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청자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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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각운문청자의 제작현황으로 본 조선시대 관요의 설치와 지방 가마 (The Installation of Royal Kilns in Joseon Dynasty and Its Impact on Local Kilns)

  • 오영인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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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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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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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 논문은 조선시대 음각운문청자의 제작 추이에 주목하여 관요 운영이 지방 가마에 미친 영향과 그 결과에 대해 구체적인 규명을 시도한 글이다. 이를 위해 음각운문청자가 제작된 가마와 제작시기를 밝히고, 15세기 관요에서 제작된 청자의 문양을 확인하는 동시에 관요가 설치 운영된 이후 지방에서 자기가 제작된 양상을 살펴보았다. 음각운문청자는 관요가 운영되기 이전 전라도 일대에서 공물자기와 함께 제작되던 청자였다. 동일 가마에서 제작된 여타의 자기에 비해 태토의 발색이 밝고 정제수준이 높았으며 시유상태와 유조가 고른 양질 자기였다. 더욱이 음각운문청자에 일정한 규격과 위치로 시문된 문양은 고려청자의 운문과 조선시대 공예품의 운문이 독창적으로 반영된 특징을 보였다. 특히 음각운문청자는 관요가 설치되기 이전에 각 지역별로 다양한 공예적 특징을 보일 수 있었던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지역색이 뚜렷하게 반영된 자기였다. 지방 가마는 관요의 설치와 운영으로 인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 양질 백토를 사용하는데 제약을 받았고, 자기 공급처의 변경에 따라 왕실과 중앙 관청이 아닌 지방 관아나 민가에서 사용할 자기를 제작해야했다. 뿐만 아니라 기술력이 뛰어난 사기장의 대다수는 관요로 차출되어 지방의 자기 제작에 큰 타격을 끼쳤다. 그 결과 관요가 운영된 이후 지방 가마의 대다수는 인력과 자원확보에 어려움을 겪었고, 음각운문청자 역시 전라도 일대 가마에서 더 이상 제작되지 않았다. 반면에 관요에서는 지방 사기장 기술력의 이전에 따라 음각 운문청자가 일시적으로 제작되는 양상을 보였다. 즉, 음각운문청자는 관요로 차출된 전라도 사기장의 기술력이 관요에 투영된 증거인 동시에 관요 자기의 제작이 이내 안정되었음을 보여주는 단서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가스가마를 사용한 최적의 청자 소성방법 연구 (Optimal firing method of the Celadon using gas kiln)

  • 김상곤
    • 에너지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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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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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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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연구는 가스가마를 사용하여 청자를 소성 할 경우 최적의 소성조건을 구하고자 하였다. 특히 환원분위기와 산화 분위기 등의 소성분위기를 가마내의 CO 농도로 명확하게 정의하였다. $1250^{\circ}C$로 청자유약을 소성한 경우, 가마 안의 일산화탄소 양이 0~4,500PPM에서는 산화 4,500~25,000PPM에서는 중성, 25,000PPM 이상에서는 환원분위기가 됨을 관찰 할 수 있었다. 가스 가마 안의 소성분위기와 소성온도를 균일하게 하면서 가스소모량과 소성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가마 안의 연돌을 일부 막은 후 댐퍼로 조절하면 된다. 이와 같은 조절방법으로 가스량은 40%, 소성시간은 1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강진 삼흥리 가마 소토시료의 고고지자기 연대측정 (Archaeomagnetic Dating of Baked Earth Samples of Samheung-ri Kilns in Gangjin Region)

