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춤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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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야류의 무대적 수용에 의한 연극 콘텐츠 창출 (Creating Theatrical Contents Out of Stage Adaptation of Dongrae-yaru)

  • 이기호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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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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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5-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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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전통연희에 대한 공연인류학적 접근을 통하여 새로운 연극 콘텐츠 창출 가능성을 고찰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오늘날 전승되고 있는 전통연희는 역사적으로 악 희 극의 갈래로 변천, 발전되어 온 전통공연예술이다. 그 중에서도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인 동래야류는 부산시 동래 지역에서 전승되어 오는 전통 탈놀음으로 악 희 극의 공연특성이 통합된 형태로 연희되고 있다. 21세기의 한국연극은 포스터 모더니즘 문화현상을 거친 후 다시 리얼리즘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반면 대안연극에 대한 관심도 더욱 고조되고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그 대안으로 새로운 연극형식 창조의 영감을 전통연희의 공연성에서 탐색하고자 한다. 전통연희 중에서도 전통공연미학인 악 희 극의 특징이 잘 조화되어 전승되고 있는 동래야류로부터 원초적인 공연성의 본질과 원리를 밝혀내어 새로운 연극형식 및 연극 텍스트를 창출하는 모티프로 활용하고자 한다. 동래야류에서 나타나고 있는 신명풀이에 바탕을 둔 악 희 극의 요소들, 즉 향토적인 음악과 세련된 춤사위, 해학과 풍자와 기지, 양식화되고 약호화된 연극형식의 무대적 수용으로 새로운 연극 콘텐츠의 창출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장생보연지무의 균천악, 구변작대도와 구천도와의 연관성 - 『여령정재홀기』와 「이병성기록서」를 중심으로 - (Gyuncheonak of Jangsaengboyeonjimu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Gubyeonjakdaedo and Gucheondo - Focusing on 『Yeoryeong Jeongjae Holgi』 and 「Lee Byung-sung Record Book」)

  • 이하경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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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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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8-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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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본 연구는 장생보연지무 창사에 '균천악'이 등장하는 것과 '구변작대도'가 도교·불교의 구천도와 서로 연관이 있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 장생보연지무는 다른 어느 궁중정재보다 다양한 춤사위와 구도의 변화를 가지며 '구변작대도'라 하여 아홉 번 대형이 바뀌는 것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정재다. 『여령정재홀기』와 「이병성기록서」에 기록된 구호(口號)과 창사(唱詞)·구변작대도를 비교하여 보았는데 『여령정재홀기』에서는 전문(全文)이 기록되어 있지만 「이병성기록서」에서는 구호가 축약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창사의 경우 『여령정재홀기』에서 '삼원 균천악노래의'로 기록하였던 것을 「이병성기록서」에서는 '삼원 균천악구여원'으로 변화가 있었으나 균천악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홀기에 기록된 '구변작대도'를 균천의 의미와 더불어 도교·불교의 구천도를 적용하여 연관성을 추론하였고, 1829년(순조 29)효명세자가 작품을 예제할 때 균천 사상을 구호와 창사·구변작대도에 넣어 작품을 만들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울산덧배기의 전승을 위한 기본교육과정 연구 (A Study on the Basic Movement Instruction for Inheritance Education of Ulsan Dutbeki)

  • 최흥기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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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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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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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풍속에 의해 자연스럽게 전승된 울산덧배기는 급격하게 변화한 현대사회의 환경과 함께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이 연구는 울산덧배기를 전승 교육하기 위하여 기본동작으로 교수하는 방법을 연구한 것이다. 강습 대상은 울산덧배기를 처음 접하는 사람 위주로 하였다. 교육과정은 먼저 울산덧배기를 배우는데 있어서 몸과 마음을 준비하는 상태이다. 그리고 울산덧배기의 기본 교육과정은 교육과정, 굿거리장단의 기본 동작, 자진모리장단의 기본 동작을 순서로 하였다. 다음은 연결 동작에 의한 춤사위 익히기를 진행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초보자가 시간과 공간이 제한된 강습실에서 울산덧배기를 전승받기 위한 방법이다. 이렇게 울산덧배기 춤을 교수하는 방법을 연구한 것은 풍속에 의해 자연스럽게 전승된 덧배기가 단절되어가는 현실에서 일반시민들에게 무형문화를 전승하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이 연구의 성과는 사라져가는 울산의 무형문화인 덧배기를 보호하고, 이를 시민들에게 전승할 수 있게 기본적인 동작으로 교수하는 방법을 연구한 것이다.

