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사찰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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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R탐사와 GIS기법을 이용한 부여 금강사지 입지 연구 (A Study on the Location of Buyeo Geumgangsaji (Temple Site) through GPR and GIS)

  • 오현덕;김성태;우상은;조용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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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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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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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최근의 백제사찰 재조사에서 기존 가람의 양식과는 다른 가람배치 양상이 확인되면서 금강사지의 가람에 대하여 다시금 조사의 필요성을 가지게 한다. 본 연구는 GPR탐사법을 이용하여 금강사지의 잔존 유구 및 사역전체의 건물배치 양상을 확인하고자 하였으며, GIS기술을 이용하여 항공사진을 분석하고 수치지형도를 활용한 토양유실량(RUSLE)을 분석하여 금강사지의 입지와 지형변화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GPR탐사 결과, 사역의 북편과 서편에서 기 발굴조사에서 미처 확인되지 않았던 건물지가 추가로 확인되어 사역의 범위는 추정 가람보다 더 넓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금강사지는 하안 단구면에 위치하고 있고 토양유실량이 매우 적은 안정된 지형장에 위치하며 자연발생적인 배수체계를 기반으로 하는 최적의 입지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경주지진피해로 본 국가지정문화재를 보유한 전통공간의 지형적 입지유형 분석 (An Analysis of Landform Type of Traditional Space with the National Cultural Heritage in the Damage of Gyeongju Earthquake)

  • 구민아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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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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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9-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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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는 2016년 9월 12일 발생한 경주지진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국가지정문화재를 보유한 전통공간 44곳을 대상으로 다각적인 문화재 연구를 위해 지형적 입지정보 데이터화와 지형별 유형에 따른 피해 경향을 파악해 보고자 하였다. 지형의 유형은 위요형이 가장 많이 추출되었으며, 위치형은 도시와 농촌과 같이 주변이 건물인 지역의 빈도가 더 많았다. 수문형은 산의 정상쪽을 제외하고는 모두 강, 하천, 계곡, 호수, 바다를 끼고 입지하였으나 이 지역은 퇴적층 지역으로 위요형과 함께 지질학적인 면에서도 지진에 취약한 곳으로 밝혀져 지진과 문화재 관리적 측면에서 참고하여야 할 것으로 파악되었다. 전체 44개 중 26곳이 사찰이었으며, 평지형, 배경형, 위요형, 산지형, 정상형으로 갈수록 고도와 경사가 높아졌으며, 1-20% 경사지에 가장 많이 입지하였으며, 사면향은 남쪽을 끼고 있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진원지에서 10km 범위 내에 23%가 집중되어 있었으며, 거의 65km 범위 내에 있었으며, 배경형이 가장 가까웠고, 진원지로부터 북동쪽과 남서쪽에 집중되어 있었다. 본 연구는 지진피해를 조경문화재인 전통공간의 입장에서 다각도로 분석한 의의가 있으며, 앞으로 전통공간 계획과 설계, 관리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백제 사찰 조영계획 고찰 (A Study on the Master Plan of the Temple Site of Baekje Period)

  • 탁경백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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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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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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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This study intends to investigate the measuring scales, locations and scales through arrangement plans for a research on construction plans. Through an analysis of the artifacts-measuring scales, the relation of two scales found, which further helped suppose the measuring scales applied during the foundation period. Southern dynasties-scale was still used even after the capital was transferred to Sabi till Tang-scale was introduced. Tang-scale was used for Buddhist temples mostly founded in the 7th century. On the other hand, Goguryo-scale seemed to be used almost at the same period as Southern dynasties-scale used, but it seemed that Goguryo-scale disappeared earlier than Southern dynasties-scale. The locations of Buddhist temples could be classified into mountains, flatlands and mountain valley. Buddhist temples founded in mountains were mostly small-sized, but ones located on flatlands could secure flat fields through mounding operations. In addition, through location conditions of Neungsa and Wangheungsa, it was possible to find out the district setting of Sabi Capital Castle. Finally, the expansion range of Buddhist temples were found to be towards the east and the west. As for the scales of temples according to such conditions of location, it was found a similarity in Temple sites. In general, it was possible to assume that the scales of Buddhist temples tended to be expanded along with spatial expansion and there were regular systems in Buddhist temples related to the Royal family. Through the analysis of arrangement plans between individual buildings, it was found that the basic arrangement of Gate-Pagoda-Main Hall-Lecture Hall was preserved, but the proportion of distances between individual buildings varied depending on cases. As a result, there were differences between scales of entire building sites, construction subjective influences and master plan for each location of a Buddhist temple.

