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삼국시대 화살집 복원에 대한 기초 연구로, 기존 화살집 복원 안에 대한 세부내용을 보완하기 위한 연구이다. 현재 발굴된 삼국시대 화살집은 화살을 담는 주머니인 수납부, 그리고 화살집의 등판에 해당하는 배판부로 구성된다. 그러나 2부위는 남아있지 않고, 금속 부품만 발굴되고 있다. 출토된 화살집을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복원하였다. 수납부 금구를 중심으로 W자형 부품과 ㄷ자형 부품으로 구성된 1유형, 띠형 금구만 확인된 2유형으로 분류했다. 3유형은 2유형과 비슷하지만 적수금구에서 뻗친 철띠가 띠형 금구에 연결되는 화살집으로, 별도의 유형으로 상정하였다. 3가지 유형의 화살집에 대한 복원 안을 제시하기 전에 적수금구 위치와 유기물 관찰 내용을 반영하였다. 또 출토정황만으로 알 수 없는 적수금구의 위치와 같은 내용은 조선시대 화살집과 일본의 정창원, 하니와에서 관찰되는 화살집 착용방법에서 착안하였다. 적수금구를 기준으로 삼은 기존 화살집 변천 안을 참고하면, 화살집은 본고의 1유형에서 2·3유형으로의 변화한다. 변화의 요인에 대해 화살을 담는 수납부 공간과 화살집을 착용하는 방법의 변화에서 찾았다. 그러나 일부 2·3유형은 1유형의 착장 방식을 유지하고 있고 구식의 부품을 유지된 사례도 있었으며, 함안지역에서는 전형적인 1유형이 늦게까지 부장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 말기 진도(珍島) 출신의 소치(小癡) 허련(許鍊)(1808~1893)은 시(詩) 서(書) 화(畵) 삼절작가(三絶作家)로서, 호남 화단의 실질적 종조(宗祖)라 불리운 대표적 화가이다. 초의선사(艸衣禪師)로부터 유(儒) 불(佛) 도(道)와 함께 회화의 기초를 배웠고, 초의(艸衣)의 소개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문하생이 되었다. 이후 추사(秋史)의 문인지향적(文人指向的) 서화정신과 화이재도적(畵以載道的) 회화심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계승하였다. 그의 생애와 예술활동의 특징은 70이 넘은 만년(晩年)까지 지속된 주유(周遊)와 다작(多作) 활동, 그리고 주유(周遊) 기간의 세부사항까지 서술한 "소치실록(小癡實錄)"의 기록이다. 소치(小癡)는 사의적(寫意的) 남종화(南宗畵)를 지향하여 예황풍(倪黃風)의 산수화에서 자유분방한 갈필(渴筆)과 소산간일(蕭散簡逸)한 충담미(沖澹美)를 발현하였다. 또한, '허목란(許牧丹)'이라 불리울 만큼 운필변용(運筆變容)의 생동미(生動美)를 자아내는 모란은 괴석(怪石)을 함께 그려 부귀공명(富貴功名)에 대한 욕망과 문사적(文士的) 취향을 동시에 만족시켰고, 이후 가전(家傳)되어 '운임산방(雲林山房)'의 대표적 화목(畵目)이 되었다. 그의 토착화된 화풍(畵風)과 회화(繪畵) 심미(審美)는 200여년의 5대(代) 직계(直系) 화맥(畵脈)을 형성하여 지금까지 현대 한국화단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플라톤의 존재론은 물질과 정신의 영역을 독립적으로 간주하는 이원론보다는, 이데아를 중심으로 하는 전체론(Holism)에 가깝다. 그의 형이상학에서 감각적 사물은 이데아의 모상이며, 이데아는 그것의 원형이다. 그에 따라 인간의 육체와 영혼도 서로 단절된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연속적이며 기능적으로 상보적인 관계에 놓여있다. 영혼의 완성을 추구하는 플라톤의 교육관에서 체육을 중시하며 그것을 공부의 전제로 삼은 이유는 이러한 존재론에 근거한 것이다. 구한말 독립운동가 박은식 역시 플라톤과 비슷한 교육관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우리 민족이 회복해야 하는 내면의 가치인 '마음'을 발견하기 위해선, 무(武)의 교육이 중요함을 역설하였다. 플라톤과 박은식 모두는 체육과 무(武)의 교육이 그들이 추구했던 인간상을 만들기 위한 공부의 전제가 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제시한 교육과정을 통해 육성된 인재들은 사회에서 각자 자신의 직분을 다함으로써 국가의 번영을 이끌 것이라 기대했다. 결론적으로, 플라톤과 박은식의 사상에서 학생들에 대한 체육과 무(武)의 교육은 인간의 개인적 완성을 위한 공부의 전제이자, 그들이 꿈꾸었던 이상국가를 만들기 위한 필수적 교육과정 이었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2022년에 새롭게 보물로 지정된 앙부일구의 재질과 외형적 특징을 분석하였다.