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Japanese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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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의 '세계종교' 가능성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Possibility of 'World Religion' in Daesoon Jinrihoe)

  • 권동우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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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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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3-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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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대순진리회는 교단 내부 구성원들에 있어서나 학계에 있어서나 '민족종교'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이 민족종교의 성격이 꽤 복잡하다. 곧 민족종교로서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한민족의 선민사상을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류와 세계를 구제하겠다는 세계종교의 보편성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민족종교의 특수성과 세계종교의 보편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특수성과 보편성의 논리는 단지 대순진리회에만 국한된 특징이 아니다. 이미 세계적으로 많은 종교들이 민족종교와 세계종교의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가진다고 하는 이중성을 보여 왔다. 그 가운데 본고에서 주목한 것은 근대 일본에서 형성된 교파신도다. 근대 일본 정부가 국가신도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교파신도는 총 13개 종파가 형성되는데, 이들의 대부분은 일본인의 민족적 전통을 계승하는 민족종교라고 하면서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세계종교를 표방하면서 해외포교에 나선다. 그렇다면 이처럼 민족종교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세계종교를 지향했던 교파신도의 해외포교는 어떻게 귀착되었고, 이들의 세계종교화는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본고에서는 이처럼 민족종교와 세계종교의 이중성을 보여 왔던 교파신도의 사례를 통해 대순진리회의 세계종교의 가능성을 살펴보고, 이를 위해 대순진리회가 지향해야 하는 길에 대해 약간의 제언을 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던 '민족종교'론 또는 '민중종교'론의 역사적 흐름에 대해 살펴볼 것이며, 한국에서 민족종교이면서 세계종교를 지향하고 있는 원불교의 사례도 점검하는 것으로 민족종교와 세계종교의 경계에 서 있는 대순진리회의 새로운 지향점에 대해 검토해 보고자 한다.

역사적 문화환경의 창조 -고대정원문화를 중심으로- (Traditional Korean landscape garden with special attention)

  • 민경현
    • 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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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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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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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5
  • Korean Landscape Garden may be described according to its stage of development. In the primitive agricultural era, the garden was preceded by vegetable yards and at this time rock arranging (Soo-Sok garden) was initiated together with the megalithis culture of dolmens, heavenly altars and tumuli. In the early Three Kingdom period palace gardens were built on a grand scale and toward the end of fourth century temple garden were introduced along with Buddhism. These gardens evolved to the flourishment of "HWAGE"(terraced gardens) rock arrangements of ZEN, early KOR-YO period. Especially since the middle of KOR-Yo period the "IM-CHUN"(forest and pond) garden became popular, while during Cho-Son period "HWAGE" in the back yard, pond and pool garden and "IM-CHUN" style country villa became fashionable. The Korea traditional Landscape garde may be characterized that first it is a nature Landscape style, which makes the maximum accomodation with the surrounding nature. Secondly, the Korean garden is built creatively by utilizing the elements of its climate and topography, Kogu-Ryo, Paik-Je great-Kaya and Sil-Ra had developed original a castle town plans and beautiful gardens rock arrangements which precede the equivalent style of China and set the prototype for Japan. The Landscape art of waterfalls and rock arrangements at An-Ap-Chi garden of 7th century has no equals in China and set the origin of pond style of Japanese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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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kiyo-e - Oriental Art that Has Been Influencing the World

  • Wu Xiaochen
    • International Journal of Advanced Culture Tech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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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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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8-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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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Ukiyo-e, a pivotal facet of Japanese art, had a profound impact on Western art during the 19th century, contributing to the emergence of Impressionism and Post-Impressionism. Notably, Katsushika Hokusai's "Great Wave" remains an enduring masterpiece. Ukiyo-e's historical trajectory is intricately linked to the socio-cultural context of its time. Japan's early artistic influences derived from China, evolving through the Nara and Heian periods. Ukiyo-e emerged from the Yamato-e tradition, characterized by its transition from religious themes to secular subjects. Zen Buddhism's influence during the Muromachi Shogunate shifted focus to ink wash painting, which eventually became accessible to the masses. The Azuchi-Momoyama period introduced lavish, colorful works. The Edo Shogunate upheld Kano School for the elite, while folklore painting gained popularity among the commoners, leading to the creation of Ukiyo-e. Ukiyo-e diversified its subjects, including beauty, geisha, sumo, landscapes, and more. The Asakusa district's "Shin-Yoshiwara" added to its vibrant themes. By the late 19th century, Ukiyo-e transcended its roots, encompassing landscapes, wildlife, and beyond. I explore Ukiyo-e's aesthetics and its influence on Impressionism, focusing on "The Three Masters of Ukiyo-e" - Kiyotagawa Komaro, Katsushika Hokusai, and Utagawa Hiroshige.