불국사 지역의 지형특성과 불국사의 내진 구조 (The Geomorphic Characteristics of Bulguksa-region and the Earthquake Resistant Structure of the Bulguksa Temple)

  • 황상일
    • 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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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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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5-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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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한국 불교 사찰을 대표하는 불국사는 활단층인 불국사(울산)단층선이 통과하는 한반도에서 지반이 가장 불안정한 곳에 입지 한다. 사찰이 조성된 선상지 지형면의 폭이 좁고 경사가 급하므로 건축자들은 불교의 상징세계를 완성하기 위하여 부지의 남쪽과 서쪽을 확장하였다. 인위적으로 넓힌 공간에는 이 지역의 지형적 특성을 고려하여 내진 구조를 고안하여 적용하였다. 건축미를 극대화하면서 중요한 목적인 내진 기능을 작동시키기 위하여 화강암을 목재처럼 가공하거나 자연석과 다듬은 석재를 이용하여 여러 장치들을 고안하였다. 불국사에 적용된 내진 구조는 그렝이법, 목조건축 기법을 적용한 석조구조(결구), 주두석(동틀돌, 첨차석)의 이용, 유공초석의 사용이다. 석축을 구성하고 있는 각 부분들은 나름대로 지진에너지를 흡수하는 특별한 역할을 하면서 전체적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복잡하고 세밀한 내진 구조들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석축 안에 감추면서 미학적으로 절정의 건축물을 만든 건축설계는 1250년 전 신라인들의 기술 수준을 짐작하게 한다. 기교에만 치우쳐 지나치게 치장한 것으로도 보일 수 있는 이 건축물의 진정한 미는 과학에 근거한 아름다움을 추구한 것이다.

계룡산국립공원 공원문화유산지구 사찰림의 식생구조 (Temple Forest Vegetation Structure of Cultural Heritage Site in Mt. Gyeryongsan National Park - Focused on Donghaksa, Gapsa and Sinwonsa -)

  • 송주현;권순선;김호진;이정은;윤이슬;;김현섭;윤충원
    • 한국환경생태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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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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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22-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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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연구는 계룡산국립공원 공원문화유산지구로 지정된 동학사, 갑사, 신원사를 대상으로 식물사회학적 식생조사자료를 바탕으로 식생구조를 파악하여 생태적 특성을 구명하여 사찰림의 생태적 보전관리 방안을 마련하는데 기초 자료를 제공하고자 2018년 9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총 29개소의 산림식생조사를 수행하였다. 계층적 군집분석 결과, 느티나무-으름덩굴-황매화군락(VU1), 졸참나무-작살나무-까치박달군락(VU2), 소나무-산벚나무-쇠물푸레나무군락(VU3)으로 식생유형이 각각 구분되었으며, 각 식생단위별 지표종은 각각 12분류군, 8분류군, 6분류군으로 나타났다. 중요치 분석 결과, 모든 식생단위에서 느티나무의 중요치가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종다양도 분석 결과, 식생단위 3의 종다양도가 0.939으로 다른 식생단위와 비교하였을 때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식생유형과 무생물적입지환경, 생물적입지환경과의 상관관계분석을 CCA를 통해 분석한 결과, 무생물적 환경인자와의 관계는 식생단위 2와 해발고도가 음의 상관관계를 가지는 경향을 보였으며, 생물적 환경인자와의 관계에서는 뚜렷한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았다.

성주사 창건과 철불 조성 연구 (The Establishment of Seongjusa Temple and the Production of Iron Buddhas)

