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예비평연구
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The Society of Korean Modern Literary Criticism)
- 연3회간
- /
- 1226-7627(pISSN)
과학기술표준분류
- 문학 > 문학일반
제42호
-
본고는 시인 이영순이 전쟁 중에 낸 시집『연희고지(延禧高地)』와『지령(地靈)』실린 시들에 나타난 ‘숭고’를 중심으로 고찰해 보았다. 먼저 시집『연희고지(延禧高地)』에 실린 단편 자유시들에서 이영순 시인은 세상에서의 삶을 뜬구름 같이 여기며 조국을 위해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다가 죽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군인의 길을 팔자요 운명으로 여기며 전장에서 죽는 것은 삶의 한계를 넘어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려는 길임을 보여 준다. 장편 서사시「연희고지(延禧高地)」는 연희고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서울 탈환작전의 체험을 형상화하고 있다. 치열한 전투 현장에서 죽음의 공포를 초월하여 조국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화자의 자세는 ‘숭고’를 느끼게 한다. 시집『지령(地靈)』에 실린 단편 자유시들은 옛 전쟁터에 가서 전투 상황과 전사한 이들을 회상하며 인간 존재의 나약함과 유한성에 슬픔을 느낀다. 그러나 죽음을 초월하여 조국의 명예와 자유 또는 정의의 이념을 실천하려는 이성의 노력은 그러한 불쾌의 감정으로부터 벗어나 쾌의 감정을 갖게 한다. 그리고 시인이 군인이 되어 전쟁터에 나가 죽음의 공포와 맞서 싸우려하는 자세는 ‘숭고의 이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장편 서사시『지령(地靈)』에서는 ‘하갈우리’ 전투의 체험을 시로써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에서 이영순 시인은 전쟁에 대한 허무와 회의를 보여 주며 ‘사랑과 평화’라는 새로운 이념을 제시한다. 이러한 특징은 시집『연희고지(延禧高地)』에서 공산주의를 물리침으로써 민족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것과 차이를 보인다. 즉 시집『연희고지(延禧高地)』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의 파괴적인 공격이 초월의 대상이라면 시집『지령(地靈)』에서는 동족 사이에 이념의 대결로 발발한 전쟁 자체가 초월의 대상이다.
-
한국 시단에서 김종삼은 ‘내용없는 아름다움’이라는 미적 수사에 의해 지나치게 미학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논의되면서 그의 시에 강박적으로 등장하는 증언으로서 전쟁의 의미를 해소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생존자로서 전쟁 체험에 주목함으로써 미학적인 해소나 동어반복적인 폭력의 기술에서 더 나아가 생존자로서 증언의 불가능성에 주목하였다. 이때 증언의 불가능성이란 아우슈비츠 경험 이후 그 유명한 아히히만의 전범재판에서 한나 아렌트가 발견한 ‘악의 평범성’이 상징하듯, 전쟁의 폭력이 합리성의 세계 안에서 법적 판결에 의해 해결될 수 없는 한계, 즉 윤리의 회색지대에서 비롯되었음을 의미한다. 김종삼의 시는 이러한 증언의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생존이라는 비인간의 존재로부터 인간되기를 포기하지 않는 자의 윤리적 고통인 수치심을 통해 주체의 무능을 고발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이러한 주체의 욕망(생존 욕망)으로부터 소외시키고자 하였다. 나아가 김종삼의 시는 타자에 대한 윤리적 책임과 죄책감의 문제라는 지점에서 원죄의식을 통해 인간의 실존에 앞서는 수치심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권력의지를 내면화한 주체의 무력함과 타자성을 상실한 주체 욕망의 허위를 비판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치심에 의해 죄의식이 파생된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김종삼의 시는 죽음 충동을 통해 수치심이 야기하는 실존적 고통으로부터의 도피를 염원한다. 김종삼의 시가 소리의 현상학을 통해 이방인의 방언인 글로솔라리아의 시 세계를 구축한 것은 이 때문이다. 즉 이방인이라는 소외된 위치에서 김종삼의 시는 탈주체화의 모험으로서 시 쓰기에 천착함으로써 소쉬르가 말한 랑그의 구속에서 벗어나, 주체 언어에 의해 야기된 실존적 고독의 세계에서 음악과 같은 새로운 존재의 지평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전쟁으로 인한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종삼의 시에 나타난 소리에 대한 천착은 단순히 음악적 취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 언어의 폭력성과 그 한계를 초월하려는 탈주체화의 모험으로써 시쓰기를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김종삼의 시는 전쟁과 같은 비인간의 상황에서 전쟁의 폭력이 단순히 물리적 상황만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소음과 같은 인공언어를 통해 주체를 재생산하는 언어문제임을 직시함으로써, 언어의 타자성을 통해 구원 없는 세계의 타자성을 염원하였다. 치유적 언어로서 언어의 선험성을 회복하려는 믿음을 통해 그의 시는 현대 사회의 철학과 종교, 법과 정치, 문학과 예술 등 전 영역에서 언어를 도구화하는 소유 욕망과 이러한 주체 언어의 폭력에서 벗어나, 언어의 성사(聖事)로서 윤리적 타자성을 회복하기 위한 시인의 책임을 발견하고 이를 실천적으로 모색해나갔던 것이다.