백제 문양전의 개명(改名)을 위한 연구 -부여 규암면 외리 출토 '귀형문(鬼形文)'을 중심으로- (A Study for Renaming of Paekje's Designed Tiles -Centering Around the Ghost Image Design Excavated at Oe-ri Kyuam-myun, Buyeo-)

  • 홍재동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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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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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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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We Koreans are very proud of this nation's cultural history over some five millenniums. But most of the relics found in the nation date back up to two thousand years. Under this circumstance, we are wondering the gap and missing of three thousand years. In our traditional literature of history, [Chiwoo] was a military god of supreme dignity and virtue. He was a symbol of brave and strong warriors and since the antiquity, he has been kept alive deeply in the mind of the Korean race. Considering findings through this study, the researcher could provide a conclusion as described below. 1) The name of Paekje's designed tiles was initially made by a Japanese scholar who had first found the antique relic. According to studies by a few of Korean researchers, the name is usually called despite its relation with a historical background of the excavated objects has not been fully studied. 2) After the patterned objects of the Korean antique Kingdom, Japanese researchers reported that [Chiwoo] was a military god as exorcist and probably represented something in the form of a ghost, although there were arguments that the military god was the very being to influence the image of the ghost. This report suggests that the Japanese community didn't downgrade the military god onto the level of a ghost. 3) One of our antique nations, Paekje at that time sought to determine the origin and culture of the Koreans by making multiple exchange relations with China, and probably accepting cultures of the Chinese Han nation and those of the Chinese South and North Dynasty period. Based on findings from a relevant literature, [Sulyigi], people of Paekje attempted to show express the image of Chiwoo in their own unique ways and then deliver the strong bravery of [Chiwoo] to us, or their descendents. This can explain that those findings as above mentioned are consistent with the designed tiles of Paekje, and that the tiles should not be named as the design of ghost. 4) The designed tiles involved elements of Taoism and Buddhism and substantially considered the spirit of four gods which was mobilized for the tomb construction and selection at that time. But this should never be a reason why all of the horned figures seen in tomb wall paintings are collectively treated as ghosts. 5) From the view of historic literature, we can no doubt say that the Heavenly Emperor [Chiwoo] was our ancestor. It is not better to say that the relic stuffs as excavated should be referred to the design of ghost image only in that they have yet to be associated historically with other relics. This claim would be newly changed as it becomes clear with historical remains that our antique ancestors kept doing positive activities along the coast of the antique kingdom, Bal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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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日本) 법륭사(法隆寺) 성덕태자제사(聖德太子祭祀) 공물(供物)을 통한 한국고대식(韓國古代食) 추정연구(推定硏究) (Study on Korean Ancient Diet by the Sacrificial Offerings of Japanese Temple)

