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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神仙)'을 지명소(地名素)로 하는 바위명의 유형과 입지특성 (Types and Site Characteristics of Rocks with Sinsun Relevant Place Name Morpheme)

  • 노재현;박주성;심우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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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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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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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문헌 및 인터넷조사를 중심으로 민간어원적으로 신선사상의 흔적이 장소와 결합하여 고착화된 '신선[仙]' 관련 바위 지명어에 주목하였다. 특히 신선 지명소를 포함한 대표적 지명의 유형을 분류하는 한편, 각 신선 지명별 입지 및 장소 특성을 개관함으로써 바위 지명에 남겨진 신선과 관련된 문화의 흔적을 조명하였다. 본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신선 관련 바위지명 중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지명은 신선바위(52개소)였으며, 이어서 신선봉(38개소), 신선대(31개소) 등의 지명이 압도적으로 많이 발견되었다. 그밖에 강선대(12개소), 선유대(10개소), 사선대(5개소)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2. 신선대는 '대(臺)' 라는 대상 자체의 경관성도 뛰어나지만 원경의 부감경관(俯瞰景觀) 조망이 탁월함 곳에 입지하고 있다. 3. 신선봉의 위치는 해당 산의 최고봉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봉(峰)의 의미에는 '하늘과 맞닿아 있는' 그리고 '우러러 올려보는' 등의 숭배의 개념이 내포된 공간이다. 4. 신선봉에는 신선바위와 같이 '신선 바둑' 또는 '신선 하강'과 관련된 전설을 잉태하고 있는 지명도 상당수 있었는데 '신선과 바둑'은 신선 지명 바위의 민간어원설을 이끄는 매우 중요한 모티프가 되고 있다. 그리고 신선대와 함께 신선바위는 내륙은 물론 해양경관이 수려한 바닷가 암상 위에도 다수 존재하고 있다. 5. 신선 바위가 위치한 고도 분석 결과, 신선봉-신선대-신선바위 순으로 '해당 위치'뿐만 아니라 '지명이 속한 최고봉의 높이' 역시 동일한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신선봉이 산의 정상에 위치하거나 단일 산봉의 명칭으로 불리고 있음에 기인된다. 이에 비해 신선대는 대부분 파노라믹한 원경이 부감되는 곳으로, 정상은 아니더라도 신선경(神仙境)을 이루는 듯한 조망이 펼쳐지는 곳에 입지하였다. 그러나 신선바위는 높은 곳에 위치한 경우와 높지는 않지만 인가에서 멀리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암경(巖景)이 수려하고 계곡이 잘 발달된 곳에 입지하고 있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보아 고도 보다는 장소성에 기인된 지명임을 알 수 있다. 6. 신선지명을 보이는 곳의 암경적 특성은 숭배 대상의 시각적 존재감이 인정되고, 숭배 주체의 태도와도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숭배대상과 숭배주체의 소통방식과 깊이 관련되고 있는데 이는 신선 바위지명의 민간어원설을 이끄는 주요 사유인 것으로 보인다. 7. 신선사상이 시대 변천에 따라 점차 가시적이며 현실적 차원으로 우리 곁에서 구현되어 왔음을 가장 여실이 보여주는 대상이 바로 지명으로 표상(表象)되는 '신선[仙] 바위'이다.

구곡원림(九曲園林)에서 찾는 신선경(神仙境)의 경관 스토리보드 - 괴산 갈은구곡(葛隱九曲)을 대상으로 - (Storyboard of Immortal Land in Gugok-Wonlim - A Special Reference to Goisan -)

