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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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에 나타난 동몽기 예절교육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moral education of childhood in the "So-Hak")

  • 이정덕
    • 대한가정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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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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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7-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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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3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onsider the『So-Hak』that is a teaching material book of child education, to apply for the education of children. Especilly this study analyzed the structure and contents of the 『So-Hak』and considered the modern significance of children's moral education in the parts of「Kyoung-sin」. The main findings of the study are as follows: 1. The structure of『So-Hak』is two parts of inside and outside, the inside parts are structure four volumes「Ib-Kyo」,「Myoung-Ryoon」,「Kyoung-Sin」,「Kye-Gyo」and the outside parts are structured two volumes「Ka-Eon」,「Sun-Haing」. The contents are including the explaynatory notes everyday life a saying for self-culture, a loyal subject, dutiful son. The inside parts proved of the introduction of Confucianism, quoting the Confucius Four scripture. The outside parts proved of the example the family words and good deeds. 2. The fundamental spirit of moral education including the part of「Kyoung-Sin」is the education of Humanism. It is the education of a moral Principle and human nature that morality welled up naturally is one's mind. It is significant for the mental education is modern society regarded as the times of moral 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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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의 아동교육 목적으로서 근본배양에 관한 연구 (A Study on 'Cultivation of the Fundamental' of the Xing-Li-Xue(性理學) as Aim of Child Education)

  • 신동은
    • 아동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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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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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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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This study investigates the meaning, the method of "Cultivation of the fundamental" as aim of child education in context of the Xing-Li-Xue(性理學) educational theory. Chu-hsi understood the meaning of "Cultivation of the fundamental" as Ching(敬, the cultivation of good nature in human mind). The method of "Cultivation of the fundamental" consists of quiet sitting(정좌), attention(주의집중), moral environment(도덕적 환경) and practicing propriety(예의 실습). Through quiet sitting and attention, learners may reach a condition of mind which is free of their selfish desires and in which they can find out their original nature. The education in Confucianism accepts the environment as a significant element in forming human personality. Making moral environment has leaners to take good value with ease. Characteristic of study in Xing-Li-Xue is to emphasize to observe concrete clauses of propriety. The reason why Xing-Li-Xue emphasizes propriety is that Mind Study may be maintained through Body Study. In conclusion, the "Cultivation of the fundamental" in the Xing-Li-Xue is to form the power to regulate selfish desires and thus behave more moderately. Along these points, not only quiet sitting which relexes the body and soul, but also song and dance are not considered as contrary to Xing-Li-Xue educational theory. The various ways of "Cultivation of the fundamental" of Xing-Li-Xue educational theory make people recognize, understand and experience good innate nature of human beings. And we can reach the conclusion that education of Xing-Li-Xue uses so many methods that learner can accept moral value as naturally as poss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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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폐교의 유형 및 특성 분석에 관한 연구 - 광시성 계림시를 중심으로 - (Study on the Types and Features of China's Idle Schools -A Case Study on Pingle County of Guilin, Guangxi-)

  • 모표;이종국
    • 교육녹색환경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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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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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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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출산율저하와 도시화로 취학인구가 감소하여 수많은 초등학교가 폐교되었으며, 현재 까지 절반 이상의 폐교는 미 활용되고 있다. 지역실정에 근거한 활용제안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본 연구는 중국 광시(廣西)성 계림지역에 기존 28개폐교를 대상으로 현지실측, 촬영, 방문을 통하여 조하하였으며, 폐교의 부지, 연면적, 구조, 교통조건, 공간구성, 노후화 등 재활용에 필요한 요소를 조사하였다. 소형교학점(작은 분교)은 벽지농촌에 위치하고, 작은 부지와 연면적, 'ㅡ'자형배치, 노후화 등의 특성이 있으며, 완전소학(본교)은 향진(鄕鎭)에 가깝고 큰 부지와 연면적, 다양한 배치형태, 좋은 문창과 외관 등의 특성이 있다. 교학점(분교)은 이상 2가지의 사이에 있다. 본 연구는 향후 폐교 활용, 교육시설, 사회학, 건축학영역 등 연구의 기초자료로 사용할 것이다.

