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modern accept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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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텍스트 속의 노년 죽음과 돌봄: 조경란 소설을 중심으로 (The Meaning of Death and Caregiving in Old Age: Reading from the Novels of Kyung-ran Jo)

  • 박선애;김정석
    • 한국노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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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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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85-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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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 연구는 노년 죽음과 관련해 노년 스스로의 죽음 준비 모습과 주변인들의 돌봄 의미 및 가치를 조경란의 소설 을 통해 분석해 보았다. 먼저, 작가는 죽음에 이른 노년을 돌보는 여성들의 고통이나 내적 갈등을 그려나가는 한편, 오랜 돌봄 경험을 통해 죽음에 대한 긍정적 수용 자세와 자아발견의 모습을 형상화 하였다. 이런 작가의 시각은 생태여성주의자들이 고령사회에서 여성의 돌봄 행위 가치를 긍정적으로 평가는 주장과 연결된다. 작품 속 젊은 여성들의 돌봄 행위를 유교 문화적 성역할 규범의 내면화로 파악하기보다, 현대사회 죽음의 개인화 현상 속에서 노년의 삶과 죽음을 공유해 나간 공동체적 삶의 자세로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노년 인물들의 투병생활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젊은 세대에게 유년시절 죽음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삶과 죽음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을 던지며 진정한 자아성찰의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조경란은 고령화 사회에서 불가역적 노화현상에 따른 죽음 문제를 노년 주체의 죽음 준비 모습과 주변인의 돌봄 행위를 통해 세대 간 소통의 의미를 보여주었다. 특히 젊은 세대의 시선에 비친 노년의 질병과 죽음을 통해 삶과 죽음의 윤리적 계기를 마련해 나가는 데 집중하였다.

한국의 도서관 명칭 수용 및 쟁점 연구 - 일본홍도회 부산포지회 도서실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Acceptance and Controversy of Word Library in Korea: Focusing on the Busan Library of the Nihon Kodo-kai)

  • 윤희윤
    • 한국도서관정보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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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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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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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한국의 근현대 도서관 역사는 150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도서실(관)이란 말이 언제 등장하여 어떻게 변용되어 왔는지, 그리고 개화기 일본홍도회 부산포지회가 개설한 도서관의 명칭 및 전모에 대해서는 쟁점이 많다. 이에 본 연구는 여러 쟁점을 분석하고 논증하였다. 그 결과, 도서실이란 말은 조선 초기부터 시문집, 묘비명, 일기에 등장한 것으로 밝혀졌다. 도서관은 1895년 유길준이 「서유견문」 을 통해 최초로 소개하였다는 것이 중론이었으나 1881년 이헌영의 「일사집략」에 등장하며, 1884년 「한성순보」에도 소개되었다. 그리고 시설명에 부여한 최초의 명칭은 1901년 10월 10일 부산포지회가 개설한 홍도도서실이다. 많은 문헌에 기술된 도서구락부, 독서구락부(도서실), 부산(부산지부)도서실(관), 홍도도서관 등은 오류다. 홍도도서실 위치는 용두산 서산하정 임차지의 임시 가옥이었고, 규모는 방 1칸 정도와 화한서와 양서로 구성된 장서 1천권 내외였으며, 일본 거류민을 대상으로 유료서비스를 제공한 것으로 짐작된다. 비록 홍도도서실이 한국인에 의해 설립한 최초 공공도서관은 아니지만, 한국에 존재한 최초 공공도서관이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홍도도서실의 성격을 규정할 때는 민족적 정서, 역사적 갈등, 이념적 프레임을 초월하는 냉정함과 분별력이 요구된다.

『전경』의 사상분석으로 살펴본 '우리철학'의 방법론 (The Methodology of 'Woori Philosophy': an Analysis of this Philosophical Thought Contained in the Jeon-gyeong)

