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공주시 공산성 쌍수정 광장 남쪽에 위치한 원형연못(상면직경 7.3m, 바닥직경 3m, 깊이 4.78m) 부근의 천부 지반구조를 밝히기 위하여 탄성파 조사를 실시하였다. 기존의 문화재 발굴조사를 통하여 쌍수정 광장은 백제 추정왕궁지가 위치한 곳으로 알려졌으며, 이때에 원형연못도 발굴되었다. 문화재 지반조사에 대한 탄성파 탐사의 유용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측선이동시험(walkaway test), 전통적인 굴절법 탐사, 그리고 등간격 굴절법탐사를 적용하였다. 등간격 굴절법탐사는 처음 시도한 방법으로서 원형연못 및 주변의 지반을 통과한 선두파들 사이의 도달시간 차이를 측정하여 원형연못의 동쪽과 서쪽 지반의 차이점을 파악하였다. 전반적인 공상성 원형연못 주변 지반의 탄성파 속도구조는 3층 구조이다. 최하부 층은 쌍수정 주변에 노출된 기반암의 연장으로 해석하였으며, 최상부 및 중간층은 인공적인 기초지반으로 해석하였다. 원형연못의 기반암은 쌍수정 광장의 북쪽 지반에 비하여 더 깊은 곳에 위치하며, 원형연못의 서쪽지반이 동쪽지반에 비하여 더 두꺼운 연약층이 분포한다. 중간층은 백제시대 원형연못을 축조할 때의 다짐층으로 해석하며, 이를 근거로 공산성 원형연못은 파내려 가며 축조된 것이 아니라 쌓아 올려 축조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The study is to trace the origin of the Hongmunkwan ana discuss its development and roles assigned in each succeeding stages of the history. The Hongmunkwan lived a long life through Koryo and Yi dynasties. It was a multi-functioned institution designed as a royal library, an educational institution, and a political reference center. Prior to the Hongmunkwan, there were some established institution with similar functions to its ones during the Three-Kingdom Era. One of such kind was the Sungmunkwan(崇文館), which was eventually renamed the Hongmunkwan by King Songjong(成宗) of Koryo in 995, and a distinguished scholar-minister was appointed at the position of directorship for management of the now status-raised institution where state documents and books were housed. The Hongmunkwan experienced some reforms during its long life. In 1420, King Sejong(世宗) of Yi Dynasty founded the Jipyonjon(集賢殿) within the royal palace in place of the Hongmunkwan. The Jipyonjon was an innovated Hongmunkwan where many scriptures were stored and distinguished scholars and officials studied on them, sometimes delivering lectures to the king. King Sejo(世祖) abolished the Jipyonjon in his second year(1456) and reestablished the Hongmunkwan designed as a royal library in place of the former in his ninth year. King Songjong(成宗) in his 10th year (1479) of the reign, reformed the Yemunkwan(藝文館), which existed from the beginning of the Yi dynasty, by extending its functions and afterwards absorbed it into the Hongmunkwan together with the functions of the former Jibhyonjon which were included in the Yemunkwan. He founded another Yemunkwan which had the roles of drafings and descriptions of royal decrees. In the 10th year (1504) of Yonsankun(燕山君), the Hongmunkwan was abolished and instead of it the Jindokchong(進讀廳) was founded with less authority and functions. But shortly after that, King Jungjong(中宗) refounded the Hongmunkwan with the same scale, same authority and same functions as the former, one. As the Hongmunkwan also had a function of the royal library it collected and kept numerous books and writings in it. Some books and writings of the Hongmunkwan were composed of those which had been transmitted from the Koryo Dynasty and the others were composed of those which had been collected in the country or purchased by the trade with China in the Yi dynasty. Also newly-compiled important books in the country were reprinted and one of them were send to the Hongmunkwan. In the 8th year (1784) of King Jongjo(正祖), the history of the Hongmunkwan, entitled the Hongmunkwanji(弘文館志), was written and editioned by the royal decree and it was reeditioned the 7th year (1870) of King Kojong(高宗). The Hongmunkwan was absorbed into the Kyujanggak(奎章閣) in 1907.
