하여 수행되었다. 이용자 설문조사에서 총 유효설문 303부를 회수하여 분석한 결과, 양재천은 근린주구의 주민들이 여유시간에 운동(51.8%)과 산책(24.4%)을 중심으로 한 이용이 많으며, 정기적으로 이용하는 비율아 높고, 혼자(30.4%) 내지는 가족중심(28.4%)의 이용이 일반적이었다. 시설물을 확충할 경우에는 그늘이 있는 쉼터(80.8%)가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시설물로 파악되었으나, 전반적으로 시설물의 추가도입은 필요 없는 것(78.8%)으로 분석되었다. 공원이용에 대해서는 종합적으로 만족(59.6%)하는 이용자가 많았으나, 안전문제(22.0%), 편의시설부족(17.6%), 그늘쉼터의 부족(16.6%) 등이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이상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보행자와 자전거, 인라인 스케이트 이용자가 함께 이용하고 있는 겸용노선에 사인표시와 이용매너 등을 홍보하고 기존 제방산책로는 녹음효과를 보완하여 보행전용화하며, 제방사면의 소단을 활용한 산책로의 신설을 통해 현재의 둔치산책로의 이용압력 분산을 유도하는 동선체계의 정비방안을 구상하였다. 하천 내부의 녹음공간 확보를 위한 녹음수 식재는 현재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수목식재기준에 의해 둔치 및 소단하부는 하천환경에 적합한 초본식물을 식재하며, 산책로 주변은 녹음제공이 가능한 습지성 자생 목본식물을 식 재하도록 하였다. 소단 내 수목식재에 있어서는 교목식재가 가능한 한 남측 사면은 20m 간격으로 교목 2열 교호식재를 하며, 소단상부는 각 구간별로 계절감을 연출할 수 있는 식물을 도입하는 방안을 제안하였다.

여가제약에 따른 한강시민공원 여가공간개발에 대한 인식연구 (A Study on Perception on Development about Han River Citizen Parks according to Leisure Constraints)

  • 김현지;이용학;강은지;김용근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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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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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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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 연구는 여가제약에 따른 한강시민공원의 여가공간개발 영향에 대한 이용자의 인식차이에 관한 연구로 한강시민공원 이용에 표출되는 여가제약을 파악하고, 한강시민공원의 이용행태 특성 및 여가공간개발에 따른 긍정적 부정적 영향에 대한 인식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여가제약에 따른 한강시민공원 이용자의 여가공간개발에 대한 인식차이를 비교분석 하기 위해 한강시민공원에서의 여가활동에 미치는 정보와 자원, 경제적 여유, 시간적 여유를 영향정도가 높은 집단과 낮은 집단으로 분류하여 심층분석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강시민공원은 산책 및 휴식을 비롯한 조깅 및 마라톤, 자전거 등 여가제약요인에 영향이 적은 근린이용의 성격을 지닌 간단한 운동을 위해 방문하는 공간이었다. 둘째, 한강시민공원의 여가공간개발에 따른 영향에 있어서 저렴한 여가활동 비용, 접근의 용이를 가장 높게 평가하고 있었으며, 이용자 증가로 인한 혼잡 및 운영 관리상 예산과 관리인원의 증가를 가장 많이 우려하고 있었다. 셋째, 한강시민공원에서의 여가제약은 시간적 여유, 경제적 여유, 정보와 자원의 순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었으며 여가제약의 영향정도에 따라 다양한 여가기회 및 여가수준의 향상, 한강에 대한 자부심 및 애착심 고취, 저렴한 여가활동 비용을 비롯하여 운영 관리상 예산과 관리인원의 증가, 이용자의 증가로 인한 혼잡에 있어 인식차이를 나타내고 있었다. 따라서 본 연구는 한강시민공원 이용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여가제약과 이에 따른 여가공간개발에 대한 인식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여가제약의 영향정도가 한강시민공원의 여가공간개발에의 이용행태 및 긍정적 부정적 개발영향의 지각에 차이가 있음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연구의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여가제약에 따른 여가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 한강시민공원의 여가공간에 대한 홍보 및 정보전달과 함께 여가공간 운영 및 관리체제 수반, 다채로운 맞춤형 프로그램 개발, 사익보단 공익이 우선적인 여가공간 및 시설의 도입 등의 필요성이 고찰되었다.