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과 성신여자대학교박물관의 세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보물 앙부일구는 그 재질, 규격, 형태(외형), 은상감 등 제작기법이 쌍둥이처럼 비슷하다. 이 세 점의 앙부일구은 구리: 아연: 납이 90.6: 6.0: 1.8의 비율인 황동으로 제작되어 있다. 이 성분비는 82.2: 3.7: 11.8의 조성비를 가지고 있는 보물 제845호 앙부일구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새 보물 앙부일구에서 반구의 받침부분은 용의 문양이 수직기둥에 그려지고 구름의 문양이 기둥의 날개를 형성하여, 반구 지평환에 각각 리벳과 은땜으로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운룡주(雲龍柱)의 문양은 조선 후기 제작된 다양한 앙부일구 받침대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앙부일구에 새겨진 북극고도는 1713년 이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실제 제작은 19세기 진주 강씨 앙부일구 전문제작자의 활동 시기에 근접할 것으로 추정된다. 본 연구가 2022년 지정 보물 앙부일구의 재질과 외형적 특징을 분석함으로써 근대 과학기기의 과학기술사적 고찰을 견인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연구는 부산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국긔복소션"과 "법복졀복"의 직의(織衣) 즉, 표지직물 및 이를 보관하는 첩갑을 구성하고 있는 직물에 관한 분석적 연구이다. 본 유물은 조선 제24대 왕인 헌종(재위 1834~1849)의 후궁인 경빈 김씨(1831-1907)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첩갑과 2권의 필첩의 표지는 모두 적외분광 분석 결과, 견직물에 의해 배첩이 되어있으며 첩갑의 표지는 화문직은단(花紋織銀緞)으로 되어있고 두 필첩의 겉표지는 초록색과 적색의 수자편복문단이다. 첩갑의 금속사 부분은 에너지분산형 분광분석으로 분석한 결과 은이 산화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염료분석 결과, 적색인 "법복졀복"의 표지직물에서는 berberine, brazilin, carthamin 등이 검출되어 황벽, 소목, 홍화 등에 의해 복합염색이 된 것으로 추정되며 첩갑의 색사들을 분석한 결과에서는 첩갑의 황색섬유에서 rutin이 검출되어 괴화에 의한 염색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 묵장(墨場)의 영수(領岫)로 불리었던 조희룡(趙熙龍)(1789~1866)은 양반가문 출신이었지만 스스로 여항인(閭巷人)이라고 자처하였으며, 중인(中人)들을 중심으로 벽오사(碧梧社)를 결성하여 문예 활동을 하였다. 우봉(又峯)은 "불긍거후(不肯車後)"를 전 생애를 관통하는 예술정신으로 삼았으며, 성영론(性靈論)을 내세워 감성 내지 영감을 예술의 요체로 여겨 진정(眞正)과 개성(個性)을 중시한 독창적 회화심미를 추구하였다. 60대 초반에 약 3년간의 임자도 유배기간은 그의 예술세계에 대한 정체성과 방향성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기간에 "화구암란묵(畵鷗??墨)", "우해악암고(又海岳庵稿)", "수경재해외적독(壽鏡齋海外赤牘)", "한와헌제화잡존(漢瓦軒題畵雜存)" 등 4권의 저술을 썼으며, 당호(堂號)가 있는 그의 회화 19점 중 "황산냉운도(荒山冷雲圖)", "방운임산수도(倣雲林山水圖)",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등 8점이 이때 제작되었다. 이들 작품을 통해 유희적(遊戱的) 속미(俗美) 정신과 수예(手藝)의 기괴(奇怪)함, 그리고 천예(天倪)의 자연스러운 회화심미를 드러내고 있다.
조선시대 후기 그림 및 문헌에 등장하는 조경식물 파초의 식재 현상과 그 문화적 유풍이 어떻게 전승되고 있는가를 규명할 목적으로 문헌연구와 현장관찰을 통해 국가지정 문화재 민속마을과 전통사찰의 파초식재 실태를 파악한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6개 국가지정 민속마을을 대상으로 한 식재 실태파악 결과, 아산 외암마을과 성주 한개마을 등 아주 한정된 정원에서만 그 유풍이 전해지고 있다. 파초가 식재된 정원은 외암마을의 경우 건재고택과 참판댁 그리고 설인방 등 3곳의 정원에서 발견되었다. 한개마을에서는 북비고택, 하회댁, 교리댁 진사댁 등에서 발견되었으며 주 식재장소는 사랑채와 안채 정면에 모아심기로 되어있다. 한편 파초식재가 확인된 전통사찰은 총 39개소로 나타났으며 파초식재가 현재 가장 성행하는 사찰은 통도사와 부속암자인 극락암으로 밝혀졌다. 