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royal court f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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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 궁중간장류의 생리활성 분석 (Physiological Activities of Korean Traditional Soybean-Fermented Royal Court Soy Sauces, Gungjungjang)

  • 이남근;류영준;여인철;권기옥;서은미;함영태
    •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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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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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9-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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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본 연구는 고급 장류인 궁중간장과 한식간장 및 시판 개량 간장의 갈변도, 총 phenol 함량, SOD 유사활성, 항균활성, 혈전용해능, ${\alpha}$-glucosidase 및 lipase 억제효과를 한외여과기로 분획된 1,000 이하 저분자 물질과 1,000 이상 고분자 물질의 분획물을 이용하여 in vitro에서 측정하였다. 분자량이 1,000 이하 및 1,000 이상 궁중간장류의 분획물의 갈변물질에 따른 갈변도는 각각 $0.101{\pm}0.001\sim0.206{\pm}0.006$$0.486{\pm}0.145\sim02.503{\pm}0.008$ 범위 흡광도 값을 보였으며, 궁중간장류 중 꽃장의 갈변도가 가장 높았다. 총 페놀 화합물 함량에 있어서, 분자량 1,000 이하 궁중간장류 분획물은 $101.55{\pm}1.49\sim0114.00{\pm}0.11$ mg/L 범위에서 측정되었으며, 이는 일본 및 중국에서 제조된 시판 개량간장에 비해 높았다. 그러나 분자량이 1,000 이상의 분획물에서는 일본 및 중국에서 제조된 시판 개량간장들보다는 낮았다. 궁중간장류의 항산화 활성은 대부분 1,000 이하 분획물 시료에서 평균 51%의 SOD 유사활성을 보였으며, 한식간장과 시판 개량간장들보다 높게 나타났다. 혈전용해능 및 항균활성에 있어서는 본 연구에 사용된 모든 간장 분획물 시료에서는 뚜렷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alpha}$-glucosidase 저해활성은 분자량이 1,000 이하의 분획된 궁중간장류는 $6.34{\pm}1.51\sim8.79{\pm}0.81$% 범위에서 저해활성을 보여 한식간장과는 유의적인 차이가 없었으나 시판 개량간장들보다는 약 2.9배 높은 유의적 차이를 보였다. 분자량이 1,000 이상의 분획물은 꽃장(75%)을 제외하고는 평균 약 6.7%로 한식간장 및 국내 제조 개량간장들과는 유의적 차이가 없었다. 분자량 1,000 이하 및 이상 분획된 간장 시료들로부터 lipase 저해활성은 시판 개량간장들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으며 대부분 궁중간장인 청장, 덧간장, 진장, 어육간장 시료들에서만 lipase 저해활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Investigation of Sun-cuisine in Modern Culinary Literature

  • Cho, Woo-Kyoun;Lee, Young-Eun;Lee, Shin-Bi;Cho, Mi-Sook
    • Food Quality and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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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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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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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Sun-cuisine is a traditional Korean side dish. This study examined the methods used to prepare Sun-cuisine in 11 Korean recipe books published over the last 100 years. The main ingredients of Sun-cuisine were typically vegetables, fins, fur, feathers, meat, legumes and mushrooms dipped in wheat flour or mung bean starch powder and stuffed with various minor ingredients known as "so". These dishes are highly seasoned and boiled in meat stock or steamed in a double boiler, after which they were sprinkled with toppings. Various materials are used as the main ingredients. When vegetables were used as the main ingredients, they were sprinkled with salt, sliced and stuffed with beef or mushrooms. Meat stock was then poured on top of the vegetables and they were steamed. A total of 38 food materials were used as the minor ingredients, while 25 materials were used as seasonings and six foods were used as toppings. Pine nuts were widely used as a minor ingredient, seasoning and topping. Sun-cuisine is generally made using various powders such as starch or wheat flour. Sun-cuisine was a kind of royal court food in the past that was served as a side dish. Recently, Sun-cuisine is eaten less often because its cooking process is too delicate and complicated. Therefore, additional studies to enable the modernization of the Sun-cuisine cooking process should be conducted with the goal of revitalizing the beauty and taste of this traditional food.