새로운 문화 시대의 대두와 동아시아의 문화적 역할 증대는 한국 문화의 위상과 정체성 확립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에 본 연구는 조형의 기본인 의장, 특히 형태 조성의 근본이 되는 재료를 중심으로 실제 조사를 통해 유사한 한 중 일 삼국의 건축재료 중에서 한국재료의 특성을 파악하고자 한다. 연구는 문헌 조사와 현지 답사를 함께 진행하였으며 조사의 대상이 된 한 중 일의 궁궐은 창덕궁, 자금성, 니조성이다. 한국의 재료는 목재, 석재, 토재, 금속재, 초재 등의 자연 재료를 사용한다는 한 중 일 공통적 특성과 함께 재료에 있어 자연적 가공도가 높고 대체적으로 거친 질감을 그대로 살리고 있다. 이에 비해 중국의 재료는 인위적 가공도가 높고, 표면 질감이 매끈하다. 한편 일본은 재료의 인위적 가공도가 높으나 질감면에서는 자연스러운 거친 질감을 즐겨 재료의 질감표현을 위해 오히려 인위적인 가공을 더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한 중 일 삼국에 나타난 재료 특성은 우선 한국의 재료는 가장 자연적이고 중국의 재료는 가장 인위적이다. 이에 비해 일본의 재료는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재료 특성을 모두 지니고 있는데, 가공도가 높을수록 재료 표면이 거칠어지고 있다 이는 선행된 연구에서 당연하게 여겨졌던 한국 문화의 위치 즉, 중국과 일본의 중간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과는 대치되는 것으로서 이전의 연구가 선을 중심으로 한 형태 위주의 연구가 많았기에 파악되지 않았던 특색으로 보인다. 또한 재료의 가공은 자연적 영향보다는 그를 기반으로 하는 각 민족의 의식과 창의성의 발현으로 파악되는데, 특히 한 중 일 삼국의 자연 친화 사상의 표현 방식에 연유하는 바가 크다고 사료된다.
According to Confucianism, the world before Confucius focused on respecting the heaven which meant that everything could be done by the heaven. After the period of Confucianism, Joo-Ja asserted that everything could be done by nature. During the Chosun Dynasty, philosophers such as Seo Kyung-duck, Lee Hwang, and Lee Yi talked about four characters and seven passions of human being. They started to focus more on the inside of human nature. During the later period of the Chosun Dynasty, a philosopher by the name of Dongmugong Lee Jema analyzed that one's nature and feelings can change his or her external matter and the function of internal organs by purity or impurity of one's mind. Based on these analysis, Dongmugong discovered 'sasangin' which puts more emphasis on one's state of mind compared to the outside the world. Also, Dongmugong tried to figure out the connections between Confucianism and medical science. If you use change fire and stone theory which is difference between hado and nock-seo to expain four seven theory one's mind could be define as four natural characters and seven feelings. From four seven theory four is ying and seven is yang. This is the method of cure and understand the structure of human body. And also, four natural characters and seven feelings can be divided into heaven and earth. You can see Four natural characters is far more similar to heaven and seven feelings are similar to earth. According to four-seven theory hado is permanent and you can find out 'sasangin' is permanent also. Since seven feelings are influenced by sam-jae, you can analogize there are 21 different types in 'sasangin'. An underlying principle should there be 28 different types of sasangin instead of 21 different types of sasangin but one quater of sasangin is hidden according to samhyuniljang theory. All creations in the world are organized by unification of the great absolute and symmetry distinction of yingyang. With these facts identity of the heaven, earth and man which is named samjae generates symbols of independent sasang. And also, sasang generates relations between five element, six energy and the six family relation. From six family relation comes seven feelings of man which creates a category of the eight trigrams for divination and unification of nine palace. All these process are united.
