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Korean Pa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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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경복궁 궐내각사의 건축공간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Architectural Space of Gwolnaegaksa at Gyeongbokgung in the Early Joseon Dynasty)

  • 이정국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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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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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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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understand the architectural space of Gwolnaegaksa (闕內各司), the Government office in the palace, in the early Joseon Dynasty. The Royal palace can be divided into three parts, political space for king, living space for king and his family and government office. So first, we should to understand the characteristics of each space in the Royal Palace. Up to now we have looked at the architectural space of Gwolnaegaksa in Gyeongbokgung (景福宮), one of the Royal Palace, the result of this study is as followings. There were not many Gwolnaegaksas in the early days in Gyeongbokgung. After King Sejong, some office buildings were established in that palace. King's closest guards, like as Seonjeonkwan (宣傳官), Gyumsabok (兼司僕), Naegeumwi (內禁衛) had been on duty in Sajeongjeon Haengrang (思政殿 行廊), a kind of servants' quarters. Bincheong (賓廳), a conference room of high-ranking government officials was situated in Geungjeon Haengrang (勤政殿 行廊). There were also barracks of other palace guards in Geungjeon Haengrang. Gyeongyeoncheong (經筵廳), a place to prepare and wait, was built separately from Geungjeon Haengrang Layout drawings of Gyeongbokgung painted since the 18th century were different from document in some parts. The arrangement of the Gwolnaegaksa was assumed like as the Fig. 9.

경복궁 인수형(鱗獸形) 서수상(瑞獸像)의 제작시기와 별간역(別看役) 연구 (A Study on the Special Technician Byeolganyeok(別看役) and the Statues of Auspicious Animals(Seosusang, 瑞獸像) : the Scale-covered animal form(鱗獸形) in Gyeongbokgung Palace(景福宮))

  • 김민규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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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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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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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경복궁(景福宮)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전소(全燒)된 뒤 폐허로 남아 있다가 고종2년인 1865년 재건이 시작된다. 이때 경복궁 재건에 대한 의궤(儀軌)는 만들어지지 않고 기초 자료인 "경복궁영건일기(景福宮營建日記)"에 1865년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 간의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내용들을 정리하면 경복궁 재건에 사용된 석재들은 강화(江華), 동대문 밖의 영풍정(映楓亭), 삼청동(三淸洞) 등지에서 채취하기도 했으며, 경복궁 터에 남아 있던 간의대(簡儀臺) 등의 옛 석물을 재사용(再使用)하기도 했다. 또 경희궁(慶熙宮)에 있던 여러 건물 및 석조물을 이전(移轉)하기도 했다. 이러한 결과로 경복궁에는 재건기 19세기 뿐만 아니라 17~18세기의 석조물이 공존하고 있다. "경복궁영건일기"에는 경회루(慶會樓) 연못에서 출토된 청동용(靑銅龍)이 별간역(別看役) 김재수(金在洙)가 1865년 궁궐의 화재를 막아달라는 의미를 담아 제작했다는 내용이 있다. 김재수 등 별간역들은 석물의 설계 및 감동(監董)을 했던 인물들로 광화문 해치상을 조각했다고 전해지던 이세옥(李世玉) 역시 화원(畵員) 출신의 별간역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이들의 설계를 바탕으로 실제 조각을 담당한 석장(石匠)들도 찾을 수 있었는데 근정전(勤政殿)은 장성복(張聖福), 광화문(光化門)은 김진명(金振明)이 참여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들을 바탕으로 경복궁의 서수상(瑞獸像) 중 비늘이 있는 인수형(鱗獸形) 서수상의 양식 특징을 찾은 결과 돌출된 입과 큰 코, 형식적인 귀, 등 갈기 등을 꼽을 수 있었다. 이러한 양식 특징을 조선시대 능묘(陵墓) 석물들과 비교한 결과 이 작품들은 고종 재건시인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양식 계승은 별간역, 석장들이 능묘의 석조물을 제작하면서 얻은 결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종 연간에 조성된 궁궐 후원 다용도 공지(空地)의 활용양상 (A Study on the Status of Multi-functional Vacant Ground at the Palace Rear Garden during the Era of King Kojong)