  • 성형미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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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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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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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전라남도 강진군 삼흥리에서 A~F의 6개 지구로 나누어 유적조사가 진행되었는데 청자가마와 도기가마로 이루어진 총 16기의 가마가 발견되었다. 그 중에서 A D E F지구에서 청자가마 3기와 도기가마 6기, 총 9기의 가마에 대해 소토시료를 채취하여 고고지자기 분석이 이루어졌다. 이 소토시료는 소성상태가 양호하며 토질도 좋은 편이어서 신뢰도가 높은 고고지자기 데이터를 구할 수가 있었다. 고고지자기 분석을 통해 A.D.990~1250년 사이에 해당하는 9기 가마 각각에 대한 고고지자기 연대를 구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결과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고고학적 연대와 일치한다. 그리고 지구별로 가마들의 조업시기에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는데, D지구(A.D.1100년) ${\rightarrow}$ E F지구(A.D.1180년) ${\rightarrow}$ A지구(A.D.1210년)의 순서로 고고지자기 연대에서 시기 차이가 확인되었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D지구의 가마가 가장 이른 시기에 조업이 끝나서 가마들이 폐기되었고 다음은 E와 F지구가 거의 동시기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A지구가 가장 늦은 시기까지 조업이 진행되다가 폐기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법천사지 청자와 손곡2리 4호 가마터 청자의 도자사적 성격과 과학적 분석을 통한 생산 가마터 추정 연구 (A Study on Production Kiln Site Estimation, based on Historical Ceramic Characteristics and Scientific Analysis of the Celadons Excavated From the Beopcheon Temple Site and Son-gok 2-ri 4th Kiln Site)

  • 이병훈;윤석인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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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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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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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손곡2리 4호 가마터 출토 청자는 원주 법천사지와 근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법천사지 출토 청자와의 유사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따라서 자연과학적 방법을 통해 상관성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총 19개 대상 청자에 대한 도자사적 성격을 알아보고, 과학적 분석을 진행하였다. 먼저, 과학적 분석결과 분석대상 청자 태토의 화학조성은 $RO_2$ 3.79-7.77mole, $RO+R_2O$ 0.33-0.49mole 영역에서 분산된 분포를 나타낸다. 미세구조 확인결과 실생활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원주 법천사지 출토 청자는 대부분 자화 상태가 양호하며, 손곡2리 4호 가마터 수습 청자 중에는 시유와 소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청자가 일부 확인되었다. 태토의 결정상 분석결과 quartz와 mullite가 검출되었으며, 손곡2리 4호 가마터 수습 청자 중 일부에서는 corundum이 검출되었다. 분석대상 청자 대부분은 $1150{\sim}1200^{\circ}C$에서 소성되었으며, 일부 $1100^{\circ}C$ 이하 온도에서 소성된 청자와 $1200^{\circ}C$ 이상 고온에서 소성된 청자도 확인된다. 분석 결과 법천사지와 손곡2리 4호가마터 청자 태토에서 다양한 화학조성 및 제작기법이 확인되었으며, 손곡2리 4호 가마터 청자가 법천사지에서 사용된 청자의 생산가마터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다만, 희토류 원소 분석에서는 법천사지와 손곡2리 4호 가마터 수습 일부 청자에서 일정한 규칙성을 갖는 분포 패턴을 나타내어 도자기 제작에 사용된 원료가 동일기원일 가능성을 제시한다. 도자사적으로 살펴보면, 법천사지 출토 청자와 손곡2리 4호 가마터 수습청자는 성형방법과 번조방법에서 동일한 제작기법으로 확인된다. 또한 전반적인 청자의 기형과 문양의 양상으로 봤을 때, 12~13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부산 녹산동 조질청자의 고고화학적 분석 (An Analysis of Archaeological Chemistry on the Low-grade Celadons Excavated at Noksan dong, Busan in Korea)

  • 남경민;김규호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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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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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45-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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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부산 녹산동 가마터에서 출토된 12세기 조질청자를 중심으로 가마터 4기에서 출토된 35점을 분석 시료로 선정하고 색도, 비중 및 흡수율, 미세구조 관찰과 태토와 유약의 조성을 분석하였다. 청자의 태토 색도는 가마에 상관없이 모두 비슷했으며 4 5호 가마 출토 선정 도편은 2 3호보다 명도가 어둡고, 채도는 회색계와 갈색계로 구분된다. 유약은 적색과 황색의 기여도가 높은 편이다. 선정된 도편의 기공률은 회색계 8.8%이고 갈색계 16.1%로 태토 색상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태토와 유약의 주성분은 청자의 전형적인 성분 범주에 속하지만 $TiO_2$의 함량이 차이가 있다. 2 3호 가마와 4 5호 가마 청자의 가시적 차이는 사용 원료보다 수비 및 번조공정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으며 $Fe_2O_3$$K_2O$의 함량 차이는 공정 과정에서 배합기술의 변화를 시도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녹산동 청자는 초벌과정 없이 태토에 유약을 바른 후 한 번에 구웠던 제작 공정으로 인하여 태토가 충분히 자화되지 못했으므로 양질의 청자를 제작하기 위하여 가마별로 공정 차이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고려 음각 '○'문과 '⊙'문청자의 연구 (A Study on Goryo Celadons of intaglio '○' pattern and '⊙'pattern)

