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Moral Va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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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에게서 개별선, 공동선, 최고선의 관계와 형이상학적 근거 (The Relation of Particular Good, Common Good and the Highest Good and its Metaphysical Foundation according to Thomas Aquinas)

  • 이상섭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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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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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9-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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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개별선과 공동선은 서로 대립적인 관계 또는 우월관계에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해 토마스 해석자들 사이에 대립적인 의견이 존재한다. 어떤 학자들은 토마스의 텍스트들이 개별선에 대한 공동선의 우위를 가리킨다고 주장하고, 다른 학자들은 반대로 개별선의 우위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면밀히 검토하면 토마스는 개별선과 공동선의 대립이 아니라 양자의 통일을 주장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토마스의 윤리학 및 정치철학은 개인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지만, 토마스에게서 개인은 단순한 개별자가 아니라 종적인 본성에서 일치하는, 개별화된 본성을 가진 개별화된 보편자이다. 한편 토마스에게서 선은 존재자의 완전성을 의미하며, 존재자의 가능성이 전체로서 완성되었을 때에만 그 존재자는 단적인 의미에서 선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만일 개인이 개인으로서의 완성만을 추구한다면 부분적 선만을 추구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단적인 의미에서의 인간의 선은 공동체를 통해서 실현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토마스에 따르면 공동체의 목적은 구성원들이 덕에 따르는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덕이 그것을 가진 인간과 인간의 행위를 선하게 만드는 것인 한 공동체는 구성원 각각의 완성을 추구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개별선은 공동선을 통해서, 다시 공동선은 개별선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상호간의 일치가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공동선을 통해서 실현되는 개별선이 올바른 목적지향을 갖지 않는 한 여전히 불완전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단적인 의미에서의 인간의 선은 최고선과의 정당한 질서관계 속에 놓여 있는 공동선과 개별선의 통일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

묵가의 의리관(義利觀)과 겸애(兼愛) (Mohist's Idea of YiLi and Jianai)

  • 이태승;윤무학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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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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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7-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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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이 글은 묵가의 의리관과 그것을 기초로 한 "겸애"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묵가의 이념적 특성을 고찰한 것이다. 공자와 묵자를 비롯한 제자 백가에서 의리관이 주요 의제가 되기 이전에도 이미 이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며, 그것은 대체로 "의"와 "리"를 본말(本末) 혹은 체용(體用) 관계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경향을 계승하고 개인의 도덕적 표준으로 설정한 것이 공자를 비롯한 유가의 입장이었다. 물론 유가의 눈높이는 당시의 위정자 혹은 지도자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에 비해 묵가에서는 자기 집단의 구성원의 입장을 대변하여 개인보다는 집단과 사회의 공동의 이익 추구를 도모하였다. 따라서 유가에서 "의"를 "리"보다 중시한 데 비해, 묵가는 양자를 통일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묵가가 전국시대에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하늘의 뜻"에 그것의 형이상학적 기반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에 수반하여 내부적으로 묵가의 의리관은 "겸애"를 비롯한 묵가의 핵심적인 주장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것이 이른바 "겸상애, 교상리", 말하자면 "서로 사랑하는 것이 곧 서로 이롭게 해주는 일이다." 한편 묵가의 의리관, 나아가 겸애를 비롯한 십대 주장의 이념적 기반이 "하늘의 뜻"이었다는 것은 양날의 검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시 묵가 구성을 비롯한 노동자, 농민, 수공업자들의 눈높이에는 쉽게 수용될 수 있었지만, 진한(秦漢) 봉건제국이 성립되면서부터는 오히려 쇠망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봉건제국에서는 개별집단으로의 묵가의 이념과 활동은 용납되기 어려웠다. 예컨대 "최고 통치자" 위에 "하늘"(상제)을 설정하는 방식은 정권의 정당성과 합리성에 결정적 제약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묵가의 "절용", "절장", "비악" 등의 주장은 기득권으로서는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따라서 이후 청대 서세동점(西勢東漸)에 이르기까지 묵가는 유가와 달리 학파로서의 활동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요컨대 역사적으로 묵가의 겸애를 비롯한 이념은 유토피아적 구상에 그치고 말았지만, 유가와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상호간의 사랑과 배려, 아울러 상호 이익을 공유한다는 이념은 오늘날에도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다.