설장고 놀이로부터 춤 변용으로의 텍스트 읽기 - 호남우도농악 이경화 설장고춤의 변용에 관해 - (Reading the text of transformation from Seoljanggo Nori to dance - Regarding the transformation of Honam Udo Farmers' Music Lee Gyeonghwa Seoljanggo Dance -)

  • 김지원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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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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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1-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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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 연구는 민속예술인 춤이 놀이문화에서 분리되어 독자적인 춤 예술이 되면서 예술적 의미로 규정되는 춤 분석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있다. 특히 한국의 민속예술인 춤은 두레와 같은 성격의 공동체적 성향이 강하고, 독자적인 개인 예술이라기보다는 함께 아우르는 예술로서 같은 형식과 리듬의 반복적 양식을 당연히 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자적인 형식의 춤은 근대화가 될 무렵 무대화의 영향으로 더욱 섬세해지고 예술적인 면모를 갖춰갔다고 단언하기에 앞서, 민속춤의 기저에는 독자성을 추구하기에 충분한 기량의 예술적 소재가 다량 있었다고 보는 견해이다. 그 중 설장고 놀이에서 설장고춤으로의 예술적 변용은 현재 한국을 대표할 만한 독자적인 예술로서 우리민족의 흥과 신명이 여실이 드러난 단연 돋보이는 종목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전통예술의 나아가야 할 한 단면을 춤이 독자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어 예술형태를 보이고 놀이에서 발전 되었는가에 대해 분석하는데 의의가 있다. 그 중 설장고의 놀이적 변형과 현재 춤으로 무대에서 선보이고 있는 설장고춤에 대해 호남우도 농악의 멋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경화 설장고춤을 중심으로 텍스트 읽기를 한 것이다. 과적으로 독창적인 구성이 돋보이는 가락과 춤사위가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양식에서 춤을 통해 기예를 표출하고 점차 세련된 기교로 발전해 과는 과정에 이경화의 설장고춤은 전통을 향해 새로운 시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 즉 민속춤의 예술화에 있어서 놀이적 성향인 농악의 설장고 춤사위를 미적 형식으로 승화해 무대기법으로서도 세련된 양식을 도입하고 있었다. 이는 전통과 재창조라는 예술의 교훈을 현실성 있게 정립한 민속예술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육적 효과를 모색하고 한국적 정서를 기반으로 창작의 실현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한영숙류와 이매방류 승무의 계통적 성향 연구 (Study on Genealogical Character of Buddhist Dances of Hang Yeon Suk and Lee Mae Bang)

  • 정성숙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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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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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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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승무는 대표적으로 중요무형문화재 27호로 지정된 한영숙류와 이매방류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두 승무는 같은 춤임에도 불구하고 전승지역이 다르고 계통적 차이 때문에 각기 다른 독특한 형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승무에 관한 연구는 어느 한 계보만의 춤사위 연구나 한영숙춤은 경기(중부류)이며 이매방춤은 호남류라는 지역적 관점에서 비교하는 연구가 주류를 이루었었다. 그러나 최근 이병옥에 의해 예인춤에는 재인계통춤과 기방계통춤이 다르다는 설과 민속춤 중에서 민간춤은 지역연고가 강하지만 예인춤은 지역연고가 약하다는 설을 제시하여 학계의 관심이 모아졌었다. 따라서 본 연구의 목적은 승무의 춤사위에 나타난 계통적 성향을 고찰하여, 한영숙 승무는 재인계통 승무이고 이매방 승무는 기방계통 승무임을 밝히는데 있다. 즉 이매방 승무와 한영숙 승무를 비교한 논문이나 연구실적 중 동작소를 분석한 논문, 승무 염불과장의 춤을 비교한 논문, 타령과장을 비교한 논문 등 3편에 대하여 계통적 관점에서 재분석하여 성향적 특성을 비교 고찰하였다. 그리하여 한영숙류와 이매방류를 중심으로 비교분석한 승무의 계통적 성향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면, 첫째, 한영숙 승무는 재인계통춤의 주된 특성인 남성성, 상향성, 진취성, 역동성, 외향성, 대담성, 기품미를 보이고, 이매방 승무는 기방계통춤의 주된 특징인 여성성, 하향성, 후퇴성, 미동성, 내향성, 소담성, 교태미를 보인다. 둘째, 두 승무의 성향에서 가장 많이 표출되는 부분은 계통적 특징이며, 그 다음은 본성적 특징, 그리고 지역적 특징이 조금 나타났다. 셋째, 두 승무가 계통적인 성향이 크지만, 한편으로는 뒤바뀐 전승자의 성별, 즉 기방계승무는 남장인 이매방이, 재인계 승무는 여자인 한영숙이 전승한 관계로 반계통적 성향도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넷째, 두 승무가 비록 계통성과 지역성이 다를지라도 동시대에 전승된 민족춤으로서의 사실상 유사한 점도 많아 차이점 못지않게 공통점도 간과 할 수 없음도 알 수 있었다. 결국 두 춤은 같은 한국민족의 춤이며, 동시대 춤이다. 그렇다고 혼합 되어서도 안 된다. 미미한 차이라 할지라도 서로 다른 유파를 끝까지 지키면서 전승해야한다고 본다.