  • 한성욱
    • 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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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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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3-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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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문과 '⊙'문청자는 굽안바닥 중앙에 부호를 새긴 것으로 제작자(공방)를 표기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들 청자가 생산된 곳은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8.23.27호 가마터인데 'e'문청자는 23호와 27호에서만 확인되고 있어 그 생산지가 더욱 한정적이다. 기종은 완과 대접, 접시, 잔, 병, 합, 퇴주기 등이 확인되는데 접시가 수량도 많고 기형도 다양하다. 이들 청자는 대부분 전성기 청자의 문양과 같은 도범을 이용한 압출양각 기법으로 시문하고 있는데, 이는 문양과 크기 등 장식의장을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는 제작방법으로 양질청자를 생산하는데 적합한 방법이다. 또한 이 시기 상감기법이 보편화되지 않았으며, 압출양각 기법을 이용하여 유사한 청자를 다량 생산하여 공급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들 청자는 내화토 비짐이 일부 있으나 대부분 전면 시유 후 U자형 굽의 안바닥에 규석을 받쳐 갑번하였다. 이들 청자는 강화 희종 석릉과 파주 혜음원지, 일본 겸창시 약궁대로 무가 가옥 출토품 등을 통해 1230년대를 중심으로 한 13세기 2/4분기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이들 청자는 비색청자를 대부분 12세기로 편년하면서 오는 13세기 청자의 공백을 메워줄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자료이다. 그리고 이 시기는 몽고에 의한 외세의 충격이 있었으나 중앙통제가 원활하게 이루어져 비색청자가 계속 생산되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 또한 강화의 갑곶리와 관청리, 행궁의 역할을 하였던 성주 혜음원, 지방의 대찰이었던 경주불국사와 남원 실상사, 대구소와 인접한 장흥의 유력층 유적 등에서 출토되고 있어 상류층을 위해 생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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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기지역 요업의 성격 (Trends of Ceramic Industry in the Gyeonggi Province During the Goryeo Period)

  • 장남원
    • 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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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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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3-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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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고려시대 수도 개경을 중심으로 경기$\cdot$황해도 일원은 국가의 주요 기관들과 왕실 및 관료, 상업시설, 사찰 등 풍부한 도자기 소비처가 집중되었던 곳이자 국내에서 처음으로 자기생산이 이루어진 곳이다. 요장의 규모와 구조, 생산품의 원료, 번조방법 등에서 중국남방 월주요계 전축요의 요업방식을 그대로 채용하여 중국기술이 직접 이식되었으나 중국과 달리 청자와 백자를 같은 요장에서 생산함으로써 초기부터 국내 상황에 맞춘 생산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원활한 자기생산을 위한 일정한 체체 구축이 불가피하였을 것으로 경기지역의 자기생산을 초기부터 국가적 운영체제 아래 이루어졌던 것으로 본다. 이는 개경 인근의 요장들이 서로간에 일정한 질과 조형을 가진 자기를 생산하고 있었던 점, 초기 전축요 시기부터 국가용 제기를 만들고 있었던 점, 또 실제로 소나 부곡의 존재와 일치하는 가마터들이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국가에 요업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직제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청자생산의 중심이 강진으로 옮겨진 이후 경기지역은 지역 수요에 부응하는 생산으로 그 성격이 바뀌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강진의 청자요업이 활성화 된 이후에도 경기지역의 전통적 요장들에서는 일정기간 국가용 제기를 만들고 있었음이 확인되어 고려요업의 성격과 변천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한서를 제공하였다. 한편 개경을 중심으로 하는 경기일대의 많은 소비처들의 존재와 그 출토품의 양상은 기록에서와 마찰가지로 개경 인근에 고려 중기 이후까지도 운영되었던 생산지가 현재까지 알려진 것 이상으로 터 많이 존재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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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高麗) 철화(鐵畵) '성(成)' 명청자(銘靑瓷)의 특징(特徵)과 제작시기(製作時期) (Characteristics and Production Period of Goryo(高麗) Iron 'Sung(成)' Inscribed Celadon)