  • 노재현;박주성;심우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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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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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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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국내 구곡 중 선유동구곡과 함께 신선 사상적 색채가 가장 농후한 충북 괴산 갈은구곡을 중심으로 제명에 깃든 상징성과 구곡시에 나타난 경관적 특징을 선도적 관점에서 풀이하였다. 아울러 구곡문화경관의 이해와 홍보에 부합되도록 갈은구곡의 서사구조를 정리하고 주축(主軸) 이야기의 전달을 위한 경관스토리보드를 제시하였다. 갈은구곡 각 곡의 명칭이나 주변의 각자 그리고 인근 선유동구곡의 경물들과 상호 비교를 통한 갈은구곡 장소와 경관의 의미를 분석 해석한 결과, 신선과 관련된 경물과 고사에는 선계 동경과 불로장생의 염원이 깃들어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신과 인간 그리고 자연이 하나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선인합일(仙人合一)의 상징적 표현으로 보인다. 특히 이곳에는 식물류의 불변성과 동물류의 신령성 그리고 그 배경을 구성하는 자연물의 항상성(恒常性)을 바탕으로 한 장수길상(長壽吉祥)의 의식이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 또한 특징적으로 시각적 종점(visual terminal)에 설정된 9곡 선국암은 바둑이 신선의 도락(道樂)임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으며, 이는 바둑9품계의 위계를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갈은구곡은 풍류나 도학의 성취수단으로서 보다는 신선사상과 관련된 선도적 발상과 신선 관련 모티프 즉 장생과 불사, 신령성, 신선놀음 등의 결속구조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때, 갈은구곡에는 선계지향 및 장생불사와 은일의 정취가 매우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준거한 공간 이야기구조는 '신선의 세계로 들어섬(기(起))'-'신선의 세계가 펼쳐짐(승(承))'-'신선과 함께 함(전(轉))'-'신선이 됨(결(結))'으로 전개 해석되었다. 최종적으로 표층구조에서 읽혀지는 갈은구곡의 경관이미지는 계류의 환경지원성을 바탕으로 이곳에 깃든 수경관의 선경적 아름다움과 구곡동천의 선취(仙趣)적 공간미를 속성으로 하고 있으며, 심층구조로는 바둑 9품계의 '입신(入神)공간'으로 수직 상승하는 서사구조로 정리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강선(降仙)-선경(仙境)-선약(仙藥)-선학(仙鶴)-선유(仙遊)-은선(隱仙)의 6개의 장면(cut)을 주제로 한 갈은구곡의 경관스토리보드를 제시하였다. 선도적 신선사상을 대변하는 장생불사의 신선은 현대 조경의 주요 경관연출 모티프가 될 것이 자명하다. 자연의 불변성과 신령성 그리고 이와 같은 특성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주변 산수경관의 항상성이야말로 한국적 조경설계에서 담아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닐 수 없다.

밀양 금시당(今是堂) 12경의 문화경관 해석 (Interpretation of Cultural Landscape at the Geumsidang(今是堂) sibigyung(12 Landscapes) in Miryang, Gyungnam)

  • 엄태건;김수진;박정임;강한민;심우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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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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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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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조선 중기 밀양의 부호세력이었던 여주이씨 일가의 금시당 이광진 유적을 중심으로 그림, 시문, 기문 등에 나타나고 있는 문화경관으로서의 특성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금시당 이광진은 사회적 혼란기였던 문정왕후의 죽음 이후 중기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응천강변의 백곡에 터를 잡고 금시당을 건립하여 별서를 경영하고자 하였는데, 그가 경영한 금시당은 숙부이자 스승인 월연 이태로부터 자연관과 효행, 산수경영 등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금시당십이경도는 이경홍이 병환으로 위중한 아버지 이광진을 위로하고자 금시당 주변의 아름다운 12경관을 그린 것으로 구전되며, 꾀꼬리봉, 용두산, 무봉사, 마암산, 월연대, 사인당 마을, 영남루, 밀양읍성, 배나무 소, 밤나무 숲, 밀양강변, 삼문동들 등 당시 여주이씨 일가가 소유하고 있었던 땅과 관아를 경관 대상으로 하여 소상팔경이나 사시팔경의 관념적인 산수화가 아닌 실경을 담고 있는 산수화이다. 금시당십이경시는 금시당십이경도에 근거하여 작성된 제화시로서 이광진의 11대손 이용구가 지은 것으로 시간과 계절 그리고 기상의 변화를 노래하였다. 시 12수 모두 칠언절구로 글자 수가 모두 28자로 이루어졌으며, 단순히 그림의 외형적인 묘사가 아닌 작자의 개성에 의해 재산출되었기 때문에 그림에서 보이는 요소들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금시당십이경도는 단순히 효행의 의미뿐만 아니라 밀양의 부호세력으로서 여주이씨 일가 소유의 장원을 나타내고 있으며, 금시당십이경시는 그림을 재산출하여 특정한 명승지로 변화시켜 여주이씨 일가 소유의 영역성을 보다 강화시킬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청소년의 학교폭력노출 유형에 따른 회복과 적응을 위한 요인 간의 종단적 관계 분석: 사회적지지와 회복탄력성을 중심으로 (Analysis of the Longitudinal Relationship between Recovery and Adaptation Factors According to Types of School Violence Exposure in Youth: Focusing on Resilience and Social Support)

