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Summary/Keyword: 구석기시대 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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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f Technological Context Between Sub-wedge Shaped Core and Blade Tool Culture of Upper Paleolithic in Korea (우리나라 후기구석기시대 측면몸돌과 돌날석기문화와의 기술적 맥락에 대한 연구)

  • Lee Heon-jong
    • KOMUN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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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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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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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The most typical period of Upper Paleolithic age in Korea is related with a blade tool culture and a microblade culture. Recently, we can figure out that there were a typical blade tool culture of Korea by being discovered to Goreari site and Jingnel 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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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f Stone Industries of Korea (한국선사시대 석기문화에 대한 연구: 석기문화와의 진화)

  • 배기동
    • The Korean Journal of Quaternary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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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11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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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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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7
  • 한반도의 석기문화는 전기구석기부터 시작되는데 동아시아지역에 퍼져 살던 고인류 집단의 일파가 한반도로 확산하여 온 것으로 판단된다. 이들의 석기문화는 아슐리안주먹도 끼를 공반한 정형화되지 않은 구석기공작이었다, 중기구석기는 르발르와기법의 유무에 대한 논란이 남아있으며 전기적인특성이 그대로 지속되는 시기이다. 그러나 약 3만년전의 후기구 석기시대가 되면 석인석기공작이 나타나고 석기도 대단히 정교해 지는데 이 석기 공작은 동 아시아로 확산되어 오던 현생인류의 도구이었다. 바이칼호부근에서 기원한 세석인문화는 한 반도의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 석기공작은 중석기를 거쳐 신석기에 이를 때 까지 눌러 떼 기기법과 함께 존속하였다, 신석기시대에는 마제기법이 나타나게 되고 어로용도구들이 새로 이 추가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간단한 가공으로 만든 농경구들이 추가되기 시작하는데 중후 기에 가서는 마제농경수확구가 증가하게 된다, 청동기시대에는 금속기의 영향을 받은 마제 석검등의 대단히 정교한 석기들이 훌현하고 또한 석기의 기능에 의례적인 기능이 추가되면 서 양식이 분화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생산구들도 효율성이 높게 발달해 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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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의 이용에 관한 연구

  • 홍시환
    • Journal of the Speleological Society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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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3 n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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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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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8
  • 동굴은 인류가 태어나면서부터 그들의 주거지로 이용되어 왔다. 아직 그 정확한 년대는 확인되어 있지 않지만, 단양의 우수동굴에서 구석기시대의 타제석기와 그 이후의 마제석기 등이 발견되었다.(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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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alyse de la Fracure et la Typologie des Galets Casses Decouverts de la Grotte do Lazaret a Nice (France) (라자레 동굴(니스, 프랑스) 유적에 나타난 전기 구석기시대 깨진 자갈등의 유물의 분석과 형식 분류)

  • 한창균
    • The Korean Journal of Quaternary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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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2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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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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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8
  • L'analyse des galets fractures decouverts sur les sols d'habitat de la grotto du Lazaret permet de penser que la cassure des galets se serait produite sur place dans la grotte, soit par des actions naturelles, soit par des actions des hommes prehistoriques. D'apres la comparaison des resultats obtenus par 1'etude exprimentale, les cassures des galets sont liees a plusieurs modes de fraturation. On peut seulement dire que les trois modes (1,3 et 5) sont susceptibles de donner des indications sur 1'aspect intentionnel de certains types de fractu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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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f Use-wear on Stone Artefacts from Chongong-ni and Suyanggae Palaeolithic Site (구석기시대의 석기에서 관찰된 본 자국의 연구 - 전곡리와 수양개 유적의 유물을 중심으로 -)

  • Lee Gi-kil
    • KOMUN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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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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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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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8
  • Stone artefacts when flaked or used retain traces. It is my objectives to analyze such traces as observed on the artefacts collected and excavated from Chongong-ni and Suyanggae sites attributed to palaeolithic ages. Observations were made with 1) naked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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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archaeology of the Piseo-ri Paleolithic site, Muan (무안 피서리구석기유적의 지질.고고학적 특성)