  • 한성욱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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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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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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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철화(鐵畵) '성(成)' 명청자(銘靑瓷)는 전라남도(全羅南道) 강진군(康津郡) 대구면(大口面) 사당리(沙堂里) 7호 가마터에서만 출토되는 특징적 청자로 붓을 이용하여 굽안바닥 중앙에 명문(銘文)을 쓰고 있다. 명문이 눈에 잘 띄지 않은 곳에 표기되어 있으며, 필체가 다양하여 생산에 여러 사람이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어 제작자보다는 공방(工房)을 표기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유약(釉藥)과 태토(胎土), 기형(器形), 문양(文樣), 번법(燔法) 등 품격(品格)이 동일(同一)하여 같은 제작기법을 사용하여 같은 시기에 제작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기종(器種)은 ${\Box}$과 대${\Box}$(大), ${\Box}$시(匙), 잔(盞), 합(盒), 병(甁) 등 일상(日常) 생활용기(生活容器)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시문기법(施文技法)은 음각(陰刻)과 상감(象嵌)보다 압출양각(壓出陽刻) 기법을 특히 선호하였으며, 음각보다 상감의 예가 적어 이 시기 상감기법이 보편화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문양은 국화문(菊花文)과 모란문(牡丹文), 앵무문(鸚鵡文), 연판문(蓮瓣文), 연당초문(蓮唐草文) 등으로 권위나 위엄의 의미를 갖는 특별한 문양은 확인되지 않는다. 굽은 합과 접시의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U'자형으로 성형하였으며, 번법(燔法)은 내화토(耐火土) 비짐이 일부 있으나 전면(全面) 시유(施釉) 후 굽 안바닥 3~4 곳에 규석(硅石)을 받쳐 굽고 있다. 생산시기(生産時期)는 현재 사당리 7호 가마터 이외의 유적에서는 확인되지 않아 유사한 성격을 갖는 유적 출토품과의 비교를 통해 13세기(世紀) 2/4분기(分期)에 생산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고품격의 양질청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품질이 떨어지는 일반적인 양질청자가 중심을 이루고 있어 왕실(王室) 등의 최상류층보다 한 단계 낮은 계층에 공급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成)' 명청자(銘靑瓷)는 그동안 전성기(全盛期) 음 양각 기법의 청자를 모두 12세기대로 편년하면서 발생하였던 13세기 전반의 공백을 보완할 수 있는 편년 자료로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하겠다.

안성 화곡리출토 고려도기 제작방법에 관한 연구 (A Study on Koryo Earthenware Production method through excavated from Hwakok-ri, Ansung)