  • 강건우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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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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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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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충청남도 보령에 위치한 성주사(聖住寺)는 낭혜화상(朗慧和尙) 무염(無染, 800~888)이 창건한 사찰이다. 무염은 중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잠시 수도 경주에 머물다 김인문(金仁問, 629~694)의 후손들이 관리하던 사찰에 주석하였다. 이곳에서 무염은 불타고 남은 사찰을 중수하여, 847년에 선종사찰 성주사로 개창하였다. 이후 성주사는 사세가 번창하였고, 사역 내 여러 전각이 들어서며 대규모 가람의 모습을 갖추었다. 지역 내 성주사의 영향력은 「숭암산성주사사적(崇巖山聖住寺事蹟)」에서 살펴볼 수 있다. 「숭암산성주사사적」을 보면 성주사에 건립된 불전은 모두 73간으로 전한다. 이 중에서 주목되는 기록은 '전단림구간(栴檀林九間)'이다. 전단림구간은 '전단으로 지어진 건물이 9간' 혹은 '전단을 보관한 곳이 9간'이라는 의미가 될 수 있다. 해석의 차이는 있지만, 성주사에 전단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전단은 유향목재(有香木材)로 동남아시아 자바나 수마트라에서 생산되었다. 장보고 사후, 서남해안일대를 장악한 군소 해상세력이 동남아시아 전단을 대량으로 입수하여 성주사에 시주한 것으로 보인다. 문성왕대 김양(金陽, 808~857)은 무열왕계인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지역 내 명망이 높았던 무염의 성주사를 후원하여 왕실과 성주산문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였다. 원성왕계 왕실에서는 성주사를 지방 거점사찰로 삼아 반왕실적인 기운이 남아있는 지역에서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자 하였다. 무염은 사찰을 수호하고, 민심을 교화하고, 나아가 지역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철불을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성주사 문도가 2,0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사세가 확장되었다는 점에서, 성주산문의 중심사찰인 성주사에 봉안된 철불은 지역의 민심을 결집하는 하나의 존상(尊像)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성주사 철불은 모두 2구로 확인되며, 현재 전하는 철불편과 대좌의 크기로 볼 때 각각 금당과 삼천불전에 봉안된 것으로 보인다. 금당에 봉안된 철불1은 2m가 넘는 대형 철불이고, 삼천불전에 봉안된 철불2는 1m가 넘는 중형 철불로 판단된다. 「숭암산성주사사적」을 보면 '개창선법당오층중각(改創選法堂五層重閣)'이라는 기록이 전하는데, 이를 통해 성주사 개창시 철불1과 같은 대형 불상을 봉안하기 위해 중층식 금당이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철불1은 「성주사비(聖住寺碑)」와 손가락편의 모양을 통해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을 결한 불상으로 추정된다. 성주산문은 동시기의 실상사(實相寺), 보림사(寶林寺), 삼화사(三和寺)와 같이 노사나불(盧舍那佛)을 주존불로 조성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무염이 초년에 화엄을 수학하였고 귀국 후 왕실의 후원을 받았다는 점에서, 신라하대 왕실을 중심으로 한 화엄종의 복고적인 경향이 선종사찰 성주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 사찰건축(寺刹建築)의 입지(立地)와 교통(交通)의 연관성(聯關性)에 관한 연구(硏究) (Relation between the Location of the Korean Buddhist Temples and Transportation)

  • 김종헌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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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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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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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There is an opinion that Korean Buddhist Temples located in mountains(山地寺刹) should be built since the Secret Buddhism was introduced and the Zen Buddhism was widely distributed over But, Korean Buddhist temples were already in the mountains before the introduction of Zen Bluddhism. Moreover, Zen Buddhist temples were actually not located at mountainous region, but located at plain area in mountains. Thus it is necessary to modify the idea of that the location of temples were only under the influence of Secret Buddhism.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relation between the location of the Korean Buddhist Temples and transportation. The results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Based on the legends originated from the buddhist temples, the traditional maps, and the political situations, it has been disclosed that the locations of Korean Buddhist Temples have the relations with the traffic roads. Therefore politically, militarily, and socially, the Korean Buddhist Temples have played important roles since the Three Kingdoms. The Buddhist temples need lodging facilities called Won-Woo for the ordinary people, due to change of the characteristics of the Buddhism in Korea from politically to socially. But the lodging facilities stood apart from main region for the ascetic exercise of the Buddhist prie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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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이후 장흥 보림사(長興 寶林寺)의 경관요소 해석 (Interpretation of Landscape Elements in Borimsa Temple after 17th Century)

  • 김규원;심우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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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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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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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구산선문 중 가지산문 장흥 보림사는 문화 생태경관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데도 조경분야의 연구가 부족하다. 본 연구로 17세기 이후 장흥 보림사 경관요소의 변화를 고찰하여 그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조경사적 위치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는 전남 장흥 보림사 일원의 경관요소에 대해 현장답사와 사적기(事蹟記), 중창기, 1928년 후지시마 가이지로(藤島亥治郞)의 보림사 실측도,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 등의 관련 고문헌과 보림사정밀지표조사보고서, 국가기록원 및 전남 장흥의 과거 사진자료를 통해 경내 건축물과 지당, 사찰림 등의 경관요소의 변화를 고찰해보고자 하였으며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보림사의 입지는 보조선사탑비의 내용을 통해 풍수적으로 길지에 위치함을 알 수 있으며 십육나한상과 천불로 비보하려했음을 알 수 있었다. 중국의 남화선사와 비교했을 때, 주변의 환경구성은 비슷하지만 단을 쌓아 건물을 배치한 것은 차이점으로 보였다. 둘째, 보림사의 건축경관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고 현재까지 경관의 변화가 이어지고 있는 상태이므로 과거 경관자료 아카이브 구축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었다. 셋째, 보림사의 지당은 보림사사적기의 내용으로 보아 가장자리에 돌을 쌓아 만든 부정형이었을 것으로 판단되며 중창기의 내용을 통해 지당의 이름을 용천(湧泉)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또한 현재의 경관은 과거의 사진과 비교해보았을 때 경내 지반사업으로 인한 지표의 상승으로 변형을 가져온 것으로 보였다. 넷째, 보조선사탑비와 보림사사적기에 언급되고 있는 장생표주(長生標柱)는 한국전쟁 이전 사진자료에서 나타난 대웅보전 앞의 마른 향나무로 추측하고 있으나 도갑사의 국장생과 황장생을 참고하였을 때 석비형으로 추정되었다. 또한 보림사 중창기에 나타난 홍살문은 병자호란이후 승군의 충성에 대한 사액으로 세워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다섯째, 보림사 중창기에서 보림사의 연못 조성 등 사찰경관요소 조성 시 풍수지리를 고려하였음을 알 수 있었으며 또한 소나무, 보리수, 감나무의 식재기록이 나타나고 있었다. 여섯째, 차나무림은 정약용의 구증구포법 전수와 초의선사의 보림백모차, 이유원의 가오고략 등 관련 문헌을 통해 통일신라부터 시작된 선차일여의 다맥을 이어오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일곱째, 비자나무림은 관련 고문헌을 통해 비자가 국가의 제사와 의료약품으로 쓰였고 항공사진 및 보호림 지정구역의 위치를 통해 비자림이 내화수림대의 역할도 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근대 부산에서 벚꽃 명소의 입지적 특성과 성립 시기에 관한 연구 (Study on Location Characteristics and Establishment Time of Cherry-blossom Attractions in the Modern Era Busan)

