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Goryeo(高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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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宋) 명주(明州)에 건립한 고려사행관(高麗使行館)의 건축사(建築史)적 의의 (Significance architectural history of Goryeo-Sa-Haeng-Guan(高麗使行館) built on Myeong-ju(明州) of Song Dynasty(宋))

  • 이용준
    • 한국농촌건축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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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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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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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This preliminary study examines historical background of construction, establishment process, and destroy process for the Goryeo-sa-haeng-guan in Myeong-Ju during the Song Dynasty. The research was conducted based on local journals at that time. The Myeong-Ju is one of the famous port cities for marine trade. The Myeong-Ju had a good relationship with the Goryeo. Especially, the Song Dynasty built the Goryo-sa-haeng-guan for Goryeo envoys and traders to maintained a good partnership with Goryeo. A comprehensive review on records and historical issues of the Goryeo-sa-haeng-guan helps us to understand foreign policy and inter-relationship between Korean and China.

서긍의 고려항로와 고려 봉수의 항로표지 기능에 관한 연구 (Study on the Goryeo Sea Route by Seogeung and Aids to Navigation Facility of Goryeo Fire Signal)

  • 문범식
    • 한국항해항만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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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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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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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중국 송나라 서긍이 작성한 선화봉사 고려도경은 고려의 서해상을 항해한 가장 생생한 기록이다. 선박을 이용하여 고려를 방문한 서긍은 도서지역의 봉수를 이용하여 흑산도에서 벽란도까지 항해하였다. 고려가 도서지역에 설치한 봉수는 당시의 통항로에 인접한 곳에 위치하였고, 항해자가 24시간 식별할 수 있도록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로 위치를 표시하였다. 또한 산 정상에 설치하여 항해자가 원거리에서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고려 봉수는 현대 항로표지 기본요건을 만족하며, 광달거리(시인성)는 약 29-39mile로 추정되고, 봉수의 광도는 약 9,105-168,610cd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려의 봉수는 현대의 항로표지와 같이 항해자에게 쉽게 이용되고, 국가가 운영한 만큼 신뢰성이 높아 안전항해에 필수적인 항로표지 기능을 수행하였다.

유천리 고려백자의 조성 및 미세구조를 통한 과학적 연구 (A Scientific Study on the Composition Analysis and Microstructure of the Yucheon-ri Goryeo Whiteware)

  • 이태진;고민정;임수경;윤은영;황현성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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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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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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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 연구는 고려 중기 가마터인 유천리 고려백자의 조성 및 미세구조 분석 결과를 기초로 기 연구된 서리, 중암리, 방산동 그리고 법천사지 출토 백자와 비교하여 고려백자의 원료적 특징을 확인한 것이다. 유천리 고려백자는 태토가 고려 전기 백자에 비해 실리카가 높고 융제 함량이 낮은 반면 유약은 이 반대의 특징을 보인다. 또한 철산화물에 비해 티타늄 산화물의 함량이 높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고려청자의 티타늄 산화물 함량과 비슷한 수치이다. 전기 고려백자는 각 가마별 함량의 차이를 보이나 이것이 시기에 따른 일정한 변화로 나타나지는 않았으며 중기 고려백자인 유천리 도편과 비교해 보아도 비슷한 양상이다. 또한 소비유적 출토인 법천사지 고려백자는 도편별 함량 차이를 보여 동일하지 않은 지역에서 제작, 수급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로 보아 각 가마별 함량의 특징 및 차이점은 고려백자의 시기적 흐름에 따른 변화라기보다 제작 환경이나 재료 수급의 차이 등에 따른 각 지역적인 특성으로 판단된다.

고려시대 목조건축물의 상록하단(上綠下丹) 단청기법 수용 (The Adaptation of Sangrokhadan Technique on the Color Painting of Wooden Buildings in the Goryeo Dynasty)

  • 이은희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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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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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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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The color that painted on the ground of Dancheong becomes Gachil(basecoat)-Dancheong and underpainting of Moro-Dancheong or Geum-Dancheong. So, the color of underpainting is the most important element that determines impression of the building. Thus, the architecture after using "Sangrokhadan" has different characters from what it had been. In the existing perception toward the background color of Dancheong, it was considered the characters of Korean Dancheong so-called "Sangrokhadan" that paint vertical elements like columns red and upper part of the columns green. But this study examined the color of Dancheong according to the era and region before and after Goryeo Dynasty era, then it reveals that Sangrokhadan technique was applied from the 14th century in the late Goryeo Dynasty. One of the Goryeo architecture, Geungnakjeon Hall of Bongjeongsa Temple is thought to be a previous style that is not applied "Sangrokhadan" technique because old elements are painted red pigment.