  • 서재인
    • 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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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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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5-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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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고려도기가마가 위치한 안성시일죽면 화곡리 산 1번리는 고려시대 초에 죽주였다가 11세기 초반인 현종18년(1018)에 광주목에 속하여 고려말기까지 이어졌다. 고려의 지방제도를 살펴보면 도자기와 관련된 곳으로 소(所)를 들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와소(瓦所)와 자기소(瓷器所)가 있었다고 한다. 송나라사람 서긍의 $\ulcorner$선화봉사고려도경$\lrcorner$의 기명(器皿)조에는 와(瓦)와 도(陶)가 나오는데 와는 기와와 도기를, 도는 청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화곡리가마터도 와소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발굴조사된 도기가마 1구는 동남향의 산언덕에 위치한 지하식 단실 가마로 총길이 7m이며 좌측에 도기폐적물이 있다. 출토되는 도기는 그릇의 단단함의 차이에 따라 경질도기와 연질도기로 구분된다. 한 가마 안에서 경질도 기와 연질도기가 출토되는 것은 각각 소성온도를 달리해서 제작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연질도기와 경질도기는 단실 요에서 환원염소성으로 굽다가 아궁이와 연도를 인위적으로 폐쇄하여 산소의 공급을 일시적으로 차단한 상태에서 솔가지 등을 데워 불완전연소에서 생기는 연기(탄소)를 표면에 흡착시키는 꺼먹이소성법으로 제작되었다고 보여진다. 도기의 기종은 경질도기의 경우 구경 10cm$\~$20cm의 호와 구경 20cm$\~$30cm의 호, 병, 반구병, 매병등이 출토되며 연질도기는 구경 10cm$\~$20cm의 소호, 자배기, 시루등이 출토된다. 도기의 제작시기는 출토되는 매병편과 반구병편으로 고려시대임을 알 수 있다. 제작방법은 옹기성형방식인 타날법과 썰질법으로 제작되었다고 보여진다. 유는 경질도기에서만 보이고 연질도기에는 유가 없다. 경질도기의 경우 유가 없는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유가 있는 경우는 (1)병이나 호의 구연부에 녹색발색이 나는 유층이 두꺼운 것이 있으며 인공시유로 보여진다. (2)회청색 기외면에 회녹색, 회갈색 유가 일부 얇게 퍼져있는 경우가 있다. (3)기벽이 얇은 호등의 어깨부위에 얇게 퍼져있는 경우로 자연유로 보인다. (4)회녹색, 회흑색 유면위에 검녹색, 진녹색 유가 덧씌워져 있거나 회청색 기면위에 검녹색, 진녹색유가 흘러내리는 경우가 있다. 연질도기는 꺼먹이 소성법에 의한 검댕이 입혀진 경우와 안 입혀진 경우가 있다. 검댕이 입혀진 경우에는 (1)기외면이나 기내$\cdot$외면에 입혀진 경우가 있고 (2) 일반적으로 출토되는 연질도기보다 경도가 강한 형태로 검댕을 입힌후 물레회전방향으로 마연한 경우가 있다. 안성 화곡리가마는 고려도기의 제작방식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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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 도자기의 화학 조성에 대한 연구 (II): 조선백자 (Study of the Chemical Composition of Korean Traditional Ceramics (II): Chos$\breve{o}$n Whiteware)

  • 고경신;주웅길;안상두;이영은;김규호;이연숙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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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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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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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조선백자에 사용된 재료들에 대한 특성을 연구하기 위하여, 광주관요, 충효동과 다른 4곳의 지방가마에서 출토된 도편들의 태토와 유약의 성분을 분석하고 비교하였다. 조선초기의 백자기술은 고려의 청자기술을 기본적으로 계승하면서, 중국 명대의 백자기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광주관요에서 사용한 태토원료는 청자에 사용되었던 도석과 같은데, 다만 철산화물과 티타늄산화물의 함량이 상대적으로 적고, 칼륨산화물의 함량이 높다. 한국과 중국 남부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이러한 원료로 중국의 경질백자와 같은 좋은 질의 백자를 개발할 수 있었다. 반면, 충효동에서는 중국 북부의 요지들에서 사용되었던 고령토를 발견하고 사용함으로써 질이 좋은 경질백자를 개발하였다. 유약에 사용된 용융재는 대체로 석회석이며, 처음에는 태워서 사용하였으나, 점점 빻아서 사용되는 경향이 증가하였다. 유약을 만들 때 용융재와 혼합하는 점토는 글래이즈 스톤이라고 불리는 기본적으로 도석과 같은 광물이다. 태토를 만들 때 사용하는 도석보다, 일반적으로 입자가 더 곱고, 장석함량이 더 높다. 이 논문의 조선백자에 대한 과학기술적인 연구와 비교는 최근에 빠른 속도로 발굴되고 있는 18~19세기의 가마터에도 넓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