  • 김천호
    •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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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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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3-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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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1
  • 일본(日本) 내량시(奈良市)에 있는 법륭사(法隆社)는 6세기(世紀)에 백제(百濟)로부터 불교(佛敎)가 전해진 후 가장 불교문화(文化)가 융성할 때 그 주도적(主導的)인 인물(人物)인 성덕태자(聖德太子)에 의해 건립되었으나 모든 면(面)에서 백제, 신라, 고구려 삼국(三國)의 영향을 받아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으며 그 중(中)에서도 태자사후(太子死後) 1300년(年) 이상 기제(忌祭)를 매년(每年) 시작되었던 때 모습 그대로 전승 실현되고 있어서 그 공물(供物)을 통해서 한반도에서 영향을 미친 점 한편으로는 한반도 고대식문화(古代食文化)를 추정하는데 좋은 자료와 참고가 되리라고 본다. 1. 13배어선(杯御膳), 5배어선(杯御膳) 3중병(重餠) 어불반(御佛飯)과 대산립(大山立)이 양쪽으로 장엄하게 차려진 공물(供物)은 그 시대로서는 진품(珍品)으로 식품의 종류나 조리법이 총동원된 행사였고 전체적인 특징은 고배기(高杯器)에 고배(高排)음식 형식으로 현재 일본(日本)에서는 古代(古代)로부터 전승되어오는 수개(數個)의 절과 신사(神社)외에는 찾아볼 수 없지만 한반도는 아직도 무속식(巫俗食), 불공(佛供), 각종(各種) 제사(祭祀) 그리고 가정행사인 돐상, 회갑(回甲)상, 혼례식 등에서 남아있고 이조시대(李朝時代)는 궁중상(宮中床)차림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므로 고배기(高杯器)에서 고배(高排)형식은 고대(古代)로부터의 한반도 식문화의 특징이었음을 알 수 있다. 2. 병(餠)에 있어서는 찹쌀보다 멥쌀가루를 많이 사용한 점으로 보아 한반도(韓半島) 기호(嗜好)의 특성과 상통하며 어불반(御佛飯)은 시루떡의 전초적인 과정(過程)으로 본다. 3. 13배어선(杯御膳)의 각종(各種) 산야(山野)열매는 후에 과일로 대치도 되었지만 각색과자(各色菓子), 각색당(各色糖) 등의 제조발달에 따라 적(赤), 황(黃), 녹(綠), 백색(白色)을 기본으로 장식하게 되었다. 4. 색면(索麵)이라는 가늘은 국수는 밀과 함께 국수제조법이 전래되어 귀한 식품으로서 제사에 쓰여졌으리라 본다. 5. 대산립(大山立)에 시양(枾揚)는 과자는 멥쌀가루를 튀긴 것이 특징이나 후에 튀기기 쉽고 맛이 좋은 밀가루로 변한 것이 아닌가 추정되며 모든 과자의 원조로 본다. 할죽(割竹)에 매달은 극락으로의 기원을 뜻하는 봉황새는 멧떡으로 만들었는데 현재까지 전통음식 중의 하나로 전라남도 지방에서 꽃떡위에 꽃이나 열매떡을 매달은 나무가지를 꽂아서 장식하는 것으로 보아 같은 재료 같은 형식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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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청암사에 수용된 유·불·선 삼교 통섭(統攝)의 의미경관 (The Meaning Landscape of the Three Religion Consilience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Embraced in Cheongamsa Temple, Gimcheon)

  • 노재현;김화옥;박율진;김영숙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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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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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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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지명 고찰, 사찰팔경의 의미 분석 그리고 바위글씨의 지시내용과 성격 분류 등을 토대로, 한국 문화 DNA의 하나인 유불선 삼교통섭의 의미경관이 김천 청암사 경역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인식되며 표출되고 있는 지를 확인할 목적으로 시도된 본 연구의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청암사가 위치한 곳은 조선 중기 대표적 유자(孺子)인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가 경영한 무흘구곡의 상류부로서, 일제강점기 청암사 주지 벽암(碧庵) 이덕진(李德珍, 1896~?)이 제영한 청암사팔경의 대상과도 중복된다. 청암사를 품은 배후 산의 산명(山名)인 불령산(佛靈山)을 비롯하여 수도산(修道山), 선령산(仙靈山)과 신선대(神仙臺) 등의 지명 병용(倂用)과 청암사원(靑巖寺院), 청암사팔경, 불령동천(佛靈洞天), 나무아미타불[南無阿漏隋佛], 호계(虎溪), 여산폭포(廬山瀑布), 세진암(洗塵巖) 등 다양한 속성의 바위글씨는 사찰영역에 혼재된 유교와 선교의 공존을 보여준다. 특히 청암사 계곡 호계와 경내 조성된 삼소천(三笑泉)은 중국 장시성의 여산동림사에서 비롯된 호계삼소(虎溪三笑)의 고사를 통한 유불선 3교 회통의 상징 경물로 구현되고 있다. 또한 청암사에는 신(神)과의 교섭이란 숭고한 장소성을 보이는 여산폭포와 이를 각자(刻字)한 바위글씨 그리고 여산교(廬山橋)가 존재한다. 이와 같이 청암사에는 불교적 배타성에서 벗어나 삼교 화합과 공존을 상징하는 호계삼소의 정신을 담은 유불선 통섭의 문화가 다양한 층위(層位)로 녹아있다. 더욱이 승가(僧家)의 실천내용으로 알려진 '육화경법(六和敬法)' 중 제3계율인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남의 주장을 무시하지 마라"라는 '의화동사(意和同事)'의 교리는 호계삼소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호계삼소와 구곡동천(九曲洞天) 및 팔경(八景)의 문화경관으로 채색된 김천 청암사는 도불(道佛) 뿐만 아니라 유불(儒彿) 더 나아가서 삼교(三敎) 수용의 문화가 녹아있는 유불선 통섭의 명소로 부족함이 없다.