-
임철우의 장편소설 『백년여관』은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피 맺힌 원한과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역사적 희생자들의 비극적 운명을 그리고 있다. 비극적인 역사와 개인의 운명 가운데 작가가 특히 주목하고 있는 점은 ‘망각’이다. 『백년여관』은 ‘망각과의 투쟁의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망각은 서사의 중심축을 이룬다. 작품의 서사구조 역시 망각의 존재들이 백년여관에 모여 망각의 정체를 다시 기억해내고 자기 구원의 가능성에 이르는, 이른바 ‘망각-기억-구원의 모색’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임철우에게 망각과 기억은 곧 생의 의지와 에토스와 연결되고 있다. 작품 속의 망각은 발터 벤야민의 잃어버린 아담의 언어의 파편들이다. 작중의 소설가는 망각되고 실어증에 걸린 그들의 침묵을 다시 번역하기 시작하고, 이를 통해 잊고 있었던 낙원의 파편들을 만나게 된다. 역사의 피해자들의 기억을 복원하는 것은 고통의 재발견이 아니다. 피해자들의 파편적 기억이란 모두 역사라는 장 속에서 연결되어 있으며, 고통의 파편은 도리어 그들이 돌아가야 할 낙원의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임철우에게 망각과의 투쟁이란 역사적 진실의 증언과 함께 근원성에 대한 지향이기도 하다.
-
전쟁 미체험 세대 작가가 다루는 전쟁 소설이 이전의 체험 세대와 유년기 체험 세대의 그것과 뚜렷하게 변별되는 지점이 무엇이냐를 검토하는 것은 오늘날 미체험 세대의 전쟁에 대한 작가의식이 어떠하냐를 검토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현 단계 한국소설이 나아가야 할 전쟁 소설의 방향이 무엇인지를 검토하는 것과 맞물려 있다. 본고는 이러한 입장에서 미체험 세대가 전쟁을 사유하는 새로운 방식에 대해 고찰하였다. 이를 위해, 전쟁의 외연을 넓혀, 한국전쟁만을 다루는 작품을 넘어서, 한국 사회가 직, 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은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다루는 작품도 논의의 대상에 포함하였다. 방현석의「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과 관련하여 한국인과 베트남인의 다층적인 시선이 결합되어 있다. 이를 통해, 이 작품은 베트남 전쟁의 의미와 전쟁 이후 그 후유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해낸다. 그리고 전쟁을 보다 총체적인 시선에서 다각적으로 조망하면서 전쟁의 기억을 현재화시키고, 거대담론에 침윤되어 국가의 논리와 자본의 논리로 재단되는 전쟁의 당위성을 비판한다. 그러면서 그러한 대립과 갈등,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인간의 품격’과 ‘나라의 품격’을 문제 삼으면서,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공존과 조화를 제시한다. 이와 같은 시선을 통해서 이 작품은 기존 베트남 전쟁 소설에서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과 시각을 확보한다. 김연수의「뿌넝숴」는 한국전쟁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한국전쟁 당시 부상당한 인물의 ‘구술’을 통해 한국전쟁을 이데올로기 대립 내지 국가의 요구 따위로 기술한 ‘기록된 역사’의 허구성을 비판하면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문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남쪽과 북쪽의 전사(戰史)에서 자유로운 이름 없는 중국 인민해방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다. 곧 이 작품은 한국전쟁을 거시사의 입장에서 바라보던 종래의 태도에서 벗어나 미시사의 입장에서 접근하여 거시사의 이면에 감추어진 비극적인 역사를 복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 작품은 미체험 세대 작가가 한국전쟁을 다룰 때, 체험 세대나 유년기 체험 세대가 이룩한 소설적 성과를 극복하기 위해서 취할 수 있는 새로운 창작방법과 관련해 그 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정미경의「무화과나무 아래」는 이라크 전쟁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기존의 ‘사가’와는 달리, 정보사회의 ‘사가’는 일종의 상품 제작자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사가에 의해 미디어 이미지로 기록되는 전쟁은 돈벌이 수단, 혹은 유희용 게임, 관음증 유발 기제와 같은 것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이라크 전쟁은 강대국이 힘없는 이라크인들의 최소한의 행복을 빼앗은 전쟁으로 의미화된다. 