1700년대~1960년대 문헌에 나타난 탕평채의 문헌고찰 (Literature Review of Tangpyeongchae in Cook Books Published in 1700~1960s)

  • 이경애;김보람;김향숙;신말식
    • 한국식품조리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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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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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7-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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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탕평채의 전통 조리법 발굴을 위해 1700년대부터 1960년대의 고문헌 및 고조리서에 수록된 탕평채의 재료, 양념, 조리방법의 변화 등을 검토하였다. 탕평채는 1700년대 말의 문헌인 "경도잡지"와 "고사십이집"에 처음 소개된 후 "임원십육지", "동국세시기", "송남잡식", "진찬의궤", "진작의궤", "명물기략", "규곤요람", "시의전서", "조선요리제법",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주부의 동무, 조선요리제법", "조선요리학", "이조궁정요리통고",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 등에 탕평채가 수록되었다. 조선시대 궁중 연회음식을 수록한 "진찬의궤"와 "진작의궤"에는 청포채란 명칭으로 탕평채가 소개되어 있다. 탕평채의 재료 중 묵, 고기, 미나리, 숙주나물, 달걀, 김의 사용이 보편화된 것은 1900년대 중반 이후이며, 달래, 물쑥과 같은 봄나물을 재료로 사용한 기록도 있다. 1700년대 말에는 단지 초장(간장과 초로 만듦)으로만 무쳐 먹었던 탕평채는 이후 간장, 초 뿐 아니라 고추, 후춧가루, 깨소금, 참기름, 마늘, 파, 소금, 설탕 등을 사용해서 양념하여 보다 다양한 맛을 내고자 하였다. 또한 미나리, 고춧가루, 실고추, 지단채, 통잣, 잣가루, 깨소금, 김 등을 고명으로 사용했다. 탕평채의 조리방법은 1800년대 말의 문헌부터 비교적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1800년대 말에는 모든 재료를 함께 양념했으나, 1900년대에는 다른 재료를 먼저 양념하고 마지막에 묵을 넣고 무치는 방법도 사용했다.

1700년대~1960년대 문헌에 나타난 탕평채의 문헌고찰 (Literature Review of Tangpyeongchae in Cook Books Published in 1700~1960s)

  • 이경애;김보람;김향숙;신말식
    • 한국식품조리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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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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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89-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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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탕평채의 전통 조리법 발굴을 위해 1700년대부터 1960년대의 고문헌 및 고조리서에 수록된 탕평채의 재료, 양념, 조리방법의 변화 등을 검토하였다. 탕평채는 1700년대 말의 문헌인"경도잡지"와 "고사십이집"에 처음 소개된 후 "임원십육지", "동국세시기", "송남잡식", "진찬의궤", "진작의궤", "명물기략", "규곤요람", "시의전서", "조선요리제법",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주부의 동무, 조선요리제법", "조선요리학", "이조궁정요리통고",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등에 탕평채가 수록되었다. 조선시대 궁중 연회음식을 수록한 "진찬의궤"와 "진작의궤"에는 청포채란 명칭으로 탕평채가 소개되어 있다. 탕평채의 재료 중 묵, 고기, 미나리, 숙주나물, 달걀, 김의 사용이 보편화된 것은 1900년대 중반 이후이며, 달래, 물쑥과 같은 봄나물을 재료로 사용한 기록도 있다. 1700년대 말에는 단지 초장(간장과 초로 만듦)으로만 무쳐 먹었던 탕평채는 이후 간장, 초 뿐 아니라 고추, 후춧가루, 깨소금, 참기름, 마늘, 파, 소금, 설탕 등을 사용해서 양념하여 보다 다양한 맛을 내고자 하였다. 또한 미나리, 고춧가루, 실고추, 지단채, 통잣, 잣가루, 깨소금, 김 등을 고명으로 사용했다. 탕평채의 조리방법은 1800년대 말의 문헌부터 비교적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1800년대 말에는 모든 재료를 함께 양념했으나, 1900년대에는 다른 재료를 먼저 양념하고 마지막에 묵을 넣고 무치는 방법도 사용했다.