『논어(論語)』 「학이(學而)」 1장의 해석학적(解釋學的) 연구(硏究) (A interpretive Study of the Analects of Confucius's Chapter I-1)

  • 서근식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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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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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9-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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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논어(論語)"의 핵심사상이라고 하면 보통 '인(仁)'을 떠올린다. 그러나, "논어(論語)"의 첫 구절인 "학이(學而)" 1장에는 '인(仁)'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렇다면, "논어(論語)"의 편집자는 왜 "학이(學而)" 1장을 "논어(論語)"의 첫머리에 놓은 것일까? 본 논문은 "논어(論語)" "학이(學而)" 1장에 공자(孔子)의 핵심사상이 함축되어 있음을 서술하였다. "학이(學而)" 1장은 '기쁨(說)' 즐거움(樂)' '군자(君子)'라는 단어가 중심이 된다. '설(說)'은 자신을 수양(修養)하는 단계 혹은 '올바른 관계맺음'을 위한 자격을 갖추는 단계이고, '락(樂)'은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동지(同志)들과 관계를 맺는 단계이다. '군자(君子)'는 천하(天下)의 모든 사람과 '올바른 관계맺음'하는 단계로 공자(孔子)가 제시한 이상적(李想的) 인간상(人間像)을 뜻한다. "학이(學而)" 1장의 핵심인 '설(說)' '락(樂)' '군자(君子)'는 "논어(論語)"의 핵심사상인 '인(仁)' '서(恕)' '수기치인(修己治人)'과 연결된다. '인(仁)' '서(恕)'가 '올바른 관계맺음'을 의미한다면, '설(說)'은 '올바른 관계맺음'을 위한 자격을 갖추는 단계이고 '락(樂)'은 동지(同志)와의 '관계맺음'을 하는 단계이고 '군자(君子)'는 천하(天下) 모든 사람과 '올바른 관계맺음'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수기치인(修己治人)'에 대해 공자(孔子)는 수기이경(修己以敬)(경(敬)으로 자신을 수양(修養)함)${\rightarrow}$수기이안인(修己以安人)(자신을 수양(修養)하여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줌)${\rightarrow}$수기이안백성(修己以安百姓)(자신을 수양(修養)하여 천하(天下) 모든 백성을 편안하게 만들어줌)의 3단계를 제시하는데, 이는 "학이(學而)" 1장의 '설(說)'${\rightarrow}$'락(樂)'${\rightarrow}$'군자(君子)'와 연결된다. 공자(孔子)가 "학이(學而)" 1장을 통해 제시한 '군자(君子)'라는 인간상(人間像)은 '수양(修養)'으로 깨우친 도덕성을 '관계맺음'을 통해 '실천(實踐)'으로 옮기는 인간이다.

소림일다(小林一茶)의 ≪시경≫ 배구화(俳句化) 양상 고찰 (Kobayashi Issa's ≪Shi jing≫ Hiku-ka and that meaning)