청주 사림의 학맥과 서계 이득윤과의 관계에 대한연구 (A Study on the Effects of Seogye Deuk-Yoon Lee on Cheongju Sarim(Forest of Scholars))

  • 이종관
    •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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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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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92-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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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본 연구의 목적은 16-17세기 청주 사족의 동향을 이해하기 위한 사례 연구의 하나로 선행연구와 경주이씨 익제공파 대동보를 중심으로 서계 이득윤(1553-1630)의 생애와 학맥을 살펴보았다. 서계 이득윤은 일찍이 부친 섬계 이잠과 서기, 박지화로 부터 수학 하였으며, 학문의 근본지향을 '위기지학'에 두었다. 그리하여 그는 소학을 특히 강조 하였으며, 소학에 수록된 여씨향약을 보급하여 주자학적 세계를 구현 하려 하였다. 더욱이 부친의 뒤를 이어, 후생을 훈도하는 것을 자기의 책무로 삼아서 청주지역의 교육에 힘썼다. 그리하여 서계는 수기에 힘을 쏟았던 유학자 일 뿐만 아니라 치인, 계도에 있어서도 사회적 책임의식을 다 하였던 실천적 사림으로서 17세기 전반 청주 지역의 재지 사족의 학문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이득윤은 문인 이덕수와 함께 낭성팔현의 일인으로 청주지역에 기호학파 와 호서사림이 형성 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그는 신항서원의 창건에 주역으로서 청주지역의 기호학파가 자리 잡을 수 있는 사회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였고, 당파를 가리지 않고 사계 김장생 선생의 예학정신을 계승한 기호사림 이다. 자신의 문인 이었던 이덕수가 기호학파의 학맥과 연이 닿을 수 있도록 징검다리가 되었다고 하겠다. 이러한 그의 역할을 통하여 김장생, 송시열로 이어지는 기호학파와 호서사림은 비교적 쉽게 17세기 후반부터 청주지역에 그 기반을 마련하고 세력을 형성 할 수 있었다.

돈암서원의 강학 활동 (The educational activities of Donam Seowon)

  • 김문준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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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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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1-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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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한국 서원의 교육 내용과 방식은 주자가 제시한 교육 내용 및 방식과 대부분 유사하지만, 학파에 따라 다소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돈암서원의 초기 원장으로 재임한 이들은 모두 김장생의 문인이었던 김집 송준길 송시열 등이다. 돈암서원은 같은 노론계 서원이었던 화양서원 석실서원이 기호 지역의 중심 서원으로 성장하면서 서원의 위상과 강학 활동도 약화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돈암서원 설립 초기의 학규는 전하지 않는다. 돈암서원의 운영 방식은 돈암서원 운영 전반에 관하여 17세기 후반 원장으로 재임하던 송준길에게 문의한 윤증의 서신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이 서신을 통해 볼 때, 돈암서원의 학규는 이이의 <은병정사학규>와 유사하였다고 추정된다. 18세기 이후 돈암서원의 역대 원장은 노론의 낙론계 학자들로서 권상하 계열보다 김창협 계열의 원장이 많았다. 돈암서원 원장은 화양서원, 석실서원의 원장이 겸임하거나 전후로 재임했을 가능성이 많다. 돈암서원에서 행한 강학 활동은 서원 설립 초기에는 김장생-송시열의 교학체계에 따라 소학${\rightarrow}$가례${\rightarrow}$심경${\rightarrow}$근사록 등 성리서를 우선하고 다음에 사서 오경을 가르쳤다. 점차 노론계 낙론 서원인 석실서원 출신의 학자들이 원장으로 부임하면서 소학${\rightarrow}$사서${\rightarrow}$오경을 먼저 가르치고 다음에 성리서를 가르치는 이이의 교학체계를 시행하였으리라 추정된다. 이러한 강학 순서는 김창협 계열의 학자들이 설립하고 운영했던 석실서원의 강학 내용과 순서이다. 돈암서원의 입학 자격은 신분은 중시하지 않았으며, 학문과 인품을 중시했다. 서원에서 과거 공부는 허용되지 않았다. 원생들은 서원에서 거재(居齋)하면서 강학에 참여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점차 서원의 재정이나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자기 집에 거가(居家)하면서 삭망에 행하는 강회에 참여하는 형태로 변화되었다.