<진주검무>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이후의 변화에 관한 소고 (An Essay on the Change of Jinju Sword Dance after being designated as an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Asset)

  • 이종숙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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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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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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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 연구는 <진주검무>가 1967년 1월 16일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된 이래 변화되고 있는 모습과 그 변화의 특징 및 보존 전승의 현황을 파악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진주검무>가 대를 이어가면서 변화를 거듭했고, 그로써 현재의 춤을 정립하게 된 정황을 파악하려는 것이다. <진주검무>는 1967년부터 2015년 현재 3대째의 보유자를 인정하였다. 제1세대 보유자는 권번 기녀 출신 8인이 1967년 인정되었다. 보유자들 간의 불화와 일부 보유자의 사망, 개인적인 경제활동 등의 이유로 전승교육이 잘 이루어지지 못했다. 따라서 전승교육과 활동의 구심점이 필요한 가운데 1978년 6월 21일에 성계옥이 제2세대 보유자로 추가 인정되었다. 비 기녀출신 성계옥의 활동 시기에는 <진주검무>의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가장 크게 보였다. 2009년 성계옥의 사망 후 제3세대 보유자는 김태연과 유영희로 2010년 2월에 인정되었다. 1966년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부터 2014년의 영상을 기초하여 비교한 춤과 그 주변의 변화 결과는 다음과 같다. 반주음악편성에 3세대 간 변화가 있었다. 1세대 영상(1970년)은 약 15분 공연했는데, 2세대 영상(2002년)는 25분여를 춤추도록 했다. 염불도드리 장단을 긴염불(상령산)로 해석하여 느리게 연주하였고, 본래 염불 15장단의 춤을 39장단까지 추가함으로써 시간을 길게 했다. 3세대(2013 2014년)에는 다시 15장단으로 환원된 춤을 추고 있다. 다만 긴염불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1세대 때는 3분간 추었던 염불을 3세대에서는 5분여를 춤추고 있어서, 2세대로부터 느림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춤 구성면에서 2세대에는 긴염불을 20여 장단 추가하면서 아(亞)자 모양의 춤 대형구성이 추가되었다. 3세대 공연에서는 실시하지 않고 있다. 춤사위 면에서 방석돌이 동작의 허리재기가 눈에 띄게 유연성을 잃어가고 있는 양상이다. 또 1장단의 시가가 늘어진 경향을 보인다.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당시 1967년에는 칼 목이 돌아가는 것을 사용했는데, 2세대 보유자에 의해 1970년대 말부터 현행과 같이 칼목이 돌아가지 않는 것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칼의 모양도 1966년의 "조사보고서"는 반월형의 뾰족한 모습인데, 현재와 같은 직선형 칼을 사용한 것은 1970년 영상에서부터 보인다. 전립과 전복, 한삼착용의 기본 양식은 변화가 없으나, 한삼 색동 배열이 "조사보고서"와 달라졌다. 또 남색치마를 입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이상의 결과로 볼 때, <진주검무>는 지정 이후 약 50년 동안 변화가 능동적으로 실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주로 제2세대 성계옥 보유자를 주축으로 변화가 일어났다. 중요무형문화재의 전승과 보존이라는 명제에서 볼 때, 춤 종목은 장단과 춤의 조화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가 중요무형문화재로서 검무의 오랜 전통성을 보존 전승하려는 노력이 강화될 수 있기를 바란다.