조선(朝鮮) 통신사(通信使)를 포함한 한(韓).일(日) 관계에서의 음식문화(飮食文化) 교류 -1. 조선전기(朝鮮前期) 한(韓).일(日)관계에서의 교역물품과 일본사신(日本使臣) 접대- (Food culture Interchange in the Relations Between Korea and Japan Including the Cho Sun communication Facilities -1. The trade goods and receptions for Japanese envoies in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Japan at the first term of the Cho Sun era-)

  • 김상보;장철수
    •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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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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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9-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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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
  • Food goods traded between Korea and Japan during the first term of the Cho Sun era included Omija (fruit of the Maximowiczia chinensis), Jat (pine nuts), Insam (Jinseng), rice, and beans as exports ; and pepper, sugar, and medicinal stuffs as imports. The trade between Korea and Japan was a result of Japanese envoies' visiting. The official number of Japanese envoies who had exchanges with Koreans were two thousand people a year. Once the Japanese entered Korea, they did not need to pay for their living expenses for the length of their visit because the Cho Sun government bore the whole expense. The Cho Sun government gave formal receptions to them, which included daily meals as well as banquet style meals. The daily meals included Jo-ban (breakfast), Jo-seok-ban (breakfast and dinner), and Ju-jeom-sim (lunch). Meals were served four times a day. The banquet style meals included Sam-po-yeon (a banquet that was held in Sam-po), Kyong-joong-young-jeon-yeon (a farewell banquet, and a welcome banquet that was held in Seoul), Jyu-bong-bae (to offer a guest a drink by day), No-yeon (a banquet that was held on the street), Kwol-nae-yeon (a banquet that was held within the Royal Court). It also included Ye-jo-yeon (a banquet that was held in Ye-jo), and Myong-il-yeon (a banquet that was held on a national holiday). The banquet style meals were composed of Ceon-tack (to set a table for dinner), Sang-hwa (a flower that was put on the food), Kwan-hwa (to offer a flower when a banquet was held), Ju-5-jan (the fifth wine glass), Dae-seon (meat), and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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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선(약선)을 이용한 건강 기능식 개발에 관한 연구 - 중국 문헌을 중심으로 - (Studies on Development of Functional Herbal Food Based on Yaksun - Focusing on the Relevant Chinese Literature -)

  • 박건태;김도완
    • 한국조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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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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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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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21세기 화두를 한마디로 말하면 건강일 것이다. 건강을 위해서 각종 운동 방법 및 운동기구와 건강 보조식품의 판매가 급성장을 하고 있으나,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 즉 식단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예전에 비해 먹거리인 식재료는 매우 풍부해졌으나 영양 불균형은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이며, 잘못된 식생활 습관으로 발생하는 만성질환인 성인병과 생활 습관병의 발생은 심각한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식품도 이젠 맛, 영양을 강조하던 단계에서 인체의 생리적 기능 항진과 질병의 예방 및 치료가 가능한 기능성 식품으로 발전하고 있다. 약선은 동양철학 및 동양 의학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의학과 화려한 음식 문화가 만들어낸 것으로 음식에 한약재의 유용성분을 넣어 기능성을 살린 먹거리로 한의학의 약식동원을 기본 이론으로 하고 있다. 중국약선에서는 식품을 차거나 시원한 식품인 한량(한량), 따뜻하거나 뜨거운 (온열) 식품, 즉 한(한), 량(량), 온(온), 열(열) 4가지로 분류하고, 쓴맛(고), 단맛(감), 매운(신), 짠맛(함), 신맛(산) 등 5가지 기본맛으로 식품을 구분하고 있다. 약선식품의 작용은 질병의 예방과 신체 장기를 자양하거나, 기혈, 골격, 피부 등을 자양하고, 노화방지와 질병의 치료작용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궁중음식원과 산사 음식에서 약선 개념을 도입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체계적인 이론 정립과 연구는 미비한 실정으로 본 연구를 통해 궁중의 약선 관련 문헌을 고찰해 보고, 우리나라 실정에 적합한 약선의 도입과 연구발전에 필요한 기본자료로 제공하고, 약선을 이용한 새로운 건강 기능성 조리개발에 도움이 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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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당진찬(奉壽堂進饌)의 무대와 공연 요소 분석 (Analysis of the Stage and Performance Elements for Bongsudang-jinchan Banquet in Joseon Dynasty)