무경칠서(武經七書)를 통해서 본 조선전기 무과시취(武科試取)에 관한 연구 (The Study on Mugyeongchilseo through Mukwashichwi in Early Joseon Dynasty)

  • 곽낙현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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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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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87-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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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이 연구에서는 "경국대전(經國大典)"의 "병전(兵典)"과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안에서 태조부터 명종시기 기록을 활용하여 조선전기 무과시취(武科試取)에서 무경칠서(武經七書)가 무과시취 도시조(都試條) 강서과목에 지정되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무과의 시취과목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무예는 활쏘기와 창 쓰기를 중심으로 시행되었고, 강서는 병서와 사서삼경으로 시험을 보았다. 둘째, 무과시취(武科試取)를 "경국대전(經國大典)"의 "병전(兵典)"안에 시취(試取) 무과조(武科條)와 도시조(都試條)를 기준으로 과목과 내용을 살펴보면, 무과조(武科條)는 초시(初試), 복시(覆試), 전시(殿試)의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무예는 초시(初試)와 복시(覆試)에 목전(木箭), 철전(鐵箭), 편전(片箭), 기사(騎射), 기창(騎槍), 격구(擊毬) 등이 동일하며, 특히 전시(殿試)에서만 기격구(騎擊毬)와 보격구(步擊毬)를 시행하였다. 그리고 강서는 복시(覆試)에서만 시행되었는데, 사서오경 중 1서, 무경칠서(武經七書) 중 1서, "통감(通鑑)", "병요(兵要)", "장감박의(將鑑博議)", "무경(武經)", "소학(小學)" 중 1서, "경국대전(經國大典)"을 통해 시험을 보았다. 셋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보이는 무과시취(武科試取)의 경우 강서에는 사서, 오경, "통감(通鑑)", "소학(小學)", "장감박의(將鑑博議)" 등은 공통적으로 보인 반면, "병감(兵鑑)", "병요(兵要)", "진설(陣說)", "진도(陣圖)", "병장설(兵將說)" 등의 병서가 산견되어 보였다. 이처럼 여러 종류의 강서 서적이 나타나는 것은 법제적으로 무과시취(武科試取)의 기준이 정비되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경국대전(經國大典)"이 완성된 성종대 이후로는 강서의 기준 서적이 지정되어 시행되었다. 넷째, "손자(孫子)", "오자(吳子)", "사마법(司馬法)", "위료자(尉?子)",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 "삼략(三略)", "육도(六韜)" 등 무경칠서(武經七書)는 무과시취(武科試取) 강서에서 다른 병서들과는 달리 모든 시취유형 및 무관 규정 등에서 한 번도 누락된 점 없이 연속해서 무과시취(武科試取)의 강서과목으로 존재했다. 비록 무경칠서(武經七書) 중 "손자(孫子)"를 선정하여 강독한 점은 있지만, 조선의 국왕 및 문무 관료들이 무경칠서(武經七書)에 기재된 전략 및 전술의 내용이 지략을 갖춘 무관을 양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서적으로 평가했다는 것은 주목할 점이다.

삼국시대 서적 유통에 관한 연구 (A Study on Book Distributions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 송일기
    • 한국도서관정보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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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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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7-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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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이 연구는 삼국이 통일을 이룬 7세기까지 중국에서 수입한 서적과 내국인이 편찬하여 유통된 서적을 대상으로 그 전모를 조사하여 주요한 특징을 밝힌 글이다. 삼국은 5세기부터 중국으로부터 서적을 수입하여 고대국가의 정착을 위해 법령의 제정, 교육제도의 도입, 학문의 진흥, 국제 외교, 국사의 편찬 등에 반영하였다. 그리고 4세기 후반 한반도에 전래한 불교는 초기에는 단순히 불경을 전수하는데 불과하였으나, 대장경이 도입된 7세기 이후에는 새로운 종파를 형성할 수준으로 교학이 발전하여 우리 자체의 장소문헌의 찬술이 본격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이처럼 삼국이 통일된 7세기까지 서적의 유통 현상을 분석한 결과, 전래 서적은 주로 유교와 불교 문헌에 집중된 현상을 보이고, 내국인에 의한 자체적으로 편찬한 서적은 삼국의 역사서와 불교의 장소문헌에서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그 외에도 기초학습에 필요한 소학서와 과학분야의 전문서적이 수입되었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당시 삼국에서 유통된 서적의 경우 대부분 6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수입되었기 때문에 대부분 필사본 형태로 보급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삼국에서 5세기 이전에 편찬되었던 "유기(留記)"와 "서기(書記)" 등 역사서적은 죽간으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았다.

