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고문헌 및 도상자료의 분석을 통하여 조선 후기 정치사에 큰 비중을 점유하고 있는 창덕궁 대보단의 시대별 공간구성을 조명하고 단제(壇制) 형성에 이입된 요소를 고찰할 목적으로 수행되었다. 대보단에는 병자호란 이후 지배질서의 위기를 느낀 조선의 지배층이 타개책으로 내세운 존명의리의 이념적 장치가 녹아들어 있으며, 조선중화의식의 자부심과 역대 임금에게 내재된 제천의 욕구가 맞물려 있는 등 복합적 요인이 한데 얽혀 조적(組積)되어 있었다. 표면적으로 대보단은 사직단의 구성요소와 부속건물의 배치를 그대로 가져오되 지형의 제약과 후원의 출입 제한으로 인해 변통한 배치를 보이고 있었으나, 입면적 구조에서 9급의 계단, 5척의 단고(壇高), 단유(壇?)에 나타난 2성(成)의 정황 그리고 황장방 내부의 형태 등 황명제의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수용되었다. 또한 "예기 교특생"에서 따왔다는 단명(壇名)은 다분히 교천(郊天)을 상징하고 있었으며, 중국과 조선의 사직단의 제도를 적절히 조합하여 참례(僭禮)의 혐의를 피하여 건립되었다. 이러한 점은 대보단의 단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특징으로서 중화계승의식과 역대 임금에게 내재된 제천의 욕구가 제단의 구조와 형식을 통해 표출된 것으로 판단된다. 본 연구에서는 대보단의 창건, 확장, 쇠퇴, 훼철의 과정을 편년적 방법으로 살펴보았는데, 각 변천의 기점에서 당대의 정치 문화적 배경에 따른 조선 통치엘리트 집단의 지배이데올로기가 제단의 공간형식에 투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편 도상자료에 나타난 대보단에 조응되는 위치를 찾아 현장조사를 실시한 결과 창덕궁 천연기념물 다래나무 주변에서 대보단의 석재, 전돌과 와편 등의 유구가 발견되어 향후 발굴조사를 통한 확인이 요구된다.
이 논문은 조선후기 보자기에 적용된 다양한 장식 특성을 연구한 것이다. 보자기는 물건을 싸거나 음식을 덮는 등 일차적으로는 실생활에 활용하기 위한 실용적 목적으로 제작되었지만, 보자기 제작은 전래된 상징적 문양의 표현을 통한 현세적 기원의 행위이기도 했으며, 또한 조선의 엄격한 유교 윤리 하에서 여성의 창작 욕구가 자유롭게 발현된 생활 속 여흥의 일부이기도 했다. 한국의 보자기에는 조각 잇기, 자수, 회염, 인염, 오려내기 세공 등 다양한 장식 기법이 활용되었다. 조각 잇기 기법이 활용된 조각보에서는 조선 여인들의 절약습관이 돋보이는데 이는 특히 자원의 재활용을 중시하는 오늘날의 가치와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자수가 놓인 수보에서는 상징적 문양의 표현을 통한 여인들의 소박한 바램이 읽혀진다. 한국 보자기는 회염이나 인염으로 장식되기도 했는데, 이들은 한국 복식 유물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식 기법들이다. 농담을 조절한 다양한 색채의 당채 기법이나 단일색의 먹물 채색, 여러 종류의 도안이 새겨진 목판을 이용한 인염 기법 등이 이용되었다. 음식물이 묻지 않게 하기 위해 때로는 기름 종이로 보자기를 만들기도 했는데, 이러한 식지보에는 오려내기 세공이 장식 기법으로 활용되었다. 오려내기 기법의 원리는 스텐실 염색과 비슷하여 이를 또한 섬유제품 디자인에 활용할 수도 있다.