서비스디자인 기반의 고려인 이주민을 위한 간호대학생 봉사활동 개발 (Development of Nursing Students' Volunteer Activity for Goryeo-in Immigrants Based on Service Design)

  • 김희영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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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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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7-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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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최근 증가하는 고려인 이주민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정착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관심과 적극적인 교류가 필요하다. 본 연구는 고려인 이주민을 위한 간호대학생의 봉사활동을 서비스디자인 기반으로 개발하기 위함이다. 2019년 10월부터 11월까지 G 광역시에서 수행되었으며 참여자는 고려인 이주민 33명과 이해관계자 3명이었다. 자료수집은 고려인 이주민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면담, 이해관계자 면담을 실시하였다. 조사결과 고려인 이주민이 직면하는 주요문제로 발견된 것은 의사소통의 어려움, 부적응, 고용 불안정, 흡연이었다. 핵심이슈를 '어떻게 하면 고려인 이주여성이 한국어 소통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로 정의하였고 문제해결을 위해 간호대학생의 봉사활동 '고려인 한글 쑥쑥' 프로그램을 개발하였으며, 스토리보드와 역할극을 통해 전달하였다. 서비스디자인 프로세스를 활용하여 고려인 이주민과 간호대학생의 상황을 다각도로 고려한 의미 있는 봉사활동을 설계할 수 있었다. 본 연구를 통해 서비스디자인 방법론은 봉사활동을 개발함에 있어 수요자와 봉사자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유용한 전략임을 알 수 있다.

고려 초중기 기녀의 고증복식 캐릭터 연구 (A Study on the Design of Gisaeng Costume in Early-Middle Goryeo Dynasty)

  • 최해율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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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8권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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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1-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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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This study was undertaken to design Ginyeo's character and costume in the early-middle Goryeo Dynasty which had a few relics, and to make practical cultural contents. The famous Goryeo Ginyeos who had real names are costume characters. Goryeo women dressed in delicate white ramie jarket in "Goryeo-dokyung", and the shape of Jacket can be two kinds: long-wide jacket enough to tie a belt, and long caftan cover the knee. Goryeo women enjoyed wide yellow skirt, but Ginyeo in "Dongguk-isanggutjip" put on pink, flower, pomegranate, red skirt for high class ladies. In the case of Mong-su(a head cloth with black gauze train), it is thought that Ginyeo fold up train like lower class or just hang down like ordinary women, because of their status. As underwear, a ramie jacket and wide underpants were set up. It is needed that many Golden bells and jade trinkets must be attached to Goryeo Ginyeo's waist to stress their characteristics. Ginyeo's hair style can be designed so that a bunch of right hair was dropped down and the rest hair was rolled on reft shoulder. To design a Ginyeo's costume chatacter of the early-middle Goryeo, the richness of wide skirt, delicacy of white ramie, a great deal of trinkets must be emphasized correctly as a characteristic of Goryeo women's costume in that period.

고려 전·중기(918~1213)의 국왕 책봉(冊封)과 관복(冠服) 사여 (Investiture of King and Bestowment of Robe and Crown in the Early to Middle of Goryeo Dynasty)

  • 이민정
    • 한국의류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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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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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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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King and Crown Prince's Gwanbok (冠服) written in "Goryeosa" Yeobokji was the bestowment of robes and crowns by the Son of Heaven who yielded hegemony over East Asia. It designated the King and Crown Prince of Goryeo as real and authentic as well as confirmed the political status of Goryeo in East Asia. In "Goryeosa" Yeobokji, the King's Gwanbok is of higher stature than the adornments of the King's ritual robes (祭服) and court robes (朝服) which held a domestic political significance. In East Asia, bestowment of voiture (車) and robe (服) usually appeared in the multistate system. In the $10^{th}$ century, the Later Jin (後晋) spread the idea of investiture and bestowment to Khitan (契丹). The Liao (遼) or Khitan and the Jin (金), the Conquest Dynasties, endeavored to establish the legitimacy of the Son of Heaven by imitating Sinocentrism by means of investiture and bestowment. In the reign of XingZong (興宗) and DaoZong (道宗) of Liao, the ritual of investiture and bestowment for Goryeo was in the making, adding titles and bestowments in the occasion of the elevation of Emperor Liao's honorific title. King Munjong (文宗) of Goryeo reached 9-bestowment which symbolized the first of the feudal lords in East Asia. This exceptional respect for Goryeo went on to Jin's investiture and bestowment. From then, 9-bestowment was defined as an international decorum (禮) toward Goryeo. This historical study of Gwanbok (冠服) of "Goryeosa", indicates: First, the King's Ceremonial Robe with Nine-symbol Design were designated from the early to middle of the Goryeo Dynasty by investiture and bestowment from the Conquest Dynasties. Second, the bestowed King's Robe and Crown had simultaneous functions for domestic order and international order. Goryeo did not follow ideological Sinocentrism but followed practical interest by accepting Confucian Li (禮) philosophy passed on through the Conquest Dynasties.