  • 송혜진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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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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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3-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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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고에서는 1795년 화성 행궁에서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열린 봉수당진찬의 의례와 악무를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 및 "정조실록", "홍재전서(弘齋全書)"등의 봉수당진찬 의례기록과 <화성능행도병>등의 도상자료, 일기체의 한글가사 작품인 이희평(李羲平)의 <화성일기(華城日記)>등의 자료를 중심으로 분석하여 무대와 공연요소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잔치의 주인공에게 충(忠)과 효(孝)의 의미를 담은 음악과 춤, 꽃과 음식, 술과 글을 예를 갖춰 올리는 궁중연향은 예악(禮樂)의 원리에 바탕을 둔 국가의례로서 조선왕조 500년 동안 고유한 음악문화를 형성해왔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막을 내리면서 '예'라는 상징적이며 총체적인 틀 안에서 상호 유기적인 관계에 놓여있던 연례의 음악과 춤들이 개별 악곡과 춤으로 해체되어 '작품화'되었고. 궁중음악과 춤의 철학이나 원리, 시공간에 대한 이해는 현저히 축소된 채, 음악과 춤의 전통은 형식과 예술적 표현 중심으로 변화해왔다. 1990년대 이후, 궁중의례 전통의 재현(再現)을 목적에 둔 연구와 행사가 추진되면서, 이와 연관된 공연예술 활동도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며, 특히 봉수당진찬은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무대화 하고 있다. 그러나 원전(原典)의 재현(再現) 및 복원(復原) 문제, 완성도 및 예술성에 대한 문제는 과제로 남아있으며, 지금까지는 "원행을묘정리의궤"에 수록된 의주의 외형적 재현에 관심을 두었을 뿐, 무대조건이나 공연요소에 중점을 둔 심도있는 분석은 부족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본 연구에서 무대구성과 공연요소 중심으로 분석해 본 결과, 조선시대 궁중연향 중에서 유일하게 '행궁'에서 개최된 봉수당진찬은 '예악의 정치'를 의례와 악무로 구현하는 궁중연향의 기본적인 면모를 보여주면서도 '군신동락(君臣同樂)'의 친화의 비중이 높은 연향이었음을 밝혔다. 내연과 외연의 성격이 섞인 봉수당진찬에서는 가림막을 최소화하여 신분의 차서(次序)와 남녀유별(男女有別)의 원리를 충족시키면서도 삼면에 둘러친 휘장 안에 외빈의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술과 음식, 음악과 춤을 다 같이 공유하도록 배치되었다. 또한, 연향공간의 상징성을 내포한 차일을 백관들의 공간에 치고, 임금이 솔선하여 선찬(膳饌)과 산화(散華)를 명함으로써 군신동연(君臣同宴)의 의미와 범위를 확장시킨 점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봉수당진찬이 '예악의 원리'가 강하게 드러나는 여느 궁중 연향에 비해 '정(情)'을 나누는 화친(和親)에 기반을 두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봉수당진찬에서는 여느 내연에서보다 임금의 역할과 비중이 높았으며, 특히 의주 외의 기록으로 전하는 여러 가지 상황 - 7작 이후에 정조가 신하들을 가까이 불러 나눈 대화, 신하들에게 음식과 꽃을 내림, 잔치를 주제로 직접 시를 짓고, 신하들에게도 이에 화답하게 한 일 등-은 의주에 따른 단선적인 연향의 진행에 변화를 주고, 연향의 의미를 확장시키는데 한 몫 하였다. 이밖에, 봉수당진찬의 주악과 정재의 구성을 분석해 본결과 연향에서 여러 인물들의 대화와 움직임이 매우 절제된 것은 여느 궁중연향과 비슷하지만, 춤과 음악을 통해 구현된 소리와 색채감은 매우 다채로웠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봉수당진찬에서는 정조 이전에 치러진 내연에 비해 다양한 종류의 정재를 상연하였고, 이 중에는 새롭게 초연된 레퍼토리도 있었으며, 또 기존의 공연을 새롭게 재구성한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선유락>이나 <검무> 등, 지방 관아 및 민간의 레퍼토리를 궁중연향으로 수용한 점, 풍류방에서 즐겨 연주되기 시작한 생황을 <학무> 와 연계한 것은 전통적인 규범과 관습에 매이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궁중연향의 '열린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계 두부 조리의 문화 (The Comparative Study of Curinary of Tofu of the World)