푸코와 바흐친을 통해 바라본 담론의 바깥 (A Study on the Outside of Discourse from the Views of Foucault and Bakhtin)

  • 조수경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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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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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7-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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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하버마스는 모든 억압과 왜곡으로부터 자유로운 담론 상황을 '이상적 담화 상황'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상적 담화 상황'이 언어를 의사소통의 매개체로 간주한다는 데서 본 논문의 의문은 시작된다. 푸코와 그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이 밝힌 담화(담론)가 가진 속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선택과 배제의 원리'다. 담론을 제한하거나 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권력이며, 권력에 의해 담론은 선택되거나 배제 당한다. 둘째, 담론은 자신들의 입장을 방어하고, 반대의 입장을 공격하는 병기로 작용한다. 셋째, 담론 내부의 드러나지 않는 심층구조에는 태도, 입장, 권력과의 관계, 이데올로기적인 위치가 숨겨져 있다. 이러한 담론의 속성에 주목한다면, 담론의 문제는 언어를 주목해서 보편성을 추출하는 것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이 지점에서 언어학의 바깥으로 눈을 돌린 바흐친과 푸코의 논의는 설득력을 가진다. 담론이 결코 투명할 수 없다는 푸코의 논의나 담론의 문제는 바깥으로 시선을 향하는 경우에 답이 열린다는 바흐친의 논의에서 '진실을 말하는 용기, 즉 파르헤지아적 용기'를 가진 인물로 소크라테스를 찾을 수 있다. 소크라테스적 대화에서 공통된 출발지점을 가진 푸코와 바흐친은 각각 '자기 배려', '다성적 대화'를 통한 담론 바깥에서의 해결점을 찾아낸다. 자기 배려는 고대의 지혜를 통해서 낯섦의 효과를 발생시키고 수치스럽지 않게 살 만한 자기를 생산하는 절차와 실천의 문제다. 푸코가 말하는 자기 배려의 윤리는 자기 내면으로 퇴각하는 개인 생활의 섬세한 연출이 아니며, 행복의 기술도 아니다. 자기 배려는 우리의 사유와 원칙, 담론과 행실 간의 일치, 조화, 정합성이 설정되는지를 지속적으로 경계하는 행위다. 바흐친은 다성적 대화의 과제를 수행한 인물로 도스도옙스키에 주목한다. 그의 작품은 수많은 별개의 관점이 대화를 시작하는 세계를 창조해내며, 그 안에서 타자들이 저자의 이데올로기와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다음 순서로, 다성적 목소리를 만들어 내는 파르헤지아적 작가로 '카프카'를 발견하고 그의 작품을 주목한다. 카프카는 그의 작품을 통해 '종결 불가능한 대화'를 창출했으며, 매 순간 새로운 조합을 이끌어내며 바깥을 향하는 파르헤지아적 용기를 가지고 있다. '소송'이라는 그의 작품이 출발점에서 시작해서 출발점으로 끝나는 '종말장 지양'의 방식을 갖고 전개된다는 점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에 이르기까지 그때마다 상응하는 강렬도를 산출'한다는 들뢰즈의 말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무형문화재 '원형규범'의 이행과 의미 고찰 (The Application of the Principle of "Preserving the Original Form" to Intangible Heritage and Its Meaning)

  • 이재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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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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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6-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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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1970년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제도가 도입되면서 '원형규범'이 채택되었다. 규범으로 채택되기 이전에도 '원형'은 문화재 보존의 방향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법규상 원형의 개념은 형태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구전 및 실연에 의해 전승되어온 무형문화재의 특성상 과거 어느 시점에 누구에 의해 실연되는 것을 원형의 형태로 확인하거나 특정할 수 없으므로, 지정 인정행위의 시점에서 현존인이 실연하는 기 예능을 중심으로 원형을 설정하고 보유자를 인정하였다. 따라서 근원적 실체로서 '원형' 이 아닌 지정 인정 당시의 보유 기 예능이 '잠정적 원형'으로 설정되면서 '원형보존' 정책이 시행되었다. 원형보존 정책은 '원형'을 보유한 보유자의 전수교육과 전승자 양성을 통하여 시행되었으며, 보유자(보유단체)를 중심으로 한 배타적인 전승환경이 조성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러한 원형보존 정책에도 불구하고 지정 당시의 기 예능은 사회적 환경과 수요에 맞게끔 변화가 진행되어 보존하고자 했던 형태적 의미의 '원형'은 보존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형규범은 근대화, 서구화 등 외부환경으로부터 우리 전통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사회적 실천의 지침 내지는 지향점을 지닌 시대적 담론이었으며, 무형문화재 보존정책의 당위적 지침으로 정책적 실효를 거두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2016년 3월 시행될 예정인 무형법은 무형문화재의 변화적 속성을 고려하여 '원형' 대신 '전형'을 도입하였다. '전형'은 무형문화재 주변부의 변화를 인정하여 원형의 경직성을 탈피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법규상 '전형'에 해당하는 고유한 가치, 지식, 기법이 문화재 보존의 지침 또는 원칙에 따라 유지되어야 하므로 전형은 원형과의 단절보다는 관련성과 연장선에서 볼 수도 있다.