  • 정우진;권오만;심우경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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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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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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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본 연구는 조선시대 궁궐 후원에 위치한 다용도 공지의 조영역사를 구명하고, 이와 내적 맥락을 같이 하는 고종 연간의 다용도 공지를 고찰한 것으로서, 중건 경복궁 및 경운궁 임어기에 후원 공지를 조성한 배경과 그 이용에 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궁궐 내의 다용도 공지는 조선의 정치무대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적 공간이자, 국가운영의 기반시설이 되었다. 조선이 성립된 후로 창덕궁에서 왕실의 행사를 거행하는 공지로는 광연루(廣延樓)와 해온정 사이의 공터, 열무정(閱武亭) 일대, 서총대와 춘당대(春塘臺)가 조사되었으며, 여기서 활쏘기, 과거시험, 군사훈련과 다양한 연회가 이루어졌다. 고종 즉위 후에는 중건 경복궁에 경무대(京武臺)가 조성되었고, 경운궁에 환어한 고종 34년 뒤에는 경희궁이 영외 후원처럼 사용되었다. 두 공간의 특징으로, 신무문(神武門) 밖 후원의 경무대는 창덕궁의 공간구성이 이입된 특성이 있으며, 경희궁의 경우 원활한 공간 연계를 위해 운교(雲橋)가 설치되었다. 특히 고종 시대 후원 다용도 공지는 과거시험이나 시사(試射)와 같은 이전에도 있었던 국가적 행사장의 의미를 넘어서 제국주의 열강의 조선 침탈이 가속화 되는 시점에서 일국의 자주독립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고, 국왕의 위엄과 권위를 보여주는 장소로 기능하였다. 또한 다용도 공지가 대규모 인원을 동원한 관병식(觀兵式) 등의 군사조련장으로 주로 활용된 사실은 시대성을 반영한 결과로 간주된다.

창경궁 후원 이용의 역사적 고찰 (Historical Studies on the Uses of the Rear Garden at Changkyung Palace)

  • 정우진;심우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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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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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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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의 목적은 창경궁 복원을 위한 후원의 물리적 형태와 인문학적 경관에 대한 고찰에 있다. 이 연구에서는 동궐도,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연구대상지에 관련된 도상자료와 문헌자료들의 종합적인 분석을 실시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이곳 후원에서 행하여졌던 행위의 실재와 구체적 장소 간의 연결을 시도하여 창경궁 후원에 내재된 고유의 특질과 정체성을 조명하고자 하였다. 창경궁 후원은 왕실의 휴식과 왕과 계비의 사생활을 위한 금원으로서의 공간뿐만 아니라, 국가의 다양한 행사를 수용하는 공적인 공간이었다. 최초 조영 당시에는 친경과 친잠을 위해 조성되었고, 이후 왕실의 정치적 행위인 과거시험과 활쏘기 경기(시사(試射)), 군사훈련, 친경(親耕), 신하인견의 행위들이 이곳에서 이루어 졌다. 창경궁 후원에서는 춘당대, 관풍각, 관덕정이 특정행위의 거점이 되며, 이들 영역 내에서는 기능, 용도, 형태, 구조, 식재, 수요소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밝힐 수 있었다.

근대적 궐내 외교관 의례의 성립과 1899~1902년 경운궁 휴게소의 건립 (Constructing Foreign Reception Hall and Modern Royal Diplomatic Protocol in the Gyungungung Palace during 1899-1902)

  • 장필구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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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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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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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Foreign Reception Hall in Gyeongungung Palace was constructed during 1899-1902 according to Yesigjangjeong (禮式章程), Korean Empire's modern diplomatic protocol. This bulilding is a case worthy of notice, because its construction process was written in Jubon(奏本), Korean Empire's official document. Yesigjangjeong(禮式章程) regulates the process of diplomat's audience with Emperor Gojong. The process suggested that Foreign Reception Hall was designed as the place of the end as well as the beginning for audience. According to the process, diplomat came through main gate, Daehanmun and outer gate of main hall(Junghwajeon Hall, Audience Hall), then arrived at the stair to Foreign Reception Hall. After waiting time in the hall, he was going to be granted an audience with Emperor. And he exited through Foreign Reception Hall as the reverse way. This hall was constructed as western-style. Subcontracted carpenters and wood sculptors and laborers from China represents that chinese workers were prevailed in the government construction at that time. And modern building materials, such as glass, colored brick, sanitary wares and lightings were applied, which showed the new landscape in the middle of Gyeongungung Palace. Above all, official documents related with this hall reveals Korean Empire supervised this construction for diplomatic protocol. That is the identity of western-style buildings in Gyeongungung Palace.

