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three kingdoms(三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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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여자 머리장신구 특성에 관한 연구 (Study on Women's Hair adornments of the Period of the Three Kingdoms)

  • 임린;김은정
    • 한국의류산업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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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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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98-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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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This study classifies features of women's hair adornments with the functional and decorative aspects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and analyses in regards to their contemporary social and cultural surroundings. First, the tree-shaped and Rod-like hairpins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are not as similar as to the hairpins found in China or other northern countries. It is farming lives and the wood-worship religion established the wearing of high-bun hair styles and tree-shaped hairpins. Second, high-bun hair styles and -shaped hairpins were basic hair decorations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Common high-bun styles finally became one of the cultures that reflected the contemporary thinking. High-bun hair styles, not excessively-decorated, became harmonized with the costume beauty and later developed along with with various-shaped hairpins. Third, Buyao (made of metals and based on flower subjects)in the Three Kingdoms Period was a unique style not been seen in the Han and Wei-jin-nam-bei-chao Period. Flowers in Buyao of the of the Three Kingdoms Period show an elegant sway, which is not excessively-decorated that developed into unique features.

삼국시대 화살집[화살통]의 유형과 변화과정 (Types and Changes of Arrow Quivers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 이건용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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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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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2-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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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본고는 삼국시대 화살집 복원에 대한 기초 연구로, 기존 화살집 복원 안에 대한 세부내용을 보완하기 위한 연구이다. 현재 발굴된 삼국시대 화살집은 화살을 담는 주머니인 수납부, 그리고 화살집의 등판에 해당하는 배판부로 구성된다. 그러나 2부위는 남아있지 않고, 금속 부품만 발굴되고 있다. 출토된 화살집을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복원하였다. 수납부 금구를 중심으로 W자형 부품과 ㄷ자형 부품으로 구성된 1유형, 띠형 금구만 확인된 2유형으로 분류했다. 3유형은 2유형과 비슷하지만 적수금구에서 뻗친 철띠가 띠형 금구에 연결되는 화살집으로, 별도의 유형으로 상정하였다. 3가지 유형의 화살집에 대한 복원 안을 제시하기 전에 적수금구 위치와 유기물 관찰 내용을 반영하였다. 또 출토정황만으로 알 수 없는 적수금구의 위치와 같은 내용은 조선시대 화살집과 일본의 정창원, 하니와에서 관찰되는 화살집 착용방법에서 착안하였다. 적수금구를 기준으로 삼은 기존 화살집 변천 안을 참고하면, 화살집은 본고의 1유형에서 2·3유형으로의 변화한다. 변화의 요인에 대해 화살을 담는 수납부 공간과 화살집을 착용하는 방법의 변화에서 찾았다. 그러나 일부 2·3유형은 1유형의 착장 방식을 유지하고 있고 구식의 부품을 유지된 사례도 있었으며, 함안지역에서는 전형적인 1유형이 늦게까지 부장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삼국시대 봉토분의 호석에 대하여 - 성주 성산동고분군의 신자료를 중심으로- (A Study on the Stone Circles of the Mound Tombs Dated the Three Kingdoms Period -A New Discovery from Mound Tombs at Seongsan-dong, Seongju County-)

  • 김세기
    • 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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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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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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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영남지역의 삼국시대 고분은 대형 봉토분이 지역별로 군집을 이루고 분포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봉토분들은 일반적으로 봉분 기저부에 원형 혹은 타원형의 호석을 설치하고 있다. 호석은 봉토의 유실을 방지하기 위하여 분묘 둘레에 구축한 시설이면서 분묘의 범위를 나타내는 경계선이기도 하다. 이러한 호석 시설은 수혈식 석실의 봉토분 및 횡혈식 석실분은 물론이고 경주의 적석목곽분에도 설치되고 있어 삼국시대 봉토분의 일반적인 축조방식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봉토분의 호석들은 현재는 대부분 봉토 속에 묻혀 있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으나 원래는 봉분의 밖에 노출되어 있었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필자는 성주 성산동고분군의 삼국시대 봉토분 28기와 기존에 조사된 4기 등 32기의 기저부를 조사하면서 호석의 형태를 면밀히 관찰하게 되었다. 이번에 조사한 32기의 봉토분 중에서 호석을 가지고 있는 고분은 27기었으며, 호석이 없는 고분은 5기에 불과하였다. 즉, 성산동고분군의 봉토분들은 대부분 타원형 호석이 설치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성산동고분군의 호석들은 대개 원형 혹은 타원형의 봉분 외연 전체를 둘러 설치하였고, 축조방법은 자연석이나 할석으로 2단내지 3단을 옆으로 뉘어 바깥 면을 정연하게 쌓은 것이 가장 많고, 할석 1단을 옆으로 돌린 것도 있다. 호석의 높이는 1단 10cm로부터 4단 1m까지 있으나 2$\~$3단 30$\~$50cm가 일반적이다. 이와 같은 축조방법이나 축조양상으로 볼 때 삼국시대 봉토분의 호석은 대부분 봉분의 밖에 노출되어 축조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외곽 호석 관습이 통일신라 이후에 왕릉의 12지상 호석으로 발전한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호석이 있는 삼국시대 봉토분을 복원정비 할 때에는 호석을 봉분 밖으로 노출시켜 복원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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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학을 운용한 삼국지 게임 캐릭터 분석 연구 (A study on the analysis Characters in the game Three Kingdoms through Physiognomy)