  • 유정란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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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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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9-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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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이 글은 소림일다(小林一茶)(고바야시 잇사, 1763-1827, 이하 '잇사'라고 칭함)의 ${\ll}$시경${\gg}$ 배구(俳句)(이하 '하이쿠'라고 칭함)화(化) 양상을 살피고 그 의미를 도출한 것이다. 잇사는 1803년 ${\ll}$시경${\gg}$을 공부하고, 이를 하이쿠로 재창작하여 ${\ll}$향화구첩(享和句帖)${\gg}$을 작성했다. 현재까지 이에 대한 국내의 연구는 없으며, 일본과 중국에서 잇사의 ${\ll}$시경${\gg}$ 수용 양상을 다룬 바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주로 국풍(國風)에 한정되었으며 연구자들 사이에 용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등 다양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작품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번역이라는 관점을 지양하고 배구화(俳句化)라고 명명하였다. 나아가 두 장르간의 심층적인 교류와 영향 관계를 문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하여 ${\ll}$시경${\gg}$ 배구화(俳句化) 양상을 주제의식의 재현, 시어와 이미지의 변용, 의경 전화와 제목 차용의 층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주제의식의 재현에서는 주로 고향이나 부모를 그리워하는 작품이 선별되어 배구화(俳句化) 되었다. 이때 단순한 주제 차용의 수준이 아니라 핵심 의미를 도출, 주석을 고려하여 해석하거나 잇사 개인의 원작 이해가 많이 개입되었음을 살폈다. 시어와 이미지의 변용에서는 해당 원천들의 의미를 절취하거나 조합하여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한 작품이 두드러졌다. 의경 전화에서는 일본적 정경으로 그 분위기를 바꾸는 작품이 있었는가하면, 제목 차용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작품도 존재했다. 배구화(俳句化)의 의식 지향은 ${\ll}$시경${\gg}$의 감정이나 격앙된 어조, 비난 등을 의도적으로 탈락시키고 이치를 배척하거나 시교(詩敎)의 관점을 탈피한 것, 도덕적 이상을 담아내지 않는 작품에서 찾을 수 있었다. 잇사는 ${\ll}$시경${\gg}$을 하이쿠로 옮겨 올 때 매우 많은 부분에서 하이쿠적인 감상과 습관을 자각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잇사가 ${\ll}$시경${\gg}$을 배구화(俳句化)한 것의 의미는 우리의 ${\ll}$시경${\gg}$ 수용과 대조해볼 때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조선에서는 ${\ll}$시경${\gg}$을 언해하였지만 의역이 아닌 직역을 하였기 때문에 ${\ll}$시경${\gg}$ 원문의 글자가 유지되었다. 일본의 경우도 훈독체로 ${\ll}$시경${\gg}$을 수용하였기 때문에 원 글자가 바뀌지는 않았다. 그러나 잇사는 ${\ll}$시경${\gg}$의 출발점인 민요의 성격을 드러내기 위하여 일본의 민족어 시가 형태로 그 내용을 옮겼다.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ll}$시경${\gg}$ 수용 방식을 벗어나 잇사는 민족어 시가로 ${\ll}$시경${\gg}$에 대응한 것이다. 따라서 잇사의 ${\ll}$시경${\gg}$ 배구화(俳句化)의 의미를 본래 ${\ll}$시경${\gg}$의 출발점인 노래 그 자체로 인식하여 받아들인 태도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보았다.

대순진리회에서 신정론 문제 (The Problem of Theodicy in Daesoon Jinrihoe)

  • 차선근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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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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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7-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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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이 글은 기존의 신정론 유형들을 활용하여 대순진리회의 신정론을 기술한 것이다. 대순진리회의 세계관 내에서 신정론은 다음과 같이 기술될 수 있다: "대순진리회 세계관에서 악과 고통의 문제는 상극의 문제로 대치되어 기술된다. 대순진리회의 신정론은 선천, 그리고 천지공사 이후부터 개벽 직전까지 후천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만 논의할 문제이다. 후천에는 상극이 없기에 고통이 존재하지 않고, 신정론도 논할 필요가 없다. 선천과 과도기의 신정론은 각각 다르게 조명되어야 한다. 우주는 최고신이 전체적인 법칙을 주관하고, 실제 세부 운영은 하부 신명들이 담당하는 시스템으로 되어있었다. 우주의 운행에 있어서 만물은 상극과 상생이라고 하는 법칙을 갖도록 만들어졌다. 상생은 서로가 서로를 돕는 것, 상극은 서로가 서로를 극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통이 존재하는 이유는 상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천은 상극이 지배하는 시기였다. 그 이유는 성장과 발전이라는 가치를 구현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상극은 결코 악의적인 의도에서 마련되어진 것은 아니었다. 즉 상극은 본래 나쁘고 잘못된 것이라는 도덕적 가치를 지니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상극의 지배가 오래 지속되자 상극으로 인해 발생한 원한이 풀리지 못하고 누적되어갔고, 우주의 법칙을 운용하던 명부의 신명들도 종종 착오와 실수를 일으키곤 했다. 이것이 점점 심화되자 세상은 엄청난 재앙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상의 상황을 '이원적 상극 신정론'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신명들로부터 우주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음을 보고받은 최고신은 우주의 실정을 살펴본 뒤 증산이라는 한 인간으로 강세하였다. 그가 천지공사를 시행하면서 개벽은 예정되었고 그에 따라 과도기가 시작되면서 신정론도 다르게 묘사된다. 그것은 개벽 때 대심판을 받는다는 사실, 그로써 신명·인간을 포함한 모든 악한 존재들은 소멸하고 지상에 천국이 열린다는 사실, 개벽이 도래하기 전까지 각자가 해원을 시도한다는 사실을 주 내용으로 한다. 이것을 '말세론적 해원 신정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 대순진리회의 신정론은 이상 2개의 신정론을 핵심으로 삼으면서, 상황에 따라 영혼 성장 신정론, 자유의지 신정론, 배상 신정론, 내세적 신정론, 카르마 신정론, 참여 신정론, 교류 신정론 등을 중첩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유학과 대순사상의 생명론 비교 고찰 (A Comparative Study of the Theories of Life Posited by Confucianism and Daesoon Thought)

