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Museum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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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만분광분석을 통한 출토 청동유물의 부식층 연구 (Raman Spectroscopic Study on Corrosion Layers of Archaeological Bronzes)

  • 김범준;정광용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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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8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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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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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출토 청동유물은 매장 상태에서 구성 성분, 제작기법, 매장 환경 등에 의해 형태 및 화학적으로 특성을 가지는 부식층이 형성된다. 안정한 상태의 부식층은 유물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유물의 정보를 담고 있으며, 이를 통한 부식층의 특성과 메커니즘 이해는 보존처리 시 중요한 자료가 된다. 화합물의 화학적 정보를 구별하고 분석이 가능한 분석 방법 중에 라만분광분석법은 원소분석이 주로 이루어졌던 미세영역에 대해서 화합물의 화학적 정보 및 구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분석방법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출토 청동용기에 대해서 라만분광분석을 실시하여 출토 청동유물의 부식층의 특성을 확인하고 SEM-EDS 분석을 병행하여 종합적인 고찰을 하고자 하였다. 분석 결과 출토 청동유물의 외부 부식층에서는 구리 화합물인 malachite와 부식 환경에 기인한 albite, quartz, microcline 등과 같은 토양 및 점토 광물이 혼재되어 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매장 상태에서 부식이 진행되었음을 보여 줄 수 있다. 내부 부식층에서는 cuprite가 확인되며 일부 라만스펙트럼에서 나타나는 차이는 산화주석과 같은 혼재되어 있는 화합물에 의한 간섭으로 추정된다. 또한 내부 부식층에 존재하는 납 편석은 PbO, $PbSO_4$, $PbCO_3$ 형태로 존재하거나 cuprite로 대체되는 것을 확인하였다. 조사 샘플의 수가 적고 매장 토양에 대한 정보의 부족으로 일반적인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이러한 결과들을 통해서 청동유물에서 나타나는 부식과정과 오랜 시간 부식된 청동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특성들을 명확히 규명할 수 있다면 진위판별에 적용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다양한 출토 유물에 대한 분석과 부식 환경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추가적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울진 불영사(佛影寺) 대웅보전(大雄寶殿)의 특징(特徵)과 건축술(建築術) (Daeungbojeon Hall of Bulyeongsa Temple, Uljin and the Architectural Technique of the Features)

  • 오세덕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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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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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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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울진 불영사 대웅보전의 특징과 승장의 건축술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본고는 1725년 제작된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는 불영사 대웅보전에 관한 종합적 고찰 성격이 강하다. 기존 연구에서 건축과 불교미술사로 나누어져 각각 연구되던 분야를 각 분야에 맞는 대상물과 비교 검토를 통해 하나의 관점으로 재정리하여 고증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확인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불영사 대웅보전은, 건물에 남아있는 벽화와 경상도 일원 벽화의 비교를 통해 대략적으로 건물이 창건되는 1725년을 전후한 시점에 제작된 것으로 편년해 보았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벽화의 제작시기를 1725년 대웅보전의 창건이후에서 1735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하고, 1735년과 1739년 후불도와 삼장보살도가 완성되어 내부 장엄까지 완비된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대웅보전 기단은 국내의 유일무이한 귀부가 하단에 감입된 기법이 적용된 사례이다. 이러한 기단의 형태는 세부기법을 고려해 볼 때 통일신라시대 가구식기단의 전통적인 방법에서 다소 간략화된 고려시대 가구식기단의 초기적인 형태로 추정되며 하부 귀부 역시 세부기법을 통해 볼 때 기단과 동일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마지막으로 경상도 일원에서 제작된 불전과 불영사 대웅보전의 건축술 비교를 통해 건물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특히 불영사 대웅보전을 제작한 동일한 도편수가 만든 1714년 통도사 영산전과의 직접적 양식비교를 통해 고식의 기단을 사용하고 있는 점, 공포의 제공 외단과 내단을 동일하게 처리하고 있는 세부기법, 그리고 귀포 내부에서 나타나고 있는 주간포 내단과의 유사성, 대보 상부에 초각이 가미된 포대공과 화반, 귀한대의 승천하는 용의 표현, 보아지의 용두 표현 등이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어 이러한 기법이 승장 조헌의 독자적인 건축술로 추정하였다.

