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근대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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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근대 도서관 우현서루(友弦書樓)에 관한 고찰 (A Study on Woo-Hyun Seoru(友弦書樓) as a Modern Library)

  • 조용완
    • 한국문헌정보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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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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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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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본 연구는 1904년에서 1905년 초 사이 금남 이동진의 의지와 재정지원에 따라 그의 장남인 소남 이일우에 의해 대구에서 설립, 운영되었다가 1911년 일제에 의해 폐쇄된 것으로 알려진 사숙이자 도서관인 우현서루(友弦書樓)를 근대 도서관이라는 측면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이를 위해 우현서루를 1) 설립 주체와 설립 목적 2) 설립 일자 3) 위치와 건물 4) 장서 구성과 확보 방법 5) 이용대상과 주요 이용객 6) 도서관 활동 7) 폐쇄 과정 8) 폐쇄 후 장서의 이동 등으로 세분화하여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이동진·이일우 부자와 그의 후손과 지인이 쓴 글을 담은 <성남세고>를 비롯해 다양한 DB와 인터넷 검색을 통해 도서, 당시의 신문과 잡지기사, 논문, 기록물 등을 찾아내고 이를 기반으로 인용문헌 확장검색을 실시하여 관련문헌들을 광범위하게 분석하였다. 우현서루의 도서관 성격에 관한 8가지 측면에 대해 분석한 결과, 우현서루의 설립과 폐쇄, 매각 등에 관한 기존의 주장 중에서 일부 오류를 발견하였고, 우현서루의 장서규모와 장서확보 방안, 우현서루의 이용대상, 우현서루 폐쇄 후 장서 이동과정 등에 대해 새로운 결과를 제시하였다.

한국 근대 복식문화에 나타난 아메리카나이제이션(Americanization)에 관한 연구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의 잡지를 중심으로- (A Study of "Americanization" expressed in Korean Clothing Culture -Through the Magazines from 1920s to 1930s-)

  • 안선경;양숙희
    • 한국의류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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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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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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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This study is to clarify the concept of \"Americanization\" among korean modern clothing culture by investigating magazines from 1920s to 1930s. The Americanization of modern clothing culture can be divided to New fashion, Sports-wear, and Cloth improvement. 1. New fashion, Western culture was the main stream of new fashion, and modern boys and girls could bear cultural privileged consciousness. And the spread of modern culture was so fast that exaggerated fashional preference provoked extravagancy and loss of individuality. 2. Sports-wear.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initial sports activity was encouraged to regulate colony by principle and order. Through the sports-wear, practicality of clothing, exposure of female body, and the concept of T.P.O.(Time, place, occasion) were introduced. 3. Cloth improvement. The capitalism and modern concept of \"time\" were introduced and promoted maximum productivity. And to increase productivity, imperialist educated conveniency of western clothes and inconveniency of traditional Korean clothes. These could affect Koreans to think themselves a sense of inferiority(uncivilized complex).ncivilized comp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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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만화의 "황금시기"에 관한 역사적 고찰 -<왕 선생>, <삼모 유랑기> 중심으로- (A Study for Historical Consideration of "The Golden Age" of Chinese Comics -Focusing on and -)

  • 김리나
    •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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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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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7-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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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20세기 20~30년대는 중국만화가 제일 번영된 때이고 중국 만화의 "황금시기"이다. 중국의 근대만화는 외세에 의하여 정서불안과 전쟁 등으로 풍자만화가 유행하였고 그중 많은 인기작품들 중에서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된 20년대의 <왕 선생>과 30년대의 <삼모 유랑기>를 선택하여 분석하였다. II장에서 20~30년대 중국 민국시기 영화, 소설, 잡지, 패션 등의 소비문화가 확대되었지만 그 중, 통속성과 대중성으로 인기를 끌었던 만화잡지의 역사, 30년대 만화 간행물 등의 만화 "황금시기"에 대하여 역사적인 고찰을 하였다. III장에서는 5.4운동이후 사회 풍자유머만화가 유행하였고 20년대 반제반봉건주의의 내용에서 현실생활화 되었고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묘사한 작품들이 유행하였다. 그 중 작가 엽천여는 <왕 선생>을 통하여 소시민의 일상생활, 관료의 부패, 노동인민에 대한 동정 등의 상해에 대하여 묘사하였고 장락평의 <삼모 유랑기>는 힘없고 불쌍한 고아를 통하여 상해의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불공평한 사회제도, 빈부격차에 대하여 묘사하였다. <왕 선생>은 도덕적인 면에서 <삼모 유랑기>는 경제적인 면에서 현실에 대하여 객관적이면서 익살스럽고 우스꽝스럽게 반영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구자가 <왕 선생>과 <삼모 유랑기>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하나의 좋은 만화, 좋은 애니메이션 심지어 좋은 영화는 우리 주변에 대한 느낌에서 오는 감정을 자극하기 때문에 친근감을 느끼게 하며 익숙한 내용을 다룬 두 작품을 선택하게 되었다.