양주별산대놀이 상좌·옴중춤의 전승양상 고찰 (A review on the transmission aspect of Sangjwa chum and Omjung chum in Yangju Byeolsandae Nori)

  • 박인수;김지훈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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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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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8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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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고는 양주별산대놀이의 주요배역 중 하나인 상좌와 옴중의 '춤'을 중심으로 전승양상을 살펴본 연구이다. 먼저 1929년부터 1942년까지 조종순, 정한규, 박준섭, 김성태 연희자를 토대로 조사된 자료들을 살펴본 결과, 현재 거드름춤으로 유명한 두 배역 모두 타령장단의 깨끼춤만 연행하였다. 상좌의 경우 다섯 종류의 깨끼사위를 중심으로 연희자의 재량에 맞춰 자유롭게 연행되었다. 제2과장에서 연행된 옴중은 춤보다는 재담이 주가 되는 배역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연행을 살펴본 결과 두 배역은 물론 다른 배역의 춤에도 큰 변화가 보이진 않았다. 이는 당시 일제의 억압으로 인해 제한된 환경 속에서 탈놀이의 명맥만을 유지해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해방이후부터는 김성대를 중심으로 탈놀이의 복원에 많은 힘을 쓰게 된다. 한국전쟁 중에도 연희자들은 탈놀이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연희자들을 길러내는 등의 노력을 해왔다. 종전 이후 살아남은 연희자는 박준섭, 박상환, 김성태, 이장순이었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탈놀이 복원을 꾸준히 이어갔다. 이시기부터 두 배역에 거드름춤의 연행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상좌는 그간 타령장단에 행하던 벽사의식무가 염불장단에 연행되었고, 의식무였던 깨끼춤은 매우 활발한 춤으로 변모된다. 옴중도 용트림이라 불리는 거드름춤의 연행이 추가되어, 춤의 비중이 매우 높아졌다. 이때까지 거드름춤의 연행을 사위로 구분하지 않고, 행위만을 서술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춤사위가 완벽하게 정립되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 지정이후, 상좌춤의 연희자가 박상환에서 이병권으로 넘어가면서 이전의 연행을 중심으로 한층 더 정리된다. 당시 상좌가 연행한 거드름춤은 연잎이 연행하는 거드름춤의 구조와 같았으며, 본 구조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춤의 순서를 정립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옴중춤은 박준섭 이후의 연행부터 기존에 비해 장삼을 쓰는 전개가 조금 더 순차적으로 정리되었다. 정리된 옴중춤의 연행구조도 노장춤의 연행구조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였다. 두 배역 모두 연잎춤과 노장춤의 구조를 직접 분석하여 안무하였다기 보다는 연희자가 춤을 연행해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 구조가 차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처럼 두 배역 모두 오랜 기간 보존해오는 과정에서 연행되는 장단과 춤사위가 늘어났으며, 사위가 장단에 맞게 정리가 이루어져 춤이 더욱 깔끔해졌다. 여러 연희자들의 노력 덕분에 상좌춤은 '상당한 경지에 오른 연희자만이 출 수 있는 춤'으로 옴중춤은 '양주별산대놀이를 대표하는 춤'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전통무형문화재의 복식문화컨텐츠 개발 -동래야류 의상 디자인의 현대화 작업 (Contents Development Related to Costume Culture in Traditional Intangible Cultural Properties -The Modernization of Costume Design in Dongraeyaryu-)

  • 김순구
    • 디자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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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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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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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현대는 정보화시대의 절정에 도달한 상황으로 디지털문화로 인한 문화범람 속에 자리한 듯하다. 동서의 예술과 문화가 서로 접목되어 퓨전문화의 의미가 보편화되고 삶의 질이 향상되어 그 어느때보다도 풍부한 문화적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칫 문화의 혼합으로 문화원류를 저버릴 우려와 함께 특히 우리 문화에 대한 가벼운 인식과 이의 혼합보존에 있어서 자리매김이 소중하며 더 나아가 다음 세대들이 이어나갈 우리문화의 가치에 대한 재조명이 중요시되는 시점이다. 이에 본 연구자는 부산지역의 거대한 축제역할을 하며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동래야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어 이의 전수와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연구하게 되었다. 무형문화재를 구성하고 있는 음악, 의상, 춤사위, 소품 등의 컨텐츠 중 시각적인 효과가 크고 과거와 현재에 그 형태적 차이가 큰 의상부분을 택하여 개발부분으로 설정하였다. 탈의 해학성과 어울리면서 신세대들이 선호할 수 있는 의상으로 디자인의 현대화를 제안하므로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며 한편 지역문화축제 활성화를 위한 작은 모티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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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옥진 1인 창무극에서 무(舞)의 한국적 정서와 예술적 가치 분석 (In Gong Ok-jin's solo performance of Changmugeuk Analysis of the Korean sentiments and artistic values of the choreography)