본 연구는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지역전통과 문화자원을 바탕으로 한 지역축제를 통해 지역상징을 재창출하고 이를 지역활성화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는 전남 장성군을 사례로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 어떻게 지역의 상징 및 정체성으로 정립되고, 현재의 지역사회에 재구성되는가를 고찰한 사례연구이다. 장성은 조선의 유림 중 뛰어난 인물중의 하나인 하서 김인후와 그를 배향하고 있는 필암서원으로 상징되는 '선비의 고장'으로 알려져 왔고, 동학군의 활동에서 중요한 전기가 마련된 황룡강 전투지역과 한말 의병의 중요한 근거지였다고 하는 역사적 사실로 인해 근래에는 '의향'으로 정립되어 온 지역이다. 이와 더불어 최근에는 홍길동전의 주인공인 홍길동의 생가로 추정되는 곳이 발굴되면서 홍길동을 지역상징으로 재구성하여 지역활성화를 꾀하고 있는 '홍길동축제'의 중심지로 알려진 곳이다. 홍길동축제는 올해로 5회째라는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장성군을 대표하는 지역축제로 자리잡아 가면서 홍길동 캐릭터를 이용한 지역로고, 생가터의 관광자원화 등 이와 관련한 다양한 지역문화경관을 창출하고 있다. 오랫동안 이 지역의 정체성의 중심에 있었던 '선비의 고장', '의향'으로서 장성은 홍길동축제의 역동적이고 외부적인 이미지를 강화시킨 이벤트전략과 축제의 강한 시장지향적 속성이 창출하는 지역활성화라는 명분 앞에 '홍길동의 고장, 장성'이라는 전통의 창출과 재구성을 경험하고 있다. 전통의 재구성과 현재적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홍길동축제는 이제 그동안 이 지역의 역사적 경험에 기초한 전통과 문화를 다양한 물리적 지역경관과 함께 어떻게 현재의 지평에서 불러내 활용할 것인가, 그리고 이를 위한 지역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에 진정한 지역통합 및 지역활성화의 기능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에서는 한양도성 석재공급지 추정을 위해 고문헌을 분석하고 산지탐색 지점에 대한 광역조사를 수행하여 암석학적 기초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였다. 고문헌 분석 결과를 종합하면 성돌은 조선 초기에 주로 도성과 인접한 석산에서 조달된 반면 후기로 갈수록 도성 외부의 고정 채석장으로부터 공급되었다. 따라서 고문헌에 기록된 채석 산지를 중심으로 암석학적 조사를 수행한 결과, 산지탐색 전역에 걸쳐 담홍색화강암과 우백질화강암이 분포하였으며, 이들 화강암류는 광물조성 및 지구화학적 거동특성이 거의 유사하였다. 그러나 담홍색화강암은 남산 북사면에서 불암산의 북동방향으로 갈수록 대자율 값이 증가하는 자철석 계열을 보였으며, 우백질화강암은 용마산을 시작으로 남산과 인왕산 등의 편마암 경계부에 주로 나타나고 티탄철석계열의 낮은 대자율 특성을 가졌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할 때, 한양도성 석재공급지 추정을 위한 중요한 암석학적 지시자는 색상과 대자율로 판단된다. 이와 함께 채석장의 석재 양, 운반거리 및 기술력 등을 고려하여 원산지 해석의 신뢰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문화콘텐츠는 '창조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창조와 실천, 그리고 차이의 이해가 이루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콘텐츠는 융복합지식의 콘텐츠 대중적이면서도 감성과 지식을 채워주는 질 좋은 콘텐츠를 선정해야 한다. 동아시아 인문주의 창제자인 공자는 의식주의 철학과 조선 후기 식생활에 영향을 끼쳤다. 공자는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유학뿐만 아니라 음식관에서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중 정조지(鼎俎志)"는 음식과 요리에 대한 백과사전으로 7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음식의 재료, 조리법, 효능 및 금기 등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는 육류요리, 채소요리뿐만 아니라 청량음료 달인음료 등의 각종 음료나 꿀과자 설탕과자 등의 과자류, 그리고 술 빚는 방법까지 천 여 가지의 레시피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그가 72세까지 살아오면서 자기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무엇을 조심하고 어떻게 잘 해야 하는지 일반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언급하고 있다. 공자의 일상에서 기록해 온 식문화가 조신시대까지 이어와 영향을 받은 풍석 서유구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통해 동양의 식문화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대중적으로 접근하려 한다.