해외 천문학 교육 프로그램 개발: 캄보디아 (DEVELOPMENT OF FOREIGN ASTRONOMY EDUCATION PROGRAMS : CAMBODIA)

  • 김상철;여아란;박창범;이정애;이강환;신용철;신나은;신지혜;최윤호;권순길;김태우;윤호섭;박순창;성언창;박수종
    • 천문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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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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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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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The Korean Astronomical Society (KAS) Education & Public Outreach Committee has provided education services for children and school teachers in Cambodia over the past three years from 2016 to 2018. In the first year, 2016, one KAS member visited Pusat to teach astronomy to about 50 children, and in the following two years of 2017 and 2018, three and six KAS members, respectively, executed education workshops for ~ 20 (per each year) local school teachers in Sisophon. It turned out that it is desirable to include both teaching of astronomical knowledge and making experiments and observations in the education in order for the program to be more effective. Language barrier was the main obstacle in conveying concepts and knowledge, and having a good interpreter was very important. It happens that some languages, such as the Khmer of Cambodia, do not have astronomical terminologies, so that lecturers and even the education participants together are needed to communicate and create appropriate words. Handout hard-copies of the education materials (presentation files, lecture/experiment summaries, terminologies, etc.) are extremely helpful for the participants. Actual performing of assembling and using astronomical telescopes for night sky observations has been lifetime experience for some of the participants, which might promote zeal for knowledge and education. It is hoped that these education services for developing countries like Cambodia can be regularly continued in the future, and further extended to other countries such as Laos and Myanmar.

즉흥과 환상: 보베 제작소의 《그로테스크》 태피스트리 (Improvisation and Fantasy: Beauvais Grotesque Tapestry)

  • 정은진
    • 미술사와시각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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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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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6-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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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논문은 수수께끼처럼 여겨진 보베 제작소의 ${\ll}$그로테스크${\gg}$ 태피스트리의 주제와 의미를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 연구의 대상은 게티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판에게 봉헌함>, <악사와 무희>, <낙타>로 이를 그로테스크(grotesque) 장식, 시누아즈리(Chinoiserie) 모티브, 그리고 배경이 되는 세노그라피(scenography)로나누어 분석했다. <판에게 봉헌함>은 라파엘로의 ${\ll}$신들의 승리${\gg}$의 영향이 나타나지만 아라베스크와 공존하는 선적인 특징이 강조된 베렝의 <그로테스크>의 디자인을 따른 점에서 특징적이다. 또 <악사와 무희>의 경우 중국풍의 자기, 직물, 그리고 태피스트리 가장자리에 위치한 중국인이 주목된다. 특히 황색 피부로 묘사된 중국인은 당시 유럽인이 바라본 중국에 대한 시선을 드러낸다. 18세기 중국풍의 유행은 책보다 무대예술을 통해 유행하게 되는데, 배우 브리겔라가 등장하는 <낙타>는 이 태피스트리가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무대임을 분명하게 한다.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특징은 대본이 없는 '즉흥성'과 음악과 춤과 같은 장르의 혼합에 있다. 따라서 ${\ll}$그로테스크${\gg}$ 태피스트리는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무대를 태피스트리라는 평면에 옮긴 것이다. 아울러 원근법적 소실점을 탈피한 수평적인 무대장식은 섭정기라는 시대상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그로테스크, 시누아즈리, 세노그라피는 모두 현실과 분리된 '환상'이다. 따라서 ${\ll}$그로테스크${\gg}$ 태피스트리는 마치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대본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특별한 내러티브적인 주제나 내용이 존재하지 않는 무대 위의 즉흥과 환상을 재현한 것이다.