파초가 심겨지는 사찰 전각과 그 위치는 대웅(보)전과 관음전 등 석가모니불과 관세음보살을 모신 불전의 계단 좌우에 모아심기형태로 대식(對植)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파초가 남방계식물인 점을 감안, 파초의 식재분포는 전라남도와 경상도 일원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바 이는 한반도의 등온선 분포와 상당히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특히 온량지수 $100^{\circ}$, 연평균기온 $12^{\circ}C$를 기준으로 식재분포가 결정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Korean children's clothes have unique aesthetic characteristics distinguished from other countries'. Our folk beliefs handed down from ancient times always contained fortune - seeking thoughts and particularly mothers' earnest wishes for the happiness of their children were sublimated into the symbolic beauty of their children's clothes. The present study examined children's clothes in the royal family and among the people for 50 years of the transitional period from the late Joseon Dynasty to modern times, by classifying them into ritual dress for new-born babies, festival dress and everyday dress. Male children's clothes included caps such as Bokgeon(복건), Hogeon(호건) and Gulle(굴레) topcoats such as Durumagi(두루마기), Sagyusam(사규삼) Koija(쾌자) and Jeonbok(전복) and others such as Magoja(마고자), Baeja(배자), Joggi(조끼) and Bajijeogori(바지저고리), Female children's clothes included caps and head ornaments such as Gulle, Jobawi(조바위) and Daenggi(댕기) and others such as Durumagi, Jegori and Chima(치마). What is interesting is that old clothes handed down to the present are mostly boys' and few of them are girls'. This is probably because of the strong preference for boys rather than girls that continued until the end of the 20th century. Ordinary people dressed their new - born babies with simple white clothes until Samchilil (the 21st day) or Baekil (the 100thday) but, for these occasions, the royal family prepared clothes as formal as those for the $1^{st}$ birthday among the public. Rainbow-striped garments were more popular among the public than in the royal family. As rainbow colors were known to Korean people to dispel evil power and bring in fortunes, rainbow - striped garments were essential for the $1^{st}$ birthday and festive days. However, they were seldom used in ordinarytimes, and most boys and girls wore plain jackets and plain topcoats. When children's clothes in noble families were compared with royal family's ones, either handed down to the present or found in old literature, no significant difference was observed in the basic composition of everyday dress. In particular, it was found