조선말과 대한제국 시기 사진기록물의 성격과 생산, 유통 과정 (The Facets of Photographic Records on Korea in Modern Era)

  • 박주석
    • 기록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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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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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5-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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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조선의 개항 이후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대를 찍은 사진기록물은 당시의 기술적 수준이나 대외 개방의 정도를 감안하면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 한국 관련 사진기록은 서구 사회에 한국을 소개하기 위해 인쇄한 서적의 삽화, 화보 신문이나 잡지의 도판, 빈티지 프린트, 사진엽서, 스테레오 사진, 카드형 사진, 랜턴슬라이드(Lantern Slide) 등 다양한 형태로 보급되었고, 현재도 상당량이 남아 있다. 관련 연구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조선 사람이 처음 사진에 찍힌 1863년부터 1910년 이전에 촬영된 한국 관련 사진은 최소 3,000점에서 4,000점 이상이고, 같은 사진이 중복되기는 하지만 발행된 사진엽서의 수는 25,000점 이상이며, 그중 대부분이 현존하고 있다고 한다. 본 논문은 근대 초기인 구한말 한국 관련 사진기록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경로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고, 이를 전형적인 사진가 또는 기관의 활동 사례를 들어 분석했다. 사진에 찍힌 대상은 분명 한국 또는 한국인의 모습이지만, 사진의 생산 주체는 거의 대부분 제국주의의 부역자들인 서양인들과 일본인들이었다. 사진의 경우 생산 주체의 필요나 관점에 따라 사실 관계의 왜곡 가능성이 무척 크다. 그 왜곡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사진의 내용뿐만 아니라 생산자의 의도와 생산 및 소통 경위가 파악되어야 한다. 세월이 많이 흘러 실제 경험자가 없는 시대의 사진기록을 정확하고 공정하게 판독하는 문제는 근대 한국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한국의 근현대사를 폭넓게 연구하기 위한 초석이기 때문이다.

서양 근대 생물학의 국내도입에 관한 연구-동물분류학을 중심으로- (Introduction of Western Biology into Korea, with Special Reference to Animal Systematics)

  • 이병훈;김진태
    • Animal Systematics, Evolution and D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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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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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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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4
  • 서구에서 생물학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을 때 한국은 고립된 채 전통적 생물학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 전통생물학에 뒤이어 서양인들의 조선산 생물채집 시기가 시작되었는데, 이들은 우리나라의 표본들을 본국으로 가져가서 1843-1924년 사이에 출간된 논문을 통해 약 3,000종을 기록하였다. 1924-1944년 사이에 출간된 조선박물학 잡지에는 91명의 저자가 쓴 318편의 논문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 논문들 중에는 동물분류학 논문이 224편(70.4%)으로 가장 많고, 또 이 225편 중에서 기재, 목록, 동물상에 관한 것이 201편이다. 비록 저자들의 대부분인 일본인이 83명을 차지하고 한국인 저자는 불과 7명 뿐이지만, 2명의 한국인이 논문 수에 있어서 3번째와 5번째를 차지한다. 이들 한국인 학자들은 일본인 학자의 조수로서 교육을 받았으나 일본에서 귀국한 몇몇 학자들과 함께 한국의 생물학에 있어서 중추가 되었고, 이들을 주역으로 하여 2차 대전 이후 서구 생물학이 한국에 도입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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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국립 디자인 대학의 시각 디자인 교육 (A Study on the Graphic Design Education at Konstfack in Sweden)