일제강점기 도상자료를 통한 불국사의 경관변화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Change of Landscape in Bulguksa Temple through a Iconographic Materials in the Period of Japanese Occupation)

  • 김규원;안계복;심우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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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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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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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불국사(佛國寺)는 신라의 대표적인 사찰로서 임진왜란으로 완전 소실된 이후 1805년까지 중수와 중건을 거듭하였다. 그 이후의 기록은 없다가 재정상태가 어려워지면서 불국사의 중수는 중단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에 의한 수리공사가 크게 2차에 걸쳐 나누어 시행되었다. 해방이후, 1969년 불국사 복원위원회가 설립되고 발굴조사 후 1970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어 1973년에 준공되었다. 본 연구는 현재 국가기록원에 소장되어 있는 불국사의 일제강점기 건축도면과 1902년 불국사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세키노 타다시(關野 貞)의 자료, 1973년에 발간된 불국사복원공사보고서를 통해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일제강점기 이후의 불국사의 경관의 변화를 확인하여 향후 복원이나 재정비 사업의 진행시 기초자료로 활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불국사는 19세기 초까지 유지되어 왔으나 그 후 사세가 약해졌고 그 후 일제강점기의 일본의 우월함을 표출하려는 무분별한 수리공사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자료와 연구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공사를 진행하여 많은 경관 변화가 있었다. 둘째, 구품연지(九品蓮池)는 고문헌에서 구품연지의 의미와 영지(影池)의 기능이 함께 언급되어 있어 그 명칭을 확정할 수 없고 실제로 발굴조사된 위치가 극락전이 아닌 대웅전 아래 공간이었기 때문에 구품연지의 교리적 의미와 발굴위치가 맞지 않는 의문점을 남기고 있었다. 구품연지는 창건초기부터 영지(影池)로서 역할을 하다가 시간이 흐르며 불국사의 사세가 약해짐에 따라 연지(蓮池)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어 극락전의 존재와 교리상 알맞은 구품연지(九品蓮池)로 불리게 된 것으로 추측하였다. 셋째, 대웅전 남회랑의 경관을 촬영한 1902년 세키노 타다시의 사진을 확인할 결과 당시 남회랑의 벽체가 없었고 1918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일제강점기 도면에서도 벽이 없는 회랑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1970년대 복원공사 뒤의 남회랑의 모습과는 다른데 불국사의 전체적인 경관과 함께 탑이 비추면서 아래쪽 지당이 영지로서의 기능을 했다는 근거 자료였다. 넷째, 48계단은 계단 숫자와 관련하여 정토불교와 관련된 48대원, 16관법, 대웅전의 관점에서의 승가시 3도로로 해석되고 있었다. 국가기록원에서 보관중인 일제강점기의 불국사 도면과 사진, 발굴조사자료를 확인한 결과 원래 없었던 것으로 판단되어 48계단에 대한 올바른 스토리를 알릴 필요가 있다.

한중에서의 일본 고전극 노(能) 연구의 성과와 경향 (Results and Trends of Research on Japanese Traditional Theatre 'Noh' in Korea and China)

  • 강춘애
    • 한국연극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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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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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9-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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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The purpose of this research was to summarize Korea and China's researches on Noh and to examine main domain in this field, by investigating the academic books and articles published in two countries. In 1960s, since Nohgaku has been introduced to China, academic articles on Zeami's theories and aesthetics have emphasized on aesthetic characteristics of Chinese plays and Japanese Nohgaku through the similarities of oriental plays. The number of researches on Kabuki is almost twice as that of researches on Noh in China. While most researches on Kabuki were compared with the styles and music of Pecking Opera and the theatrical theories of liyu[李漁], those on Noh has been highlighted the comparative studies on $Y{\bar{o}}kyoku$[謠曲], Chinese Noh plays. The main difference among the researches on $Y{\bar{o}}kyoku$ in Korea and China was the material regarding characters of Noh. Because song yuanzaju[宋 元雜劇]and Nohgaku in Chinese-Japanese plays were the mature form of the classic plays and those were representative of traditional nation plays, this researches tried to ascertain the cultural origins of two countries regarding the aesthetic characteristics by referencing lyrical and narrative features[曲詞] of yuanzaju[元雜劇]and the classic waka of Nohgaku. While the comparative studies on Noh and song yuanzaju and kunqu[昆劇] in China were prevalent, national researches have emphasized on the inner world of the main character and dramaturgy through the verbal description of Noh. Especially, this research tried to investigate the inner world of the main character and the intention of the writers through the verbal description of Noh authorized in the history of the works. Also, the researches on Buddhism in the Middle Ages and religious background were examined significantly. In addition, the $Y{\bar{o}}kyoku$ has influenced on European modern playwrights and the comparative studies between the materials of $Y{\bar{o}}kyoku$ and Western modern plays were concerned. In Korea, the comparative studies on Noh between Korea abd Japan has been most focused on the origin theory of Noh. The fact that appearance theory of Noh had originated from Sangaku was common opinion among Korean, Chinese, and Japanese scholars. However, they are agree with the opinion that according to the formation of the different genres, Noh's mainstream was different among three countries despite of the same origin. Yuan drama and Noh play have the same origin, but different branch. In relation to the Noh's origin theory, there are literature comparative studies in religious background, the studies presumed the origin of instrumental music related to those in mask plays, and the comparative studies between Korean mask plays and $ky{\bar{o}}gen$ of Nohgaku. Kyogen is the Comedy inserted among the stories in Nohgaku performed in just one day. Therefore, $ky{\bar{o}}gen$ must be discussed separately from the relations of 'shite[任手]'s inner action veiled with masks. This research figured out that the lacking points of the two countries' researches were the acting methods of Noh. Academic articles written by foreign scholars studying Korean and Chinese theatres should be included when this issue will be dealt with. In Korea and China, translation studies and writings regarding Nohgaku have studied by those who are major in Japanese literature or oriental literature. This case is the same in Korea in that scholars whose speciality is not theatre, but Japanese literature has studied. Therefore, this present study can give a good grasp of whole tendency on Nohgaku's research in theatre fields.

