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간재가 문경지역에 거주할 때의 강학활동을 살펴봄으로써 40대 중반 왕성하게 학문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사상을 정립해가던 젊은 간재의 모습을 추적해 보고자 한다. 문경의 심원사에서 강학활동을 하면서 간재는 "강규"를 세워, 선생과 제자 사이의 예를 엄격히 하였고, 부부 사이에는 반드시 서로 공경히 대할 것을 가르쳤다. 이를 통해서 자신의 학단 안에서라도 옛 예를 회복할 것을 기대하였다. 1884년에는 청화산 시동에서 강학활동을 하였는데, "시동서사의"를 지어, 뜻을 크게 세울 것, "소학"을 행동준칙으로 삼을 것, 공부하는 과정에서 성(性)을 위주로 삼을 것을 주장하였다. 성(性)을 위주로 삼을 것을 주장한 것은 성사심제설의 단초를 보여주는 것이다. 문경 지역에서 간재는 송병화와 서신을 주고받으며 학문을 논하기도 하였고, 문경 지역과 관련 있는 학자들과 교류하기도 하였다. 송병화와 예를 논하면서 간재는 할아버지 상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를 대신하여 할아버지의 삼년상을 마치는 것이 인정상 맞는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송병화가 심이 체용을 갖추고 있다는 설을 주장한 것에 대해 그것을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심의 주재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고 보고, 성체심용(性體心用)이라고 하여 어디까지 성을 앞세워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간재는 문경 지역에 거주하면서 문경 지역과 관련이 있는 학자들과도 교류하였는데, 의당 박세화와 지암 김재경이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박세화는 홍직필의 재전제자라는 점에서 간재와 공통점이 있었다. 박세화는 문경에서 의병활동을 도모하다가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였고,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여 단식으로 순국하였다. 간재와 의당은 당시 기울어져가던 나라의 운명, 중화와 이적, 거의(擧義)와 자정(自靖)에 대해 논의하였다. 김재경은 의성 사람으로 간재가 문경에 머물 때 교류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후에도 상호 방문하고 서신을 교류하는 등 관계를 지속하였다. 간재가 문경에 머무르던 시기에 국가적으로 큰 사건들도 몇 가지 있었다. 간재가 심원사에서 강학을 시작하기 1년 전인 1882년에는 임오군란이 있었고, 1884년에는 의복제도를 좁은 소매로 바꾼다는 조정의 명령이 있었다. 간재는 이러한 조정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옛 제도를 고수하도록 제자들에게 지시하였다. 조정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도 되느냐는 의문에 대해서 간재는 의리상 불가한 것은 임금의 명령이라도 따르지 않을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1884년에는 또한 갑신정변이 있었는데, 간재는 외세를 배격하고 예를 지킴으로써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상으로 볼 때, 간재가 문경에서 강학하던 시기는 개인적으로는 간재의 핵심적인 사상인 성사심제설을 정립할 단초를 마련하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국가적으로는 외세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나라를 지킬 것이냐가 문제가 되었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는데, 간재는 이에 대해서 문화의 표지인 예를 굳건히 지킴으로써 나라도 지킬 수 있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고, 그에 따라 행동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서원의 교육 내용과 방식은 주자가 제시한 교육 내용 및 방식과 대부분 유사하지만, 학파에 따라 다소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돈암서원의 초기 원장으로 재임한 이들은 모두 김장생의 문인이었던 김집 송준길 송시열 등이다. 