  • Lee, Heon-Jong;Chung, Chull-Hwan;Park, Sung-Tan
    • The Korean Journal of Quaternary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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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24 n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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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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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The Piseo-ri site in Muan provides significant data in investigation on the Paleolithic sites in the southwest coast of Korea. Stratigraphic and geological analysis indicates that the characteristic of soil wedge can vary in accordance with soil property and relief of paleo-surface. Considering that the cultural layer was deposited after the Last Glacial Maximum, co-occurrence of the late Middle to early Upper Paleolithic stone tools suggests a possibility of redeposition of different ages resulted from active erosion. The result shows that the distribution of the Paleolithic tools and the property of soil wedge could be controlled by environmental conditions such as relief of paleo-surface and clim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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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f Hunting Method of the Paleolithic People - Herd Hunting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사냥방법 - 무리 사냥에 대한 고찰)

  • Taesop Cho
    • The Korean Journal of Quaternary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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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31 n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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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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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There are many uncertainty to understand the ways in which Paleolithic men hunted animals. But in the meantime, We can identify a part of the hunting activities of the old people through artworks left by the paleolithic people at that time. First is the size of the hunt. In the case of painted artwork, the size of the herd does not exceed 10 people. Therefore, a small group of about 10 people would go out for a hunt, and they could see that the size of the herd varied according to the hunting target. In other words, to catch large and wild beasts like bison, you can see that it consists of nine or seven groups. In order to catch the horse, the same large animal, we can see that six people joined together. On the other hand, a group of two or three people hunting a relatively small, mild animal such as a deer would have been enough. Therefore, the size of the hunting herd was less than 10 people, and the size of the hunting herd seemed to be slightly different for each animal. Second, it is confirmed that these groups have a well-divided role. Because all nine of them were hunted out, they were divided into four small groups, which is likely to imply that the role of each group was different. Third, we can see that most of the weapons of the hunting herds were spears. The production and use of stone tools have been progressively developed, making a small stoner, a small stoneware, and connecting it to the spears, making it more efficient to hunt. This kind of composite wool connecting stone tools and wood would have been the most efficient means of hunting.

A Study on the Interrelationship of Caves and Culture (동굴과 문화의 상관성에 관한 고찰)

  • 이정애;이영애
    • Journal of the Speleological Society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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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46 no.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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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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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6
  • 동굴은 우리의 옛 조상들이 강 가까운 동굴 속에 살면서 바닷가나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살아가는 등 먼 옛날 석기시대에는 혈거생활의 주거지로 이용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그 후 인류가 발전함에 따라 다양하게 이용되어 왔다. 즉, 때로는 은신처로 이용되어 왔고 때로는 묘지로, 작전기지로, 그리고 물자의 저장고로도 이용되었고 그밖에 수양터와 신앙의 장소 등으로 사용되었었다. 이러한 증거로서 인골화석, 생활을 위해 선조들이 사용하였던 다량의 도구 등 일상용품이 아직도 보존되어 남아있는 것이 발견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는 제주도에서도 여러 개의 동굴이 발견되었다. 이들은 성인상으로는 모두 제주도의 화산 폭발과 관련된 것이어서 용암동굴로 분류되고 있다. 그 중에서 삼성혈은 제주도의 삼성신화, 즉 부족 형성과 관련 있는 것이고, 빌레못동굴은 구석기시대에도 재주도가 주거지로 이용되었음을 인증 받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김녕사굴의 설화는 재주도 설화의 하나로서 제주도 정부와 주민들간의 일치단결에 대한 예를 보여주고 있으며, 산방굴은 제주도 여인들의 기개에 대한 예를 나타내 주는 곳이고, 세계에서 가장 긴 동굴군계인 만장굴은 여인의 한을 전설로 담고 있다. 이렇듯이 동굴은 인류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제 동굴은 그 학술적ㆍ문화적 가치로서는 물론 최근에 붐이 일고 있는 관광적 측면에서도 그 보전 및 연구ㆍ개발이 시급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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