이러한 강자에 의한 약자의 행복 빼앗기는 이라크 전쟁 같은 국가 단위의 전쟁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곳곳의 일상에서 무한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반성적 성찰을 통해, ‘나’와 ‘너’가 아닌 ‘우리’라는 공동체의 행복을 추구함으로써 이라크 전쟁 식 폭력을 극복하고자 한다. 이들 작품에 나타난 전쟁에 대한 사유를 통해, 현 단계 전쟁 미체험 세대로서의 작가가 나아가야 할 전쟁 관련 소설의 방향이 무엇인지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
지훈의「완화삼」과 목월의「나그네」는 우리의 현대시사에서 매우 이채로운 두 작품으로 꼽힌다. 지훈의「완화삼」엔 목월이 깊이 드리워져 있으며, 목월의「나그네」엔 지훈의「완화삼」이 깊이 드리워져 있다. 두 작품은 서로 간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각자의 개성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두 작품의 긴밀한 상관관계를 감안하여 이 글에선 두 작품을 상호텍스트의 관점에서 살펴봐 두 작품의 의미를 보다 온전하게 이해하고자 하였다. 지훈의「완화삼」은 한시, 시조, 전통 서정시 등 우리 전통 시가의 표현기법을 수용하면서 한국적인 멋과 풍류를 미학적 이미지로 그리고 있다. 이 시는 지훈이 선비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뚜렷이 드러내며 나그네의 심정을 밝히고, 그런 마음을 목월에게 전하는 작품이다. 한편 이 시는 경주에서 목월을 만나 그와 함께 보낸 체험과 이 때 목월에게 받은 시가 창작배경을 이룬다.「완화삼」의 ‘나그네’ 이미지는 지훈의 경주나들이에서 촉발된 것이고, 나그네 화자가 걸어가는 ‘칠백리’의 물길은 낙동강의 길이와 일치한다. 이 시가 경주에서 쓰여 진 것이라면, 이 시의 ‘강마을’은 경주의 ‘건천’이라는 마을 체험과 관련되어 있고, 또 당시 경주에서 목월로부터 듣고 보았던 비둘기 울음소리와 경주에서 목월과 함께 보았던 복사꽃의 인상이「완화삼」의 ‘구슬피 우는 산새’ 와 ‘꽃’ 이미지를 촉발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완화삼」엔 이처럼 목월과의 인연과 추억이 깊이 스며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훈은 경주체험에서 촉발된 이미지를 한국의 멋과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 자기 개성과 정체성을 뚜렷이 드러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 시의 의미와 성격은 작품의 부제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목월의「나그네」엔 지훈의「완화삼」에 쓰인 시어들이 많이 나온다. ‘나그네’, ‘술’, ‘저녁놀’, ‘가다’, ‘익다’ 등의 말이 모두「완화삼」에서 구사된 것들이며, 이외에 ‘강나루’, ‘길’, ‘달’, ‘삼백리’ 등은「완화삼」의 시어들이 변형된 말들이다. 또「나그네」의 시적 정황도「완화삼」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이처럼「나그네」는「완화삼」과 매우 깊은 친연 성을 지니지만, 시의 정서와 의미는 크게 다르다. 그것은「나그네」가「완화삼」의 시어를 수용하면서도 한편으로 누락시킨 말과 새로운 발명시어들, 그리고 변형 어들의 독특한 시적 활용에서 비롯된다.「완화삼」의 핵심 시어 중「나그네」에 나오지 않는 대표적인 시어는 ‘꽃’이다. 이 말이 빠지면서 나그네 화자의 감정노출과 풍류가 현저하게 탈색되며, 이와 접맥되어 있는 감정어들이 「나그네」에선 모두 누락된다. 이리하여「나그네」엔「완화삼」의 정체성이 현저하게 사리지게 되고, 그 자리에 목월의 발명어들이 들어가면서 새로운 시로 거듭난다. 목월의 발명어들은「나그네」에서 새로운 역할을 한다. ‘밀밭’, ‘건너’, ‘강나루’등은 소리결의 조성에 기여하며, ‘외줄기’, ‘삼백리’. ‘남도’, ‘길은’ 등은 각운과 율격의 조성에 기여한다.「나그네」는 이러한 운율의 조성에다 독자적 의미생성이 보태져서 독창성을 완결시킨다.「나그네」는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란 비유어를 통해 마치 무중력 상태에서 물체가 이동하듯 유유자적하게 흘러가는 나그네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전해주며, 극도의 감정절제를 통해 나그네의 길 떠남을 풍경화로 보여준다. 그리하여 독자들에게 그 풍경에서 촉발되는 나그네의 평화롭고 외로운 마음을 조용히 음미하게 해 준다. 이 시는「완화삼」에서 제시된 나그네의 이미지를 새로운 미적 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보다 보편적인 이미지로 승화시켜 놓았다. 그리고 이러한 시의 의미와 성격은 제목에 그대로 함축되어 있다.