황장목(黃腸木)은 적황색을 띠는 심재부의 비율이 높고 연륜폭이 매우 조밀하며 최소 수령이 100년 이상 되는 귀중한 소나무 자원이다. 조선시대에는 황장목을 궁궐, 사찰 등 중요 건축물에 사용하였다. 하지만 황장목의 재질특성에 관한 연구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본 연구에서는 황장목의 천연내구성을 검토하기 위하여 부후균 및 흰개미 저항성을 조사하였다. 공시균은 갈색부후균(Fomitopsis palustris)과 백색부후균(Trametes versicolor) 균주를 사용하였고, 공시 흰개미는 일본흰개미(Reticulitermes speratus)를 사용하였다. 그 결과, 갈색 및 백색부후균에 의한 중량감소율은 심재부에서 3.7~5.6%, 변재부에서는 16.1~26.3%로 나타났다. 또한, 흰개미 사충률은 심재부에서 약 47%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를 통하여 황장목의 심재부는 부후균 및 흰개미에 대한 저항력이 뛰어난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아시아에서 불사의 건립은 도성 및 궁궐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건축 활동 중의 하나로 인지되며, 특히 불탑은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불교건축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불사의 중심에 위치하였다. 이에 본 연구는 안동 조탑리 오층전탑이 해체 보수 하고 있는 상황에서, 7-9세기 석탑의 내부구조체계를 통하여 전탑의 축조과정 등을 해석하고자 연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첫째, 전탑의 파괴현상으로 측력으로 인한 밀림현상과 부재의 소성온도, 배합물질의 차이로 인한 부재의 파손을 들 수 있었다. 둘째, 전탑은 석탑과 같이 의장적인 부분과 구조적인 부분으로 구분되어 조영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의장적인 부분은 가장자리에 있는 전으로 구성되며, 구조적인 부분은 가장자리 전과 내부 중심까지로 의장적인 전의 안쪽에는 완충공간 즉 상부하중이 수직으로 내려오면서 측력이 발생하는 것을 잡아주는 공간에 석재를 둔 것으로 분석되었다. 셋째, 내부중앙에 목주를 두어 전탑의 조영 시 중심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였으며, 그 중심축은 찰주공의 하단까지 이어져 있었다. 넷째, 찰주공은 따로 내부 적심의 중앙에 따로 분리 축조하였다. 그리고 찰주공의 하단에는 찰주의 안착 및 위치선정, 뒤틀림보정을 위하여 구멍을 뚫어 놓았다. 이로 인하여 찰주는 자중으로 움직이지 않는 철재보다 목재로 설치하였을 가능성을 두었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시대 화협옹주묘 출토 화장품에 대한 선행 연구의 분석결과와 문헌상의 화장품 제법에 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화장분 일부를 재현하고 과학적 분석 및 성능 평가를 수행하였다. 연구 대상 출토 화장분은 탄산납과 활석으로 이루어진 백색분과 주사로 이루어진 적색분이다. 재현 백색분은 탄산납의 원료로 염기성탄산납인 연백을 이용하였으며, 열화 후 출토 백색분과 유사한 결정구조로 변화되었다. 주사, 명반, 노른자를 이용하여 재현한 적색분은 열화 후에도 출토품의 결정구조와는 차이를 보였으며, 출토 적색분은 순수한 주사로 제조되었거나 유기물 부패에 의해 현재의 결정구조를 갖게 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재현 화장분의 기능성을 평가한 결과, 발색력은 현대 화장품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였으나 재현 백색분의 발림성과 흡유능은 배합비율에 따라 일부 시료에서 현대 화장품과 유사한 수준으로 평가되었다.