골재채취가 세균군집구조에 미치는 영향 (Effects of Sediment Harvesting on Bacterial Community Structure)

  • 박지은;이영옥
    • 환경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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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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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2-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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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골재채취가 수층의 세균군집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낙동강 중류, 골재채취가 이루어 지지 않은 수역인 구미대교와 장기간에 걸쳐 연속적으로 골재채취가 행해지는 지역인 성주군 소학리 (성주대교 인근)에서 $\alpha\;\beta\;\gamma-subclass$ proteobacteria, Cytophaga-Flavobacterium (CF) group 세균군과 황산염화원세균을 FISH법으로 정량분석하였다. 아울러 수온, pH, EC, 엽록소-$\alpha$ 양 등의 이화학적인 환경요인도 측정하였다. DAPI로 염색된 세균수로 측정한 총세균수의 경우, 두 정점간의 괄목할 만한 양적인 차이는 없었으나 그 시간차에 따른 변동이 골재채취 수역에서 더욱 심했다. 또한 높은 엽록소-$\alpha$ 양을 나타낸 골재채취 수역에서 검출한 CF group 세균군과 황산염환원세균이 총세균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비골재채취 수역에 비해 높았다. 이같은 결과는 저니질이 수층으로 재유입되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 검출한 세균군이 총세균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합하면 그 비율은 골재채취 수역보다 비골재채취 수역에서 더 높았다. FISH법에 의한 세균의 검출가능성이 해당세균의 물질대사능과 연관이 있으므로 골재채취 수역에서의 낮은 세균 검출율은 골재채취가 세균의 물질순환에서의 역기능을 초래하고 이는 또한 연차적으로 그들의 먹이연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설기(薛己)의 생애(生涯)와 의학사상(醫學思想)에 관한 연구(硏究) -관어설기지생애급의학사상적연구(關於薛己之生涯及醫學思想的硏究)-