수타사 삼신불괘불도(三身佛掛佛圖) 초본(草本) 연구 (A Study on the Sketch of Trikaya Banner Painting in the Suta-sa Temple)

  • 김창균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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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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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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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강원도 홍천군 수타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삼신불괘불도는 베 바탕이 아닌 종이 바탕인데다, 채색방법 또한 조선시대 불화의 가장 일반적인 진채화법(眞彩畵法)의 그림들과는 다르게 밑그림본인 초본(草本) 형식에 담채기법(淡彩技法)을 사용하고 있어 주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자체의 화기(畵記)라든가 "수타사사적(壽墮寺史蹟)" 또는 "수타사고기록(壽墮寺古記錄)"등 어느 곳에도 이 삼신불괘불도 조성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조성시기가 불명확하였을 뿐만 아니라, 진채화법의 그림이 아니라서 다른 괘불도들과의 본격적인 양식 비교 역시 원활하지 못하여 그동안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소개 정도에 그쳤었다. 그러나 최근 보존처리 시 그림 뒷면의 배접지를 제거하는 과정 중에 크기가 세로 118cm 가로 87.5cm인 별도의 한지에 써서 붙인 묵서명(墨書銘)이 발견되었다. 내용은 부처님 법을 올바르게 따르기 위하여 지켜야 할 몇 가지 금지 행위를 알리는 일종의 '방(榜)'으로서 1690년 4월 15일에 썼음이 밝혀졌다. 이 묵서명은 수타사 삼신불괘불도의 조성년대를 추정케 해주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자, 그림의 정확한 내용 분석 및 성격 파악 등 구체적인 접근을 위해서도 필요한 중요한 단서이다. 수타사 삼신불괘불도의 현상과 형식 및 양식적 특징을 고찰한 다음 이 묵서명을 바탕으로 괘불도의 조성시기를 추정해 본 결과 첫째, 수타사 삼신불괘불도는 화기 대신 뒷면에 첩부되었던 '방'으로 미루어 보아 1690년경을 즈음하여 조성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둘째, 조선시대 삼신불괘불도 중 공주 갑사 삼신불괘불도(1650년) 이후 가장 기본적인 도상을 보여 주는 최초의 입불형식(立佛形式) 삼신불괘불도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한 수타사 삼신불괘불도는 3불(佛)의 형태라든가 화면 구성력과 배경처리, 근엄한 듯 자애로운 얼굴표정 묘사, 조화롭고 적당한 신체 비례 등에 있어 유사한 형식의 18세기 삼신불괘불도는 물론, 19세기 삼신불괘불도에 이르기까지 진채화법 괘불도들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 수타사 삼신불괘불도는 비록 완성본이 아닌 밑그림(초본(草本)) 형태이기는 하지만 필선(筆線)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전형적인 담채기법을 보여주고 있어 필력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는데 자료적 가치 및 불교회화사적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비록 형식 및 표현기법 상 수타사 삼신불괘불도와 동일한 유형의 괘불도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아서 충분한 비교 고찰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조선시대 18-9세기 입불형식 삼신불괘불도 연구에 밑받침을 이루고 있다는데 연구의 의의를 두고자 한다.

19세기 강남(江南)에서 재해석된 사왕풍(四王風) 산수화의 유입 안건영(安健榮)의 <산수도> 6폭 병풍을 중심으로 (The Influx of Four Wangs' Landscape Style Reinterpreted in Jiangnan Circle(江南) in the 19th Century Focused on An Geon-yeong(安健榮)'s Six-fold Landscape Screen)