새롭게 확인된 고려(高麗) 묘지명(墓誌銘) : 「김용식(金龍軾) 묘지명」·「상당현군(上黨縣君) 곽씨(郭氏) 묘지명」·「민수(閔脩) 묘지명」 (The Newly Identified Goryeo Memorial Inscriptions)

  • 강민경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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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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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4-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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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사편찬위원회는 고려 묘지명 조사·공개 사업을 협업하여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현재까지 새롭게 확인된 고려 묘지명은 모두 4건이다. 그중 국외 소재 고려 묘지명 2건과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었음이 처음 파악된 고려 묘지명 1건을 소개하고자 한다. 고려 중기 관료의 묘지명인 「김용식 묘지명」은 현재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 프리어새클러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다. 이 묘지명은 당시 관료의 전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삶을 보여주고 있어 그 의미가 크다. 현재 남아 있는 이 시기 관료계층의 묘지명은 대개 고급 관료나 그 가족의 것이고, 이처럼 중·하급 관료가 남긴 묘지명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거기에다 주인공의 관력(官歷)과 세계(世系), 행적이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어, 앞으로 고려 중기의 사회사·정치사를 연구하는 데 큰 기여를 할 사료로 여겨진다. 현재 일본 교토대학 총합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상당현군 곽씨 묘지명」은 연대가 분명한 고려관료계층 여성의 묘지명으로 주목된다. 아쉽게도 내용이 소략하나, 당시의 장례문화와 지리 인식 등을 알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으로 확인된 「민수 묘지명」은 그 존재와 내용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소재가 분명히 파악되어 앞으로 연구자들이 실물을 열람·활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아울러 벼루라는, 흔치 않은 소재에 새겨진 고려 묘지명의 사례를 확보했다는 데도 의의가 있다.

고려 시대 인삼과 의약서에 대한 기록 (Records on Ginseng and Medical Book during the Goryeo Dynasty)

  • 이성동
    • 인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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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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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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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우리나라의 특산품인 고려인삼은 삼국시대 이래 가장 중요한 수출품 중 하나였다. 그러나 고려 시대까지 우리 역사에서 인삼에 관한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본 고에서는 고려 시대의 인삼에 관한 국제 수교 및 교역 기록과 당시 출판된 것으로 알려진 의약서에 대하여 정리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주변 국가인 발해, 송, 왜, 후진, 원나라와 외교적 예물로 또는 교역품으로 인삼이 활발하게 거래되었다. 주로 고려에서 주변 국가로 인삼이 수출되었지만 발해와 거란으로부터는 인삼을 외교적 예물로 받기도 하였다. 아라비아 상인은 고려의 대표적 국제무역항이었던 벽란항에 와서 인삼을 교역하였다. 몽골 침입 이후 원나라의 인삼 요구량이 지나치게 많아서 큰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제중입효방』, 『어의촬요방』, 『향약고방』, 『삼화자향약방』, 『향약혜민경험방』, 『향약구급방』, 『비예백요방』 등 여러 의약서가 출판되었다. 『향약구급방』은 조선시대에 중간된 것이 전해지고 있으나 나머지 책들의 원본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 최근 후대의 여러 의약서에 인용된 것들을 연구하여 그 일부가 복원되기도 하였다. 궁중에서 사용되었던 의약서에는 인삼을 포함한 처방의 비중이 높았던 반면 주로 평민을 위한 『향약구급방』에는 인삼 처방이 한 건도 수재(收載) 되지 않았다. 이는 당시 인삼이 매우 귀하고 고가이어서 평민이 접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고려의 향문화(香文化)와 향로(香爐) (Goryeo Dynasty Incense Culture and Incense Burners)

  • 박지영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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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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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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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향을 피우는 행위는 불교 의례나 관습에서 유래되었으나 점차 일상의 습속(習俗)이 되어 향문화를 형성하였다. 고려는 종교나 국가적인 의례 외에도 일상 속에서 향을 폭넓게 향유하였는데, 특히 고려의 문인들은 연거분향을 통해 삶의 고아한 정취를 즐겼다. 이러한 분위기는 동아시아 향문화의 일환으로 분향방식 역시 동시기 중국과 같은 방식을 공유하였는데, 이는 고려 문인들의 문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분향방식은 향로의 크기나 형태 등에 영향을 주었는데, 일상화된 분향 문화에 적합한 간소화된 소형의 향로들이 널리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소형 향로로 배(杯) 형태의 향완이 대표적이다. 향완은 종교적 용도의 금속제 거향로로 인식되어 왔지만, 송대에는 소형 향완이 도자로 활발히 제작되면서 일상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다. 송과 같은 향문화, 분향방식을 공유했던 고려에서도 도자 향완에 대한 수요가 점차 증가하였다. 이는 개경에서 발견된 다수의 송대 백자향완, 그와 유사한 형태로 제작된 고려의 청자향완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2~13세기에 제작된 청자 향완은 고려 내부의 적극적인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시기에는 중국 백자향완과 유사한 형태의 청자향완 외에도 금속기를 모방하거나 고려청자의 기법과 문양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고려만의 청자향완들이 제작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고려시대 향로는 기본적으로 각종 의례·의식의 필수품이었지만, 개인 향문화의 확산으로 아취를 위한 기호품으로도 사용되었다. 금속제 향로나 고급 청자 향로들이 주로 국가나 종교의 의례·의식에 사용되었다면, 비교적 생산이 용이한 간소화된 도자 향로는 개인적인 수요에 부응하며 향문화의 확산에 기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