  • 이종란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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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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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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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의 목적은 우리철학 방법론의 하나로서 가설적 모델을 만들고, 그것에 따라 『전경』 속의 사상을 분석하고 분류하여 그 모델 적용의 실효성을 확인하고 동시에 그 방법론적 모범사례를 제시하는 데 있다. 본고에서는 기존 연구를 종합하여 우리철학을 이루는 기준을 만들었다. 비록 예비적이기는 하지만 『전경』 속의 사상을 분석하고 분류하여 우리철학을 이루는 방법으로서 모델을 제시하였다. 그 결과 『전경』의 내용은 그 빈도수에 있어서 <모델②>, <모델①>, <필수모델>, <모델④>, <모델③>의 순서로 되어 있다. 이것은 『전경』이 전통적 사상을 발전적으로 잇고 있으면서도 많은 부분에서 그것을 한국적으로 특성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또 세계의 인식과 당대의 시대문제를 결코 외면하지 않았고, 더 나아가 개화기에 전파된 외래물물에 대해서도 무감각하거나 맹목적으로 수용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전경』은 당대를 기준으로 해석해볼 때 우리철학을 함에 있어서 종합적인 방법론을 보여주고 있어, 여러 사상을 취하여 자기 것으로 만든 전범(典範)이라 할 수 있겠다. 이를 통해 이 모델은 우리철학 방법론의 하나로서 그 실효성을 확인할 수 있었고, 또 거기서 그런 모범적 사례를 추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경』 속의 사상이 곧장 21세기형 우리철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21세기 우리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이 모델을 적용해 해석해야 할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 또한 지금까지 대순사상의 연구 성과물에서 우리철학이 될 수 있는지는 해당 연구물을이 모델에 적용·분석해보아야 한다.

사칠논쟁(四七論爭)의 연원과 문제의식 - 『입학도설(入學圖說)』과 「천명도설(天命圖說)」을 중심으로 - (On the Problems of Iphakdosoel and Chunmyongdosoel, as the philosophical background of the Four-Seven Debate)

  • 장숙필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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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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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9-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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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본고는 "입학도설"과 "천명도설"의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사칠논쟁의 연원을 밝힘으로써 조선유학이 오늘의 우리에게 갖는 의미를 재확인하려는 것이다. 사칠논쟁은 조선 성리학의 대표적인 이론논쟁으로, 이로부터 파생되는 인심도심논쟁, 인물성동이논쟁, 미발심체논쟁 등 심성설 중심의 이론탐구는 조선유학의 중요한 특징을 이루는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접근은 대체로 이러한 이론논쟁을 현실을 도외시한 조선성리학의 공리공론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치부하거나, 아니면 현실을 도외시한 이론논쟁이긴 하지만 한국인이 지닌 철학적인 사고능력을 보여주는 철학논쟁으로 평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양촌의 "입학도설"에서부터 나타나는 성리학에 대한 기본이해는 성리학이란 수기치인지학으로서 결코 현실과 유리될 수 없는 것이며, 이상사회는 통치계층의 도덕성실현위에 모든 사람들의 도덕성이 실현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인간의 도덕성의 근거를 밝히고, 수양의 목표를 제시하며, 선악의 유래를 명확히 함으로써 현실적인 악을 극복하고 선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핵심이 된다. 이런 문제의식은 추만의 "천명도설"에서도 그대로 계승된다. 추만의 "천명도설"은 우리의 도덕성은 천명으로서 주어져 있으며 이를 근거로 천인합일이라는 이상에 도달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히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본격적인 심성논쟁이 의리실천을 학문의 핵심으로 생각하는 도학의 전통이 세워진 이후 도학자임을 자부하던 학자들 사이에서 계속되었다는 것은 이것이 결코 현실과 유리된 공리공론이 아니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즉, 조선유학이 가진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신뢰와 도덕성의 실현을 통해 인간사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인간에 대한 가치론적 이해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큰 철학적인 의미를 갖는다.

우주법(宇宙法)의 최근동향(最近動向) (Recent Developments in Space Law)