  • 김지원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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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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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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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아직 학계에서는 공옥진의 춤 인생에 관해 춤의 예술적 가치에 대한 연구는 매우 부진하다. 그녀의 인생은 타고난 예인의 집안에서 나고 자란 소질과 풍부한 감성, 각설이패시절과 유랑예인집단에서의 걸립 공연 당시의 애환, 창무극 활동기에 겪었던 <병신춤>의 위기와 극복, <동물춤>으로의 전환, 그리고 투병생활을 하며 망가진 몸을 극복하며 <환자춤>이라는 공연을 하기까지 삶은 그리 관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삶의 질곡은 늘 예술적 발로가 되었고, 예술은 그녀가 살아가기 위한 위안이자 큰 원동력으로 작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악가무(樂歌舞) 일체 형식이란 우리민족 고유 예술의 특성에 있어 무(舞)는 음악과 노래의 비중에 비해 다소 부차적인 몸짓 예술로서 존재한 것만은 사실이다. 공옥진의 창무극에서 해학적인 재담과 판소리에 이어 독창적인 춤사위는 몸짓 행위하나하나에 무엇보다 집중하고 있다. 무엇을 전달하고자 그리도 원초적인 애를 쓰는지, 말보다 앞선 제스처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기에는 무엇보다 춤이라는 의미를 각인시키며 춤의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특히 공옥진의 <병신춤>이라 부르는 춤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것으로, 무엇이 한국인의 정서에 부합되어 몸짓언어로 발화되며 예술적 가치를 지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의 원초적인 정서를 공감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따라서 본 연구는 공옥진 1인 창무극에서 무(舞)의 독창적인 형태를 고찰해보고 한국적 소재와 전통의 계승방식에 있어서 우리전통춤의 독자적인 정서가치를 나름대로 정리하는 수준에서 연구해 본 것이다.

<송파산대놀이> 문화재 지정 전후 연희자 연구 ( Research on performers of Songpa Sandae-nori before and after the designation as cutural heritage)

  • 이효녕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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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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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83-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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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고는 문화재 지정을 전후로 한 송파산대놀이 연희자들의 삶과 연행을 살펴보면서, 그 속에서 나타나는 송파산대놀이의 변화 및 전승양상을 고찰한 연구이다. 2장에서는 송파산대놀이의 유래설과 을축년 대홍수 이전 연희자들에 대한 기존의 논의를 검토하면서, 이를 통해 발견되는 연희자들의 인식과 특징에 대해 논의했다. 이어 을축년 이후 송파산대놀이를 주도 했던 돌마리 연희자들을 중심으로 문화재 지정 전까지의 전승양상을 살폈다. 그 결과 그동안 부족했던 돌마리 연희자들의 연행과 삶의 행적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하게 됐으며, 특히 이범만, 여태산, 엄준근 등에 대한 실상은 기존 연구와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3장에서는 허호영을 중심으로 문화재 지정과 그 이후의 전승양상을 고찰했다. 이제까지의 논의에서는 허호영이 문화재 지정에 큰 기여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졌는지는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또한 허호영 자체에 대해서도 밀도 있게 논의되지 않아, 마치 수수께끼의 인물과 같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여러 문헌과 기록을 재검토하고 제자들, 현지인들의 증언을 종합한 결과, 허호영이 송파산대놀이는 물론, 다양한 전통예술의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외에도 허호영이 남긴 재담, 춤사위, 탈 등은 그의 연행을 새롭게 평가할만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아울러 위와 같은 사실들은 송파산대놀이를 떠나 현재 그 실체가 선명하지 못한 본산대놀이의 연행양상을 고구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