  • 김동일;이혜은;금창민;박알뜨리;오지원
    • 교육심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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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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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9-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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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는 서울교육종단연구(SELS) 자료 중 3차 년도(2012년)에 학교폭력 가해 경험과 피해 경험을 보고한 초등학교 6학년 1,137명의 데이터를 이용하여, 학교폭력노출 청소년 유형(가해, 피해, 중복) 별 회복탄력성과 사회적지지의 종단적인 관계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자기회귀교차지연모형으로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초 6(2012), 중2(2014), 고1(2016)의 세 시점에서의 학교폭력노출청소년의 회복탄력성과 사회적지지의 자기회귀 계수를 측정한 결과, 학교폭력노출의 모든 유형에서 이전 시점의 회복탄력성과 사회적지지가 다음 시점의 회복탄력성과 사회적지지에 정적을 유의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이전 시점의 회복탄력성/사회적지지에 대한 지각이 다음 시점의 회복탄력성/사회적지지에 대한 지각을 매우 안정적으로 예측하였다. 둘째, 회복탄력성과 사회적지지의 교차지연효과의 경우, 이전 시점의 사회적지지가 다음 시점의 회복탄력성에 미치는 영향은 피해 경험의 경우에만 유의하게 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가해 집단과 중복 경험 집단의 경우에는 유의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특히, 세 번째 연구 결과로, 회복탄력성에서 사회적지지로의 반대 경로에서는 가해 경험과 피해 경험의 경우에 이전 시점의 회복탄력성이 다음 시점의 사회적지지에 부적으로 유의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사회적지지가 회복탄력성의 보호요인이라는 그동안의 횡단적 연구 결과를 종단적인 관점으로 보완하여, 학교폭력 가해 집단과 피해 집단에서 회복탄력성을 높게 지각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오히려 사회적지지에 대해 낮게 지각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본 연구에서 새롭게 도출해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최종적으로, 본 연구 결과를 통하여 회복탄력성과 사회적지지의 종단적 관계와 본 연구의 한계를 논하고 추후연구를 위한 제언을 하였다.

북인(北人) 학파의 연원과 사상, 그리고 현실인식 (The Origin and Philosophy of the "Northerners School(北人)," and their Perception of the world)