  • 최준선
    • 항공우주정책ㆍ법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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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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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3-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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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9
  • The practical application of modern space science and technology have resulted in many actual and potential gains of mankind. These successes have conditioned and increased the need for a viable space law regime and the challenge of space has ultimately led to the formation of an international legal regime for space. Space law is no longer a primitive law. It is a modern law. Yet, in its stages of growth, it has not reached the condition of perfection. Therefore, under the existing state of thing, we could carefully say that the space law is one of the most newest fields of jurisprudence despite the fact that no one has so far defined it perfectly. However, if space law can be a true jurisprudential entity, it must be definable. In defining the space law, first of all, the grasp of it's nature iis inevitable. Although space law encompasses many tenets and facets of other legal discriplines, its principal nature is public international law, because space law affects and effects law relating intercourse among nations. Since early 1960s when mankind was first able to flight and stay in outer space, the necessity to control and administrate the space activities of human beings has growingly increased. The leading law-formulating agency to this purpose is the United Nation's ad hoc Committee on Peaceful Uses of Outer Space("COPUOS"). COPUOS gave direction to public international space law by establishing the 1963 Declaration of Legal Principles Governing the Activities of the States in the Exploration and Use of Outer Space("1963 Declaration"). The 1963 Declaration is very foundation of the five international multilateral treaties that were established successively after the 1963 Declaration. The five treaties are as follows: 1) The Treaty on Principles Governing the Activities of States in the Exploration and Use of Outer Space including Moon and other Celestial Bodies, 1967. 2) The Agreement on the Rescue of Astronauts, the Return of Astronauts, and the Return of Objects Launched into Outer Space, 1968. 3) The Convention on International Liability for Damage Caused by Space Objects, 1972. 4) The Convention on Registration of Objects Launched into Outer Space, 1974. 5) The Agreement Governing Activities of States on the Moon and Other Celestial Bodies: Moon Treaty, 1979. The other face of space law is it's commercial aspect. Space is no longer the sole domination of governments. Many private enterprise have already moved directly or indirectly into space activities in the parts such as telecommunications and space manufacturing. Since space law as the public international law has already advanced in accordance with the developments of space science and technology, there left only a few areas untouched in this field of law. Therefore the possibility of rapid growth of space law is expected in the parts of commerical space law, as it is, at this time, in a nascent state. The resources of the space environment are also commercially both valuable and important since the resources include the tangible natural resources to be found on the moon and other celestial bodies. Other space-based resources are solar energy, geostationary and geosynchronous orbital positions, radio frequencies, area possibly suited to human habitations, all areas and materials lending themselves to scientific research and inquiry. Remote sensing, space manufacturing and space transportation services are also another potential areas in which commercial. endeavors of Mankind can be carried out. In this regard, space insurance is also one of the most important devices allowing mankind to proceed with commercial space venture. Thus, knowlege of how space insurance came into existence and what it covers is necessary to understand the legal issues peculiar to space law. As a conclusion the writer emphasized the international cooperation of all nations in space activities of mankind, because space commerce, by its nature, will give rise many legal issues of international scope and concern. Important national and world-community interests would be served over time through the acceptance of new international agreements relating to remote sencing, direct television broadcasting, the use of nuclear power sources in space, the regularization of the activities of space transportation systems. standards respecting contamination and pollution, and a practical boundary between outer space and air space. If space activity regulation does not move beyond the national level, the peaceful exploration of space for all mankind will not be realized. For the efficient regulation on private and governmental space activities, the creation of an international space agency, similar to the International Civil Aviation Organization but modified to meet the needs of space technology, will be required. But prior to creation of an international organization, it will be necessary to establish, at national level, the Office of Air and Space Bureau, which will administrate liscence liscence application process, safety review and sale of launch equipment, and will carry out launch serv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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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시기의 기록관리 (Record management in Great Han Empire)

  • 이영학
    • 기록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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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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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3-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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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1894년 6월에 갑오정권이 새로 등장하면서 근대적 개혁정책을 실시해갔다. 기록관리제도에서도 이전과는 크게 달랐다. 정부의 각 부처에 독자적인 기록관리부서를 설치하고, 기록관리 프로세스를 규정한 법률안을 공포하였다. 또한 독자적 연호 표기 및 국한문 혼용을 포함하여 공문서 양식을 전면 변경하였으며, 공문서 원본의 보존을 확대하였다. 고종은 1897년 10월에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갑오정권기에 약화된 왕권을 강화하면서 자신이 구상하는 개혁정책을 실시해 갔다. 먼저 왕권을 제한하였던 내각을 폐지하고 의정부를 복설하였으며, 왕권 견제를 위해 왕실과 정부를 분리하면서 만들었던 궁내부를 한층 확대 강화해갔다. 아울러 황제권을 강화해가는 물리적 기반인 군대와 경찰 및 재정 등의 영역을 고종이 직접 장악해가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그리하여 원수부, 경부를 직접 창설하여 황제 직속으로 하였으며, 황제 산하의 재정적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궁내부 산하 내장원에서 국가의 여러 세금을 직접 징수하도록 하였다. 대한제국기의 기록관리제도는 갑오정권기의 그것을 계승하였다. 먼저 정부와 황제 직속의 권력기구에서는 기록관리부서를 설치하였다. 의정부와 정부 부서는 물론이고 황제권을 뒷받침하는 특별기구인 궁내부, 원수부, 경부, 통신원, 지계아문 등의 권력기관에서도 문서과와 기록과를 두어 기록관리를 독자적으로 행하도록 하였다. 정부 업무의 효율을 증가시키고 체계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록관리부서를 분립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다음으로 부서마다 약간 차이가 있지만, 현용기록과 비현용 기록을 관리하는 부서를 분립하였다. 대체로 문서과에서는 현용문서의 접수와 발송 및 기안을 담당하였으며, 기록과에서는 주요 문서 및 영구보존문서의 보존 및 편찬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기록의 생애주기(life cycle)를 고려하고, 기록물 평가를 염두에 두면서 기록관리를 행하고자 하는 인식이 근대적 형태로 발현되었던 것이다.