-
김영태의 시세계에서 “얼룩”이라는 시어는 무화 작용을 통해 시적자아의 사라져가는 현존재성을 보여주는 주요 표상으로 보인다. 영원히 살 수 없다는 점에서 “끝”을 갖고 있는 시적자아는 탄생과 더불어 ‘무’를 안고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무’를 안고 있다는 점이 현존재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므로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얼룩”은 본래적인 유한성을 지니고 있는 현존재를 극명하게 표상하고 있는 시어라고 할 수 있다. 이점에서 결국 김영태 미학의 핵심은 자기 무화를 향해 생생하게 흘러가는 시적 주체가 자신의 작품에 일시적으로 존재한 흔적을 다양한 표상으로 남기면서 끊임없이 미의식을 생성해 나간다는 점이다. 본고는 “얼룩”의 표상성을 주목하고 다음과 같이 고찰해 보았다. 첫째, 시적 자아는 생의 궁극적 질량인 “얼룩”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멸된다는 점에서 인간의 흔적이나 얼룩의 흔적이나 등가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시적 자아는 인식한다. 결국 얼룩은 잠시 존재하는 시적 자아의 본래적인 유한성을 표상하며 곧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음으로써 일회성의 아름다움, 소멸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둘째, 불안은 현존재로 하여금 자기 존재의 근원성, 본래성에 직면하게 해준다. 불안을 통해, 맞닥뜨리게 되는 현존재의 근원성은 바로 무(無)이다. 본고는 무가 언어를 통해 열어 보이는 무한한 미의 세계를 주목했다. 불안을 통해 묻게 되는 시간에 대한 물음은 현존재가 자신의 근원성을 성찰하게 되는 기회가 된다. 현존재는 존재하면서 사라지는 배리적 특성을 지녔다. 세계 밖으로 금방 미끄러지게 될 “나는 있음”이 바로 얼룩이며 우리가 ‘어떻게 무를 경험하고 있는가’ 하는 근본 물음은 김영태의 시에서 자주 등장하는 시어들에서 해답을 구할 수 있다. 세계에 윤곽을 부여하고 존재에 대한 인식을 환기해서 미적인 세계를 생성하는 ‘얼룩’의 음영은 미를 생산하는 중요 기제로써 김영태 시세계를 개진시키는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김영태의 시세계에서 “얼룩”이 표상하는 소멸과 불안과 일회성에 대한 지각은 시적화자로 하여금 무화를 통해 자신이 거주하는 세계를 탈수직적 관점으로 보는 경향을 지니게 한다. 숙명적으로 일회성을 안고 살아가는 시적 자아는 불안한 얼룩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에 투사하며 그 과정을 언어로 남긴다. 이때의 언어는 해체, 탈 권력, 탈 중심, 탈 권위를 표상하기 마련이다. 이들은 동일하게 자유를 지향한다. 인간의 조건으로서의 ‘무’에 대한 절실한 이해가 권력을 해체하고 중심을 해체하고 권위를 해체하게 되는 수순을 밟게 되는 것이다. 본고는 “얼룩”의 세계에 고정관념에 대한 혐오와 억압, 폭력, 체제에 대한 부정의식이 내재되어 있으며 무화의 방향은 바로 이 탈주의 형이상학적 욕망과 관련된다는 점을 주목하였다.
-
운율은 서정 장르의 주된 특징이지만 근대이후 내재율 혹은 자유리듬이라는 개념이 제시되면서 중요성은 물론 관심 또한 줄어들었다. 이는 내재율을 현상이 아닌 관념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리듬의 ‘자유’ 역시 규정하기 어렵다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근대 이후 우리 시의 운율은 장르의 중요한 요인이 아닌 부수적 특징으로 다루어졌다. 서정장르는 보편적 자아를 통해 보편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서사장치와 병행되는 제시형식을 취하게 된다. 요컨대 율격을 지닌 다소 긴 이야기 형식을 취하거나, 이야기와 맞물려 말미에 서정장르가 제시되는 방식을 취한다. 보편적 자아의 감정 확보와 장르의 특성인 서술 억제로 인한 전달력 감소를 양적인 내용의 증가 혹은 병행되어 제시되는 이야기로 보완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다. 고전 시가의 경우 서정적 자아의 범주가 축소되면서 계층, 계급으로 보편적 범주가 줄어들고 그들의 제한적 자아와 소통 가능한 범주 안에서 보편성을 ‘율격’을 통해 획득하게 된다. 율격은 고급가락으로서 음악적 이해도가 가능한 범주에 해당하는 특정인들로 서정 장르의 향유 범주를 제한하게 된다. 근대 이후 시 장르는 ‘율격’ 요소와 결합할 수 없게 된다. 작가 특히 독자에 대한 제한이 불가능한 근대의 경우 율격 장치는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근대 이후 시 장르는 자아의 범주를 확장하는 방법을 다시 사용하거나, 서사화 되면서 이야기 전달력을 높이는 방법, 음악적 요소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운율의 기능을 단순한 장르 특성에서 의미 전달 기능을 담당하는 요소로 변화시켜 보편성을 확보하게 된다. 즉, 내재율은 근대 이후 시 장르의 한 방향으로서 보편성을 확보하는 의미전달력과 장르 특성으로서의 음악적 장치를 유지하고자 했던 노력의 결과물이다.