6·25전쟁 전사자 유품의 과학적 보존: 지상작전사령부 소장 지역유품 중심으로 (Scientific Preservation of the Relics left by the Fallen Heroes of the Korean War: Focusing on the Local Relics Kept by the Ground Operations Command)

  • 박민선;오승준;이호연;위광철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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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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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4-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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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국방부 유해발굴단을 통해 발굴된 지역 유품 중 지상작전 사령부 전시관에 소장된 7건(정화제병, 독수리문양 단추, 계급장, 반합, M1 Grand-총기손질도구, 카빈완탄, 탄통)의 6·25 전사자 유품에 대하여 과학적 분석 및 보존처리를 진행하였다. FT-IR 분석 결과 정화제병 내부 잔존물이 Trisodium phosphate와 유사 스펙트럼으로 확인되어 전쟁 시 식수 및 식품 정화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었으며, 3차원 디지털 촬영기법을 통해 육안으로 관찰이 어려운 탄통의 각인된 명문을 확인하였다. 또한 현미경 및 육안 관찰 등을 기초로 한 상태조사를 진행하여 각각의 유품에 대한 보존처리 방향성을 수립하고 안정적인 처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향후 다양한 전쟁 유품에 대한 보존처리 방향성 정립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옻칠 증산(增産) 사업의 전개와 영향 (Development and Effects of the Project to Increase Lacquer Producti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 강연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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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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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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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일제강점기 옻칠은 나전칠기와 같은 고급 공예품 외에 산업, 건축, 군수물자의 외부 도료 등 다방면으로 활용되는 중요한 전략물자였다. 특히 전시 체제에 돌입하는 1940년대 이후 군수물자에 사용되는 옻칠 수요가 급증하면서 유통을 제한하는 전표제까지 시행하였다. 한편 일본에서는 옻칠 수요의 급증에 따라 고질적인 물량 부족을 겪고 있었고, 대안으로 19세기 후반 이후 중국산 옻칠을 수입하였다. 1910년대 이후에는 중국산 옻칠의 시장 점유율이 90%에 이르러 중국 현지 상황에 따라 일본 내 옻칠 수급이 영향을 받자 일제는 조선에서 옻칠 생산을 늘려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조선에서의 옻칠 증산 사업은 1910~1920년대에 각종 시험을 통해 객관적 지표가 마련되었고, 이를 기준으로 1930년대 본격적으로 사업에 착수하였다. 전국 각지에 옻나무를 식재하고 개량 채취법 강습회를 개최하였다. 일제는 조선인들에게 경제적 수익을 들어 옻칠 생산업을 장래 유망한 농가의 부업으로 홍보하였다. 각 도에서 수립한 옻칠 증산 사업은 효과를 거두었으며, 현재 국내 주요 옻칠 생산지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일제강점기 한반도 남부에서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한 곳은 강원도 원주, 충청북도 옥천, 경상남도 함양으로 현재의 생산지와 일치하였다. 일제가 조선인 농가를 대상으로 교육한 개량 채취법은 현재 한국 옻칠 채취의 주된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본 논문은 일제강점기 각종 기록을 통해 옻칠 증산 사업의 현황을 파악하여 근대 옻칠 공예사 연구의 공백을 메우고자 시도하였다.

프랑스 대혁명기 기념물보존 행정조직의 탄생과정 고찰 (A Study on the Establishment of an Administrative Organization for Monument Conservation during the French Revolution)

  • 조용훈;김영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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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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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4-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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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2023년 문화재청은 60년간 이어져 온 '문화재' 체제를 '국가유산' 체제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문화유산 개념발전의 역사맥락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느꼈다. 국내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문화유산과 관련한 개념들은 국외에서 수입한 것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원산지에서의 개념발전 역사를 알아야 한다. 이에 본고에서는 문화유산 개념의 원산지로 주류를 이루는 유럽을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유럽 내에서도 프랑스를 선택하였다. 프랑스는 18세기 말 공화국을 설립한 이래로 일찍이 유럽의 기념물 개념에서 국민의 유산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었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프랑스의 역사 중 프랑스 대혁명기를 대상으로 삼았다. 프랑스 대혁명기 구체제가 붕괴되고 보호체계를 잃어버린 기념물들이 어떻게 다시 새로운 국민국가의 보호 테두리 안으로 들어갔는지가 본 연구의 탐구대상이다. 프랑스 정부는 기념물들의 보존을 위한 행정조직으로 기념물위원회 및 예술임시위원회를 탄생시켰다. 두 조직은 혁명과 전시상황 속에서 이념과 정치선전에 구속되었기 때문에 기념물 보존활동에 한계를 보였다. 하지만 그런 시대 분위기 속에서도 지침서를 통하여 보존원칙을 수립하였고 기념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전국에 배포한 지침서 중 기념물들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국민의 유산이라는 시각을 보였다는 것은 선구적이다. 이것은 이후 프랑스의 문화유산 개념발전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주었다. 이 흐름 속에서 기념물, 역사기념물, 문화재, 문화유산으로 프랑스의 문화유산 개념은 발전해나간다. 프랑스 혁명기의 역사는 구체제의 붕괴로 인한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이전 체제의 기념물들을 새로운 보호체계 속에 집어넣었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 이는 분단국가로서 가치관의 혼란위험이 잠재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문화유산 분야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청주 사뇌사 유물 퇴장(退藏) 시기에 대한 검토 (A Review of the Time Cheongju Sanesa Buddhist Temple Relics Were Hoarded)