  • 신병주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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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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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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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조선중기 북인의 모집단을 형성하는데 주축이 되었던 학파는 남명학파와 화담학파였다. 경의(敬義)의 실천을 강조한 남명의 사상은 임진왜란 때 다수의 의병장을 배출하였고, 광해군대 정인홍이 북인의 영수로 활약하면서 그 사상이 이어졌다. 이외에 성리학을 절충적으로 이해하고 개방적 성향을 보인 화담의 사상이 북인 학파에 큰 영향을 미쳤다. 광해군대에 북인이 정국을 운영할 때 실천적인 성향이 강해지고, 성리학에 대해 상대적으로 자유스런 분위기가 조성된 것에는 남명이나 화담의 사상적 영향력이 크다고 판단된다. 대북(大北)의 정인홍과 허균, 소북(小北)의 김신국, 남이공 등은 북인의 사상과 현실인식을 적극적으로 피력한 인물이었다. 1623년의 인조반정이후 사상계가 퇴계학파나 율곡학파가 주축이 된 주자성리학 흐름으로 정착되면서 북인(北人)의 사상은 시대의 주류적 흐름에서 밀려나게 된다. 정치사상에도 자파(自派)만이 군자당(君子黨)이라 확신하고 타 정파에 배타적인 입장을 취한 점 또한 몰락의 원인이 되었다. 17세기 중반 인조반정과 호란을 거치면서 조선사상계가 주자성리학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북인(北人)의 사상은 역사의 전면에서 밀려나 저류적인 흐름으로서 그 역사적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북인(北人)의 사상은 17세기 중, 후반 근기남인 학자들이나 18세기의 실학자 이익(李瀷)에게 일정한 영향을 미치면서 그 흐름이 일부 이어졌다. 북인은 조선중기 서인, 남인과 함께 정치, 사상을 이끌어간 대표적인 정파이자 학파였다. 최근 북인의 뿌리가 되는 조식과 서경덕에 대한 연구를 비롯하여, 북인 정치사상의 계승에 대한 연구가 체계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조선중기 이후 정치사와 사상사 연구의 폭을 보다 확대 줄 것이다.

『논어(論語)』 「학이(學而)」 1장의 해석학적(解釋學的) 연구(硏究) (A interpretive Study of the Analects of Confucius's Chapter I-1)

  • 서근식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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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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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9-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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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논어(論語)"의 핵심사상이라고 하면 보통 '인(仁)'을 떠올린다. 그러나, "논어(論語)"의 첫 구절인 "학이(學而)" 1장에는 '인(仁)'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렇다면, "논어(論語)"의 편집자는 왜 "학이(學而)" 1장을 "논어(論語)"의 첫머리에 놓은 것일까? 본 논문은 "논어(論語)" "학이(學而)" 1장에 공자(孔子)의 핵심사상이 함축되어 있음을 서술하였다. "학이(學而)" 1장은 '기쁨(說)' 즐거움(樂)' '군자(君子)'라는 단어가 중심이 된다. '설(說)'은 자신을 수양(修養)하는 단계 혹은 '올바른 관계맺음'을 위한 자격을 갖추는 단계이고, '락(樂)'은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동지(同志)들과 관계를 맺는 단계이다. '군자(君子)'는 천하(天下)의 모든 사람과 '올바른 관계맺음'하는 단계로 공자(孔子)가 제시한 이상적(李想的) 인간상(人間像)을 뜻한다. "학이(學而)" 1장의 핵심인 '설(說)' '락(樂)' '군자(君子)'는 "논어(論語)"의 핵심사상인 '인(仁)' '서(恕)' '수기치인(修己治人)'과 연결된다. '인(仁)' '서(恕)'가 '올바른 관계맺음'을 의미한다면, '설(說)'은 '올바른 관계맺음'을 위한 자격을 갖추는 단계이고 '락(樂)'은 동지(同志)와의 '관계맺음'을 하는 단계이고 '군자(君子)'는 천하(天下) 모든 사람과 '올바른 관계맺음'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수기치인(修己治人)'에 대해 공자(孔子)는 수기이경(修己以敬)(경(敬)으로 자신을 수양(修養)함)${\rightarrow}$수기이안인(修己以安人)(자신을 수양(修養)하여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줌)${\rightarrow}$수기이안백성(修己以安百姓)(자신을 수양(修養)하여 천하(天下) 모든 백성을 편안하게 만들어줌)의 3단계를 제시하는데, 이는 "학이(學而)" 1장의 '설(說)'${\rightarrow}$'락(樂)'${\rightarrow}$'군자(君子)'와 연결된다. 공자(孔子)가 "학이(學而)" 1장을 통해 제시한 '군자(君子)'라는 인간상(人間像)은 '수양(修養)'으로 깨우친 도덕성을 '관계맺음'을 통해 '실천(實踐)'으로 옮기는 인간이다.