-
본고는 도스또예프스끼의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 중 「대심문관」과 김춘수의 극시 「대심문관」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역사의식과 무신론에 대해 고찰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그런데 도스또예프스끼의 「대심문관」과 김춘수의 「대심문관」은 창작 의도가 다르다. 전자가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를 위해서 사실적 요인과 창작의 요소를 적절히 조화시켰다면, 후자는 역사의 폭력성과 무신론을 부각시키기 위해 사실적 요인을 축소시키고 이야기를 변형시켰다. 이러한 의도성의 차이 때문에 도스또예프스끼의 「대심문관」이 김춘수의 「대심문관」 보다 다양한 주제와 미학적 완성도를 확보하게 된다. 도스또예프스끼의 「대심문관」은 작가의 무정부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반(反)그리스도 세력의 등장과 민중에 대한 억압이 무정부주의를 확대한다고 보았다. 이때 무신론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성서의 에피그래프를 인용하고 썩지 않는 밀알로 이반을 설정한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묵인함으로써 인신(人神)사상을 표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김춘수의 극시 「대심문관」은 역사가 이데올로기이고 이데올로기는 폭력성을 배태하고 있기에 그 부조리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음을 알리기 위해 각색되었다. 그리고 부조리한 역사를 완전히 바꿀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하면서 무신론을 수용하였다. 이때 무신론적 인물로서 대심문관이 제시되었고, 그리스도의 신적인 능력보다 인간적인 측면을 더 부각시키기 위해서 특정의 사건이 제시되었다. 결국 김춘수의 극시는 원문의 양식적․내용적 변형을 시도함으로써 패러디의 형식을 취하였고 효용론적 관점도 견지하였다. 즉 김춘수의 극시는 창작 의도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과 차이가 다른 비판적 인식이자 예술적 변형이라고 할 수 있다.
-
본 논문은 김동환의 「국경의 밤」이 1925년에 출간된 후 「지새는 밤」이 1930년에 발표되어 5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있지만 인물, 사건, 배경 등의 서사구조인 소설기법을 시에 수용하여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상호텍스트성에 주목하였다. 김동환이 발표한 「국경의 밤」은 전통적인 서사시처럼 과거의 영웅을 주인공으로 하지 않고 평범한 인물을 내세워 민족 공동체의 운명을 드러낸 서사시이다. 이 서사시의 영향을 가장 많이 김억의 서사시 「지새는 밤」은 서사구조와 인물들의 행적, 주제의식 등에서 「국경의 밤」과 밀접하게 연관된 상호텍스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 작품의 제목에서부터 젊은 남녀 간의 사랑을 만남-이별-재회라는 낭만적인 서사, 이향과 귀향의 모티브, 두만강과 압록강의 작품 배경인 국경, 이주민의 실상, 식민지 민족의 비극성을 드러낸 주제의식 등이 거의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특히 두 작품의 공간적 배경인 두만강과 압록강은 원초적인 생명을 상징하는 서사시 배경의 핵심적인 상관물로 자리하여 1930년대 이후 전개되는 서사시의 배경에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이 두 작품은 1920년대 서사시는 서구개념의 서사시의 영향보다 한국 전통서사를 계승 발전한 현대서사시의 출발점을 마련하는 데 기여하고 있음을 밝힐 수 있었다.
-
이 연구는 이상과 김춘수, 오규원 시의 시간에 대한 기호 유희를 카니발 구조(carnival structure)의 웃음으로 고찰한 것이다. 카니발 구조는 기호의 의미가 상충하는 동시에 상보하면서 텐션(tension)의 최고점을 구축하는 과정이다. 카니발 구조는 텐션의 최고점에 이르는 순간, 의미의 틀로 탈주하려는 기호의 역동성을 무너트리기 위해 웃음을 장치한다. 이상의 시에서 이승이면서 동시에 저승이 교류되는 시간은 원내의 일점과 원외의 일점을 잇는 직선, 향기와 묘혈, 나비, 페인트를 칠한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으며, 김춘수의 시에서는 사원과 시계, 뿕은 꽃잎, 발소리, 장미의 눈이 감고, 뜨는 현상으로 드러난다. 이어서 오규원의 시에서는 32일~35일, 여인이 된 시간, 잡풀의 유동적인 움직임으로 가시화한다. 이상 시의 나비는 죽음과 생이 교류하는 시간의 형상이다. 나비는 말하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하는 말을 통해서「오감도」발표 중단을 예시한다. 하얀 페인트에 덮인 십자가와 성피-타( 유다)의 말이 ‘찌- 따찌’ 기계음이 되고, 육체가 소멸되는 시간은 ‘어엌 크 더운물을 엎질러서야 큰일날노릇’으로 희화화되면서 웃음이 된다. 김춘수의 시에서 ‘어딘가’는 알 수 없는 어떤 장소이지만, 그곳에서 ‘눈물’ 위에 ‘뿕은 꽃잎’을 쌓는 생이 반복되고 있다. 사원의 오랜 세월의 이미지와 청동시계의 한 시가 충돌하는 동시에 상보하면서 삶과 죽음의 동시성을 쉼표에 담는다. 쉼표는 시간의 흐름을 관조하는 웃음으로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오규원 시에서는 시적 화자가 사후의 시간을 응시하고 있다. 지상의 달력에서 통용되지 않는 32일~35일이 지상에 오면, 꽃이 피지만, 사람의 집에는 머물 곳이 없어, 나무와 울음에 묻힌다. 사람으로 살았던 시간이 ‘물물’의 시간으로 변화하여 흘러가는 모습이다. 지상의 시간을 표시하는 7월의 정확성과 32일~35일의 모호성이 충돌하는 동시에 상보하면서, 반복되는 시간의 움직임을 형상화한다. 요약하면, 이상(李箱)과 김춘수, 오규원 시의 시간 의식을 카니발 구조(carnival structure)에 의해서 생성되는 웃음의 노마디즘(nomadism)으로 고찰한 것이다.