  • 강현주
    • 디자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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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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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5-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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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6
  • 스웨덴 국립 디자인 대학은 15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디자인 교육기관의 하나로 스칸디나비아 디잔인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콘스트 팍(Konstfack)이라 불리워 지는 이 학교는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받아 근대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했으며 1970년대에 이르러 오늘날과 같은 실험적인 교과과정과 독특한 교육방식을 완성했다. 이 학교의 상징 엠블 렘에는 'Insight och Flit'라는 말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창조적인 직관과 끊임없는 노력을 중시하는 콘스트 팍의 정신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와 스웨덴은 정치, 경제, 사회제도나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다르다. 1800년대 후반의 스웨덴은 유럽 내에서 가장 늦게 산업혁명을 겪은 변두리 국가로서 경제적으로도 매우 낙후된 국가였다. 문화적으로도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등의 유럽의 강국들과 비교하면 열세였고 국가적인 정체성도 채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1900년대 초반의 스웨덴의 지식인들은 스웨덴 적인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고민하였고 이들의 그러한 노력은 1950년대에 와서 스칸디나비안 그레이스, 스웨디쉬 모던이라고 하는 스타일을 만들어 내게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스웨덴 국립 디자인 대학은 스웨덴 디자인 협회, 디자인 전문잡지 <스벤스크 포름>등과 함께 스웨덴 디자인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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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우편 전달의 정착 양상 고찰 (A Study on the Delivery Pattern of Korean letters during 1900-1945)

  • 전병용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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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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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5-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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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고는 우정총국의 설치(1884년) 이후 근대 우편 제도가 정착하는 과정을 살피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하여 우편 사업 초기(1900년-1945년) 편지의 전달 양상을 분석하였다. 2장에서는 '편지의 전달 방식의 변화 양상'을, 3장에서는 '표현의 변화 양상'을, 4장에서는 '우편의 명암'을 주제로 검토하였다. 편지의 전달 방식의 변화 양상 검토에서 민간인에 의한 인편에서 집배원에 의한 우편으로의 변화는 [인편 중심] > [인편 우편 공존기] > [우편 중심기]의 3단계로 나눌 수 있었다. 특히 2단계 시기에서 동일한 송 수신자가 상황에 따라 인편과 우편을 혼용하고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급보용(急報用) 전보(電報)와 상보용(詳報用) 우편(郵便)의 기능상 차이를 편지의 내용 검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표현의 변화 양상 검토에서 '안부인사, 결말인사, 수신표현' 등에서 상투적 표현의 변화를 확인하였다. 또한 '우편'이 기본 용어로 자리 잡지 못하고 다양한 용어로 대체되어 쓰이는 현상을 확인하였으며 오히려 '우(郵)'가 독립적이고 생산적으로 쓰이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우편의 명암 검토에서 우편 전달은 '경제성, 신속성, 장거리 전달'이란 장점에도 불구하고 '배달 사고의 불만, 비밀유지의 불안' 등의 단점이 있었다. 우편 전달의 단점은 인편 전달로 보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우편과 인편은 상당기간 공존할 수 있었다.

이재욱(李在旭)의 저작(著作)과 업적(業績)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Writings and Achievements of Jaewook Lee in Korea)

  • 송승섭
    • 한국문헌정보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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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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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19-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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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이 연구는 우리나라 초대 국립도서관장 이재욱의 저작 목록과 관련 자료를 수집·정리하고, 이를 통해 그가 도서관계에 미친 업적을 찾아내기 위한 것이다. 이에 따라 기존에 수집된 이재욱의 저작 목록과 새로 수집한 목록의 원문을 찾아 비교함으로써 전체 목록의 수정과 보완, 추가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이재욱의 저작은 단행본, 도서관 전문지, 교양 잡지, 각종 신문 등을 통해 발표한 190건의 목록으로 완성되었다. 다음, 당대 관련 사료와 함께 목록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 이재욱의 업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는 다양한 고전연구를 통하여 우리나라의 책과 글에서 문헌학과 서지학적 가치를 찾아냈다. 둘째, 그는 일제강점기 근대 도서관의 이론과 실제를 우리나라에 이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셋째, 각종 매체에 발표한 칼럼과 에세이를 통해 우리나라 전역의 독서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했다. 넷째, 미 군정청이 요구한 국립도서관의 법제 도서 이관 문제를 해결하고, 조선도서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선구적 리더십으로 초기 국립도서관의 위상과 기초를 만드는데 기여했다. 다섯째, 조선도서관협회장으로서 도서관 사업 강습회, 독서주간 제정 및 실시, 대외 교류 등 우리나라 도서관계가 해야 할 핵심사업을 추진했다.