<온천행궁도(溫泉行宮圖)>(1795)의 온양행궁지 추정 및 온양행궁 변천 고찰 (A Study on the Transitions and Site of temporary palace(Onyanghaenggung) according to the <Oncheonhaenggungdo>(1795))

  • 이정수;김일환;이경미;지원구;최재성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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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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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4-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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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온양행궁(溫陽行宮)은 <온궁영괴대(溫宮靈槐臺)>, 『온궁사실(溫宮事實)』<온천행궁도(溫泉行宮圖)>, 『영괴대기(靈槐臺記))』 등 문헌기록과 영괴대(靈槐臺)와 신정비(神井碑) 등 온행 유적 등을 통해 왕의 온행을 확인가능한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현재 온양행궁지로 추정되는 곳은 온양관광호텔이 입지하고 있어, 온양행궁 복원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그 정체성마저 위협받고 있다.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 훼손 이전 『온궁사실』<온천행궁도>(1795)에 나타나는 온양행궁의 위치를 추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첫째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온행관련 기록을 고찰하고, 둘째 조선시대 온양행궁의 건축물 변화 및 일제강점기 훼손과정 등을 정리한 후, 셋째 <온천행궁도> 및 읍지, 고지도 그리고 지적원도 등을 현재 온양관광호텔 및 주변 지역 변화와 비교분석하여 온양행궁의 위치를 추정하였다. 이상의 연구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온양군읍지」 및 「호서읍지」의 1,758척을 주척(周尺)으로 환산하면, 온양행궁의 범위는 지적원도(1914년)의 대(垈)로 표현된 부지 내측 둘레와 근접하고 있다. 둘째, 지적원도의 온양관 남측 잡(雜)으로부터 온천천으로 나가는 물길, <온천분포견취도(溫泉分布見取圖)>(1925, 1928)의 온천공, 그리고 <온천행궁도>의 내동문(內東門), 비각(碑閣), 신정(神井), 답도 등의 관계를 종합하면, 헤르만 산더(Hermann Gustav Theodor Sander, 1906) 및 한국저작권위원회 온양온천 사진의 건축물을 『온궁사실』<온천행궁도>의 온천(溫泉) 즉, 탕실(湯室)로 추정할 수 있다. 셋째, 경남철도회사가 온양행궁지 유원화(遊園化) 과정에서 관유재산인 영괴대 부지의 양도 및 이전(1927)을 요청하나 충청남도는 국유 영괴대기념비 및 영괴대를 괴수(회나무)를 함께 현 위치에 영구보존(1928) 하도록 한 기록과 <조선경남철도연선명소교통도회(朝鮮京南鐵道沿線名所交通図絵)>(1929)를 참고하면, 영괴대비각(靈槐臺碑閣)은 현 위치로 판단되며 신정비는 신정관(神井館) 전면으로 이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의 온양행궁 둘레범위, 『온궁사실』<온천행궁도>의 온천(溫泉) 즉, 탕실(湯室) 및 영괴대 위치 등을 기초로, 일제강점기 및 근대기 필지변화, 그리고 최근 주변 유구 등의 자료를 종합하면, <온천행궁도> 온양행궁지의 범위 및 주요 건축물 위치는 현재의 시민로 및 온양온천시장까지 확대하여 추정할 수 있다.

우리 나라 사적지 환경해설 현황과 방문객들의 인식에 관한 연구

  • 김인호;안동만
    • 한국환경교육학회지:환경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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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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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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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7
  • The environmental interpretation in historic sites will be considered as an important management strategy for improving the understanding of users of natural and cultural resources which surround them.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survey on the status and visitor's awareness of environmental interpretation in historic sites. This study was carried out through the review of literature, the questionnaire to 487 visitors who visited 14 historic sites including palace, royal tomb, and others(Kyongbok Palace, Changdok Palace, Changgyong Palace, Toksu Palace, Unhyon Palace, Donggunung, Soonung, Honinung, Sonjongnung, Yongnung, Chongmyo shrine, Sajik Park, Suwon Castle, Namhan Mountain Castle) at October 26th, 27th in 1996, the field survey of 14 historic sites, and the interview. The results derived from this study were as follows; First, the environmental interpretation of the historic sites that were carried out this research were mainly the signs, interpretive publications, but Changdok Palace(the Secret Garden)have been only implemented the environmental interpretation by guide. Generally, the techniques of environmental interpretation in historic sites were not various, and environmental interpretation for visitor were not implemented effectively. Second, from the questionnaire analysis, visitors who visited 14 historic sites were not concerned with signs being used as typical environmental interpretation media in historic sites, but they were satisfied with the accessibility and location of signs relatively. Also they were more satisfied with the number, graphic, and color of signs than the others. Third, according to the results of satisfaction analysis through re-grouping question item about signs, visitors were the most satisfied with the accessibility of signs, but were not the most satisfied with the design of signs. There were significantly different to the satisfaction about the design and management of signs and comprehensive satisfaction of signs by age group. This results suggested that new environmental interpretation media should be planned and designed in consideration of desire and need by age group. Fourth, it was studied that visitors had not experience of various environmental interpretation. and most visitors agreed to the necessity of introducing diverse environmental interpretation and improving environmental interpre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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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중건 시 창의궁 함일재의 흥복전 이건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Relocation of Heungbok-jeon formerly known as the Hamil-jae of Changui-gung Palace in the Reconstruction of Gyeongbok-gung Palace)