-
이육사 앞에는 ‘항일민족시인’, 항일투사, 저항 시인 등의 용어가 따라 다닌다. 물론 이런 용어가 부당하거나 근거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이육사를 이해하는 데 일정한 선입견으로 작용하여 시인으로서의 이육사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수식어가 차라리 그의 작품이 가진 풍부함을 손상하기 때문이다. 본고는 이런 시각에서 이육사의 시의 미학적 특징에 주목하고자 한다. 특히 본고는 이육사 시의 시적 화자에 주목했다. 그의 시는 시적 화자와 서정적 주체를 분리하여 세계와의 분리를 경험한 근대적 개인의 정서를 시적으로 형상화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어떤 단일한 가치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중세적 세계관이나 계몽주의적 이성을 넘어서서 미적 근대성을 모색해 갔다.
-
본고는 이청준의 소설「소문의 벽」을 중심으로 문학 속에 드러난 불안의 의미를 고찰해 봄을 목표로 한다.「소문의 벽」은 외형적 주인공인 잡지사 편집장인 ‘나’가 소설 내적 주인공인 소설가 박준의 병적 ‘증상’을 그의 미발표 소설을 통해 추적해 나가는 추리소설적 성향을 지닌 액자소설이다. 그러나 이 소설 밖에는 분석가로서의 작가 이청준이 있으며, 또 그 밖에는 ‘독자’라는 분석가의 시선이 존재한다. 본고는 분석가의 시선으로 이 텍스트의 무의식을 독해해 낼 것이다. 주인공 소설가 박준은 어렸을 적, 6.25 전쟁 중에 밤이면 찾아와, ‘전짓불’을 들이대며 국군의 편이냐 북한군의 편이냐에 대한 대답을 강요당했던 기억으로 말미암아 전짓불에 대한 공포와 그것을 둘러 싼 불안으로 진술공포증과 진술거부증을 앓게 된다. 자신을 미친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박준은 스스로 정신병원을 찾아가 치료를 받지만, 끝내 그 정신병원을 탈출하여 종적을 감추고 만다. ‘나’는 그가 남긴 미발표 소설을 통해서 그가 겪었던 ‘심리적 현실’을 추적해 볼 뿐이다. 필자는 여기서 세 가지 문제에 주목한다. 첫째, ‘전짓불’이라는 큰타자의 시선이란 무엇인가. 둘째, ‘진술한다’는 것, 즉 말한다는 것은 인간 주체에게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가. 셋째, 이를 둘러싸고 인간에게 일어나는 ‘불안의식’은 어떤 심리적 메커니즘 아래서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되어 나타나는가가 그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고찰해 보기 위하여 본고는, 사회과학적 방법론으로 사회적 권력과 정치적 억압의 측면에서 주로 이 소설을 다룬 기존의 연구 방법을 지양하거나 그것과 거리를 두고 프로이트, 라캉의 정신분석의 측면에서, 인간 주체의 심리적 현실 내에서 발원한 불안의 구조적 문제를 논의해 볼 것이다. 정신분석, 특히 라캉의 정신분석에 의하여 본고가 제시한 위의 세 가지 문제를 분석해 보면, 첫째, ‘전짓불’로 상징되는 전짓불의 은유는 다름아닌 큰타자의 시선인 것이다. 큰타자란 단지 ‘말의 장소’일 뿐이지만, 주체가 말을 할 때 주체의 뒤에서 출현하여 수신자인 그 큰타자의 욕망의 진실을 발신자인 주체에게 되돌려 주는 그러한 존재인 것이다. 둘째, 그러므로 주체와 큰타자의 관계에서는 언어(말)의 문제, 즉 진술하기와 글쓰기의 문제가 중요한 분석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이것이 바로 라캉이 무의식을 연구하면서 그토록 언어의 문제에 천착한 이유이다. 셋째, 이러한 메커니즘으로 인하여 주체에게 불안이 발생하는 것이다. 주체는 큰타자에게 말을 거는 순간, 그의 욕망을 알 수 없어 불안하며 두려움을 가지는 것이지만, 결국은 언어로 지시될 수 없는 주체의 무의식 속의 욕망의 진실을 알지 못하여 불안해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 주체의 심리적 현실 속에서 전개되는 불안의 구조이자 의미이다. 「소문의 벽」이 단지 전짓불로 상징되는, 시대적 폭력이나 사회적 억압의 문제를 다룬 소설이라는 차원을 넘어, 언어와 욕망의 문제를 둘러싸고 인간 존재의 심리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리적 현실 내지 심리적 진실로서의 불안의 구조적 문제를 다룬 소설이라는 점을 본고는 강조할 것이다.