  • 윤용혁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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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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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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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30년 전인 1993년에 발견된 청주 사뇌사 유물은 유물의 양이 방대하고, 고려 청동 기물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것인데, 특히 제작 시기에 대한 여러 정보를 담고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물의 퇴장 시기에 대해서는 13세기 중반, 13세기 말, 14세기 초 등 여러 견해가 엇갈린 상태에서 견해가 정리되어 있지 않다. 본고는 논란이 많은 청주 사뇌사 유물의 퇴장 시기를 원(元) 카단(哈丹)의 고려 침입이 진행중이었던 1291년 4월의 일로 추정하였다. 카단 군은 고려에 침입하여 1291년 1월에 양평과 원주, 4월 충주를 거쳤으며, 5월 1일 연기현에 출현하였다. 본고에서는 충주에서 연기현(세종시)에 이르는 중도에 이들이 청주를 거치게 되었다는 점을 기록을 통하여 확인하였고, 이것이 바로 사뇌사의 폐사 또는 유물의 퇴장 배경이 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사뇌사 유물의 퇴장 시점을 카단 침입이 진행중이던 1291년으로 설정하게 되면,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무오년, 경신년, 기유년 등 간지(干支)가 적힌 유물의 연대를 합리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된다. 즉 기유년 금고(金鼓) 1249년, 무오년 향로 1258년, 경신년 향완 1260년 등이 그것이다.

한반도 비무장지대 문화유산의 실태조사 현황과 성과 고찰 (A Study on the Status and Performance of Cultural Heritage in the Demilitarized Zone on the Korean Peninsula)

  • 황보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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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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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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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한반도 비무장지대 실태조사는 2020년 5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실시되었고, 그에 대한 결과물이 『한반도 비무장지대 2020-2021 실태조사 보고서』로 간행되었다. 이번 실태조사는 고고분야를 비롯하여 건축·동물·식물·지질·경관 등 문화·자연유산 전문가 5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모두 18차에 걸쳐 진행되었다. 이중에서 실태조사를 통해 확인된 문화유산은 모두 33개소로 경기도에 20개소, 강원도에 13개소이고, 종류별로 관방유적 8개소, 분묘 6개소, 유물산포지 15개소, 기타 4개소이다. 비무장지대 문화유산에 대한 실태조사는 이전에 이루어졌던 군사보호구역에 대한 지표조사 및 도라산 유적, 군부대 부지 등의 시·발굴조사와 연계되는 매우 의미있는 학술조사라 할 수 있다. 이번 조사를 통해 처음 발견된 유적이 적지 않고, 기존에 조사된 유적도 그 위치나 구조, 수습 유물이 다르게 확인되어 정밀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특히 철원도성과 성산성의 현황을 재확인함과 동시에 파주 조산리와 철원 강서리 등의 유물산포지에서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이 수습되었으며, 횡산리사지도 비무장지대의 불교유적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러나 파주지역의 일부 묘역과 유물산포지의 경우 경작과 개발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현실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철원도성과 성산성, 조랑진보루, 강서리보루도 군부대 시설이 조성되는 과정에서 유구가 훼손되어 긴급조사가 필요한 상태이다. 또한 장단 및 군내면과 강산리 유적 일대의 경작지와 구릉지대는 소규모 개발과정에서 매장유산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번 문화유산 실태조사의 결과를 바탕으로 관계 당국과 기관들이 보다 긴밀하게 협조하여 비무장지대 문화유산을 특별관리 및 중장기적으로 조사하는 방안을 수립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의방류취(醫方類聚)"에 대한 판본(版本) 연구 (A study on the xylographica of ${\ulcorner}$Classified Collection of Medical Prescriptions${\lrcorner}$)