모리스 꾸랑의 『한국 서지(Bibliographie Coreenne)』에 수록된 도교경전 연구 (A Study on Taoism Scripture included in Maurice Courant's Bibliographie Coreenne)

  • 김윤경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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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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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9-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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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 연구는 모리스꾸랑의 "한국서지" '도교' 관련 해제들에 대한 고찰이다. 모리스꾸랑은 전임공사인 쁠랑시의 조언과, 한학에 능한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아 3000종이 넘는 도서들을 수집하여 "한국 서지"(1896)를 집필하였다. 모리스꾸랑은 도교관련 경전들을 분류하면서 '경서류', '관성제군 문창제군 부우제군에 대한 숭배의식', '기타'의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모리스꾸랑의 "한국서지"에 담긴 도교 부분은 다음의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 19세기 말 관제신앙의 유행과 삼성신앙의 확대이다. 그의 도교서지는 대부분 19세기 말 조직화 되었고, 삼성신앙을 기반으로 하는 '무상단'에서 출판한 책들을 중점으로 다루었다. 둘째 모리스꾸랑이 자생적인 도교경전을 찾으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는 한글본 "도덕경"을 찾으려 노력했고, 한국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조선난서'인 "문창제군몽수비장경(文昌帝君夢授秘藏經)" 등을 다루었다. 셋째 그의 연구를 통해 당대의 도교의 지형도를 살필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가 살던 시기, 관묘를 중심으로 하는 도교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고, 최초의 도교교단이었던 '무상단'이 조직적으로 활동했으며, "번석자문(飜惜字文)"을 기반으로 하는 종교적 사회실천 모임이 있었다는 것을 살필 수 있었다. 1890년대 조선은 열강사이에서 나라의 주권을 잃어가고 있는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 왜 대량의 민간도교경전이 간행되고, 사회의 지도층까지도 삼성신앙을 가졌던 것인가? 이러한 지도층의 태도를 선교사들은 '무당들과 주술사들이 이 나라를 그리고 지배자들까지를 지배하고 있으며, 고종이 역술가에게 포위된 채 생활하였다'라고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민간도교에 기반 한 '대종교'는 항일운동의 구심점이 되기도 하였다. 아직까지도 조선후기 난서의 유행과 삼성신앙에 기반 한 민간도교의 확대를 설명하기 위한 연구는 부족한 상황이다. 1890년대 초 조선을 다녀가 "한국서지"를 남긴 모리스꾸랑을 연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교경전의 동이 인식에 관한 연구 - 13경 및 그 주석서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awareness about "Dong-YI(東夷)" in Confucianism scripture)