  • 한복진
    • 동아시아식생활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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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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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6-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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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
  • Korea supposed the place of origin of soybean. Although it is speculated that it was edible in the era of the Three Kingdoms(A.D. 5-9C), there is no documentary evidence. The first record about the edibility of tofu was written down in the Goryeo dynasty, and there was several documents that tofu was exported to China and Japan in the Chosun dynasty due to excellent manufacture skills for tofu. Tofu has been a good source of protein as a food for the common people, though there were not many traditional kinds. Especially, tofu has been an important vegetarian foodstuff in a Buddist temple, and has been used for vegetable soup and skewered greens necessary for the sacrificial rites of the humbler class as well as of the royal court. We frequently made sliced raw tofu and fried tofu, and it was used for broil, stew, and casserole as well as stuffing. In addition, tofu and its bean-curd dregs were applied of making soy. In China it is assumed that tofu has been eatable since the time of the Han(AD. 1C). Chinese tofu and its products are various and generally 20 different varieties are used. There are many dishes applied of tofu. salted and plain tofu were used as Chinese appetizer dishes. Plain, salted, skinned or deep-fried tofu was stir-fried in an hot oiled pan with vegetables, meats and fishes. Additionally, there are a variety of tofu dishes utilized stewing, frying, steaming, and soup cookeries. Tofu first appeared in the era of the Nara(8C) of Japan and was come into wide use in the era of the Aedo(Tokyo). In Japan tofu and its products are various and introduced in Shojin cookeries prevalent in the Buddist temples. It is especially noticeable that frozen or skinned tofu was used for these. Japanese tofu cooking is more delicate than Korean and Chinese ones, and Japanese people do not use oil. Instead, they in general utilize steaming and broiling cookeries. In the western countries the history of tofu edibility is short. However, their practical application of tofu in the dietary life is very posi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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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인삼과 의약서에 대한 기록 (Records on Ginseng and Medical Book during the Goryeo Dynasty)

  • 이성동
    • 인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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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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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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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우리나라의 특산품인 고려인삼은 삼국시대 이래 가장 중요한 수출품 중 하나였다. 그러나 고려 시대까지 우리 역사에서 인삼에 관한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본 고에서는 고려 시대의 인삼에 관한 국제 수교 및 교역 기록과 당시 출판된 것으로 알려진 의약서에 대하여 정리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주변 국가인 발해, 송, 왜, 후진, 원나라와 외교적 예물로 또는 교역품으로 인삼이 활발하게 거래되었다. 주로 고려에서 주변 국가로 인삼이 수출되었지만 발해와 거란으로부터는 인삼을 외교적 예물로 받기도 하였다. 아라비아 상인은 고려의 대표적 국제무역항이었던 벽란항에 와서 인삼을 교역하였다. 몽골 침입 이후 원나라의 인삼 요구량이 지나치게 많아서 큰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제중입효방』, 『어의촬요방』, 『향약고방』, 『삼화자향약방』, 『향약혜민경험방』, 『향약구급방』, 『비예백요방』 등 여러 의약서가 출판되었다. 『향약구급방』은 조선시대에 중간된 것이 전해지고 있으나 나머지 책들의 원본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 최근 후대의 여러 의약서에 인용된 것들을 연구하여 그 일부가 복원되기도 하였다. 궁중에서 사용되었던 의약서에는 인삼을 포함한 처방의 비중이 높았던 반면 주로 평민을 위한 『향약구급방』에는 인삼 처방이 한 건도 수재(收載) 되지 않았다. 이는 당시 인삼이 매우 귀하고 고가이어서 평민이 접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