-
우리나라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부덕을 종용받으며 자랐다. 그렇기 때문에 신여성들이 공부하기 위해서는 견고한 사회의 벽에 부딪쳐야 했다. 우리 근대 초기, 여성들에게 있어 글쓰기는 치열한 저항의 의미였다. 나혜석은 최초의 신여성 그룹, 최초의 여성화가, 최초의 현대소설 작가였다. 나혜석 소설은 공통적으로 여성 문제에 집중하면서도 10년 단위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양상이다. 나혜석 소설세계 변천의 과정은 결혼과 이혼이라는 여성으로서의 상태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고 사회와의 관계와도 관련이 있다. 나혜석은 결혼제도에 들어가지 않고자 반항을 했다. 그 반항은 1910년대 작품들처럼 「경희」로 나타나기도 했고 「회생한 손녀에게」처럼 타협의 제스처를 보이기도 했다. 결혼 전 내면 시점을 채택하여 내면에서부터 일어나는 현실 변화 의지를 쓰던 나혜석은 결혼 후 다른 성향의 글을 쓴다. 1920년대 작품들의 주인공은 신여성이 아니며 소재 역시 계몽이라거나 미래에 대한 전망과 거리가 멀다. 인물의 고생담에 그친다. 1930년대로 가면 나혜석의 소설은 다시 한 번 변화를 보인다. 1910년대의 논리와 1920년대 현실 모두를 잃고 있다고 여겨지는 글들을 쓴다. 1910년대의 작품들은 지식인 신여성의 걸어야 할 길에 대한 나혜석의 주장이라고 본다면 1920년대 공부하지 못한 전통 구식 여성들의 아픈 이야기는 그에 대한 반으로 읽힌다. 그렇다면 1930년대 나혜석 소설의 방향은 둘 사이의 변증법적 지양, 곧 지식인 여성들에 의한 현실 삶의 개선 같은 것이 그려졌어야 하리라고 보인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혜석 소설 세계 변천의 또 다른 원인인 사회의 아브젝시옹 현상 때문이다. 1930년대 나혜석은 정확한 주제의식이나 목적의식 없이 초점 잃은 글들을 쓰고 있다. 그것은 그녀가 겪은 극심한 정신적 충격 때문으로 파악된다. 여성의 상태 변화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저항하던 나혜석은 사회적 아브젝트가 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받은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작품에 반영시켰던 것이다.
-
이 글에서는 1970년대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 당시 사회에서 소외된 지점에 놓여 있었던 서발턴의 삶을 기록한 르포를 연구하였다. 70년대 르포는 소설이 가닿지 못한 서발턴의 삶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리얼리즘 소설이 서발턴의 삶과 생활에 대해 감상주의 혹은 소재주의의 한계를 노정할 때, 그를 대신해 서발턴을 주체 혹은 매개로 내세워 그들의 삶을 진실하게 기록한 것이다. 당대 르포는 서발턴이 직접 글쓰기 주체로 나선 수기․일기와 함께 논픽션 글쓰기의 영역을 개척하여 기존의 문학장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문학 엘리트의 전유물이자 완강한 제도적인 틀에 갇혀 있었던 한국문학, 특히 서사텍스트가 신문과 잡지 등 담론매체의 형성에 힘입어 기존 문학질서를 뒤흔들었던 것이다. 이는 노동과 생산의 주체가 창작의 주체로 부상하여, 자기 계급에 대한 확신과 역사와 사회에 대한 주체적 역할에 대한 인식의 확대로도 전개되었다. 이 글에서 주목한 것은 전문작가가 보여주는 서발턴의 기록이다. 이것이 당시 지식인작가의 한계에서 배태된 민족문학의 위기를 대신할 한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작가라는 동일한 위치에 존재하면서 심층취재를 통해 당대 현실과 노동 속에 가로놓인 서발턴에 대해 지식인작가와는 다른 시각과 접근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즉 노동 모순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대기업 공장노동자부터 그 모순으로부터 파생된 가정부, 심지어는 접대부의 삶까지 취재하여 그들의 생활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이와 같이 70년대 전문리포터의 르포는 개별적인 서발턴에 주목하기도 하면서 서발턴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어용노조나 비정규학교, 더 나아가 기존 언론매체에 의해 왜곡된 사건까지 파헤쳤다. 이와 같은 현장성과 다양성 때문에 리얼리즘문학보다 르포로 전해지는 서발턴의 삶의 이야기가 훨씬 큰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