  • 홍석주;김버들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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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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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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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This study explains details on Heungbokjeon during the reconstruction of Gyeongbokgung Palace in the 19th century for the first time in 273 years. Hence, the construction of a palace with more than 7,000 Kan(間) made possible in a short stretch of time. Given the fact that its existing architecture was recycled. The antecedent of Heungbokjeon(興福殿) was the Hamiljae(咸一齋) of Changuiggung(彰義宮) which served as the residence of King Yeongjo before he was enthroned. On the other hand, the Changuigung was the outset of Inpyeongwi-gung(寅平尉宮), which was built for the princesses. During the reign of King Hyojong the princess who got married must depart from the Inpyeongwi-gung. This study corroborated the undertaking of modification of its architecture frombeing asymmetrical house to symmetrical most primarily the inner part of the palace through the innovation of Changui-gung and the restoration of Hamijae to Heungbokjeon. Hence, it was confirmed that the Heungbokjeon was the only inner part of the palace that was not burned down by the 2 consecutive fires during the reign of King Gojong, to be more specific these fire happend on his 10th and 13th year of rule. Consequently, the research process of Gyeongbokgung Heungbokjeon can escalate the possibility of considering not only the reconstruction of Gyeongbokgung in the 19th century, as well as the construction of the capital city in the 17th century.

창덕궁 후원의 경관에 관한 소고 -정조의 "상림십경(上林十景)"을 중심으로 (An Interpretation of Landscape of Ch'angdok Palace Rear Garden -Focused on the king Jongjo's "Sangrimshipkyong" Poem-)

  • 이수학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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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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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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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The rear garden of the Ch'angdok Palace is considered to be representative of gardens of the 15th century to the end of Choson Dynasty in the early 20th century and is very well preserved. Therefore with its long history, it's been represented in various way. This study tried to interprete the rear garden of the Ch'angdok Palace in terms of 'text through king Jungjo's "Sangrimshipkyog". Jungjo's "Sangrimshipkyng" that describes scenery related to ten place of the rear garden of the Ch'angdok Palace was written when he was a crown prince. And the scenery of ten places can't be separated from their physical looks and those ten places were quite different from now. For that reason, to begin with, this study recomposed those ten places through maps and drawings that revived the current looks and rear garden. And what poems tried to tell and what meanings whey had in the literacy of that age that allowed "poem enchained ten scapes" were studied in the context of co-relationship with space. As a text it is very ancient and questions arise on how to correctly interpret the information it holds. But this interpretation is only one side of the various aspects that the rear garden of the Ch'angdok Palace has compared to its long history. In light of the present age an interpretation can have richer and more varied meanings, creating many new viewpoints. creating many new viewpoi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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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 표현된 붉은색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Reds of Kyungbok Palace)

  • 정유나
    • 한국실내디자인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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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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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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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Koreans have regarded the red as a major color from old times. The red is a traditional color to have symbols of high position, national foundation and especially royalty. So, we can see the reds in the palace for kings very much.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draw out the features of color red in the Kyungbok palace. The color was analyzed by two categories-architectural buildings${\cdot}$structures and ornamental painted patterns. The major findings from this research are summarized as follows:1. Seokganju(similar to terra rossa) and toyugsaek(light seokganju) are found main colors in architectural space, while seokganju has a linear effect and toyuk has a facial effect. 2. Yugsaek(similar to light vermillion) and Jangdan(similar to orange) are found main colors in ornamental painted patterns. These colors are more vivid and brighter than those for architectural space.3. As for two-color combination, reds and blues(including greens) are found major combination both of architectural space and ornamental patterns. And reds and white are the following combination, which gives an bright image by white. 4. As for three-color combination, red-white-black combination of pediment and red-blue-white combination of openings are found very popular in architectural space, while red-blue-yellow combination is most popular in ornamental patterns.The reds are found dominant color of both architectural space and ornamental patterns in the Kyungbok palace. The color design as shown in the Kyungbok palace can be considered as the feature of traditional color desig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