  • 장뢰;이동훈
    • 한국콘텐츠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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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콘텐츠학회 2009년도 춘계 종합학술대회 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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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1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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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 연구는 관상학을 운용하여 삼국지 게임 캐릭터에 대하여 분석한다. 현재 게임업계는 급속하게 발전하여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휴식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게임 속의 캐릭터는 게임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로서 캐릭터 디자인은 게임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캐릭터 디자인은 대부분 중요인물을 주제로 하지만 세부특징이나 외모에 대해서는 상세한 묘사가 없고 보통 게임 기획자의 요구대로 디자인 된다. 본문에서는 이런 방식에서 탈피하여 관상학의 연구를 바탕으로 삼국지 인물의 신분, 지위, 성격 등 여러 요소에 대해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디자이너로 하여금 캐릭터 디자인에 있어 더욱 풍부한 참고자료를 제공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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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통 희곡 <서향기>와 <삼국지> 한국으로의 전파 및 한국에 끼친 영향 (Studies on The Spread and Impact of Chinese Traditional Dramas and in South Korea)

  • 궈위엔
    •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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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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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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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희곡문화는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예술화한 무대 연출로 한국과 중국 사이에 좋은 교류 매체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나라마다 문화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따라서 공연의 형식도 달라진다. 중국과 한국도 마찬가지로 희곡문화 예술의 표현 형식을 서로 다르게 나타내는 것이다. 본 논문은 중국 희곡 <서향기> <삼국지>가 한국에서의 전파와 영향을 연구 대상으로 삼으며, 작품 분석과 텍스트 분석의 방법으로 희곡문화 전파의 변화 발전 역사를 검토하고자 할 예정이다. 나아가 중국 희곡문화가 한국 문화에 영향을 끼쳐 중국문화의 국제적으로 알려지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고려하면서 중국 문화 전파와 대중 반응도 살펴볼 것이다. 본 논문의 탐구를 통해 중한희곡문화의 교류와 향후 발전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한다.

19~20세기 무신도 등에 사용된 구리-비소 녹색 안료에 대한 연구 (Study on the Copper-Arsenic Green Pigments used on Shamanic Paintings in the 19~20th century)

  • 오준석;최정은;최윤희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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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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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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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19~20세기 83점의 무신도 등의 녹색 안료를 형광X선분광기, 주사전자현미경, 적외선분광광도계를 이용하여 분석하였다. 형광X선분광기에 의한 성분 분석 결과 60점에서 구리와 비소가 검출되었다. 복개당 무신도와 삼국지연의도의 구리와 비소 강도 비 Cu $K{\alpha}$/As $K{\beta}$는 5.93~12.04로 표준 에메랄드 그린 5.67~6.26, 나머지 무신도 4.01~7.89에 비해 높아 셸레즈 그린으로 추정되었다. 형광X선분광기 분석에서 구리와 비소가 검출된 녹색 안료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결정이 관찰되었다. 대부분의 무신도에서는 판상의 결정이 성장한 타원형이나 원형 구정이 관찰되었지만, 복개당 무신도와 삼국지연의도에서는 판상의 결정이 빽빽하게 채워진 원형 구정만이 존재하였다. 적외선분광광도계로 구리-비소 녹색 안료를 분석한 결과, 복개당 무신도와 삼국지연의도는 셸레즈 그린이 동정되었고, 나머지 무신도에서는 에메랄드 그린이 동정되었다. 분석 결과로부터 복개당 무신도 및 삼국지연의도에는 녹색 안료로 셸레즈 그린이 사용되었고 제작 연대는 1850년대~1870년대로 추정되며, 에메랄드 그린은 19세기 후기 이후부터 1970년까지 제작된 무신도에서 녹색 안료로써 광범위하게 사용된 것이 확인되었다.