중국식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Chinese Socialism and Nationalism)

  • 조봉래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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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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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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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 논문은 사회주의 중국에서의 민족주의의 형성에 대한 연구다. 중국은 발달한 문명을 바탕으로 한 문화적 우월감으로 인해 일찍부터 문화적 민족주의가 강하게 형성되어 있었고 이는 오랜 기간을 통해 '중화주의'로 굳어지게 된다. 그러나 아편전쟁 이후 서양의 침략으로 인해 위기감이 생겨났고 중국의 지식인들은 다방면의 변화를 통해 구망(救亡)의 길을 모색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서양의 '사회진화론'이 소개되고 받아들여진다. 이 사회 진화론의 수용은 결국 국가 간의 경쟁에서 밀린 중국이 제국주의의 침탈을 받는 것은 당연해지는 논리적 한계에 봉착하여 점차 변형되지만 중국 지식인들에게 문화적 중화주의에서 벗어나 서양의 근대적 국가민족주의 개념을 형성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중국공산당은 초기에 창당과정에서 부터 코민테른의 지도를 받았는데, 당시 제국주의 자본의 세계지배라는 조건 속에서 식민지국가에서의 민족해방투쟁이 세계 공산주의 운동에 있어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는 것을 강조되었고, 중국에서의 저항적인 민족주의성격을 띤 마르크스주의는 명분을 갖게 된다. 이후 중일전쟁 과정에서 반제반봉건투쟁을 통해 중국인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게 된 중국공산당에 의해 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되고 본격적인 사회주의 체제로서의 중국이 시작된다. 그러나 냉전이라는 국제적 여건 속에서 소련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중국 사회주의의 발전은 자국 인민의 결집된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중국 공산당의 지속적인 애국주의의 고양으로 이어진다. 특히 개혁개방 이후 새롭게 등장한 모순들로 인해 중국은 분열을 겪게 되었고 이를 통합하는 이데올로그로 자국의 문화적 자긍심을 바탕으로 한 중화주의가 또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최근 경제 강국으로서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진 중국에서는 전통문화의 우월성이 강조되면서 매우 강력한 중화주의가 대두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울산지역 극장의 공연활동과 사회적 역할 (Performance Activities and Social Role of the Theater in Ulsa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 김정호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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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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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7-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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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이 글은 일제강점기 울산지역의 극장에서 이루어진 공연활동의 현황을 살펴보고, 당시 공연문화의 특징과 사회적 역할을 고찰하였다. 일제강점기의 문화공간은 크게 극장공간과 준 극장공간으로 나눌 수 있다. 울산지역의 극장공간에는 대정관, 상반관, 울산극장 등이 있으며, 준 극장공간은 울산청년회관, 울산청년동맹회관, 병영청년회관, 언양청년회관, 언양청년동맹회관, 언양기독교회관, 언양 협성여관, 언양공립보통학교, 학성공립보통학교, 서생학교, 울산공보교대강당, 언양여자야학관 등이다. 이들 공간은 특정 목적의 행사나 공연이 개최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역담론을 생산하는 공적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극장은 영화 상연과 함께 공연이 이루어지는 공간, 예술가와 관객이 만나는 복합적인 문화 공간이었다. 나아가 극장은 단순히 무대 공간의 의미를 넘어 식민지 근대화와 근대의 도시 형성, 새로운 대중문화의 출현 등 다양한 이슈들을 생산, 소비하는 특수한 경험을 제공하였다. 울산의 극장들도 지역극장의 건립 목적에 맞게 외래문화 수용과 여가활동, 문화콘텐츠의 상연과 관람, 지역예술가들의 예술적 기량을 나타낼 수 있는 공간으로서 기능하였다. 그리고 정치 집회나 모임, 강연 활동, 각종 대회 등을 개최함으로써 지역담론 생산과 향유 활동의 거점 공간이었다. 정치 집회는 연주회와 겸하였고, 계몽 활동은 영화 상영과 겸하였으며, 음악 연주는 무용 공연, 자선모임과 결부되기도 했다. 특히 울산최초의 극장이라고 볼 수 있는 '상반관'과 공회당의 역할을 겸한 '울산극장'은 영화 상영과 함께 음악극, 동요대회, 동화구연대회, 소인극 공연, 가극 및 무도회 등의 공연과 함께 대중계몽을 위한 강연회, 토론회, 웅변대회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대규모의 집회장소로 널리 활용되었고, 외부 극단 방문지로서의 역할을 하는 등 공회당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준 극장공간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울산지역의 극장과 준 극장공간은 지역의 문화적 수준을 향상시켜 지역민들의 심미적 욕구 충족과 동시에 여론과 의제를 선도하는 공론장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그리고 근대사회의 대안적 공공영역으로 위치하면서도 공공기관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하였다.