1920·30년대 극장 발행 인쇄물로 보는 재경성 일본인의 영화 문화 (Japanese Settlers' Film Culture in Keijo(京城) as seen through Film ephemera printed in the 1920s and 1930s)

  • 이화진
    • 대중서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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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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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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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본 논문은 식민지 시기 경성의 극장에서 발행된 영화 관련 인쇄물(film ephemera)에 대한 기초 조사를 바탕으로, 경성 남촌 지구의 영화 문화에 대한 역사적 접근을 시도한 사례 연구이다. 이 연구는 192·30년대 경성 남촌 지구의 극장에서 발행된 인쇄물들을 중심에 두고 당시의 일본어 신문과 잡지의 기사를 교차적으로 검토했으며, 이를 통해 '북촌'과 '남촌'으로 이원화된 문화 환경 속에서 재경성 일본인들의 극장과 영화 문화를 실증적으로 재구성했다. 무성영화시대 경성에서 남촌 지구 극장들은 일본의 영화사들과 계통(系統)을 맺어 일본 본토에서 제작된 영화를 유통·상영했을 뿐 아니라, 식민 본국에서 식민지로 건너와 정착한 재경성 일본인들의 문화적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역할을 했다. 각 극장이 발행한 인쇄물들은 단순히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식민도시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일본 제국의 균질적인 시공간으로 연결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인구로는 소수이지만 식민자라는 지위에 있었던 일본인들은 경성 남촌 지구에서 영화 관람을 통해 피식민 조선인과 자신들을 '구분'하는 동시에 문화적 차원에서 일본 내지와 연결되는 '결속'을 경험했다. 이는 일종의 '원거리 민족주의(long distance nationalism)'를 강화하는 문화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재경성 일본인의 영화 문화를 극장 발행 인쇄물들을 통해 검토하는 작업은 2천년대 이후 본격화되어온 근대 극장 문화와 관객성에 대한 연구 성과들을 심화할 뿐 아니라 비필름 자료를 통한 영화사 연구의 방법 및 방향을 모색하는 데에도 유의미한 시도가 되리라 기대한다.

1910년대 만화의 전개와 내용적 특질: 『매일신보』 게재 만화를 중심으로 (Development and Content Characteristics of Cartoons in the 1910s: focusing on cartoons published in Maeilsinbo)

  • 서은영
    •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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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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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9-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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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본고는 1910년대 "매일신보"에 게재되었던 만화를 수집 발굴하여, 기존 만화사에서 간과되었던 이 시기 만화의 의미와 가치를 해명하고자 했다. "매일신보"에 실렸다는 이유로 외면했던 기존 연구사에 문제를 제기하고, 다소 유연한 태도로 접근하여 1910년대 만화의 다양한 층위를 보여주고자 했다. 1910년대 전체적으로는 신문관 간행 잡지에 게재된 '다음엇지'와 "매일신보"가 모두 아우러져서 서술되어야 하겠지만, 본고에서는 "1910년대 만화사 재고"라는 목표로 "매일신보"만을 우선 대상으로 삼았다. 1910년대는 한국 만화의 시초라 일컬어지는 1909년의 "대한민보"'삽화'의 등장과, 신문 만평이 본격화되고 최초로 코믹스가 실렸던 1920년대를 이어주는 교량적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총독부 기관지라는 "매일신보"의 특수성과 대중문화의 주체가 태동한다는 시기적 특수성이 중층적으로 존재하는 시기이다. 본고에서는 강점 직후의 특수성 안에서 만화가 "매일신보"지면에 배치되게 된 배경과 전개 상황을 서술했다. 초기에는 근대적 만화양식이 모호한 상태였지만 후기로 갈수록 양식상의 정립이 이루어졌다. 이 시기의 만화는 하나의 란(欄)으로 고착되어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기사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재현해 가장 극적인 부분을 만화로 시각화하는 방법으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등 다양한 만화가 시도되었다. 본고에서는 게재된 만화 가운데 대표성을 띠는 것을 분류하여 "매일신보"만화의 성격을 대략 세 가지로 구분했다. 조선의 일상 풍경과 풍속을 통해 '가장 조선적인 것'을 재현하는 동시에 반문명의 조선의 모습을 배치하는 제국의 이중적 시선을 담지한 것, 조선인의 부의 축적을 공익의 관점에서만 타당한 것으로 재현한 것, "경성"이라는 공간에서도 생활고를 겪는 조선인과 호화로운 연말을 보내는 진고개의 일본인을 대별함으로써 공간을 차별적으로 구분하는 시선을 담지한 것으로 분류했다. 이처럼 "매일신보"는 만화를 통해 피식민지인을 규율하고 식민지 권력의 담론을 자연스럽게 노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