조선 후기 3대 명필로 지칭될 만큼 독자적 서풍을 창안한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1770~1845)은 '법고(法古)'를 중시하였는데, 한위대(漢魏代) 서예를 근본으로 하고, 동국진체(東國眞體)를 완성한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를 마음의 스승으로 삼아 수련하였다. 만년에는 올바른 필법 전수를 위해 『창암서결(蒼巖書訣)』을 저술하여 보편적 서예의 기본원리와 자신의 서예관을 피력하였다. 창암(蒼巖)이 지향하는 서체는 해서(楷書) 근골(筋骨)의 확립을 통한 초서(草書)로 완결된다. 이를 위해 한위(漢魏)의 서체를 전범(典範)으로 제안하였는데, 온후간원(穩厚簡遠)한 한위근골(漢魏筋骨)은 무위자연적(無爲自然的) 무법(無法)의 경지를 보여준다. 이로 보아 창암(蒼巖) 서예론의 핵심이자 궁극적 지향점은 '자연(自然)'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법의 극치에 이르러 다시 무법(無法)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여기에서 음양(陰陽)이 생성되고 형(形)·세(勢)·기(氣)가 부드러움을 도모하면 기괴(奇怪)함이 생겨난다고 보았던 것이다. 한편, 고법(古法)에 얽매이지 않고 우졸(愚拙)한 자연천성(自然天成)을 발현하면 장법과 포치가 일운무적(逸韻無跡)한 득필천연(得筆天然)을 이룬다고 강조하였다. 우리는 이 연구에서 그의 서체가 자연을 예술로 승화하면서, 조선 고유의 서예미를 끊임없이 접목·시도하였음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하여 근골이 풍부하고 생명력과 역동감이 넘치는 형세를 이룬 일운무적(逸韻無跡)을 체화(體化)하였고, 득필천연(得筆天然)한 극공(極工)의 심미경지를 이루어 독창적인 '행운유수체(行雲流水體)'로 구현하였고 마침내 호남지방에 동국진체(東國眞體)의 서풍과 서예정신을 더욱 창달시켰다.
The stylobate for expanding the external stage area was the most frequently installed installment out of the installments installed for royal court ceremonies. The stylobate was installed for various ceremonies such as funeral rites, ancestral rites, customary formalities, state examination, feasts for celebrating a honored guest of the court, queen's silkworm cultivating ceremony, heir appointment, the presentation of honorary titles for the king or queen in honor of their merits, and entertainment of foreign dignitaries. The exact period stylobates came to be used for the play stage. The stylobate consists of the 紅座板, 屯太木, 竹欄間, 足木, and the 層橋. Depending on the 足木, the substructure of the stylobate, the stylobate could be divided into the 長足木, 中足木, 短足木, 平足木 type. The detail structure of the stylobate changed in form from the jokmok and duntaemok that appeared until the time of King Seonjo, into the 長屯太木, 短屯太木, and the 短短屯太木 during the time of King Heonjong. With the introduction of the 中足木, materials began to become more segmented and the structure stronger. According to existing records, while the height of the stylobate was not significantly high prior to King Seonjo's reign, the 十四層雲橋 and the 十三層層橋 introduced during the time of Emperor Gojong was designed to reflect his rank in external ceremonies while the eight story step bridge was exhibited in internal ceremonies to reflect the rank of Queen Mother Sinjeong. From here, we can deduce that the fourteen and thirteen story cloud bridges representing the king was of a higher grade than the eight story step bridge which represented the queen mother. Finishing by adding boards to the lower part of the stylobates began to appear in the time of King Seonjo. During King Heonjong's reign, the lower finish became gentrified with a thin board called 修粧板, and yeomupan 廉隅板 for decorating the edges of the stylobates were installed. Such style of finishing the lower part of the stylobate with boards mostly appeared in elaborate feasts 進饌 and celebrations 進宴 within the royal court 內宴. The stylobates appeared to have served not only practical purposes such as expanding the stage area, but also as installments which realize the authority and prestige of the royal crown. They were installed according to the purpose of the ceremony and the rank of the participant. In short, stylobates became established during King Seonjo's reign, became segmented and gentrified during King Heonjong's reign, and began to take height variations during Emperor Gojong's reign to reflect the rank and authority of the king and queen mother. As such, it can be considered another characteristic of Joseon Dynasty architecture.