판소리의 영화적 해석과 변모의 과정 (The cinematic interpretation of pansori and its transformation process)

  • 송소라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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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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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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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본 연구는 판소리를 소재로 한 영화를 대상으로 영화 속에서 판소리가 수용된 양상을 살핌으로써, 판소리에 대한 현대사회의 인식과 기대의 변화를 탐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조선후기 상하층의 사랑을 두루 받았던 판소리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겪으며 그 위상이 꺾이게 된다. 일본에서 유입된 신문물의 영향과 미국 문화의 유입으로 대중적 관심을 잃게 되며, 고루하고 낡은 전통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이에 국가는 점차 사라지는 판소리를 보호 및 계승하기 위해 1964년 판소리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지만 1980년대까지도 판소리의 자생적 대중성 확보는 어려웠다. 그러나 판소리는 국가의 꾸준한 지원과 명창들의 판소리 전승 노력,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우리의 것을 세계화하자는 사회문화적 담론 속에서 점차 동시대의 대중과 호흡하는 노력을 해왔고, 문화콘텐츠의 주요 소재로도 각광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팝밴드 '이날치'와 현대무용그룹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가 선보인 뮤직비디오 형식의 'Feel the Rhythm of KOREA'가 보여주듯 현재의 주목받은 대중문화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현대사회 속에서 점차 변화해가는 판소리에 대한 대중적 인식과 판소리의 위상은 영화라는 대중매체 속에서도 엿볼 수 있다. 본 연구는 1993년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를 비롯하여 최근의 <소리꾼>까지 판소리를 소재로 한 6편의 영화를 선별하여 이와 같은 변화의 추이를 탐색하였다. 먼저 1990년대에 제작된 영화 <서편제>와 <휘모리>이다. 이 두 편의 영화는 모두 당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대의 판소리, 즉 20세기 초중반 전승의 위기와 대중적 관심에서 멀어진 판소리의 현실을 보여주며, 그 속에서도 판소리 자체의 예술적 완성을 위해 치열하게 분투하는 소리꾼의 모습을 영화에 담아내었다. 판소리가 가진 정서로써 '한'과 북과 소리의 조화를 통한 판소리 미학을 강조함으로써 우리 소리의 숭고함과 특수함을 대중에게 선보였다. 판소리에 관해 관심이 적었고, 따라서 이의 가치를 잘 모르던 대중은 즉각 이에 화답하며 우리 음악과 우리의 정서에 대한 폭발적 지지를 보여 이른바 '<서편제>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서편제>와 <휘모리>는 우리 소리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부족한 시기, 그러나 그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요청되던 199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이 영화의 내용과 구성에 반영되며 당대 판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기대를 드러내었다. 다음으로 2008년에 제작된 영화 <소리, 아이>와 2012년의 <두레소리>이다. 두 영화는 판소리와 국악을 하는 동시대의 어린이, 학생을 주인공으로 하여 예술을 하는 아이들의 성장기를 그려나가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들 영화에서 판소리는 '요즘 세상에 누가 그것을 하냐'의 소리를 듣는 옛 음악도 아니고, 혹독한 수련과 고통 속에서 완성이 되는 숭고한 음악으로 묘사되지도 않는다. 부모님의 권유, 집안의 사정 속에서 판소리를 시작한 아이들이 소리를 익히고 성장하고, 갈등하고, 고민하는 이야기를 통해 판소리는 동시대의 하나의 자연스러운 예술로 그려질 뿐이다. 판소리를 비롯한 국악의 정통성을 신념화하여 강조하지 않고, 교조적으로 이를 대중에게 전달하지 않는다. 이는 동시대의 예술로 판소리를 바라보는 2000년대의 달라진 대중적 인식을 반영하는 속에서 판소리가 해석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2015년의 <도리화가>와 최근 상영된 2020년의 <소리꾼>이다. 흥미롭게도 두 작품 모두 판소리가 민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던 조선후기를 영화의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영화의 이야기를 판소리의 역사를 토대로 구성하였는데, <도리화가>의 경우는 실존 인물인 신재효와 진채선을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덧붙인 서사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소리꾼>의 경우는 광대의 소리가 판소리 사설의 원류가 되었다는 판소리 이론과 판소리 <심청가>의 서사를 활용하여 당대 존재했을 법한 소리꾼의 삶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두 영화는 판소리의 역사에서 이야기의 소재를 찾아 이를 영화화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전통을 문화콘텐츠의 소재로 삼고자 하는 시대적 분위기와 연결된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국가 간의 문화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때에, 콘텐츠의 소재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역사를 활용한 이야기가 그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통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문화콘텐츠의 소재로 삼고자 하는 시도는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되었고, 판소리의 음악뿐만 아니라, 판소리의 역사 또한 활용 가능한 콘텐츠의 대상이 되었다. 지금의 판소리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옛것도, 낡은 전통도 아닌 동시대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예술이자, 다양한 콘텐츠의 소재로 활용 가능한 자리에 온 것이다. 상기 영화들은 현대 판소리가 걸어온 길과 변모하는 위상, 그리고 이에 따라 달라지는 대중적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판소리 문화의 흐름을 이해하는 기초가 될 수 있다.

