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일제

검색결과 1,108건 처리시간 0.036초

일제강점기 교사 윤재천이 본 조선의 초등 과학교육 (Elementary School Science Education in Joseon as viewed by Yun Jae-Che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 이면우
    • 한국초등과학교육학회지:초등과학교육
    • /
    • 제41권2호
    • /
    • pp.236-249
    • /
    • 2022
  • 이 연구는 일제강점기의 교사 윤재천(尹在千)이 언급한 조선의 초등 과학교육에 대한 내용을 분석한 것이다. 윤재천은 대한제국 말에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광복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었다. 일제강점기에 경성사범학교 교사였던 윤재천은 <조선의 교육 연구(朝鮮の敎育硏究)>라는 교육 전문 잡지에 과학교육에 관련된 글을 많이 게재했다. 특히 그가 1939년에 저술한 "조선의 이과교육(朝鮮の理科敎育)"은 조선인 교사가 평가한 당시의 과학교육 전반을 분석하여 보고한 기사였다. 이 연구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교사의 눈으로 본 조선의 과학교육의 전반적인 상황을 추적했다. 일제가 강제 점령한 식민지 상황의 조선에서 윤재천이 생각했던 과학교육의 관점은 친일적인 색채를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던 한계가 있었다.

일제 진지동굴의 Geoinformatics 적용 연구 (Japanese Armed Tunnels Applying Geoinformatics)

  • 오종우;오승훈
    • 한국재난정보학회:학술대회논문집
    • /
    • 한국재난정보학회 2016년 정기학술대회
    • /
    • pp.242-246
    • /
    • 2016
  • 해방70주년기념사업으로 일제강점기 동안에 조선인 강재징용으로 구축된 진진동굴에 대한 Geoinformatics 적용 학술조사를 통하여 구조물의 분포와 활용에 대한 내역을 규명하고, 일제에 의하여 자행된 국토훼손의 실상 및 만행을 출판 및 국내외 학술발표 자료로 할용 하고자 하였다. Geoinformatics 적용 조사탐사의 범위는 전국을 대상으로 하며, 서울지역, 인천지역, 대구지역, 부산지역, 제주지역, 대전지역 이외 도서지역 등 미 탐사지역에 대하여 지속가능한 수행을 추진함에 대한 문헌자료, 탐문조사, GIS분석, 지질광물분석 및 공동(空洞)조사 등으로 실시하며, 지표 및 지하조사의 방법은 위성영상분석(Remote Sensing), 물리탐사(전기/자력탐사) 및 동공 확인 시추(구경: 50mm)에 의한 도면작성으로 분포, 형상, 내용 등으로 다음과 같은 조사내용을 제기하였다. 일제동굴진지에 대한 geoinformatics기법의 접근에 의한 기반을 적용해 본 결과 문헌자료, 탐문조사, GIS분석, 지질광물분석 및 공동(空洞)조사 등으로 실시하며, 학술조사의 방법은 위성영상분석(Remote Sensing), 지구물리탐사(전기/자력탐사) 및 동공 확인 시추 등의 종합적인 정성적이며 정량적인 탐사에 의한 적용이 효과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 PDF

일본인 학자가 본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

  • 사다도시마구치
    • 출판저널
    • /
    • 통권241호
    • /
    • pp.2-3
    • /
    • 1998
  • 해마다 광복절 즈음이면 일제시대 우리 민족이 상황을 분석한 책들에 새삼 관심을 쏟게 된다. 우리 민족이 일제 지배를 벗어난 지 반세기를 훌쩍 넘어선 이 시점에도 지난 역사는 여전히 우리에게 넘어서야 할 연구 공간으로 남아 있다. 일제하 독립운동에 관한 연구는 최근 들어 학계에서 더욱 활발한 결실과 함께 논의가 진전돼 왔다. 이제 더욱 냉철한 시각으로 우리의 성과물들을 돌아보아야 할 단계다. 한국사를 전공하고 있는 일본의 마구치 사다도시 교수가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를 바라보는 진지한 견해를 밝혀 주셨다. 학계와 독자 여러분이 깊은 관심을 바란다.

  • PDF

일제강점기의 우리나라 철도성격규명에 관한 정성적 연구 (A Qualitative Study of the Properties of the Korean Railway during the Japan Colonial Period)

  • 이용상;정병현
    • 한국철도학회논문집
    • /
    • 제15권3호
    • /
    • pp.306-314
    • /
    • 2012
  • 한반도에서 철도가 처음으로 개통된 후 철도는 주로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즉, 경인선, 경부선, 경의선이 건설되었으며, 한일합방이후에는 한반도에서 철도는 일본의 식민화에 따른 지배의 수단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새로운 운송수단으로서 근대화를 촉진시키고, 조선의 경제, 문화, 사회의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현재, 한국 철도사 연구 중에서 연구가 미진한 부문의 하나가 일제강점기에 있어서의 철도의 성격규명에 관한 연구이다. 특히 구체적인 철도의 영향력과 사회변화 등에 대한 미시적인 연구와 관료를 중심으로 한 철도정책과정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여 철도의 성격에 대한 다양한 측면이 간과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일제강점기의 철도에 대한 성격규명을 정성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즉, 일제강점기 조선총독의 지휘를 받았던 철도국장 등 철도정책결정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철도관료의 분석을 통해 철도의 성격을 규명해보고자 하였으며, 대륙철도와의 연결과 국내산업개발 측면에서의 조선철도의 성격 등에 대하여 분석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그 동안 일제강점기의 철도에 대한 성격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표지 인터뷰-"인물한국언론사" 펴낸 정진석 교수