본 연구에서는 전통 원림에서 행해진 비둘기 애호 문화를 살펴보고, 전통 원림의 동물 소재로서 비둘기의 면모를 조명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비둘기의 종류와 명칭을 파악하고, 쓰임과 상징적 의미를 분석하여 비둘기에 대한 인식을 파악하였다. 비둘기를 통한 원림 향유 문화를 살펴보기 위해 한국고전종합DB와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비둘기'로 검색하여 도출된 고문헌의 번역본을 대상으로 내용 분석하였으며 옛 그림을 참고하였다. 비둘기는 귀소성이 있는 새로서 전서구(傳書鳩)로 이용되었으며, 약용, 식용으로도 쓰였다. 비둘기는 다양한 상징적 의미가 있는데, 풍요(豐饒)와 환우(喚雨)를 의미하였으며, 장수를 상징하였다. 고려 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궁원(宮苑)과 사가 원림에서 비둘기를 길러왔으며, 조선 후기에는 관상용 비둘기의 애완문화가 일시적으로 유행하였다. 비둘기는 원림을 풍부하게 향유하게 하는 공감각적 소재였다. 가지각색의 아름다운 비둘기는 움직이는 조경 소재로서 원림의 가변적 경관을 창출했다. 비둘기의 움직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방울 소리는 경관의 청각적 체험을 풍부하게 유도했다. 비둘기 집은 비둘기와 더불어 원림을 풍부하게 하는 완상 요소였다. 원림 조영자는 비둘기 집을 만들고 원림에 배치하는 행위를 통해 원림 조영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또한 문인들은 봄을 상징하는 수목이자 비둘기의 먹이 제공원으로서 매실나무, 복숭아나무, 살구나무, 산사나무 등과 더불어 부귀와 은일을 상징하는 모란과 국화를 식재하여 비둘기와 함께 향유했으며, 이를 시와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본 연구는 전통 원림의 공감각적 소재로서 비둘기에 주목하여 전통 원림 문화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동물 요소로서 원림에 도입된 비둘기의 완상 요소와 조영자의 향유 행태에 대한 조경사적 컨텐츠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본 연구에서는 번역문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는 한계를 가지며, 향후 원림에서 비둘기를 기른 구체적 사례와 근현대 시기 조경 공간에서의 비둘기 기르기에 대한 후속 연구가 촉구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청화백자투각연당초팔괘문연적(수정147)을 대상으로 CT 조사를 실시하고 복제품을 제작하여 구조와 제작방법에 대해 살펴보았다. CT 조사를 실시한 결과, 접합선이나 기공이 없는 것으로 보아 하부 동체부 틀을 사용하여 한 번에 찍어 빼낸 후 상부 틀로 찍어 뽑아낸 상부 뚜껑을 서로 접합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하부 동체부의 내기 상면과 연접한 뚜껑 하단면이 서로 접합이 잘 되도록 내면 가운데를 대나무 칼로 거칠게 돌려 깎아 접합면이 누수 되지 않도록 처리하였다. 처음 제작할 당시 물을 담는 연적의 내기(內器)는 도량형 규격에 맞고 틀을 뽑아내기에도 용이한 원통형(圓筒形)으로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되나 상부면과 동체부를 붙이는 과정에서 형태가 사다리꼴로 변형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실리콘 복제를 이용하여 원통형 내기로 다시 제작한 후 내기의 용량을 비교 측정한 결과, 3D프린팅을 이용해 복제한 유물 내기의 용량이 152.5㎖인데 반해 원통형 내기의 용량은 대략 168.6㎖로 조선시대 도량형 기준인 '량(量)'의 단위로 3홉(약 174㎖)과 유사하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원통형 내기의 용량이 조선 후기 도량형 기준과 부합하므로 실제 도공이 팔괘문연적을 제작할 당시 원통형내기를 가진 연적으로 제작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본고에서는 영남에서 인지도가 높았던 방산 허훈의 "방산집"을 중심으로 II장에서는 방산 허훈의 삶과 학문적 연원을 살펴보고, III장에서는 본격적으로 허훈의 산문 중에서 잡저(雜著)에 실려있는 작품 몇몇을 선정하여 그 내용을 분석하고 특징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았다. II장에서는 방산의 삶과 학문적 연원을 살펴보았는데, 방산은 평생 정치에는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는 처사적 삶을 살았다. 방산의 학문적 성향에 대해서는 근기와 영남학파, 두 진영을 아우르는 학문을 이룩하고자 노력하였다. 방산의 학문적 계보는 근기학파의 개산지조(開山之祖)인 미수(眉?) 허목의 학문이 곧 한강(寒岡) 정구에게서 나왔고 한강의 학문은 퇴계에게서 나온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방산의 학문에 직접 영향을 준 성재(性齋) 허전(許傳)은 순암 안정복계의 인물이었다. 그리하여 방산은 성재를 통하여 순암계 우파를 퇴계학의 정통이라 생각하여 영남학파보다는 근기학파에 더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방산의 저술에는 실용적인 측면이 많다. III장에서는 방산의 한문산문 작품의 내용을 분석하여 근기학파의 학문 전통 고수와 자주국방의 인식으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근기학파의 학문 전통 고수에서는 실증주의, 실용주의에 입각한 서술을 주로 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을 가지고 대의 중심으로 한 글을 쓰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속에 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정당하다고 보지 말고 예부터의 일을 상고하여 바로 잡고자 하였다. 이러한 방산의 사고에는 퇴계를 중심으로 하는 근기남인의 학문 성향이 짙게 베어 있다고 하겠다. 자주국방인식에서는 <포설>과 <거설>을 통해 병가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강조하고 있다. 방산이 여기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새로운 장비에 대한 정보와 이에 대한 교육과 구축이다. 그러면 조선은 군사력이 강력한 나라가 되었을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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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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