  • 안유경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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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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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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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본 논문은 유학과 대순사상의 생명론을 비교 고찰함으로써 생명과 생명 윤리에 대한 여러 논의들이 제기되는 이 시대에 생명의 의미를 새롭게 규명해보려는 것이다. 유학과 대순사상은 모두 천지의 생명원리, 즉 생명의지(生意)와 신명에 근거하여 만물의 생성을 설명한다. 이 때문에 천지 속의 만물은 동일한 생명원리를 얻어서 생겨난 것이므로, 동일한 내재적 가치를 지닌 존재이다. 여기에서 만물이 하나의 생명체라는 동체(同體)의식이 성립하니, 이러한 동체의식은 만물이 모두 하나(전체의 일부)라는 유기체적 세계관을 형성한다. 이로써 천지 속의 만물은 모두 상호 유기적인 관계 속에 존재하니, 나와 남이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함께 해야 할 소중한 삶의 동반자가 된다. 그럼에도 유학과 대순사상은 모두 만물과 달리 인간을 빼어난 존재로 규정한다. 인간의 우수성은 그대로 주체적 노력을 통하여 끊임없이 성찰·반성하여 자신을 완성시키고 만물을 완성시킴으로써 공존·공생의 대도(大道)를 이루게 한다. 이 과정에서 자기의 본성을 실현하고 올바른 인간상을 확립하는 수양과 수도의 공부가 제시된다. 이러한 수양과 수도를 통해 본성 또는 인간상을 실현함으로써 천지화육 또는 천지공사에 주체적으로 참여함에 따라 사람으로서의 책임과 사명을 다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천·지·인 삼재(三才)사상의 내용이다. 결국 유학과 대순사상의 생명론은 만물이 모두 하나라는 동체의식에 근거하면서도 만물과 구분되는 인간의 특징과 역할을 강조하며, 이때 인간의 특징과 역할은 그대로 만물을 이끼고 보살피는 책임과 사명으로 드러난다. 이렇게 볼 때, 유학과 대순사상의 생명론은 그 이론구조가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브레멘 학교논쟁'(1905)의 기독교교육 갈등요인에 관한 영향사 연구 (A Study on Conflict-factors and Influence of the Bremen Controversy of 1905)