  • 함현찬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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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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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3-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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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본 연구는 한국사상의 원류를 연구하는데 필수적인 이(夷) 또는 동이(東夷) 관련 유교경전 자료를 정리 분석 및 주해하는 한편, 동이 관련 유교경전 자료에 대한 대중적 접근성이 용이한 연구 자료를 제공하기 위하여 기획되었다. '동이'는 동아시아의 역사뿐만 아니라 한국의 사상과 문화의 원형을 탐구하는 데서도 필요한 핵심적 키워드이다. 또한 동이와 관련된 유교경전 자료는 시간적으로 선진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의 역사 전반에 걸쳐 있으며, 공간적으로는 중국, 한국, 일본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아직까지 이(夷) 또는 동이(東夷)와 관련된 자료가 체계적으로 분류 정리 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자료의 번역과 주석 또한 이루어지지 않아서 연구자들이나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동이와 관련된 유교경전 자료를 종합적이고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아울러 유교경전 관련 주석서에서 시대별로 이 혹은 동이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파악하여, 이를 토대로 이(夷) 내지는 동이(東夷)에 대한 인식과 그 정체성을 규명해 보았다. 일반적으로 이(夷) 또는 동이(東夷)라고 하면 '동쪽 오랑캐' 또는 '중국 사람들이 그들의 동쪽에 있는 족속들을 멸시하여 일컫던 말', '사이(四夷)의 하나. 동쪽 오랑캐. 중국(中國)이 동쪽 나라의 이민족(異民族)을 멸시(蔑視)하여 일컫던 말', "자세히는 황하의 중간쯤으로부터 하류 동쪽의 이민족, 곧 한국 만주 일본 등을 가리킴" 등으로 알려져 있고, 또 "중국 역사에서 동쪽에 사는 오랑캐(이민족)를 일컬어 부르는 말이다. '사이(四夷)'와 같이 이(夷)는 오랑캐 전체를 일컫는 대명사로도 사용되었으나, 일반적으로 동서남북의 각 방위에 따라 오랑캐를 구분하여 동이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으로 불렀다." 라는 식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유교경전에 언급된 이(夷) 개념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것이 오랑캐 라기 보다는 오히려 군자(君子) 재지는 군자국(君子國)을 의미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상에서의 동이관련 유교경전 자료를 분석해 볼 때 과거 "'동쪽 오랑캐' 또는 '중국 사람들이 그들의 동쪽에 있는 족속들을 멸시하여 일컫던 말' 이라는 식의 인식은 매우 잘못되고 왜곡되어진 인식임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夷)는 인(仁)이며, 인(人)이고, 또한 군자(君子)이다. 따라서 이(夷)라는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바로 '사람다운 사람' '군자', 내지는 '군자국(君子國)'을 나타내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 단어라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한 민족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와 역사 그리고 정신 혹은 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변하기 쉽고 또 지키기 어려운 것이 정신일 것이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고 다른 것과 구별하거나 정의하기 어려운 특성 때문이다. 정신 혹은 사상은 변하는 것이고 변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듯 변하지 않는 것, 변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변해서는 안 되는 그 부분이 바로 정체성의 뼈대에 해당한다. 따라서 동이와 관련된 유교경전 자료를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분석하는 것은 이러한 뼈대를 구축하는 초석이며, 무엇보다 시급한 역사적 당면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한 한국의 정체성 확립은 정치 사회적 측면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우리 국가와 문화 및 사회 발전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인삼시의 전개와 의미망 (The Development and Sementic Network of Korean Ginseng Poems)

  • 하응백
    • 인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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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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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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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한민족은 역사 기록 이전부터 인삼을 복용했다. 한편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한시(漢詩)는 신라, 고려, 조선 지식인들의 생각을 간결하게 표현하는 문학 양식으로 발전, 전개되었다. 본 논문은 '인삼을 소재로 하거나 주제로 한 한국인의 한시는 어떤 것이 있고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하는 의문에 답하기 위해 인삼(人蔘), 산삼(山蔘), 홍삼(紅蔘), 백삼(白蔘) 등을 키워드로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종합DB'를 검색해 인삼에 관한 시를 찾아내어 그 의미망을 살펴보았다. 인삼관련 한시를 편의상 '인삼시(人蔘詩)'로 명명(命名)했다. 2021년 11월 현재, 검색을 통해 찾아진 '인삼시'는 삼국시대 2편, 고려시대 2편, 조선시대 23편이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인삼시의 시초는 6세기경 고구려에서 백성이 노래로 불렀던 「고려인삼찬(高麗人蔘讚)」이란 시다. 고려시대 인삼시는 안축(安軸)의 시로 대표된다. 안축은 인삼 조공의 부작용을 사실적인 관점에서 노래했다. 조선시대의 인삼시는 전기 서거정과 후기 정약용으로 대표된다. 서거정의 인삼시는 인삼의 신비적인 약리작용을 찬양하는 낭만적 인삼시다. 용재 성현의 「인삼(人蔘)」이라는 시도 인삼의 신비한 약효를 찬양하는 낭만적 인삼시다. 다산 정약용의 인삼시는 실학자답게 대단히 실용적이다. 다산은 가장 많은 다섯 편의 인삼시를 남겼다. 다산은 직접 인삼 농사를 시도했고 그 과정을 시로 남겼다. 그 시에서는 인삼 농사 실패와 성공의 스토리를 지켜볼 수 있다. 다산의 인삼 농사는 정조 이후 자연삼의 고갈과 재배삼의 보편화에 따른 전국적 현상이기도 했다. 19세기 초반부터는 개성을 중심으로 하여 대규모로 인삼 농사가 성행했고, 여타 지역에서도 소규모로 이루어졌다. 특이한 것은 김진수의 시다. 청나라의 수도 북경 동인당에서 조선의 인삼이 '松嶽山蔘(송악산삼)'이란 상표로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는 것을 시로 표현했다. 매천 황현도 1900년 한시로 된 인삼시를 남겼다. 한국 한시의 전통에서 인삼시의 전개를 의미망으로 파악하여 도식화하면 이렇게 된다. 1) 위민(爲民) 정신의 인삼시 - 고려의 신흥사대부(안축) 2) 낭만적 인삼시 - 조선 초기의 관학파(서거정, 성현 등) 3) 실용적 인삼시 - 조선 후기의 실학파(정약용, 김진수, 황현 등) 한국 인삼시의 전개를 살피면서 그 의미망을 추출해 보았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상 역학조사와 관련된 형사법적 쟁점 (Criminal Law Issues in Epidemiological Investigations Under the INFECTIOUS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ACT)