that Andong Kim's family had dressed their children with very formal dress such as Dopo and Sagyusam. Among children's clothes, the most gorgeous one was that worn on the $1^{st}$ birthday, and those for other occasions or festive days were similar or simpler. Colors, patterns and designs used in decorating children's clothes mostly had the meanings of seeking fortunes for children such as long life, wealth and prosperity.
소치 허련(小癡 許鍊,1808~893)은 조선 말기 대표적 남종 문인서화가이며 남도 문인화의 시조로,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의 문하에서 문인의 학문적 면모와 화원의 능숙한 화법을 모두 체득해 '사의화(寫意畵)'를 이룬 직업형 문인화가였다. 허련의 산수화는 그의 화격을 높이 산 김정희의 지도에 의해 형성되었으나, 추사 사후 그의 나이 70세경에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묵란화는 '추사란(秋史蘭)'의 양식과는 관련이 없고, 전체적으로는 고법(古法)을 따르면서도 거칠고 호방한 필치의 사의성을 띠고 있어 주목된다. 허련의 묵란화는 사군자류 중 화란법(畵蘭法)을 남길 만큼 관심을 가졌던 분야임에도 전체적인 작품의 조사나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화란법과 제발(題跋), 인문(印文)에 나타난 난화관(蘭畵觀)을 통해 그의 묵란화 인식을 살피고, 화보를 임방하고 당대 화풍을 수용하면서도 개성적인 필묵의 운용으로 형성된 소치란(小癡蘭)의 면모를 파악해보고자 한다. 특히 허련은 당시 묵란화의 대가인 이하응이나 조희룡과 화우(畵友)로 지내지만 난 그림에 있어서는 김정희의 난화론을 바탕으로 삼아 초기 지두란(指頭蘭)을 그리는 등 자신만의 화란법을 형성하고 예술세계를 구축한다. 또한 난화는 유가적 전고(典故)를 바탕으로 그리지만 제발과 인장의 내용을 통해서는 유가적 성격뿐만 아니라 도가 불가적 의미까지 더해져 허련의 인생 지향과 사유세계를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복합적이고 다양한 철학과 심미의식이 반영된 허련의 묵란화는 시기에 따라 변화 과정을 거치며 만년에 사의 묵란화를 형성한다. 즉 그는 직업형 화가였음에도 말년에 더욱 활발히 제작했던 사의란을 통해 조선 사대부의 이상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려 했음을 알 수 있고, 소치란은 문인의 표상을 실현하려는 사의적 시각과 의지의 발로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근대 한국의 자생 신종교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 증산 강일순, 소태산 박중빈 등은 모두 몰락한 양반 출신의 '잔반'(殘班)으로서, 본격적인 종교활동에 앞서 시골 서당의 훈장, 농민, 장사꾼, 술사(術士) 등의 활동을 통해 생계를 꾸려나갔으며, 상층 양반으로부터 하층 상놈으로 전락하여 주변화된 서발턴적 위상으로 인해 다양한 서발턴들의 표현할 수 없는 염원과 원한을 종교적으로 대표/재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성 질서의 질곡을 폭로하고 일탈하면서도 새로운 대안 질서를 이념으로 제시하지 않았던 조선 후기 '밀레니엄적 주변종교' 운동과는 달리, 이들은 모두 지배층의 서발턴적 규제와 억압을 전복시키고 기성질서를 대체할 수 있는 '후천개벽'의 새로운 대안적 비전을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실천한 '유토피아적 대안종교'로서 탈-서발턴(post-subaltern)적 종교를 제시하였다. 이 글에서는 이들의 사상이 서발턴을 대표/재현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종교적-사회적 주체로서 탈-서발턴의 사회적 비전을 구현하는 다양한 양상을 비교하여 분석함으로써 근대 한국의 자생적 신종교가 유토피아적 대안종교 사상임을 논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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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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