돈암서원은 같은 노론계 서원이었던 화양서원 석실서원이 기호 지역의 중심 서원으로 성장하면서 서원의 위상과 강학 활동도 약화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돈암서원 설립 초기의 학규는 전하지 않는다. 돈암서원의 운영 방식은 돈암서원 운영 전반에 관하여 17세기 후반 원장으로 재임하던 송준길에게 문의한 윤증의 서신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이 서신을 통해 볼 때, 돈암서원의 학규는 이이의 <은병정사학규>와 유사하였다고 추정된다. 18세기 이후 돈암서원의 역대 원장은 노론의 낙론계 학자들로서 권상하 계열보다 김창협 계열의 원장이 많았다. 돈암서원 원장은 화양서원, 석실서원의 원장이 겸임하거나 전후로 재임했을 가능성이 많다. 돈암서원에서 행한 강학 활동은 서원 설립 초기에는 김장생-송시열의 교학체계에 따라 소학${\rightarrow}$가례${\rightarrow}$심경${\rightarrow}$근사록 등 성리서를 우선하고 다음에 사서 오경을 가르쳤다. 점차 노론계 낙론 서원인 석실서원 출신의 학자들이 원장으로 부임하면서 소학${\rightarrow}$사서${\rightarrow}$오경을 먼저 가르치고 다음에 성리서를 가르치는 이이의 교학체계를 시행하였으리라 추정된다. 이러한 강학 순서는 김창협 계열의 학자들이 설립하고 운영했던 석실서원의 강학 내용과 순서이다. 돈암서원의 입학 자격은 신분은 중시하지 않았으며, 학문과 인품을 중시했다. 서원에서 과거 공부는 허용되지 않았다. 원생들은 서원에서 거재(居齋)하면서 강학에 참여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점차 서원의 재정이나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자기 집에 거가(居家)하면서 삭망에 행하는 강회에 참여하는 형태로 변화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실내의 활동추적 시스템을 위해 가속도센서와 지자계 센서를 이용하여 외부로부터 독립적인 소형의 관성항법장치를 제안하였다. 기존의 실내 위치추적은 주로 GNSS(global navigation satellite system)의 정보를 가져와 실내 환경에 맞게 초음파와 RSSI(received signal strength indicator)등을 이용하여 구성한 경우가 연구되었으나 이러한 위성항법은 좌표 값이 미리 저장된 고정 노드가 필수적이라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실내 환경과 같이 이동거리가 길지 않으며, 기존 환경 및 외부로부터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관성항법을 이용한 실내 활동추적시스템을 제안하였다. 이를 위해 지자계 센서와 3축 가속도 센서를 사용한 신호 계측부와 Zigbee기반의 무선 센서 네트워크를 이용한 무선 전송부를 구성하였으며, 계측된 데이터의 분석으로부터 실내 위치추적의 가능성을 평가하였다.
공정거래법상 법위반 행위 중지명령의 경우 사업자의 자유로운 사업활동을 제약한다는 측면에서 제재수단에 해당된다는 견해와 동 명령의 경우 법위반 행위 재발에 대한 예방조치로서 사업자에게 특별한 불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므로 제재수단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견해가 제기될 수 있다. 행정법규 위반행위에 대한 제재수단 또는 행정의사의 실효성 확보수단으로서 강학상 열거되고 있는 수단들은 행정강제, 즉시강제, 행정형벌, 행정질서별, 기타 새로운 의무이행확보수단으로서 공정거래법상 법위반 행위 중지명령의 경우 이들 제재수단들에 언급되지는 않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조선시대 사족(士族)들은 시간, 공간, 인간의 삼간(三間) 차원에서 일상생활을 유교적으로 의례화하는 실천을 통해 삶을 성화(聖化)했다. 일상생활의 성화는 1) 시간적 차원에서는 『소학(小學)』의 규범을 율신제행(律身制行)의 의례화된 실천으로 철저하게 구현했다. 특히 이러한 실천은 특히 성리학적 수양과 공부를 시간에 따라 구별해서 실천하는 일과(日課)의 시간적 의례화로 전개되었다. 2) 공간적 차원에서는 서원(書院)이나 서숙(書塾) 등에서 강회(講會)의 상징적 강학(講學) 공간을 구성했고, 그에 따라 강회의 의절(儀節)을 의례화했다. 이러한 양상은 특히 경독(敬讀)의 확대와 잠명(箴銘)의 독송(讀誦)을 통해 강학활동의 공간적 의례화로 발전했다. 3) 인간적 차원에서는 주기적인 제사나 집중적인 독서의 의례화된 실천이 강화한 경건한 의식[경(敬)]이 무의식적으로 심화해서 각각 가족 공동체의 상징적 중심인 선친(先親)과 유림 공동체의 상징적 중심인 선사(先師)에 대한 꿈으로 투사되었다. 이러한 유교적 의례화 양상은 유교적 가치를 철저하게 내면화하고 효과적으로 실현하여 조선시대 사족의 일상생활을 성화했다.
