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What kinds of environmental adaptation did people during the Chosun era take when climate change due to drought was perceived and natural disasters occurred? Research hypotheses is 'More environmental improvement projects were conducted when climate disasters were experienced than rituals for rain calling. In this study, frequency samples for Rituals for Rain (RR, 祈雨祭) defined as abnormal climate of drought, Climate Disaster(CD) and Environmental Improvement Projects(EIP) were extracted from "Chosunwangjoshillok(朝鮮王朝實錄)". The analysis among RR, CD, and EIP were studied for a regression model. Research hypothesis was statistically tested. RR took placed the order of Sejong(世宗), Sukjong(肅宗) and Youngjo(英祖), while climate disasters were extracted under the Jungjong(中宗), Sungjong(成宗) and Taijong(太宗). EIP were most active under Youngjo(英祖), Sungjong(成宗) and Taijong(太宗). During the former part of the Chosun dynasty, abnormal climate was more seriously considered than climate disasters, while the opposite pattern was shown during the latter part. In a regression analysis between EIP and CD, the equation of EIP = 0.632CD was determined. As a test result, the study hypothesis the entire Chosun dynasty was dismissed. However, it is possible to statistically support that more EIP were conducted in order to adapt to the climate change during the latter part of the dynasty when climate disaster were experienced.
"가뭄으로 인한 기후변화가 인지되고 기후 재난을 겪게 되었을 때 조선시대의 사람들은 환경적으로 어떻게 적응하는 행동을 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였다. 연구 진행을 위해 '환경개선사업은 기우제 설행 빈도보다는 기후재난 빈도가 높을 때 더 많이 시행된다.'는 가설을 세웠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가뭄을 대표하는 변수로 기우제 빈도를 선택하였다. 기후재난과 환경개선사업을 표현하는 단어들의 샘플을 추출하고 빈도를 측정하여 가뭄, 기후재난, 환경개선사업의 관계를 회귀분석하였고, 연구 가설을 검정하여 기후재난과 환경개선사업 관계를 기후변화 속에서 설명하였다. 가뭄을 대표하는 기우제의 빈도 측면에서 세종대왕, 숙종, 영조의 순서로 나타냈다. 기후 재난은 중종, 성종, 그리고 태종의 순서로 빈도를 보였고, 환경개선 사업은 영조, 성종, 그리고 태종의 순서로 나타났다. 조선 전기보다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가뭄 발생으로 인한 환경개선사업보다 기후재난에 대한 환경개선사업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환경개선사업과 기후재난의 관계는 환경개선사업= 0.632기후재난의 선형 회귀모형으로 설명되었다. 기후재난을 경험한 비율이 높을 때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환경개선 사업이 더 많이 시행한다는 연구가설은 유의했다. 따라서 기후 재난을 인식하고, 환경개선사업을 시행한 비율이 높았던 조선 후기에 연구가설이 통계적으로 더 잘 설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