  • 장준혁
    • 의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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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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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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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2020. 2.경 대한민국에서 코로나19 감염증의 대유행이 시작될 당시 문제가 되었던 대구 지역 A종교단체의 역학조사 방해 사건을 중심으로 면밀히 검토한 결과, 역학조사관이 특정 단체에게 명단 제출을 요구하였을 때, 이에 불응하거나 편집된 누락 명단을 제출한 행위에 대하여 역학조사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취지로 선고된 사례가 있는 반면, B열방센터 행사 출입자명단 미제출 사건의 경우 '출입자 명단' 등을 요구받았음에도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한 사실에 대하여 '출입자 명단의 제공은 역학조사에 수반되는 역학조사 간의 연결 과정을 형성하는 핵심적 사실행위로, 이를 거부하는 것도 역학조사 거부, 방해행위에 해당'하므로 적법하게 명단을 요구할 수 있어 처벌이 가능하다는 사례도 있다. 교인명단 제출요구가 역학조사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교인명단 제출 거부 또는 누락 행위가 곧 역학조사 거부·방해행위에 해당하는 경우도 있는데, 역학조사와 직접 관련성, 역학조사를 위한 것임이 외부적으로 표시되어 인식되었는지 여부, 명단의 역학조사 외의 목적으로 전용될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역학조사에 수반되는 사실행위를 방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역학조사가 거부 내지 방해되는 결과가 발생한 경우에는 역학조사 방해가 된다는 하급심 판결의 논리가 설득력이 있다. 역학조사 결과 확인된 각 감염병환자등이나 접촉자 등에 대해 설문조사나 인체검체 채취 및 시험과 같은 역학조사가 실시되지만, 개별적인 사람에 대해 실시되는 역학조사가 서로 독립하여 존재할 수 없으며 역학조사의 연결 과정을 확인하고 추적하는 과정이 역학조사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며 이러한 연결고리를 확인하는 과정을 누군가 고의로 방해하거나 거부하게 되면, 역학조사가 직접적이고 현실적으로, 광범위하게 방해되는 결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주로 ① 감염병예방법상 역학조사와 정보 제공 요청은 차이점이 있으나 정보 제공 요청의 경우에도 역학조사에 해당되는 영역이 있다는 점, ② 코로나19의 의학적 특성과 역학조사의 연속성을 감안하면 역학조사관의 명단요구 행위가 역학조사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는 점, ③ 특정한 경우에는 역학조사 방해죄가 위계공무집행방해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 ④ 2020. 9. 29.부터 감염병예법상 정보제공요청을 거부하는 경우에 징역형 또는 벌금형의 처벌규정이 신설되어 운용되고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하여, 향후 감염병예방법의 적용 및 역학조사 실무 운용에 있어 도움이 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