삼국시대 지배계층 복식문화 연구 (A Study on the Costume of the Ruling Classes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 이선재;양경애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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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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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1-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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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
  • This study is about the similarities and the individualties of the traditional costumes in the ruling classes of Koguryo(高句麗), Bakjae(百濟), and Shilla(新羅). The analysis is based on the views of historical reformation on$\boxDr$Sam-gooksagi(三國史記)$\boxUl$Bongi(本紀). The costumes that were worn by the governing classes are categorized by the following, official duties, wars, ceremonies, and recreations(hunting). Up to the present time, there has been a great tendency to emphasize the similarities of the Three Kingdoms' costumes among most of academic researchers. However, the conceptions of individualities of the costumes among the Three Kingdoms were conceived by the facts that geological environments, political systems, social traditions, social aspects, and foreign affairs. The Three Kingdoms had different official rank systems along with official costume systems. Monopolization of official positions of the ruling parties tried to show their dignity and authority through styles of their costumes. The costumes of Koguryo were greatly differentiated by geographical regions ; One direct example is cheak of Pyoungyang and Anak regiona was named as official hats of rulling parties of Kokuryo. However, in this study, the cheak was viewed as a product of influences of Chinese costume. Further-more, the laguan was named as mooguan. Costumes of ceremonial occasions were heavily decorated to symbolize dignity and auth-ority. Metal ornament of headgear and belt, metal shoes were con-sidered as ceremonial costumes. the tight hunting costumes of Koguryo shown in mural pain-ting costumes of Koguryo shown in mural pain-tings were presumed to be spring and autumn clothing. Excavated from Neungasnlee, the hunting costumes inscribed in the gold incense burnner were confirmed as hunting costumes of Bakjae. The individuality of the costumes of the Three Kingdoms could also be supported by the fact that they had different climates. The temperature difference between Gipan region and Kyoungjoo(慶州) region was emphasized. Especially winter clothing would have had a big difference in style than the summer clothing. Through the research summarized above, this study was able to confirm that each of the Three Kingdoms had developed individualized costumes based on their geographical, cultural and environmental factors. Furthermore, through this study, it was possible to find out the difference as well as the similarities of their costumes according to each of their people's sociopolitical status, awareness of indepen-dence, andunique historical and traditional charactoris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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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선·역사시대 박의 재배와 이용 (Cultivation and use of bottle gourd (Lagenaria siceraria) in ancient Korea)

  • 김세빈;김민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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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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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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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박(Lagenaria siceraria)은 구·신대륙에 걸쳐 재배 역사가 약 만년에 이를 정도로 오래된 작물이다. 하지만 한반도로 유입된 시기나 이용 방법에 관한 고고학적 고찰은 극히 드물다. 이에 한반도 소재 유적에서 출토된 박의 식물유체(종자와 열매껍질)를 검토하여 유입 시기, 경로, 형태적 특징에 관한 시론적 고찰을 시행하였다. 검토 결과,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박 재배는 청동기시대에 이른바 남방계통 작물의 유입과 함께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 식물유체가 발견된 유적은 삼국시대에 증가하며 이는 역사시대에 이르러 박이 중요한 작물로 자리 잡았음을 나타낸다. 둘째, 삼국시대에 출토된 박 종자는 장폭비와 형태로 보아 아프리카·아메리카 아종과 아시아 아종이 혼재한다. 삼국시대 종자의 형태적 다양성은 높으며, 역사시대에는 다양한 변종의 박이 재배되었을 것이다. 셋째, 박의 재배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는 열매껍질의 두께인데, 서천 봉선리 백제 목곽고 출토품으로 볼 때 삼국시대에 이르면 박열매가 대형화하였다. 이를 종합하면 박은 청동기시대에 한반도로 유입된 후 역사시대에 이르러 재배가 활성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아시아 재배종 박의 아메리카 전파설을 뒷받침할만한 고고학적 증거는 한반도와 인근 지역에서 찾기 힘들다.

북한의 신라 고고학 연구 현황과 특징 (A Review of Archaeological Research on Silla in North Korea)

  • 윤상덕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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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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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0-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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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고는 북한에서 이루어진 신라(통일신라) 고고학 연구 현황을 정리하고 그 특징 검토를 목적으로 하였다. 주요 자료가 남한에 있어 그동안 우리 학계는 북한의 신라 고고학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 이에 향후 북한 자료를 다루기 위한 기초 연구로써 북한 학계의 연구를 검토하였다. 연구 현황은 우리가 주로 다루는 고고학 주제에 맞춰 무덤, 성곽, 왕경, 토기, 와전, 장신구, 무구, 마구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 결과 연구 특징을 네 가지로 정리하였다. 첫 번째는 주체사상이 북한 학계의 삼국통일 해석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1955년에 처음 제기된 '주체'는 사대주의의 반대 개념으로 중소 분쟁의 틈바구니에서 주창되었다. 이에 따라 신라의 삼국통일을 외세와 결탁한 사건으로 보고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게 되었는데, 이러한 변화는 1962년 자료부터 확인된다. 두 번째, 반사대주의의 영향으로 삼국문화의 '고유성'과 '단일성'을 증명하려 하였다. 한반도의 문화가 중국과는 다른 고유성을 가지며, 삼국의 문화는 상호간에 공통점이 많다는 것이다. 세 번째, '단일성'의 원천은 고구려의 '우수한' 선진 문화이며, 백제와 신라, 가야에 전파되어 '민족 문화의 단일성'이 형성되었음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고구려의 선진 문물이 발해와 '후기신라(통일신라)'에까지 전해지고 다시 고려로 이어져 민족 문화의 진정한 통일이 일어났다고 설명한다. 네 번째는 남한 학계에 비해 신라의 무덤이나 유물의 연대를 상당히 올려 보는 점이다. '조선의 유구한 역사'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신라의 건국을 1세기 초·중엽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국가 형성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의 연대를 올려 볼 수밖에 없다. 또한 고구려 석실분이 신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하기 위해서도 신라 석실분 연대의 상향이 필수적이다. 1960년대에 형성된 연구 특징은 지금까지도 북한 학계가 반드시 준수해야 할 기본 지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