개인용 클라우드 서비스에 대한 중국 사용자의 지속적 사용의도에 관한 실증 연구 (An Empirical Analysis on the Persistent Usage Intention of Chinese Personal Cloud Service)

  • 우학흠;수아이니 수라;안종창
    • 인터넷정보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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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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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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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IT기술의 고속 발전에 따라 사용자들이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에 큰 변화가 생기고 있다. 전통적인 서비스 응용과 저효율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방식은 사용자의 요구를 만족할 수 없다. 사용자들이 데이터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빅 데이터에 관한 처리와 저장기술은 오늘날의 인터넷 회사의 주요 연구방향이 되고 있다. 115 네트워크 디스크는 중국에서 폭넓게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각 인터넷 회사들은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을 쟁탈하는 싸움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중국의 클라우드 서비스는 아직도 스토리지 서비스 위주이지만, 이 기능을 바탕으로 확장하는 서비스 내용도 사용자의 인정을 받고 있으며, 사용자들이 이러한 새로운 서비스 방식을 사용하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사용자들이 지속적으로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 할 것인지에 관한 연구방향이 더욱 필요해 졌다. 하나의 전통적인 정보 시스템에 대해, 학자들은 대개 TAM(Technology acceptance model)모형과 통계학을 결합하여 이 시스템에 대한 사용자들의 태도를 분석하고 검증한다. 하지만 기본적인 TAM모형은 날이 갈수록 방대해지는 시스템의 규모를 만족 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TAM모형에 대한 적당한 확장과 조절이 필요하게 되었다. 본 연구는 중국의 개인용 클라우드 서비스 사용자의 지속적인 사용의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관한 실증분석을 목표로 브랜드 영향력, 하드웨어 환경 등 외부 변수를 추가하고, 중국 클라우드 사용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했으며, 본 논문에서 분석을 통해 수정된 모형에 관한 가설을 검증하였다. 본 연구는 주로 중국의 4개 주요 도시의 210명의 클라우드 서비스 사용자를 대상으로 인터넷 설문 조사를 실행하였다. 설문 데이터를 통해 3개의 외부 변수에 대한 분석을 진행하였고, 이 3개의 외부 변수를 세분화하고 외부요소에 영향을 주는 주요 원인을 찾아냈다. 이를 바탕으로 개인 클라우드 서비스 사용자들이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사용 할 수 있는 태도를 강화 할 수 있는 것에 유용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의견들은 중국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주요 서비스를 제공 하는 회사에게 향후 서비스 방향을 참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