유가의 문인은 자신의 성정을 수양하고 학문을 바탕으로 한 인본주의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들은 지고와 지선의 삶을 추구하며 예술을 통하여 열락의 경계에서 삶을 향유하였다. 유가 문인의 예술은 주로 문인화를 중심으로 나타났다. 시서화가 어우러진 문인화는 문인의 인품과 학문을 전제로 한다. 이는 보통 여기(餘技)와 묵희(墨戱)·석묵(惜墨)으로 인한 신사(神似)의 기법을 바탕으로 한다. 유가 문인예술의 지향은 사의성(寫意性)의 추구(追求)·정신성(精神性)의 추구(追求)·유·도가미학의 혼융추구에 있다. 이는 유가 문인예술이 존재하는 이유가 학문을 바탕으로 한 그들의 고매한 정신세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조 유가 문인의 선비정신은 우선 절의는 절개와 의리 그리고 충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의병활동과 구국을 위한 강학활동, 성정을 자연과 함께 한 풍류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즉, 선비의 절의(節義)·충절(忠節)·의병(義兵)·강학(講學)·풍류(風流)등이 조선조 선비들의 정신경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이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문인화에 담겨진 화제이다. 여기에 유가 문인의 흉중을 바로 읽어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선비정신의 미의식은 풍류·충절·실학·애민·의리·사랑 등에서 그 미학을 새겨볼 수 있다. 선비정신의 예술적 구현을 위한 예술의 심미체험은 주로 감성지능에 의한 심미의 체험과 개인의 성향에 따른 심미체험이 있다. 이는 우리의 여러 문인화에서 살펴볼 수 있다. 따라서 조선조 유가 문인예술에 드러난 선비정신은 정신 지향성이었으며 여유 지향성이었다. 나아가 사의 지향성과 실득 지향성이 있어 선비정신의 특질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본 연구는 조선시대의 농서 색경(穡經-농업에 관한 경서, 1676)과 이를 저술한 학자 서계 박세당(西溪 朴世堂)의 농업사상에 주목하였다. 연구목적은 당시의 농업에 대한 태도와 가치, 땅을 다루고 활용하는 방식 등에 관한 내용을 토대로 현대 도시농업의 가치를 고찰하는 것에 있다. 박세당의 농업사상과 색경을 통해 확인한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생산성 향상을 통해 생계가 어려운 소농민의 안정을 추구하고 자립성을 실현하고자 하였던 사회 경제적 가치이다. 둘째, 경험에 의한 탐구, 강학(講學)을 위한 농업실습 현장으로서의 체험적 가치이다. 셋째, 자연의 흐름과 현상을 읽어 땅에 순응하는 농업방식으로 척박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자 하였던 환경적 가치이다. 넷째, 땅에 적합한 농업방법과 생활의 지혜를 담은 지침서로서 색경을 편찬하여 널리 공유하고자 했던 활용적 가치이다. 위의 네 가지 가치 측면에서 현대 도시농업의 가치를 고찰해보면 다음과 같다. 사회 소외계층의 복지 수단으로 도시농업 활동을 장려하고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는 사회 경제적 효과, 교육적 측면에서 체험활동을 통한 강학의 의미 제고, 자원순환과 재생 그리고 도시 생태성 회복을 위해 갖추어야 할 환경인식 증진, 학문연구와 대중에게 친숙한 접근방식으로 생활의 지혜를 공유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실천적 정신이다. 본 연구는 최근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는 도시농업의 가치를 과거 농업에 대해 고민한 선조들의 생각에서 찾아보고자 하였다. 비록 시대적 배경의 차이가 있으나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다양한 농업적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의미를 되새겨보았다는 것에 연구의 의의가 있다.
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1712~1791)은 역사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향촌사회(鄕村社會) 전문가이기도 했다. 그는 중앙 정치권력에서 소외된 남인계(南人系) 학자였다. 유년과 청년시절 향촌 각처를 전전했고, 20대 중반 광주(廣州) 덕곡(德谷)에 정착한 뒤로는 관직 때문에 잠시 나간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이곳에 머물며 수양과 저술에 전념했다. 60대 후반 목천(木川) 현감(縣監)을 마지막으로 실직(實職)에서 물러났다. 이러한 불우한 환경은 그의 학문적 관심과 정치적 시선을 형이상학(形而上學)이 아닌 '형이하학(形而下學)'으로, 중앙이 아닌 '향촌'으로 향하게 했다. 그는 향촌을 가(家)와 국(國)을 매개하는 연결고리로 파악하고, 향촌을 기반으로 하여 인간의 기본 윤리와 일상생활에서의 예(禮)의 실천을 강조하는 유교공동체를 구상했다. 먼저, 그가 구상한 유교공동체는 향촌을 단위로 하는 지역공동체이다. 그는 향촌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교화(敎化)를 최우선의 과제로 삼고, 향약(鄕約)을 그 방안으로 제시했다. 자신의 향리에 동약(洞約)을 실시했고, 목천 현감 시절에는 향약(鄕約)을 시행했다. 이것은 사대부 중심의 향촌질서를 재구축하고자 한 의도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 향약은 상하(上下) 동참의 형태를 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심(民心)에 대한 순응과 사대부의 솔선수범을 강조하고 일상생활에서의 윤리의 실천을 통해 구성원 간의 조화와 질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지역공동체적인 성격을 지닌다. 한편, 그는 향촌의 학문공동체를 기획했다. 그는 학교 진흥을 교화의 급선무로 인식하고, 서재(書齋)를 중심으로 향촌 자제들과 강학 활동을 전개했다. 여택재(麗澤齎)라는 서재(書齋)를 설치하여 "소학(小學)"을 강독했고, 70대 후반에는 "여씨향약(呂氏鄕約)"을 표준으로 하고 일상의 윤리와 독서법을 덧붙인 학약(學約)을 마련하여 시행했다. 이 학약은 뒤에 전라남도 나주의 미천서원(眉泉書院)에 적용되었다. 이는 강학과 명도(明道)의 중시, 독서와 실천의 일치를 강조하는 그의 학문관과 학문공동체 기획의 사회적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판단된다.