  • 안정도
    • 기독교교육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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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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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7-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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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연구 목적 : 본 연구는 1905년 브레멘에서 일어난 교사들의 학교에서의 종교수업 폐지 운동에 관한 역사적 사건 문헌 연구다. 한국 기독교학회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은 독일 종교교육사의 한 사건을 조망하면서, 이 사건 안에 얽혀있는 통시적·공시적 영향력을 확인하고자 한다. 연구 내용 및 방법 : 1905년 독일 브레멘을 중심으로 일어난 학교 종교수업에 대한 논쟁은 학교종교교육 역사에서 중립적 종교수업으로의 개혁을 공식적으로 요구한 최초의 사건이다. 그 배경에는 19세기 시민 사회의 성장, 과학과 학문의 발전, 사회민주주의 정치적 발달, 루터교회와 개혁교회의 갈등과 같은 다양한 촉발 요인이 존재한다. 이 논쟁의 공식 결과물인 '브레멘 문서'에서 교사들은 종교가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속한다는 논리로 학교와 교회, 종교와 교육이 분리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그리고 가치중립적인 도덕교육을 지향하며 객관적 '성서 역사 수업'을 제안한다. 1905년 브레멘 학교논쟁은 이후 1948년 브레멘 주 헌법, 1949년 독일 기본법의 종교교육 관련 법 조문에 영향을 미쳤다. 기본법 제 141조는 '브레멘 조항'이라고 불리며, 브레멘 종교수업에 교회가 관여할 수 없는 법적 근거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브레멘 문서'에서 요구된 성서 역사 수업은 오늘날 브레멘 종교교육 과정의 특징인 '성서역사수업'(BGU)의 모태가 된다. 결론 및 제언 : 1905년 브레멘 학교논쟁은 학교에서의 종교 중립적인 수업에 대한 최초 논의이다. '브레멘 학교 논쟁'의 배경, 내용, 영향을 살펴보면 오늘날 한국 기독교 학교교육의 논의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기독교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문화속의 인간심성과 문화를 넘어선 인간심성 - 동과 서의 보다 나은 만남을 위하여 - (Human Mind Within and Beyond the Culture - Toward a Better Encounter between East and West -)

  • 李符永
    • 심성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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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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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7-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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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현대 임상정신의학이 그동안 잊어버렸거나 소홀히 해온 문화와 심성의 관계를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살펴보았다. 1. 문화 :01) 문화정신의학의 공적과 한계 및 그 해결책 ; 2) C.G. 융의 비 서구문화의 경험 ; 3) 융의 분석심리학적 입장에서 본 문화 ; 4) 문화스펙트럼 모델 2. 심성 :01) 원시시대 및 고대의 심(心) 신(身)관 ; 2) 동양적 심성론 ; 3) 자기Self와 동양사상 문화정신의학은 정신건강문제의 문화적 요인을 규명함으로써 정신의학에 큰 기여를 해왔으나 문화적 차이에만 관심을 집중한 나머지 인류보편의 공통된 심성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었고, 인간의 건강한 심성을 등한시하고 문화의 역사적 측면을 간과하였으며 문화 상호간의 역동적 상호관계의 무의식적 심층적 측면을 보지 못했다. C.G. 융의 여행을 통한 이異 문화 체험 양식과 C.G. 융의 분석심리학설은 이 점에서 문화정신의학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인류학자들의 문화에 대한 다양한 개념 속에는 집단적 의식collective consciousness뿐 아니라 집단적 무의식에 뿌리박은 내용이 발견된다. 저자는 이를 효孝를 예로 설명했다. 저자는 또한 문화 스펙트럼cultural spectrum이라는 설명모형을 제창하였는데 한국인의 경우 샤머니즘, 불교, 도교, 유고, 기독교 문화가 한 개체의 인격을 여러 가지 스펙트럼으로 구성됨을 제시하였다. 주로 네 가지 유형을 분류하였는데 그것은 1) 주로 불교문화가 우세한 사람, 2) 주로 유교문화가 우세한 사람, 3) 주로 샤머니즘문화가 우세한 사람, 4) 주로 기독교문화가 우세한 사람이다. 비록 의식표면은 하나의 종교문화가 우세하지만 내면에는 다른 종교문화가 섞이게 되며 가장 심층에 샤머니즘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고 보았다. 문화와 정신건강의 관계를 이해하고 치유의 접근을 할 때 이러한 스펙트럼 시각이 필요하다. 저자는 인간심성에 대한 고대중국의 개념과 동양종교의 관념, 그리고 C.G. 융의 자기개념에 대한 이해를 소개하고 이에 비길 수 있는 전체정신의 중심에 관한 한국의 선사, 원효의 생각, 대승기승론의 일심(一心), 노자의 도(道), 이퇴계의 천명도(天命圖), 이기설(理氣說)을 융의 분석심리학적 입장에서 해석하였다. 궁극적으로 정신요법의 목적은 분석심리학적 입장에서는 '하나가 되는 것' 이며 '하나'가 됨은 문화에 제약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문화를 포함하나 이를 넘어선 인간 심성 전체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별업 하거원(何去園) 원림에 투영된 조영사상 연구 (A Study on the Landscape Philosophy of Hageohwon Garden)