  • 김지원
    • 출판저널
    • /
    • 통권172호
    • /
    • pp.2-3
    • /
    • 1995
  • "근대적인 신문이 처음 발간되기 시작한 한말에서 일제시대까지 언론사는 현대사의 축도와 같은 양상을 띠었습니다. 암흑의 일제치하와 해방후 좌우익 대립, 이데올로기의 혼란 등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언론인은 지성인으로서 고난의 역사를 함께했고, 그렇기 때문에 언론인은 우리나라 역사의 주역으로 주목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PDF

일제의 지배정책에 대한 신문들의 논조 변화 : 일제 말기($1937{\sim}1940$)를 중심으로 (The Change of Korean Newspaper Editorials on the Ruling Policies of Imperialist Japan in Colonial Korea : Focused on the Last Period of Japanese Occupation in Korea)

  • 박용규
    • 한국언론정보학보
    • /
    • 제28권
    • /
    • pp.111-140
    • /
    • 2005
  • 일제는 중일전쟁 발발 이후 내선일체론에 근거한 황민화 정책을 실시하고, 병참기지론에 기반하는 전쟁동원체제의 구축을 서둘렀다. 중일전쟁을 위해서는 조선인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조선인의 황민화가 이루어져야만 했기 때문이다. 또한 일제는 황민화와 전쟁동원을 위해 전쟁의 성격과 목적을 정당화하는 시도를 해야만 했다. 본 연구는 이런 일제의 지배정책을 다룬 $\ll$동아일보$\gg$$\ll$조선일보$\gg$의 사설을 분석한 것이다. 먼저 전쟁의 성격과 목적에 관한 사설에서 두 신문은 중일전쟁 발발직후 한 동안 일본은 부득이하게 동양의 평화를 위해 전쟁에 나섰다고 주장했고, 일본군의 승전 소식이 있을 때마다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1938년 말 이후 두 신문은 중일전쟁은 동양을 서구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이고, 일본은 그 해방자라고 주장했다. 다음으로 황민화 정책과 관련해 두 신문은 초기에는 주로 신사참배나 궁성요배를 정당화하고 권유하는 논조를 보였을 뿐이다. 이후 두 신문 모두 지원병제도에 대해서는 '완전한 국민'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절대적인 찬성 입장을 보였던 반면에 3차 조선교육령에 대해서는 조선어 교육의 폐지를 염려하며 소극적이나마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1939년에 들어서서 두 신문 모두 '일본 정신'을 강조하며 내선일체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전쟁동원 정책에 관한 사설에서 두 신문은 전쟁 직후 한 동안 자중을 요구하는 논조만을 보이다가, 곧 여기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전쟁협력을 촉구하는 논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1939년에 들어서서 '일본 정신'을 기반으로 하여 적극적으로 전쟁에 협력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사설에서 나타났고, 1940년에 가서는 이제 국가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동원체제를 강력히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논조는 일제의 강력한 언론통제와 신문사 내 경영진 및 언론인의 의식전환이 모두 작용한 결과였고, 결국 두 신문이 일제의 지배방식에 순응해 독자들에게 내선일체와 전쟁협력을 강요했다는 역사적 평가를 듣게 만들었다.

  • PDF

일제강점기 옻칠 증산(增産) 사업의 전개와 영향 (Development and Effects of the Project to Increase Lacquer Producti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 강연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55권3호
    • /
    • pp.22-44
    • /
    • 2022
  • 일제강점기 옻칠은 나전칠기와 같은 고급 공예품 외에 산업, 건축, 군수물자의 외부 도료 등 다방면으로 활용되는 중요한 전략물자였다. 특히 전시 체제에 돌입하는 1940년대 이후 군수물자에 사용되는 옻칠 수요가 급증하면서 유통을 제한하는 전표제까지 시행하였다. 한편 일본에서는 옻칠 수요의 급증에 따라 고질적인 물량 부족을 겪고 있었고, 대안으로 19세기 후반 이후 중국산 옻칠을 수입하였다. 1910년대 이후에는 중국산 옻칠의 시장 점유율이 90%에 이르러 중국 현지 상황에 따라 일본 내 옻칠 수급이 영향을 받자 일제는 조선에서 옻칠 생산을 늘려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조선에서의 옻칠 증산 사업은 1910~1920년대에 각종 시험을 통해 객관적 지표가 마련되었고, 이를 기준으로 1930년대 본격적으로 사업에 착수하였다. 전국 각지에 옻나무를 식재하고 개량 채취법 강습회를 개최하였다. 일제는 조선인들에게 경제적 수익을 들어 옻칠 생산업을 장래 유망한 농가의 부업으로 홍보하였다. 각 도에서 수립한 옻칠 증산 사업은 효과를 거두었으며, 현재 국내 주요 옻칠 생산지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일제강점기 한반도 남부에서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한 곳은 강원도 원주, 충청북도 옥천, 경상남도 함양으로 현재의 생산지와 일치하였다. 일제가 조선인 농가를 대상으로 교육한 개량 채취법은 현재 한국 옻칠 채취의 주된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본 논문은 일제강점기 각종 기록을 통해 옻칠 증산 사업의 현황을 파악하여 근대 옻칠 공예사 연구의 공백을 메우고자 시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