정보기술 발달로 인해 관광정보제공에 있어서 다양한 정보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여러 지역자치단체나 관광지에서 여러 정보기기를 활용한 관광정보서비스를 제공해오고 있다. 2010년 6월부터 경복궁에서 PDA 기기를 활용한 안내서비스가 시행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PDA기기를 활용한 안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경복궁을 대상으로 하여 그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전문 문화해설사의 안내서비스를 받은 관람객과 PDA 안내서비스를 이용한 관람객의 해설에 대한 몰입, 만족, 재이용의도를 비교하였다. 그 결과, 모든 항목에 대해서 문화해설사의 안내서비스를 받은 방문객이 지각한 몰입, 만족 및 재이용의도가 높게 나타났다. 또한, PDA안내서비스의 서비스품질의 구성요인을 파악하고, 이 구성요인이 이용객의 만족, 몰입, 재이용의도 등의 태도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였다. PDA 안내서비스 구성요소는 '해설성', '디자인', '사용용이성', '시스템 안정성'의 네 가지 요인으로 파악되었으며, 이 중 '해설성'은 이용자 몰입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또한, '해설성', '안정성'과 '사용용이성'은 이용자 만족에 유의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용자의 재이용의도에 있어서는 '해설성'과 '시스템 안정성'만이 유의한 영향을 갖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통한 실무적 시사점이 논의되었다.
남한산성(南漢山城)은 병자호란을 상징하는 경관요소로서 치욕스러운 과거의 기억을 간직한 채 한강남쪽 평지 한 가운데 솟아있다. 남한산 아래의 고위평탄면상에는 산성의 수축을 계기로 고골(古邑)에서 이전해온 광주부(廣州府)의 치소(治所)가 자리하였는데, 조선시대에 성내동(城內洞)으로 불리다가 1910년에 읍내동(邑內洞), 1914년에는 다시 산성리(山城里)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생활환경이 열악한 일개 산촌에 불과했던 산성마을은 행정중심지로 계획되었으며 정책적으로 모임(募入)한 300여 호에서 출발하며 전성기에는 600호 가까운 규모로 성장하였다. 성내에는 종묘봉안처(宗廟奉安處)(좌전(左殿)), 사직봉안처(社稷奉安處)(우실(右室)), 행궁(行宮)을 겸한 광주부(廣州府)의 관아(官衙), 수어영(守禦營)과 광주부(廣州府) 소속의 공해, 시장(市場) 등 유교적인 도회도식(都會圖式)에 규정된 기본요소로 구성된 상징경관이 형성되었다. 성내동민(城內洞民)은 복호(復戶)의 혜택이 주어진 산성 안팎의 토지를 경작하고, 상품을 교역하는 한편, 모군(募軍)으로 자신의 노동을 상품화하면서 궁핍한 생활을 이어갔다. 사회경제적인 상황의 변화와 함께 1917년 산성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자리한 주막리(酒幕里)가 광주군 신 청사의 입지로 결정되면서 산성취락은 해체단계를 맞아 한적한 벽촌으로 남게된다.
본 연구의 목적은 국내 여러 기관에 분산 소장 중인 편경 유물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음향을 측정 분석하여 황종음고의 기본 진동수를 추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국악원, 국립국악고등학교에 소장 중인 241매 유물 경석의 간지별, 율명별 분포를 파악하였다. 보다 타당한 대푯값을 찾기 위하여 17매의 유물 황종 경석에서 측정한 기본 진동수를 군집 분석하였으며, 간지별로 경석을 분류하여 삼분손익법으로 황종음고를 역추정하였다. 경석의 간지와 기록이 일치하는 계축년 간지의 경석 22개로 추정한 황종음고의 기본진동수는 266.9 Hz, 정유년 경석과 갑자년 경석으로 추정한 값은 262.4~262.5 Hz, 20세기에 해당하는 간지인 갑진년, 소화 12년, 소화 13년 경석으로 추정한 값은 258.7~259.3 Hz 등 시대에 따라 변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유물에 대한 접근이 어려웠던 시대에 일부 유물로 황종음고를 추정한 것에 대해서 본 연구는 경석 유물 전수에 대한 음향 분석을 바탕으로 황종음고를 추정한 것에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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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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