  • 강영조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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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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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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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이 연구는 지금까지 논의하지 않았던 근대 부산에서 벚꽃 명소의 실상을 밝히기 위하여 당시 부산에서 발간된 일간지 <부산일보(釜山日報)>와 <조선시보(朝鮮時報)>에 게재된 벚꽃 구경과 벚꽃 놀이의 기사를 발굴하여 그 장소를 토지 이용의 유형별로 분류하고, 벚꽃 구경에서 벚꽃 놀이로 변환하는 시기의 동정과 장소적 특성을 고찰하였다. 근대 부산에서 벚꽃의 명소에 관련한 신문기사는 봄의 도래를 알리는 계절화로서 벚꽃이 피어 있는 장소를 알리는 내용에서 점차 벚꽃이 군생하고 있는 장소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유흥 행위를 소개하는 것으로 변화되어 간다. 단순히 벚꽃이 화려하게 피어 있는 장소는 신문지상에서 노출되는 빈도는 점점 적어지고, 벚꽃이 만개한 행락지에서 유흥 내용의 소개로 변화해 갔다. 이것은 근대 부산에서 벚꽃의 명소는 벚꽃 구경의 명소에서 벚꽃놀이의 명소로 성숙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첫째, 근대 부산의 벚꽃의 명소는 개인주택정원, 온천 여관의 정원, 사찰, 수원지, 배수지, 학교 등 공공용지, 동래온천장, 미도리마치 유곽 등 상점가로 나눌 수 있었다. 장소는 정주 환경의 가장자리, 다시 말해서 도시와 자연의 접점공간에 형성되었다. 둘째, 근대 부산의 벚꽃 명소는 1920년 무렵부터 벚꽃 구경에서 벚꽃 놀이로 변환되었다. 벚꽃의 명소가 성립한 것은 1920년 무렵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벚꽃 구경의 명소가 개인 주택 정원, 배수지 등 공공의 접근의 어려운 곳도 거론되었지만, 벚꽃놀이의 명소는 누구나가 접근할 수 있는 공공의 장소가 주로 거론되었다. 벚꽃의 명소가 봄철 행락지가 되었다.

팔공산(八公山) 동화사(桐華寺)의 풍수(風水) 및 가람배치( 伽藍配置)의 특징(特徵) (A study on the location of Donghwa temple from feng-shui perspective)

  • 성동환
    • 한국지역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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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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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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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본 연구는 팔공산의 지형적인 특성을 반영하는 동화사(桐華寺)의 입지와 가람배치의 풍수지리적 특성을 밝히는 것이다. 동화사의 풍수지리적인 특성에 대한 해석과 연구는 향후 동화사의 토지이용이나 건물의 증 개축, 진입로의 개설, 가람의 변경 유지 등에 참고할 수 있는 기초적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생각된다. 동화사는 산과 물이 에워싸인 지세로 풍수지리적인 조건을 잘 갖추고 있는 곳으로 종교적 장소성을 확보하기에 용이한 조건을 갖추었다. 봉황과 관련된 안온한 지세와 어울리게 가람이 배치되었으며, 봉황을 상징하는 시설물들이 누각과 문, 비에 남아있고, 대나무와 오동나무가 많이 식재(植栽)되어 있다. 동화사의 중심공간이 잘 부각되고, 사찰의 경역(境域)을 청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주 진입로의 복원, 주차장의 폐쇄, 새로운 진입로의 개설 등과 같은 방안을 제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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