  • 신순식;최환수
    • 한국한의학연구원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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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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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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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7
  • ${\ulcorner}$Classified Collection of Medical Prescriptions${\lrcorner}$(1445) is a book compiled the medical achievements of China and Choseon in those times and it's our source of pride to have it In this country. It also deserves careful investigation since this book can provide some clues of features of missing books in China and Korea. The extent of accuracy of xylographica of old books determines the possiblity of in depth further study. So authors attempted to investigate the xylographica of ${\ulcorner}$Classified Collection of Medical Prescriptions${\lrcorner}$ one of the 3 main books in Korea. Previous investigation done by Miki Sakae and Kim Doo Jong are noticeable. On the basis of their respective works, we analyzed 'Annals of the Choseon Dynasty' to find records related with ${\ulcorner}$Classified Collection of Medical Prescriptions${\lrcorner}$ and estimated the situation of its publication. We tried figure the situation of those times of China, Japan and Korea(including North Korea) and tried to estimate the book's original xylographica as much as we could. By King Sejong's command, the first draft of ${\ulcorner}$Classified Collection of Medical Prescriptions${\lrcorner}$ consisted of 365 books was made by collaboration of civil officials and medical officers during the period from 1443 to 1445. And then from 1451(first year of Moonjong's reign) to 1464(l0th year of Sejo's reign) lots of manpowers were employed and through the process of countless erasure, proofreading, arrangement and rearrangement revised version of ${\ulcorner}$Classified Collection of Medical Prescriptions${\lrcorner}$ which is called by Sejo text was completed. After 3 years of wood engraving work, the first printed form of ${\ulcorner}$Classified Collection of Medical Prescriptions${\lrcorner}$ (alternately called Seongjong text) in folding case consisted of 266 chapters, 264 volumes came into the world in 1477.(8th year of Seongjong's reign). This was 32 years after the initial completion of the edition. So ${\ulcorner}$Classified Collection of Medical Prescriptions${\lrcorner}$ exists in three forms as Sejong text, Sejo text and Seongjong text respectively. Since those texts were plunder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none of the original copy remains within korea. The texts were constantly moved to kadeungcheongieong, to Kongdeungpyeongio, Jesookoan of Edo, to East University of department of classic books, to Cheoncho archives, to the Imperial Museum and finally is kept in the royal palace at present. (Doseoryo text Eulhae printing type) Reduced-size republication books of ${\ulcorner}$Classified Collection of Medical Prescriptions${\lrcorner}$ in wooden type were imported at the time of 'Byeongja Korea-Japan Treaty in 1876' and of those 2 books, one copy was treasured in the Royal Household of the Yi Dynasty and than was lost during the Korean War circa 1950. The other remaining copy has been kept succesively by Kojong's imperial grant, Royal doctor Hong Cheol Bo, Hong Taek Joo, Hong Ik Pyo the book agent, and now is kept In Yonsei University Library and this is the only existing copy in Korea at present. In 1965, Dongyang Medical college published the transcription version of ${\ulcorner}$Classified Collection of Medical Prescriptions${\lrcorner}$ consisting of 11 books and then in 1981 after edition and arrangement by Choonghoa(中華) publishing company, photoprint copy of ${\ulcorner}$Classified Collection of Medical Prescriptions${\lrcorner}$ was published in Keumgang(金剛) publishing company In 1991, October Yeokang(驛江) publishing company producd photocopies of ${\ulcorner}$Classified Collection of Medical Prescriptions${\lrcorner}$ which were previously translated into Korean by North Korea Institute of Oriental Medicine and then issued by medical publishing company. In China, two institutes, Zhejiang Institute of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and Huzhou Traditional Chinese Medical Hospital cooperated to publish a revised and marked text consiting of 11 books by adding marking points to japanse Edohakhoondang text which were used as a reference. Both the korean and chinese texts issued were grounded by the ${\ulcorner}$Classified Collection of Medical Prescriptions${\lrcorner}$ kept in the royal palace. Any further study concerning ${\ulcorner}$Classified Collection of Medical Prescriptions${\lrcorner}$ can acquire its accuracy and objectivity when the japanese text kept in the royal palace is taken as an original co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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