  • 신상섭;김현욱;강현민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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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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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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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유회당 권이진이 대전 무수동에 경영한 별업 하거원 원림의 조영사상을 추적한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1) 하거원에 투영된 작정자의 사상적 배경은 '신종추원(愼終追遠)'의 효제사상, 가학의 전통과 도덕적 합리주의에 근거한 무실사상, 청한지연(淸閒之燕)의 유학적 은일사상과 신선풍의 도가적 풍류사상을 들 수 있다. 즉, 이러한 사상적 가치관을 하거원이라고 하는 목적공간에 대입시켜, 상징원(象徵園), 의원(意園), 축경원(縮景園) 등과 같은 별업 원림을 구축하였다. 2) 하거원의 공간구성체계는 위계성을 고려한 3단계 영역으로 대별되는데, 제 1영역은 유회당에서 도경에 이르는 지역으로 거주를 겸한 전이공간, 제 2영역은 수만헌 뜰을 중심으로 요천대와 장우담 그리고 화계, 선묘의 시묘소 등이 펼쳐지는 기념비적(별업) 추모공간, 제 3영역은 하거원의 좌청룡 지맥 그리고 북에서 남쪽을 향하여 계류가 관류하는 동쪽 외원에 속한 은일공간이다. 3) 상징적으로 제 1영역은 유회당-고수대-오덕대로 이어지는 유교적 공간, 그리고 죽천당-도경에 이르는 선경의 세계를 의미적 경관으로 중첩시켜 상징화하였다. 제 2영역은 수만헌과 요천대 그리고 장우담 영역인데, '신종추원(愼終追遠)'의 상징적 가치, 부모에 대한 추모와 그리움 등이 투영되고 있다. 제 3영역은 하거원의 동쪽 외원(배경대 - 운와 - 몽정 - 가산), 그리고 북에서 남으로 물길이 관류하는 계원(溪園) 권역은 동계(東溪) - 활수담 - 수미폭포로 구성되는데, (1) 몽정은 학문을 통해 어리석음을 깨닫는 격물치지의 삶을, (2) 활수담은 명리를 추구하지 않는 초월적 삶의 자세를, 그리고 (3) 장우담은 신선세계로 향하는 선경의 관문을 상징화하고 있다. 4) 하거원 별업의 사유방식은 유교와 도학의 두 알고리즘이 반복적으로 중첩되어 드러난다는 점인데, 공간전개의 서장에 해당하는 납오지와 활수담은 도덕적 합리주의에 바탕을 둔 수심양성의 장을 상징화 하였다. 그리고 하거원의 동쪽 외원에 속하는 몽정 권역은 수신과 학문탐구 등 유교적 가치체계를 주제로 하고 있다면 장우담, 수미폭포, 운와 등은 신선경의 세계를 의미경관으로 대입시킨 척번(滌煩)의 풍류라 할 수 있다. 5) 가산이라고 하는 축경기법을 별업 하거원에 대입시켜 무산12봉과 같은 선경세계를 구축코자 하였는데, 옛 시문에 표현된 상징적 의미를 차용하여 '하방(1), 화봉(2, 3), 출군(4, 5, 6), 신완(7), 취규(8, 9, 10), 처묘(11), 기융(12)'이라 명명했다. 가산을 읊었던 대표적 옛 시인은 왕의, 노삼강, 두보, 한유, 전희성, 범석호 등을 들 수 있는데, 시공을 초월하여 글로서 인연을 맺고 그들이 추구했던 신선경의 세계와 풍류문화를 하거원이라고 하는 별업에 담아 정신세계의 풍요를 구가코자 하였다.