본(本) 연구(硏究)는 산림경영협업체(山林經營協業體)의 산림작업(山林作業)을 담당하기 위하여 1984년(年)부터 협업경영지도소별(協業經營指導所別)로 조직된 산림경영협업체작업단(山林經營協業體作業團)의 문제점과 앞으로의 과제를 밝히고자 수행하였다. 울산군(蔚山郡) 4개(個) 산림경영협업체작업단(山林經營協業體作業團) 단원(團員) 33명(名)과 진안군(鎭安郡) 1개(個) 산림경영협업체작업단(山林經營協業體作業團) 단원(團員) 10명(名)을 대상으로 1993년(年) 7월(月)과 8월(月) 사이에 직접 설문에 의한 조사를 실시 분석하였다. 그 결과, 충분한 산림작업량(山林作業量)을 확보하지 못하여 거의 활동하고 있지 않는 작업단(作業團)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그 때문에 임업기술교육(林業技術敎育)을 받은 작업단원(作業團員)의 전직(轉職)이 많아, 숙련(熟練)에 의한 효율적(效率的)인 산림작업(山林作業)이 저해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정부(政府)는 전업적노동자(專業的勞動者) 중심의 작업단(作業團) 육성에 중점을 두고 있으나, 작업단(作業團) 육성에는 지역의 노동력시장(勞動力市場), 농임업구조(農林業構造), 노동력구성(勞動力構成), 임금수준(賃金水準), 산림작업량등(山林作業量等)이 고려되어져야 한다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김득연은 조선 중기를 살다간 인물로 관직에 나아갈 능력은 있었지만, 선조의 유지를 좇아 평생을 처사의 몸으로 살아간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건립한 누정인지수정에서 많은 창작활동을 했는데, 시조 <산중잡곡>은 그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그가 경영한 지수정과 상당한 연관이 있다고 보인다. 이에 본고에서는 <산중잡곡>을 김득연의 지수정 경영 목적과 관련하여 분석하고자 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조선 중기는 고위관료의 전유물이었던 누정이 처사층까지 확대된 시기로, 김득연 역시 누정 경영에 대한 열망이 컸던 듯하다. 이에 30년 가까이 준비하여 60이 넘은 나이에 어렵게 지수정을 건립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지수정에 대한 애착이 상당하여 그의 만년 생활 대부분이 이곳에서 이루어진 듯하다. <산중잡곡>은 49수(혹은 53수)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사 <지수정가>를 지은 후 남은 뜻이 있어 창작한 작품이다. 동일한 제목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연시조로 보기에는 그 연관성이 긴밀하지 못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혀 무관한 작품은 아니며, 연시조를 선호하는 그의 성향으로 보아 2~6수로 구성된 연시조 14편이 이어진 연작시조로 보았다. 이를 다시 긴밀성 있는 것들로 묶어보니 '산수자연의 감상', '학문수양과 강학', '시회와 계회', '유식과 자락' 등 크게 4가지 유형으로 구분되었다. 16~17세기 사설누정의 일반적인 기능과 거의 일치하는 이 4가지의 유형을 통해 작품을 분석한 결과, 김득연은 가사 <지수정가>에는 소략하게 서술했거나 싣지 못했던 내용들을 위주로 창작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김득연이 지역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과 누정을 경영하면서 만년을 보내고 있다는 점에 상당한 만족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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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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