  • 최경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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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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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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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18세기 전반 북경에서 형성된 사왕산수화풍은 19세기에 한국과 일본으로 널리 전파되어 각국의 새로운 시대 화풍을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이러한 화풍은 청 문사들과 교유했던 신위나 김정희에 의해 본격적으로 전래되기 시작하였고, 그들의 영향을 직간접으로 받았던 신명연, 이한철, 유숙, 장승업, 안중식, 조석진 등이 사왕풍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한국 화단의 주요한 화풍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들이 그린 사왕풍 산수화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특징은 고원법으로 자연 경물을 가까이에서 포착하고, 화면의 오른쪽이나 왼쪽 하단부에 배치된 키가 큰 나무를 기점으로 계류(溪流)를 건너 주산이 펼쳐지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화원화가 안건영이 그린 <산수도> 6폭 병풍은 19세기 후반 유행했던 사왕풍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경물포착이나 필법 및 색채감각 등에서 이들과는 차별화된 면모를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안건영의 현전 작품들은 대개 소품인데 이 병풍은 6폭의 산수화로 꾸며진 대작에 해당된다. 특히 산수의 여러 경관을 윤묵(潤墨)의 가는 필선으로 섬세하게 묘사하여 고요하면서도 차분한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라든지 일부 화폭에서 조감법(鳥瞰法)으로 경물을 포착하여 거시적인 시점을 보여주는 것, 연운(煙雲)을 통해 화면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것 등에서 새로운 면모를 읽을 수 있다. 이러한 화풍은 19세기 전반 강남(江南) 화단에서 사왕풍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중국의 실제 명산을 돌아다니며 익힌 사생(寫生)을 절충하며 산수의 기운이나 생명력을 전달하려고 했던 왕학호, 탕이분, 대희 등의 화풍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안건영의 <산수도> 6폭 병풍은 19세기에 북경 화단과는 차별화된 양상을 나타냈던 강남 화단의 사왕산수화풍이 전래 수용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보기 드문 사례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구곡원림(九曲園林)에서 찾는 신선경(神仙境)의 경관 스토리보드 - 괴산 갈은구곡(葛隱九曲)을 대상으로 - (Storyboard of Immortal Land in Gugok-Wonlim - A Special Reference to Goisan -)

  • 노재현;박주성;심우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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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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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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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국내 구곡 중 선유동구곡과 함께 신선 사상적 색채가 가장 농후한 충북 괴산 갈은구곡을 중심으로 제명에 깃든 상징성과 구곡시에 나타난 경관적 특징을 선도적 관점에서 풀이하였다. 아울러 구곡문화경관의 이해와 홍보에 부합되도록 갈은구곡의 서사구조를 정리하고 주축(主軸) 이야기의 전달을 위한 경관스토리보드를 제시하였다. 갈은구곡 각 곡의 명칭이나 주변의 각자 그리고 인근 선유동구곡의 경물들과 상호 비교를 통한 갈은구곡 장소와 경관의 의미를 분석 해석한 결과, 신선과 관련된 경물과 고사에는 선계 동경과 불로장생의 염원이 깃들어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신과 인간 그리고 자연이 하나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선인합일(仙人合一)의 상징적 표현으로 보인다. 특히 이곳에는 식물류의 불변성과 동물류의 신령성 그리고 그 배경을 구성하는 자연물의 항상성(恒常性)을 바탕으로 한 장수길상(長壽吉祥)의 의식이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 또한 특징적으로 시각적 종점(visual terminal)에 설정된 9곡 선국암은 바둑이 신선의 도락(道樂)임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으며, 이는 바둑9품계의 위계를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갈은구곡은 풍류나 도학의 성취수단으로서 보다는 신선사상과 관련된 선도적 발상과 신선 관련 모티프 즉 장생과 불사, 신령성, 신선놀음 등의 결속구조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때, 갈은구곡에는 선계지향 및 장생불사와 은일의 정취가 매우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준거한 공간 이야기구조는 '신선의 세계로 들어섬(기(起))'-'신선의 세계가 펼쳐짐(승(承))'-'신선과 함께 함(전(轉))'-'신선이 됨(결(結))'으로 전개 해석되었다. 최종적으로 표층구조에서 읽혀지는 갈은구곡의 경관이미지는 계류의 환경지원성을 바탕으로 이곳에 깃든 수경관의 선경적 아름다움과 구곡동천의 선취(仙趣)적 공간미를 속성으로 하고 있으며, 심층구조로는 바둑 9품계의 '입신(入神)공간'으로 수직 상승하는 서사구조로 정리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강선(降仙)-선경(仙境)-선약(仙藥)-선학(仙鶴)-선유(仙遊)-은선(隱仙)의 6개의 장면(cut)을 주제로 한 갈은구곡의 경관스토리보드를 제시하였다. 선도적 신선사상을 대변하는 장생불사의 신선은 현대 조경의 주요 경관연출 모티프가 될 것이 자명하다. 자연의 불변성과 신령성 그리고 이와 같은 특성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주변 산수경관의 항상성이야말로 한국적 조경설계에서 담아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