이 논문에서는 긴아리랑의 가사를 연구 대상으로 삼고 어휘를 해석하고 내용을 살피며 주제를 정리해보았다. 그동안 긴아리랑에 대해서는 다양한 연구들이 있었지만 가사를 심도 있게 고찰한 것은 부족했는데, 이 논문에서는 남성이 부르는 긴아리랑의 가사 12수와 여성이 부르는 긴아리랑의 가사 9수를 본격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그 결과 긴아리랑의 가사는 연정과 극복의 지향을 노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극복을 지향하는 내용으로는 여성 의식의 추구, 시름과 고난의 극복 등이었다. 긴아리랑 가사의 주제에서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연정의 노래가 가장 많았다. 이와 같은 모습은 여성이 부르는 긴아리랑의 경우 더욱 두드러져 여성 의식까지 추구하고 있었는데, 가부장제에 맞서는 것이어서 주목되었다. 긴아리랑은 우리나라 아리랑의 원형이다. 또한 현재 전승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아리랑을 대표한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긴아리랑의 가사를 집중적으로 살펴본 이 논문이 정선아리랑의 이해와 전승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본 논문은 근대계몽기의 대표적인 여성용 교과서인『초등여학독본(初等女學讀本)』(1908)을 대상으로 20세기 초 여성교육 교재에 나타난 가치혼재 양상을 살펴보았다. 이 책은 1권 1책의 초등여학교 1학년용 한문․국문 교육용 책자이다. 저자는 이원긍이고 발행자는 변영중이며 민간에서 사용했으리라 추정된다. ‘독본’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읽기와 쓰기 학습용 교과서의 특성과 수신규범의 학습내용이 결합되어 있다. 기본적인 체제는 명륜(明倫), 입교(立敎), 여행(女行), 전심(專心), 사부모(事父母), 사부(事夫), 사구고(事舅姑), 화자매(和姉妹)의 전 8장 51과이다. 구성의 특징을 보면 각 장 아래 묶인 여러 과들은 본문을 포괄하는 제목 아래 비슷한 내용을 반복 학습하도록 되어 내용습득의 효율성을 고려하고 있다. 주제와 내용의 연계성을 고려한 편제는 대단원을 설정하고 그 아래 소단원을 둔 현재의 교과서 구성처럼 체계적이다. 전권에 걸쳐 한문 문장을 세로로 쓰고 현토하였으며 그 좌측에 세로쓰기의 순 국문 번역을 병기해 놓았다. 한문으로 된 원문을 앞에 제시하고 본문에 대한 국문 해석을 달아 놓은 형식은 한문과 국문의 동시 교차 학습에 도움을 준다. 대체로 ‘주 한글 종 한문’ 방식으로 쓰여 한글을 주로 사용하는 여성들에게 ‘국한문의 리터러시(Literacy)’ 능력을 획득하게 할 목적을 갖는다. 내용의 특징으로는 조선조 여성교육을 위해 널리 쓰인 소혜황후의『내훈(內訓)』과 유사하여 전통적인 가족관계 내에서의 가족질서 존중, 겸양, 예절, 순종 등을 여성의 기본적인 덕목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남녀의 권리가 같다는 점이나 여성의 독립성, 또는 학문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어 여성의 교육과 계몽을 통해 국가위기 상황을 타개하려는 20세기 초반의 가치관이 뚜렷하다. 한편 당시 유행하던 현모양처 담론에 따라 가정 내 여성의 역할이 남성의 역할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여성의 역할수행에 따라 가정의 화목과 국가의 초석이 마련된다고 역설한다. 본서의 내용을 통해 당시 여성교육이 지향하고자 했던 목표와 내용, 자기수행의 구체적인 측면을 알 수 있다. 『초등여학독본』은 새로운 평등사상과 새로운 이념, 가족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인식을 반영하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전통적 관념과 규범을 견지하는 등 매우 다층적 성격을 드러낸다. 본서는 신구 가치관의 혼재와 윤리 기준의 혼란 속에서 점차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던 개화기 신교육 운동의 일면을 보여준다.
-
문학에서 환상은 비실재적인 것을 설득력 있게 구상·발전시킴으로써 인물의 내면세계를 의미화 하는 것으로, 억압된 욕망을 복원·인식하려는 독특한 방식의 기법이다. 이준연의 동화「지워지지 않는 일기」,「인형이 가져 온 편지」에 나타난 환상은 인간의 욕망을 가시화하는 방식으로 심리적 실체를 형상화한다. 개성적 인물의 행동으로 독자의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하고, 독자를 인물의 정서와 인성에 휘말리게 하며, 해결해야할 문제 혹은 수수께끼를 제기한다. 문제 해결과 수수께끼는 바로 일기와 꿈이라는 환상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나며 그 해독 과정을 통해 궁금증이 해소된다. 인물의 충동적 행동은 갈등을 심화․확장시키고 그로 인한 불안 심리와 죄의식이 ‘일기(문학)’와 ‘꿈’이라는 환상을 통해 역동적 힘을 발휘한다. 현실 이면의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꿈은 작가에 의해 정교하게 변용되어 인물의 억압․은폐된 욕망을 구체화하면서 사건을 흥미롭게 만든다. 「지워지지 않는 일기」가 한 인물(인간)의 현실을 중심으로 꿈과 일기를 통해 욕망을 표출했다면,「인형이 가져 온 편지」는 무생물의 환상세계를 중심으로 인물(인간)의 내면을 보다 구체화․복합화 한다. 환유적 대체물인 무생물과 현실적 인물의 교차․대비, 초자연적 인물의 마법적 환상, 분신 모티프가 주체에 안착하는 여정을 통해 인물의 문제적 현실과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생생하게 표현할 뿐만 아니라 현실로부터 도피․소외․배제되어 가는 문제를 드러낸다. 환상을 통해 욕망을 복원함으로써 이를 객관적으로 보고 주관적 세계와 객관적 세계를 분별할 수 있게 한다. 작품에서 위반과 전복의 환상은 현실과 소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작가의 주제의식을 내포하며 질서, 체계, 권위가 변형된 세계로 성찰과 교정의 기능을 한다. 조화와 균형을 회복할 수 있는 치유와 소통의 장(場)으로서 성격의 안정화를 이루는 핵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