  • 박재정;윤창열
    • 대한한의학원전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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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2호통권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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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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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통과대명대저명의가(通過對明代著名醫家), 온보파창시자설기(溫補派創始者薛己)$(1487{\sim}1559)$적생애화의학사상(的生涯和醫學思想), 득출여하결론(得出如下結論): 설기생여의학세가(薛己生於醫學世家), 종소학습유학화의학(從小學習儒學和醫學), 기부사후(其父死後), 체부진입태의원성료의사(替父進入太醫院成了醫士), 지후선후역임태의원이목(之後先後歷任太醫院吏目), 남경태의원원판(南京太醫院院判), 원사등직(院使等職), 병어1540년(44세)기관회향(幷於1540年(44歲)棄官回鄕), 전심여치료환자여저술(專心於治療患者與著述). 설기적저작대부분내(薛己的著作大部分內) 용이의안형식서사(容以醫案形式書寫), 기내용포함내과(其內容包含內科), 외과(外科), 부산과(婦産科), 소아과(小兒科), 침구과(鍼灸科), 치과(齒科), 안과(眼科), 골과(骨科), 본초등(本草等). 기본인친(其本人親) 자저술적유이(自著述的有以)${\ulcorner}$내과적요(內科摘要)${\lrcorner}$위시약12종(爲始約12種), 교주적유이(校注的有以)${\ulcorner}$부인대전양방(婦人大全良方)${\lrcorner}$위시8종(爲始8種), 교감적의서약유6종(校勘的醫書約有6種), 공계대약(共計大約) 유26종지다(有26種之多). 설기수(薛己受)${\ulcorner}$내경(內經)${\lrcorner}$, ${\ulcorner}$난경(難經)${\lrcorner}$급장원소화금원사대가적영향교심(及張元素和金元四大家的影響較深). 재사대가중(在四大家中), 우기수동원화단계적영향최심(尤其受東垣和丹溪的影響最深). 차외(此外), 가지기수교주의서적영향역교대(可知其受校注醫書的影響亦較大), 기통과박람군서(其通過博覽群書), 대담실천(大膽實踐), 광수자료(廣收資料), 선우총결(善于總結), 최종성료일명의가(最終成了一名醫家). 설기수이동원(薛己受李東垣)${\ulcorner}$비위론(脾胃論)${\lrcorner}$적영향(的影響), 강조비위적중요성(强調脾胃的重要性), 병수차제출비통혈적이론(幷首次提出脾統血的理論) 기여이동원적학설부동지처시(其與李東垣的學說不同之處是), 재치료화쇠토약형허한증시(在治療火衰土弱型虛寒證時), 주장이보화생토지법내치료(主張以補火生土之法來治療), 인위비여신적생리작용호위관련(認爲脾與腎的生理作用互爲關聯), 비토화생정미(脾土化生精微), 이자양신여명문(以滋養腎與命門) 반과래(反過來), 신여명문역대위토기온후작용(腎與命門亦對緯土起溫煦作用); 이재병리방면(而在病理方面), 비토구허(脾土久虛), 가치신허(可致腎虛), 신허즉불능생토(腎虛則不能生土), 역가치비허(亦可致脾虛). 설기적극반대명대의가수금원지유풍(薛己積極反對明代醫家受金元之遺風), 이한양약공하(以寒凉藥攻下), 혹남용지백이강화(或濫用知柏以降火), 극벌생기적작법(克伐生氣的作法), 이주장용편온적약물진행조보(而主張用偏溫的藥物進行調補), 기상용적전인처방유보중익기탕(其常用的前人處方有補中益氣湯), 사물탕(四物湯), 사군자탕(四君子湯), 육군자탕(六君子湯), 독삼탕(獨蔘湯), 삼부탕(蔘附湯), 육미환(六味丸), 팔미환(八味丸), 신기환(腎氣丸), 회양탕(回陽湯), 당귀보혈탕등(當歸補血湯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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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만(秋巒) 정지운(鄭之雲) 저술(著述) 『천명도설(天命圖說)』의 사상사적(思想史的) 위상(位相) (The Historical Status of "Cheonmyeong-Doseol" by Jeong Ji-wun)

  • 박성순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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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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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3-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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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추만(秋巒) 정지운(鄭之雲)(1509-1561)은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사칠논변(四七論辨)의 단초가 된 "천명도설(天命圖說)"를 그린 당사자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제외하고, 아직까지 추만 정지운이라고 하는 인물에 대해서 학계는 물론 일반대중들도 깊이 있는 인식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정지운에 대한 선행연구도 "천명도설(天命圖說)"의 내용 분석을 위주로 하는 미시적 방식을 취하는 데 머물러 있다. 정지운의 삶과 학문이 그 가치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맥락에서의 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다. 정지운은 "천명도설(天命圖說)"를 지어 천인합일(天人合一)의 논리적 정당성을 이론적으로 밝혀 기묘사림(己卯士林)을 신원하고, 그들의 유지를 정연하게 체계화함으로써 조선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성숙시키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 사림파의 성리학설이 정국을 주도하는 정치사상으로 자리 잡는다는 점을 볼 때 정지운의 "천명도설(天命圖說)"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의는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정지운의 "천명도설(天命圖說)"를 두고 이황과 기대승 간에 벌어진 논변은 조선 성리학을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요컨대 정지운의 "천명도설(天命圖說)"는 "소학(小學)"과 "근사록(近思錄)"의 이해 수준에 머물러 있던 당시 상황에서 이기심성론(理氣心性論)을 본격화함으로써 조선 전기 성리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이황과 기대승은 정지운의 "천명도설(天命圖說)"를 중심으로 논변함으로써 조선 성리학을 이론적으로 심화시키는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 이때 정착된 사림파의 심학화(心學化) 경향은 명종과 선조대를 거치면서, 완전히 조선 정치사상사를 주도하는 정치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정지운의 "천명도설(天命圖說)"는 그러한 정치사상사의 흐름을 견인한 시발점이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정지운의 "천명도설(天命圖說)"가 지니고 있는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