곡성 동악산 청류구곡(淸流九曲)의 형태 및 의미론적 특성 (Characteristic on the Layout and Semantic Interpretation of Chungryu-Gugok, Dongaksan Mountain, Gokseong)

  • 노재현;신상섭;허준;이정한;한상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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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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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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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동악산 청류구곡 일원은 아름다운 계류를 따라 와폭(臥瀑)과 담(潭), 소(沼), 대(臺) 등의 암반경관과 성리문화의 전형으로 향유되어온 구곡문화가 실증적으로 대입된 사례로, 1872년 곡성현 지방도에서 "삼남제일암반계류 청류동(三南第一巖盤溪流 淸流洞)"으로 명기된 바와 같이 풍치가 탁월한 승경처임을 보여준다. 경물(景物)과 경구(警句)가 육로와 수로에 쌍으로 설정되어 차별성을 갖는 청류구곡은 일제강점기인 1916년 이전, 정순태와 조병순의 주도로 설정된 것으로 판단되지만 성리학자들은 물론 불교지도자, 독립운동가 등 선현들의 장구처 등이 다수 발견되는 것으로 볼 때 오래전부터 명인(名人)들의 산수탐방과 은일처로 활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도림사계곡의 기반암 암상에 구성된 청류구곡은 산지형 하천으로 총 길이 약 1.2km, 평균 곡거리 149m로 국내 여타 구곡에 비해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남지역에서 유일하게 확증된 동악산 3개 구곡의 바위글씨는 총 165건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은 바위글씨의 집결지로 판단된다. 특히 112개소로 집계된 청류구곡 바위글씨의 내용 분석결과, '수신(修身)'의 의미가 49점(43.8%)으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인명' 21건(18.8%), '경물' 16건(14.2%), 장구처 등 장구지소' 12건(10.6%) 등이었고 '시구(詩句)'가 차지하는 비율은 6건(3.6%)으로 나타났다. 육로상의 제1곡 쇄연문과 수로상의 제9곡 제시인간별유천(除是人間別有天)은 박세화(朴世和)가 충북 제천에 설정한 용하구곡(用夏九曲)의 제1곡 홍단연쇄(虹斷烟鎖) 및 제9곡 제시인간별유천과 일치하는 것으로 동일한 시원(始原)을 갖는 구곡명으로 유추된다. 또한 육로상 제6곡 대은병(大隱屛)은 주자 무이구곡의 제7곡과 일치하는 것으로 구곡원림의 거점으로 인식되며, 7곡과 8곡 사이의 '암서재(巖棲齋)'와 '포경재(抱經齋)' 바위글씨와 석축 흔적 등은 무이구곡 은병봉 아래 무이정사와 비견되는 것으로, 기호사림의 청류동 활동거점으로 파악된다. 선사어제(鮮史御帝), 보가효우(保家孝友, 고종), 사무사(思無邪, 명나라 의종), 백세청풍(百世淸風, 주자), 청류수석 동악풍경(흥선 대원군) 등 명인들의 명구들이 망라된 동악산 구곡은 높은 유가미학적 가치를 표출함은 물론 의미론적 상징문화경관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청류구곡은 수심양성을 위한 유가적 가치체계와 불교 및 도교적 관념 등이 공존하는 유불선(儒彿仙) 3교 문화경관의 결집체로 특성이 부각된다. 청류구곡은 최익현(崔益鉉), 전우(田愚), 기우만(奇宇萬), 송병선(宋秉璿), 황현(黃玹) 등으로 대변되는 조선 후기 사림계층이 성리학의 도통의식을 계승하고 '위정척사'와 '존왕양이(尊王攘夷)', '항일의지 고취' 등의 수단으로 설정되고 활용하는 과정에서 배태(胚胎)된 항일 역사문화 항쟁의 거점으로서 장소성과 의미론적 특성에 충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