탑의 원조 인도 스투파의 형태 해석 - 인도 전역의 현장 답사를 바탕으로 - (The Interpreggtation of the Indian Stupa as Origin of Korean Pagoda)

  • 이희봉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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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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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3-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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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This study aims to discover historical trends and change of form of all stupas in India with observation of field study that is as direct as possible, by classifying, analyzing, and synthesizing the stupas. Study of Indian stupa in Korea has a number of shortcomings since only introductory partial approach has been made in order to seek the origin of Korean pagoda. This study also aims to correct errors of stupa terminology in Chinese character committed by misinterpretation of Hindi language which was established by precedent Japanese scholars several decades ago. Piled-up stupas were totally destroyed by pagans, therefore their remains tell us only of structure, material, sizeand disposition. However remains of carved stone at torana and drum give us clues as to the original form of stupa and worshipping activity, as well as change to a more luxurious form. Many rock cave stupas of India show us both simple forms matching the ascetic age of early Buddhism and luxurious changes in Mahayanan era introducing us to statues of Buddha. Indians recovered the spheric form of 'anda,' a Hindi term meaning cosmic egg, from the hemispheric form of the piled-up stupa. Therefore we might discard the erratic term of 'bokbal', which means an upset vessel. Railings and parasols became main factors of stupa design. Carved railings around stupa became a sign of divinity. Serious worshipping activity made drums long or high and created multi-embossed stripes. Bases of circular drums of some cave stupas changed their shapes to rectangular or octagonal. Single parasols became multiparasols of affluent flowerlike curved stems on carved stupa. Multistoried, elongated and high parasols of Gandhara stupas are closely related to such factors as diverse changes of form in Indian subcontinent. Four-sided torana gate and ayaka column of the circular form of original stupas suggest the rectangular form of subsequent East Asian pagoda, and higher and wider base of Indian stupas became the origin of East Asian rectangular pago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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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지역 조선후기 목조불상의 수종 (Species of Wooden Buddhist Statues of the Late Joseon Dynasty in Jeollado, South Korea)

  • 박원규;오정애;김요정;김상규;박서영;손병화;최선일
    • 한국가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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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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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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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The objective of this study is to identify the species of 17 wooden Buddhist statues of the late Joseon Dynasty (the 17th and 18th century) in Jeollado, southwestern region of Korea. The bodies of statues were made of Ginkgo (Gingko biloba L.: 88%) and alder (Alnus spp.: 12%). The hands of statues were alder(64%), willow (Salix spp.: 27%) and Ginkgo(9%). The bottoms of hollow bodies were covered all with Japanese red-pine (Pinus densiflora S. et Z., 'sonamu') panels. The main species of statue body, Ginkgo tree was known to be introduced to Korea from China with Buddhism. The results indicated that Ginkgo trees of Korea in the 17th century had already become large and rich enough to be used for most of statues. Ginkgo wood has low shrinkage and even texture, which are crucial for carving sculptures. Alder and willow woods used for statue hands have fine and firm textures. The pedestals for these statues were also made of red pine wood. Red pine woods have rather high shrinkage and low hardness, but it is versatile woods strong enough to support heavy stat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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